인간의 본질 (화평교회에 올려진 오용익 목사님 글)
인간의 본질 (화평교회에 올려진 오용익 목사님 글)
이름 : 강구만(IP:121.150.1.16)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밝힌 인간을 배설물이라 명명한 것은 십자가지신 주님 앞에 설 경우에만 제대로 밝혀지는 인간의 본질과 그 구조이다. 이미 인간이란 로마서 5장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바울은 인간의 모든 차별성을 없애면서 인간을 그 본질상 하나로 묶는다. 이것은 둘째아담의 등장으로 인해 비로소 확정되고 또 그 확정된 사항이 밝혀진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지상을 바라볼 때 어떤 안목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사항이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볼 때 이 지상의 인간이란 마귀에 사로잡힌 채 태어나는데 마귀의 속성발휘인 하나님을 무조건 마음에 두기 싫어하면서 자기 몸을 신전삼고 자기를 신으로 떠받드는 자기 행함과 그 행함의 증거자로 일관한다는 면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한 사람 아담의 연장으로 보고 계신다.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인간형이란 이러한 아담 안 구조(힘의 권세)에서 벗어나 둘째아담의 구조(둘째 아담의 권세) 안으로 이전된 상태일 경우뿐인데 이 둘째아담이 갖고 오신 구조에 걸려들 경우뿐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악마의 구조와 예수님의 구조안의 대조를 통해서만 그 본질이 규명될 뿐이고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인간을 제대로 파악할 길은 없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외부로 탈출해서 자기를 볼 수 있는 경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악마의 구조란 한마디로 힘의 구조다. 그 내용은 힘을 바탕으로 한 자아구축이다. 그 구조는 있음에서 있음의 구조이다. 즉 존재의 한없는 긍정이다. 힘 더하기 힘이다. 이 구조를 위해서는 필히 전제되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이 땅(공간)과 이 땅의 영원성(시간)과 그 공간과 시간 안에 구축할 인간의 노동(행함)이다. 마귀가 자기의 세계 안에 놓인 인간들에게 계속해서 주입하는 것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인간들을 포함하는 환경)을 이용해서 너를 구원할 자는 너 뿐이다. 너 외에 다른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네가 너를 살리는 일을 잘하면 그것이 선이고 네가 너를 살리는 일을 잘못하면 그것이 저주다, 라는 최종적으로 자기 몸을 겨냥한 기준만 적용될 뿐이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행함의 세계요 저주의 세계로 보았다.
반면에 주님이 몰고 오신 구조(약속)는 대속의 구조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구조이다. 나의 죽음과 나의 생명, 죽음과 생명의 기준이 피어나는 내 몸을 아예 그리스도의 죽음에 편입시켜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산하는 새로운 몸으로서 다시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사도는 이 세계를 믿음의 세계라고 했다. 죽음의 구조에서의 탈출은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의 세례로만 예수님의 죽음구조에 편입되는데 이렇게 편입된 예수님의 죽음 구조 안에 놓이게 된 성도의 일생이란 늘 상 왜 내 힘으로는 절대로 구원이 안 되는지에 대한 불가능성을 말씀의 현실화를 통해서 부활의 능력을 절감하게 된다.
곧 내 몸에 예수님의 자기죽음을 작렬시켜서 내 몸의 저주성을 더 깊이 절감케 하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구조다. 그 사랑 구조 안에 놓인 몸은 이 땅과 시간이란 나의 노동으로 나의 존재를 구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나에게 봉사해야만 되는 재료라고 여기는, 그래서 하나님까지도 가차 없이 죽여 버리는 1) 이 발상, 이 기준 외에는 나오지 않는 이 몸, 뭘 해도 이 기준을 구축하고 그 구축된 것을 통해서 이 마귀의 기준을 발산하는 몸, 어찌 되었든 예수님의 몸과 그 몸이 하신 일을 거부하고 막아서고 피하여 달아나고 시도 때도 없이 잠재된 적대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이 몸 2) 이 구조에서 자기 힘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이 몸 3) 죽어 마땅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이 몸임을 말씀으로 지적당하면서 그것이 바로 마귀의 구조에서 돌출된 것이었기에 그런 몸은 반드시 지옥가야 마땅하다고, 동시에 그런 인간을 구원하는 구조는 오직 예수님이 피로서 완성하신 새 언약뿐이라고 증거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그리스도의 몸의 활동성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땅이며 그리스도 몸의 활동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시간이다.
이미아(IP:119.♡.110.10)
10-05-27 16:50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남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늘 쫒기며 사는 것....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언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