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대상
주체와 대상
이름 : 김성환(IP:121.137.115.152)
주체와 대상(객체)이란 무엇일까? 주체와 대상은 어떤 관계안에 놓여 있는가? 인간은 주체와 대상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주체는 어떤 자가 되면 대상은 어떤 자가 위치해야만 하는가? 주체와 대상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또 무엇인가?
일례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을 보자. 김일성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창시한 자라면 김정일은 아버지의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실질적으로 실천한 장본인일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부자지간은 북한이란 국가체제를 고수하고 방어하고 변호하기 위하여 자신들만의 주체사상을 이론화하고 실천화했다.
주체란 단어의 일반적 개념은 '어떤 단체나 물건의 주가 되는 것',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가 되는 것'이다. 철학적 개념은 '실재하는 객관에 대립하는 의식하는 주관'이다. 법률적 개념은 '다른 쪽에 대하여 의사나 행위를 미치는 쪽'이다. 북한이란 국가에서 보는 주체의 개념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서의 인민대중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물론 이 주체란 개념들이 각 단체와 상황화에 따라 달리 정의될 수 있으나 기본적인 중심어구는 타인(어떤 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인'이란 개념이다. '주인'이란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세계든 어떤 사상과 생각과 행동이 타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주체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상기에도 언급했지만 '주체'란 부분이 어떤 인물과 상황에 따라 달리 개념화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그 아들 김정일이가 주장하는 '주체사상'이란 보통 사람과 사회에서 통념되는 생각과 달리한다. 즉, 북한이란 체제를 세우기 위해서 기존에 세웠던 '주체'란 개념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주체사상'을 이론화하고 고집하고 실천화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란 개념은 북한이란 국가체제만을 고수하기 위한 사상에 불과하다. 즉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군사 등 공산주의 사회혁명과 건설에 대한 이론적 방법론이다. 김일성은 '주체'란 개념을 1955년에 당 선동자들에게 연설한 내용인데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는 것을 주 이슈로 확립하는데서 유래된다. 그러나 김일성은 1982년 발표한 그의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그의 주체사상의 원리를 처음으로 주장했고 그 '주체'란 개념도 하나의 사상 철학으로서가 아닌 북한의 대외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국가체제유지로서 등장된 개념이다.
1953년 소련의 스탈린 사망이후 흐루시초프의 등장과 중국의 마오쩌둥의 영향력의 확대로 북한 내부의 심상치 않는 갈등 즉, 국내파당과 중국파당과 소련파당의 갈등을 무마시키고 자체내의 규율을 도모하여 반동분자들을 숙청하는 이론적 실질적 근거를 제공하고자 만든 김일성의 '주체사상'개념이다.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은 아버지의 주체사상을 이론화하고 실질화했다. 그러나 그 주체사상이란 개념도 김정일의 권좌를 보호하고 변호하는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념상으로는 '인민중심의 철학' 즉,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란 원리이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을 위한 '주종관계적 주체개념'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까 김정일 수령에 대한 절대화와 인민들의 비주체화와 비자주화를 합리화한 자신을 위한 이론과 실질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서 본 '주체'란 개념은 인간 한 사람의 몸을 위해 존재하는 언어적 유희(워드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 즉 말이나 언어를 놀이란 소재거리로 사용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몸을 위해 동원된 '놀이'이다. 객체 즉 '대상'이란 부분도 '주체'란 부분과 다르지 않다. '대상'은 객체의 넓은 의미로서 '주체'로부터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즉 '주체'로부터 독립된 인식구조를 갖고 있는 인물과 사물이다. '대상'은 '주체'란 영역 밖에 있는 것이다. 서로가 '긴장'이란 고리를 유지하면서 바라보는 관계다. 북한이란 국가에 적용한다면 '김정일' 대 '인민'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이가 주체자라면 인민은 김정일 수령에 충성을 맹세한 대상내지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 '인민'은 김정일이란 '주체'에 묶여 있거나 소속된 주종관계란 관계망으로 형성된 하나의 국가 내지 자칭 '왕국'이다. 통일교의 문**씨가 왕으로서의 '주체'자라면 그 신도는 하나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것과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체'와 '대상'은 서로간 독립된 자로서 존재하는 구조가 아닌 어느 한 쪽이 다른 편에 종속되어 버리는 구조다. 공산주의나 사이비 집단이 육안으로 드러난 한 예이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와 부동산을 업으로 삼는 교회도 이런 '주체'와 '대상'인 독립적 관계가 아닌 '주종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들면 '게이나 레이즈비언'들이 음지에서 활동하다 양지로 '커밍아웃'하는 자태가 민주주의 긍정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이것은 '평등관계'가 아닌 '주종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정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어릴 때 고분고분 웃어른의 말을 복종과 순종이란 틀로 번갈아 가며 좇아오지만 자아 즉 몸의 변화를 통해 부모와 자신과의 관계를 독립적 인격으로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체'란 부모와 '대상'인 자녀 혹은 '주체'인 자녀와 '대상'인 부모의 관계가 독립적 모습이 아닌 하나의 모순된 '주종관계'를 이룬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공산주의나 사이비 집단이나 민주주의 국가나 교인들이 출석하는 교회나 게이와 레즈비언 집단이나 부모와 자녀의 모든 관계에서 형성되는 '주체'와 '대상'은 '이 세상 신'(고후4:4)에 묶여 있기에 세상이 논하는 '주체'와 '대상'은 그 의미와 개념자체가 하나님 앞에 소실된다. 마치 노아시대 때 하나님이 하늘의 창문과 땅의 깊은 샘을 열고 사십 주야 비를 땅에다 쏟아 붓어 하나님이 만든 방주에 탄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함께 탄 징슴들이외에 모두 홍수로 쓸어버린 버린 현상과 같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짐승들이 탄 '방주'의 위력을 논하는 것 이외에 논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보시기에 하나님이 만드신 '방주' 이외에 하나님 당신 자신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주체'고 '대상'이고 '방주'란 실물과 의미 앞에 모두 깨어지고 사라진다.
하나님이 만드신 '방주'는 노아 가족과 짐승들에게 '긍휼의 세계'만을 보여 줄 뿐이다. '십자가'는 마귀와 세상이 논하는 모든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깨뜨린다. 그 자체가 이미 허상이고 그림자임을 십자가에서 흘러내렸던 '한 사람의 피'가 부정한다. '긍휼의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는 '주체와 대상'이란 개념과 의미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예수의 피'는 오늘도 십자가상에서 증언한다.
십자가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가 온 우주의 '주'되심과 또한 예수를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몸된 교회를 위하여 '종'된 신분임을 알아챈 인간이 사도바울이다(고후4:5). 바울은 이 예수의 피에 미쳐 있었고 이 피에 모든 삶의 비밀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세상 신'인 마귀는 예수의 피가 죄인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었고 또 그 피를 땅의 세계에서 인위적으로 다시 제조해서 상품처럼 세상과 교회와 나에게 매매하고 있었다. 누가 '주체'이고 누가 '대상'인가?
이근호(IP:117.♡.136.28)
10-05-26 14:53
사람이 모여있는 곳을 하나의 정신 아래로 집결시키는 방법은 특정인을 영웅으로 만들면 됩니다. 그 영웅의 일거수일투족, 생활용품, 성장과정, 일기장, 사소한 일화까지 모두를 일반인들의 세계와는 차이나는 세계로 격상시키면 되겠지요. 그 종교 단체를 부숴버리면 그 허상이 소멸할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권력이란 도전하는 세력이 전의 권력을 인수인계하는 식으로 재구성되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방식은 이것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즉 "기존의 어두움 권세를 소멸시켜라"가 아니라 "무엇이 어두운 세력인지 무엇이 빛의 권세인지 구별하라"입니다.
북한의 경우는, 북한 정권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의 재현체입니다. (공산주의 이념이 그러합니다.) 관념적인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인간의 행함으로 달성한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 왕국이 이쪽 남한에도 수두룩 합니다. 소위 '교회'라는 공동체들입니다. 북한이 3대 때 왕국을 이어나간다고 하지만 한국의 교회의 역사가 깊으면 깊을수록 3대 정도가 아니라 4대, 5대로 이어집니다. 기독교의 색채를 띤 사학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집안에서 3대 째 실제적 권한을 가진 총장이나 교장을 내세우게 됩니다. 그러면 후대 세대는 앞 세대의 영웅의 치적이 계속해서 그 단체이 힘을 집결시키는 구심점이 됩니다. 이렇듯 교회나 학교나 사업체는 왕이 통치하는 왕국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멸망받은 혈통 중심의 인간 사회의 진면목입니다. 민주주의란 허울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원합니다. 영웅을 옹립하기 위한 절차로서만 민주주의를 채택할 뿐입니다. 일단 영웅이 채택되면 모든 권력이 그곳에 집결됩니다. 이처럼 인간들은 여전히 왕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예외 조건이 발생해 있습니다. 십자가 피흘리신 분은 안된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내부의 악마님이 그 분은 싫어한데요. 나의 권력으로 전환을 불가능하게 만드시는 그 예수님을 제외하고서는 나머지 모든 이에서 영웅을 찾습니다. 이래서 참된 교회란 이런 권력 쟁투에서 밀려난 자들의 모임이 됩니다. 이 '밀려남'을 성사하기 위해 오늘날 영웅주의 교회들이 활발하게 처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정일과 김정일의 단체들로서 말입니다.
강구만(IP:121.♡.1.16)
10-05-26 15:05
바울이란 죄인을 예정하시고, 함께 죽으시고, 죽은자 같으나 산 자를 사용하셔서, 예수님의 주 되심을 하자 많은 한 인간의 삶으로 보여주신 '그 분'만이 주체 입니다. 이미 신이 되어버린 모든 인간은 주체 놀이에 빠져 평생을 주의 분노가운데 보내는거지요. 그러나 피 뿌림을 얻은 성도라면 이 주체놀음에서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고백하고 안개같은 그 존재의 가벼움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자 입니다. 끊임없이 살고자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지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엎어져 경배하는자 입니다. 평생토록 무엇이 저주이고, 무엇이 은혜이고 구원인지를 보게하시고 살게하신 은혜를 '누리는' 영화로운 죄인 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육과 영의 세계를 남이 아닌 자신의 고백으로 토해놓았고 곧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늘 쫒기듯 세상을 의식하고 용서받은 자의 자리가 아닌 내가 지켜야 할 나를 위해 계속해서 분칠에 분칠하고 나만의 자리를 고집하려 하는 그야말로 주체놀음에 스스로 속고있는 가짜인 나를 나는 날마다 발견합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이시는 주님의 긍휼이요 기쁨의 대상 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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