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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9자유게시판로마서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9

이름 : 구득영(IP:203.223.97.138)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9 (셋날 오전1) 소유할 수 없는 '나'

2007,01,09 강의 이근호, 녹취 서경수

◈ 새로운 아담의 등장 !!

지난 시간에 무슨 내용을 강의했는고 하니, 로마서 11장에서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 애초부터 인간을 죽은 자로 간주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천국사람이 되고 안 되고는 우리의 몫이 아니고, 인간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자기 나름대로 부지런을 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열심히 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셔야만 하는가?" 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것은 곧 새로운 아담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한 이상, 우리 특성, 우리 본질, 우리 고집, 우리 자존심 등등, 이런 것은 하늘나라에서 일체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상대하지 않아 !!

그래서 로마서 11장 35절에 보면, 우리 쪽에서 뭔가 제시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또 우리는 그 반대급부를 받는 식으로,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어떠하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무릇 헌금과 같은 것만이 아니고 그 외의 모든 우리의 기도와 찬양 등등, 그렇게 우리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받아 챙기시고, 거기에 대한 대가로서 우리에게 구원이나 영생을 준다고 하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 인간은, 하나님께서 다시 회수하기 위한 용도로서 !!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36절을 보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라고,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모두 주께서 다시 본래의 일을 만족하게 성취하시고, 다시 회수하기 위한 용도로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즉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 죽어서 지옥에 가느냐? 아니면 천국에 가느냐?" 라고 하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근심할 사항이 전혀 되지를 못하고, 우리는 마치 콘베어벨트 시스템에 놓인 콜라처럼, 왜 공장에서 콜라를 만들 때 병은 가만히 있어도 결국은 콜라 액이 제대로 다 담기고 해서 돌아가지 않습니까? 이처럼 결국, 우리도 주께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 설치고 나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

그런데 우리는 사실상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이 타고 난 우리의 본성인데,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어떻게 설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작업이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의 아주 강력한 반항이나 발악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잘못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아이가 말썽꾸러기라고 해도, 즉 엄마가 손을 잡고 시장에 갔는데, 그 시장에서 맛있는 것을 안 사준다고 아무리 아이가 행패를 부려도, 엄마가 그 애를 시장에 내버려두고, 즉 "이제 독립해서 살라" 라고 하면서 두고 오는 엄마는 없다는 겁니다. 때려서라도 기어이 집에 데리고 온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엄마도 있습니까? (ㅋㅋ)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너무 염려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그 증거가 무엇인고 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아하, 내가 따로 내 구원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구나" 라고, 그렇게 믿음의 관계가 유지될 때, 그 사람은 이미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그만 세미나실 바깥으로 나가면 !!

드디어 우리가 로마서 1장에서 12장까지를 다 했는데, 이것을 우리가 몽땅 지식으로 알았다고 하고, 이런 것을 가지고 "나는 이제 인생을 행복하게 살리라" 라고 하고서, 우리기 여기 세미나실에서 바깥으로 나갔다고 한다면, 그럴 때 과연 우리가 이 성경말씀에서 맛 본 그 행복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과연 유지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바깥에 나가면 무엇이 있는고 하면, '경제적 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그 기쁨이 어떤 기쁨인고 하면, 경제적 여건이 아주 좋지 않은 극심한, 즉 자기를 비참하게 만들 정도로 호주머니에 돈도 한 푼이 없는, 그런 가난마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기쁨이며 행복이냐는 것은, 그것은 직접 부닥쳐 봐야 안다는 말입니다.

◈ 아니, 그 차가운 바람을 어떻게 !!

다시 말해서, "나는 이 복음에 목숨을 걸었다. 로마서에 나의 전부를 걸었다" 라고 나름대로의 다짐과 결심을 하고,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서 어떤 공포가 오더라도 나는 이 복음으로, 즉 주께로 와서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으로 이기리라" 라고 하고 막상 나갔더니만, 이 세상에서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란 말입니다.

물론 날씨가 추워서 찬바람이 아니고, 젊은이나 청소년들은 항상 꿈을 휘감고 다니는데, 즉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꿈과 희망과 계획과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그렇게 마구 부풀어 있는데, 그런데 이 세상에서 찬바람이 한번 '휙'하고 불 때마다 그런 환상이 하나 둘씩 뚝뚝 떨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 '나' 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때에 찾아오는 그 비참함, 즉 "그렇다면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왜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가?" 라는 것인데, 즉 "누군가가 나의 손을 잡고서 '우리 회사에는 당신같이 성실하고, 또 가족과 같은 친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가? 나와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것인데, 왜 나의 가치를 그렇게 몰라주는가?"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시집을 못한 여자라고 하면, "나같이 살림도 잘하고, 남편을 잘 섬기는 나에게, 왜 손을 잡고서 '삼순씨, 같이 삽시다. 평생 당신 손에는 한 방울의 물도 묻히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가?"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날에서는 삼성그룹에 다니는 또 다른 삼식이가 나타나서 프로포즈를 하고 말입니다(ㅋㅋ). 왜 그런 고민거리가 자기에겐 생기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 스님, 식사 드세요 ??

그러니 결국 우리가 로마서 공부를 통해서 알았던 '복음의 가치' 라는 것은 언제 검증이 되느냐 하면, 즉 "복음이고 언약이고 선택이고 나발이고 간에, 내 육신이 배고프니 비참하기가 그지없더라. 그러니 배부터 채워야겠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취직자리를 준다면, 그것이 절에서 비빔밥을 만들고 절에서 중들을 뒷바라지하는 일이라도, 기독교 신자라는 타이틀도 다 떼고 절의 신도가 되어서 먹고살아야 되겠다" 라고,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지하 세미나실에서 복음을 들으면서 로마서를 공부한 것이 다 허탕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이 바깥에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그런 것을 만나보지를 못해서, 마치 여기 세미나실에 있을 순간에 "나는 복음을 위해서 전부를 다 투자하고 목숨을 걸었다" 라고, 그렇게 스스로 자기가 자기에게 다짐을 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 날 보고 예수를 믿으라고 ??

그러니 바깥에 나가서 이 세상의 찬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서, 그렇게 사회적인 냉대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주위에 사기꾼들만 득실거릴 때, 그럴 때 그야말로 신에 대해서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뭐? 날 보고 예수를 믿으라고? 예수, 당신이 나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다고 믿으라고 하는가? 신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평생을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밖에는 더 있는가? 내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해도 응답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 인간이 그런 예수를 믿어?"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나는 이제 당신에게 실망했어. 당신의 예정론, 당신의 토기장이 이야기, 모두 다 그만 실망했어. 당신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것도 모두 필요 없어. 배고파서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헤매는 나의 비참한 모습, 나는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어. 그러니 내가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예수가 아니고, 십자가가 아니고, 오직 내 육신이 배고프다는 것, 이것 외에 나는 더 실감나게 믿을 게 없어" 라고 말입니다. 그냥 피부에 팍팍 와닿지 않습니까?

◈ 희미한 등불 아래 ♬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은데, 한 때는 중고등부 회장도 하고, 청년회 회장도 한 사람들을 보면, 나중에 교회에 안 다닌다는 겁니다. 이상하게 회장 출신들이 그러한데 말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봉사해도, 나중 20년이 지나서 만나보면, 그만 "희미한 등불 아래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라고 된다는 겁니다. 마치 옥경이처럼 말입니다(ㅋㅋ)

그러니까 "김 집사님,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라고 하면, "저, 이제 집사가 아닙니다" 라고 하는데, 얼굴에는 세월의 때가 묻어있다는 겁니다. "어디서 어떻게 굴렀는지"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결국 뭐냐하면, 교회에 있을 때는 복음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막상 이 세상에 나가보니까, 자기의 최고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교회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말입니다.

◈ 예수님은 왜 40일 동안 금식을?

우리 예수님께서 40일 동안을 일부러 굶으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즉 예수님은 결코 배부른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 인간의 배고픔을 모르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에게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주어도, 우리가 말씀을 못 지키는 이유가 다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육신을 갖고 있는 한, 우리에게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과 그 나라의 의보다도 더, 하나님의 의보다 더, 죽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보다도 더, 지금 당장 자기 배가 꼬로록 꼬로록 거린다는 사실에 더욱 더 시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바로 그런 육신을 우리는 우리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우리의 타고 난 천성이고 본성이어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 어떻게 거역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에 자식들이 굶고 배가 고픈데, 교회에 나갈 여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돈을 벌어야지 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 웬 주일성수 ??

자기가 목사일 때는 교인들이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그렇게 마구 닦달하던 그 목사가, 이제는 교인들도 없고 해서 먹고살기가 막막해서 목사직을 그만 두고 겨우 취직을 해서 직장에 다니다가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기도 그만 주일을 전혀 지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왜 이리 허전하지? 총 맞았나? ㅋㅋ)

옛날 목사시절에는 교인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을, 그것이 그냥 쉬운 일인 줄로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근원적인 본성과 싸우는 과정임을, 즉 '영적투쟁' 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집구석에 뒹굴다가 일요일이 되면 심심해서 교회에 나오는 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목사일 때 그랬으니 말입니다.

◈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그만 뚱뚱보 요새로 !!

그러므로 이 로마서 12장에서는, '나' 라는 존재는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천성이 있는데, 그것은 각양 좋은 것들을 모두 끌어 모아서 자기 속에다 꽉꽉 채우고 또 채워서, 자기를 뚱뚱보로 만드는 것인데, 즉 돈의 뚱뚱보, 권력의 뚱뚱보, 명예의 뚱뚱보로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뚱뚱보 요새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온갖 것을 다 집어넣는데, 유명 탈렌트가 남편에게 얻어맞아서 코뼈가 부러진 것도 집어넣고, 또한 이라크 사태도 집어넣고, 그렇게 온 잡동사니를 모두 다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끌어 모아서 어떻게 하는고 하니, 철학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말입니다.

◈ 존재와 소유 !!

철학에서는 '존재' 라는 것은 없는데, 단지 자기가 끌어다 모은 소유가 어떤 형식을 갖출 때, 그것이 바로 '나' 라는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기 소유가 없다고 하면 '나' 라는 존재도 그만 함께 날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존재가 있어서 그 존재를 채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소유한 것들, 즉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고, 재산은 얼마이고, 부모는 어떤 사람이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어떤 부류이고, 또한 집에는 명품이 몇 개나 있고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주워 모으니까, 그 가운데서 테두리를 형성하고, 그렇게 해서 '나' 라는 것이 형성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 라는 것은 어떠한고 하니, 소유의 정도에 따라서 항상 바뀐다는 말입니다.

◈ 너희 몸을 바쳐라 !!

그런데 로마서 12장을 보면 정반대인데, 그래서 1절에 보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양을 잡아서, 양을 대신해서 드리지 말고, 이제는 너의 몸 자체를 산 제물로 바칠 때다" 라는 뜻이란 말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지만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성은, 끌어 모으는 것을 배웠지, 자기의 것을 누구에게 받치는 것은 배운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것은 우리 본성에 거스르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혹시 뭔가 남에게 내어놓을 것이 있으면, 이왕이면 목욕도 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삼신할매에게 빌 때는 목욕재계를 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빌곤 했는데, 그리고 그 내용은 항상 다음과 같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 손자가 이번에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가족들은 건강하게 해주시고, 저도 이왕이면 좋은 영감도 만나서 떡두꺼비같은 아들도 해주시고(?)" 라고 말입니다.

◈ 남산 위의 노루새끼처럼 !!

옛날에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에게는 꼭 정해진 멘트가 있는데, 즉 빌 때 매뉴얼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 저희 식구가 13남매인데(ㅋㅋ), 아무튼 할머니의 기도를 들어보면, "거저 온 식구들이 남산 위의 노루새끼처럼 잘 뛰놀게 해주시고" 라고 한다는 겁니다. 부엌에서 종이를 태우면서 그렇게 기도하면, 종이가 불에 타면서 중력에 어긋나서 마구 위로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제가 한번은 남산 위에 노루새끼가 정말 있는지, 그것을 찾기 위해서 서울의 남산까지 갔었는데(ㅋㅋ), 그런데 정작 남산에 노루새끼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산 위의 노루새끼" 라는 것이, 어느 동네든지 나름대로의 남산은 다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산 위의 노루새끼" 라는 것은, 그야말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게 뛰노는, 그렇게 건강하게 해달라는 뜻이었다는 말입니다.

◈ 그 제단이 한국교회로 !!

그렇게 할머니가 개인적인 제단을 쌓았던 것이, 이제는 그 사적인 욕망을 집단적으로 모여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되었고, 그러니 당연히 부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옛날 부엌에서 종이를 태우는 것 대신에, 이제는 일정한 공간에서, 성구까지 마련해서, 거기에 가운을 걸친 무당 목사를 하나 세워놓고, 그렇게 빌면서 교회가 부흥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한국교회는 전혀 복음으로 부흥된 게 아니고, 인간의 종교적인 감성, 즉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고 하는, 그것으로 줄기차게 밀고 나왔다는 겁니다. 이때 시편 81편 10절의 말씀이 자주 언급되는데, 즉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라고 말입니다. 물론 전혀 엉터리 인용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입의 각도를 크게 벌리면 벌릴수록 많이 채워준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입 아가리가 적은 사람은 불리한데 말입니다(ㅋㅋ). 그렇게 각 교회마다 "바쳐야 주지. 바치지도 않고 어디 뻔뻔스럽데 달라고 하는가?" 라는 수법으로, 그렇게 교인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반복해서 해왔다는 말입니다.

(시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 정화수가 아니라, '산 제물' !!

그런데 로마서 12장은 정반대라는 겁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면, 정화수를 떠놓고 빌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전혀 아니고, 조금 전에 살펴본 11장 35절에도 나오듯이, 즉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라고,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무엇을 드려서 갚으심이 아니라, 즉 무엇을 드리든지 말든지 간에, 로마서 1장에 의하면, 너의 소유권도 이제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던지, 그런 것을 스스로 개선할 생각하지 말고, 과거에 창녀로 있었던지, 깡패로 살았던지 간에, 현재 있는 그대로를 '이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 라는 것을 표를 내라" 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12장의 "산 제물로 드려라" 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 자꾸만 자기를 윤리적으로 정화시켜서, "가만 있어보세요. 제가 술 끊고, 담배도 끊고 나서, 그리고 나서 교회에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그냥 술고래인 채로,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우는 채로, 그렇게 해서 나와도, 그것이 곧 주님이 받으시는 산 제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술고래이고 골초인 제물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 중간조치가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가 나름대로의 새로운 윤리를 가미해서 우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고, 오직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중간 루트가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 잠시 '제물'에 대해서 !!

제물(祭物) 이야기가 이왕 나왔으니, 하나님께서 제물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시편 50편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게 드리는 과정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제물을 드리는 과정이, 교회에 나가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놀랍게도 자기의 이웃에게, 즉 같은 성도에게 드리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방식이 되는데, 그런 것들도 모두 구약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단 여기에서 시편 50편을 보겠는데, 거기에 제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는데, 8절에서 11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시 50: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시 50: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시 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시 50: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우리 집에 있는 염소나 양의 경우에, 즉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타고 난 본성이 뭐냐 하면 "이것은 내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키운, 내 노동력이 투입된 것이다" 라고 하면서, 자꾸만 자기 것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만약에 그런 식이라면 내게 가져오지 마라. 차라리 너의 노동력이 투입되지 않은 산에 있는 것들을 가져오는 게 나는 오히려 더 기쁘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이 "내가 바쳤나이다" 라는 제물은 하나님은 받지 않겠다는 말인데, 그러니 "이것은 제가 바친 것이 아니고 원래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만 가지고 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나올 때 그 제물에 인간의 손 떼가 묻지 않은, 즉 인간의 노동력과 정성이 담겨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로서 하나님의 것이 된 것만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 인간의 손 떼가 묻지 않은, 또 다른 제물이 !!

그러면 그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장차 이런 제물을 받을 때, 우리 인간의 것을 받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나' 라는 자체는, '내'가 다루고, '내'가 관리하고, '내' 것으로 여기는, 그러한 '나'의 정성을 기울인, 바로 '나'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받는 제물은, 그런 '나'의 손 떼가 묻은 것이 아니고, 전혀 또 다른 인간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나'의 손 떼가 묻지 않은 다른 인간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을, 바로 그것을 제물로서 지금 확인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물로서 말입니다.

◈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임신했을 때 !!

그러한 예가 무엇인고 하니까,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임신했을 때, 그 아기에 대해서 마리아는 어떤 권한도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키울 권한은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키울 일만을 떠맡았지, "이 자식은 내 자식이다. 이 예수는 내가 낳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적으로 자기가 어떤 남자를 알아서 아기가 태어난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과 같이, 그런 경우에만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받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는고 하면, 우리 인간이 범죄한 노선을 이미 타고 들어왔기 때문인데, 즉 인간이 범죄를 했다는 것은, 죄가 어디에 조금 묻었다는 정도가 아니고, 계속해서 우리 인간은 자기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나온 노동을 자꾸 가미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이 "신이시여, 여기에 저의 정성이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끼고 아껴서 남겨둔 것입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거저 은혜로 주는 것, 즉 긍휼로서 그냥 주시는 것과 전혀 배치가 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 인간은, 왜 하나님을 마중 나가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지난 주일오후 설교 때 한 내용이 기억나는데, 즉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는데,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로 다가오시는데,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굳이 마중을 나가는 것은, 그것은 바로 자기 행위에 대한 반대급부를 노리고 나간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과 자기가 구별된다는 겁니다. 즉 기도에 열심을 냈던 자기 자신이, 그 시간에 기도하지 않은 다른 집사보다는 성과급이 더 있어야, 차후에 다시 기도할 맛이 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주여, 이것은 제가 정성을 드려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라고, 그렇게 자기의 종교적 노동을 가지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차별화를 시켜서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아니라, "내가 거저 줄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줄게. 그냥 자비를 베풀게!"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전혀 맞지 않는데,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맞지 않으니, 그만 충돌이 일어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 오, 반갑다. 정말 반가워 !!

저도 살면서 그런 황당한 경험을 제법 했는데, 즉 지하철이나 길에서 "오, 반갑다" 라고 저를 부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저는 당연히 저에게 하는 소리인줄 알고, 물론 누구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하려고 일단 손을 내밀면서 다가가는데, 그런데 그만 저의 뒷사람과 악수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때 제가 내민 손은 도대체 뭐가 되느냐는 말입니다(ㅋㅋ).

방금 제가 든 예를 이해를 제대로 못하는 분위기인데, 즉 우리는 "주여, 저의 정성이고 십일조입니다" 라고 하면서 다가가는데, 그런데 "오, 반갑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예수님과, 그렇게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멀뚱멀뚱하게 빠지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성령이 임한 성도의 경우에는 "제가 정성을 다해서 제 자신을 가꾸었습니다" 라는 것과 동시에, "나는 이렇게 개판입니다" 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어떤 경우에도 상관없이 오직 주님의 것으로서, 주님의 책임 아래에 산 제물의 가치가 이미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 때문에 말입니다.

◈ 형제를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

바로 이런 것이 교회에서 일어날 때, 로마서 14장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 14장에 보면, 우리가 보기에도 참으로 철딱서니가 없고 허술해 보이는, 그것이 신앙인지 아닌지 불분명할 정도로 신앙적으로 어린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보다 신앙이 더 좋은 사람이 우리를 보면, 그렇게 측은해하는 우리가 또한 어려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14장 15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누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롬 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특히 목회자들이 주의해야 될 것이기도 한데, 즉 주님께서 성령을 주셨는데 그런데 마치 목사 자신이 기도를 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그것을 소위 목사의 '중보기도' 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아무튼 목사의 기도의 힘으로 그 성도에게 성령이 임한 것처럼 착각을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성도가 주님의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목회자의 노동이 거기에 가미되어서, 그래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그것은 그만 하나님께 누를 끼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가 사실상 굉장히 많은데, 즉 생생한 자연물이 아니고 인간들이 그만 손을 댄다는 말입니다. 특히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인간들이 말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해보면, 목회자로서 실망할 경우가 어떤 경우인고 하면, 자기는 공을 들였는데 다른 교회에 갔을 때, 그것은 그냥 팔짝뛰고 미친다는 겁니다. 마치 욥처럼 "하나님, 왜 저를 두셨습니까? 이 세상에 왜 태어나게 했습니까?" 라고 할 정도로 말입니다(ㅋㅋ).

자기가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즉 남들보다도 심방을 한번이라도 더 가고, 기도도 더욱 많이 했는데, 그런데 그런 사람이 교회에 안 나온다든지, 아예 예수님을 포기한다든지, 아니면 복음을 반대한다든지 할 때, 그렇게 자기가 공들인 것이 날아간다는 그 아쉬움, 그것은 목회자로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노동을 투자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 인간의 노동은, 레드카드 !!

그런데 로마서 14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우리의 사랑, 즉 우리의 노동은 주님의 사랑보다 무가치 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사랑한답시고, 주의 종을 만들겠다고, 주님의 훌륭한 성도를 만들어 보겠다고 설쳐보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인간적인 사랑이고, 오히려 그것은 진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주신 형제를 망하게 하는, 그런 훼방꾼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십자가의 사랑은 그 어떤 경우에도 끊어지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양상이 된다는 겁니다. 즉 우리 자신이 그만 주님의 사랑을 대체하는 위대한 자로 등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의 피로 구원한 형제를 두고, 목사의 낙타무릎과 목사의 피로 새삼스럽게 건지겠다고 건방떨면서 덤벼드는 것은, 그건 옐로카드인데, 아니 레드카드라는 말입니다.

◈ 기준은 언제나, '제가 죄인입니다' !!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그러면 목사가 되어서, 심방도 하지 말고 권면도 하지 말란 말입니까?" 라고 한다면, 지금 이야기가 그런 내용이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인고 하니, 항상 주님의 일은 항상 공통점이 있는데, 이런 것은 어디라도 따로 잘 보이는 곳에 적어놓으면 좋은데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일인가? 아닌가?" 라고 하는 그 점검방법은 무엇인고 하니까, 주의 일을 통해서 "내가 죄인입니다" 라고 깨닫게 되면, 그것은 주의 일이고, 그것이 아니라 "나는 역시 잘난 놈이야" 라고, 그렇게 자기 자신이 뿌듯해지면, 그것은 전혀 주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주님은 일은, 우리를 밟고서 !!

그러니 주님께서는 십자가 안에서만 일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을 할 때는 우리를 밟고 한다는 겁니다. 즉 우리를 격려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밟아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내가 약한데서 주님은 강함이라" 라고 되어있는데, 즉 "내가 강할 때 주님이 강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 라는 것입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예수님은 그야말로 연약하게 죽으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한 주님을 살리셨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는 믿음인데, 즉 성령께서 오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분위기가 완전히 취침모드인데 말입니다(ㅋㅋ).

지난 시간에도 했지만, 주님이 일하시는 것은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의미가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은 악마가 주의 일을 빙자해서, 우리를 넘어지도록 하기 위한 악마의 유혹이고 테스트라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를 축적하도록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로마서 10장에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그것을 빙자해서 자기의 의를 세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 교회는, 목사의 사료저장탱크 ??

그러한 예로서, 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날 때 그냥 나가면 되는데 퇴직금을 운운한다든지, 아니면 "내가 와서 교인이 얼마나 많이 늘었는데, 교인이 10명만 늘어도 십일조가 한 달에 최소한 백 만원은 나오는데, 그래도 예의 상 그 정도는 챙겨줘야지" 라고 하는,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그동안 교회를 주님의 교회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주님의 양을 볼 때 그냥 자기 밥으로, 즉 교회를 완전히 자기 밥벌이로 간주했다는 겁니다. 교회가 그야말로 사료인데, 즉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런 소리를 신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했는데, 그때 같은 전도사들이 억수로(매우?) 좋아했다는 겁니다. "야, 너하고 나는 개혁주의 정신이 똑같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10년쯤 지나서 하니까, "우리끼리 있을 때는 하고, 다른 데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마라" 라는 겁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에는 "이제는 우리에게도 하지 마라. 너하고 같이 안 놀란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인간은, 십자가도 자기 소유물로 !!

결국 이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산 제물이 아니라, 자기가 이렇게 있다면, 십자가를 자기 속에 소유물로 계속해서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즉 "나는 삼위일체도 알고, 하나님도 알고, 언약도 알고, 십자가도 안다. 그러니까 이런 나 같은 능력이 있는 인간이 있으면, 세상에서 찬바람이 불어도 교회는 부흥이 된다. 그러니 제발 나랑 손잡고, 나를 좀 키워다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산 제물이 아닌데, 그냥 자기 노동을 자기에게 투입한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즉 '나' 라는 인간은 주님의 작품이 아니고, 자기가 공들인 자기 작품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라고 하셨는데, 즉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입니다.

◈ 성령의 다짐 - 반드시 그대로 하고야 말리라 !!

하지만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라고 해도 자기를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설령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담의 본성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명령, 물론 사도의 명령도 주님의 명령인데, 그러한 주님의 명령과 지시는 우리는 감당하지를 못하고, 반드시 성령께서 "그대로 하고야 말리라"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물론 성도에게만 그런 혜택이 있는데, 불신자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고 말입니다. 오직 성도에게만 주께서 이루셔서, 즉 "주님께서 이런 것을 이루었다. 너는 못했지. 주께서 다 했어" 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집어넣어 준다는 것입니다.

◈ 오뎅국에 얽힌 사연 2 !!

그렇게 되면, 다시 예를 들어서, 우리교회의 모 권사님이 오뎅국을 끓일 때, 자기는 그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고 하면, "주여, 제가 얼마나 쩨쩨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소고기 국도 충분히 끓일 수 있는 여력이 되는데,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겨우 오뎅국을 폼을 잡고 끓이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뭡니까?"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바라보는 다른 성도들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권사님은 믿음이 정말 좋네요. 연세도 많고 몸도 약한데, 젊은 사람도 하기 싫어하는 오뎅국을 이렇게 맛있게 끓이다니, 그야말로 권사님은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군요"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주님이 주신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데, 즉 성도들은 권사님을 통해서 주님이 거저 주신 긍휼과 은혜를 맛보고, 또한 권사님의 경우에는, 자기는 천하의 죄인인데 다른 분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니까, 그들을 통해서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와 자비를 또한 마음껏 느낀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작 오뎅국은 아무리 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물론 "권사님, 오뎅국을 끓이실 때 앞으로 소금을 조금만 더 적게 넣으면 참 좋겠네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주님의 사랑에서 나온 권면이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방금 제가 한 말은 결코 덕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ㅋㅋ).

◈ 권면은, 산 제물끼리만 해당 !!

바로 이것이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서로 권면하라" 라는 것인데, 하지만 산 제물이 아닌 자들끼리는 서로 아무리 권면을 해봐야, 그것은 윤리와 도덕밖에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것은 소용이 없는데, 그러니 주의 일은 언제나 그 어떤 봉사를 해도, "나는 너무나도 쩨쩨한 인간이야. 나는 내 소유밖에 몰라. 이런 죄인아!" 라는 식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저 남산 위에 있는 노루새끼 밖에 안 된다" 라는 겁니다. 즉 "내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미해서, 나의 것을 조금씩 드러내는 식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의 것인데, 그런데 내가 워낙 죄가 많아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리지 못하고 쩨쩨하게 이것밖에 드리지 못하기에, 그래서 나는 곧 죄인입니다" 라고 하는 식으로, 항상 그렇게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소고기 국을 가끔 한번씩 끓이던 사람이 옆에서 "권사님, 권사님은 돈푼께나 있으면서도 오뎅국이 뭡니까? 한 봉지에 오천원만 하면 사는데 말입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14장 15절에 나오는, 즉 "네가 그의 식물, 그의 봉사, 그의 행동을 인하여, 네 형제를 근심하게 한다" 라고 하는 그 말씀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런 뜻이란 말입니다.

◈ 봉사의 특징은, '저는 죄인입니다' !!

오뎅국을 끓이면서 봉사하는 본인은 그것이 '죄' 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데, 그런데 거기에다가 완전히 구정물을 붓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것을 두고, "니가 뭔데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가리는가?" 라고 책망을 한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자비와 은총을 왜 가리느냐는 것입니다. 감히 건방지게 말입니다.

(롬 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또 하나의 예를 더 들면, 어떤 장립 집사님이 일주일에 소주 3병을 마시는데, 이번에 목사도 새로 온다고 해서 큰마음을 먹고 2병으로 줄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목사가 그것도 모르고 "아니, 아직도 장립집사라고 하는 양반이 소주를 한 주에 2병씩이나 마시다니" 라고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본인은 한 병을 줄인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와 자비로 느끼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새로 부임해온 철없는 목사가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나온다면, 즉 자기는 술을 안 먹는다고 큰소리를 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은 그 장립집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양반을 그렇게 인도하신 주님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느냐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까 이야기한 로마서 14장의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 게으른 목사와 은혜 받은 노름꾼 집사 !!

이제 이것을 조금 더 확대해 보겠는데, 방금 제가 이야기한, 즉 "주님의 일은 죄를 깨닫는 방식으로 한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목사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오늘 심방을 가야되는 가정이 있는데, 그만 춥다는 핑계로 집에서 전화로 때운다는 말입니다.

* 목사 : 집사님, 안녕하세요?
* 집사 : 아이쿠, 목사님입니까?
* 목사 : 지난주에 안 보이던데, 몸이라도 아팠습니까?
* 집사 : 그게 아니고.
* 목사 : 건강에 유의하시고, 다음 주에는 좀 봅시다.
* 집사 : 예, 알겠습니다.
* 목사 : 다음 주에 교회에 꼭 나오세요.
* 집사 : 예, 전화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는 게을러서 그냥 전화만 했는데, 그런데 그 집사님은 전화를 받고 "웬 주님의 은혜고, 자비인가? 어제 내가 화투를 치다가 그만 밤을 세워서 교회에도 못 갔는데, 그런데 목사님께서 염려가 되어서 전화를 하시고, 염려를 다 해주시네. 다음 주는 꼭 교회에 나가야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목사는 그 집사가 화투를 쳤는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다만 주께서 양쪽에 다 작용했을 뿐인데, 그런데 느끼는 것은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쪽으로 하신다는 말입니다.

◈ 목회는, 목사가 아닌 주님께서 !!

그래서 목회는 주님이 하시지, 목사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목사는 그냥 자기의 성깔대로 할뿐인데, 즉 심방을 가야 되는데 춥다고 가지 않고 전화만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자기 성깔인데, 그러니 어떻게 되었던 간에 자기 성깔대로 할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의 종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주께서 부리는 종인데, 즉 그리스도 몸은 주님이 머리이지, 결코 목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할 것이 남아있었는데, 그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요즘 나이가 연세로 바뀌니까 자꾸만 잊어버린다는 겁니다(ㅋㅋ). 아무튼 이러면 원리를 더 극단적으로 해서 들어가 보면, 이제 로마서 12장 19절에 보겠는데, 거기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그야말로 우리 인간들에게는 불가능한 내용인데 말입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원수 갚는 것이 주께 있으니 !!

여기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적인, 즉 소유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못한다는 겁니다. 즉 "이게 어디서 내 소유를 건드려! 이게 어디서 내 명예에 먹칠을 해! 니가 뭔데 내 자존심을 훼손해!" 라고 하면서, 그렇게 자기 소유가 있는 이상은, 이것은 반드시 본능적으로 저주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아까 한 오뎅국 이야기, 또한 소주 이야기를 더 확대해 보면, 이것을 계속 확대해 가면 어디까지 가능한고 하니, "내 원수를 내가 친히 갚지 않는다" 라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말입니다.

여기에서 '경지' 라고 하니, "그러면 지금은 안 된다는 말인가?" 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뜻은 아니고, 그렇게 되면 선악구조에 빠지니까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대하게 되면, 당장 구분을 하기 시작하는데, 즉 사람이 친히 갚을 원수와 주께 맡길 원수를 자기가 구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분하는고 하니, 원수가 자기보다 더 강할 때는 주께서 친히 자기의 복수를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데, 킬러를 고용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말입니다. 물론 자기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원수는, 자기가 알아서 처리를 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 기도하는데, 왜 이빨을 가는가?

그런데 이것이 가장 약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뭐냐 하면, 기도를 해주다가 그만 기도 끊기인데, 아주 소극적 대응이라는 겁니다. 즉 "주여, 말씀에 보면 '원수까지 사랑하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 그러면 복이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게 해코지하는 원수를 위해서 지금 기도합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갑자기 이빨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원수를 사랑해버리면 이미 원수가 아니기에 말입니다. 원수는 그냥 원수대로 남고, 사랑을 사랑대로 해야 되는데, 그런데 그게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원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원수라고 하면, 사랑하지 않아야 원수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서로 앞뒤가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 우리 자신이, 항상 주님의 원수임을 !!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자신이 늘 주님의 원수라는 겁니다. 따라서 다같이 사기치는 놈들이, 자기는 조금 덜 쳤다고 해서 서로 싸운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결코 사랑으로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조폭들이 서로 의리를 지킨다고 한다면, 그것을 누가 의리라고 합니까? 그런 것은 전혀 의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고, 또한 자기들끼리 동업하는 것이지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모두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 의리를 지키고 하는 것은 인정하지를 않는데, 중요한 것은 남을 용서하든지, 아니면 심판을 하든지 간에, 우리 자신부터 곧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는, 즉 "내가 바로 주님의 원수인데, 그런데 나 같은 원수를 주께서 은혜로 용서하시는구나" 라고 하는, 그런 주님의 사랑에 충만한 자에 한해서만, 이 19절의 말씀이 해당되고, 실현이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나의 원수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 다 주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하는 쪽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우리가 원수를 갚는 것은 이제 손을 떼게 되고, 주님의 원수이기에 주께서 반드시 갚으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기의 원수를 놓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 니가 뭔데 열을 받어?

그런데 자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수로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서, 자기가 십자가를 전했는데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것을 십자가를 전하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십자가 때문에 욕을 먹는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알아서 할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달려들었다고 해서 자기가 앞에 나선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십자가만을 전한 것이 아니고, 그 십자가를 증거하는 자기 자신도 함께 증거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오기와 울분이 터진다는 겁니다. 제 말이 맞지요?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지 싶은데 말입니다.

◈ 성도는, 십자가 배달부임을 잊지 말아야 !!

또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우편배달부가 소포를 전해주었는데, 그런데 그만 소포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폭탄을 제조한 알 카에다를 원망해야지 왜 우편배달부에게 닦달을 하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해서 말입니다. 또한 우편배달부가 돈 다발을 전해주었다고 하면, 돈을 받은 사람은 돈을 보낸 사람에게 당연히 감사해야지, 왜 우편배달부에게 관심을 갖느냐는 겁니다. 갑자기 영화제목이 하나 생각하는데,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리지 않는다" 라고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양쪽의 경우에서 우편배달부는, 즉 성도는 자기가 주님 앞에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십자가를 증거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지하실에서 올라가서 이 세상의 찬바람을 만날 때, 주께서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데,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 책임 아래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

이제 로마서 13장으로 가보겠는데, 여기 13장 1절에서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라고 하는데, 이 말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즉 인간이 자기 소유로서 존재를 확증해버리면, 자기가 그만 돗대가 되고 절대적인 신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러면 자기의 그러한 어떤 권세에 대해서 주의 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소위 "나는 주의 종이다" 라고 하면서 기독교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내심 부끄러울 때가 많다는 겁니다. 특히, 언제 그런고 하면, 날씨는 추운데 그만 차를 놓쳐서 발을 굴리고 있는데, 이미 버스는 끊어지고, 택시를 타려고 해도 서지 않고, 심지어 지나가는 자가용에게 손을 들어도 세워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손도 안 들었는데, 어떤 차가 앞에 딱 서더니만 "버스를 놓쳤군요. 이 시간에는 차가 없습니다. 제 차에 어서 타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탔는데, 그런 그 사람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 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계에서 쌀을 사는데, 이 가게는 20Kg에 45,000원, 저쪽은 47,000원, 농협에는 39,000원 등등, 제가 쌀값을 좀 안다는 겁니다(ㅋㅋ). 그렇게 쌀집들이 줄줄 늘어서 있는데, 그런데 제일 좋은 쌀을 양심 것 파는 곳을 가보니까, 그 가계의 주인이 통일교 교인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제일 품질이 좋고 싸니까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분으로 오신 예수님 !!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우리가 평소에는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고 부담스러워하던 사람에게서, 자기가 매우 힘들어할 때에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그야말로 부끄럽기가 짝이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그때 자비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분으로 이 땅에 등장해서,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되갚아주시는 분으로서, 그렇게 매일같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 율법의 정신 - 그것마저 사랑해 주리라 !!

우리는 목회를 하면서 교인 2명이 나갔다고 짜증내고, 그리고 헌금이 제대로 안 나온다고 짜증내고 말입니다. 이처럼 목사가 되어서 자기 배를 채우기 위고, 또한 교회를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데, 왜 그렇게 해야합니까? 그렇게 해야 '나' 라는 존재가 확립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저 드리는 것이 아니고, 즉 봉사가 아니고 그냥 "내 교회니까 내가 채우겠다" 라고 하는, 그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짓만 골라하는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들 때문에 나의 몸과 마음이 고생을 했지만, 그러나 내가 그것마저 사랑해 주리라"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이란 말입니다.

◈ 권세자는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

그것이 로마서 13장 1절에 나오는, 즉 권세자는 봉사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9절에 보면, 모든 율법은 즉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라는 것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소유를 채우기 위해서, 즉 "나는 또 간음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살인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도적질을 하지 않았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대견스럽고, 훌륭하고, 점점 더 향상이 되는, 그렇게 보다 더 완벽한 인간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 라는 주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반대로 거스린다는 것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 사랑은 모든 율법을 다 이루느니라 !!

그러면 진짜 율법은 무엇인고 하니, 사랑이라는 겁니다. 즉 "사랑은 모든 율법을 다 이루느니라" 라는 것인데, 그렇게 사랑이 모든 율법을 다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때 사랑을 느낀다는 겁니다. 즉 "아, 나같이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인간을 사랑해주시다니!"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제 조금만 더 하고 이번 겨울수련회를 마치도록 하겠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를 않았는데 말입니다. 15장 1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어, 내가 누구이지 ??

여기에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한다" 라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말인데, 즉 "나는 누구를 도와줬기 때문에 착하다" 라는, 그런 자기를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로마서 14장 7절에 보면, 이 말씀을 누가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7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즉 "살았다고 하는 인간이나, 죽었다고 하는 인간이나, 모두가 다 주님의 관리 아래에 있는 것이지, 인간의 관리 아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즉 "너, 인간은 너의 책임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잘 하면 구원하고, 네가 못하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는 네가 잘하나 못하나 너를 구원해 주셨다" 라는 것입니다.

◈ 산 제물 -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봉사함으로서 !!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남산 위의 노루새끼인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제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제물 됨을, 우리가 교회에서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봉사함으로서 확인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산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쉽죠잉?

이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는고 하면, 로마서 15장 16절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3분 정도 남았는데, 조금만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 '십자가' 라는 기막힌 변신장치 때문에 !!

여기 표현이 참 재미있는데, 즉 "막되 먹은 개 같은 이방인이 성령을 통과하게 되면 거룩한 제물이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는 무슨 장치가 있습니까? '십자가' 라는 장치가 있는데, 그래서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십자가를 통과하기만 하면, 그 모든 죄는 다 날아가 버리고 의인이 되는, 그런 놀라운 변신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간담V'만 변신하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즉 성령을 통과하면, 즉 십자가를 통과하면 의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것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말고, 고개를 당당하게 쳐들고 교회에 나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쳐들고 나와서 성령을 통과하고, 십자가를 통과하면, 그만 이미 의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로 이러한 일을 위해서 사도바울은 풍랑 속에서 살아남아서, 주님 앞에서 이 로마까지 편지를 보내는데, 그렇게 해서 앞으로 자기가 로마에 가서 증거하고, 또한 로마에 와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증거하는,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증거되는 이 로마서를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 이 마지막 시대에는 이단들이 들끓어 !!

이제 끝으로 로마서 16장을 보겠는데, 바울서신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무엇이 있는고 하면, 이 마지막 복음시대에, 즉 과거 허물치 않는 시대는 이미 끝났고, 오직 십자가를 가지고 허물하고 심판을 작정한 이 시대에는, 반드시 이런 복음을 전파하게 되면 그 뒤에 가짜가 들끓는다는 것으로 마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이단들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 가짜는 어떤 가짜인고 하니, 1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롬 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그러니까 인간들은 자기 똥배만 섬긴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순진한 자들을 미혹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은 사랑을 받기 원하는데, 마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이라는 유명한 유행가도 있듯이,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을 받기 원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랑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줌으로 말미암아서, 자기 자신을 그 교회에서 주류로 만드는데, 즉 사람들을 그만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당연히 자기의 사적인 자기 똥배를 채우는 교회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는 반드시 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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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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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