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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5자유게시판로마서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5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8)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5 (둘날 오후1) 율법 외

2007,01,09 강의 이근호, 녹취 한윤범

◈ 율법은, 무엇을 공격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일단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는데, 즉 율법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율법은 성도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고, "성도야, 너는 너 쪽에 붙지 않더라도 괜찮은 신분이 되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기쁜 소식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내가 뭔가 붙들거나, 뭔가 실천하거나, 뭔가 행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신분이 되었다" 라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반가워하고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 사도바울은 뭔가 주춤주춤하는 게 없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글들을 살펴보면, 조바심을 낸다든지, 자기 구원에 대해서 겁을 낸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고, 그야말로 자신만만하게 쫙쫙 미는 게 있다는 말입니다. 즉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까, "비록 내가 약하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라는 겁니다. 즉 "내가 약할 지라도 나의 구원이 취소되거나 포기되는 것은 없고, 나는 지금 마음껏 할 일을 다 할 수 있는 형편에 놓여 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형편에 놓여있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이런 사도바울의 자유분방함에 동참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 우리는 과연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다시 한번 더 이야기를 하겠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붙잡으려 하는 것을 공격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붙잡으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우리가 돈을 붙잡으면 돈을 공격하고, 우리가 학력을 붙잡으면 학력을 공격하고, 또 우리가 세상을 붙들려고 하면 세상을 공격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는 붙들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을, 즉 "너는 붙들 필요조차 없는 신분인데, 그런데 그걸 괜히 붙들어서, 그것에 다시 종노릇하는 것이 안타깝다" 라는 이야기란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 사람이 무엇인가를 붙들게 되면 뭐가 쌓이느냐 하면, 업적이 쌓인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세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성과급이 쌓인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업적과 성과급이 쌓이면, 그렇게 해서 한번 쌓인 것은 자기의 소유화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다시 버리기가 참으로 힘든다는 말입니다. 즉 "과거에 내가 이렇게 잘나갔다" 라는 것은 버리기가 참 힘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업적과 성과급을 계속해서 공격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업적을 자꾸만 의지하게 되면, 그것이 우리에게 불행의 소산이 되기에 말입니다.

◈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여기서 고린도전서 3장 21절을 보면, 같은 사도바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참고할 게 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서 사도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앞뒤가 원활하게 소통이 됩니까? 앞뒤가 과연 잘 맞느냐는 겁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라는 표현이, 이것이 여러분은 앞뒤가 확확 뚫립니까?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

사실은 잘 뚫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앞뒤가 잘 안 맞는데, 사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즉 "만물이 다 나의 것임을 자랑하고 싶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야, 모든 것이 내 꺼야" 라고 하면서 자랑하고 싶은데,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앞뒤 뉘앙스가 잘 맞지를 않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우리는 당연히 만물이 다 우리 소유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즉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구태여 자랑할 필요가 없다" 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만물을 쥐고 있는 너희를, 또한 그리스도께서 쥐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뒤에 나오는데, 즉 "만물이 다 너희 것이고, 너희는 또한 그리스도의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가 만물이 된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는 겁니다. 즉 "만물이 모두가 내 것이다" 라고 했을 때, 만물은 상당히 기분 좋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이 만물은, 만물 자신의 것이 아니고, 사람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 기쁘다는 말입니다.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

바로 이와 같이, "만물이 다 내 것이다" 라는 말은, 만물이 모두 우리 것임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음을, 방금 만물이 사람의 것이 되었음을 기뻐한 것처럼, 그렇게 기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설명하고 나니 더 어려워졌는데 말입니다(ㅋㅋ).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다시 말해서, "만물이 다 나에게 속했으니까, 만물이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을 갖고 있는 내가 또한 그리스도께 소속이 되어있으니, 나는 참으로 기쁩니다" 라고 하는, 그런 고백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소속된 게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만물은 모두다 내 꺼야. 그러니까 나는 만물을 자랑하고 싶어" 라고, 그렇게 반대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이 말하는 '기쁨' 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내 것인 동시에,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라고 하는, 즉 "내가 그리스도께 속했다" 라는 그 감사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이해가 되지요?

◈ 그런데, 목사의 얼굴은 왜 찌그러지는가?

다시 로마서 돌아오면, 이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를 보고 공격하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제가 강의를 하고 나면 인상이 찌그러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특히 목사들 가운데 인상이 찌그러지는 분들이 있는데, 즉 "교인들에게 성경을 그렇게 가르치면, 교인들이 몇 명이나 오고, 목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마치 제가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오해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즉 그 사람이 붙잡고 있는 것은, 주께서 붙잡으라고 하는 것을 붙잡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그 사람이 붙잡은 것을 공격하니, 마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오해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에서 자꾸만 손을 떼도록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게 곧 사랑이란 말입니다.

◈ 참된 '목자' 하나만 있으면, OK !!

시편 21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라고 하는데, 그 말이 불신자들에게는 엄청난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것은 일체 주지 않겠다, 그 대신 제대로 된 목자만 있으면 충분하지를 않는가?" 라는 겁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인데, 즉 "참된 목자가 있는데, 니가 왜 쓸데없이 니 인생을 걱정하면서 살아가느냐?" 라는 말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이것을 다음과 같이, 즉 "나에게는 든든한 목자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채워준다" 라고, 그렇게 해석하면 정말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건 참 곤란한 이야기인데,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야말로 "나에게 세파트와 같은 목자가 있어서, 내가 알라딘 램프에게 빌기만 하면 나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더라" 라고,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것은 목자가 아니고 완전히 자기의 애완견이고, 종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시다바리(?)' 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에게 있어서 누가 양이고, 누가 목자입니까? 구분을 잘 해야 되는데, 즉 "든든한 목자가 있기 때문에, 내가 구태여 내 인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라고, 그런 뜻으로 생각해야될 텐데, 그런데 "든든한 목자 있기 때문에, 내 고민거리는 그분이 해결하더라" 라고,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제 말이 빠르기 때문에, 얼른 들으면 같은 이야기인 줄 알겠지만, 그러나 전혀 다른, 오히려 반대라는 말입니다. 즉 "목자 한 분이 알아서 다 하실 것이니까, 내가 구태여 내 문제를 걱정한다는 것은, 마치 자기 자신을 목자도 없는 양처럼 취급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 라는 겁니다.

◈ 내 잔이 넘치나이다 !!

그렇게 제대로 된 목자가 인도하는데, 그 인도하는 마지막 지점까지도 무엇인지를 이야기를 준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나에게 하나님의 밥상이 넘치게 일어난다" 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진수성찬이 넘치게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것이 바로, 이것은 우리 목적이 아니고, 목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최종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즉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것은, "너의 잔이 넘치게 해주겠다"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간 과정이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생략하고 앞과 뒤를 보자는 말입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인데, "다 이루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기 욕망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가지고 공격하는데, 그것은 우리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는 것을 공격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쥐고 있는 것이 곧 '죄' 라는 것인데, 여기서 로마서 2장 2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 당신의 양심에 불충성하면 !!

이것이 이방인에게는 참 난해한 이야기가 되는데, 이 말씀을 이방민족에게 번역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는 겁니다. 즉 "당신이 양심대로 행해서 예수를 믿는 기독교를 가졌으나, 만일에 당신의 양심에 불충성을 한다면, 당신이 선택한 기독교라는 것도 당신에게 구원을 주지 못한다" 라고 말입니다. 말을 하고 나니, 또 다시 번역이 더 어려운 것 같은데 말입니다(ㅋㅋ).

◈ 할례를 행하라 !!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제 유대인을 한번 살펴보겠는데, 자칭 선택을 받은 자들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지금까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말입니다. 말도 이상하게 꼬이고, 분위기도 좀 썰렁하고 말입니다(ㅋㅋ).

유대인들의 앞에는 뭐가 있는고 하면, 십계명과 같은 율법이 있다는 겁니다. 창세기 17장 같은 경우에 보면, "할례를 행하라" 라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모세의 율법도 뒤에 가면 나오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할례를 행하라" 라고 할 때는, 그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는고 하면, 모든 율법이 다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 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 저는 노끈만 주워왔습니다 ??

예를 들어서, 사자의 코털을 뽑는다고 했을 때, 결코 사자의 코털과 사자의 몸체가 분리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전유머에 다음과 같는 것이 있는데, 물론 지금 현재 아이들이 들으면 전혀 유머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즉 "당신은 왜 소를 훔쳤는가?" 라고 하니,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저는 소를 훔친 적이 없고, 노끈만 길에 있기에 주워서 집으로 왔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지금 역시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는데 말입니다(ㅋㅋ).

무슨 말인고 하니, 노끈이 있어서 노끈을 들고 오니까, 뭔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그 덤으로 따라오는 것을 신경도 안 쓰고 자기는 노끈만 필요해서 집으로 가지고 와서 보니까, 그런데 거기에 소가 달려있더라는 말입니다. 즉 노끈과 소가 분리가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60년대 유머인데, 지금은 유머도 아니라는 겁니다. 아무튼 분리가 안 되는데, 사자의 코털하고 사자의 몸체하고도 분리가 안 되고 말입니다. 즉 "나는 사자의 코털만 건드렸는데, 왜 사자가 나에게 달려드는가?" 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비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 그 누구도, 전혀 몰랐기에 !!

제가 왜 이런 썰렁한 유머를 하는고 하니, 유대인들은 이 할례 안에 전부가 다 들어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는 몰랐다는 겁니다. 심지어 사도바울도 사도가 되기 전에는 몰랐고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자기는 율법에 완벽하다고 했는데, 즉 율법에 대해서는 흠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빌립보서 3장 6절에 보면 나오는데, 그리고 사도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에 못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고 하면,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당돌한(?) 부자청년인데, 자기는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모두 다 지켰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빌 3: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우리는 이렇게 지켜요 !!

하지만 인간들이 지킨다는 것은 뭐냐 하면, 사자의 몸체를 보지 않고, 사자 코털을 하나 뽑고, 사자 꼬리를 하나 건드리고, 사자한테 밥을 한번 먹여주면서, 그렇게 들어가면 처음에는 10% 지키고, 20% 지키고, 30% 지키면, 그렇게 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90%, 80% 해서, 결국 100%를 지키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고, 오늘날 교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즉 신약성경이 이렇게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고 하니, 먼저 "여기에 사도들의 명령과 지시와 권면과 권고가 있는데, 이것을 하루아침에 어떻게 다 지키겠는가?"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등록한 지가 1년밖에 안 되는 1년 차의 목표는 그 중에서 3개를 지키고, 그리고 2년 차는 5개를 지키고, 그러다가 교회에 2년 정도를 다니면 약간 더 범위를 넓히고, 또 5년이 되면 더욱 더 넓히고, 그래서 나중에 직분을 맡으면 조금 더 많이 지키고, 그런 식으로 자기들이 스스로 사도의 권면과 명령들을 지킨다는 겁니다. 그러니 유대인들 하는 짓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 학교 성적표가 좋지 않을 경우에 !!

사실 이것은 인간들의 본성인데, 예를 들어서, 아이가 학교 성적표를 가져왔는데 성적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애가 머리를 쓰는데, 성적표는 나중에 들이밀기로 하고, 일단 그 이전에 무엇을 하는고 하니, 부모님이 오시기 이전에 설거지를 해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깨끗이 해놓는다는 말입니다. (진주?)

왜 그렇게 하는고 하면, 평소에 성적이 나빴을 때 부모가 하는 말이, "공부는 못하는 것이 설거지도 안 하나?" 라고 하는, 그런 잔소리를 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성적표는 일단 못한 것이고, 그 대신 자기가 잘한 것을 해서 부모로 하여금 잔소리가 반으로 줄어들도록 하는,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부모로부터 그대로 배웠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신을 향하여 하는 짓인데,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를 했지 싶은데, 인간은 신을 대상으로 뭔가 관계를 맺을 때,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신과 관계를 맺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도 전혀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할례를 어떻게 지키는가?

그러면 "할례를 어떻게 지키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이제 정답을 이야기하겠는데, 즉 할례를 지키는 방법을 말입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이미 아는데, 그게 골로새서 2장에 나온다는 겁다. 예수님의 할례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한국말로 세 글자인데, 골로새서 2장에서 말입니다.

(골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 모든 율법은 '십자가'로 모아지는데 !!

그것은 바로 '십자가' 라는 겁니다. 즉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것인데, 그 외에 할례를 지키는 방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를 지키라고 하니까, 자기들의 고추 끝을 잘라내면 할례를 지키는 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남성의 생식기 끝을 자르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또 묻겠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십일조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역시 세 글자인데, 당연히 '십자가' 라는 겁니다. 그것뿐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한가지만 더 질문을 하겠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알겠지요?

◈ 고신 측에서는, 아침부터 스케줄을 짜서 ??

그것이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나오는데, 거기에 밀밭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물론 맥주 이야기는 아닌데(ㅋㅋ), 맥주는 밀이 아니라 보리인가요? 그렇게 밀밭 이야기가 나오면서, 예수님의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이 뭐였습니까? 역시 십자가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고신 측에서는 어떻게 지킵니까? 고신 측에서는 주일 아침부터 철저히 스케줄을 짜서 지킨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안식일, 즉 주일을 지킨다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70년대 이야기?)

그러므로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토요일 다음날인데, 그런데 안식교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금요일 다음날 지키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식일 지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흠 없는 자기 몸을 십자가에 매다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누군가가 "목사님, 장담합니까?" 라고 하면, 저는 감히 장담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 증거를 대어보라고 하면, 골로새서 2장 16절에 다 있는데, 즉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앞으로는 이런 안식일 문제를 가지고 누구든지 비난을 받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 붓으로, 십자가의 피를 푹 적혀서 !!

그러니 마치 도배하는 굵은 붓을 가지고 십자가의 피를 푹 적혀서 그만 획을 그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펴놓고 십자가의 피로서 도배를 해버린다는 겁니다. 즉 "1장은 됐고, 2장도 됐고, 3장도 됐고, 4장도 됐고" 라는 식으로, 온통 십자가로서 도배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저, 가만히 있어봐. 십계명에 안식일 지키라고 했는데, 그것도 지우나?" 라고 하면, 그것도 십자가의 피로 그냥 확 지워버린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이상은, 누구든지 이런 율법으로, 즉 십계명을 가지고, 안식일을 가지고, 십일조를 가지고, 그런 것을 가지고 누구든지 비난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입니다. 그런 것은 모두가 그림자인데, 진짜 실체는 십자가의 피라는 겁니다. 그것이 골로새서에 이렇게 나오고,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에도 나온다는 말입니다.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
(갈 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심지어 얼마나 사도바울이 화가 났으면, 만약 그리스도 앞에서 또 안식일이 어쩌고, 십일조가 어쩌고 하면서, 그런 율법을 이야기하면 예수님이 헛되이 죽은 것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전한 복음 말고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는데, 심지어 천사라고 해도 말입니다.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주님, 여기에 사자의 코털을 ??

마치 사자의 코털을 뽑듯이, 사실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데 말입니다(ㅋㅋ). 그리고 소에 묶인 노끈을 가져오듯이, 그렇게 자기가 지금 지켰다고 우기는 그 말씀, 즉 율법 안에 다른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다고 하는 것을, 그 큰 덩치가 모두 들어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자기가 일방적으로 율법을 재단하고 딱딱 잘라서, 즉 "이것은 1년 차의 몫, 저것은 5년 차의 몫, 그리고 이 정도는 10년 차의 몫" 이라고,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두부를 자르듯이 자기 마음대로 해서 "나는 이 정도를 지켰습니다" 라고, 그렇게 해서 자기는 어릴 때부터 십계명 다 지켰다는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오니, 주님께서 부자 청년을 향하여 뭐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내가 새로운 계명을 부여하겠다" 라고 하면서, 십계명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곧 "너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날 따라오너라" 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니까, 그 청년은 당연히(?) 근심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 '까라면 까' !!

주님 앞에서 우리가 근심할 이유가 없는데, 실제로 백부장은 주님 앞에서 근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겠나이다" 라고 했는데, 그걸 넉 자로 이야기하면 "까라면 까!" 라는 것인데(ㅋㅋ), 그것은 우리가 까라면 까는 게 아니고, 까라면 까는 쪽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새삼스럽게 "까라면 까겠습니다" 라고 다짐하고 각오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까라면 까는 쪽으로 그렇게 진척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를 정말 하기 싫은데, 그런데 까라면 까라 해서 목사가 되어서 교회에서 쫓겨 나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까라면 까는 쪽으로 일이 제대로 진척되고 있기 때문인데, 전혀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까라면 까" 라는 내용에 있어서, 우리가 재단을 해서 따로 내용을 뽑아낼 필요도 없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주님, 뭘 까야 됩니까?" 라고 하면, 사실은 그렇게 물을 필요도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건 기다려 봐. 내가 알아서 앞으로 인도할 거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데, 그러니 쉽다는 겁니다. 다만 우리는 까라면 까라고 하는 주님만 붙들어야지, 자꾸만 주님이 아닌 이 세상을 붙들고, 돈을 붙들고, 권력을 붙들고 있으니, 주님의 율법이 그것을 향하여 공격한다는 겁니다. 즉 우리를 향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향하여 친다는 말입니다.

◈ 너무나 수상한 철야기도회 !!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즉 자기가 붙드는 것을 쳤다고 얼마나 주님에게 평소에 욕을 합니까? 그래서 기도회를 하는 것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데, 기도회를 개최한다는 것 자체가 항의시위를 하는 겁니다. 파업과 마찬가지인데, 물론 기업주에게는 얼마든지 파업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주님에게는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여, 우리의 철야기도를 왜 응답하지 않습니까?" 라고, 그런 식으로 데모하는 모임을 갖는 것밖에 더 되느냐는 말입니다. 즉 범사에 감사하려고 모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일이 생각대로 진척이 제대로 안 되니까 탄원서를 넣어보겠다고 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것도 주님에게 말입니다. 그렇게 합세해서 탄원서에 서명하고, 심지어 금식까지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자기들의 정성을 좀 알아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금식을 하면 무엇을 합니까? 금식이 끝나고 나면 두 끼를 먹을 것이 뻔한데 말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주일 아침에 금식을 하는데, 그래서 제가 관찰을 했는데, 점심 때 어떻게 잡수는가를 보니 아침까지 합쳐서 두 배를 드시는데, 칼로리를 계산해 보면 초과라는 겁니다. 물론 건강에도 안 좋고 말입니다.

◈ 부분 안에 전체가 다 포함되었기에 !!

그러니 결론은 무엇인고 하니, 율법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지키지 못한다는 정도가 아니고, 그 율법의 그 터럭 하나라도 지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구석이나 하나가 없는데, 왜냐하면 율법 하나에 전체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즉 부분이 전체보다 작은 것이 아니고, 부분 안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요즘 '집합론'을 보면 증명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불교의 화엄경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즉 거울이 '쨍'하고 깨졌는데, 그런데 그 파편 조각 하나 하나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 원래 거울이 깨지기 전의 하나의 거울이 담고 있던 그 풍광이 바로, 깨어진 거울 조각 안에도 역시 다 포함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머리를 깎고 깊은 산 속에서 연구한 결과인데, 그거 하나 연구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경우에도,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면, 즉 이 율법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고 하면, "율법은 내가 지킨다. 너희들은 못 지킨다" 라는 내용이 포함된 채로 율법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곧 율법을 지키는 당사자를 모독한다는 말입니다.

◈ 007이 나타났으면 !!

이것이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전문가를 보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키지 못한다는 겁니다. 001을 보내고, 002를 보내고, 003을 보내고, 004를 보내고, 005를 보내고, 006을 보내고, 아무리 그렇게 보내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007을 보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004나 006과 같은 것은 뭐냐 하면, 안 되는 것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007이 왔는데, 그런데 되도 않는 008이 뒤늦게 나타나서 하는 말이, 즉 나는 목사인 008이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007 앞에서 008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 008은 007이라는 십자가의 모든 피를 모독하는 게 된다는 겁니다. 즉 008의 등장은, 007이 소용없다고 하는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슬람교가 뭡니까? 물론 구약은 인정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예수로서는 미흡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호메트가 최종적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문선명의 통일교가 들으면 웃는데, 즉 "마호메트가 어디서 까부나? 문 선생님이 최고인데"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입니다.

◈ 율법은, 일종의 약 올리기 !!

그러니 율법은 그 안에 무엇이 내장되어 있는고 하면, 율법을 지키는 전문가가 포함된 채로 율법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서 "율법은 약 올리기이다" 라고 하는데, 즉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키는 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용을 품고 주었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따로 존재한 그분은 생각하지 않고서 "야, 율법이다. 주께서 쉐마, 즉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그러면 우리가 당연히 들어야지. 암 순종해야지"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율법을 지키는 분이 율법을 지키는 방식과 우리 인간들이 자기 양심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는 방식이 다른데, 그러니 결국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죄에 갇혀 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한다" 라는 것이 들통나버리고, 그래서 진짜 율법을 지키는 분은 오직 의에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 들통나게 되는데, 바로 그러한 들통남이 바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확연해졌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십자가를 볼 때 어떻게 됩니까? 그 이전에 자기는 율법을 완전히 지켰다고 여긴 사람인데, 그런데 그렇게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사람에게 주님이 나타났을 때, 사도바울은 "주여, 누구십니까?" 라고 하면서 봉사가 되는데, 즉 자기는 그 앞에서 참으로 무가치한 존재인 것임 드러나게 되는데, 즉 "나는 이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았고, 내가 나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을 쏟아내게 된다는 말입니다.

◈ 나는 왜 율법을 받게 되었는가?

여기서부터 적용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즉 "그러면 나는 왜 율법을 받게 되었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육인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즉 육은 영으로 건너갈 수가 없고, 육은 그냥 육으로서 마감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영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뭔가 외부에서 와야만 되는데, 그러니 육에서는 영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 부처의 영이 있어서 되는 게 아닌데, 즉 석가모니의 영도 아니고, 공자의 영도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 자신의 영도 안 되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영도 안 되는데, 그렇다면 오직 누구의 영만 된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와야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영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빙자해서 가는 게 아니고, 또한 그리스도를 알아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을 대신할 수 있어야만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잠시 악수만 하고 사인을 받는다고 해서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가 안에 품어져야, 즉 그리스도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덮쳐야만, 그렇게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래서 그 나라가 곧 '아들의 나라'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여, 감사합니다. 한 수 잘 배웠습니다. 이제는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것은 여전히 육으로 남는데, 그런 영의 나라는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아가 계속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유대인들을 통해서 먼저 정지작업을 !!

그런 정지작업을 하기 위해서, 사전에 율법을 먼저 받은 유대인들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 주어지는데, 그래서 로마서 2장 끝 부분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제가 이런 성경공부를 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왜 목사님은 우리를 치는가?" 라고 하는데, 저는 결코 치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세 번, 네 번 다짐했는데 말입니다(ㅋㅋ).

저는 여러분을 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것을 치는데, 만약 여러분들이 성경말씀의 어느 구절을 지켰다고 하면, 저는 그 지킨 구절을 치겠다는 겁니다. 물론 제가 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치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술을 끊었다. 그래서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는 성경말씀을 지켰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혀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든 말든 간에, 그러한 것이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오직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 율법 외에 다른 방법 !!

그러므로 자기가 그동안 즐겨하던 것을 과감하게 다 끊었다고 해서, 그리고 사도바울이 시키는 대로 범사에 감사를 했다고 해서, 그런 것이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은 우리가 예수님만 믿고 의지할 때, 그것만이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두고서 "율법 외에 다른 방법" 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미리 이야기를 하겠는데, 율법으로 되는 영광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그 율법을 지키겠다는 우리가 죄를 모르는 채로, 즉 죄의 지배를 모르는 채로 율법에 접근했기 때문에, 즉 우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영광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서 영광이 안 된다고 하면, 여기서 '율법 외' 라는 것은 또 다시 우리가 등장하는 게 아니고, 그 자리에 누가 있는고 하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 신직수 전도사님과 잠시 연극을 !!

이런 것은 연극을 해야 쉬운데, 말로 해서는 안 되니까 말입니다. 말로 때린다는 것이 아니고(ㅋㅋ), 일단 신직수 전도사님께서 지금 이리로 한번 나와 보세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지금 제가 하는 말에 어떤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 한번 연극을 같이 해보자는 겁니다.

신직수 전도사님을 율법이라고 보고, 제가 이렇게 율법을 지켜서 영광이 안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제가 어디에 갇혀있는가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죄가 튀어나와 버린다는 겁니다. 신직수 전도사님이 튀어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신직수 전도사님을 예수님이라고 보고, 배역이 금방 엄청 좋아졌는데 말입니다(ㅋㅋ). 그러면 제가 예수님을 믿어서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신직수 전도사님이 이렇게 와서 저를 쳐버리고, 제가 있던 그 자리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서있는 신직수 전도사님, 즉 예수님 때문에 말입니다. 이제 제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이제 전도사님은 들어가셔도 되는데, 맡은 배역이 꽤 괜찮았지요? (ㅋㅋ)

◈ 오직 예수님 때문에 영광이 !!

그런데 제가 지금 하는 말을 오해를 하게 되면 "아하, 율법을 지켜서 안 되니, 예수를 믿어서 영광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나 그게 아니라, 즉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영광이 된다" 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그 믿음의 주체가 '나' 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이라는 말입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해를 하라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이해가 될 문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하는 말을 오해해버리면 어떻게 되는고 하면, "율법을 지켜서 영광이 못 되니까, 이제부터는 율법을 안 지키는 쪽으로 나가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영광이 된다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닌데, 즉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쪽으로 산다고 해서 영광이 아니고, 주님께서 이 자리에 폼만 잡고 서있는 우리를 그만 밀쳐내어 버리고는 "저 놈은, 바로 제가 데리고 온 놈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나설 때,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만 말입니다.

◈ 인간은, 전혀 영광을 돌릴 수 없어 !!

그러니 이렇든 저렇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법은 없는데,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보다 더 구체화가 되는 겁니다. 즉 한 마디로 "염려하지 마시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주께서 모두 알아서, 즉 목자가 알아서 처신을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가만있으면 되는데, 그냥 감사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러분이 오해를 하든 말든 말입니다(ㅋㅋ).

◈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로마서 2장 끝에 보면, 사도바울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라고 하는데, 그럴 때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은 무슨 근거에 의해서 우리가 받은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고 하는가? 그 근거가 뭐냐?" 라고 하는데, 그리고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오직 이면적, 즉 안 쪽에 있는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즉 "사도바울, 이리 와봐. 당신이 지금 엄청난 주장을 하는데, 그 근거가 뭐냐?" 라고 했을 때, 사도바울이 제시하는 것은 뭐냐 하면, '십자가' 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내가 그렇다는 아니라, 십자가가 오게 되면, 그 십자가는 뭐냐 하면, '우리가 못하는 것을 주께서 대신했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 라는 것으로 근거를 댄다는 말입니다. 즉 십자가로 말입니다.

(롬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주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믿게 하셨습니다 !!

우리도 꼭 이렇게 해야되는데, 사도바울처럼 말입니다. 즉 "당신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고, 당신은 뭐가 잘나서 믿게 되었는가?" 라고 하면, 우리는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믿게 하셨습니다" 라고,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 모든 해석이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로, 그렇게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이것은 내가 잘나서 믿을 수 있겠네" 라고 하면, 그렇게 되면 참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이제 로마서 3장을 보겠는데, 4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롬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바울을 보면 약간은 얄궂은 게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쉽게 설명한다고 해서 거론된 성경구절이 더 어렵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이 다 알아서 지키는데, 왜 너희들이 고민하느냐?" 라는 투로 이야기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다 알아서 지키는데 !!

그러니 여기 시편 51편에 나오는 이 말씀을 누가 지킨다는 말입니까? 이 로마서 3장 4절이 시편 51편 4절의 인용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지켜서 우리에게 적용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무엇을 지킨다는 것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주께서 말씀을 지켜서 의롭다고 할 경우에, 그것을 그 어떤 인간도 거부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란 말입니다.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을 반대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고 하면, 다음과 같다는 겁니다. 즉 "그렇게 당신의 말대로 한다면, 즉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 나쁜 짓에 열중하면, 즉 우리가 나쁜 짓에 열중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즉 그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께 더욱 더 기쁨이 되겠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죄를 짓자고 하는 논리가 타당한가?" 라고 하는 반격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 그러면 나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겠네 ??

우리 십자가 마을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그런 반격의 말을 많이 들었지 싶은데, 특히 목사님들은 교인들에게 엄청나게 들었다는 겁니다. 소극적으로 덤비는 사람들은 "그러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겠네" 라는 것이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드는 사람은 뭐냐 하면, "이제는 더욱 더 방종하고 나쁜 짓을 많이 하게 되면,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더욱 많이 돌리겠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렇게, 즉 우리가 주장하는 논리가 바로 그러한 논리 아니냐고, 그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퍼부었느냐는 말입니다. 그때 그들이 튀긴 침만 해도 한 트럭은 족히 되지 싶은데 말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답변을 어떻게 했습니까? "나는 1년 차밖에 안 되어서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다" 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까? 아니면 "그것은 목사님이 되어야 답변한다" 라고 했습니까? (ㅋㅋ)

◈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

사도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합니까? 다음과 같이 답변하는데, 즉 시편 51편, 그리고 로마서 3장 4절에 나오는 그 말씀, 즉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과의 분리를 이야기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참되다. 그리고 인간은 거짓되다" 라고 했을 때, 이러한 거짓되다는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거짓되다고 하는 것도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질문하는 것도 역시 거짓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그런 거짓 속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즉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즉 "예수를 믿는 나는 괜찮고, 예수를 안 믿는 다른 사람들은 거짓되다" 라는 쪽으로, 그렇게 나오는 것은 유대인들의 실수를 그대로 동일하게 되풀이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 십자가 마을도 이단이고, 우리교회도 이단이다 !!

그러니 "한국교회는 이단이다" 라고 하니까, 그쪽에서 대번에 뭐라고 합니까? "그러면 십자가 마을은 이단이 아니네" 라고 나오는데,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줄을 알고 "십자가 마을도 역시 이단이다" 라고 하니까, 그 쪽에서 뭐라고 합니까? 분리해서(?) 한다는 말이 "십자가 마을도 이단이래" 라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십자가 마을도 이단이고, 또 우리교회도 이단이다" 라고 하려면, 그 뒤에 무엇을 추가해야 됩니까? "그렇게 하는 나 자신도 역시 이단이다" 라는 말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인간은 거짓된 적이 있었지만 ??

그러면 그들의 주장은 뭔고 하면, "인간은 거짓된 적은 있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언제인고 하니, 자기가 예수를 믿기 이전인데, 하지만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이제는 거짓이 아니라고, 그렇게 우기고 싶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무엇인고 하면, 유대인들이 지금 그와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사도바울은 시편 51편을 가지고서 그들에게 마구 들이대고 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이다" 라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모든 인간은 다 헛되다. 왜냐하면, 인간이 율법을 생각하는 것은, 진짜 율법을 지키는 분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지킨다고 우기니 율법 자체에 대한 해석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제 아무리 율법을 지킨다고 해봐야, 그것은 마치 자기는 노끈만을 가져왔는데 뒤에 소가 따라온 것과 같고, 또한 사자 코털을 뽑았는데 사자 전체 잡은 것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즉 한 율법 속에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지 말입니다. 물론 인간의 자기 변명인데 말입니다.

◈ 예수를 믿고, 그 다음에 무엇을 ??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도 마찬가지인데, 진짜 주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자 하는 신앙에 따라서 믿다보니까, "예수를 믿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하고" 라는, 그런 순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가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춰내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제대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들은 이와 똑같은 반격을 또다시 되풀이한다는 말입니다.

◈ 로마서 3장은 토정비결 ??

그래서 이 로마서 3장은 마치 토정비결과도 같은데(?),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을 복음으로 쑤시면, 그 어떤 반응이 나온다는 까지도 모두 다 튀어나온다는 겁니다. 그럴 때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여기 3장 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롬 3: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얼마나 사도바울이 반격을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르는데, 즉 "너희가 그따위 식으로 하니까 지옥에 간다" 라고 하는 겁니다. 즉 달리 지옥에 가는 게 아니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데 그 복음에 대해서 그런 의문점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바로 "나는 지옥에 가는 놈입니다" 라는 것을 그대로 노출했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께서 지옥을 폼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너희와 같은 말을 하는 놈들을 위해서 지옥을 만들어놓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왜 우리가 지옥에 가야 되는데?" 라는 의문점이 있어서 물었는데, 그러면 그들은 왜 지옥에 가야만 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 참되고, 우리는 어떻게 무슨 짓을 해도 거짓되다" 라는 사실을 전혀 본인이 수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은 참되고, 인간은 거짓되다" 라는 것 가운데 중간에 사도바울이 뭔가 생략한 게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생략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는 것을, 그것이 지금 생략이 되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생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나의 믿음은 참인가? 거짓인가?

여기서 "나의 믿음은 참인가? 거짓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매인교회의 게시판에 들어가면 정말 희한한 사람이 또 등장해서 박윤진 씨하고 한바탕 전투를 벌였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만약 그 사람이 다음과 이야기하면 아무런 탈이 없는데, 즉 "내 믿음도 거짓되지만, 박윤진 씨의 믿음도 거짓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그런데 "박윤진 씨의 믿음은 거짓되고, 내 믿음은 참되다" 라고, 그렇게 나오니까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쳐다볼 때, 예수님만을 딱 쳐다보게 되면, 예수님이 갖고 있는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서로 비교가 된다는 겁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당신의 믿음이 옳은가? 아니면 예수님의 믿음이 옳은가?" 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은 물로 예수님 믿음이 옳지요. 나는 날마다 죽어야만 되고, 주님의 믿음이 내 속에 스며들어서, 나는 주의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은 빼버리고 "하나님은 참되시나, 인간은 거짓되다" 라고 해놓고. "당신 믿음이 거짓이 되는가? 거짓이 안 되는가?" 라고 질문할 때, "내 믿음이 거짓되다" 라는 말도 맞고, 또한 "내 믿음은 거짓이 안 된다" 라는 말도 맞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믿음이 거짓이 안 된다고 할 때는 무엇을 넘겨주는 겁니까? 물론 사도바울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을 넘겨주는, 즉 무엇을 생략한 겁니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주신 이름이 이미 생략된 채로 분명히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거봐. 내 믿음만 옳고 나머지는 거짓되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곧 정죄의 대상 !!

지금 사도바울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고 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결국은 예수님을 가미시키지 않고, 즉 '하나님-나', '나-하나님', '하나님-나', '나-하나님' 라는 식으로, 자꾸만 그런 관계를 억지로 엮으려고 하니까, 그것이 진짜 정죄를 받을 놈이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정죄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까, 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고, 예수 밖에서는 이유도 없이 무조건 정죄함을 받는, 그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집어넣지 않고 생각하니, "하나님을 믿는 나는 참되잖아" 라고, 그렇게 유대교적으로 자꾸 되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을 다 이루었다" 라고 하면 될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그들은 뭐라고 합니까?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빼놓고 이야기하는데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죄를 지으면 되겠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니까. 당신이 하나님은 참되고, 우리는 거짓이라고 했으니, 그러면 우리가 더욱 더 거짓이 되면, 그것이 점점 더 참이 되겠네"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왜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넣지를 않고 빼니까, 그들은 결국 그런 비방의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사도바울, 당신이 잘못되었다"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그것은 자기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바로 뭔가가 빠져있는, 즉 "지옥에 가야만 될 합당한 인간인 줄로 드디어 스스로 고백하는구나" 라고,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로마서가 어려운데, 정말 어렵지요?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이제 로마서 3장 10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사도바울이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하면서, 즉 시편 14편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시편 14편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여기서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이렇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는 것을, 그것을 십자가를 부인하는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석하겠느냐는 겁니다. 즉 시편 14편의 말씀을 두고서, 예수님을 비방하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석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집어넣지 않고 빼고,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데, 즉 "우리도 한때는 그랬던 자들인데, 그런데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우리는 달라졌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구만 생각하는 겁니까? "지금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기에, 지금 나는 여기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라고 본다는 겁니다. 즉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불신자들에게만 해당되고, 지금 신자가 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전혀 해당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서 성경을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 하지만, 우리들도 바리새인들 못지 않아 !!

이와 똑같은 오류는 오늘날 자칭 기독교 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는데, 그런 현상들이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바리새인이 아닌 줄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우리도 바리새인들 못지 않다는 겁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런 것을 염려하지 말라" 라고 하면서, 그런 것은 누가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먹을 사료에 대해서 얼마나 걱정을 합니까? 사료 값이 없어서 고생하는데, 즉 양식 값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어쩌고 해도 밥을 제대로 한번 굶어보라는 겁니다. 욕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니, 우리는 평소에 그러한 것은 구하는 않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자꾸 연기하고 가장을 떠는데,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믿는 척하고, 말씀대로 인내한다는 것은, 그렇게 인내하면 돈푼이나 더 생길까 싶어서, 그래서 그런 인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입니다. 즉 자기가 주의 말씀대로 그렇게 베풀면서,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은밀하게 원했던 것은, 돈 다발이 들어올까 싶어서, 사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했다는 말입니다.

◈ 제가 다음 수련회는 1500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

여기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수련회를 하는데, 물론 회비 칠만 원이 비싸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정신이 그만 살짝 나가서(?) "제가 다음 번 수련회를 하는데 15000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기쁜 소식처럼 여기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복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인데, 즉 "야, 다음에는 회비를 안 내도 되겠다. 기쁜 소식이네" 라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즉 "내가 지금 더욱 더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면, 앞으로 복을 받아서, 혹시 그런 기부금이라도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을 노리는 노림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들이 개척교회를 하면서도 희망이 무엇입니까? 개척교회를 열심히 했다고, 큰 교회에 스카웃이 되는,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승엽도 스카웃이 되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자기도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사실 사모들이 얼마나 고대하는지 모르는데, 목사들은 아닌 척 하지만 사모들은 약간 노골적인 게 있다는 말입니다(ㅋㅋ).

◈ 죄인이기에, 오직 십자가만 구원을 !!

다시 이야기를 하겠는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십자가의 피가 아니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라도 말입니다. 지나간 경력, 업적 등등, 그런 것은 한번 지나가면 다 지나간 것이란 말입니다. 모두가 다 날아가 버린 것이고, 그러니 없다는 겁니다. 죽는 순간에도 여전히 십자가뿐이란 말입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는 그분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오직 십자가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시편 14편 말씀이 계속해서 지금도 적용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십자가를 모를 때의 일이고" 라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지금도 이 말씀, 즉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하는 말씀이 계속해서 적용된다는 것은, 계속 우리는 십자가의 사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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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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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