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2자유게시판로마서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2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8)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2 (첫날 저녁2) 이삭과 이스마엘

2007,01,08 강의 이근호, 녹취 오용익

◈ 내어버려두사 !!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은 이상은, 더 이상 금지할 법이 남아 있지를 않는데, 즉 "따먹지 말라" 라고 한 선악과까지도 따먹은 이상, 하나님조차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매우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즉 '내어버려두사' 라고 말입니다. 24절, 26절, 28절에 말입니다.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
(롬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여기서 '내어버려두사' 라는 것은 일종의 방치인데, 즉 그냥 내어버려 둔다는 겁니다. 1장에는 이런 '내어버려두심'이 나오고, 2장에 가면 '저주'가 나오고, 그리고 3장에 가면 '심판'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아래에 두신다고 하는데, 즉 심판아래에 '갇혔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그렇게 진행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그런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을 의향이 없다는 말입니다. 즉 "니 뜻대로, 니 마음껏 해봐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경우에라도, 그 어떤 인간의 행동으로도 율법을 탈출하는 일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는 말입니다.

◈ 그냥 니가 왕이야 !!

여기에는 예외가 없는데, 그래서 사울이 제 아무리 잘못했다고 자기 행동을 회개하고 반성을 해봐도, 그것으로 인해서 다시 왕의 자리로 복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참 신기한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사울이 울면서,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질 정도로 잡아당기면서 울어도 다시 복귀되지 않는데, 그런데 다윗과 같은 경우에는, 그런 방치나 저주로 인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인 다른 테두리, 즉 전혀 다른 엉뚱한 방식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 : 앞으로 니가 왕을 해!
* 다 윗 : 제가 왕입니까?
* 하나님 : 그래, 니가 왕이야.
* 다 윗 : ? ? ?

이것으로 그냥 끝나버렸는데, 그냥 왕을 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어떤 테두리냐 하면, 사울처럼 울어도 울어도 다시는 왕으로 복귀가 되지 않는 테두리가 아니라, 자기 쪽에서 그 무슨 짓을 하더라도 왕의 자리가 결코 취소되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너, 앞으로 왕을 해!" 라고 된다는 말입니다.

◈ 다윗은 잘났고, 사울은 못났다 ??

그러니 참으로 기이한데, 다윗은 사고를 치더라도 다시 회개하고 복귀를 한다는 겁니다. 같은 왕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요? 그런데 이것을 두고서 "다윗은 잘났고, 사울은 못났다" 라는, 그런 인간의 행함을 가지고 다가서게 되면, 그것은 완전히 자기가 조작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말씀에도 없는, 그런 조작된 하나님을 말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에 의해서 인간을 갇히게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갇혔습니까? '사파리' 라고 아십니까?? 4마리의 파리가 아니고(ㅋㅋ), 그 사파리의 속의 사자가 자유롭습니까? 아닙니까? 자유로운데(?), 에버랜드의 사파리에 가보면 사자하고 호랑이하고 서로 온돌방을 차지하려고 싸우는데, 거기 대장인 호랑이가 얼마나 까불고 설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동물의 왕국이 제2탄까지 준비된 모양이던데(?), 그러나 아무리 해도 결국에는 갇혀있는 셈이 된다는 말입니다.

◈ 율법마저도 금지할 수 없는 인간 !!

하지만 그렇게 갇혀있지 않은 인간, 다른 말로 하면, 이 율법마저도 금지할 수 없는 인간, 율법마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해방된 인간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것을 가지고 "율법 외의 한 의(義)"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율법 외에 다른 의가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그게 로마서 3장 21절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바로 그 "율법 외의 한 의(義)"가 누구인고 하니 예수님인데,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떤 율법에도 해당됨이 없이 자유롭게, 즉 율법의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난, 그런 인간상이라는 말입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러한 율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정죄받지 않는 예수님과, 그리고 율법에 갇혀있는 인간들 사이의 유일한 통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다윗언약' 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중간매체로서 갇혀있는 이 안에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다윗인데, 그것을 두고 '다윗혈통'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다윗혈통이라고 말입니다.

◈ 왕이 될 수밖에 없는 !!

그러니 쉬운데, 이 다윗혈통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고 하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다윗에게 "너는 왕을 해. 너는 왕을 해야만 되" 라고 찍어주시는데, 그렇게 하실 때에 그 능력이 어떤 능력인고 하면, 일체 율법의 테두리가 없는, 즉 율법의 테두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채로, 혹은 벗어난 지위로, 혹은 그런 신분으로서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말이 제일 적당한데, "왕이 될 수밖에 없는"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생을 얻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찍어서 넣은 사람이 곧 다윗이라는 말입니다. 이 다윗과 예수님의 연결고리가 곧 다윗의 혈통인데, 이 다윗의 혈통에 해당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각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혀 율법의 테두리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 참으로 특이하고 별난 종족이 !!

그렇게 율법과 전혀 상관없이, 어떻게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 모습, 이것은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일인데, 무슨 짓을 해도 용서를 받고, 무엇을 해도 용납이 되는 말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은 갈구지 않는데, 그러니 다윗혈통 안에 있는 인간들은 정말 희한한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즉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율법으로 정죄함을 받지 않는 아주 특이한 족속이, 그러한 별난 종족이 이 다윗혈통 안을 채우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도 듣고 보니, 그런 혈통에 가입이 되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아주 기분이 아주 좋아지지요? 저만 그런가요? 그런데 다윗혈통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그 본성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에 미리 앞서서 다윗혈통에 가입되어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성이 그대로 들어온다는 것,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고난을 미리 앞당겨서 받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래도 다윗의 혈통이 좋습니까? 물론 이렇게 묻고 나서도 "여러분, '가' 하시면 '예' 하십시오" 라고 동의를 구할 문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ㅋㅋ).

◈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수인 '나'를 위해서 !!

아무튼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아주 희한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구약 선지자들이 어떻게 했는고 하니까, 예수와 '나'와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겁니다. 즉 여호와를 위해서가 아닌,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게 마태복음 5장 11절과 12절의 말씀이란 겁니다.

도대체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렇게 되니까 바리새인들은 그야말로 '멍'하게 되는데, "정말 이상하다. 서른 살밖에 안된 청년이 어떻게 저렇게 건방진 말을 하는가? 구약의 선지자들과 저 청년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로마서 1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과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즉 다윗혈통 안에서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제 '다윗혈통' 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분석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일단 교재 7페이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이렇듯 두패로 나뉠 때는 '본 부인과 여종'이라는 구조로 쪼개지고 있지만, 법궤를 이동시킬 때에 법궤 사방을 진쳐야되는 지파별 위치를 보면, 거기에도 라헬과 레아의 갈등구조로 이루어져있다.

◈ '본 부인 : 여종', 그리고 '라헬 : 레아' !!

여기서 '본 부인'과 '여종' 이라는 두 개의 구조로 쪼개지고 있지만, 또한 라헬과 레아 사이의 갈등구조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조가 여기에는 몇 개가 나옵니까? 서로 관계성이 없는 두 개의 구조가 따로 나온다는 겁니다.

한쪽은 뭡니까? 본 부인과 여종인데, 그러니까 지금 열두 지파의 근원적인 기초를, 즉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먼저 본 부인과 여종이라는 구조로 구분이 되고, 또 하나는 라헬파와 레아파의 갈등구조로 봐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과 다윗언약의 혈통과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 설마, 이근호 목사님이 구라를?

어떤 분이 이것을 실제로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설마, 이근호 목사가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여기에 나오는 법궤를 중심으로 한 지파들의 동서남북 배치 등등, 그러한 이야기들이 모두가 다 구라일리는 없는데, 이게 정말 그럴까?" 라는 분이 실제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 대부분은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과연 그러한가?" 라고 하여 따지는 분이 있었다는 겁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인데 말입니다. (누구?) 이제부터 그것을 한번 살펴보자는 겁니다.

여기에 나오는 구조는, 명저 '교회를 넘어서'의 구약 에스겔서 부분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교재 7페이지 중간에도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이 원리에 따라서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여종 소생의 지파들은 북쪽과 남쪽 끝에 땅을 분배받게 되는데 이는 성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단, 아셀, 납달리, 갓). 거기에 비해 정실 부족들은 남쪽과 북쪽에 각각 넷씩 성전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새 성전이 장차 드러내 보여줄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그 인물은 오직 하늘의 아들에만 지칭함을 지향케 한다.

이것이 어떻게 되어있는고 하니까, 본 부인에 의해서 출생된 자녀와, 시녀들에 의해서 출생된 자녀의 비율이 '8:4' 인데, 그리고 언니 레아와 라헬 사이의 구성비율도 역시 '8:4' 라는 겁니다. 라헬이 4명을 낳았다는 말이 아니고, 라헬의 시녀인 빌하가 낳은 자녀가 2명인데, 즉 라헬이 2명을 낳고, 또 라헬의 시녀 빌하가 2명을 낳고, 그리고 레아가 6명을 낳고, 레아의 시녀인 실바가 2명을 낳고, 그렇게 해서 레아 쪽과 라헬 쪽의 비율이 '8:4' 라는 말입니다.

◈ '8:4'의 구조를 '6:6' 구조로 !!

그런데 '동서남북' 이란 것은 분명히 4각형인데, 즉 네 방향으로서 "3:3:3:3"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명기 27장에 가면, 그리심산과 에발산인 양편으로 나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그리심산은 저주를 외치고, 에발산 쪽에서는 저주를 외치는데, 그렇게 두 패로 마치 청군과 백군이 나뉘듯이 양쪽으로 나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8:4'의 구조를 '6:6' 구조로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이걸 어떻게 '6:6' 구조로 수정하느냐 하면, 이것이 아주 재미있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신명기 27장에 보면 다음과 같다는 겁니다.

(신 27: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신 27: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여기에 잇사갈은 분명히 언니 레아가 낳은 자식이 맞는데, 그런데 라헬 자식으로 집어넣어서 '6:6'의 구조로 일부러 맞춘다는 겁니다. 왜 잇사갈이 라헬의 자식이 되느냐 하면, 그때 언니 라헬이 남편과 합궁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데 동생 라헬이 합환채를 얻는 조건으로 바꿔치기 하는 식이 되어서, 그런 상황 속에서 잉태된 자녀가 잇사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원래 순서가 라헬 쪽에서 나와야 할 자식인데, 그런데 언니가 값 주고 산것이 되어버리기에 잇사갈은 라헬 쪽에 편입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6:6'의 구조로 맞춘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억지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해서, 그리고 법궤를 중심으로 진을 치는 것도 역시 "3:3:3:3"으로 해서, 그렇게 동서남북의 구조를 맞추어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 왜 차별을 두는가?

결국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것을 따져서 뭘 하자는 게 아니고, 본 부인과 시녀에게서 출생된 것과의 차별을 두고, 그리고 나서 라헬과 레아 쪽에 차별을 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원래 본 부인이 동생 라헬입니까? 언니 레아입니까? 분명히 동생인데, 그러면 언니는 무엇인고 하면,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서 슬쩍 언니를 그냥 보조수단으로 취한 것뿐이란 겁니다. 그러니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동생이었다는 말입니다.

◈ 12지파 - 육으로 난 자식은 천국에 안 돼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2지파를 가지고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최초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면 인간의 육으로 난 자식은 천국에 못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자식이 이스마엘인데, 그가 아무리 불쌍하다 해도 그는 여종 하갈에게서 나온 자식이기에, 그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마엘은 약속을 보여주는 인물로서는 적당치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그렇다면 하갈에게서 말고 사라에게서 낳으면 될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이 사라의 문제점, 즉 다윗혈통에 속한 사람의 문제점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할 것이 전혀 없고 그냥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 아하, 부활의 자식으로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태가 그냥 죽기를 기다렸는데, 즉 "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죽은 여자입니다. 있으나 마나한 여자입니다" 라고 할 순간까지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다려서 이삭을 주심으로 말미암아서, 사라는 "아하, 죽은 나에게 부활의 자식으로서 이삭이 피어났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와 같이 장차 오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미리 앞당겨서 하나의 인화지에 사진이 찍히듯이, 그렇게 아브라함 때부터 미리 사진앨범으로 찍혀 나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살아있는 채로는 하나님의 율법의 그 무서운 저지선을 돌파할 수가 없는데, 즉 인간의 어떤 행함으로도 율법의 저지선을 돌파할 사람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없다는 말은 그냥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 안에 있는 인간이나, 예수 밖에 있는 인간이나 그 공통점은 무엇인고 하니, 모두가 다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 안에 있는 인간도 죽어야 하고, 또한 예수 바깥에 있는 인간도 공히 다 죽어야 하는데, 단지 예수 안에 있는 인간은 죽은 자도 살려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살려줘요. 뽀빠이!" 라고 해서, 그렇게 살려달라고 해서 살려주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맘대로 살려주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는 누구를 살리고 죽이고 할 권세가 있는 분이니 말입니다.

◈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일으켜 고쳐주신 일이 있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일어나 걸어가" 라고 하지 않고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 사람들이 하는 말이 "예수님이 참으로 건방지고 참람하다" 라고 하는데, 즉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더 확실하고 쉬운데, 왜 건방지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어려운 말을 하는가?"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에 의하면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만 하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실 그 중풍병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데, 즉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중풍병자는 그냥 하나의 사진 인화지로서, 즉 예수님이 무엇을 해야 될 분인지를 알리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중풍병자가 "주여, 제가 걷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하면, 예수님은 "그래, 일어나서 걸어가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다" 라고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중풍병자는 뭐라고 하겠면 되겠습니까? "야, 내가 걸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야, 나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이제 알았다" 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병이 낫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가?" 라는 것이란 말입니다.

* 중풍병자 : 주여, 제가 걷기를 원하나이다.
* 예 수 님 : 그래, 일어나서 걸어가라.
* 중풍병자 : 예수님, 그게 아닌데요?
* 예 수 님 : 아차, 너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다.
* 중풍병자 : 야, 내가 걸었다.
* 예 수 님 : 임마, 너도 그게 아니잖아?
* 중풍병자 : 야, 나는 이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
* 예 수 님 : 오케이.
* 중풍병자 : 역시 예수님은 짱 !!

어떤 사람이 치킨집을 하는데, 그런데 백 번이면 백 번을 망하는 그런 치킨집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났다면 말입니다.

* 닭사장 : 주여, 제발 이번 치킨집은 성공하게 하옵소서.
* 예수님 :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 닭사장 : 야, 이제 나의 치킨집이 성공하게 되었다.
* 예수님 : 그게 아니잖아. 새로 다시.
* 닭사장 : 치킨집이 망하는 것을 통해서, 이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 예수님 : 오케이 !!

◈ 주님의 죄 용서로 '끝' !!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일방적인 권세로 용서하면, 그것으로 구원은 완료가 된다는 것만 알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목회가 안 된다고 답답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복음을 아는 목회자 중에서 목회에 성공한 사람이 과연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는데, 그러면 왜 목회성공을 하지 못합니까? 목사든 누구든 간에 성도의 목적은 목회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그것을 알면 끝나는 문제라는 말입니다. 목회성공은 우리가 관심을 둘 사항이 전혀 아닌데, 그런데 자꾸 자기가 살아있다고 여기니까 욕심을 내서, 이왕 살아 있는 것, 목회 성공을 하면서 살아있고 싶다고 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는데(?), "창고에 교인들을 수천 명을 넣어놓고 목회를 하다가, 오늘밤에 너의 영혼을 데리고 가면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어리석은 목회자야!" 라고 말입니다. 혹시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즉 "저 창고와도 같은 예배당에 수천 명을 모아놓고, 니가 죽고 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물론 후임자의 차지가 되겠지만 말입니다(ㅋㅋ).

구약의 다윗언약, 아브라함, 정실과 시녀의 아들 등등, 이런 관계성을 제대로 모르니까, 구약을 백날 봐도 "아하! 이렇게 하면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겠구나" 라고 하면서, 맨 날 그런 짓거리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여전히 자기가 살아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는 살아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이상 내가 무엇을 할까?" 라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 아하, 나는 율법에 의해서 죽었구나 !!

다시 강조해서 이야기하겠는데, 예수 바깥에 있는 인간은 율법에 의해서 이미 죽은 인간인데, 그리고 예수 안의 인간도 율법으로서는 이미 죽은 인간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으로는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삶을 얻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아는고 하면, 자기는 율법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 바깥에 있는 사람은 본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있다고 우기는 사람인데, 그렇게 자기가 자꾸 죽지 않았다고 여기니까, 즉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해서 존재의 가치를 두고, 거기에 의미를 두고, "살아있는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요?" 라고 하는, 종교적인 품세를 자꾸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 존재로 보는 로마서와, 언약으로 보는 로마서 !!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재 1쪽에 보면, 이번 수련회의 제목이 "존재로 보는 로마서와 언약으로 보는 로마서" 라고, 그렇게 로마서를 서로 차이를 두고 있는데,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이렇게 "존재로 보는 로마서와 언약으로 보는 로마서" 라고, 그렇게 구분해서 로마서를 기술한 논문이나 책을 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제가 잘난 척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책을 있으면 얼마든지 제가 수용할 부분이 있으면 하겠다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는 그런 책들을 아직 제가 보지를 못해서 참고가 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혹시 그런 책을 보신 적이 있거든 저에게 연락해주시면, 그러면 떡을 하나 더 드릴 용의가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떡?)

그런데 "존재로 보는 로마서와 언약으로 보는 로마서" 라고, 왜 이렇게 차이를 두는고 하니까, 사람이 '존재'로부터 출발을 하게 되면, 존재란 있으니까 존재하고 없으면 존재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있는 것을 어떻게 잘 멋있게 있게 하느냐? 이왕 있는 것 버릴 수는 없고, 계속해서 영원히 잘 있게 하는데 있어서, 거기에 로마서가 어떤 기여나, 혹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나' 라는 인간이 지금 여기에 있다. 그래서 꼬집어보니 아프다. 분명히 이렇게 있는 나 자신을, 어떻게 로마서를 공부해서 얼마나 멋있게 잘 있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겠는가?" 라고 하는 쪽으로 보는 것이, 그것이 바로 "존재론으로 보는 로마서" 라는 말입니다.

◈ 다시 아브라함의 자식들로 돌아와서 !!

그런데 그러한 존재론적인 로마서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달달 외운다고 해도, 그것은 사울의 계통이고,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의 계통이지, 결코 이삭 계통이나 혹은 다윗 계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인 하갈에게서 나온 자식은 어떤 경우에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이 하갈은 약속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서 주어진 자녀인데,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무엇인고 하니, 아브라함의 종의 자식인 이스마엘이 축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이스마엘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스마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그의 존재가 더욱 크게 확장이 된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만큼 많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이삭의 후손들이 제대로 유지되려고 하면, 이삭과 이스마엘의 그 두 계통에서 그냥 고요한 평화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싸움을 일으키는 적대적인 관계로서, 그렇게 서로 싸우는 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즉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가 양쪽이 다 제대로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이 바로 성도의 내부적인 갈등으로 계속해서 유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 갈라디아서 - '율법으로 난 자'와 '약속으로 난 자' !!

제가 어떻게 그런 건방진(?) 이야기를 할 수 있는고 하니, 이스마엘을 가지고 갈라디아서에 보면 엉뚱하게 "율법으로 난 사람" 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이 참 희한한데, 왜 그런고 하니까, 아브라함 때는 율법이 있지도 않았는데, 분명히 그렇지요?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은 아브라함 이후에 430년이나 지난 다음에 왔다는 겁니다. 그 당시의 아브라함이든 그 누구든 간에 율법은 구경도 전혀 하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이스마엘을 두고서 "율법으로 난 자" 라고 하고, 그리고 이삭은 뭐라고 합니까? "약속으로 난 자", 즉 "성령으로 난 자"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갈 4: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사도바울에 의해서 율법이 새로운(?) 개념으로 !!

이 부분이 참 중요한데,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율법개념이 할례나 제사법, 십일조, 안식일 등등, 그런 개념의 율법이 아니고, 이제 율법은 우리 인간 자체를 통 채로, 그렇게 전체적으로 규정짓는 전체적인 필드(영역)로서, 즉 "인간은 저주 아래에 갇혀있다" 라는 것을 규정하기 위한 율법으로서의 개념이, 사도바울에 의해서 새롭게 시도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 율법 - 인간은 저주 아래에 갇혔어 !!

흔히들 율법은 지키면 지켜지는 줄로 알고들 있는데, 그런데 율법은 거대한 창고의 지붕과도 같아서 아무리 밑에서 팔짝 팔짝 뛰어도 도달될 수 없는 동시에, 그리고 율법에 도달될 수 없다는 그 점으로 인해서, 율법으로부터 저주가 계속 쏟아져서 율법의 저주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자체를 두고 "율법에 속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저주에 속했다. 심판에 속했다. 죄에 갇혔다" 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렇게 "죄에 갇혔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율법이 투입되었다" 라고, 이 갈라디아서는 말씀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너는 지금 너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죄에 갇힌 채로 놓여있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즉 율법을 줌으로서 갇혀있다는 것이 보다 더 확실시된다는 것입니다.

◈ 와우, 냄새가 엄청나네요 !!

쉽게 말해보면, 지금 이런 지저분한 예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해서 나중에 집사람으로부터 욕을 얻어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나중 일이고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지금 저는 방귀냄새에 갇혀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김대식 씨가 제 옆으로 와서는 마구 코를 막으면서 "와우, 냄새가 엄청나네요"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 대식 씨가 가미된 것은, 뭔가 저로 하여금 갇혀있다는 것을 노출시키고, 또한 확인시키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예가 적절했습니까? (당근!)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은 지킬 경우에는 의인되고, 지키지 않을 경우에만 죄인이 된다" 라고 하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했다는 겁니다. 이것은 곧 선악과를 따먹은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을 모르고, "비록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앞으로 잘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라는 소리하고 똑같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어서 이미 선과 악을 알아버린 그 순간부터 죄인이라고 규정되어서 추방된 주제에, 그렇게 우기는 것은 그야말로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스스로 신을 만드는 인간 !!

그런데 사실 선악과는 그 정도가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의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즉 자기가 좋은 대로 메시아도 창조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는지, 제대로 지키지 못했는지, 그런 것도 스스로 다 결정하고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눈의 들보는 전혀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는 곧잘 본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면면들이 다 율법에 갇혀있는 다양한 모습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 혈통으로, 혈통으로 !!

바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혈통으로, 혈통으로" 계속해서 밀어 부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유다지파인데, 그런데 이 유다지파는 그러한 혈육적인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약속이 아닌 것, 즉 비약속과는 어떤 관계에 놓여있다는 말입니까? 반드시 둘은 전쟁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래서 유다지파를 포함한 12지파는, 사실은 이스라엘 자체가 일종의 전쟁을 위한 집단인데, 그러니 그들은 어떤 전쟁을 해야 됩니까?

이스라엘이 전쟁을 함에 있어서, 이 유다지파는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제사장 지파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지파인 이 레위지파가 제대로 율법을 지키지를 못한다고 하는, 바로 그런 점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개입된 지파가 곧 유다지파라는 말입니다.

◈ 그래서, 얼토당토않은 유다지파가 !!

말이 조금 어렵지요? 그것은 바로, 이 레위지파보다 유다지파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이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오고, 또한 제사장으로서 성전 일을 하기는 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더라도 율법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래서 얼토당토않은 유다지파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시편에 분명히 나오는데, 즉 시편 78편에 보면 "요셉지파는 버리기로 작정했고, 유다지파는 선택하기로 작정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라가 그만 남북으로 갈라진다는 말입니다.

(시 78: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시 78: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 이미 글러먹었음, 땅땅땅 !!

제가 지금 길게 이야기를 못하고 짧게 하는데, 즉 예수님이 유다혈통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해도 결국은 못 지킨다는 것으로 판정이 났음. 땅땅땅!" 이라는 것인데, 즉 "유다지파에서 메시아가 오는 것으로 봐서, 인간들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되고자 하는 것은 이미 글러먹었음. 땅땅땅!" 라는 뜻이란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유다지파에서 메시야가 오셨다는 겁니다. 결코 유다지파가 잘나서가 아니고 말입니다.

그래서 유다혈통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하니, 혈통적으로 유다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즉 DNA가 유다지파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이 유다지파에 담겨있음을, 그래서 유다지파와 같은 방식으로 메시야를 보내준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곧 유다지파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 유다지파에 어떻게 예수님이 오시는가?

여기서 조금 어려운데, 지금부터 "이 유다지파에 예수님이 어떻게 오셔서 일을 하시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자는 겁니다. 이 '유다지파' 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기존의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을 뽑았고, 또한 제사장이 잘해야 구원받고 복을 받는데, 그것이 모세언약이란 겁니다. 그런데 방금도 말했지만, 이런 레위지파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다지파가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 십자가 - 죄의 '결과'와 '회복'을 !!

바로 그러한 의미로서 유다지파가 들어왔다고 하면, 이 유다지파로 오는 메시야의 임무는 무엇인고 하니, 첫째로는, 인간이 저지른 죄의 결과도 보여야하고, 둘째로는, 그 죄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회복, 혹은 극복이 되었는지, 그런 양쪽을 모두 다 보여주는, 그런 유다지파에서의 메시야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바로 '십자가'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 사건은 먼저 '죽음' 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래서 로마서 1장 4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데, 즉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메시야는 왜 죽어야 하는가?

하지만 사도바울이 이런 소리를 하면 유대인들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에 의하면 메시야가 죽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들이 유다의 족속이고, 그 유다지파에서 메시아가 온다면, 그래서 예수가 메시야라고 하면 그냥 메시야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 메시야가 왜 죽는가?" 라는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그들은 해결책이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들이 메시야가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정한다고 한다면, 그들은 졸지에 어떻게 됩니까? 자기들이 살아있어서 지켰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은 헛짓이었다고 하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제가 여기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이번 시간은 서경수 목사님이 강의를 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냥 밀리는 것이 아니고, "이래서 안되고, 이래서 이렇게 해야합니다" 라는 것이 다 나온다는 겁니다. 그때 제가 "그렇습니다. 서경수 목사님이 강의를 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무슨 뜻이 되는가 하면 "나는 강의할 자격이 못됩니다" 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이 되는 겁니까? 이제 정답이 나오지요? 자기가 전도하고, 찬양하고, 십일조를 하고, 전도하고, 강의하고, 설교하고, 또한 목회를 하고, 그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는 안 되는구나" 라는 것을 자인하는 뜻에서,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 아하, 나는 아니구나 !!

그러므로 이제 '내' 속에 있는 '나'의 주특기, '나'의 능력, '나'의 재치, '나'의 말재주 등등, 이런 것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피만 살아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원하는, 전적으로 그런 경우에만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된다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만 십자가를 아는 목회자이고, 십자가를 아는 성도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하여 "우리는 죄인이며, 주의 십자가가 다 합니다" 라고 하면, 그 말이 그렇게 성질이 나는 말이 됩니까? 그것이 아니고, 오히려 환희이고, 기쁨이고, 동감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성질을 돋우는 이야기가 되고, 짜증나는 이야기냐는 말입니까?

그러니 도대체 앞뒤가 제대로 맞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모르니까 화를 내고 있는 것이지, 만약에 십자가를 제대로 안다면 "맞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찬송합니다" 라고,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인화지이기에 말입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지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이야기인데, 앞으로 누가 또 그렇게 될지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ㅋㅋ). "물론 그것은 맞기는 맞는데, 그래도 행함으로 어떻게 안 될까?" 라고, 그렇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십자가의 구조는 너무 디프컬트해 !!

여기서 십자가의 구조가 어렵다는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서 부활에 이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이라고 할 때, 여기 죽음에는 아브라함의 정실부인인 사라와 하갈의 관계, 사울과 다윗의 관계가 다 들어있고, 레위지파와 유다지파와의 관계가 모두 들어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 안에 이런 것들이 모두가 다 말입니다.

◈ 선을 과감하게 '좌악' !!

그래서 죽음을 통과했다고 하면, 이스마엘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야 하고, 또한 레위지파도 아니라고 그어야 하고, 물론 사울도 아니라고, 그렇게 모두 선을 그어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레위지파, 사울, 이스마엘 죽죽 다 그을 수 있도록, 그리고 주께서 그을 수 있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을 긋는 것이 끊는다는 의미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신분이 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데, 그렇다면 여기 이 이스마엘이 누구냐 하면, 그것이 곧 인간의 육이 아니냐는 겁니다. 사울이 인간의 육, 곧 인간의 요구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즉 인간의 성경말씀 지키기, 성경말씀 순종하기 등등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에 대해서 선을 긋고 지워버린다는 것은, 진짜 구원받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 나는 왜 그렇게 육적인지 모르겠어. 정말이지 미치겠어. 나 이제 지옥에 가는 가봐" 라고,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왜 내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나는 왕이 되고 싶은데, 왜 나를 왕이 못되게 하는 거야" 라는 요구조건도 그렇고 말입니다. 또한 "나는 말씀을 열심히 지키는데, 지킨 만큼의 보너스를 주겠지" 라는 생각도 그렇고 말입니다.

◈ 이 바보야, 그게 아니야 !!

그러니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이런 것을 스스로 철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을 통과했다는 증거로서, 즉 먼저 자기 쪽에서 이런 사고방식들을 아예 꼴 보기도 싫다고 하는, 그렇게 자기가 자기에게 그런 외침을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즉 "이 바보 등신아, 왜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 그것도 역시 사울 식이고, 이스마엘 식이고, 레위지파 식의 사고방식인데 말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도대체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서, "내 것이 없다" 라는 뜻인데, 그렇게 자기 것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로마서 1장 6절에 보면 나오는데 말입니다. 한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 오로지 '그리스도의 것'으로만 !!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통과했기 때문에, 이제 "나의 것"은 없다는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역시 "맘대로 사세요" 라는 것인데, 이런 말을 하고 욕을 얻어먹어도 할 수 없고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마음대로 살면 되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살아도 이미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그 신분은 전혀 달라지는 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그렇게 맘대로 살면 죄를 짓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마음대로 사는데 있어서 죄를 짓는 공식은 여기 이쪽에, 즉 이미 그어서 지워버렸던 사울 쪽이나, 레위 쪽이나, 이스마엘 쪽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쪽을 지워버린 이상은,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말 자체가 사실상 전혀 성립이 안 되는데, 즉 "주님의 것으로서 내 마음대로 산다" 라는 것이, 그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면 누구의 맘대로 입니까? 주님 마음대로가 아닙니까? 주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부리겠다고 하는데, 그걸 어쩌겠느냐는 말입니다.

◈ 네 안에 내가 있다 ??

주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는데, 그런데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고, 서로 모순이 된다는 겁니다. 즉 "주님의 맘대로, 내 맘대로 산다" 라는 것이 말이 맞지 않는데, 그러면 주님은 뭐고 또한 이근호는 뭡니까? 도대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네 안에 내가 있다" 라는, 그런 식인가요?

그러니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먹지를 못하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려고 하는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자꾸만 "니가 나보다 뭐가 잘났느냐?" 라는 식으로, 욕을 얻어먹는다는 겁니다. 즉 사도바울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라고 아무리 외쳐도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로마서 14장 7절과 8절을 보겠는데,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렇게 같이 읽는 맛이라도 있고, 이런 성경구절이라도 머리에 남아야 여기까지 온 보람도 있고 말입니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

여기서 뭐라고 합니까? 사람이 산다는 것이, 즉 인생이 뭡니까? "살고 죽는 것" 이라는 겁니다. 살고 죽는 것 사이에서 모든 일상적인 일이 다 벌어지는데, 그런데 사는 것도 주를 위해서 살고, 또한 죽는 것도 주를 위해서 죽는다면, 그 중간에 끼인 것은 다 누구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당연히 자동적으로 주를 위해서 살게 되는데, 물론 죽는 것도 주를 위해서 죽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잘못해서 죽었어" 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즉 죽는 것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사는 것도 주를 위해서 산다면, 그 중간에 끼인 것도 모두가 다 주를 위한 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주의 일인데, 그런데 성도라고 하면서도 자꾸 오해하기를 "나를 위해서 일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오해는 용서가 되는데, 그래서 돌이켜 보면, '나' 라는 인간은 '나'를 위해서는 살 수가 없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나중에는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즉 일곱 번을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서면서, "아하, 다 주께서 알아서 하신 일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중간에 있는 것은 괜찮다는 말입니다.

◈ 9878번을 넘어져도 9879번째 일어나 !!

일곱 번째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선다고 하니까, 그러면 아홉 번째는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ㅋㅋ), 9878번을 넘어져도 9879번째 일어서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즉 모든 것이 이미 주의 것이 된 이상, 우리는 언제나 자기 일이라고 오해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의 눈꺼풀이 벗겨지면 어떻게 됩니까? 주께서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셨다고 하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에 공감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약 2초 정도를 가는데, 물론 3초를 가는 대단한 분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돌아서면 또 다시 잊어버리는데, 그래서 "또 내 마음대로 살았구나. 미안하구만"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미안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안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미안합니다 ??

사실은 그렇게 '미안하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도 뭔가를 했다는 의미인데, 세상에서 그렇게 건방진 말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그 '미안하다' 는 말 뒤에 무엇이 숨어있습니까?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라는 것인데, 누가 말입니까? '내'가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 앞에서 그런 건방진 말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 야, 100점 짜리 시험지 내놔 !!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는 이미 100점 짜리 시험지를 만들어서 주셨는데, 이미 그렇게 100점을 맞아놓게 해주셨는데, 그래서 주님이 시험지를 빨리 내라고 하니까, 우리는 그 시험지를 들여다보면서, "아직 이것도 못 풀었고, 저것도 못 풀었는데" 라고 하면서, "주님,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했으면, 이미 다 이룬 것인데 말입니다. 즉 틀림없이 100점 짜리 시험지인데 말이다.

그렇게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라고 했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자기가 문제를 억지로 푼다고 지우개로 지우고 하면서, 그렇게 시험지를 다 찢어지게 만들어 놓고서는 "야, 내 인생이 정말로 억울하다. 원통하다. 예수를 믿고 나서 이익을 본 것이 없다" 라고 하면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인간들은 귀때기를 얻어맞아야 하는데, 그러니 빨리 시험지나 내놓으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100점 짜리 시험지를 말입니다.

◈ 걸레가 아닌 인생이 어디 있는가?

물론 시험지가 이 걸레가 되어도 괜찮은데, 점수만 100점이 나오면 된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걸레가 아닌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전부가 다 걸레라는 겁니다. 중광 돌중만 걸레가 아니고 말입니다(ㅋㅋ). 그런데 전부가 다 자기 인생인줄로 알고 "주여, 목회를 하다가 처음에는 30명이었는데, 이제 2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걸레와 같은 인생, 두 명이라도 남으면 그게 어디냐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인데, 만약에 100명이 모이면, 그것이 자기 교회가 됩니까? 전혀 아닌데, 오늘밤에 그 영혼을 데려가면 누구의 교회가 됩니까? 그러니 모든 것이 다 소용없는 짓이 아냐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밤에 남편을 데려가면 사모님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ㅋㅋ).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인데, 여자가 "나는 죽어도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믿느니, 차라리 이스마엘을 믿지 말입니다(ㅋㅋ). 사실 결혼을 하던 말던 다 마찬가지고,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 이제는 전혀 새로운 시대가 !!

그러니 사도바울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보고 어떤 행동을 조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이제는 아주 특별한 시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즉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그런 시대가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놀라운 변화가 '십자가' 라는 사건을 통해서 이미 확연하게 재정비된, 그런 전혀 다른 질서가 완전히 잡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두 가지 질서가 완전히 구별되었다는 것인데, 즉 다윗언약이 완성된 말씀의 세계와, 그것을 거부하는 세계가 나란히 놓여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첫 째날 강의를 마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와 모였으니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조금만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이의가 없지요? 아니면 빨리 마칠까요? 여기서 로마서 1장 7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롬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믿음이란, 주님의 실천력 !!

지금 사도바울이 '믿음' 이라는 말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끄집어서 내놓고, 그 다음에 믿음이라는 말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내가 믿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은 믿음도 아니고, "나는 누구의 것이 되었습니다" 라는 입장에서, 바로 그분의 실천력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믿음을 말할 때, 우리 것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믿음을 결코 우리 자신의 것으로 통하도록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죽은 자가 되었기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주님의 것임을 확인해주는, 그런 믿음으로 계속해서 연결시키려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믿음' 이라는 것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설정해놓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해놓고 믿음을 출발시킴으로서 말미암아서, 이 믿음이 우리 자신의 것으로 온다고 하는, 그러한 오류와 착각이 없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있다. 뭐하면 될까? 옳지 믿으면 되겠네" 라고 하는, 그런 믿음은 로마서에서 애시당초 인정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조작된 믿음이고, 자기 신념에 불과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그리스도의 것으로 가버리고 우리 자신의 것이 없다고 하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됩니까? 바로 '빚진 자' 라는 겁니다.

◈ 내가 '빚진 자'라 !!

그래서 1장 14절에서 "내가 빚진 자라" 라고 하는데, 사도바울이 누구에게 돈을 빌려 준 적도 없고, 또한 돈 꾼 적도 없는데, 그런데 이 '빚진 자' 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더 이상 내가 뭘 해야겠다는 계획이 내 선에서 나오는 것은 없어졌고, 이제는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있다" 라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주님이 다가서고자 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게 성도의 입장에서, 즉 누가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그것을 제가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 사도바울은 왜 로마에?

주님께서 이렇게 있는 'A' 라는 사람을 구원할지, 아니면 'B' 라는 사람을 구원할지, 아무튼 주님이 알아서 선택을 하겠지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간다는 것은, 즉 사도바울처럼 모르는 입장에서 로마에 가야한다는 것이, 그것이 무슨 의미이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서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달하는 하나의 우편배달부라고 할 수 있는데, 즉 고객에 대해서 철저하게 서비스를 해야할 '빚진 자' 라는 뜻인데, 즉 그들은 바로 우리의 손님이고 고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빚진 자' 라고 할 때는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분명히 택한 자가 있을 것이라는, 그 사실을 믿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마지막에 나오는데, 즉 사도바울이 난파선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말입니다. "야 바울아, 정신차려라. 너는 로마로 가서 해야할 일이 있어. 그러니 여기서는 안 죽게 되어있어. 너는 로마로 가야해"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로마로 가야한다는, 그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사도바울은 무엇을 느끼게 되겠습니까? "아하, 로마에 가면 나와 같이 구원될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를 보내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는구나" 라고, 그렇게 여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우리도 역시 '빚진 자'이기에 !!

그렇다면 아직까지 주님은 재림하지 않았는데, 즉 주님은 아직 구름을 타고 오시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아직 주님이 오시지 않았는데, 그런데 지금 이렇게 성도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도 역시 무엇입니까? 당연히 '빚진 자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미국에 가든, 프랑스를 가든, 영국에 가든, 아니면 대한민국의 서울에 있든지 간에, 그 어디를 가든지 간에 여러분의 임무는 단 이것 한 가지뿐인데, 즉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라는 데서 그치지를 말고, "나는 당신에 대해서 복음에 빚진 자이다" 라는 입장에서, 그렇게 나가야 된다는 이 말입니다.

◈ 믿음이란, '빚진 자'의 실천력 !!

바로 그런 실천력이 보여질 때, 그것을 두고 '믿음' 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

여기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복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라는 말보다도 더 강조하는 말이라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가 복음을 가지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고, "이미 복음이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 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를 나답게 했다" 라고 하는, 곧 '나' 라는 존재는 복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목사들이 목회를 하면서 고민거리가 있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 받는 것이 있는데, 그럴 때는 생각을 아주 간편하게 차분하게 정리정돈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완벽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을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성도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즉 복음만 전하면 되는데, 그 나머지는 우리가 행동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또한 가난하든지 말든지 간에, 그런 것들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는 겁니다. 그러니 반대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말입니다.

◈ 오직 복음만이 최고 !!

그래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오직 복음만이 최고이다" 라는 뜻이 되는데, 결국 "나에게는 복음이 전부이다" 라는 겁니다. 즉 "어차피 나는 복음 아니면 죽은 놈이고, 즉 복음 때문에 살았기 때문에, 나를 살리는 그 복음만이 나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는 유일한 것이다" 라고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이 사도바울이나 우리에게만이 아니고,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라고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 곧 믿음이다" 라는 형식으로 등장하는데, 즉 능력이 임했기에 믿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하나님의 의 - 구약에 있는 모든 말씀의 성취된 상태 !!

이것은 제대로 하려면 시편을 가지고 해야되는데, 일단 여기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데, 즉 '하나님의 의' 라는 것은 모든 말씀이 완료된 상태로서, 바로 그렇게 말씀성취의 상태를 '의'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구약에 있는 모든 말씀의 성취된 상태를 두고 '의'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구약 하박국에 있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 즉 '하나님의 의' 안에 포함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이미 완성된 것이니 말입니다.

지금 이 내용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다시 하겠는데, 즉 '하나님의 의' 라는 것은 구약의 모든 말씀, 즉 하박국에 있는 모든 말씀까지도 다 포함해서 완료된 것을 두고서 '하나님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9,017 자유게시판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3 로마서 최고관리자 10-05-11
열람 ➜ 자유게시판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2 로마서 최고관리자 10-05-11
9,015 자유게시판 다시 듣는 07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로마서1 로마서 최고관리자 10-05-11
9,014 우리교회 [일반] 예수님이 친히 목회하시는 교회 [일반] 최고관리자 10-05-11
9,013 묻고답하기 예수님이 친히 목회하시는 교회 - 최고관리자 10-05-11
9,012 자유게시판 027강-눅6장1-11(안식일의 의미)-luk100509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5-10
9,011 묻고답하기 신을 기만하고 신의 힘을 해체시킨다.. - 최고관리자 10-05-10
9,010 우리교회 주일학교 5월 9일 설교 - 최고관리자 10-05-09
9,009 우리교회 삼하 15: 7-12 (압살롬 쿠테타)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10-05-09
9,008 설교 누가복음 6장 1-11절 제목 : 안식일의 의미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5-09
9,007 묻고답하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 최고관리자 10-05-08
9,006 자유게시판 20100504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6-하나님 임재의 선물 [신학] 최고관리자 10-05-08
9,005 자유게시판 20100504a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6-하나님 임재의 선물 [신학] 최고관리자 10-05-08
9,004 강의 울산 5월 7일 출12장 강제적인 구별(빼돌리기)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0-05-08
9,003 자유게시판 [10 대구강의 5] - [피 23] - 죄악된 시간관과 70이레 [피] 최고관리자 10-05-06
9,002 자유게시판 061강-렘17장24-27(안식일거룩)-jer100505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0-05-06
9,001 우리교회 [일반] 5월 12일 방송 [방송] 최고관리자 10-05-05
9,000 우리교회 렘 17:24-27 (안식일 거룩)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0-05-05
8,999 강의 [헬레니즘 철학] - 최고관리자 10-05-05
8,998 우리교회 [일반] [헬레니즘 철학] -철학과 신학의 허상 시리즈 [철학] 최고관리자 10-05-05
8,997 강의 부산 5월 4일 강의 침멀리 06 구약신학 - 하나님 임재의 선물 p111 [신학] 최고관리자 10-05-04
8,996 묻고답하기 십자가가 만개한 날 (안식일)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5-04
8,995 우리교회 [주보] 십자가가 만개한 날 (안식일)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5-04
8,994 자유게시판 안산강의-요한일서03강-091211(나라교회, 이 근호목사)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10-05-04
8,993 자유게시판 서울100402빌3장10절 참된 사람이란(왜 죽어야만 하는가?) 빌립보서 최고관리자 10-05-0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