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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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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를 가까이 !!자유게시판신명기

야고보서를 가까이 !!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5)

2010 일일 울산 수련회 - 제1강
2010,04,10 강의 이근호, 녹취 한윤범

◈ 먼저 신명기 27장 말씀을 !!

이제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는데, 야고보서를 공부하기 이전에 먼저 신명기 27장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에 신명기라는 것이 있는데(ㅋㅋ), 27장 16절부터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7)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0)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1)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2)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3)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5)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저주를 받을 것이라 !!

신명기 28장 들어가기 전인 27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즉 26절에도 나오듯이,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들 알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나라라고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오히려 축복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무엇이 노골적으로 등장하느냐 하면, "왜 사람이 저주를 받는가?" 라고 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만이 그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겁니다. 즉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은 저주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축복이 오는 것이 아니고, 충분하게 저주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축복이 값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방금 이야기한 것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겠는데, 오늘은 앉아서 하기는 다 틀린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집단이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그러면 이 신명기 27장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이러 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 다음 28장에 보면, 축복을 받는다고 되어있고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저주를 받으면 받지 뭐. 저주를 받을게. 저주가 별 것인가?" 라고, 그렇게 나올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명기 28장에 보면 저주가 나오는데, 그것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저주가 기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먼저 신명기 28장에 저주가 어떻게 구체적인지, 그것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일단 신명기 28장 16절 이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 28: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신 28:17)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신 28: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신 28: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 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신 28: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
(신 28: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케 할 것이라
(신 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신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신 28:25)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
(신 28: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 자가 없을 것이며
(신 28: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료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신 28: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치시리니
(신 28:29) 소경이 어두운데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치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신 28: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이 잘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신 28:31)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아감을 당하여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대적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신 28:32)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알아봄으로 눈이 쇠하여지나 네 손에 능이 없을 것이며
(신 28:33)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신 28:34)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인하여 네가 미치리라
(신 28:35) 여호와께서 네 무릎과 다리를 쳐서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로 발하게 하여 발바닥으로 정수리까지 이르게 하시리라 …
(신 28:57)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 저주, 저주, 저주 !!

여기 28장 16절을 보면, 성읍이 저주을 받는데, 17절에서 구체적이란 겁니다. 즉 광주리와 떡 반죽이 저주받고, 그 다음에 18절에서, 자기 몸의 소생과 토지가 저주받고, 계속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21절부터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몸에 염병이 들게 하고, 22절에는, 폐병이 들게 하고, 또 재앙들이 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누가 오면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고, 26절에서는, 시체가 공중의 새들의 밥이 될 것이며, 그 다음에 27절에 보면,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치는데, 그런데 치료는 불가능하고, 28절에서는, 눈멂과 경심증, 29절에서는, 약탈을 당할 것이며, 30절에서는, 여자와 약혼을 했지만 다른 남자가 약혼자를 차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30절에서는, 집을 건축했으나 완공되지 못하고,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과실을 맺지 못하며, 31절에서는, 나귀를 다 빼앗기고, 33절에서는, 토지소산과 수고한 것을 알지 못하는 놈이 다 가져갈 것이며, 다른 민족에 압제를 받을 것이며, 35절에서는, 종기가 나게 될 것이며, 종기난 사람들 유의해야 되는데 말입니다(ㅋㅋ). 그 다음 38절에 보면, 종자를 심어도 메뚜기가 와서 다 먹을 것이며, 또 벌레가 일어서 소출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붕 뛰어서 54절을 지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서 특히 57절을 보면,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어떻게 합니까? 음식물이 없으니 자기 자식을 자기가 먹을 것이라고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 하나님의 율법의 구조 안에 놓여있어야 !!

방금 읽어본 이러한 저주와 저주들, 즉 "이러 이러한 것들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 라고 했을 때는, 그 이전에는 말씀에 신경을 쓰다가, 방금 신명기 28장에서 이러한 것들이 저주라고 하게 되면, 우리는 그만 화가 나서 그만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저주를 받게 됩니까?" 라고 따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주가 원인이 되고 그 결과가 28장에 나열이 되어있다고 한다면, 만약에 그 원인 편에 서 있다면, "그까짓 저주를 좀 받지 뭐" 라고 하다가, 그런데 결과 편에 섰으면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어서 우리에게 이런 저주를 퍼붓습니까?"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주를 받는 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율법의 구조 안에 놓여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 법인가? 가정인가?

방금 제가 강의를 시작해서 한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면, "내가 나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은 율법을 보호하는 것, 물론 이 율법이니 '법'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하나님은 "나의 법을 보호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이고 뜻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은 참으로 특이하고 희한한 민족임이 드러나는데, 보통 민족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자식을 낳으면, 그것을 뭐라고 합니까? 소위 '가정' 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런 가정은 어떤 관계인고 하니, 혈육적인 관계라는 말입니다.

◈ 인간은, 가정밖에 몰라 !!

그렇다면 그 가정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을 위해서, 또는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그렇게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모든 노력과 모든 정신을 기울여야만 하는데, 그렇게 혈육적인 것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 놓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두고 '인간' 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혈육 중심이고, 그런 혈육은 자식과 부모 관계가 기본 핵심이며, 거기에서부터 삼촌이나 동서, 올케 등등이 나오지만, 그러나 그 기본은 아버지와 자식인데, 그렇게 가족이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족이 기본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몸은 그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하고 애쓰고, 그렇게 여기에 투자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것은 바로 이방민족, 즉 이방나라에서 누구나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을 찾고, 부처를 찾고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데, 어느 누구나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 흩어진 열두 지파 !!

그런데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야고보서' 인데, 이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율법의 구조라는 겁니다. 우리가 야고보서를 공부하려면, 먼저 야고보서 1장 1절에 보면 "흩어진 열두 지파" 라고 되어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강의교재를 이미 다 읽어 오셨지요? 제가 십자가 마을에 올려놓았는데, 물론 그렇게 매끄러운 문장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읽지 않은 분은 없지 싶은데,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냐는 겁니다(ㅋㅋ).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 12지파, 즉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여기에 보면, 야고보가 이 편지를 누구에게 주었느냐 하면,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열두 지파를 뭉치면 이스라엘인데,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무엇인고 하니, 항상 이방민족과는 다른 양식으로 존재하는 나라라는 겁니다.

이렇게 이방민족과 다르다는 말은, 즉 "다른 민족은 저렇게 살아가는데, 그런데 흩어진 열두 지파인 이스라엘은 이렇게 살아간다" 라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는 야고보서가 그렇게 시작이 된다는 말입니다.

◈ 이스라엘은,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유일한 민족 !!

그래서 이 이스라엘이 무엇이지, 그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제가 신명기 27장과 28장을 먼저 거론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펴보니까, 보통 이방민족은 자기 가족과 혈육적인 것에 신경을 쓰는데 반해서, 이스라엘은 무엇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야 할 보통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왔던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보다 법이 먼저고,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그 법을, 이 세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서 유일하게 이스라엘만이 하나의 그릇이 되어서, 거기에 담아서 보여주는 나라가 곧 흩어진 열두 지파, 즉 이스라엘이며, 그것이 오늘날에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있다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아하, 나는 말씀의 결과물로서 !!

그러면 이 야고보서를 보기 이전에 우리는 어디에서 떠나야만 합니까? "내 가족 중심, 나 중심, 나는 나를 보호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거야" 라는 생각에서, 도대체 무엇을 벗어버려야 됩니까? "나는 내가 원인이 되어서 어떤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의 능력에 의한 하나의 결과물로서 여기에 있다" 라고 여겨야 한다는 겁니다. 즉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펜션에 모여있는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 여기 펜션에 모여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즉 "아하, 이것이 바로 그 무서운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로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여 있다고 하면,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흩어진 열두 지파에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해서, 맛있는 저녁식사만 생각하면서 모인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방금 제가 한 말, 즉 "내가 법을 지키겠습니다" 라는 말과 이게 서로 같은 말입니까? 아니라면 틀린 말입니까? 전혀 다른 말인데, 즉 "내가 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겠다" 라는 뜻이 아니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결과물로 생겼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고 하니, 다시 말씀을 드리면 "내가 나를 보호하듯이 평생을 보호할 수 없고, 니가 지키고 보호해 줄 것은 따로 있다. 즉 하나님의 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너는 이 땅에 사명을 띠고서 태어났다" 라는 것이, 그것이 바로 이 야고보서에 나오는 첫 번째 의미라는 말입니다.

◈ 이제 야고보서 본문을 살펴보겠는데 !!

이제 야고보서 본문을 보겠는데, 여기 1절에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 1절서, 이렇게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를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누구로 제시합니까? 구심점을 말입니다.

그 구심점을 몸무게로 해서, 즉 서로 동일한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열두 지파라고 할까요? 아니면 키로 그렇게 할까요? 남성이면 남성끼리, 여성이면 여성끼리, 그렇게 끼리끼리 알아서 결정을 하는 것입니까?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 구심점 -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

다시 말해서, 지금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를 모을 수 있는 그 구심점을 여기 1장 1절에서는 무엇으로 제공을 하느냐는 겁니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의견 말고, 즉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숨쉬고 먹고 살아가기도 힘들어하는데, 그런 세상에서 우리의 뜻 말고,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지금부터는 제가 야고보의 뜻을 지금부터 이야기해 드리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 그러면 왜 흩어져 있는가?

야고보의 뜻은 한 마디로 말해서 "흩어져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은 하나의 결과로서, 즉 그 원인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데, 그렇게 예수님 때문에 발생된 결과물로서 흩어져 있는 것이 곧 '열두 지파' 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러한 야고보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즉 "내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 되고,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한다" 라는 생각하고, 그 사고방식 자체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 '내'가 '나'를 보호하는 !!

다시 말해서, "내가 여기에 있는데, 내가 죽어서 좋은데 가겠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보호하는 정도가 아니고, 죽어서도 좋은데 가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 그렇게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 가려고 하는 것이 "내가 나를 보호하는 전형적인 방식" 라고 말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무엇이 무엇을" 이라고 하는, 즉 '나' 라는 것이 주어가 되고, 또한 '나' 라는 것이 목적어가 되는데, 물론 그 사이에 행함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은, 그 행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행함은 주어와 목적어가, 즉 "누가 누구를 시키셔,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라는 것인데, 이런 것은 전부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에서 빠져버린다는 겁니다. 여기에다가 무엇을 집어넣느냐 하면, 법이 들어가고, 이 법은 반드시 행함으로 등장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 예찬아, 일어나야지 !!

예를 들어서, 우리가 평소에 아침에 아이들이 늦잠을 자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말로 합니까? 그래도 계속해서 자면, 흔들어 깨운다는 겁니다. 즉 "야, 일어나" 라고 하면서 강제로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식이 지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즉 남이 자식이 아닌 자기 자식을 학교에 빨리 등교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그 사이에 부모의 행함이 개입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의 행함이 개입되어서 아이를 강제로 일으켜서 학교에 보내듯이,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 예수님께서 자신의 법을 이루기 위해서, 거기에 행함이 동원된다는 겁니다. 이 야고보서는 바로 "그 행함을 보여라" 라고, 즉 "그 행함으로 니가 믿는 지를 보겠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내가 믿습니다 ??

그런데 만약에 "내가 믿습니다" 하면, 그 주어인 '내'가 믿을만한 걸 골라서 믿는 것이 되어버리는데, 그러니 그렇게 "내가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행함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어디까지 말입니까? 나중에 죽어서 좋은데 가려고, 즉 천국에까지도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를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어떤 강제성을 발휘하는 것",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너는 믿는 자 되어야만 해. 믿고 있지. 그렇지? 믿고 있지" 라는 것인데,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 재촉하고 책망하고 독촉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제도 믿었지만 오늘도 믿어야 돼. 나는 믿어야만 돼. 그래야만 구원을 받아" 라고 하는 것은 전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즉 '내'가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는 이웃사랑도 안 되고, 주님께 영광도 되지 않고, 또한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도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교인을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제 아무리 모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흩어진 열두 지파"가 아니라 그냥 정체성인데, 즉 '기독교' 라는 유대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감은 돈 문제가 끼어 들면 그냥 다 깨어지는데, 교회 안에 돈 문제가 그만 불거지면 유대감이 뭐고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돈을 빌려줬잖아. 집사님, 그런데 왜 돈을 안 갚습니까?" 라고, 그렇게 나오면 다 깨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 다시 신명기 27장을 !!

여러분이 일단 이해를 했다고 치고, 아까 본 신명기 27장을 다시 하겠는데, 여기 신명기 27장을 보면 축복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즉 "만약 이렇게 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저주를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분이 원인이 되고, 우리는 저주받는 자체로서 결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저주를 주면 그냥 저주를 받는데, 물론 축복을 주면 그냥 축복을 받는 것이고 말입니다.

◈ 이스라엘은 일종의 모종밭 !!

그러니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행함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행함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땅콩을 모종할 때, 그 모종밭에다 씨앗을 뿌리고 나중에 봄이 되면 싹이 거기서 나는데, 그처럼 주님의 행위를 뿌려놓으니까, 어떤 것은 저주가 올라오고, 어떤 것은 축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될 때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됩니까? 정말이지 이스라엘다운 이스라엘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필리핀이나 노르웨이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한 것이 아니고, 물론 대한민국도 아니고 말입니다. 바로 그것을 열두 지파에게, 즉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민족에게만 하셨다는 말입니다.

◈ 두 가지 사고방식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

그렇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열두 지파에게 있어서,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을 다른 민족과는 달리 무엇을 살펴보아야 되는고 하면, 혈육적인 것, 즉 "내가 원인이 되어서, 나에게 결과가 주어지는 것" 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어떤 원인이 되어서 나에게 결과로 주어졌다는 것", 바로 이 두 가지가 서로 대비되고 서로 충돌되는, 그런 두 가지 사고방식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렇게 양쪽을 다 보여줘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렇게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도, 바로 그런 원칙 속에 저와 여러분들이 동일하게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열두 지파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그렇고 말입니다.

◈ 이스라엘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원인이 되어서 !!

그런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물론 "하나님이 원인이다" 라는 말은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원인이 되어서, 즉 다른 민족에게는 일어나지를 않는데, 왜 유독 이스라엘만큼은 자기 자신들이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원인이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마치 모종밭처럼, 즉 저주를 뿌리면 저주가 일어나고, 또한 축복을 뿌리면 축복이 피어난다는 겁니다. 왜 하필이면 그런 일이 그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왜 얼어나는지, 아직까지 그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여기 이렇게 열두 지파가 있는데, 이것을 한 곳에 모았을 때 그게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인데, 그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이 4글자이지만, 이전에 처음 이름은 원래 2글자였다는 겁니다. 바로 '야곱' 이었는데, 즉 야곱이 이름이 바뀌어서 이스라엘 되고, 여기서 열두 지파가 나왔다고 하면, 이 야곱에게 담겨있는 하나님의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이 열두 지파까지 파급되고 퍼져나간다는 말입니다.

◈ 야곱은, 하나의 텅 빈 무대 !!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이 무엇인고 하니, 즉 왜 이스라엘이 축복과 저주를 보여주는 모종판이 되어야 하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야곱에게 달려있는데, 이 야곱이 태어날 때에 없는데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즉 야곱은 하나의 텅 빈 무대라는 겁니다. 여기가 무대라고 하면, 커튼이 있고 무대 뒤편에서 배우가 나오는데, 물론 마이크와 조명도 이렇게 달려있고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거기에서 배우가 등장하게 되면, 그 사람이 바로 야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이 등장할 때는 혼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더 등장을 하는데, 그래서 두 명이 되는데, 즉 쌍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이 쌍둥이가 바로 모든 우주 삼라만상의 비밀이라는 겁니다.

◈ 서로 싸우는 쌍둥이의 등장 !!

이 야곱과 에서가 나타나기 전에 사회자가 말하기를 "이제부터 하나님의 계획인데, 그것이 여러분이 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 펼쳐집니다. 자, 나오세요!" 라고 했을 때, 관객들은 한 사람이 나올 줄로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쌍둥이가 등장하는데, 그것도 서로 마주보면서 싸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승자에게는 축복이 돌아가고, 패자에게 저주가 돌아가는 식으로, 즉 하나님께서 원인이 되어서, 그 원인자인 하나님께서 축복과 저주를 보여주는 무대장치를 마련했다는 겁니다. 이 무대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되는데, 즉 '이스라엘' 이라는 무대에 원래는 주인공이 없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없던 주인공이 등장하니까, 승자는 축복을 받고, 패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 신명기 28장 - 너무나도 촘촘한 저주 !!

아직까지 이 시점에서는 무엇이 축복인지 무엇이 저주인지,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아까 신명기 28장에서 보았듯이 무엇이 저주였습니까? 거기서는 드러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몸, 그리고 평소에 노동하는 그 현장과 이 몸에 대한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등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아주 촘촘하게 심판을 내린다는 겁니다. 차라리 죽여 버렸으면 더 좋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저주'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살고자 하는 힘과 죽이고자 하는 힘, 그 양쪽이 다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현장을 저주로서 보여주는 겁니다. 즉 아버지가 자기 다리에서 나온 자식을 자기가 잡아먹을 때, 그것을 저주라고 했다는 겁니다. 참 엽기적인 내용인데, 신명기 28장 58절에서 분명히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신명기 28장을 촘촘히 보지 않는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그렇게 축복만 하고 끝낸다는 겁니다. 목사가 심방을 가서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을 하나의 예언으로 보기 때문에, 즉 말이 씨가 된다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 나는 100살도 못 되어서 죽을 거야 ??

제가 여기에 오면서 어느 가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박사교회에 다니던 전에 알던 집사님 댁인데 말입니다. 그 윗집도 박사교회에 다니는데, 그분이 평소에 "나는 70도 못 되어서 죽을 거야" 라고 하다가, 그만 67이 되어서 죽었다는 겁니다. 즉 말이 씨가 되어 죽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 소리를 듣고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나는 100살도 못 되어서 죽을 거야"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99살까지는 살지 싶어서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축복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던 축복을 받게 되어있고, 또 저주를 이야기하면 아무리 피해도 따라가면서 저주를 받게 되어있다고 하는, 그러한 운명을 보통 예언이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말씀의 위력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튼 야곱과 에서가 등장할 때, 저주의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그러나 저주라고 하는 것은 살고자 하는데 있어서 만만치 않은 것, 물론 여기에서는 고통과 수고와 슬픔 등이 나오는데, 보통 그런 것을 저주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그럴 바에는 하나님께서 아예 그런 인간을 죽이면 되는데, 그런데 절대 죽이지 않고 살려두니까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자기도 그만 살고자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살고자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살아야 되니까, 내가 원인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저주라는 것은, 아담이 죄를 짓고 난 뒤에 보편적인 모든 인간에게 다 해당이 된다는 말입니다.

◈ 저주성 때문에 싸우는데 !!

그렇게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에게 해당이 된다고 하면, 그러면 쌍둥이가 이렇게 싸운다고 하는 것은, 그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그 저주성 때문에 싸운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축복이라는 것은 둘 다 해당이 안 되고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 싸우는 것은 아버지의 축복을 보다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서, 쉽게 말하면, "내가 너보다 편하고 풍족하게 더 살고 싶어" 라는, 그러한 복을 따내기 위해서 쌍둥이끼리 싸운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싸우면 승자와 패자가 결국 갈라지게 되는데, 즉 승자는 축복을 받고, 패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쪽은 승자가 되고, 한쪽은 패자가 되는 원인은 무엇인고 하니,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나' 자신이 저 사람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그 행위가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 라는 것이란 말입니다.

◈ 난, 너를 사랑해 !!

다시 말해서, 똑같이 둘 다 밥을 먹고 살아보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한쪽은 일이 안 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그것은 주님께서 미워하기 때문에 그렇고, 그리고 다른 한쪽은 어떻습니까? 자기의 행동과 전혀 상관없이 자꾸 복을 받게 되어있는데, 왜 그런고 하니, 주님이 사랑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고 하니, 인간의 행함이란 아래층 위에는 사랑과 미움의 층이 따로 있어서, 즉 행함과 상관없이 사랑을 줄 자에게는 사랑을 주고, 미움을 줄 자에게 미움을 준다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여기 아래층에 있는 쌍둥이는 아직까지 둘 다 모르고 말입니다.

◈ 오히려, 지팡이가 모세를 데리고 놀아 !!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가 칼을 들고 설쳤는데, 그런데 전쟁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칼 솜씨와는 전혀 상관없이, 산 위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들면 승리하고, 또한 모세가 지팡이를 내리면 그만 패배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는 모세만 보이게 되었는데, 하지만 사실은 모세가 지팡이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지팡이가 모세를 데리고 논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승리토록 하면 승리하고, 패배토록 하면 패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민족이 바로 흩어진 열두 지파, 즉 과거의 이스라엘이고 오늘날의 교회를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성경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데, 즉 "사랑이냐? 미움이냐?", 혹은 "미움이냐? 사랑이냐?" 라고 하는, 여기에서 결판이 난다는 겁니다.

◈ 아로마 향기와 같은 !!

그래서 여러분은 벌써 야고보서의 결론부분에 이미 접촉을 했는데, 여러분이 율법을 대할 때 "제가 무엇이관데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라고 하면서 대한다면, 그것이 곧 율법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율법을 지켜야지" 라고 하면서, 그 행위의 원인을 '나'에게 둔다면, 그것은 자기가 살려고 하는, 즉 죽어서도 좋은데 가려고 싸우는 꼴밖에 안 되는데, 그러니 그런 것은 전혀 축복과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제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덕분입니다" 라는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아로마 향기와 같은 사랑의 발산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모든 율법의 완성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아로마 향기를 맡아보셨지요? 헤이즐넛 향기밖에 몰라요?(ㅋㅋ)

◈ 저주란, 원인 자체를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 !!

그런데 그렇지가 않고 "법이 왔는가? 그러면 내가 이것을 지켜서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겠다" 라고 설치게 되면, 이미 그것은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원인 자체가 자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그러니 그런 사람은 제 아무리 애를 써도, 항상 자기 실적과 업적을 자꾸만 검토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만큼 열심히 기도를 했으니, 어느 정도는 챙겼겠지" 라고 하면서, 그렇게 자꾸만 자기가 원인이 되니까, 어떤 결과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면 그 원인수정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이 언제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 '나와 너' 라는 관계에서 빠져 나와야 !!

그것을 조금 고상하게 이야기한다면, "기존관계에서 빠져 나와라"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얽히고 설킨 기존 관계에서 우리 흩어진 열두 지파는,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빠져 나오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빠져 나오는 방법이 바로 야고보서에 마지막 5장에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는데 그만 품삯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고용주가 다 가져가고 노동자에게 품삯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니까, 이 야고보서에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다는 겁니다. 즉 조금만 참으면 심판주가 문 앞에 있으니까, 즉 주께서 다시 오시게 되면 그런 모든 고통과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말입니다. 즉 그것이 빠져 나오는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지상에 있는 고용자와 사용자의 기존관계에서 빠져 나와서 누구에게 맡기라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하실 일에 맡겨라" 라는 겁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더 어렵지 싶은데, 왜냐하면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 말이 안 되니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까, '나와 너'의 관계에서 벗어나서, 그러한 '나와 너' 사이에 무엇을 집어넣으라는 겁니까? 만약에 우리가 흩어진 열두 지파라고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 사이에 집어넣으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분이 현재 '나'를 구원해주신 '원인자'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원인자'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의하면 일방적인 사랑의 대상으로서, 즉 그냥 그 어디를 가도 사랑을 받기로 되어있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은 기존의 '나와 너' 라고 하는, 그런 일대일의 직접적 관계에서 빠져 나오게 되면, 그렇게 되면 원인자에게 예속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 야고보서의 주제 - 주님의 사랑을 율법으로 !!

그러면 이 야고보서의 내용은 뭐냐 하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가 도대체 어떤 관계로 되어있기에, 바로 그것이 사랑이 되는지를, 그것을 율법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 이 야고보서의 주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율법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하게 되는데,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 사랑의 증거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겁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의 증거인데, 그러니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고보서 2장 1절을 누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약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사랑의 증거 !!

여기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믿는 너희' 라는 것은 열두 지파인데, 그러니 이미 야곱처럼 사랑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 사랑이 원인이 되어서 현재 우리라는 결과물이 나왔는데, 그런데 그 사이에 어떠한 것들을 사랑으로서 모종을 부어놓았는지, "이것이 사랑, 저것도 사랑, 요것도 사랑" 이라고 하면서, 온 천지에 사랑이 마구 올라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의 싹이 그야말로 모종판의 모종처럼 그렇게 새파랗게 올라온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사랑을,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랑인지를 율법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야고보서의 주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참 쉽죠잉(??).

◈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맙시다 !!

여기서 좀 더 나가보겠는데, 이제는 골치 아프지 싶은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결론부분에는 접촉했는데, 그런데 그 과정이 복잡하다는 겁니다. 아까 사랑을 할 때는 반드시 무엇과 관련이 되어있다고 했습니까? 반드시 미움이 관련되어서 사랑이 나오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 원인자가 곧 '나'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했기에 이런 것이 주어졌을까?" 라고, 반드시 그렇게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3 학생이 모의고사를 치는데 시험문제가 자기가 다 아는 것만 나왔다고 하면, 평소에는 일등을 할 아이가 아닌데 그만 자기 반에서 일등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내가 아는 문제만 냈을까?" 라고 의아해하면서도, "아마 내가 평소에 선생님에게 잘해서 그런가봐" 라고, 그렇게 여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은 어떠한고 하니,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시험문제를 냈는데, 그런데 그 학생이 그만 다 알아 맞추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럴 때는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와 같이, 이 야고보서 특징을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맙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나'에게 율법이 감겨 있어서, 사랑의 전기 에너지가 !!

그렇다면 '나' 라고 하는 것 안에 도대체 무엇이 둘둘 감겨 있어서 그러한고 하면, 마치 철 막대기에 구리선을 감으면 전기가 생기듯이, 이 '나' 라는 자석 막대기에다 코일을 감으면 전기가 발생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 라는 것에 율법이 감겨 있어서, 그 율법이 완성되면 사랑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사랑이란 전기 에너지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법을 주게 되면, '나' 라는 것은 사랑이란 율법에 의해서 감겨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눈뜨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나' 라는 주체는 그만 사라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나'가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 자기 자신이 안개라는 생각이 든다면 !!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두고 안개라고 하는데, 즉 우리가 잠깐만 있다가 없어지는 물방울, 즉 우리는 있으나마나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정말이지 의미 없는 하나의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물방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 법에 감겨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이 안 드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우리의 주체가, 즉 죽었던 주체가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이여, 제가 무엇을 하면 이 도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약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저는 안개가 되기 싫어요 ??

그렇게 우리는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을 보지 않으니까,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감겨야 되는데, 그런데 아무 것도 감긴 것도 없이, 그냥 맹탕이라는 겁니다. 물론 감긴 것이 있기는 있는데, 자식새끼들, 또한 시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지긋지긋한 남편과의 관계 등등, 그런 관계에 감겨있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율법에 의해서 감기질 않으니까, 즉 자기가 생생하게 살아있으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자기를 안개라고 하면 그 안개를 거부한다는 겁니다. 즉 "저는 안개가 되기 싫어요"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것을 주님이 아시는데, 우리는 안개가 되기 싫어하는 줄을 말입니다. 그렇게 잘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원인을 찾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사랑이란 것을 방금 쉽게 이야기했지만,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려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야고보서의 이런 구조 자체를 누가 반발하느냐 하면, 오늘날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소위 그래도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 자신이 극구 자꾸만 밀어낸다는 것입니다. 즉 "그런 구조 안에 있는 내가 되기 싫어요. 나는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야고보서 2장에 보면 뭐가 있는고 하면, "세상과 벗하는 자들아, 너희는 하나님의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한다는 겁니다. 또 그런 배경이 있다는 겁니다. 마치 코일처럼, DNA 구조처럼 둘둘 감겨있으니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칭칭 감겨있는데, 이 부분은 "너희는 안개니라" 라고 하고, 또 여기 이 부분은 "세상과 짝하고 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라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하지만 우리는 용서를 받았잖아요?" 라고 하면, 여기 아래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는 부분이 또 나온다는 말입니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것들이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고 전부가 한 줄로 이어져있는데, 그 줄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인데,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너희에게 주어졌음으로, 너희 현재 구조는 단독적인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의해서 둘둘 감겨져 있다" 라는 겁니다.

◈ 쌍둥이를 찾습니다 !!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아야 됩니까? 이것이 감겨지지 않은 사람이 받을 저주, 즉 하나님의 미움, 이것을 겸하여 같이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곱이라 사람이 축복이란 개념을 알려면, 자기는 반드시 쌍둥이를 찾아야 하는데, 그래도 우리도 우리의 쌍둥이를 찾아야 하는데, 사실 이러한 쌍둥이는 찾기 쉽다는 겁니다.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쌍둥이가 있는데, 여기 보문단지에 나가면 벚꽃 구경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세상구경을 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의 쌍둥이인데, 어떤 유명한 사람은 그것을 '그림자' 라고 했는데, 즉 우리의 어두움, 그것이 곧 우리의 그림자라는 겁니다. 즉 우리가 이렇게 있다고 하면,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마치 쌍둥이 같이 따라붙는 것이 바로 우리의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 그림자는 되려 점점 더 짙어질 뿐 !!

이 그림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우리가 미국에 가고, 영국으로 가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어두움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쌍둥이라고 해도 되고, 또한 그림자라고 해도 되는데, 그렇게 양쪽에 다 해당되는데, 즉 쌍둥이니까 붙어있는 이런 몸도 가능하고, 또는 여기에 이렇게 있으면 평생을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라고 해도 되고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성화론이 성립이 되겠습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성화가 된다고 해서, 점점 더 그림자가 옅어지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90이 되고 그 얼마가 되더라도, 항상 그림자는 오히려 길게 늘어뜨리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산 위에 올라가서 내신성적이 이만큼 되었다고 해도, 그림자는 되려 점점 더 짙어질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만큼 성숙되었다" 라고 하면, 우리는 인간은 오히려 그것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차라리 그렇게 성숙되기 이전에는, 그야말로 개판 같은 인생이라고 여겼다면, 그런 자기 과거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고, 즉 "나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잘라내고 싶어했지만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리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자기가 착하다고 여기게 되면, 즉 2008년도부터 2010년까지 계속 착해보라는 겁니다. 그것을 아까워서 어떻게 그런 성과를 떼어낸다는 말입니까? 절대로 떼어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전부가 다 무엇인고 하니, "내가 원인이 되어서, 이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라는 자기의 축복과 저주, 즉 이방나라적인 요소가 계속해서 붙는다는 말입니다.

◈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

그래서 이 야고보를 해석하려면, 이러한 사랑과 미움, 미움과 사랑, 즉 우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그런 양쪽의 경우를 모두 다 설명해줘야 된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야고보서 자체가 기가 막히게 짝을 맞춰준다는 말입니다. 그런 짝 중에서 하나를 살펴보면, 야고보서 1장 8절 누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여기에 보면 우리의 어두운 면이 나오는데, 즉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어두움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자기가 원인이 되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랑이 취소가 되는 겁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랑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저주와 짝을 이뤄야만 사랑이 사랑답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사랑이란 미움과 짝이 될 때 사랑의 값을 하고, 또한 축복이란 것도 바로 저주와 관련이 되어있을 때, 그 축복이 축복으로서 부각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8절에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자기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자기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해서, 그래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 저주받은 사람의 특징은?

그러니까 저주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면, 항상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겁니다. 즉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렸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라고 하면서, 그렇게 자기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서 일이 엉망으로 되었다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이며, 저주가 무엇이지를 보여주는, 즉 "아하, 이런 것이 저주구나. 이런 것이 축복이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바탕화면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모종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에서가 아니고 야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차원에 들어가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그런데 그만 '에서'의 차원에 들어가 보면, 계속해서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게 되는데, 물론 해결점도 전혀 없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찾고만 있다는 말입니다.

◈ 처음부터 새로 다시 !!

(이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옴. 과연 누굴까?) 차가 많이 밀리지요? 늦게 오셨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들으신 분은 복습 삼아서 정리를 하면 되고 말입니다.

신명기 27장에서 하나님이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화답을 했습니까? "아멘!" 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어떤 경우인고 하니, 하나님이 함께 있기 때문에 발생한, 그야말로 이스라엘이 유일한 민족이고, 결코 다른 민족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생각은 무엇인고 하니, "아니, 사랑을 받았는데, 굳이 저주 이야기를 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능상 저주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서, 자꾸 저주가 떨어져나가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우리는 우리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흩어진 열두 지파의 속성상, 반드시 축복을 이야기하려면 저주를 이야기해야 되고, 또한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미움을 이야기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두 가지가 모두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복 받는 것이 내가 원인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는 겁니다.

◈ 저주를 받을지어다. 아멘 !!

그래서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그렇게 '아멘' 이라고 했다고 해서 저주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서, 자기는 저주를 받아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날마다 깨우치는, 그런 유일한 구원받은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그만 성경을 찢어버리려고 하는데, 즉 "성경이라는 옛날 신화책으로 나에게 부담을 주려고 하느냐?" 라고 하면서 외면을 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받을지어다. 아멘" 라고 하는,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래서 '아멘'으로 받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 축복과 저주의 원인을 '율법관계'에서 !!

그런 점에서 구약과 야고보서가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물론 굉장히 어렵지만 말입니다. 바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축복과 저주의 원인이 스스로 자기가 축복을 받을 짓을 해서 받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저주도 그러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인간도 자기 행함으로는 저주를 받아야만 되는 것이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 어떤 행함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아까 설명을 다 했는데, 즉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을 받는 자는 이런 행함의 차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하, 주님의 사랑 때문에 복을 받았구나"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 사람은 저런 행동 때문에 저주받고, 나는 나의 이런 행동 때문에 복을 받는다" 라는 것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복을 받는 것은 오직 사랑 때문에 복을 받고, 저 인간이 저주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필히 미워하기 위해서 저주를 받는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사람은, 그런 사랑의 차원에 눈이 감기도록, 즉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말씀의 축복이 들리지 않도록, 수용되지 않도록, 믿음이 생기지 않도록, 그렇게 계속해서 조치를 해주신다는 겁니다. 바로 그러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 원인의 관계를 이 야고보서에서는 '율법관계'로서 표현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지난 40분 동안 강의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맞지요?

◈ 야고보서 - 지혜, 구조 !!

그렇게 되면 구약성경과 야고보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구약도 율법중심, 야고보서라는 신약도 율법 중심, 그러면 차이점이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아까 제가 이야기했는데, 우리 인간 속에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율법이 칭칭 감겨져있다고 말입니다.

야고보서는 그것을 두고 '지혜' 라고 하는데, 이 지혜는 그 특징이 첫째는 하늘에서 내려오도록 되어있고, 두 번째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이것이 중요한데, 즉 '구조' 라는 겁니다. 즉 "구조적으로 짜여져 있다" 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영화를 보면 나오는데, 일종의 보안장치로서, 레이저 광선인데 말입니다. 왜 아주 귀중한 보물이 있는데, 즉 모나리자와 같은 그림이나 세계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를 도둑놈이 훔치려고 할 때, 그냥 눈으로 보면 맹탕이지만 안경을 끼고 보면 선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것이 '미션 임파서블' 이란 영화에 보면 나오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 중앙에 엄청난 다이아몬드가 있고, 그 옆에는 광선들이 거미줄처럼 있다는 겁니다. '안젤리나 졸리' 라는 여배우는 아주 유연성이 있어서 그 광선들을 피해서 기어이 물건을 훔쳐내고 말입니다.

◈ 지혜의 특징 - 폭발, 폭발, 폭발 !!

그와 같이, 이 지혜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야고보서 1장에서는 먼저 하늘에서 내려오고, 두 번째는 이것이 구조적이라서, 즉 건드리면 그만 폭발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온 천지가 구조로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전체가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까 야고보서 4장에서 "우리 인생은 안개이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안개와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내가 왜 안개냐?" 라고, 그렇게 나오면 폭발하도록 되어있다는 겁니다. "어느 도시에서 내가 장사해서 이득을 보리라" 라는 것도, 역시 폭발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면, 야고보서 4장 15절에 있는 말씀을 봐야 되는데, 즉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라고 했을 때, 정말이지 그렇게 했을 때는 졸리처럼 우리가 레이저 광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약 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 오우 노, 미션 임파서블 !!

그런데 우리가 하루 24시간 가운데,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리니" 라고, 그렇게 몇 번을 생각하십니까?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말입니다(ㅋㅋ). "죽기도 하리라" 라는 것은 아예 없다는 겁니다. 우리 머리에는 그런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매일같이 우리는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이렇게 살자" 라고 하는, 그렇게 사는 것만 있지, "여보, 주의 뜻이면 죽읍시다" 라고 하는 말을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인데, 즉 우리는 그 레이저 광선에 모두가 다 걸린다는 말입니다. 전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미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감싸고 있는 말씀의 구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어떤 때는 착각해서 자기가 홀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사건을 주셔서, 즉 이런 구조, 즉 우리가 법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 법이 곧 사랑인데, 그것을 야고보서는 '거울' 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잠시, 거울 이야기를 !!

거울 이야기를 하려면 골치가 아픈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라는 동화가 동원되어야 하고, 여기서 그것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러나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좀 해야되겠는데, 그것만하고 10분을 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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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