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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내 아들아!묻고답하기마태복음

내 아들아!

이름 : 김성환(IP:121.137.115.171)

하나님은 아들의 소리를 들으셨다.

죽지 말아야 할 아들의 십자가 절규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내 아들아 왜 죽어야만 했니?'

'넌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아도 될 내 아들인데 왜 죽어야만 했니?'

하고 하나님의 아픔이 하늘과 땅에 전달된다.

'내 아들을 살려 내거라! 이 죄인들아' 하시며 대자연과 우주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함친다.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찢어 버린 아들의 피의 외침이 온 대지와 우주를 서늘하게 했다.

'이 소리가 누구의 소리인가?' 하고 죄인들은 눈치를 채기 시작한다.

(마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그분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어! 우리가 그분을 대신하여 저 십자가에서 저주받아야 했는데!'

하고 죄인들은 하나님의 아픔의 고동소리를 듣는다.

하나님의 장자였고 아들이었고 첫 열매였고 인자였고 의인이었던 그분이 살이 찢겨 떨어져 나가고 피를 쏟으셔야만 했던 아픔을 하나님은 하늘에서 홀로 지켜 보아야만 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천군천사를 파견하여 모든 세상을 '무'로 돌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하늘보좌에서 하나님은 인내하셔야만 했다.

이건 언약에 모든 것을 내건 하나님의 최대 실수였다.

구속의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단 한번의 실수였다.

그러나 바보같은 아들은 묵묵히 자신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최대의 실수의 현장으로 걸어가셨다.

그 길만이 아버지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기에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죽음의 자리로 머리를 들이 미셨다.

이것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내 아들은 나의 실수로 죽었어!'하시며 하늘에서 천둥으로 탄식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만 있었다.

세상만사 우주만물의 피조물은 그분에게 없는 것이었다.

'무'였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챙기고 다른 도시로 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은 아버지안에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였다.

어찌보면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자신과 아버지를 두고 말씀한 것 밖에 없다.

하나님이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 부르신 것도 모두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의 이름이었다.

(시 81:8, 개역)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시 81:11, 개역)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받으셨다.

만일 이스라엘이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눈에 인식되지 않았다면이 죄를 돌격하는 하나님의 분노의 불탔을 것이다.

성도라 칭하는 하나님의 자녀도 예수님으로 받으신다.

이것이 무슨 이단성 발언인가! 말하겠지만 하나님은 성도를 예수님으로 보신다.

자신의 아들의 피 소리가 하나님 귓전에 들리는 자만 예수님으로 받으신다.

예나 지금도 그 방식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장자이시고 힘이신 예수 이외에는 상대하지 않으신다.

왜 그런가?

자신의 존재가 있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에 없는 자로 보시기 때문이다.

'내 아들 예수 어디있어? 내 힘과 찬송 어디 있어? 라고 하나님은 말씀할 뿐이다.

(출 15:2, 개역)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예수님의 피의 영이 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거룩한 그 이름, 여호와 하나님!

지극히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자신의 힘과 찬송이신 예수님만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의 영이 임한 자만 부를 수 있는 거룩한 이름이다.

죄인에게는 예수의 피의 이름만 있을 뿐이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피의 이름만 있을 뿐이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사회에도 국가에도 세계에도 자연에도 우주에도 지옥에도 천국에도 예수님의 피의 이름만 하나님께 거룩한 향기로 흠향될 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예수님의 피의 이름이 없는 나! 너! 우리! 교회! 국가! 세계! 우주! 는 하나님의 사전에는 없다.

비록 그들 모두 예수님의 피의 이름으로 덮혀져 있으나 '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을 뿐.

나도 그들중 한 무리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원래부터 없는 나였다.

그리고 '무'였다.

'무'라고 말하는 내가 숨쉬고 있으니 이것도 하나님께 '죄'다.

'죄'는 다른 말로 하면 '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을 통한 '없음'의 '무'가 아니라 예수란 아들이외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모두 '무' 이고 '죄'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만 남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 전이나 후나 변함없는 진리다.

아버지와 아들만 진리의 영으로 계시는 것이다.

(창 22:16, 개역)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나님은 독생자(독자)안에서만 당신 자신에게 맹세하고 약속할 뿐이다.

하나님의 사자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인 '이삭' 을 드러내는 재료로 부름받을 뿐이고.

모두 약속의 씨인 '이삭'의 그림자에 뭍어 있는 하나님의 부리시는 종들일 뿐이다.

하나님은 이 종들을 보지 않으시고 '이삭'만 보신다.

항상 '이삭'만 하고만 교제하신다.

왜 그런가?

'종'은 자신이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종'은 '주인'에게 감추어진 '무'다.

'저란 자체가 없습니다'

'주인만 계십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말이 어렵다.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다. 한계다! 그래서 죄다. 오직 예수님의 피가 덮쳐 올 때 믿어질 뿐...긍휼로)

(출 4:22, 개역)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출 4:23, 개역)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자신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건들면 모두 죽인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만으로 만족하시기 때문이다.

'내 아들 내 장자! 이스라엘아! 이제 함께 떠나자!'

'시간 다 됐다!'

'짐, 챙겨라!'

'무슨 짐을요?'

'너의 피의 이름으로 얻는 전리품말이다!'

'네! 아부지 갑시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어디 가신단 말인가? '알파와 오메가'의 자리로)

'시간 다 됐습니다!'

'그래 가자!'

'수고했다. 내 아들아!'

이근호(IP:117.♡.136.28)

10-04-27 18:01

예수님을 만난 사람치고 자기 목숨에 연연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목숨을 늘 예수님에게 강탈 당하고 차압당한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로지 예수님만 쳐다보고 늘 예수님의 처분에 넘겨진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자기 삶이라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삶에 시달리거나 찌들리거나 '삶에 중독'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납니다. 십자가도 알고, 부활도 알고, 성경도 알고, 신학도 알고, 언약도 알고, 기도에 전념할 줄도 알고, 열심내어 전도도 할 줄 알고, 찬양도 곧잘 하고 찬양 듣고 감격의 울기도 하고, 예수님도 알고, 사도신경 및 신앙고백서도 잘 알고, 목회에 열심내고,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옥으로 미끌어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 한가지, 자신이 생각한 세상과 실제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 세상은 모든 이가 예수님 앞에서 이단이요 죄인인데 반해서 인간은 자신이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자 합니다. 즉 지킬 가치도 없는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겁니다. 따라서 진정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당장 자신을 죽여주시는 것이 최고의 선물인 것을 압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

김영완(IP:218.♡.23.6)

10-04-29 23:52

...성화론이 무슨 소용이 있나?...바깥에서 건저주지 않으면 영원히 그안에 있거나 건져냄을 받으면 건저주신 분의 은혜만을 외치는게 예수님의 복음임을...건저냄을 받음에 기뻐함을 알게 하심도 은혜지만 일방적인 은혜가 아님은 영원히 그안에 갇혀 있어도 마땅함 존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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