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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00413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5-땅과 여호와의 축복자유게시판[신학]

20100413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5-땅과 여호와의 축복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100413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5-땅과 여호와의 축복

(강의:이근호 목사)

제가 아까 이야기한 인간이 갖고 있던 주체의 시간론을 왜 이야기했느냐? 구약하고 무슨 상관있다고 왜 끄집어냈느냐? 구약의 땅 중심으로 인간들의 자기의 본색들이 껍질이 벗겨지면서 계속 나옵니다. 구약 사람들, 성도가 아니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 그 모습들, 행동하는 게 구약성경 이만큼 두께를 차지하는 거예요. 배반하고 원망하고. 우리 같으면 이해가 안 될 정도에요.

분명히 그렇게 얻어맞았으면 인간적으로 다시는 이럴 텐데 돌아서면 좋다고 또 우상 섬기고. 만약이 이것을 분석해내지 않으면 ‘하여튼 구약사람들은 철이 없어.’ 하고 후다닥 넘어가버려요. 그게 우리 모습이고, 우리 이야기인데 ‘구약사람들은 말을 안 들어먹어. 벌 받아 싸지.’ 꼭 남의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구약사람들이나 오늘날 신약사람들이나 마찬가지에요. 그 구조를 분석하는데 그 분석하는 방법이 패턴이에요. 그 패턴을 찾아내는 겁니다. 우리말로 유형. 그들이 어떻게 해서 원망하고 대들고 매 맞고 다시 회개하고 복 받고 하는 그런 반복된 유형을 하느냐? 그런데 이 반복이 그대로 반복이 되질 않아요. 그게 성경이 어려운 거예요. 똑같은 벌을 내리면 될 텐데 홍해 바닷물이 갈라져서 왔잖아요. 그러면 똑같이 요단강 건너갈 때도 물이 갈라지고 들어가면 얼마나 수월합니까? 그런데 요단강 건너갈 때는 전에 써먹은 것을 일체 못 써먹게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체 속에서 패턴이 껍데기 패턴이 날아가 버리면 본인도 모르는 두 번째, 세 번째 패턴이 나오는데 이 패턴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첫 번째 알았던 그것을 써먹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요단강도 홍해처럼 갈라놓고 가버리면 그동안 있었던 인간의 죄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목사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일할 때 항상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일만 합니까? 오케이, 그거에요.

4월 2일에 예수 믿었다. 죽어도 좋습니다. 마치 천하에 온전한 사람처럼 됐지요. 4월 3일 되면 4월 2일에 몰랐던 죄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4월 3일에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고 거기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죄의 패턴이, 유형이 또 발굴됩니다. 4일 되도 마찬가지고, 5일 되도 또 마찬가지에요. 주님께서 질질질 끌고 가시면서 ‘나도 미처 몰랐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나도 미처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죄가 있는 줄 모르죠.

나도 미처 몰랐던 죄, 이것이 그 전 날에 나의 자기 의로서 굳어진 겁니다. 악이 아니면 의거든요. 그러니까 4월 15일에 내가 알아야 될 죄는 지금 오늘 내가 모를 경우에 거기에 대해서 나는 아직까지 의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의는 하나도 없거든요. 완벽한 죄란 말이죠. 완벽한 죄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이런 것은 잘한다고 하는 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왜 죄라고 규정할까? 우리는 아직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릅니다. 이거는 유대인 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팽개치는 게 아니고 언약이란 이름으로 질질 끌고 다니면서 우리의 죄 됨을 들추어내면서 병행해서 그 죄에 맞는 새로운 구원의 방식이 새롭게 우리에게 알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감격과 희열을 느끼게 만들죠. 정말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보다 더 밑에서 우리를 받쳐준다는 사실, 우리가 아무리 죄져도 그 밑에는 그 죄마저 우리를 용서해주는 만반의 준비가 돼있다는 그 사실을 새롭게 아는 감격이 오는 겁니다.

교인 말고 성도가 진짜 교회 와서 느끼는 감격을 이겁니다. 이런 죄인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주신다는 그 기쁨에 세상에 있는 모든 힘과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날려버립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기대, 자신은 어떻고, 어떻고 하는 모든 것을 ‘주여 이런 것 없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죽어도 좋사오니’ 그 짧은 순간에 날아갈 때 기분 참 좋죠. 그런데 교회 문이 뭔지 그것만 열고 들어가면 다 까먹어버리고 소실돼버립니다. 그게 구약 이스라엘의 모습이죠. 패턴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패턴을 어떻게 끄집어내느냐 하면 방법이 있어요. 이방민족을 칩니다. 초기에는.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방민족을 침으로써 이스라엘 집단 전체와 이방민족 자체를 언약적으로 구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스라엘은 뭘 생각합니까? ‘우리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 소속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복을 받는구나.’라고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겠지요. 그래서 할례 받지 아니하고 그리고 안식일 지키지 않고, 율법을 모르는 저 이방민족을 개 같이 저주해야 마땅하다. 근데 우리 편은 괜찮다. 그치. 저희들끼리 환호하겠지요.

이것에서 점점 더 저주가 이번엔 이스라엘 내부를 쳐버립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내부에서 뭐가 되겠습니까? ‘저 인간은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고 이런 저주를 안 받은 우리는 율법을 지금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복이 오면 안 되지.’라고 벌 안 받은 사람끼리 따로 구축되겠지요.

그런데 이방민족 치다가 내부로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지파별로 구분 짓는다는 거예요. 너는 어떤 지파기 때문에 당해보라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공격을 해버려요. 그래서 이건 개인적으로 잘 해도 소용없어요. 대표적으로 사사기에 보면 베냐민 지파가 날아가 버린 거예요. 베냐민 지파가 다 나쁩니까? 아니잖아요. 베냐민 지파 중에서 심하게 레위인의 첩을 강간했던 불량배들 있잖아요. 그 놈만 나쁜데 결과적으로 베냐민 지파가 다 날아가 버리죠.

날아가는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지파가 문제가 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나쁜 놈만 내줄 건데 그게 아니고 베냐민 지파 이름으로 저쪽에서 공격해대니까 베냐민 지파 가운데 죄를 안 진 사람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자기 지파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지파 중에서 나쁜 짓 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좋든 싫든 자기 지파 이름으로 적들과 전쟁을 벌여야 된다는 거죠. 이것을 구약에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냥 넘어가 버려요. 이걸 문자적으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밑바닥에서 전체적으로 구조적으로 얼개를 파악해서 이것을 쏟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베냐민 지파가 왕창 다 날아갈 정도가 됐다면, 그 전에 하나 있어요. 베냐민 지파가 한 지파면 나머지 열두 지파 되겠지요. 전부다 총 열세 지파니까. 그러면 열두 지파 이 사람들 잘했습니까? 그들은 뭐냐 하면, 그들은 옛날에 있었던 아간 같은 경우에 여호수아가 ‘너야’라고 지적하지 않고 뭘 경과해서 그 인간의 죄진 것을 발굴해냈느냐 하면, 항상 지파부터 하고 족장별로 나누고, 족장 다음에 가족별로 나누고, 가족 중에 한 사람 끄집어내어서 했거든요.

그런 경로를 밟았기 때문에 그들도 그대로 흉내를 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서 지금 4월 2일에 생각했던 과거, 현재, 미래 있잖아요. 이 미래는 어디서 나온 패턴입니까? 4월 2일에 생각했던 패턴이잖아요. 이 패턴을 그대로 4월 4일 과거로 집어넣어서 써먹지요. 미래가 과거의 종합이잖아요. 인식의 종합. 세상 보는 사고방식의 결론부분 아닙니까. 그 결론부분을 지금의 현재로 반영되려면 하나의 과거로서 들어온다 말이죠.

현재는 사건이 벌어지죠. 현재 벌어진 사건에서 과거에 생각했던 인식론, 내가 생각했던 것과 해결하려고 할 때 아까 이야기한 잉여, 안 맞는 부분이 생겨나겠지요. 안 부분이 생기면 여기서 회개가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법칙은 이거구나’라고 새로운 미래가 생기겠죠. 그러면 4월 10일 되면 이 미래는 또 과거로 써먹겠죠. 제 말에 동의 안 하는 느낌이 들어서.

모든 주체라 하는 것은 아까 이야기했지만 셀프를 몰라요. 인간은 내가 누군지 몰라요. 다만 아는 것은 에고를 알아요. 에고라 하는 것은 어디서 수집한 것이다? 현재 벌어진 사건들을 종합해서 그 사건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구축한 그것이 에고, 자아라니까. 자아 없는 인간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라 하니까 자아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어요. 인간은 몸이 자아를 만들어내는데 몸이 있는 이상 항상 자아가 있어요. 레테르, 상표. 항상 레벨이 있어요. 당신 누구요? ‘이근호’ 하면 돌아보잖아요. 내 이름이 있잖아요. 아무리 예수 믿어도 소용없어요. 항상 거기에 갖춰지게 돼있어요.

문제는 성령께서 사건을 일으켜서 우겨 쌈을 싸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있잖아요. 항상 성령께서 우리가 모르는 주님만 아시는 셀프, 자기를 일깨워주는 작용을 주께서 해주셔야 돼요. 성령이 없으면, 성령 없는데요? 성령이 없으면 신자도 아니지요. 성령 있는데요? 있으면 당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속에 성령께서 주도권을 쥐셔서 진짜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는 셀프를 알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에게 사건을 유발시키죠.

그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옆에 있는 강도가 되기까지. 여러분 가운데 강도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왜? 살인 안 했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가 강도라 하면, ‘왜 이러십니까?’ 하잖아요. 그 말 소용없어요. 원래 그래요.

강의하면서 어려운 게 어렵기 때문에 미리 이야기할게요. 신명기 12장에 보면 약속의 땅은 반드시 여호와의 이름이 있어요. 이름이 있을 때 약속의 땅이에요. 그런데 여호와 이름이 있는 땅에 누가 들어간다? 이런 우리가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고가 안 맞는다니까요. 그 땅은 여호와 이름 위주로, 언약 위주로. 우리는 껍데기만 언약을 알면서 ‘언약 좋지.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냈는데. 안식의 땅에 왔구나.’

처음에는 셀프가 아니고 에고.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 내가 알고 있는 멋있는 하나님이 전부라. 그런데 고맙게도 여호와 이름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동거하면서 우리가 꼭 알아야 될 우리의 셀프,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구원하는가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약속의 땅이라는 명령을 통해서 여호와 이름으로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그 경과가 구약성경입니다.

제가 아까 이 대목 이야기한 것은 뭐냐? 인간은 개별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지만 사실은 집단적으로 움직인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집단적으로 움직이는데 제일 큰 것이 이스라엘이었고, 그걸 쪼개보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나는 어느 지파에 속하지? 하고 지파 중심으로 셀프가 아니고 에고는 지파 중심 안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의식있더란 말이죠. 그게 민수기에 나오죠. 모세와 아론에 대한 지파가 어느 지파입니까? 같은 레위 지파고, 레위 지파를 쪼개보니까 고라 족장이죠. 고라 족장도 다 죽이지 않아요. 또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제가 경주 이씨인데 경주 이씨 종친회에 참석한 적도 없고 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길에 가는데 하여튼 대한민국의 경주 이씨는 다 나쁜 놈이라고 한다면 내가 기분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안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 이리와 봐. 당신이 경주 이씨를 다 알아?’ 대번에 묻는 게 그거잖아요.

제가 한국교회 이단이라 하니까 그쪽에서 뭐라고 합니까? ‘이근호 목사. 네가 한국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한국교회 다 썩었는지 조사해봤어?’ 괜히 기분 나쁜 거예요. 한국교회가. 그런데 기분 나쁜 줄 알고 한국교회 이단이라는 말을 해야 그들 속에 자신도 미처 몰랐던 한국교회만은 다른 세상 교회보다는 정통적인 개혁주의신학을 신봉하기 때문에 아주 건전하고 이단이 다른 데보다는 적다는 자기 의가 있었죠.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고 십자가를 믿는 게 아니고 뭘 믿느냐 하면, 한국교회는 건전하다는데 자기 발을 걸침으로 말미암아 자기 구원의 안전성을 보장받으려는 심보가 강하죠. 큰 교회가 가는 이유가 뭔데요? 하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동행하면 진리성에 대해서 안전성이 보장된다는 겁니다. 소수에 가면 저희들끼리 진리라고 우기는 이단 될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로 같은 고백을 하게 되면 이거는 안전성이기 때문에 어지간이해도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적기 때문에 거기에 자기 몸을 들어간다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자기 몸을 숨기는 거죠. 이 대목을 누가 걸러내는가? 고맙게도 땅이 걸러냅니다. 그 땅이 누가 있기 때문에 걸러낸다고? 신명기 12장에 여호와 이름이 계시기 때문에, 주인님 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걸러내는 거예요. 걸러내는 기준이 뭐냐? 현재는 너는 안식을 아느냐? 답변하기를 뭐라고 합니까? ‘우리는 안식을 압니다.’ 안다는 거예요.

주변에 진돗개, 멧돼지, 이리, 사자 같은 이방민족들이 우글거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안식을 안다고 하는 거예요. 안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네가 이웃을 사랑했느냐?’ 물어요. ‘네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느냐? 고아와 과부들을 돌봤느냐?’라고 묻지요. 묻기 전에 이미 여기에 고아와 과부들은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습니다. 왜? 다 빼앗겼으니까. 다 당했으니까.

나봇의 포도원에 나와요. 지금 이야기하는 것 이 책에 다 나오는 이야기에요. 이게 함축되어서 어렵게 이야기했지만.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뭡니까? 하나님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땅에서 아합이라는 임금이 자기가 임금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 땅 내놔라.’ 하는 거예요. 사실은 마누라 이세벨이 남편한테 쑤셔서 ‘전망 좋은 땅 먹자.’ ‘아니다. 나봇의 포도원이다.’ ‘그러면 뺐지, 뭐.’ 가서 ‘좋은 땅 줄게 땅 바꾸자.’ 하니까 나봇이 이런 소리해요. ‘하나님의 기업을 사람이 바꿀 수 없습니다.’

여기서 침멀리가 제대로 본 것은 하나님의 기업과 안식과 연관시켜서 논리를 전개했다는 겁니다. 대단하죠. 하나님의 기업과 안식됨은 항상 모든 땅이 하나님의 소유권이 유지될 때만 하나님의 안식이 된다는 법칙을 창세기 1장에서 2장에서 찾아낸 거예요. 그리고 창세기 2장에서 찾아낼 때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연관돼있다는 겁니다. 안식일을 지키게 되면 이 땅이 살기 좋은 편안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땅이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것만 좋아했지 안식을 만끽해야 할 이웃이, 고아와 과부가 소위 힘 센 자에 의해서 안식을 빼앗겨서 힘들게 살아간다면 이것은 그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그 분노함을 호소하게 돼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와요. ‘땅에서 성도들이 호소하면 하늘에서 심판 내린다.’ 호소하면 주변에 배치돼있는 짐승 같은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니까 갑자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완전히 다 빼앗기죠. 추수한 것이.

그럴 때 처음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난 일인 줄 모르고 뭐로 아느냐 하면, ‘이방민족들이 우리가 농사가 잘 되니까 그걸 탐내서 왔구나.’라고 인간적인 해석법이 처음 등장해요. 그래서 땅에서 얻었던 생산물을 그들에게 상납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돌이켜서 도망갈 줄 알았지. 인간적인 외교술을 써서 물리치는 방법을 사용해요.

그런데 이방민족들도 그들의 뜻대로 안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쓰는 지팡이에 불과해요. 그들의 욕망은 인간들 같으면, ‘그래 이스라엘아. 이것만 먹고 떨어질 게.’ 할 텐데 먹으면 맛있거든요. 그래서 더 심하게 더 내놔.

이번에 소말리아 해적한테 유조선 잡혔잖아요. 최소 천만 달러 달라. 처음에 해적들은 십만 달러 달라 했거든요. 옛날에. 지금은 간덩이가 부어서 천만 달러. 소말리아 기간산업이 해적이랍니다. 건축 이런 게 아니고. 산림, 농업이 아니라 해적이 기간산업이에요.

이들이 간덩이 부는 것도 누가 조절해요? 방송국에서 볼륨 누가 조정합니까? 여호와 이름께서 올리는 거예요.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의 안식을 너희가 공짜로 누린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결국 이 방법 써도 안 되고, 저 방법 써도 안 되고. 결국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지요. 부르짖을 때에 또 이런 생각한다고. 아마 우리 가운데 누가 하나님의 영웅이 있을 거라 생각하잖아요.

처음에는 그걸 써먹어요. 두 번째, 세 번째 패턴에 들어가면 우리 가운데 누가 똑똑한 사람 있을 거란 그것마저 하나님께서 엎습니다. 만약에 우리 가운데 누가 똑똑한데 그 사람을 하나님이 쓰실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사울 왕 식이에요. 다윗은 항상 숨어 있는 자에요. 구약성경 어렵죠. 해석이. 사울이고 또 나오는 게 압살롬이에요.

다윗에 하나님이 설칠 때는 다윗이 숨어있는 존재로서 등장하는데 솔로몬도 마찬가지고. 압살롬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요. 머리털 완전히 신불사처럼 멋있죠. 키 크죠. 이건 못하게 없어. 태권도면 태권도, 승마면 승마, 요트까지 타죠. 카레이서 되지요. 항상 그 시대의 영웅을 발견하면 그 시대는 주님을 안 보는 시대입니다. 이근호, 정낙원 보게 되면 그 시대는 주님을 안 보는 시대에요.

항상 하나님께서는 믿을 놈 없고 정말 구원할 자는 이 세상에는 없고,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목사가 예수 믿을 때는 목회 실패할 때에요. 돈 되는 장로 이사가버리고, 돈 많은 권사 삐져서 다른 교회 가버리고. 이제 목회 끝났다. 굶어 죽었다. 할 그때 유일하게 그 순간 예수 믿는 순간입니다. ‘주여, 진짜 그동안 예수 안 믿고 예수 믿는 척하고 목회놀이한 제가 그런 인간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밥 먹고 살려고 목사질 한 겁니다.’ 그걸 깨닫게 하죠. 그건 목사는 기니까 한 이 주 갑니다. 괜찮은 교인 들어오면 ‘역시 믿음으로 하니까 되네.’ 이렇게 나온다고. 완전히 롤러코스트에요. 내려갈 땐 죽을 맛이죠. 올라갈 땐 자기 잘나서 올라가고 내려갈 땐 하나님 원망하고.

구약 이스라엘이 뭐냐 하면, 믿을 놈은 다 차버려요. ‘우리는 보는 것을 누가 믿으리요’ 이건 로마서에 나오고, 히브리서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모든 신앙의 특징들이 신앙이라 할 때는 꼭 믿을만한 것들이 치워졌을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엘리야죠. 엘리야 자기편이 몇 명이었어요? 없었어요. 외로움이에요. 철저하게 외로워해요. 외로워하다니까 갑자기 심재성 목사님 생각난다. 의도적으로 외로워하면 외로움입니까? 그거 아니에요.

복음과 언약만 외쳤는데 아무도 모든 교인들이 귀담아 듣지 않고 자버리고 진짜 설교준비 많이 해서 오늘 대박난다고 했는데 초반부터 애 하나 왔다갔다 하니까 설교 초장부터 기분 다 나빠서 다 깨져버리고. 그 당황스러움이 교인들이 눈치 챌 때 장로들 좋다고 ‘너도 한번 당해봐라. 애 하나 떠든다고 설교 정리 안 되지 지금.’ 하고 놀리는 게 뻔하게 보이고 그럴 때.

그러니까 과거, 현재, 미래 이것 안 됩니다. 구약성경이 어려운 것이 뭐냐? 우리가 동사, 움직이는 패턴을 잡는 순간 주께서 그 패턴을 두 번 다시 사용을 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내 손에 잡히면 그건 우상이 됩니다. 진짜 여호와라 할지라도. 바알과 아세라가 특징이 뭐냐 하면, 말도 없고 밥을 먹여줘야 되고, 사람 손으로 만든다 하잖아요. 이건 뭐냐 하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언제든지 고정된 그 거룩한 장소에 가면 만나게 돼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멈췄다하면 거기서 저주가 나와서 문제에요. 하나님께서 안 멈추면 복을 주시는데 성전에 가둬놓으면 보통 우상은 복이 나오잖아요. 성전에 가둬놓으면 저주가 나온다고. 성전에 가둬놨다는 그 자체가 너는 벌써 나를 모르고 하는 행세라고 간주하시고 하기 때문에 이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보여줍니다.

만약에 영화라면 지금 3D 나왔잖아요. 어떤 때는 4D 나오죠. 영화관의 의자가 들썩들썩하고. 냄새가 나면 5D 나오죠. 그런데 6D를 누가 상상해본 적 있습니까? 저는 상상해 봐요. 티비가 만약에 주인공이 화가 났다면 티비 색깔이 그린 색깔에서 벌건 색깔로 붉었을 때 그게 성전이에요. 성전 자기가 화가 나서 멀리 있는 이방나라는 벌 안 받아요. 성전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박살납니다. 이게 구약성경입니다.

구약성경이라는 이 패턴이 하여튼 인간은 뭐든지 자기 유리한 대로 무조건 하나님을 잡으려하고 하나님은 안 잡히려하고. 안 잡히면서 언약대로 그 속에서 자기 백성은 자기 백성대로 꾸준하게 주께서 만들어내고. ‘나는 언약 백성 맞죠?’ 하면 언약 백성 아니고, 엘리야는 나밖에 없다고 하는 가운데서 칠천 명을 남겨두시고, 그 칠천 명은 엘리야한테 전혀 힘이 도대체 보탬이 안 되고. 해석 자체가 안 돼요. 그냥 목사는 성경 해석할 수 없고 자기가 평소에 일주일 동안 살았던 삶이 드러나요.

주일오후에 설교하잖아요. 오후에 가봐야 알아요. 오늘 교회 사정과 교회 분위기와 내용이 안 맞으면 그대로 접어버리고 그 순간 느꼈던 것 가지고 본문 가지고 설교해야 돼요. 만약에 이걸 분위기가 달라도 해버리면 사람들이 눈치 채요. 눈치 채도 괜찮지만 하여튼 ‘목사님 미리 준비한 걸 그대로 하는구나.’ 느낌을 받아요. 그럼 그걸 지식으로 받아들여요. 하나의 현장성 떨어지잖아요. 그러니 설교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불가능하죠. ‘에라이 모르겠다. 접어버리자.’ 접고 내가 주일날 교회 와서 봤던 교인들 행세하고 본문하고 연관시켜서 하자.

하는 방법은 껍데기, 본문 있잖아요. 구조 들어가서, 구조는 항상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같으니까. 언약 구조가 변하지 않아요. 하여튼 위에서부터 본문 있잖아요. 사무엘하 같으면 어제까지 쳐올라가고 이리로 튀어나와요. 월요일 준비한 것은 뭐냐 하면, 그때 내 삶이 그것 이었으니까 제 말 이해하겠습니까? 목사가 금요일 준비했잖아요. 금요일까지 삶이 있잖아요. 그때 느낀 것을 원고로 뽑아냈단 말이죠. 그래서 주일 오후에 온다면 금요일에 느낀 거잖아요. 그러면 일요일에 느낀 것과 다르잖아요. 물론 이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 수정해서 올리면 되죠. 그러면 교인들이 ‘이 순간에 이 말씀이 이렇게 적용되는구나.’ 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패턴이라 하는 것은 패턴 만들기라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시도하는 게 침멀리도 그걸 시도하는데 그래서 침멀리 책을 제가 골랐던 겁니다. 침멀리 책은 어떤 성경구절 은혜 받고 이게 아니고 성경구절은 표면이고 항상 패턴이 있어요. 패턴이라 하지 않고 이 사람은 ‘공식’이라 해요. 하나님이 일하는 공식을 항상 우리가 완벽하고 신학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된다. 이 공식만 있으면 구약성경 어느 대목을 설명해도 그 본문 정확하게 해석이 된다고 이 신학책을 쓴 거예요.

침멀리가 한 이야기가 패턴이 뭐냐 하면, 땅은 그 땅이 아니고 움직이는 땅이다. 들썩들썩.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인간도 그냥 고정된 게 아니고 항상 속의 죄 때문에 이방민족과 이방의 신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조금만 마음 편하면, 조금만 배부르다 싶으면. 이것이 아까 신명기 31장에 나오는 예언대로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 전체가 이미 율법으로 패턴화 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패턴화 되었다고 해서 율법은 고정돼있지만 그 안에 보면 들썩들썩. 아까 이야기한 5D, 티비가 기분 좋을 때는 화냈다가 이런 것.

뭔가 자꾸 움직이는 거예요. 사랑은 움직인다 하죠. 그걸 제가 발생학적 성전이라 하잖아요. 뭔가 자꾸 출현되고 새롭게 느껴지는 십자가 복음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르고 항상 십자가 복음이 나오는데 패턴화 돼버리면 뭐가 나온다? 하나님의 긍휼과 앞에는 우리의 죄, 이것은 이미 십자가로부터 고정돼있고, 그 긍휼의 의미가 뭐냐 하는 것은 여기 주체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들썩들썩, 긍휼도 들썩들썩, 우리의 죄도 들썩들썩 항상 무빙, 동사가 나오는데 움직임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말이죠.

침멀리는 책에 보면 이걸 알고 있어요. 침멀리가 항상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이게 성경 여러 군데 나오거든요. 시편에 나오고 사무엘상도 나오는데 그 여러 군데를 침멀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면, 침멀리도 알아요. 이 말을 이렇게 하게 되면, ‘믿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신앙 갖고 있습니다.’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가 이런 분인 걸 앎으로써 뭘 노리느냐 하면, 그때부터 부하게 되는데 보탬이 되는데 이용물이 될 수 있는 성경의 구절이고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말이죠. 그런데 침멀리는 그게 바로 우상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침멀리 책이 어려운 거예요.

뭔가 알게 되면 우리는 여호와 알았다고 박수치면 되는데 그렇게 우리가 붙잡는 순간, 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우상화 된 여호와 돼버려요. 그러면 우상화 된 여호와는 우리 힘으로 해결 안 되고 다시 우리 바깥에 계신 우리 주님께서 또 들썩들썩, 긍휼 들썩, 죄 들썩 또는 말씀대로 작용하게 되면, ‘우리가 전에 생각했던 그게 여호와 전부가 아니었구나’ 또 깨닫게 되는 식으로 구약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게 구약의 하나의 롤러코스트 같은 구약의 파노라마라고 부르는 게 침멀리가 주장하는 거예요. 제가 쉽게 해석하는 겁니다. 침멀리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침멀리를 옹호한다면 그런 식으로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남은 시간에 해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중요한 게 남아있어요. 왜 움직이는가? 왜 땅이 움직이는가? 그것은 침멀리가 뒷부분에 나옵니다. 땅의 소유권 문제에요. 레위기 25장 55절.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꾼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꾼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땅 소유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쥐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들어와서 이스라엘은 뭘 고백해야 하는 하면, 품꾼입니다. 그림으로 해봅시다. 이스라엘이 여기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품꾼이죠. 품꾼이란 말은 이스라엘 땅 주인은 여호와이다. 품꾼이란 이게 율법이잖아요. 레위기 율법 아닙니까. 품꾼이 이 안에 들어와 있어야 되죠. 제 말 맞죠?

이게 튕겨 나가버리면 누가 화냅니까? 땅의 주인이, 나는 품꾼을 원하는데 사람이 땅을 보니까 그 다음부터 탐을 내죠. 그리고 저쪽 땅 좋은 땅은 김씨가 차지하는데 난 땅 좁으냐? 기업을 나눠주는데 땅 분배하는데 저쪽 지파는 땅이 많은데 우리는 적으냐? 시기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어떤 땅이던 간에, 부자든 가난하든 간에, 고아든 과부든 간에 하여튼 고아도 품꾼이고 가난해도 품꾼이고 부자도 품꾼이고 어쨌든 너희 것이 아니라는 그런 사람을 이 땅에서 원하고 싶은 겁니다.

품꾼이 있어야 될 건데 들어오면서 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애굽 귀신이 있어요. 애굽 귀신이 뭐냐 하면, 내 것은 내 것이다. 인간의 소유권이죠. 이 소유권과 주님의 소유권과 할 때 이스라엘은 품꾼이라는 법을 하나님께서 절대 포기 안 해요. 그런데 인간이 내 것은 내 것이라는 것은 날 때부터 본능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는 포기 안합니다. 죽으면 포기할 줄 몰라도 내가 살아있는 한 이 몸이 살아있는 한 이 몸은 내 것이죠. 하나님 것? 웃기지 마. 내 거에요.

우리가 만약에 이 몸이 하나님 것이라면 우리가 장애인 되도 상관없잖아요. 장애인 되서 붓으로 찬양시를 쓴다 해도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무대 위로 오를 필요 없어요. 너는 붓으로 써라. 나는 손으로 쓸게. 이러면 돼요. 세상에 입으로 붓을 쓰다니 대단한 신앙이다. 이것 자체가 수상해요. 제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합니까? 장애인이 손발이 없어서 붓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단해도 그걸 유별나게 여기는 그 사고방식이 뭔가 수상해요.

깊이 생각해봅시다. 평소에 손으로 쓰는 것도 기적이에요. 왜 꼭 손발 다 떨어지고 입으로 써야 기적입니까? 이걸 우대한다는 자체가 이 세상이 더러운 세상이에요. 장애인들은 만날 그렇게 해요. ‘우리를 보통인으로 대해줘.’ 보통인으로 대하면 화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특별대우 해달라는 겁니다. ‘나도 멀쩡할 때 있었다. 너도 아파봐라. 우리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심정할 이해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법이 있어야 돼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복음이 있어야 되지 우리가 같은 타인을 이해한다고 이웃 사랑이 아니에요. 우리는 예수님만 이해하면 돼요. 오늘 강의 쉽네. 가만보니.

우리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 마음만 이해하면 돼요. 왜? 물으면 그것 때문에 우리는 부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마음 닮으라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 마음만 품으면 됩니다. 예수님 마음이 뭡니까? 이 세상에서 기대하지 말고 하늘나라 안식의 날이 있다 이 말이죠.

말 하다보니 이제 생각난다. 제가 왜 4월 2일에 과거, 현재, 미래가 예수 믿었다면 4월 3일에 이 과거는 다 잘리지만 이 미래는 왜 남아 있느냐 하면, 안식의 때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부터 우리의 미래는 이미 확정적이에요. 여기다가 고정적인데 뭘 빼내야 되느냐 하면, 우리의 육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 빼내버려야 돼요. 빼내고 주님께서 마련한 말씀대로 된 우리는 품꾼이다.

목사님 어제 감기 걸렸데요? 품꾼에 걸려서 감기 걸렸어요. 목사님 차 좋은 것 뺐네요? 내 것이 아니고 운전하는 품꾼입니다. 이게 말로만 남한테 신앙 있는 티를 내는 게 아니고 내가 나한테 매일같이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애가 아파도 ‘주의 품꾼이 아팠습니다.’라고 할 수 있기를 주께서 소원하고 있다니까. 주의 법이, 주의 법의 완성이 십자가니까, 주의 십자가 들어오게 되면 성령께서 그런 사람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본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잘못한 걸 몰라요. 왜? 우리 본성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본성 이야기합시다.

사람이 자아가 있잖아요. 자아를 에고. 자기를 셀프, 셀프는 모른다 했어요. 그런데 자아 속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사람들은 꿈이라고 봅니다. 꿈은 왜 꾸느냐 하면, 보상되기 위해서, 미흡함을 메우기 위해서. 짬뽕 먹었으면 꿈에 자장면 나오는 거예요. 아까 점심 먹을 때 짬뽕 먹을까, 자장면 먹을까 걱정하다가 짬뽕을 선택했다가 자장면 먹을 걸. 짬뽕 맛없네. 다음에 꿈에 자장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생각에 보완, 보충, 균형을 맞추는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보상기능이요.

그런데 왜 보상되느냐 하면, 꿈은 자아의 성장과정, 성장경로, 이건 융이 이야기했어요. 인간의 꿈은 보상이라 하는 것은 프로이드가 이야기했고, 인간의 꿈이라는 건 자아가 성장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겁니다. 꿈속에서 영웅이 나오는 것은 평소에 어릴 때부터 영웅이 되고 싶어 환장했다 이 말이에요. ‘나는 이러이러하고 싶어.’ 그게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의 욕망에서 나왔다고 보는 겁니다.

라캉은 더 나가버려요. 인간의 충동에서 나왔다. 충동에서 더 나가버리면 들뢰즈에 의하면 인간은 동물적에서 세포에서 나왔다. 세포의 움직임. 욕망 말고 이 정도 되면 이건 뭐냐 하면, 어쩔 수가 없다는 거예요. 김길태 성폭행 그에게 물으면, 술 먹고 필름 끊겨서 어쩔 수 없다. 항상 충동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마치 방구 나오는 것처럼 또는 오줌 쌀 때는 화장실 가야 되는 것처럼.

인간의 몸의 차원에서 세포덩어리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은 충동과 동물적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이게 정답이에요. 어쩔 수 없는 것이 욕망 쪽으로 나오면 조절이 가능해요. 이 조절의 주체가 셀프가 아니고 자아, 에고입니다. 결국은 에고와 셀프, 자기와 자아의 싸움에 의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 행함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함은 항상 타인에 의해서 일어나요. 무의식의 비윤리적과 윤리적인 자기 의를 유지해야 되는 타협에 의해서 적당 선에서 타협해서 나온 것이 인간의 행함이 나온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킬 때 어떻게 지킵니까? 예수님이 그랬지요. 자기 혼자 있을 때 기도하고 사람이 볼 때 기도하고 다르다 했지요. 금식할 때도 자기 혼자 골방에 들어가라 했죠.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놀렸습니까? 골방에 들어가란 말은 인간은 남을 의식한다는 말은 자아에 들어가면 이성적이 되면,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 사회에서 보는 자기 체면이 하나의 사회구조적인 에너지,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남들 의식하기 때문에 그런 껍데기는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그럼 주님께서 깊숙이 들어와 버리면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사람에서 나오는 게 더럽다. 더러운 충동들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돼버리면 땅이, 이거는 침멀리가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좀 더 발전시킨 겁니다. 땅이 두 개로 나눠져서 땅이 여기서 원판 땅이 있고, 원판 땅은 안식의 땅. 안식의 땅이 있고, 이 그림자 비춰지는 땅이 이스라엘 가나안 땅이에요. 이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왔다가 멸망당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정착이 아니고 아브라함 말대로 임시적으로 거쳐 가는 곳이 구약에서는 위가 없고 땅으로 설명했는데 신약에 오면 골로새서 3장에 보면, 우리는 밑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것을 생각해야 된다. 이 소리 들으면 계룡산에서 계시 받았다고 할라.

개혁주의는 역사를 믿기 때문에 미래의 찬란한 역사를 믿기 때문에 위를 걷어버리고 예수 믿어서 역사를 개혁해나가면 이렇게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유대인 짓하고 똑같은 거죠. 그게 아니고 지금 죽어도 우리는 주님 품 안에 있다. 사도 바울이 그랬죠. 내가 지금 소원은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다.

항상 원판의 안식이 죽으면 주와 함께 거하리라. 지금 우리는 그림자가 쏟아내는 그 능력에 의해서 진동하죠. 이 땅은 진동한다가 어디 나옵니까? 히브리서 13장. 그때는 심지어 하늘마저 몽땅 다 바이브레이션.

왜 이 땅이 진동해야 됩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서 핍박을 받았어요. 이 땅이 주님을 쫓아내버렸어요. 마치 이스라엘이 쫓겨나서 바벨론 땅에서 새로운 성소를 만든 것처럼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쫓겨나서 하늘나라에 영원한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안식을 만들었습니다. 주의 자리에 앉으셨고 그 주의 옆에 우리를 초대하는 겁니다.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하늘의 신부가 어디서 내려와요? 새 예루살렘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옵니다. 내려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위의 땅이 아래를 지배하니까 천국이 되고, 나머지 모든 것은 심판을 받아야 되니까 지옥이 되는 구조죠.

방금 우리가 한 것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갔다가 쫓겨난 것이 맞는다면, 이 신약의 골로새서 이야기도 맞습니다. 왜? 그림자라 하는 것은 흔적이니까. 실체가 따로 있으니까. 구약의 그림자는 모형이라면 신약은 새 언약을 통해서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야 되겠다는 것보다 죽어도 좋다는 그 안도감으로 같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늘이 안식의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약속을 믿습니다. 그 약속의 내막이 어떤 것인지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날마다 우리의 성전을 뒤집어주셔서 우리가 얼마나 내 중심이고 나밖에 모르고 이 땅에서 성공하려고 끼어달라고 우기는 그런 식으로 억지로 살아가는 그 죄를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00413b 부산강의.hwp (55.5K), Dow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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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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