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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00410a 울산특강 - 야고보서a자유게시판야고보서

20100410a 울산특강 - 야고보서a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100410a 울산특강 - 야고보서

(강의:이근호 목사)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야고보서 하기 전에 신명기 27장 16절 봅시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17절,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18절,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19절,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20절,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21절,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다음에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장모와 구합하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다음에 24절에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모든 백성이 거기에 대해서 ‘아멘’하는 거예요.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이게 신명기 28장 들어가기 전에 27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는 나라라고 알고 있잖아요. 오히려 축복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무엇이 노골적으로 등장하느냐 하면, ‘왜 사람이 저주를 받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만이 그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겁니다.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은 저주가 뭔지도 모르는 채 축복이 오는 게 아니고 충분하게 저주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축복이 값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방금 이야기한 걸 그림으로 해봅시다. 이스라엘 집단이 있는데 신명기 27장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받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28장에 보면 축복받는다. 궁금한 게 뭐냐 하면, ‘저주를 받으면 받지 뭐. 저주받을게. 저주가 별거냐.’ 이렇게 나올 수 있잖아요. 저주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저주가 나와 있습니다. 28장 저주가 어떻게 구체적인가 그것부터 보고 계속 설명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8장 16절에 보면, 성읍에 저주 받는데, 17절에 구체적입니다. 광주리와 떡 반죽이 저주받고, 그 다음에 18절에 네 몸의 소생과 토지가 저주받고, 쭉 저주를 받습니다. 그 다음에 21절부터 구체적으로 나오죠.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고, 22절에 폐병 들게 하고, 이 재앙들이 너를 칠 것이며, 25절에 누가 오게 되면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고, 26절에 네 시체가 공중의 새들의 밥이 될 것이며, 그 다음에 27절에 보면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칠 것이며 너는 치료를 얻지 못할 것이며, 28절에 눈멂과 경심증, 29절에 약탈당할 것이며, 30절에 네가 여자와 약혼했으나 다른 남자가 약혼자를 차지할 것이고, 30절에 집을 건축했으나 완공되지 못하고, 포도를 심었으나 과실을 맺지 못하며, 31절에 나귀를 다 빼앗길 것이며, 33절에 토지소산과 수고한 것이 네가 알지 못하는 놈이 다 가져갈 것이며, 다른 민족에 압제를 받을 것이며, 35절에 종기가 나게 될 것이며. 종기난 사람들 유의해야 되죠. 그 다음에 38절에 보면, 네가 종자를 심을지라도 메뚜기가 와서 다 먹을 것이며, 벌레가 일어서 소출이 없을 것이며. 그 다음에 54절에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나가서 특히 57절 봅시다.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음식물이 없으니까 자기 자식을 자기가 먹을 것이라고 돼있어요.

방금한 이 저주, 이런 것 어기면 저주받는다 할 때는 그 말씀에 신경 쓰다가 방금 신명기 28장에서 이러한 것들이 저주라고 한다면, 우리는 화가 나서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저주를 받게 됩니까? 따지게 되는 거예요. 저주가 원인이 되고 그 결과가 28장에 나열 돼있다면, 만약에 원인 편에 서 있다면, ‘그까짓 저주 좀 받지.’ 그런데 결과 편에 섰으면 ‘우리가 뭐가 잘못되어서 이런 저주를 받습니까?’ 하는 거예요.

저주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율법의 구조 안에 놓여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방금 제가 강의 시작해서 한 이야기가 뭐냐 하면, 내가 나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뜻입니까, 뜻이 아닙니까? 이게 뜻이 아니고 하나님은 율법을 보호하는 것, 율법이니까 법이라 할 수 있죠. 법을 보호하는 게 이스라엘 존재 이유, 뜻이라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이 희한한 민족이죠.

보통 민족은 아비가 자식을 낳으면 가정이죠. 가정은 어떤 관계냐 하면, 혈육적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에 속한 모든 사람은 내가 낳은 자식을 위하여 또는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모든 노력과 모든 정신을 가정 보호에 대해서 혈육적인 것에 대해서 모든 걸 쏟아 놓습니다. 이걸 인간이라 하죠. 사람이라 하는 것은 혈육 중심이고, 혈육은 자식과 부모 관계가 기본이고, 거기서부터 삼촌, 동서 나오지만 기본 정신은 아비와 자식, 가족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몸은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하고 애쓰고 여기다 투자를 한다 이 말이죠. 이거는 바로 이방민족, 이방나라에서 누구나 그렇게 하죠. 이거는 하나님 찾고, 부처 찾고 관계없어요. 누구나 그렇게 한다 이 말이죠.

그런데 오늘 강의하는 게 야고보서거든요.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율법의 구조다 이 말이죠. 우리가 야고보서를 공부하려면, 야고보서 1장 1절에 “흩어진 열두 지파”라고 돼있지요. 여러분 강의안 다 읽어 오셨죠. 우리 가운데 안 읽어온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행복한 사람 아닙니까.

야고보가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줬다. 열두 지파를 뭉치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항상 이방민족과는 다른 식으로 존재하는 나라라는 겁니다. 다른 민족과 다르다는 말은 다른 민족은 이렇게 살아가는데 흩어진 열두 지파, 이스라엘은 이렇게 살아간다고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뭐냐를 말씀드리기 위해서 신명기 27장과 28장을 거론한 거예요. 거론해보니까 보통 이방민족은 자기 가족과 혈육적인 것에 신경 쓰는데 반해서 이스라엘은 뭐라고요?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할 보통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나왔던 것이 이스라엘이란 말이죠.

이스라엘보다 법이 먼저고,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그 법을 이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이스라엘만이 하나의 그릇이 되어서 담아서 보여주는 나라가 흩어진 열두 지파, 이스라엘이며 그것이 오늘날도 분명히 있다고 여기면서 예수 믿는 예수님 형제 야고보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야고보 보기 전에 어디서 떠나야 합니까? ‘우리 가족 중심, 내 중심, 나는 나를 보호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거야.’라고 그런 생각에서 뭘 벗어나야 됩니까? 나는 내가 원인이 되어서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여기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이 하시는 율법의 능력에 의한 하나의 결과물로 여기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게 바로 무서운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구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모였다면 우리는 흩어진 열두 지파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방금 한 제 말이 ‘우리가 법을 지키겠습니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틀린 말이죠. 우리가 법 지켜서 구원받겠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결과물로 생겼다.

네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다시 하면, 내가 나를 보호하듯이 평생을 살 수 없고 네가 지키고 보호해 줄 것은 따로 있다. 하나님의 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너는 이 땅에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라는 것이 야고보서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야고보서 봅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를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1절에서 누굴 제시합니까? 몸무게로 같은 열두 지파라고 할까요, 키로 할까요? 같은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끼리 결정하는 겁니까?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1장 1절에서는 뭘 제공합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죠.

그렇다면 우리 의견 말고, 우리가 밥 먹고 살기 힘들어하는 이 세상 우리 말고 야고보의 뜻을 제가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야고보의 뜻은 흩어져 있다는 겁니다. 흩어져 있는 것은 하나의 결과죠. 원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인이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발생된 결과물이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란 말이죠.

이 생각하고,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우리가 뭘 행해야 되고 뭘 믿어야 되고 그러면 천국 갑니까?’ 이 생각하고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내가 여기 있는데 죽어서 좋은데 가겠다. 이건 누가 누굴 보호하는 겁니까? 세상에서 보호하는 정도가 아니고 죽어서도 좋은데 가서 좋게 살겠다는, 내가 나를 보호하는 식이 된다고. 내가 주어가 되고 내가 목적어 되는 것, 이 사이에 행함이 들어오겠죠.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라 하는 것은 행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행함은 주어와 목적어가 무엇을 누가 시켜서 누가 지시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 이것은 전부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으로 빠져버려요. 거기다 뭘 집어넣느냐 하면, 법이 들어가고 이 법은 반드시 행함으로 등장한다 이 말이죠.

어떻게? 우리가 평소에 아침에 애들 늦잠 자면 어떻게 합니까? 말로 합니까? 흔들어 깨우죠. 일어나라고 강제로 일으키죠. 내 자식을 지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이 자식이 아니고 내 자식을 학교에 빨리 등교시키기 위해서 그 사이에 나의 행함이 개입되죠. 행함이 개입되어서 강제로 일으켜서 가듯이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법을 이루기 위해서 행함이 동원되죠. 그 행함을 보이라 이 말입니다. 그 행함으로 네가 믿는 지를 보겠다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믿습니다.’ 하면 그 주어가 내가 믿을만한 걸 골라서 믿습니다가 돼버려요. 그 ‘믿습니다’ 하는 것은 주님의 행함이 아니고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나중에 죽어서 좋은데 가려고, 천국가려고 내가 나를 천국 보내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어떤 강제성을 발휘하는 것, 계속해서 ‘너는 믿는 자 돼야 돼. 믿고 있지, 믿고 있지.’ 계속 나한테 재촉하고 책망하고 독촉하는 거예요.

‘어제도 믿었지만 오늘도 믿어야 돼. 나는 믿어야 돼. 그래야 구원받아.’ 이것은 전혀 야고보서에서 이야기하는 행함이 아닙니다. 왜? 원인이 내가 원인이고 결과가 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웃 사랑도 안 되고 주님의 영광도 되지 않고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도 없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천 명, 만 명 교인 모아봐야 소용없습니다.

이것은 흩어진 열두 지파가 아니라 그냥 정체성이죠. 기독교란 유대감에 불과한 겁니다. 유대감이란 돈 문제 끼어들면 다 깨집니다. 교회에 돈 문제하면 유대감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돈 빌려줬잖아. 집사님 왜 돈 안 갚습니까? 이렇게 나오면 깨지게 돼있죠.

이해했다고 하고 아까 신명기 27장 다시 합시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축복이야기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면 저주를 주시는 분이 원인이 되고, 우리는 저주받는 자체가 결과가 되죠. 그냥 저주주면 저주받아야 돼요. 축복주면 그냥 축복받는 겁니다.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나오는 행함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행함을 수용하는. 만약에 땅콩을 모종 둘 때 씨앗을 뿌리면 나중에 봄 되면 싹이 나잖아요. 그처럼 주님의 행위가 뿌려놓으니까 어떤 것은 저주가 올라오고, 어떤 것은 축복이 나온다면 그럴 때 이스라엘은 정말 이스라엘다운 이스라엘 되는 거예요. 그걸 필리핀이나 노르웨이나 아일랜드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고 그게 바로 열두 지파, 이스라엘에게만 하나님께서 그 민족에게만 그렇게 한 거예요.

그렇다면 이스라엘이란 열두 지파는 다른 민족과 달리 무엇을 봐야 되느냐 하면, 혈육적인 것, 우리가 원인이 되어서 우리에게 결과가 주어지는 그것과 하나님께서 어떤 원인이 되어서 우리에게 결과로 주어졌다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대비되는 서로 충돌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양쪽 다 보여줘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흩어진 열두 지파와 똑같은 그런 원칙 속에 여러분들이 놓여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열두 지파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이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 안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원인이란 말을 했지만 하나님이 어떤 원인이 되어서 다른 민족에겐 일어나지 않는 왜 이스라엘만큼은 자기가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인이 되고 자기는 모종밭처럼 저주 뿌리면 저주 일어나고 축복 뿌리면 축복 피어나고 왜 그러한 하필이면 우리에게 그런 일이 있는가 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했습니다.

열두 지파죠. 이걸 한 곳에 모을 때 그게 이스라엘 나라죠. 이스라엘 이름이 네 자이지만 전에 처음 이름이 두 자였습니다. 야곱이었어요. 야곱은 야곱이 이름 바뀌어서 이스라엘 되고 여기서 열두 지파가 나왔다면 야곱에게 담겨있는 하나님의 원인이 있다. 이 원인이 열두 지파까지 파급되니까 퍼져나갑니다. 이스라엘이 뭐냐? 왜 이스라엘이 축복과 저주를 보여주는 모종판이 돼야 되는가? 그것은 야곱이 태어날 때 없는데서 태어났거든요.

야곱은 하나의 텅 빈 무대죠. 무대가 되면 커튼이 있고 무대 뒤편에서 배우가 나오죠. 마이크 있고 조명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여기에 등장하면 이 사람이 야곱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 등장할 한 사람 더 등장해요. 둘이 쌍둥이 됩니다. 이 쌍둥이가 모든 우주 삼라만상의 비밀이에요.

이 야곱과 에서가 나타나기 전에 사회자가 말하기를 ‘이제부터 하나님의 계획인데 여러분 무대 위에 펼쳐집니다. 자 나오세요.’ 할 때 한 사람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여기에 쌍둥이가 나와요. 서로 마주보면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승자에게 축복이 돌아가고, 패자에게 저주가 돌아가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원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원인자가 축복과 저주를 보여주는 무대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이 무대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란 무대에 주인공이 없었는데 없던 주인공이 등장하니까 승자는 축복을 받고, 패자는 저주받고.

이 시점에서는 무엇이 축복인지 무엇이 저주인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까 신명기 28장 봤지요. 뭐가 저주였습니까? 하여튼 우리 몸에 평소에 노동하는 그 현장과 몸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등에 빈틈이 없도록 촘촘하게 심판을 내려요. 차라리 죽여 버리면 좋을 거예요.

그런데 이 저주라 하는 것은 살고자 하는 힘과 죽이고자 하는 힘, 양쪽 다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 현장을 저주를 보여주는 겁니다. 아까 아버지가 자기 다리에서 나온 자식을 자기가 먹을 때 그걸 저주라 했지요. 신명기 28장에서.

여러분 신명기 28장 사람들이 촘촘히 안 봐요. 들어가도 복을 받고 축복하고 끝납니다. 심방 가서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런 이야기 안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하나의 예언으로 보기 때문에. 씨가 돼요.

제가 오면서 아는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박사교회 다니던 전에 알던 집사님 댁인데 그 윗집도 박사교회 다니는데 그분이 평소에 ‘나는 70도 못 되서 죽을 거야’ 하다가 67 되서 죽었어요. 말이 씨가 되어 죽었답니다. 그 소리 듣고 저는 그랬어요. ‘나는 100살도 못 되서 죽을 거야.’ 아마 99살??

축복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던 축복받게 돼있고, 저주를 이야기하면 아무리 피해도 따라가면서 저주받게 돼있다는 그런 운명을 보통 예언이라 하기 때문에 이게 말씀의 위력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주를 안 좋아하는데

저주의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저주라 하는 것은 살고자 하는데 만만치 않은 것, 여기서 나오는 것은 고통과 수고와 슬픔이 나오겠죠. 이것을 저주라 한다 말이죠. 하나님께서 아예 이 인간을 죽이면 되는데 절대 죽이지 않아요. 살려두니까 살고자 하는 거죠. 살고자 하려면 내가 살아야 되니까 내가 원인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되니까. 그러니까 이 저주라는 것은 아담이 죄짓고 난 뒤에 보편적인 모든 인간에게 다 해당되는 거예요.

그런데 쌍둥이가 싸우는데 싸우는 이유가 저주성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아직 축복이라는 것은 둘 다 해당이 안 돼요. 서로 싸우는 것은 아버지의 축복을 많이 받아내기 위해서. 쉽게 말하면 내가 너보다 편하게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 그 복을 따내기 위해서 쌍둥이끼리 싸우는 겁니다.

그러면 승자가 축복 받고, 패자가 저주 받는데 한쪽은 승자가 되고, 한쪽은 패자가 되는 원인은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내가 저 사람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행위가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해야 되는 거예요. 똑같이 둘 다 밥 먹고 살려고 열심히 하는데 한쪽은 이해 안 되게 돼있어요. 왜? 주님께서 미워하기 때문에 그렇고, 한쪽은 그 사람의 행동과 상관없이 자꾸 복을 받게 돼있어요. 왜?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건 인간의 행함이란 아래층 위에 사랑과 미움의 층이 있어서 행함과 상관없이 사랑 줄 자에게 사랑주고, 미움 줄 자에게 미움을 주는 겁니다. 이 사실을 이 밑에 있는 쌍둥이는 둘 다 몰라요.

이스라엘이 아말렉하고 전쟁할 때 여호수아가 칼 들고 섬겼잖아요. 그런데 전쟁의 모든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들의 칼 솜씨하고 전혀 상관없이 모세가 지팡이를 들면 승리하고 모세가 지팡이를 내리면 패배하죠. 사람들은 모세만 보이는 거예요. 모세가 지팡이를 드는 게 아닙니다. 지팡이가 모세를 가지고 노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면 승리하고, 패배케 하면 패배하는 겁니다. 그 점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민족이 흩어진 열두 지파, 옛날의 이스라엘, 오늘날 교회를 두고 이야기한 겁니다.

성경이라 하는 것은 굉장히 특이해요. 사랑이냐 미움이냐, 미움이냐 사랑이냐? 여기서 결판 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벌써 야고보서 결론부분에 이미 접촉했어요. 율법을 대할 때 ‘뭔데 저렇게 사랑하십니까?’라고 율법을 대하신다면 그게 율법의 완성이에요. 쉽게 말해서 내가 율법을 지켜야지. 행위의 원인을 나한테 둔다면 이거는 둘 다 살려고 죽어서 좋은데 가려고 싸우는 꼴밖에 안 되고 이거는 전혀 축복과 관계없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덕분입니다.’라는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아로마 향기 같은 사랑의 향기가 발산됩니다. 그것이 율법의 모든 완성을 이루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법이 왔냐?’ 그럼 내가 이것 지켜서 축복 받은 사람 되겠다고 설치면 이미 그것은 저주받은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원인 자체가 자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아무리 애써도 항상 그 사람은 자기 실적과 업적을 자꾸 검토하게 마련입니다. 이만큼 기도했는데 얼마나 챙겼을까? 자꾸 자기가 원인이 되었으니까 어떤 결과에 대해서 원인 수정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가죠.

그걸 제가 고상하게 이야기한다면, 기존 관계에서 빠져나오라. 얽히고설킨 기존 관계에서 흩어진 열두 지파는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빠져나오면 돼요. 빠져나오는 방법이 야고보서에 마지막 장에 보면 이렇게 돼있습니다. 어떤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품삯을 못 받았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고용주가 다 가져가고 노동자에게 품삯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억울하다 하니까 야고보서 하는 이야기가 이른 비, 늦은 비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심판주가 문 앞에 있으니까 주께서 다시 오시게 되면 네 모든 고통과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다 했어요.

그게 뭡니까? 지상에 있는 고용자와 사용자의 기존 관계에서 빠져나와서 주님의 하실 일에 맡겨라. 제 말이 어렵죠. 이걸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 말이 안 되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까 너와 나의 관계에서 벗어나서 나와 너 사이에 흩어진 열두 지파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집어넣어라 이 말이죠. 왜? 이분이 현재 나를 구원해주신 원인자이기 때문에. 원인자인데 이스라엘에 의하면 사랑의 대상으로 그냥 어디 가도 사랑받기로 그렇게 사랑을 줬기 때문에 사랑 받은 자는 기존의 나와 너 일대 일 직접 관계에서 빠져나오면 원인자에게 예속된 사람이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야고보서의 내용은 뭐냐 하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관계에 있기에 이것이 사랑이 되느냐를 율법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 야고보서의 주제가 되는 겁니다. 야고보는 흩어진 열두 지파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사랑의증거가 뭡니까? 사랑의 증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요.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사랑을 받았어요.

야고보서 2장 1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됐습니다. 이미 믿는 너희라는 열두 지파고 야곱처럼 사랑을 받았어요. 그 사랑이 원인이 되어서 현재 우리라는 결과물이 나왔는데 그 사이에 어떠어떠한 것이 사랑으로 모종을 부어놨는데 이것이 사랑, 저것도 사랑, 이것도 사랑 온 천지에 사랑이 올라오는 거죠. 그 사랑이 어째서 사랑이냐를 율법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야고보서의 주제가 된다는 거죠. 참 쉽죠.

좀 더 나가봅시다. 이제는 골치 아파요. 그래서 여러분 이미 결론부분에 접촉했는데 과정이 복잡해요. 사랑을 할 때는 반드시 미움이 관련되어서 사랑이 나와요. 왜냐하면 사람은 날 때부터 원인자가 ‘나’입니다. 반드시 내가 어떻게 했기에 이런 것이 주어졌을까 반드시 찾게 돼있습니다.

심지어 고3이 시험을 치는데 시험문제가 자기가 다 아는 것만 나왔다 합시다. 그래서 평소에 일 등할 애가 아닌데 자기 반에서 일 등 했어요. ‘선생님께서 어떻게 내가 아는 문제만 냈을까?’라고 물을 때 ‘내가 평소에 선생님께 잘 했는가?’ 했는데 선생은 아마 생각 없이 문제를 냈는데 애가 다 알아 맞춘 거예요. 그럴 때는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면 안 되죠. 야고보서 특징은 원인을 나에게서는 찾지 맙시다.

그러면 내 안에 뭐가 둘둘 감겨 있느냐 하면, 철에 구리선 감으면 전기가 생기듯이 나라는 자석막대에다 코일 감아서 하면 전기 발생되죠. 반드시 나라는 것에 율법이 감겨 있어서 율법이 완성되면 사랑이 나옵니다. 사랑이란 전기에너지가 나와요. 하나님께서 법을 줬으면 나는 사랑이란 율법에 의해서 담겨져서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눈 뜨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나라는 주체는 사라지고 날마다 하나님의 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나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우리를 안개라 하죠. 야고보서 4장 14절에 “너희는 잠간 보이는 안개니라” 우리가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물방울, 우리는 있으나마나 우리한테는 의미 없는 하나의 물방울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드신다면 하나님 법에 잠겨있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안 드니까 문제라는 거예요. 안 드니까 우리 주체가 다시 죽었던 주체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거예요.

‘주님이여 제가 뭘 하면 이 도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까?’ 야고보서 4장을 안 보니까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감겨야 되는데 우리는 아무 감긴 게 없어. 맹탕이라. 감긴 게 있긴 있다. 자식 애들, 시어머니 관계, 남편 관계 이런 관계에 있죠. 율법에 의해서 감기질 않으니까 생생하게 살아있으니까 내가 안개라 하니까 안개를 거부하는 거예요. 저는 안개 되기 싫어요. 주님이 알아요. 우리는 안개 도기 싫어하는 줄 알아요.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원인을 찾지 않잖아요.

그래서 야고보서를 할 때 사랑이란 걸 쉽게 이야기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려운 게 야고보서 그런 구조 자체를 누가 반발하느냐 하면, 오늘날 21세기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소위 교육을 받은 우리가 극구 자꾸 밀어내요. 이런 구조 안에 있는 내가 되기 싫다는 거예요. 나는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야고보서 2장에 뭐가 있느냐 하면, “세상에 벗하는 자들아 너는 하나님의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이런 게 또 있어요. 마치 DNA처럼 둘둘 감겨있으니까. 이 부분에 안개, 이 부분에는 세상과 짝하고 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래도 우리는 용서 받았잖아요.’ 하면 이 밑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가 나와요.

그래서 이것이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고 전부다 한 줄로 이어져있어요.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너희에게 주어졌음으로 너희 현재 구조는 단독적인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의해서 둘둘 감아있는. 그러면 우리는 뭘 알아야 돼요? 이것이 감기지 않은 사람이 받을 저주, 하나님의 미움 이것을 겸하여 같이 받아야 되죠.

야곱이라 사람이 축복이란 개념을 알려면 반드시 쌍둥이, 우리는 우리의 쌍둥이를 찾읍시다. 쌍둥이 찾기 쉬워요. 조금만 경주에 나가면 세상 구경하고 있다고. 어떤 유명한 사람은 그림자라고 하죠. 우리의 어두움, 우리의 그림자. 우리 있으면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것이 쌍둥이 같이 따라붙는 것. 우리의 그림자니까 그림자의 특징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절대로 우리가 미국 가고, 영국 가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어두움이에요. 양쪽 다 해당돼요. 쌍둥이니까 이런 몸도 가능하고 또는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

여기에 무슨 성화론 같은 것 성립 안 돼요. 성화론 해서 점점 더 그림자가 옅어지고 이런 것 없어요. 나이 구십이 되고 얼마가 되도 항상 그림자는 오히려 길게 늘어뜨리죠. 내신 성적이 이만큼 된다 해도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지는 겁니다.

이만큼 성숙된 것을 포기 못하죠. 성숙되기 전까지는 개판 같은 인생 같으면 자기 과거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고 난 과거를 생각 안한다고 잘라내고 싶지만 만약에 착해보세요. 2008년도부터 2010년까지 계속 착해보세요. 이걸 어떻게 떼어냅니까? 못 떼어내죠. 이런 것들이 전부다 내가 원인이 되어서 이만큼 훌륭한 사람 되었다는 자기 축복과 저주, 다른 이방나라적인 요소가 계속 붙는 겁니다.

그래서 야고보를 해석하려면 이러한 사랑과 미움, 미움과 사랑, 우리의 어두운 면 이런 경우를 양쪽 다 설명해줘야 돼요. 우리가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야고보 자체가 짝을 맞춰요. 그 짝 중에 하나 봅시다. 야고보서 1장 8절 누가 읽어보세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보세요. 우리의 어두운 면 나오잖아요. 어두움은 우리와 관계없는 게 아니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이런 조로 내가 원인이 되어서 이런 결과가 계속 나온다 이 말입니다.

그럼 사랑이 취소됩니까? 사랑이 취소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이라 하는 것은 저주와 짝을 이뤄야 사랑이 사랑답게 되는 겁니다. 사랑이란 미움과 짝이 될 때 사랑의 값을 하고, 축복이라 하는 것은 바로 저주와 관련돼있을 때 축복이 축복으로서 부각이 되는 겁니다.

여기 8절에 보면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다. 누가 이렇게 했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누가 이렇게 했다고 합니까? 내가 정신을 안 차려서 내가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주받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항상 원인을 자기한테 찾아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면 이런 일 없을 건데 내가 정신 못 차려서 이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축복이 뭐며, 저주가 뭐며 이런 게 저주구나. 이런 게 축복이구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바탕, 모종판에 불과한 거예요. 이걸 아는 사람이 에서가 아니고 야곱이라 이 말이죠. 야곱 차원에 들어가 보면 아는데 이게 에서 차원에 들어가 보면 계속해서 원인을 자기한테 찾는데 해결점도 없는데 계속 찾고 있는 거예요.

차 많이 밀리죠. 늦게 오셨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신명기 27장에서 이러이러한 자는 저주받는다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고 화답했습니까? ‘아멘.’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이 함께 있기 때문에 유일한 민족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사랑받았는데 저주이야기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그것은 여전히 우리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열두 지파의 속성상 반드시 축복을 이야기하려면 저주를 이야기해야 되고,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미움을 이야기해야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이 다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복 받는 것이 내가 원인이 아니었구나’를 비로소 깨닫는 거예요. 이런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아멘. ‘아멘’ 말했다고 저주 안 받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주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날마다 깨우치는 유일한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구원받았기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이야기해야 되는 겁니다.

지금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해 보면 성경 찢어버립니다. 성경, 옛날 신화 책으로 나한테 부담주려고 하느냐 하고 외면해버려요. 이런 자는 저주받을지어다. 아멘. 그걸 수용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받았다는 증거기 때문에 받는 거예요.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구약과 야고보가 연결돼야 돼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축복과 저주의 원인은 스스로 축복, 저주받는 자에게 행함이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자기 행함으로 저주받아야 되지 축복 받기 위해서 행함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다 했습니까? 사랑받는 자와 미움 받는 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 자는 이 사실에서 이 차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사랑 때문에 복 받았구나.’ 이렇게 하지 이 사람은 행동 때문에 저주받고, 나는 내 행동 때문에 복 받는다는 것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고 내가 복 받는 것은 사랑 때문에 복 받고, 이 인간이 저주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필히 미워하기 위해서 그 사람은 사랑의 차원에 눈이 감기도록 어떤 경고에도 주님의 말씀의 축복이 들리지 않도록, 수용되지 않도록, 믿음이 생기지 않도록 그렇게 계속 조치를 해주시는 겁니다. 그 원인을 찾아내는 거예요. 그 원인의 관계를 야고보서에서는 율법관계로 표현한다. 이게 지난 40분 동안 한 내용이에요.

그렇게 되면 구약하고 야고보서의 차이가 뭡니까? 구약도 율법 중심, 야고보란 신약도 율법 중심 그러면 차이점이 없지 않습니까? 아까 제가 이야기했죠. 인간 속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율법이 감겨 있다. 야고보서는 이걸 ‘지혜’라고. 지혜는 특징이 하늘에서 오게 돼있고, 두 번째 특징이 중요한데 구조다. 구조적으로 짜여져 있어요.

영화 보면 레이저 광선입니까? 보안 장치하는데 보물이 있고, 중요한 모나리자 있고, 세계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 있고 도둑놈이 훔치러 갈 때 그냥 눈으로 보면 맹탕이지만 안경 끼고 보면 선들이 있잖아요. 미션 임파서블 보면 있지요. 중앙에 보물이, 다이아몬드 있고 옆에 선이 있잖아요. 졸리란 배우 보면 유연성이 있어서 기어이 도둑질해서 빼내잖아요.

그것처럼 지혜의 특징은 야고보서 1장에 하늘에서 오고, 두 번째는 이게 구조적이라서 건드리면 폭파하게 돼있습니다. 온 천지에 구조로 돼있어요. 아까 야고보서 4장에 우리는 안개죠. ‘안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왜 안개냐.’ 이렇게 나오면 폭발하게 돼있다고. 어느 도시에서 내가 장사해서 이득을 보리라. 이것 폭파하게 돼있어요.

그걸 벗어나려면 야고보서 4장 15절에 보면,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 할 때 레이저 광선을 통과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서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리니 몇 번 생각하십니까? 우리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죽기도 하리라는 것은 아예 없잖아요. 우리 머리에 죽기도 하자는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만날 우리는 ‘우리 이렇게 살자.’ 사는 것만 있지, ‘여보 주의 뜻이면 죽읍시다.’라는 말을 아침 눈 뜨면 합니까? 우리는 미션 임파서블. 안 돼. 우리는 다 걸려.

우리를 감싸고 있는 말씀의 구조에서 밖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어떤 때는 착각해서 홀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사건을 주셔서 이 구조를 우리가 법에 의해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 법이 사랑이고, 이 법을 야고보서는 거울이라 해요.

거울이야기 골치 아픕니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 이야기 동원돼야 되고, 제가 이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만 [미녀와 야수] 이야기해야겠습니다. 그것하고 10분 쉽시다.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 누가 읽어보세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곧장 잊어버리죠.

재미있는 것은 거울 보면 거울 안에 어떤 아저씨가 있죠. 제가 거울 본다면. 거울에 봤던 것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내 본 모습은 전면 거울을 봐야 되죠. 그럼 날마다 우리는 뭘 봐야 됩니까? 거울을 봐야 되죠. 우리는 거울 속에 있죠. 몸이 있으면 전부가 거울 속에 있는 거예요. 거울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보는 겁니다. 율법에서 너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평소에 보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겁니다. 율법 안에서 흩어진 열두 지파야. 하나님 율법 안에서 너는 어떤 모습인가를 평소에 얼마나 생각하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추적해야 할 것은 이렇게 우리를 감고 있는 율법이, 아까 야고보서 2장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겼던 너희들이 되죠. 영광의 주 믿는 믿음을 받았으니. 믿음이라는 건 운반체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떤 믿음의 내용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생긴 현상이 흩어진 열두 지파가 되었는데 지파의 특징은 우리가 사랑을 받았단 말이죠. 율법으로 칭칭 감긴 그런 사랑을 받은 겁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여기서 의문점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뭘 했기에 또는 어떻게 했기에 우리로 하여금 단독으로 살지 않고 사랑의 율법으로 칭칭 감게 하는가? 뭔가 칭칭 감는다 하니까 어떻습니까? 상당히 부담되잖아요. 우리는 옷 입는 것도 귀찮아서 집에 가면 편하게 입는데 뭔가 늘 칭칭 감고 있으면 우리는 끊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에게 부담이 되는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 사랑을 입었다고, 믿음을 입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관계가 잘 연결이 안 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란 말이죠. 그걸 제가 설명 드리고 10분 쉬겠습니다.

[미녀와 야수]란 동화가 있어요. 그 내용이 뭐냐 하면, 어떤 아버지한테 딸들이 있었는데 주인공 미녀가 막내딸이에요. 아버지가 막내딸 좋아하고 막내딸도 아버지를 좋아했는데 다른 딸들은 시기 나는 거예요. 아버지가 ‘내가 너희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어떤 것 하면 좋겠느냐?’ 하니까 딸들은 이층 집, 고급 자동차 하는데 이 딸은 아버지가 부담될까 싶어 하얀 백합 한 송이가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듣고 백합을 꺾기 위해서 야수가 사는 마법의 성에 가요. 백합을 꺾는데 야수한데 걸렸어요. 타협을 합니다. 꽃 한 송이 가져가도 삼 개월 후에 당신의 목숨은 간다. 그래서 삼 개월만 사는 조건 하에 백합을 줬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딸이 내가 너무 철없는 걸 원해서 가슴 아파서 자기 아버지 대신 죽기 위해서 드디어 마법의 성에 들어가요.

삼 개월 있다 보니까 그만 정이 들었네. 이제는 야수가 미녀를 좋아해요. 하여튼 미녀는 어디가도 다 좋아해.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녀가 가려하니까 일주일만 가는데 나중에 야수가 미녀가 보고 싶어서 상사병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 미녀가 다시 야수한테 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사랑에 탄복해서 야수와 결혼하기로 했을 때 야수는 야수의 탈을 벗고 멋진 왕자님이 되었다는 그 이야기 나오거든요.

여기서 하나님께서 저주받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바로 아주 위험스러운 야수의 모습으로 왔을 때 진짜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야수 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저희들끼리만 눈치 채는 그런 방식을 사용한 거예요.

방금 제가 뭐라 했습니까? 사람에게 율법이 휘감아있는 것이 귀찮고 짜증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해놓고는 왜 야고보서는 더 휘감아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해서 완전히 사도 바울하고 대판 싸울 판인가. 왜 자꾸 우리는 안개니라 하고, 모든 것에 혀로써 형제를 참소하면 저주받고, 두 입으로 찬양하면 안 되고, 세상과 원수져야 되고, 율법을 다 지켜야 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율법 지킨 자도 아니고.

성경 전체를 보게 되면 잔뜩 우리에게 마치 철조망 같은 그런 것이 휘감기게 한 것처럼 느끼게 할 거예요. 그래서 루터는 말하기를 이걸 지푸라기 성경이라 했어요. 예수님을 담는데 지푸라기나 뱀이나 이런 식도 있지만 사실은 별로 설득력 없고. 하여튼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보다는 못하다는 그런 이야기한 거예요.

어쨌든 간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면 다 벗어버려야 되는데 시원하게. 더 꼬이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고 하는 것은 이 미녀가 야수 속에서 사랑을 발견했을 때 야수 속에서 사랑만 사랑한 것이 아니고 뭐까지 사랑했습니까? 그 사랑을 평소에 위험스런 야수의 모습으로 했던 그 자체 전체를 사랑하게 되겠지요.

보통 사람들은 율법을 사랑합니까? 율법은 짐이잖아요.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이 짐이 아니고 그 자체 전체 껍데기까지 포장지까지 합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들로 하나의 동아줄로 그렇게 볼 때 비로소 제대로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고 야고보는 이야기하는 겁니다. ‘믿습니다’ 말로만 혀로만 누가 못하느냐 말이죠. 그렇게 믿습니다하지 말고 율법의 행위가 네 몸에서 발산 된다면 그야말로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10분 쉬고.

첨부파일 : 20100410a 울산특강.hwp (56.0K), Down: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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