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 선물
마귀가 주는 선물광야를 통과하는 자 - 보호자(두 하나님)싸움저번 주에 샬롬의 의미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이 옴으로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개시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요구하는 평화의 조건이 이미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주님으로 시작되는 평화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평화를 깨뜨리는 주님을 못밖아 죽였습니다. 똑같이 참선지자들은 이 땅에서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와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을 외치지만 참선지자의 외침을 죽음으로 몰고갑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전혀 평화 롭지 못한 모습이고, 자신들의 평화를 유지하는 자는 주님과 그의 증인들을 죽임으로 몰아버림으로 이 땅에서 평화로움을 누리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살았습니다. 이런 죄의 심각성을 보시고 홀로 눈물 흘리시며 이 악한 권세를 심판 하고자 오신 분이 바로 샬롬의 왕, 평화의 왕이십니다. 죄가 심판 되지 않는 곳에, 죄악이 해결되지 않는 곳에서는 절대 평화가 없기에 심판의 주로 오시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흘림 없는 방식으로 평화가 오길 바랍니다. 이것이 거짓선지자와 함께 한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입니다.오늘은 만화책에 나타났듯 주님의 이 땅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기전에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됩니다. 이 시험을 통과 하지 않고서는 메시아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데로 한 의가 나타나서 뒤바꾸어 버리겠다는 것이 바로 메시아의 임무입니다.(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렘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렘 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무엇을 뒤바꾼다는 것일까요? 죄로 인해 엉망이 된 마귀세계를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뒤바꾸러 오신 분이 왜 뒤바꾸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마귀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물을 받고 있었기에 주님은 메시아로써 그것을 먼저 깨뜨리고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는 겁니다.그럼 마귀가 사람들에게 준 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마귀는 인간에게 늘 끊임없이 하나님을 선물로 줬습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자 지금 성령의 이끌림으로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 마치 구약의 출애굽의 상황처럼 물과 성령으로 세례(죽고 죽음을 이긴)를 받은 상황이 애굽의 10재앙으로 장자를 죽였다가 그 심판 속에서 다시 산 것처럼, 홍해를 통과한 pass 패스한 자 인 이스라엘(하나님의 군사)처럼 이제 광야로 인도함 받는 것처럼 지금 상황이 그런 것 같습니다.자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주님의 목적으로 인해 늘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이끔림을 받을 때 그들은 10번 이상 원망을 합니다. 그 원망한 자들 다 제거 한 후에 요단강을 건넙니다. 딱 한사람만 남고 그들은 다 광야를 통과하지 못하고 죽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지금 광야에서 40일 동안 주린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 아래 나타나는 겁니다.그 마귀가 3가지 시험을 예수님에게 합니다. 먼저 그 시험이 우리에게 참 낫설지가 않습니다. 너무너무 그동안 무지 많이 친근하게 들어오던 말입니다. 누구 말이요? 마귀 말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와 전혀 매치가 안되는 낫설은 말은 오히려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물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마귀의 선물1. 마귀의 첫 번째 선물 . 그 첫 번째 명령은 가로되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어디서 많이 듣던 내용 아닙니까? 많은 목사들이 외치는 설교 아닌가요? 이 말에 아멘 아니한자 없을 껍니다. 얼마나 친근한 명령이요 질문 아닙니까? 이심전심이 되어 설교하였고, 듣기를 바랬던 좋은 말씀이 아니던가요?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이 오히려 참 우리에게 어색합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신 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참으로 낫설은 답변입니다. " 내가 믿는 예수님 맞어? "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심전심이기는커녕 참으로 우리 앞길이 막막하게끔 느껴질 답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좋은 예가 요6장에 나타납니다.(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이런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야 말로 진짜 선지자다 라고 예수님의 능력을 높이고자 임금 삼을려고 했습니다. 메시아란 바로 이런 왕이기에 당신이 우리 왕이 되어야만 합니다고 주장합니다.(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그런데 예수님은 도망 다닙니다. 거부하십니다. (요 6: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찾고 찾아서 겨우 찾은 예수님을 만나서 듣는 말이 이런 핀잔입니다.아니 왜 우리가 임금으로 모시겠다는 것을 왜 거부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우찌 삽니까? 떡도 먹고 말씀도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왜 우리가 원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아닙니까?2. 그 다음 두 번째 마귀의 선물마 4:5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마 4:6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는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손으로 너를 붙들어서 네 발이 돌이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현대인의 성경)(시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개역한글)캬 이 대목이 저는 너무너무 마음에 듭니다. 얼마나 많이 들어온 교회에서 듣던 비젼 아닙니까? 기독교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리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선교를 위해 이런 메시지를 한 두 번 들어 온게 아닐 정도입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외쳐오던 메시지 아닙니까? 이런 기적 능력과 기사를 베풀어 달라고 한 우리의 모습이었지요. 이젠 그런 기독교 문화가 매스컴에 침투하여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이런 소재를 삼고 있으니 흥분이 아니 될 수 없습니다. 그야 말로 슈퍼 울트라 캡션 짱입니다. 이렇게 들뜨게 만드는 이 메시지 너무 너무 큰 선물 아닌지요.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강산애 노래 중)그러나 주님의 답변은 너무 냉소적입니다.(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신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신 6: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신 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왜 이것이 시험입니까? 지금 마귀는 너를 지키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가스펠도 있지요.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시편 내용으로 작사한 곡인데요(시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시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너도 나도 즐겁게 부르는 곡 아닙니까? 아니 그런데 왜 주님은 시험치 말라고 하시니 참으로 난해하고 이해 하기 어렵습니다.3. 자 그 다음 마귀의 세 번째 선물. 짜자잔 산타크로스 할부지가 선물 보따리를 풀 듯 잔뜩 기대하는 심정으로 그 선물을 풀면 이렇습니다.(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이 얼마나 좋은 선물 아닙니까? 예수님이 구지 십자가 질 필요가 무엇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안 지신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또한 십자가 질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가지기만 하면 우리도 고생길 끝입니다. 십자가의 저주로 예수님이 피흘리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 좋으신 예수님이, 사랑의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니이까 라는 그런 말도 하나님께 할 필요 없습니다. 이 간단하고 깔끔하고 손쉽게 구원을 모든 만방에 베풀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선물 꾸러미에 있네요. 그러면 우리 또한 천국 가는 것이 한 결 쉬워 질껍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설교 한두번 들어봤습니까? 이 맘때쯤 행해지는 설교가 다 이런 내용 아닌가요? 한해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이 시점에 얼마나 좋은 이 메시지가 교회에서 얼마나 많이 울려 퍼집니까?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천하 만국이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그 선물을 거부하고 너무나 차갑게 말씀하십니다.(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눅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자 이제 한번 다시 정리 해봅시다. 마귀는 만화책에 나온 모습처럼 박쥐날개처럼 흡혈귀 모양의 뱀파이어가 아닙니다. 마귀는 광명한 천사요 순한 양의 모습입니다.(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그 마귀가 인자한 모습으로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처럼 선물 보따리에 선물 가득히 담고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마귀의 선물을 그동안 받았던 우리들은 예수님이 저렇게 냉소적이고 차갑게 증거하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마귀가 알려준 하나님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선물은 결국 뭡니까? 그 종합 선물 세트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닮기, 하나님 따라잡기, 하나님처럼 되기. 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선물 아닙니까? 언젠가는 먹고 말꼬야 라고 외치는 치토스 광고처럼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가고 말꼬야(하나님 나라), 언젠가는 닮고 말꼬야(하나님 형상), 언젠가는 따라잡을꼬야(하나님의 지혜).자 이 마귀가 제시한 선물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설교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이 내용을 놓고 얼마나 기도 많이 했습니까?아니라고요? 바리새인은 두 번째 선물을 제시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표적과 기적을 보이면 믿겠다. 메시아란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마귀가 바리새인에게 심어놓은 신학입니다. 이런 조건을 우리가 얼마나 새벽에 정성을 더욱더 보이면서, 또 잠을 안자고 금요 철야 때 주님에게 요구한 것 아닙니까? 우리의 모습입니다.주님 제발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축복의 기적을 베푸소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마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마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베드로는 어땟나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마16:16) 이 놀라운 고백을 성령을 통해 했던 베드로가 주님이 비로소(마 16:21) 요나의 표적을 보일때가 되었다고 하시니 베드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런 일은 제가 있는 이상 절대 안 미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예수님을 붙잡고 간청할 때 주님은 스승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감싸안으며 위로와 격려는커녕 매몰차게 "사단아 물러가라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23) 라고 도통 이해 할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그 잠시 떠난 마귀는 여지없이 자기백성 바리새인 사두개인을 통해 메시아 됨을 예수님에게 선물을 베풀었습니다만 주님은 거부 했습니다. 또 수제자 베드로를 통해서도 주님의 메시아 됨을 자기 사랑으로 사람의 일로 지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뒤로 물러가라 외치시고 그 베드로의 간절한 청함을 차갑고 매정하게 거부 하십니다.그렇다면 마귀는 엄청난 선물을 제시했고 함께 창업을 하자고 손내밀고 동업자로써 이 세상에 구원을 베풀자는 그 손을 부리친 예수님을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마귀는 그때 광야의 추억, 배신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짐을 할껍니다. 이 선물을 거부한 배신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요. 그 배신의 댓가가 어떠함을 똑똑히 보여줌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 갑니다.이제 결론을 말하고자 합니다. 마귀가 제시한 그 선물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다움이 우리가 그동안 들어온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자기자신이요. 예수님 자신이 보여준 하나님 만이 진짜 하나님이다는 겁니다.(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즉 주님은 자기 양만 구원하러 온 진짜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자기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목자는 자기 양의 허물을 벗기고자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나 마귀가 제시한 하나님은 죽는 것 없이, 요나의 표적 없이, 십자가의 피 흘림 없이, 하나님 형상 닮기가 가능하다고 제시하면서 그동안 우리 아비의 자리에서 우리를 길들여 왔습니다. 그 마귀가 심어 놓은 하나님을 광야에서 거꾸로 서서 털털 빈털털이로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의 광야였듯이 이 광야를 통과하지 못하는 자는 메시아도 아니요, 주님의 자녀도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이 광야를 통과해서 우리에게 손짓하십니다. 그 가짜 메시아 상, 가짜 하나님 상, 가짜 예수님 상을 버리고 빈주머니로 만들도록 자꾸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우리를 십자가로 몰아가십니다. 선한 목자는 반드시 그 십자가 우리(양우리)로 우리를 몰아 넣으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렸엇음을 알게 하시고, 자기 양을 위해 기꺼이 목숨 버린 그 사랑을 알게 하십니다. 진짜 하나님은 오직 십자가에서만 증거됩니다. 그 길을 따라오도록 성령을 약속하셔서 죽음마저도 이기지 못하는 십자가의 사랑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주님! 마귀의 선물이 그동안 우리가 갈망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 어찌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또 누가 그 선물을 거부할자 있습니까? 마귀는 그런식으로 우리를 길들여 왔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심어 놓았습니다. 늘 기적에 목말라하고, 기적에 갈급해 하는 기적중독자로 만들어 기적을 갈구 하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일어나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환자들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환자인 우리를 고쳐 주소서. 주님 이땅에서 머리 둘곳 없으신 주님이 참 하나님을 십자가에서만 보여줬듯이 이제 마귀가 알려주는 가짜하나님을 광야에서 버리고, 주님이 통과하신 이 광야를 주님이 말씀으로 물리쳤듯이 우리 또한 이 약속 믿고 굳게 설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유재성: 광야같은 이 세상을 함게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식구가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01/20-13:01] 김대식: 유재성 집사님 먼 곳에서도 복음을 통해 자유함을 누리시는 모습이 아름다와 보입니다. 그것이 찬호와 현호에게 보여줄 부모의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건강하세요. [01/24-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