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 목사님의 "예수사회" 중
이근호 목사님의 "예수사회" 중
이름 : 쥴리(IP:75.18.180.79)
다음은 황희상이라는 분이 이근호 목사님의 글에 강권적으로 동의하면서 사견을 개진한 글입니다
믿으라+ 복받으라+ 돈내라= 집짓자!
지금의 한국 교회를 보고 있노라면 착잡함에 그저 하늘만 쳐다보게 된다. 결코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공식이 버젓이 적용됨을 보면서, 지난 100여년의 한국 교회의 발자취가 정녕 위의 공식에 의한 결과물인가 한탄해 본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앞으로도 세계를 품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슬초 같은 교회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 교회들이 예배당 평 수를 넓히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소유하려고 덤벼든다. 절차도 뻔하다. 일단 교인 수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빚을 져서라도 부지를 사들인다. 교인들에게 예배당 건물을 거룩한 성전이라고 속여 건축 헌금을 강요한다.
소위 '성전 건축'이 완공되면 교육관을 짓는다며 또다시 부지를 사들이고 건물 짓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교육관마저 완공되면 이제는 수양관을 짓기 시작한다. 수양관마저 완공되면 예배당을 거룩한 성전이라 하여 금촛대를 갖다 꽂고 최고급 의자와 강단, 스튜디오를 차려도 좋을 만큼의 음향 시설을 확충한다.(이렇게 해 놓았으니 교회 문을 열어 둘 수 있겠는가?) 어느 교회든지 목회의 방향이 건물짓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면 위의 절차를 따른다. 한치의 오차도 없다.
일단 건축에 눈이 돌아가면 진정 중요한 '영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교인들은 마치 건축 헌금을 내는 존재로 여긴다. 각 속회 회장이나 구역장들을 고객 관리를 철저히 해 주는 사원 정도로 여긴다. 피라미드 회사가 따로 없다. 그냥 내버려 둔다면 이들은 예수님 오시는 그 날까지 지상 명령은 제쳐둔 체 언젠가 무너지고 말 건물을 애써 짓고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너무 오랫동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명백히 예수님의 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처럼 위장하는데 진절머리가 난다. 한마디로 '놀고 있다'. 정말 종교 쾌락 안에서 놀고 있다.(중략) 종교 오락의 장소가 되는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교회를 세우는 주체는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나름대로 생계 수단이 확보된 쪽과 다른 하나는 교회 말고는 뾰족한 생계 수단이 없는 쪽이다. 이 두 주체가 만나 교회라는 것을 탄생시킨다. 달리 말하자면, 한쪽은 돈을 내놓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수고비를 받는 쪽이다. 돈을 내는 것은 일반 교인들이고 돈을 받는 것은 목사이다(격월간,예수사회,96.12.,이근호 목사)."
좀 과격한 표현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분의 시각은 정확했다. 소위 '성전 건축'을 한다는 교회들에 한해서는 말이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 목회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셨는지를.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이 있다. 놀라운 변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도들이 성전이다.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구약의 성전이 성전이 아니라, 이제 너희가 성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알라는 말이다. 왜 이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뜻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좁은문,박철수 목사)."
성전은 건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다. 또한 우리 자신이 곧 성전이다. 이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것은, 주일 강단에 서서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면서도 광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성전 건축을 위해 얼마를 작정하였으니 헌금을 하라'고 다그친다는 것이다.
성도 숫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그들의 영혼 하나 하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지 못하는 교회가, 엉뚱하게 건물을 짓기 위해 매일 땅을 치며 기도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한심스럽다. 진짜 성전은 무너져가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들은 지금 예배당을 짓는 것이 성전 건축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전을 건축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기뻐 받으셨을 뿐, 그를 사랑하셔서 전 건축을 막으셨다.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사무엘하 7장 7절)."
결국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후에 다윗의 자손, 곧 그리스도가 성전을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그 '다윗의 자손'이 자신을 가리켜 한 말이라 여겨 성전 건축을 감행한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허락하셨으나 다음과 같이 분명히 경고하셨다.
"네가 이제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열왕기상 6장 12절)."
성전을 지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랬던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건물을 통해 영광 받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물론 건물도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건물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솔로몬이 자기의 궁을 십 삼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열왕기상 6장 38절∼7장 1절)."
솔로몬의 의도는 좋아 보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20년간의 과도한 건축 사업에 대해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에게 다음과 같이 고한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열왕기상 12장 4절)."
결국 이스라엘은 둘로 갈라지는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일련의 사건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교회는 어떠한 길을 선택하겠는가? 다윗의 길인가? 아니면 솔로몬을 택할 것인가? 한국 교회를 향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외친다.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예배당을 늘리지 말자. 교인이 넘쳐나서 도저히 더 이상 예배 드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나면, 그 때는 교인이 없는 작은 교회의 이미 지어진 예배당을 채우자. 집 앞의 작은 교회를 마다하고 모두들 크다 하는 부자 교회로 모여들어 '예배당이 좁으니 좀 더 크게 짓자'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
예배당이 성전이다? 그러니 온 맘과 정성으로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전교인 작정 헌금? 일천 번제? 성전의 격조와 품위를 높여주는 고급 원목 강대상? … 참으로 뜯어 고쳐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큰 수술이 필요하다. 뜯어 고치는 것, 이것이 의 사명이다. 허망한 헤롯의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주님의 사명이 그것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안 믿는 자를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할 사명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왜곡된 신앙을 마치 진리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시야를 제공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이번 호를 편집하면서 새롭게 다짐한 바이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하나님의 승리의 문화로 고치고 갱신하는, 사실 우리에게는 더 긍정적인 꿈과 소망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부 정리부터 할 때임을 느낀다. 교회가 먼저 바로 서고 말씀 안에서 힘을 얻어 흥왕할 때, 그 때에 세상을 바라보고 다시 뛰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다.
정치가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를 다 말아 먹듯이, 한국 교회가 계속해서 잘못된 신앙관을 가르친다면 피해는 순진한 성도들에게 돌아간다. 는 그러한 교회 내적인 부분을 바로잡는데 당분간 집중할 것이다. 사회를 바꾸기 이전에, 문화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말씀으로 교회를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다만, 누군가가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 이단으로 규정하지는 않겠다. 잠시 착각에 빠져, 잘못된 메시지를 올바른 것으로 알고 전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본다. 그래서 바울도 '오직 그와 같은 그릇된 주장에 대하여 재삼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서지 않고 그것을 고집하는 자들'을 가리켜 이단으로 규정했다(디도서 3장 10절).
진정으로 바란다. 더 이상 범죄하지 말자. 하나님의 진노가 이제 드러나기 전에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그 행위를 돌이키자.
끝으로 우리는 착각에 빠진 교회들에게 4단계 대안을 제시한다.
1. 모든 불필요한 건축 사업을 즉시 중지하자.
2.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자.
3. 성도들 앞에 말씀을 잘못 해석했음을 공개 사과하자.
4. 현재 있는 시설물들을 잘 활용하자.
황희상 / THE VOICE 편집장
쥴리(IP:75.♡.180.79)
10-04-07 08:00
현재 있는 시설물들을 잘 활용하자=성도 한사람 한사람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는 일에 몰두하자!
이근호(IP:117.♡.136.28)
10-04-07 09:41
'다니엘 70이레' 논문에 실린 성전의 의미
진정한 성전의 의미는 인간의 주체적 행위와 관련지어서 숨어있는 ‘잠재성’의 모습으로 일어난다. 인간의 주체성이란 신마저 자기 동일성 지평으로 포섭하려는 식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성전의 시작은 사무엘하 7장, 다윗의 성전 제안으로 비롯된다. 다윗의 주체성 발휘로 야기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백향목 궁전에 사는 것을 법궤가 있는 공간보다 더 월등하게 호사스럽고 우수한 환경이라고 여겼다. 즉 백향목 궁전 안에 들어있는 자신과 천막 안에 들어있는 법궤상자를 상호 비교될 수 있는 동등한 주체라고 여겼는데 이런 발상이 외부적인 것을 동일성 차원에서 다루는 주체자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다윗의 제안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과 ‘인간의 이름’ 사이에는 동일성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차이성으로 마주쳐야 하는 관계임을 분명히 하신다. ‘사람을 손으로 짓지 않는 성전’이 ‘다윗의 성전 제안’을 계기로 해서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 있는 성전’에 대한 부정(否定)을 내포한 성전개념으로서 지상의 인간들이 염두에 둔 성전과 결합된다. 이처럼 성전의 의미란 ‘하나님의 이름’과 ‘인간의 이름’의 상호작용의 대립적인 틈을 통해 발생적으로 드러난다. 이 성전 규정은 오늘날 신약시대의 교회 규정과도 통한다. 하나님은 자기 성과를 사수하시고 소멸되지 않게 하시는데 역점을 두시는데 이 사수하심으로 통해서 성전의 소유를 놓고 ‘인간의 이름’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을 경과하면서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다.
성전은, ‘전쟁하시는 신’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기념공간이기에 성전은 반드시 땅 위의 전쟁을 경유하면서 땅 위에 세워진다. 이 전쟁의 와중에서 전리품이 발생되는데 이들도 또한 하나님의 자랑거리로서 그들만 하나님께 기거하시는 집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로서 성전은 하나님의 자기자랑거리가 된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림 영원무궁하시도다”(출 15:17-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랑이신 이 성전에 ‘주의 이름’ 이외의 딴 이름이 걸리고 경배 받는 것을 용납 못하신다. 심지어 성전 건축을 한 ‘인간의 이름’도 허락될 수 없다. 그런데 그 성전이 이제는 성전이 무너져야 한단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랑거리를 철회하려 하시는가? 하나님의 조치의 결과는 아모스 9:6에서 미리 알려진다. “그의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즉 본래의 성전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성전을 중심으로 인간이 인간의 그 더러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보조를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성전의 의미란 늘 새롭게 발생된 사태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전은, 애초부터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우호적인 격려와 협력 속에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인간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각기 성전 의미를 고수하므로서 발생되는 영적 충돌 속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의 검은 연기를 피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사 드림’ 자체가 ‘주의 이름’이 벌리시는 일에 관여되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인간은 결국 ‘주의 이름’이 원하시는 결과를 내놓을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즉 성전을 중심으로 시도되는 인간의 노고는 하나님의 자랑거리인 ‘주의 이름’의 가치를 무산시키는 비거룩한 성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공간이 되고 장치가 되는 것이 바로 성전의 취지였다.
이미아(IP:115.♡.235.149)
10-04-07 09:59
개혁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알고 전하는 것이 사명일 것입니다.
강구만(IP:121.♡.1.16)
10-04-07 11:12
이땅의 모든 교회는 이단입니다.모든 인간이 태생적 이단이기에 그렇습니다. 혹시 이땅에 교회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땅엔 교회가 있습니다.그 사람은 예수님이 왜 이땅에서 인간들에게 살해당해야만 했는지를 알게하신 성령님의 작품입니다.그렇게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외에 나머지는 이교회를 대적하고 핍박하기위한 악마의 자식들입니다. 어떠하든지 복음을 가리기위함 입니다.물론 본인들도 자신에게 속고있기는 일반입니다. 그래서 교회 해보겠다거나(어떤의도든 상관없음), 교회 되려고 하거나, 교회 바꿔보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 "나는 교회 아닙니다"를 광고하는겁니다. 이런자들의 특징이 자기 이름과 자기수고의 흔적 즉 역사와 보이는 실적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기백성, 이스라엘의 눈에 이렇게 발생되는 충돌과 차이를 보게,당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 곧 하늘 시민권과 이땅에서 죽은자요, 정착없는 나그네로 몰아가시는 현실로 인해 감사와 상한심령의 제사가 드려지는 성전으로 비로소 발생됩니다. 국민 여러분! 제발 예수 '믿지'마세요. 사람 곧 '내'가 믿는 예수는 언제나 가짜입니다. 주님은 놀고계신 분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기 두 세사람의 성도와 함께, 그리고 일하고 계십니다. 만일 예수님의 '믿음으로 믿는' 성도가 있다면 저주가 올라오는 이땅에도 교회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이미 떠난자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땅에 있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흔적으로만 있습니다.
쥴리(IP:75.♡.180.79)
10-04-07 13:30
너나나나 허울 좋은 종교의 까운을 입고 종교놀음하는 세대에
이근호 목사님은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날마다 불화살을 날리시고 있다.
누군가는 날려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자발성에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비난하기에 급급하다면....
정죄를 위한 정죄야말로 이단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허상과 예수사회는 심장을 요동케까지 하는 책이다. 장을 넘기기가 아쉬울만큼 글귀마다 눈을 떼기가 힘들다. "예수사회"란 바로, 십자가 신학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바알세불이 대신 자리잡은 현기독교에 진절머리를 느끼다시피하던 성도들이 너무나도 기다려온 책이다.
이래서 십자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능력이 아닌가
그러니 우리 제발, 십자가만 이야기하면 안될까
능력과 기사를 원하는 신자 여러분
우리 그러면 안될까요
"예수사회" 를 소개하기 위해 이 글을 올려 봤습니다(아직 못읽어보신 분들 위해서)
고관규(IP:211.♡.215.4)
10-04-07 17:31
제가 건설시공회사에서 종사하기에 교회당건축 정보를 잘 압니다...현재 전국의 교회당 신축,증측,개축,내외부 리모델링등 진행되는 현장이 거짓발이 아니라..약 5천개 된다고 하네요. 거그에 중도포기 각종 분쟁등에 휘말린 것을 생각한다면...이 나라는 교회당 건축물의 나라가 됩니다. 기가막히지요..제자들이 성전을 보고 감탄하자...에수님의 말씀은 돌 하나도 돌 위에..남지 않고 다,,작살나리라..이건 뭔가요?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당 벽돌건축하는 미친 짓 하지 말아라..니 몸뚱아리가 성전이여 니 몸안으로 들어 가길 원하니..강남의 사랑의 교회는 성남시청같이 약 2천억원을 들여 짓는다고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2천억원이라,,,나름 변명하겟죠. 사역을 위해 한다고..
플랫폼의사도바울(IP:112.♡.221.59)
10-04-07 17:43
양무리....뭐라하는 곳에서 이 사이트를 안 좋게 보는 모양이고..
저는 뭐 처음 들어와서 이제 보기 시작했어요..
저도 목회자인지라..
아주 못난 목회자요...
죄인 중에 괴수이죠....
그래서 뭐 지금은 뭐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뭐 그리 잘못된 게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요..
뭐 그리고 조금 나와 다르다고 이단이니...삼단이니..하는 것은 좀 우습죠...
남을 좀 인정하는 문화가 한국에는 필요한 것 같아요....
이단이라고 하면...
솔직히 말씀대로 안 사는 분들이 이단 아닌가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이 독하게 쏟아부으셨죠....
잠시 다녀갑니다....
그나저나...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글을 읽다보니까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서 조금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어려워요...부분적으로...
목회자니까 이런 소리하나보다 생각하지 마시고...
참고하시면 더 많은 분들이 들어오겠죠...
있잖아요...
글이 어려우면 다가서기 힘들다는 거.....
수고하세요...감사하구요...
이근호(IP:117.♡.136.28)
10-04-08 07:57
욥의 입장에서 쉬운 고백도 욥의 친구들에게는 무슨 소리인 줄 모르고, 스데반 집사에게 있어 너무나도 실제적인 이야기도 스데반집사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에게는 몽상처럼 들렸습니다. 자신을 개라고 여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예수님도 제자들에게는 "헐!"이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천국을 막고 있다"는 이 현실이 십자가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는 당연히 보이는 상식이지만 교회 부흥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목회자나 그곳에 취업해 있는 부교역자들에게는 너무 과한 비판처럼 들릴 것입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이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마 21:42) 닫힌 천국문은 아무리 크게 넓혀봐야 여전히 닫혀있습니다. (마23:14)
십자가 속에서 살아야 천국문이 보입니다. 교회를 포기해야 교회가 보이고, 자신이 죽은 존재인 것을 알아야 영생을 그 속에서 맛봅니다. 천국은 십자가 안에서만 쉽습니다.
고관규(IP:121.♡.119.114)
10-04-08 09:36
복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종교성과는 다르지요. 불교와 기독교는 결국같은 겁니다. 이 두 종교는 복음과는 달라서 기독종교로 십자가복음을 이해하려고 하면 충돌이 일어납니다. 뭐와? 성령님이 충돌케하시ㅡ는 주관자가 되기에 그래요.비느하스적인 열심이 기독종교의 옷을 입으면 바울이전의 사울과 방불하기에 반대로,,복음자들을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의견의 존중이란 없는 것이고,,오로지 복음의 유일한 비빌스런 작동만이 이 세계와 역사를 움직이며 운행하시며 성도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결국 2가지입니다. 불법의 비밀의 활동개시됨(살전,살후)과....복음의 비밀의 활동개시중(고전,마태,게시록) 이지요. 나머지는 기독종교안에서의 모든 비느하스적인 외침과 행위들은 불교의 다른 형태입니다. 곧 내 노력도 인정해 주십쇼...입니다.이건 복음이 아니고..불법을 행하는 모든 자들의 다른 인간화 ㅡ이상은 아닙니다. 하나는 혼자 신이 되기와...하나는 신을 빌려 내 노력 인정받기,,,입니다, 둘 다,,비 안티 그리스도들입니다. 상관없는 자들이지요..
이미아(IP:115.♡.235.149)
10-04-08 11:03
"내가 믿는 예수는 언제나 가짜입니다."(강구만 장로님의 댓글 중에서)
아! 정말 내가 믿는 예수는 언제나 가짜였습니다.
아! 진실로 예수님은 내가 믿어서는 안 될 분이셨습니다.
아! 언제나 그렇게 낯설게 찾아 오시고 낯설게 일하시고 낯설게 가셨다가 낯설게...또 낯설게..
"십자가 속에서 살아야 천국문이 보입니다.
교회를 포기해야 교회가 보이고,
자신이 죽은 존재인 것을 알아야 영생을 그 속에서 맛봅니다.
천국은 십자가 안에서만 쉽습니다."(이근호 목사님 댓글 중에서)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십자가로 초대받지 않는 손님일 뿐입니다.
모두가 본다고 해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소경된 자요,
모두가 들을 수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눈 먼 자요,
모두가 말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벙어리된 자요.
피와 죄만 온 세상을 덮고 있음을 오늘 아침도 살게 하신 은혜로....
쥴리(IP:75.♡.180.79)
10-04-08 15:30
플랫폼 목사님, 반갑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한테 먹히세요
예수님에게 해부당하면 살점이라곤 온데간데 없는 송장 하나가 보일 겁니다
그래야 이근호 목사님글도 보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칼에 아직 난도질을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숨을 쉬지 않는 걸(율법을 잘 지킴) 죽었다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