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데생
클림트 데생
이름 : 서정진(IP:123.199.106.126)
클림트 데생-인간주체로서의 자아인가 타자(죄)로인한 주체로서의 자아인가
클림트의 데생 중 대다수가 여인의 누드화이다.
그림 속 여인은 홀로 있거나 여인 두 명에서 애무 혹은 홀로 자위를 하는 식이다. 가끔 여인과 떨어질 수 없는 남성이 등장하지만 그림의 비율상 남성의 위치는 굉장히 소극적이다.이는 남성의 욕구 대상인 여성을 이젠 남성을 배제한 여성 충분조건으로 등장 시키게 한다.여기서 클림트는 여성을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한 다수의 누드화와는 달리 남성을 제외한 여성 독단적 주체로서의 욕구 충족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여인끼리 애무 , 홀로 자위 등은 여인은 남성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성만을, 자신만을 위함을 나타내는 것이다.인간은 이렇듯 남,여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을 위한다. 이는 인간의 내부의 욕망으로 인한 것인데 의아하게도 인간은 자신의 안에 종속된 욕망을 컨트롤 하지 못한다.
여기에 관하여 로마서 7장 17절~20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로 인해 욕망이 움직여지는 것이고 죄로 인해 인간은 움직여지는 것이다.여기서 인간의 자아는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 주체로서의 자아가 아니다. 이젠 타자(他者)로 인한 자아인 것이다.각 시대의 철학자들은 자아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 세상의 관점으로 자아를 바라 보았다. 허나 성도는 성령으로 인해 죄를 알았기에 자신의 속이 보인다. 어둠이 보인다. 그리고 어둠이 보이기에 어둠을 비추는 빛이 보인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는 십자가가 보인다. 퍽퍽 터져 나오는 죄에 퍽퍽 발리는 피가 보인다.이것이 매순간 있는 놀라운 사건이고 놀라운 기적이다.
(고전 2:2, 개정)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