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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6강-렘 16장10-15(죄가 무엇이냐)-jer100331자유게시판예레미야

056강-렘 16장10-15(죄가 무엇이냐)-jer100331

이름 : 오용익(IP:222.117.11.33)

056강-렘 16장10-15(죄가 무엇이냐)-jer100331-이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6장 10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예레미야 16:10-15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좆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쫒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예레미야와 백성들의 만남이라는 것은 마치 원수지간끼리 만나는 것처럼 합치점, 공통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화가 안 되지요. 예레미야의 하는 일이 뭐냐 하면 ‘너희들은 신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가 해야 되는 일이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은 신자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과감히 할 수 있어야 돼요.

‘신자 아닙니다.’라는 말을 할 때 ‘당신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합니까?’라고 묻겠지요. 성경을 정직하게 봅시다. 성경을 정직하게 보면 구약은 아직도 땅에 대해서 미련이 있는 것이 구약이고 신약에 넘어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깝다.’ 해서 이미 심판의 시기, 심판의 날이 접어들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교묘하게 요상하게 그 해석을 위장해도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이미 종말입니다.

종말이라는 말은 끝장난 세상에 너희들이 등장했다, 그 말입니다. 따라서 신자라면 해야 될 일이 아주 간단합니다. 때가 종말이고 마지막 때이기에 신자가 해야 될 일이 간단해요. 마지막이라는 말을 해야 되고 신자의 삶, 흔히 말하는 성령의 삶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어떻게 삽니까?’라고 맨 날 묻는 그것, 그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끝났습니다, 그 한 마디면 돼요.

‘끝났습니다. 모든 것은 철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쪽에서 말하기를 ‘왜 우리가 이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에서 철거대상에 불과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떼라고 하느냐?’ 그러면 그때부터 이 성경의 내용들이 주저리주저리 나오는 겁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손 텁시다.’라는 겁니다. 서해안에 빠진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세상에 빠진 것이 문제에요.

서해안에 빠지면 우리가 크레인가지고 건져내기나 하지요. 세상에 빠진 것은 누가 건져냅니까? 왜냐하면 빠진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것은 빠졌구나, 하고 느낌이라도 오고 울기라도 하는데 세상에 빠져있으면 성공했다고 전부다 칭찬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빠지지 말아야 할 곳에 빠져 있다 하는 것을 알고 감이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같이 ‘너희들은 신자도 아니야, 너희들은 끝났어. 너희들 앞에는 재앙밖에는 없어.’ 여기 10절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들에게는 죄밖에 없고 너희들에게는 재앙밖에 없다.’는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서 찾을 의는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이 땅에 발붙이면서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말씀대로 살려고 모든 시도를 다 해도 ‘하지 말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끝난 마당에 보따리 싸서 이 땅을 떠날 생각을 해야지 이 땅에 살면서 착하게 살고 살면서 바르게 살고 살면서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은 시대를 분간 못하는 오류입니다. 구스타프 융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이 자기 쪽에서 출발해서 세상을 보게 되면 처음에 자기 쪽에서 출발하는 것은 굉장히 오류가 적다는 겁니다. 뭔가 확실하고 분명한 게 있는데 점점 더 자기 쪽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은 망상이 되고 상상이 되어서 거짓말이 될 공산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정직한 것은 여기 나의 손가락이 있고 발가락이 있다는 그것은 아주 명확한데, ‘내가 당신을 보기에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벌써 나라는 지점에서 몇 센티라도 더 떨어져 버리면, ‘한국은 이렇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식으로 자기 몸에서 떨어지면 거짓말일 공산이 아주 크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것이 자기 몸을 이야기할 때는 맞아요. ‘오늘 기도 두 시간 했습니다.’ 그것도 맞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라고 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 된다는 겁니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것, ‘아, 춥다. 오늘 날씨가 왜 이러나?’ 이것은 맞는 말인데 내 몸이 이러니까 하나님 몸도 그럴 것이라고 자기 몸에서 출발해서 서서히, 서서히 하나님께 자기 착함가지고 자기 반듯함 가지고 접근하려 하면 전부 다 그것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겁니다.

얼마나 예리합니까? 하나님 편에서 다가올 때 그것이 우리에게 정직한 것이고 진리가 되는 것이지 내가 느낀 것 내 기분 상 내 느낌가지고 ‘아마 하나님도 나와 같은 생각일거야.’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보장 못할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주장은 종교라는 것은 결국 자기 몸 하나 편하기 위해서 교회 가기 때문에 예수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고 다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서양인이니까 어린 시절부터 교회 다 다녔어요. 그런데 교회 와서 보니까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마음자세, 목사라는 사람이 설교하는 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내 몸 편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점차 흐릿하게 하나님과 억지로 연결을 시키니까 그게 백사람이면 백사람 다 하나님이 다르잖아요.

성경말씀 주면 뭐합니까? 성경말씀을 백날 줘도 접근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진리, 어떤 말씀을 주었습니까,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내 몸이 행복해지려면 어떤 성경말씀을 어떻게 지키면 됩니까, 라고 자기 몸 확실하게 추스르는 이것부터 출발해서 성경을 보니까, 목사도 그 고객들 입맛에 맞추어서 설교를 해 대니까 물론 같은 불신자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 달라고 기도하고 좀 돈 되는 사람은 명예롭게 부자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정치꾼들은 대통령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요. 일관성이 없다는 그 이유가 각자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가 내 법을 지키지 않았다.’ 하는 겁니다.

참 재미있지요? 사람들은 법을 누가 만드느냐 하면 자기가 법을 만들어요. 여기서 인간이 만든 자기 법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법하고 법이 두 개가 되고 말았어요.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쏟아져 내려온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양심으로 이성으로 만든 법은 ‘나는 여기에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고 살아 있다.’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나오는 법이 내가 만든 법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법은 항상 누구 유리하도록 하느냐 하면 내가 유리하도록 내가 편리하도록 그렇게 짜여 있어요. 대구 시민들 모여서 헌법 만들라고 하면 인천, 서울, 전라도 다 작살내고 대구시에서만 국가예산 쏟아 부어서 회사 짓고 대구 애들 다 취업하게 할 겁니다. 그걸 지역 이기주의라 안 합니까? 그 지역이기주의가 땅에 있는 겁니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있는데요.

식구가 넷인데 아버지가 법을 정합니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법을 정한다. 오후 10시 전에는 반드시 들어올 것.’ 그 아버지 잠드는 시간이 열시거든요. 밤 11시, 12시가 되어도 자기 딸이 늦게 들어오면 잠을 못 이루잖아요. 그러면 누가 불편합니까? 아버지가 불편하지요. 아버지가 불편하니까 법을 만드는 거예요. ‘밤 열시 전에는 다 집에 들어오기로.’

그것도 가정의 지역이기주의 아닙니까? “아빠, 난 학원 끝나면 열시 반이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사람들은 성경을 보든 하나님을 대하든 이미 자기한테 법이 있습니다. 자기 법이 없는데 하나님의 법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그런 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배 참석하려고 애를 쓰는데요, 바빠서 교회 못나오겠습니다.’ 합니다.

그 사람의 법은 ‘내가 바빠서 교회 못나온다. 안 바쁘면 교회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의 예를 드는 겁니다. ‘내가 바빠서 교회 못 나가는데 안 바쁘면 교회 나갈 수 있다.’ 이것은 자기가 만든 법이에요.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법을 이야기할게요. 하나님의 법이 뭐냐 하면 ‘네가 예배 참석 못한 것은 너 잘렸어.’ 그 말이에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 자기 형편을 알아 달라.’는 식인데 하나님의 법은 뭐냐 하면 ‘네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에서 누락이 된 것은, 너는 그것을 네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너의 자유가 아니고 그것은 너를 천국에 못 보내기 위한 나의 자유다.’라는 겁니다.

보세요. 얼마나 방향성이 다릅니까? 인식론이 달라요. 저쪽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하는 것이 인간의 법이라면 하나님의 법은 ‘네가 아무리 나한테 오고 싶어도 내가 너를 자르고 배제해버리면 너는 나에게 오고 싶어도 못 온다.’ 하는 겁니다. 하나님 쪽에서 차단시켜서 못 오게 만든다는 겁니다.

완전히 인간들은 자기혼자 착각한 겁니다. 하나님의 법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법이 아마 자기가 만든 법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아마 내가 확실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도 확실한 내 뜻만큼이나 유사하지 않겠는가, 하는데 유사하기는커녕 정반대입니다. 11절에 있는 대로 ‘너희가 내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왜냐? 우리가 하나님의 법 만들 때 우리가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숙덕숙덕 의논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 십계명 좀 빼주세요. 이것이 너무 셉니다. 9계명을 7계명으로 올려주시고 4계명은 좀 완화시켜 주시면 지키겠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 만들 때 하나님이 모세하고 머리 맞대고 ‘1계명을 어쩌면 좋겠는가? 올려 말아?’ ‘2계명과 중복이 되는데 빼지요.’ 이렇게 하지를 않았어요.

우리가 어떤 규칙과 법을 정할 때 예를 들어 제직회 같은 경우에 제직회 법 만들 때 참석 못한 경우에 나중에 와서 ‘이 법 누가 만들었어? 나는 이 법 반대한다. 내가 관여하지 않았으니 내 뜻이 포함이 안 되었는데 법을 정한 너희나 지킬 일이지 거기에 내 의사가 반영이 안 되었기에 나는 그걸 지킬 수가 없다.’라고 나올 것이 뻔하다는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법 만들 때 성자 성부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이 관여 안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혼자 법 만들어놓고 우리 인간보고 지키라고 하니까 이것은 말이 안 되지요. 우리보고 하나님의 법을 만들라고 했다면 우르르 달려들어서 숙의해서 법 만들라고 하면 십일조 같은 법 안 만듭니다. 한 주일에 2천원 이렇게 하지요. 아주 간단하게 한주에 2천원이면 끝나지 무슨 십분의 일을 내겠습니까? 펀드에 투자하게 되면 그 펀드의 이자의 십분의 일도 포함을 시켜야 되는지 아니면 그 이자는 펀드에 재투자해야 되는지 그런 세세한 조항까지 다 포함시켜서 만들 거예요.

이런 것이 오늘 설교에서 제일 어려운데 하여튼 문제를 던져 봅시다. 신명기 4장 2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했거든요. 신학자가 되든지 성도가 되든지 성경을 많이 보면 뭘 끄집어 낼 수 있어야 되느냐 하면, 십계명에서 소멸하는 불이 논리적으로 나와야 되고 십계명 해석에서 질투하는 하나님이 논리적으로 나와야 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액션, 하나님이 행동하기 위한 법칙을 만들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라고 해놓고 하나님이 그냥 손 놓고 계시는 것이 아니고 ‘십계명을 만약에 안 지키면 나는 소멸하는 불이고 너희들을 불로써 심판하겠다.’라는 것이 십계명 만들 때 그 안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멸하는 불은 율법의 완성이에요.

제가 오버해서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나옵니다. 27절에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브리서 12장 29절에 봐도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십계명 밑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만약 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게.’라는 소멸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고라자손이 모세에게 대들 때 모세에게 대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대들었다는 이유로 땅이 갈라지면서 불길이 쏟아져 나와서 그때 고라자손과 함께 시위했던 사람들 다 죽었어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마땅히 하나님에게 소멸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에는 인간들이 자기 의견을 거기에 개진 못하기 때문에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에 부칩니다. 그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어린애든 어른이든 관계없이 전부다 소멸하는 불에 해당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법을 제시해 놓았을 때 예레미야 입장에서는 그 주위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같은 인간으로 간주 할 수가 없었어요. 뭐로 보느냐 하면 법을 지키는 기계로 봐요. ‘너 법 지켰어, 안 지켰어?’ 그것만 물어요. ‘하나님의 말씀, 내 법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 그것만 묻는 겁니다. ‘서울대학 나왔습니다.’ 그런 것은 예레미야의 귀에 들어오지를 않아요. ‘이번에 하나님의 뜻대로 미스코리아 선이 되었습니다.’ 선이고 진이고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제가 돌아오는 주 오후설교를 미리 준비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암몬이라는 다윗의 아들과 다말이라는 딸 그 둘이 배다른 오누이간인데 그 둘이 연애하는 사건이 나왔어요. 제가 원고를 쓰면서 피식 웃었어요. 성경에 보니까 다말이 아름답고 처녀라고 되어 있어요. 그 두 가지를 결합을 시켜 봤어요. 아름다운 처녀라 이 말이지요. 아름다운 처녀니까 그 배다른 오빠가 그렇게 연모했는데 만약에 추한 유부녀 같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하는 겁니다. 왜 추한 유부녀는 유혹의 대상이 안 됩니까? 같은 여자인데. 아주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은 이번 주일 오후에 들으시는데 왜 추한 유부녀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이 안 땡기느냐 이 말이지요.

우리 몸의 관심사는 항상 축복을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은 결국 뭐냐 하면 축복을 주는 것이 관심사가 아니고 축복도 줄 수 있고 저주도 줄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인데 축복과 저주라는 그런 결정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법을 지켜라.’ 하는 그것이 핵심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너희가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는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다른 신을 좆아서 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죄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예레미야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다른 신을 섬겼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말이 인간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지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신을 알지를 못하고 오직 신만 알아요. 다른 신이 아니고 그냥 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있어요. 그냥 하나님을 알고 있지 절대로 신이 둘 된다는 생각은 인간에게는 없어요. 그런데 신이 둘 될 수 있고 셋 될 수 있다는 그것은 누구 생각이냐 하면 하나님 생각입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이 유독 누구에게만? 이스라엘에게만 참된 신이 등장하고부터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그 당시 유대인이 품고 있는, 인간의 몸이 자아내고 있는 신은 참된 신에 비해서 완전히 가짜라는 것이 들통이 난 거예요.

사람들이 왜 소멸 받고 불 심판 받고 왜 지옥 가느냐?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모르냐 하면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것은 참된 하나님이 찾아온 사람에게만 그것이 해당되는 겁니다.

그러면 참된 하나님이 찾아왔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합니다. 질투라는 의미가 뭐냐? ‘모든 이방민족에게는 내가 진짜 하나님 됨을 알리지 아니했다. 그런데 너희 이스라엘만큼은 참된 하나님을 법을 가지고 알려줬다.’고 하는 겁니다.

그걸 오늘본문 13절에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쫒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은혜를 베풀었거든요. 그 은혜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돈 보따리 날아온 것이 은혜가 아니고 몸 건강한 것이 은혜가 아니고 ‘아,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었구나. 그것은 내 법부터 시작해서 내 법과 일치가 되는 내가 구상하고 조작하고 망상에서 상상해낸 하나님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참된 하나님은 뭐냐? 참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는 소멸하는 불이에요. 제가 어떤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해버리니까 얼마나 여러분은 기쁩니까?” 하니까 저쪽에서 하는 말이 “목사님, 그게 뭐가 기쁩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진짜 하나님을 알았다는 그 기쁨보다도 ‘에구,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 내 새끼들, 아직도 예수 안 믿는 내 가족들, 내 부동산’ 이것이 걱정되는 거예요. 그 사람은 그동안 뭘 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한 재산 가졌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식들 잘 키웠다.’는 거예요. 확실한 것은 내 손모가지 내 손가락 내 새끼 내 은행의 통장 이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그 확실한 것부터 출발해서 모호한 신으로 가니까 그것은 자기법이 되지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이 말이지요.

하나님의 법이 나왔으면 반드시 두 가지가 나와야 돼요.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다.’ 이게 성경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에요. 질투하는 하나님이 뭐냐 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했다. 오직 너에게만 알려줬다. 그 정도로 너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네가 이런 은혜를 받아 놓고도 자꾸 다른 데를 두리번거리니까 내가 질투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다시 은혜가 없던 시절로 되돌려서 되돌아 가보면 ‘아, 진짜 하나님과 이방인들이 믿는 가짜 하나님이 이런 차이가 나는구나. 왜 내가 이런 은혜를 몰랐는고?’라고 깨닫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한 번 혼나보라는 말이지요. 땅 잃고 가족 잃고 몸 잃고 다 잃어보라는 말이지요. 잃어보면 재산 날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재산 날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포로 된 자리에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맞구나. 진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고 사랑하시는 분이고 진짜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 맞구나.’라는 것을 ‘내 법이 아니고 주님 주신 법대로 세상을 남녀노소 따지지 않고 성별 가리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법대로 시행하시는 하나님이 맞구나.’라는 것을 포로 된 나라에서 다른 신을 섬기면서 온 몸으로 느낄 때 그게 바로 남은자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왕에 벌 받고 있어요. 우리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이고 진즉부터 개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벌 받고 있어요. 이미 벌 받고 있기 때문에 또다시 세상 적으로 벌 더 받는 것은 없습니다. 살아간다는 자체가 이 땅을 뜨고 싶은 사태와 사건들만 자꾸 일어납니다. 서해안에서 구축함이 침몰했기에 그래서 이 세상이 위험하기에 이 땅을 뜨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주일 아침에도 이야기했지만 46명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고, 그 물에 빠진 46명이 지금 어디에 갔느냐 하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니까요! 사람은 한번은 죽어요. 물에 빠져 죽든지 자동차에 치어죽든지 그냥 죽든지 죽는데 죽고 난 뒤에 심판이 있잖아요. 그 심판은 내 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주님의 성경말씀, 주님의 법대로 하는 거예요.

그 모든 구약의 법이 마지막 때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저주에, 십자가 피를 받은 자는 그 죄까지 다 용서받는 새로운 언약, 새로운 약속, 마지막 약속, 마지막 법, 예수님의 십자가 법, 복음에 의해서 구원받는다.’ 하는 이 은혜를 우리는 매일같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미 지옥에 와 있다고 생각하고 유황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이유들, 경우들을 주위에서 살펴보면서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주신 의로 구원받을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신 것을, 그 은혜에 눈뜨게 해 주신 것을, 참 하나님으로 오신 주님인 것을 저희들이 믿게 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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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