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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21강-눅4장31-41(비공개적인 예수님)-luk100328자유게시판누가복음

021강-눅4장31-41(비공개적인 예수님)-luk100328

이름 : 오용익(IP:59.3.201.250)

021강-눅4장31-41(비공개적인 예수님)-luk100328-(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4장 31절에서 41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95페이지입니다.

누가복음 4:31-4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사람하고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하고 상대하는 단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는가, 이것은 목사들에게 물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한테 물어야 됩니다. ‘예수님,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됩니까?’ 하고 물으면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대로 할 거예요. ‘내가 와서 귀신을 쫒아내면 구원받는다.’ 그렇게 하실 거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라는 것은 부동산 구입해서 사람들이 거기에 모이고 하나님 찬양한답시고 무엇인가를 하고들 있는데 그러면 거기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예배, 기도, 점심준비를 한다든지, 헌금을 한다든지 전도를 한다든지 이렇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친목을 위해서 모인 단체로서의 교회가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련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짜 하나님 말고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련된 단체로서 만들려고 한다면 거기에 사람의 힘이 관련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의 힘이 관련되어 버리면 ‘우리교회 나오세요. 우리교회 나오시면 재미있습니다.’ 하는 식으로 보험회사에서 사람 모집 하듯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애를 쓸 거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 교회를 만드실 때는 ‘귀신아 나가라.’ 이렇게 만드시는 겁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들 ‘기도하세요. 헌금도 열심히 하세요.’ 이것이 아니고 오늘 본문 그대로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이렇게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하는 것이 맞습니까, 사람이 종교단체 만들어서 하는 것이 맞습니까?

물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사람들에 교회가 인기는 있어요. 그런데 인기 있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천국을 못 가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땅에서 교회가 교인들을 재미있게 해주더라. 교인들을 잘 봉양해주더라. 애들도 많이 모이고 어른들도 많이 모이고 거기서 스트레스도 풀더라.’ 좋아요. 좋은데 그 교회가 막상 하나님께 세운 방식의 교회가 아니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재미있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요.

다시 이야기 할게요. 교회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되어야지 사람들끼리 정 나누고 사랑 나누고 우정 나누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이 말이지요. 만약에 교회가 정이 많다, 사랑이 많다 하지만 저는 인간적으로 단정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정이 많아도 자기새끼 자기부인 자기남편 가족에 대한 정보다는 더 낫지 않아요. 우리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맞잖아요.

제 말 틀렸습니까? 아무리 교회가 정이 있다 하더라도 남 아닙니까? 내 새끼가 아니고 내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교회 문제 있으면 가족끼리 뿔뿔이 나가고 하는 거지요.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울 때 그 전제가 뭐냐 하면 땅의 사람을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내기입니다. 그 땅의 사람을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내는데 그 하늘의 사람을 하늘에 가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부터 땅에 속한 사람을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만 천국에 보내겠다, 이것이 예수님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서 사람을 보내는 거예요. 그런데 땅에 있는 인간의 종교적인 행위를 퍼부어서 우리가 땅에 있는 사람을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낼 것 같으면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일부러 이 땅에 오셔서 일을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팔짱 끼고 보시면서 ‘애쓴다. 빨리 사람 만들어서 보내.’ 마치 땅에 있는 교회는 하청공장이고 본사는 하늘에 있어서 ‘빨리 만들어서 보내라.’ 그러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예, 우리끼리 재미있게 친목을 다지면서 만들어서 보내겠습니다.’ 이러면 된다는 말이지요.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든지 혹은 거부감이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교회 만들기, 다시 말해서 땅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어요. 전부 다 예요. ‘이단이다, 모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하고 방식이 틀린다, 신학교는 어디를 나왔느냐, 말씀 해석을 왜 그 따위 식으로 하느냐, 성전을 부순다면 하나님의 전체 뜻이 다 날아가는데 그러면 무슨 수로 구원을 받느냐, 예수 당신은 말하기를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하는데 그게 만약 거짓이라면 어떻게 할래.’ 사람들로 하여금 아예 밉상을 사요.

그래서 복음 전하는 사람들, 복음 전하는 목사들이 그렇게 욕을 얻어먹고 환영받지 못하는 겁니다. 저나 정 낙원 목사님이나 서울이나 수원등지에서 강의하면서 다니니까 사람들이 언뜻 느끼기에 ‘야, 목사님은 여기 저기 환영받으면서 강의하러 다닌다.’고 이렇게들 생각하시겠지요. 환영받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입니다.

‘이래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구원받으려고 하시렵니까?’라는 싸움입니다. ‘이래도 인간적인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것을 교회라고 뭉쳐서 그렇게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들을 하십니까? 그것은 아니올시다.’라는 그 싸움이 그 현장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몇 년 했으니까 잘 듣겠지, 하는데 아닙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들을 때 그 뿐이고 듣고 나면 싹 잊어버리는 거예요.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 문 열고 나가서 점심 먹고 나면 다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서 장로님이 권사님들 불러 모아서 되새김 질 하잖아요.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요. 그러면 한 달 후에 가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 현장에서 주님의 뜻과 인간들이 교회 만드는 뜻과 이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새로 시작해야 돼요. 그러면 그분들이 좋아하지요. ‘아, 그렇구나.’ 강의 끝나 보세요. 다시 남는 것은 뭐냐, 인간들이 어떤 방법을 동원하면 교회가 커질까, 또 이것으로 되돌아와요.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 되는 것은 수십 년 수백 년 교회 다녀서 될 문제가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귀신을 쫒아내 줘야 되는 겁니다. 귀신보고 우리가 나가라, 나가라 해도 귀신 안 나갑니다. 우리속의 귀신이 이미 우리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고 합니까? 이미 우리가 귀신 맨 인데요.

광주에 사시는 길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신데 그분 만나서 일식집에 갔어요. 작은 접시에 노란 액체 같은 것들이 김과 함께 올라왔어요. 이게 뭐냐고 물으니까 그게 해삼 내장이랍니다. 제가 그걸 보고 오늘 할 주일설교가 다 나와 버렸어요. 해삼 내장은 해삼 안에 들어 있으면 그것이 노란 것인지 파란 것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해삼내장이 바깥으로 나오니까 그 물컹물컹한 노란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귀신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귀신이 있는지를 몰라요. 주께서 긁어내야 됩니다. 땅의 사람에서 하늘나라 사람 되려면 우리 안에 있는 귀신을 긁어내고 그 빈자리에 천국 가서 사는 삶을 메워야 돼요. 그 작업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해삼 내장은 바깥으로 나와야 되는데 그게 나오면 ‘아, 이것이 해삼 내장 안에 들어 있던 거구나.’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귀신이 나간 사람의 특징은 뭐냐, ‘아, 이것이 내 안에 들어 있던 귀신이구나,’를 안다 이 말이지요.

우리가 무소유, 무소유 백날 하면서 도 닦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겉만 번지르르한 종교적인 사람이 되지 그 안은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요. 속에 있는 게 나와야 돼요. 배를 째든지 뭔가 해야 됩니다. 속에 들어 있는 뭐가 나와야 돼요. 나와야 비로소 ‘아, 옛날에 내 속에 이런 것이 들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겁니다.

광주 모임에 광양에 계신 분이 참석을 했어요. 그 전부터 저를 알고 있었는데 마침 광양에 출장 와 있던 중이어서 광주강의를 듣고 그분의 지난 일들을 듣는데 그 요지가 이렇습니다. 30년 동안 하늘나라 가려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내 쪽에서 신앙생활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7년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끌고 가는 식으로 구원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답니다.

그동안 목사가 그런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없대요. 그저 하라, 하라 그 말만 했지 ‘여러분이 하지 않아도 주께서 여러분을 끌고 간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는데 7년 전부터 모든 신학이 망가지면서 성경해석이 나오는데 성경해석 하나하나가 뒤에 붙어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이것을 내가 지킨다.’가 아니라 ‘이것을 주께서 지킨다.’로 해석이 되면서 ‘나는 주님의 지키심에 의해서 만들어져가는 하나의 작품이었다.’라는 것이 발견된 거예요. 7년 전부터.

그런데 그 때부터는 모든 일이 다 안 되는데 그 안 되는 가운데 무엇이 느껴지느냐 하면 모든 일이 안 되는 그것이 주님께서 나를 자기작품으로 만드는 그 일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본 거예요. 제가 말을 좀 어렵게 했는데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이것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원하는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고,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그렇게 했는데 그게 아니고,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그 자체가 어떤 결과에 관계없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겁니다.

전에는 ‘하나님, 내 일이 왜 이렇게 안 됩니까? 이 일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라고 이것은 하나의 과정이며 결과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주님께서 손을 대었다는 그 자체 주님께서 끌고 간다는 그 자체가 성경 말씀대로 구원받아야 될 사람들의 면면이라는 겁니다. 그런 양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분이 머리가 아주 좋은 분입니다. 그래서 7년 동안 조사를 했습니다. 자기 목사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온 인터넷을 다 돌아다니면서 과연 내가 이렇게 경험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그걸 조사를 하다가 제가 걸렸는데 지난주일 설교를 듣고 나서는 ‘아, 맞구나. 우리가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천국 갈 사람을 만들어 가시는데 그게 이렇구나.’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안심하고 기뻤다는 겁니다.

그래서 광양에서 광주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데 거기까지 와서 자기의 고충과 고통을 잠시 이야기를 했어요. 광주 화평교회 교인들이 다 은혜 아서 함께 기뻐했어요. 굉장히 부러워하는 거예요. 화평교회 교인들이 다 그랬어요. 그분이 “제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그게 성경적인데.”

그래서 제가 한마디 끼어들었죠.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신앙생활 해서 천국 간다는 그것은 전부 다 거짓말입니다.” 그런 것은 그냥 폼 내고 티내는 것인데 그것은 다 소용없는 겁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포기할 때 진짜 여러분을 다루시는 주님의 신앙 활동이 그동안 가려져 있다가 드디어 노출되는 겁니다.

주님의 신앙생활 간단합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있는 해삼의 내장을 끄집어내는 겁니다. 노란 것, 귀신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귀신 긁어내는 거예요. 그 작업 이예요. 종교적인 폼 잡는 것 그런 것은 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하지 말고 날마다 주께서 어떻게 내 안에 있는 귀신내장을 끄집어내는가, 그것을 증거하고 그것을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오늘본문에 보면 이런 작업가운데서 귀신을 만나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만들어낸 교회는 귀신을 끄집어 낸 사람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귀신을 끄집어 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지요. 여기서 다 시 한번 지난시간에 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성경을 볼 때는 항상 우리 교회에 빙 둘러쳐진 이 옥색커튼같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이 다 한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처럼 다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 노란 내장을 끄집어내는데 창세기 2장에서 처음 만든 인간이 귀신이 들렸느냐 하는 겁니다. 이 본문 누가복음 4장을 이야기하면서 창세기도 같은 도화지에 있는 같은 그림이기 때문에 연관을 시켜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십장생 그림 알지요. 동물 열 개가 한 그림 안에 다 담기잖아요.

그처럼 모든 성경은 역사가 아니고 묵시가 되어서 전부 다 한 마을에 다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있을 때 처음 인간 만들 때 귀신 들렸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만들 때 귀신 안 집어넣었지요. 안 집어넣은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귀신들린 사람을 노란내장 끄집어내듯이 귀신을 끄집어내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들은 서로 서로 정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뭐냐? 우리는 가짜라는 겁니다. 우리는 좀비죠. 우리는 가짜들입니다.

엊그제 해군군함이 두 동강 나서 해군들이 바다아래 있는데 제가 궁금했던 것은 그겁니다. 그 실종된 군인들 46명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저는 희한하게 그런 게 궁금해요. 그중에 어떤 중사님은 전에 북한하고의 해전에서 죽다 살아남은 사람인데 이번에 또 사고를 당했어요. 그러면 그 죽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느냐 그 문제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만 봐서는 안 되고 같은 십장생 그림 같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안에서 찾아야 됩니다. 처음인간은 창세기에서 귀신이 없었어요. 없었는데 선악과 따먹고 나서부터 인간은 귀신이 지배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말해서 그 말이 뭐냐 하면 인간은 귀신이 없을 경우 그 인간이 어디에 가느냐, 그 문제와 악마가 지배하고 난 뒤의 인간이 어디로 가느냐, 그것이 달라요.

악마와 지배를 받고 있는 채 죽어 버리면 악마와 둘로 된 것이 아니고 악마와 하나가 된 채 악마를 위해 예비 된 장소에 악마에 덮인 채로 같이 가게 됩니다. 처음에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따먹는 상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죽게 되면 인간은 어디로 가느냐, 영원히 생명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어린양의 보좌에서 물이 흐르는데 그 물가에 가로수처럼 생명나무가 쫙 서 있어요. 거기서 때마다 생명나무 과실이 영원히 나온다는 거예요. 하나만 먹어도 오래 사는 것을 가지고 계속해서 생명나무열매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재 동아, 조선등 언론매체들은 무엇을 잘라버리느냐 하면 그 창세기를 잘라버리고 요한계시록도 잘라버리고 그러면 현재 남은 것은 서해안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것만 남아요. 청와대 벙커에서 비상사태에 대한 안보회의를 한다는 그것만 남아요. 어제 삼성 라이온스는 엘지 팀에 7:5로 깨졌다, 그것만 남아요.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잘라버리면 올해 박지성이 참여하는 월드컵이 있으니 올해는 사는 낙이 있을 것이다, 서울광장에서 모여서 응원할 준비하자, 그런 것만 남아요.

그런 것만 남다가 서해안에서 군함 침몰해 버리니까 그 죽은 46명의 실종자들 죽어버리면 지금 어디 가 있습니까? 박 지성한테 물어볼까요? ‘박지성씨, 그 46명 어디 가 있습니까?’ 알 수가 있습니까? 기독교 신자도 아닌 불교신자인데. 사람들이 창세기를 잘라버리고 요한계시록을 잘라버리니까 남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은 다 똑같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인간이라 하는 것은 그만그만하고 다 똑같기 때문에 누가 어떤 주장을 해도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 취미에 불과하지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들 다 생각하는 겁니다.

실제로 이 땅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왔어도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너나 나나 똑같다.’고 본 겁니다. ‘나는 길이요.’ 하니까 ‘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부활이요.’ 하니까 ‘부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똑같다는 겁니다. 가본 사람도 없고 갔다가 다시 온 사람도 없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피차 똑같은 입장이니까 묻지를 말자는 겁니다. 그런 것을 말하지 말자는 것이고 그런 것을 말 안해야 사회에서 의사소통이 되는 거예요. 소통되지 못할 일들은 이야기하지 말자는 거예요. ‘우리 피차 인간이냐? 그러면 피차 다 같이 아는 것만 골라서 이야기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귀신들린 인간 그대로인데 같이 귀신들린 채 그대로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은 46명이 지금 어디로 가 있는지도 모르고, 죽은 그 해군들만이 아니고 죽은 조상들이 다 어디가 있는지조차 모르지요.

해삼에서 노란 내장을 끄집어 낼 때 그 끄집어내는 것이 뭐냐, 귀신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러면 이미 노란 내장이 끄집어내진 사람, 귀신이 나간 사람은 그동안 30년 동안이나 귀신이 지배했을 때의 그 사고방식이 어떤 사고방식인지를 익히 아는 사람입니다. 왜? 이미 내장 꺼내듯이 귀신이 이미 나가서 나에게서 벗어났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그 벗어난 자리가 빈자리가 되면 안돼요. 그 빈자리에 귀신이 또 들어오니까.

그 자리에 뭘 채우느냐 하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빈자리에 채우는 겁니다. 귀신이 빠져나간 그 빈자리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내용이 차버리면 비로소 뭘 아느냐 하면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 만들 때 귀신 없는 인간이었다, 원래의 인간 만들 때는 생명나무를 따먹으면서 영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은 생명나무가 있는 천국에 간다, 이것이 그동안 귀신이 차지했던 그 자리를 메우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남들 보기에 껍데기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그 안에 그득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게 넘쳐나는 사람이 있어요. 아이스크림콘이 왜 끝이 뾰족한지 아십니까? 조금 담아도 넘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뾰족하게 해놓았거든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있음이 넘쳐나는 사람이 있어요. 아까 그분과 같이.

그분은 직장생활 하면서도 이 질문을 하는 거예요. ‘주여, 이 직장을 왜 줬습니까?’라고 묻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주여, 이 직장생활을 왜 주셨습니까?’라고 수시로 물어봅니까? 전에 귀신이 있을 때는 귀신의 취미가 교회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 와서 말씀 들어도 다 잊어버리고 교회당 문만 열고 나가면 ‘너나 나나 똑같지 뭐. 돈이나 벌자.’ 하는 식으로 말씀이 별 의미 없이 돼버려요.

그러나 노란 내장이 나오고 말씀이 그 빈자리를 채워버리면 그 말씀은 우리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거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말씀은 자체적으로 말씀끼리 자체발광 합니다. 자체적으로 빛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복음의 광채’라 했습니다.

자체발광, 복음의 광채, 말씀의 반딧불을 한 2천5백만 마리쯤 넣어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반딧불 같은 말씀의 발광체를 귀신이 있던 자리에 넣어놓으니까 그 자리가 LED조명처럼 훤하게 조명시설이 있어서 그 안에서 말씀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거예요.

그렇게 빛이 나니까 그 껍데기인 우리 자아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여, 이것은 창세기 2장과 관련되어 있는 겁니까? …… 이것은 시편 19편과 관련되어 있는 거지요. …… 이것은 누가복음 4장과 관련되어 있지요. …… 저것은 마태복음 1장과 관련되어 있지요. …… 이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관련된 현상이네요?’라고 묻는 거예요. 등산에 가도 ‘아, 이 모든 자연이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시편 19편 1절에 있는 말씀이네.’ 이렇게 말씀이 자체발광이 되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나 빠진 부분이 있게 되면 스스로 성경을 보면서 ‘아, 내가 지금 성경에서 깔아놓은 이 노선 따라 가고 있구나.’라고 주님께서 자체적으로 활동성을 드러내서 우리 안에 주님이 주인이 되어서 우리를 이끄시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것 다시 하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강제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이끄시는 겁니다. 주님이 이끄시다 보니 내가 할 게 없네요. 내가 할 것은 없고 뭐만 하느냐 하면 내 인생을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내 인생도 내가 손대서 만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손대서 이만큼 만들어진 그것으로 천국에 골인하는 겁니다.

전에 귀신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게 뭐든 어떤 업적도 그 원인을 내 쪽에서 찾았어요. ‘내가 이렇게 하니까 이런 결과가 왔다. 다음에는 철야해서 기도해야지.’ 이런 식으로 뭐하고, 또 뭐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등 다 원인을 내 쪽에서 출발했는데 그런 것은 노란내장이고 천국 가지도 못할 귀신이 들렸을 때이고 그것이 빠져나가니까 그 빠져나갔다는 정체도 눈으로 목도하게 되는 겁니다.

‘아,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구나.’ 그런데 이제는 주께서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귀신이 나오고 난 뒤에 주어지는 것이 뭐냐? 두자로 이야기할게요. ‘여유’입니다. ‘귀신이 떠나고 난 뒤에.’ 꼭 영화제목 같습니다. 귀신이 떠나고 난 뒤에는 여유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여유인가? 여유가 뭐다, 이렇게 관념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가 지금 이혼위기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것이 안 깨지겠습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여유를 말해주겠어요. 어떻게? “이혼은 아주 시시한 문제입니다.” ‘우리애가 세 번째 사고 쳐서 지금 구치소에 가 있는데 어쩌면 좋습니까?’ ‘자식문제 그거 주님에 비하면 그것은 사소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들린 사람은 이혼문제라든지 자식이 애먹이는 문제라든지 걸리면 자기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어느 정도로 심각하느냐 하면 그것 때문에 우울증이 걸려서 자살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여고생들 시험성적 떨어졌다고 아파트에서 막 뛰어내리잖아요. 귀신들렸어요.

창세기 1장 2장에 있는 인간은 ‘성적으로 인해서 뛰어내리라.’는 지시가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어요. 누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모든 것을 ‘네가 하나님이다.’라고 했어요. 하나님은 자존심이 세야 하나님 되거든요. 말 맞잖아요. 자존심 없으면 무슨 하나님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자존심을 세우다 보니까 성적 떨어지니까 7층에서 뛰어내리는 거예요. 이만큼 귀신들렸으면 되었지 더 이상 어떻게 더 귀신이 들립니까?

귀신이 들린 사람은 여유가 없어요. 항상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쫒는다.’고 했어요. 사소한 것에 목숨 걸면 안 됩니다. 이미 해삼의 노란내장이 나온 사람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전에 귀신이 꽉 차 있을 때는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 절 죽이시면 안 됩니다. 성경보고 열심히 신앙생활 할 테니까 저를 버리지 마세요. 제가 기도를 열심히 할 테니까 우리 가족 잘 돌봐주세요.’ 하지요. 늘 투정하면서 보는 거지요.

그렇게 보다가 귀신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주님의 성령과 말씀이 발광체로 들어오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느냐? 네가 만약에 46명중의 한사람이라면, 어떤 중사가 물에 빠져서 천국에 가 있다면,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서 천국에 가 있다면, 이게 옥색커튼의 사도행전 7장에 다 있는데, 그래서 천국 갔다면 ‘야, 성경 지켜서도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여기서 더 나아가서 ‘죽었다고 생각하지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죽음 안에서 성경이 다가옵니다. 이것은 제가 꾸며내는 것이 아니고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의 특징이 뭐냐? 애굽에 있을 때 산다는 것은 ‘밥을 먹어야 산다.’ 그것이 애굽적인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애굽에서는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면서 무엇을 체험케 했는가?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광야로 이끈 겁니다. 죽음바깥에서 여호와를 생각했던 것이 애굽생활 이었다면 그것이 귀신들린 생활이었다면 그들이 어린양을 힘입어서 어린양의 죽음에 동참해서 하나님과 동행한 상태에서 광야에 오고부터는 죽음 안에서 그동안 몰랐던, 진짜 산다는 것이 뭘 의미하며 진짜 죽는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를 죽음위에서 말씀이 온 몸으로 체험케 된 겁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께서 성도를 매일같이 죽이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죽여도 너는 이미 말씀에 의해서 생명나무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매일같이 죽음이 찾아오게 하고 그 찾아온 죽음이 전혀 무섭지 않게 느껴지도록 할 때 그것이 바로 죽음보다 더 센 부활의 영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 속에 집어넣었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고 귀신이 나간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뭐, 죽어보지. 그래. 죽었다 치자. 그러면 죽음 다음의 생활이 뭐지?’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는데 내가 죽어버리면 안 갚아도 되잖아요. 이것이 얼마나 큰 여유입니까? 뉴가 욕을 하든 말든, 이미 내가 죽으면서 자존심도 죽어버렸으니까. 내 자존심이 죽어버리니까 세상 이런 여유가 또 없어요. 내가 죽으면서 내 자존심이 같이 죽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내 것을 사수하거나 내 것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이 말이지요.

대전강의에 나오시는 어떤 남자 권사님이 식사 중에 이랬어요. “복음을 모를 때는 제가 집에서 아주 무서운 아빠고 무서운 가장이고 얼마나 엄하게 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목사님 말씀대로 아빠로서 힘을 쏙 빼니까 문 닫으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던 자식이 사소한 일까지 ‘아빠, 아빠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아?’ 하면서 다가오더라.”는 겁니다. 힘을 빼니까 아빠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의논할 것이 있으면 의논하고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가족이 다 힘을 빼니까 개별자가 아니고 그 전체가 사랑덩어리가 되는 겁니다.

우리 최○○장로님도 힘 많이 빠졌습니다. 귀신 나오고 난 뒤에 권위고 자존심이고 다 빠졌어요. 이미 죽은 자가 자존심을 회복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왜냐하면 내 인생은 말씀이 만들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만드는 내 인생 만든다고 얼마나 힘들고 수고 많았습니까? 여러분, 대단히 수고 많았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멋있는 나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쓸데없고 사소한 일에 모든 것을 걸어왔었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땅에서 자존심세우는 것은 좋은데 천국에를 못 간다는 겁니다. 천국은 주님이 손대봐야 껍데기는 발광인데 안에 귀신은 그대로 들어 있어요. 귀신이 나가줘야 되는데 귀신은 안 나간 상태에서 속에서 변비가 되어 있어요.

아침부터 이런 소리를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꽉 막혀서 나가지를 않는 거예요. 그만 속 시원하게 맘 푹 놓고 뺄 거 뺍시다, 우리, 인간적으로, 뺄 거 확 빼버리세요. 귀신이 생각했던 세상관은 내가 얼마나 힘이 세며 내가 한 행세 하는 인간이고 남에게 밑지지 않고 남에게 뒤떨어지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어하고 세상성공을 위하여 달려가야 되고 실패하면 자살할 정도로 나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그 재미로 살고, 이것이 귀신이라는 똥이 꽉 들어있고 귀신이 꽉 들어차 있는 세상보기 아닙니까? 그래서 누가 날 무시하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로마서에 보면 복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심판은 내가 하는데 네가 뭔데 나서냐.’ 그 말이지요.

끝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동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결과가 뭐냐 하면 안식이라고 되어 있어요. 이것이 또 어려운데 마지막이니까 잘 들어보세요. 같은 커튼에서 창세기 1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한 안식을 그대로 어디에 담았느냐 하면 이스라엘의 안식으로 비춘 거예요.

이스라엘이 없었으면 하나님의 안식이 뭔지를 사람들은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땅에 나라로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는 그 안식이 하나님의 안식 그대로라는 것을 그때부터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안식은 어떻게 얻는가? 이스라엘의 안식은 간단해요. 하나님이 동행하면 끝난 겁니다. 하나님이 동행하면 하나님이 안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이 들어 있는 그 인간도 그 하나님의 안식과 더불어 안식하는 겁니다.

안식일 날 제자들이 밀밭 길을 가는 중에 제자들이 밀알을 뜯어먹으니까 바리새인들이 “왜 너희가 안식일 법을 어기느냐.”라고 했지요. 예수님 하신 말씀이 “내가 있잖아. 내가!” 이것은 ‘내가 그들과 함께 동행 한다.’ 그 말이지요. 예수님, 신랑이 함께 있으면 그것은 신랑의 혼인잔치고 신랑이 없으면 그것은 희한한 거지요.

지금 신랑이 와 있는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 지금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고 동행하시고 우리 자체도 그분의 작품인데 여기서 이야기를 더 해야 됩니까? 할 게 없잖아요. 주인이 땅의 인간을 하늘의 인간 만들겠다고 우리 속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하지 마라. 십자가 말씀도 네 안에 꽂혔고 다 이루었다는 그 십자가 피도 네 온몸에 흐르고 있다면, 그 피보고 너를 구원한다면 너는 하나님이 만드는 사람으로서 동행하면서 46명이 아니라 우리가 놀러가다 배가 뒤집어져서 100명이 한꺼번에 죽어도 우리가 주님이 계신 그 나라에 합류가 된다.’는 겁니다.

이 육체라는 껍데기 때문에 지금 스데반 집사가 안보이지만 지금 이 몸만 벗으면 스데반 집사, 엘리야 다 보인다는 말이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우리 권사님들 그분들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자식들 보고 싶나요?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보고 싶고 그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 다 만나는 겁니다. 지금 이 껍데기 때문에 안보여서 문제에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이 껍데기는 얇아지고 결국 날아가 버리니까. 주님의 작품이라는 것은 내속에 내가 손대지 않은 이질적인 것, 주님이 오셔서 ‘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준 말씀의 완성으로 네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믿어지도록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누가 뭐래도 주님의 작품입니다. 이리 굴러도 주님의 작품이고 저리 굴러도 주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주님의 작품인간과 그냥 교회나 열심히 다니다가 지옥 가는 인간의 차이점이 뭡니까?’ 하고 물으신다면 정말 귀신이 나간 사람은 해삼의 노란 내장이 그것이 귀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 교회 나오셔서 생활 하실 때 ‘아, 귀신들린 자의 모습이 바로 저거구나. 창세기 끊어버리고 요한계시록 다 끊어버리고 동아, 조선, MBC, KBS 뉴스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고 힘 가진 자만 행세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힘 가지려고 하는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고 46명 안됐다고 중 불러다가 제사지내는 그것이 귀신들린 짓이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은 다 버리고 중들 불러서 목탁 두드리면 좋은데 가는 줄 아는 완전히 말씀을 무시는 그 세계, 그것이 노란 해삼내장같이 전에 내 안에 담겨 있었다는 것, 나를 전에 괴롭게 했고 내 자존심을 괴롭게 했던 귀신의 흔적들이 세상에 널렸구나.’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고 주님의 작품인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가 원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 보지 말고 예수님 오셔서 어떻게 다루었는지 주님께서 오셔서 어떤 식으로 구원하고 있는지 이제는 제발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아, 이렇게 해서 구원되었구나, 이렇게 해서 귀신이 나갔구나, 주님의 작품인 것을 감격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021강-눅4장31-41(비공개적인예수님-luk1003228-(이 근호목사).hwp (56.0K),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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