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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0 대구강의 4] - [피 20] - 섬김을 당하는 신체자유게시판[피]

[10 대구강의 4] - [피 20] - 섬김을 당하는 신체

이름 : 구득영(IP:203.223.97.165)

[10 대구강의 4] - [피 20] - 섬김을 당하는 신체

10,03,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인간의 몸은 자기 실용성 !!

이제 시작하겠는데, 오늘은 교재 80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여기서 수립되는 '나' 라는 존재는 신은 자기 신체가 요구하는 실용성 이외는 없다.

여기 이렇게 바깥에 있는, 즉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고 하니까, 여기 대상을 'X' 라고 한다면, 자기가 이 대상을 보는 순간에 그 대상 때문에 자기가 구축되는데, 즉 '나' 라는 것이 구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전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호하다가, 그 어떤 대상을 바라보게 되면, 바로 그 'X' 라고 하는 대상으로 인해서 자기가 하나의 주체로서, 즉 자아로서 구축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제가 하나 물어보겠는데, 이렇게 자기 자아가 어떤 인간이든지 관계없이 자기 몸은 어떻게 되겠는가? 계속해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즉 "나는 김연아을 좋아해"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이전에는 김연아를 몰랐는데, 그런데 김연아가 피겨를 하는 것을 보니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 안에 김연아를 좋아하는 요소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아는 순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자기에 대해서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기 몸은 어떻게 되는가? 김연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자기 몸은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 그런데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우리가 어떤 대상에 그만 필이 꽂히게 되면 무엇을 잊어버리는고 하니, 자기가 늙어가고 있고 또한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내 신체를 관리한다 ??

늦게 오신 분들이 있어서 다시 이야기를 하겠는데, 여기에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신체는 또한 여기에 있고 말이다. 오늘은 초반에 이야기하는 이것이 중요하니 잘 들어야만 하는데, 아무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신체를 관리한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이야기이고,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이렇게 주체가 있고,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겠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자아의 생각인데, 그런데 우리 자아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다가도 갑자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오게 되면, 방향을 그만 '휙' 하고 틀어서 그만 그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돈을 버는데 전력을 다한다든지 말이다.

◈ 역시 돈이 좋아 !!

그렇게 되면, 이 '돈'이라는 것은 하나의 대상이 되고,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으로서 돈을 보게 되면, 그런 돈을 바라보는 하나의 주체가, 즉 자아가 된다는 것이다. 즉 "역시 돈이 있으니 좋아" 라고 하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자기 신체는 늙어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것을 중간에서 가로채어 가지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섬긴다는 말이다. 말이 좀 어려운가요?

◈ 인자가 온 것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20장에서 뭐라고 하셨는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몸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즉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데, 그러니 자기가 이 자아와 플러스를 해서, "하나님, 영광을 받으세요"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마 20:28, 개역)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이 생기면, 즉 세상적인 유혹이 오게 되면, 3초 정도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아이쿠, 내 자식, 내 남편!" 이라고 하면서 자꾸만 방향을 튼다는 말이다. 그렇게 틀어서 가다가, 그것이 깨어지고 나면 "아이쿠, 하나님!" 이라고 하면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무엇이 되는고 하니, 대상 'X'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대상 'X' 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그 하나님의 내용이 날마다 그만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하게도 성령을 통해서 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9살 때 어떻게 알았고, 20살 때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몸을 약속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믿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혼자서 촐랑거리면서 까불 때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고, 또한 화를 내면서 코를 벌렁벌렁 거릴 때도, 그리고 혼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우쭐거릴 때도, 거기에 전혀 개의치를 않으시고 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예수님' 이란 주체가 예뻐서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그것은 우리 주체가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중간에 끼어든 '예수님' 이라는 주체가 예뻐서,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뻐서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진다고 하는 것, 그게 곧 성령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즉 "너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은혜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죽은 너희의 몸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곧 로마서 8장 11절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즉 바로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을 때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까, 바로 베드로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을 인정했다가도, 또한 예수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가 예수님에게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베드로의 주체와 실존은 항상 들락날락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가, 또 자기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다가 말이다.

◈ 우리 몸은 예수님 손에 !!

그런데 거기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베드로를 위하여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로마서 8장 34절에 나오는데, 즉 예수님이 우리 신체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즉 우리의 신체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에, 그러니 우리 몸의 관리는 예수님 손에 달린 것이지, 우리의 주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믿음 생활을 잘하면 복을 받고 하는 것이 전혀 아닌데, 왜냐하면 우리 몸은 이미 주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마귀로부터 정죄함을 받지 않고, 그렇게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지 않도록(?), 그런 주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소유로서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몸은 주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그런 주님의 사랑으로 인한 관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던 싫던 말이다.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이제는 예수님을 위하여 !!

그것을 두고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는데, 그런데 성령이 오고 난 다음에는, 즉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즉 예수님의 은혜로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라는 것인데, 하나님이 아니고 말이다. 이제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순서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예수님이 먼저 우리 몸을 위하여 죽으셨는데, 그렇게 된 몸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죽었다가 사신 자를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그게 고린도후서 5장에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피조물은 전혀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예수님께 맡겼으면 그것으로 끝 !!

예를 들어서, 만약에 세탁기가 고장났다고 하면, 그래서 그것을 AS센터에 맡겼는데, 그런데 나중에 고치고 나서 거기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자기는 세탁기가 이제 고쳐져서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그런데 거기서 세탁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이 세탁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세요" 라고 한다는 말이다. 말을 하고 보니 예가 좀 이상한데,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다시 찾기 위해서 맡겼는데, 그렇게 하려고 예수님을 이용했고 말이다. 그런데 일단 그렇게 예수님에게 맡겼으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라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우리의 몸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이제 우리 몸은 자기 소유가 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에 관한 말씀인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쿠, 이제 내 자식은 살았다" 라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그 자식은 이제 자기들의 자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되던 저렇게 되던, 이제 이스라엘에게 자식은 없는데, 즉 자기 자식은 끝났다는 말이다. 즉 어린양에 복속이 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성경말씀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경험이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가 죽지 않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 앞에서 큰 소리를 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가 자기를 핍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몸이 아닌 주님의 몸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심판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 달려있다고 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아, 이번에 재떨이를 던지는 건데 !!

저도 이번에 서울에서 참 많이 참았는데, 발표를 하는데 중간에서 발제자의 말을 가로막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그것이 곧 상식인데, 그런데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제가 재떨이를 집어던져서 정수리에 맞아도 그들은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40분을 저에게 할당을 주었으면, 당연히 이야기를 하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중간에서 더 이상은 들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나와버리면, 그게 얼마나 큰 반칙이냐는 말이다. 물론 그러한 수모를 당하는 것도, 그 모든 것이 다 주님께서 배치한 것이지 싶어서, 그리고 초청하신 분의 입장을 고려해서 참았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그래서 사람들은 큰 흐름 찾기에 나섰고, 그 흐름을 과학, 혹은 '과학적' 이라는 명칭으로 규정을 했다. 이제 과학이 현실을 선도한다. 미래를 책임진다.

◈ 잠시, 과학에 대해서 !!

여기에 보면, 사람들이 과학을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과학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고 하니, 방금도 말했지만, 인간의 몸은 자기 실용성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체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누구의 것이 되는가? 더 이상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신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은 이 신체를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 주체로 보는데, 무슨 주체인가? 악마에게서 나오는, 즉 아담의 죄로부터 나오는 주체로 본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주체를 위해서 자기 신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 과학에서 힘은 왜?

이렇게 '힘' 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간만 좀 있으면 이 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 힘은 형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힘이 신체를 만나면 힘이 신체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 신체는 힘의 힘을 빌려서 무엇을 하는고 하니까, 바로 신의 얼굴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신의 얼굴이 곧 악마의 얼굴이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의 신체는 아담에게서 물려받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선악과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과 같이 되리라" 라는 것이 잠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힘이 없어서, 그래서 그것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결국, 인간은 악마의 얼굴을 !!

하지만 힘이 있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이것이 반드시 권력으로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권력으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신의 얼굴, 즉 악마의 얼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곧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인 라멕과 같은 경우인데, 즉 누구든지 자기를 해치면 벌이 칠십에 칠 배라는 것이다.

(창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이러한 인간의 신체를 두고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바다에서 올라온 태고적인 어두운 힘에 의해서 우리 신체가 농락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체가 힘을 받게 되면 독자적인, 즉 "하나님, 니만 신이가? 나도 신이다" 라고 하는 독자적인 신의 얼굴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세리와 창기가 왜 천국에 간다고 하는데, 그들이 왜 천국에 가는고 하니까,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왜 지옥에 가는고 하니까,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세리의 차이점을 보면 되는데, 그 차이점이 무엇인가? 한 쪽은 힘이 있고, 다른 쪽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힘을 쓰려고 하니 소경이 되고, 또 앉은뱅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 당시 사회의 제일 밑바닥에 있게 되는데, 그러니 힘을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가 뭐라고 하는가? "당신은 저주를 받아서 그렇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들은 저주를 받아서 그런 줄로만 알고, 그렇게 여겼다는 말이다.

◈ 소위 '포도원 비유'에 보면 !!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위 '포도원 비유'가 있는데, 그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이 나오는데, 그가 포도농사를 지으려고 일군들을 불렀는가? 그 대목만 보게 되면, 주인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삯을 주되 일군들의 사고방식을 들추어내고 뜯어고치기 위해서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 10시에 온 사람, 12시에 온 사람, 오후 3시에 온 사람, 그리고 5시에 온 사람들에게 동일한 임금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 포도원의 존재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이 참 재미있는데, 그게 바로 "너희들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포도원 존재의 의미인데, 그런데 예수님을 그 말씀을 뭐라고 하시면서 시작하셨는가? 1절에 보면 "천국은 마치"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포도원의 주인이 바로 천국의 주인인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마 20: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마 20:3)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마 20:5)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 20: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예수님이 포도원 이야기까지 하시면서 그 당시의 누구와 대비를 시키는고 하니, 바로 바리새인들과 대비를 시킨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에 힘을 가진 사람들인데, 그렇게 힘을 가졌다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내가 하는 것으로 인해서 나는 복을 받아도 마땅하다" 라는 것인데, 즉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즉 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16절에서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라고 하시면서 이 비유의 말씀을 맺는데, 바로 이런 점을, 즉 자기가 자기가 하는 일에 주인이 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아침 10시, 12시, 오후 3시, 그리고 5시에 온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이 점점 더 예수님을 어떻게 하는가? "지금까지 이러한 해석을 우리가 듣지 못했다" 라고 하면서 밀치게 된다는 것이다.

◈ 해석사에 이런 경우는 없었다 ??

여기서 제가 웃음이 나오는데, 왜냐하면 이번이 서울에 가서 제가 논평을 하는 교수들에게 들은 소리인데, 그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런 70이레에 대한 해석은 지금까지 70이레의 해석사에 나온 적이 없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에게는 너무나 황송한 평가인데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 개혁주의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역사적, 문법적 해석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문법적 해석의 밑에는 뭐가 있는고 하니, 철학적 해석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런 철학을 모르는데, 사실은 그런 철학을 알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주체가 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적이고 문법적 해석의 밑에는 철학적 해석이 있는데, 그런데 바로 그 철학적 해석과 싸웠던 자가 누구인고 하니까, 바로 사도바울이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무엇을 대비시켰는고 하니, 모든 세상의 초등학문과, 즉 철학적 사고방식과 대비해서, 그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이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 사도바울의 경우에 !!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다 낮추어서 오직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도바울 본인이 먼저 이런 모든 역사적 문법적 해석의 주체를 내세우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사도바울 본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그런 해석에 정통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철학 박사였고, 해석학 박사였다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바로 인간 자체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철학적으로 나아가서, 어떻게 해서 자기 주체를 끌어 모으는지를 말이다.

아무튼 그런 것이 나오게 되는데, 그러니 사도바울의 경우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고 하니, 그것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사도바울은 자기가 과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죽였던, 그러한 사고방식을 두고서 뭐라고 했는가? 자기는 죄인 중에서 괴수였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감히 괴수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죄인 중에서 괴수라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인데, 그러니 여기에 있는 이 '나' 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인고 하니, 철학적이고, 전통적이고, 역사적이고, 문법적인 해석으로 가득한 '나'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 라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자기가 죄인 중에서 괴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오늘날 성도가 그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졌다는 것을 고백한다고 하면, 그 죄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들이 학문을 하고 있는 주체에까지 죄가 파급되어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이번 서울 세미나의 주제 - 인간은, 결국 '쑤레기' !!

그것을 제가 이번에 서울 세미나에서 후벼내었는데, 왜냐하면 그게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기에 말이다. 도대체 신학적 학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죄 덩어리인지, 즉 자기들이 죄인 중에서 괴수의 짓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신학함이 구원의 능력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이고 말이다.

그러니 성경해석에는 인간들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해석이 있고, 또한 주님께서 주체가 되어서 하는 해석이 따로 있어서, 이러한 두 주체의 만남에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제발표를 하면서 초반에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먼저 말하지 않고는 진행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미 그때 자리를 떠는데, 세미나고 뭐고 자기는 듣기 싫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주체를 건드리게 되면 인간에게 예의고 뭐고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학교 교수이기 때문에 제가 목사라고 한 수 가르치려고 했는데, 하지만 그것이 자기들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날 서울 세미나에서 하이라이트는 결국 '쓰레기'였는데, 그렇게 목사나 신학자를 감히 쓰레기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날 제가 발표한 '70이레'에 대한 해석을 신학사에 없었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신학을 하는 본인을 쓰레기라고 인정하는 신학은 없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신학을 하는 본인이 쓰레기에 지나지 않음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 다시 과학에 대해서 !!

다시 교재로 돌아와서, 지금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학은 자아에게 힘을 모으기 위해서 자연을 이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심심할까 싶어서 묻고 답하는 식으로 하겠는데, 제가 질문을 할 테니 잘 한번 답을 해보세요.

* 질문자 - 신체는 누가 관리합니까?
* 답변자 - 예수님입니다.
* 질문자 - 그런데 우리 속에 아담의 죄가 있을 때 이 신체는 누구 것이라고 여깁니까?
* 답변자 - 내 것입니다.
* 질문자 - 어떻게 그렇습니까?
* 답변자 - 힘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 질문자 - 그러면 힘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답변자 - 자연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힘을 모으게 되는데 됩니다.

그렇게 자연을 파악하고 분석해서 힘을 모으게 되면, 이 자아는 그 안에 예수님의 공로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연구한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기가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를 못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애써서 연구한 것이 모두 죄인 중의 괴수의 짓이라고 하면, 당연히 자기는 거기에서는 눈을 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교회당이 텅텅 비게 되는데, 이러한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못산다" 라고 하면서 살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농경시대에는 해가 뜨고 비가 오고 해야 농사가 되는데, 그런 것을 도저히 과학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번개가 치면 요한계시록을 들먹이면서 신의 징벌로 여겼다는 말이다.

◈ 이제는 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어나도 !!

그런데 미국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인가 누군가가 하는 사람이 피뢰침을 발명하면서 어떻게 되었는가? 번개의 속성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번개는 신의 징벌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여기게 되었는데, 그러니 더 이상 요한계시록 때문에 겁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지진의 경우에도 어떠한가? 그것이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땅 밑에는 아주 거대한 판들이 있어서 그 판들이 서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인데, 왜냐하면 지구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을 하니 말이다. 즉 지구가 자전을 하게 되면, 지구내부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구내부에는 쇳덩이가 들어있고, 그 바깥에는 가벼운 것들이 도는데, 그렇게 서로 돌다가보면 균형이 틀러질 때가 있는데, 그래서 서로 다른 에너지를 맞추기 위해서 지각 자기들끼리 조정국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밑에 있는 맨틀에서 조정국면에 들어가면 지각이 갈라지면서, 그만 위에서는 페루(?)나 아이티(?)가 작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왜 지진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어떻게 지진이 일어나는지도 아는데, 그런데 그 다음에 무엇을 모르는고 하니, 누가 일으키는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 지혜와 지식에 대해서 !!

그것을 제가 어제 중고등부 설교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다. 즉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는데, 그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세계와 통하고, 그리고 지식은 '나'의 세계와 통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힘을 모으는데 통한다는 말이다. 아마 베이컨이 그렇게 말했지 싶은데, "아는 것이 힘이다" 라고 말이다.

다시 이야기를 하겠는데, 우리 인간은 왜 힘을 모아야 하는가? 그것은 힘만 모으면 자립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인데, 창세기의 바벨탑이 바로 그런 경우라는 말이다. 즉 "우리 이름을 내어서 하늘에 닿게 하자"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신체는 어디까지나 주님이 관리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주님이 관리하는 것을 끊어버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신체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지식은 자기에게 유리하니, 당연히 우리 인간은 지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잠언 30장에 나오는데, 3절과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잠 30: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잠 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 그래도 부모라고 하면 !!

여기에 3절에 보면 지혜를 뭐라고 하는가? 분명히 거룩한 자를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굳이 요즘 말로 하면 지혜는 수능시험과도 같은데(?), 김연아의 지혜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트리플 러츠와 점프를 잘하는가에 있는데, 그러면 김연아가 거룩한 분을 알기 위해서 그렇게 어려운 점프를 시도했는가? 그것은 아닌데, 그런데 여기서는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곧 지혜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4절 마지막에 보면,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라고 하는데, 과연 그 아들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비가 된 자의 모습이 무엇인가? 자식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알고 있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도리라는 말이다.

백날 그렇게 전해도 어제 한 명이 왔는데(?), 물론 한 명이 오는 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말이다. 거룩하신 분이 자기 숙제를 그렇게 하시는데, 그것을 두고 제가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닌데, 저는 그냥 증거할 뿐이라는 것이다.

◈ 누가 힘없는 지혜자를 따르겠는가?

왜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는고 하니, 사람들이 지식을 통해서 힘을 모은다고 시간을 다 바쳐서, 정작 지혜를 외쳐도 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혜를 말이다. 이 지혜는 돈이 안 되고 힘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가? 그렇지 않은가?

지혜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죽으셨는데, 그러한 지혜를 따른다고 하면, 거기에서 무슨 힘이 나오고 돈이 나오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거기서 힘과 돈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신학교 교수들밖에 없는데, 박사학위를 팔아먹는 그야말로 장사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 오용익 - 당신들, 그냥 배설물이잖아?

그러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들이 뭐라고 하는가? 논문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오 목사님이 열을 받아서 뭐라고 질문을 했는고 하니, "아니, 그 논문원칙을 누가 전했습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묻기를 "그런 신학자체가 사도바울이 전한 배설물에 해당이 됩니까? 안 됩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답변을 못하도록 주최측에서 끊었는데, 만약에 그 자리에 사도바울이 있다면, 과연 사도바울에게도 그렇게 논문형식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물을 수가 있는지, 그러니 그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소위 신학을 한다는 인간들이 모여서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 81페이지를 보자.

** 그런데 과학은 인간의 본성을 대변한다. 인간의 성질을 닮았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시원스럽게 삭제하는 묘미를 갖는다. 과거에 재미를 봤다는 것을 유지하는 것도 과학이다. 나머지는 다 삭제를 당해야 한다. 경제 효율성을 위해서이다.

◈ 경제 효율성 !!

여기서 말하는 경제 효율성은 무엇인고 하니, "얼마나 작은 힘을 가지고 큰 힘을 끌어당기는가?" 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즉 적게 투자하고 많이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경제 효율성을 따랐는가? 그렇지 않은가? 노아는 방주를 아주 크게 지었는데, 그런데 몇 명이 구원을 받았는가? 달랑 8명인데, 그러니 그것은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냥 퇴출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을 하실 때, 그냥 예수님을 곧 바로 보내면 되는데, 그런데 먼저 아브라함을 보내고, 이삭을 보내고, 그 뒤에도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을 하셨는가? 그냥 예수님을 직접 곧 바로 이 땅에 보내셔서 건지면 되는데 말이다.

◈ 효율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예수님 !!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인간들이 생각하는 경제 효율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주님은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돈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즉 우리 인간은 두 주인을 동일하게 섬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고 하니, 돈을 사랑하는 자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식으로 예수님이 친히 오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보여주는, 즉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마도 신학교 교수들 중에서 이러한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교수가 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 싶은데, 그렇지 않은가? 즉 그들은 예수님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교수로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다 신학을 통해서 구원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그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주체가 생각하는 성경해석과 바늘구멍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성경해석이, 우리의 한 평생동안을, 즉 우리의 삶 가운데 언제나 마주치게 되어있는데, 그러한 마주침에서 깨어지면, 바로 그러한 자가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주여,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전혀 안 되는군요" 라고 말이다.

◈ 나는 지옥에 갑니다 !!

그런데 그날 서울에서 제가 발표를 하는데 옆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녹음을 들어보면 다 나오는데 말이다. 즉 "이근호 목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신학을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라고 치고 나온다는 것이다. 어느 집사가 옆에서 그렇게 했지 싶은데, 교회에서 보통 집사들의 생각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집사들이 보통 교회에 모여서 뭐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봉사를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러면 역사도 없다는 말인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지옥에 갑니다" 라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실컷 교회에 나와서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성도라고 하면, 그냥 푹 찌르면 그 어디에서든지 뭐라고 나와야 하는가? "저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는 것이 나와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러면 신학공부를 하지 말란 말인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투정을 부리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투정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신학박사인 신학교 교수가 목사에게 투정을 하는 것도 오랜만인데,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예를 들면, 젊었을 때 훌륭한 요리사이든, 명망이 있던 판사님이든, 한 때 명망이 높은 목사님이라고 해도, 은퇴를 하면 증권 객장에서 종일 죽치고 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삶이요, 합리적인 삶이 된다. 왜냐하면 지금 도움이 안 되는 과거는 사정없이 삭제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 노년엔 역시 주식투자가 최고 !!

어느 젊은 사람이 건강해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묻기를 "할아버지, 장수의 비결이 뭡니까?" 라고 하니, 그 대답이 바로 "응, 주식투자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멋있지 않는가? 제가 듣기에는 최고의 답변인데 말이다. 장수하는 비결이 주식투자라는 것인데, 즉 아직도 힘을 모으는 재미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자기를 잡아당긴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판을 키우는 재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노인네들이 경로당에서 고스톱을 칠 때에 매일같이 10원 내기를 하면 재미가 없는데, 그 다음에는 100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판을 키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들이 왜 교회부흥을 부르짖는고 하니까, 그것도 역시 판을 키우는 재미인데, 물론 거기에 교인들은 말려들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결국 과학이란, 각자 '자기만의 절대적 영역확보'를 주장해주고 정당화해주는 보편적 상호체계로 자리를 잡았다. 그 안을 깨트려보면 '실용적 방안에 대한 당연함이다. 이처럼 과학이 창조를 표방하지만, 실은 실용적 이유 때문에 탄생된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이기에 그냥 지나가겠는데, 이게 교재 82페이지에 또 나온다는 것이다.

** 과연 선한 일이냐 악한 일이냐를 규정을 지을 가치는 과학에 담겨있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선택하는 것을 이미 선한 쪽이라고 단정을 짓게 된다.

◈ 과학은 선도 악도 아닌데 !!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과학에는 선하다, 혹은 악하다" 라는 것이 있는가?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다. 금메달을 따는 것이 선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악도 선도 아니고, 그냥 이긴 놈이 전부를 다 가지고 간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에는 이긴 놈이 아닌 년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갔지만 말이다. 지금은 바로 그런 세상인데, 그렇지 않은가? 2등은 필요가 없는, 오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인간이 힘을 모은다는 것 그 자체가, 즉 힘을 모으는 그 자체가 바로 진리가 되고 또한 선이 되고 말았는데, 바로 그러한 선과 진리가 악마가 노리던 것이란 말이다. 즉 악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지혜를 다 끊어버리려고 하는데, 그래서 "니가 생존하는 것이 너에게 유일한 진리이고 선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살아남은 자가 승자가 되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는 것이 말이다.

◈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

그렇다고 하면 우리아와 다윗 사이에 누가 승자인가? 즉 누가 살아남느냐는 말이다. 다윗이 살아남고 우리아가 죽었는데, 그러니 주님은 멋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를 들추어내는데 그것보다 더 멋진 이벤트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솔로몬을 다윗의 아들이 아니라 죽은 우리아의 아들로 해서, 여기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고 하는 법칙을 만들어내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살아있는 자는 자기를 승자로 여기겠지만, 그러나 사실은 저주를 받은 패배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자를 섬겨야 하는데, 이것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죽었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사흘만에 살아나신 분을 믿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교회는 살아있는 목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죽은 분을 믿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분명히 죽었는데 그런데 우리를 이렇게 모이게 하신, 즉 죽었는데 보이지 않는 그분을 섬기는 자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렇게 해서 모든 인간의 권세와 권력으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는 결과가 양산이 된다는 것이다. 죽은 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말이다.

흔히 교인들은 뭐라고 생각하는고 하니, 목사와 같은 그런 목회자들이 있으면 자기들의 신앙생활을 잘 도와줄 것이라고 여기는데, 하지만 예수님 당시나 그 이전의 구약시대나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목사들이 오히려 그런 신앙생활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막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즉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인간들이 오히려 말씀을 훼방했다는 것이다.

◈ 만약에 '70이레'가 최악의 늪지라고 하면?

그것이 제가 발표한 논문의 초록에 보면 나와있는데, 즉 말씀을 연구한다는 인간들이 말씀을 훼방하는데, 그래서 과연 그들이 어떤 식으로 말씀을 훼방하고 있는지, 제가 그것을 한번 살펴보자고 하면서 '70이레'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70이레를 김진수 교수가 평가하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다니엘의 70이레는 구약 주해의 역사에서 '최악의 늪지'로 알려진 부분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만약에 그 70이레가 최악의 늪지라고 한다면,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늪지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한 쪽을 알고 다른 한 쪽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거짓말인데, 왜냐하면 70이레를 모른다고 하면 모두 모른다는 말이다. 70이레 말고 다른 것은 그래도 좀 안다는 의미인데,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70이레 말고 다른 것을 세피하게(쉽게?) 보았다는 것은, 결국은 70이레를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기 스스로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는 70이레는 잘 몰라도 다른 것들은 안다고 여기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류라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았는데, 즉 70이레를 모르고 다른 것을 안다는 것이 바로, 다른 것도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도대체 성경말씀에 있어서 만만한 구절이 어디 있는가? 모든 구절이 다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있는데 말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니, 결코 쉬운 구절은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의 선과 악에 의해서 예수님이 !!

그러니 여기 교재 82페이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의 선과 악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힘으로 결정하는 선과 악에 우리 주님께서 합류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주님은 그들이 아는 바로 그 선과 악의 기준 때문에, 즉 논문형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는 그들의 기준 때문에, 그래서 주님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모세의 법을 지키지 않는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 82페이지를 보자.

** 새로운 선택에만 새 가치를 부여해주기에 과학은, 늘 하나의 모델을 선택해서 특화를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즉 내가 선택했기에 내 모델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마치 '완벽한 지도'와 '좋은 지도'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 보면 '완벽한 지도'와 '좋은 지도'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그 차이점이 무엇인가? 물론 완벽한 지도는 신의 영역이라고 보고,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여기는데 말이다. 그러니 좋은 지도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들이 보기에 편리한 지도인데, 그렇게 한시적으로 진리노릇을 하는 지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교재에 나오는데, 계속해서 살펴보자.

** 과학이란 완벽한 지도를 대신하여서 좋은 지도를 특화해서 그것을 선하다고 우기면서 등장한다. 편리한 것이 한시적으로 진리노릇을 하는 것이다. 생물학에서 주장하는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그것 자체가 자연 선택의 결과이다.

◈ 창조론도 과학의 산물에 불과 !!

그러니 그들은 진화론을 가지고 창세기의 창조론은 틀렸다고 하는데, 즉 이 세상을 7일만에 창조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지혜를 모르고 오직 지식만 움켜쥐고, 그것을 가지고 거룩한 분을 찾으려고 하니, 도대체 그런 무모한 짓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창조론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겠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진화론을 반대해서 창조론이란 모델이 나왔는데, 그러나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기어이 과학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과학은 선하지 않다는 말이다. 주님은 그런 선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진리라고 간주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3장에도 나오듯이, 인간이 제 아무리 선하게 무엇을 하려고 해도 그 모든 것은 악하기만 한데, 그런데 그렇게 악하기만 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선하게 사용하신다고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그 무엇을 끄집어내더라도 다 악하다는 말이다.

(롬 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주여, 저는 악한 놈입니다 !!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주여, 저는 악한 놈입니다" 라고 하면서 십자가 앞에 엎드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한 것인데, 우리 인간에게 그것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그때 서울에서 옆에 옆에 있는 인간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근호 목사는 자기만 훌륭하고 다른 사람은 다 악하다" 라고 주장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그런 자들은 자기가 엎드릴 대상이 없는데, 그러니 저를 보고 자기들에게 엎드리라고 하는 것이다.

저는 지금 십자가 앞에 엎드려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증거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들은 무엇인가? 오히려 그런 제가 부러워 보일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자기는 엎드릴 대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의 신학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신학교 교수들을 보고 '불신자' 라고 한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 83페이지를 살펴보자.

** 사실 인간의 과학행위는 모두 이 창조에 대해 수동적으로 보여준 적응행위이다.

◈ 인간은 '수동적' !!

여기에 '수동적'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 우주밖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그러니 인간이 우주를 논하는 것 자체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수동적' 이란 말이 무엇인고 하니, 누군가가 뭔가를 자기에게 주어야만 "아하, 여기에 있구나" 라고 알게 되는 신세, 바로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요즘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능동적 사고방식이 어떻고 적극적 사고방식이 어떻고 하는데, 그런 것을 전부가 다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범위에 한해서만, 그것도 전부가 아니라 자기가 과거에 알고 있던 버릇이나 습관에 한해만 취급한다는 것이다.

◈ 인간의 과거의 습관에 의해서 !!

지금 말이 조금 어려운데, 이것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겠는데, 즉 인간이 여기에 이렇게 서 있으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것을 모두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일부만 포착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부만 포착하는 것도 과거에서 주어진 버릇, 혹은 습관에 의해서 한다는 것이다. 습관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아침에 항상 7시에 일어나는 사람은, 새벽 5시에 번개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7시에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러면 7시에 왜 일어나는가? 그것은 습관에 의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교수들이 논문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곧 습관이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그런 논문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은 모르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은 그 바닥에서 그런 식으로 습관이 되어서 따라야 밥이라도 먹으면서 살아가니 말이다.

그래서 제가 논문 마지막에서 '거취'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그래도 말씀을 연구한답시고 자기 거취문제만 생각하는 인간들, 얼마나 더러우냐는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가? 논문을 발표하면서도, "이번 논문을 잘하게 되면 어느 신학교에서 좋은 대우로 청빙이 들어올까?" 라고 하면서 살아가니 말이다. 그러니 저의 발표를 듣고 오히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 존듀이 - 교육은, 좋은 습관을 키우는 것이다 !!

아무튼 과거의 이러한 버릇이나 습관이 가정교육이나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데, 그것을 '존듀이' 라는 유명한 교육학자가 집중적으로 여기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그래서 그는 "교육이라는 것은 좋은 습관을 키우는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양반을 두고 실용주의자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교육이 진리이라는 것이 찾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인격자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좋은 습관을 키우는 것인데, 그런데 이 좋은 습관이 무엇인고 하니, 시민사회에 필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있어주어야 밥을 먹고 살아가니 말이다. 즉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고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 있는 기존의 시민사회에서 "너는 참 좋은 습관을 가졌구나" 라는 소리를 들어야 밥이라도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 행동주의적 교육심리 - 사람은 줘 패면 말을 들어 !!

그것이 바로 교육인데, 그러니 다른 진리는 찾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그 이전에 나온 사상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동물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동물의 특징은 무엇인가? 동물은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옛 선인의 말씀에 "명태와 여자는 삼일에 한 번씩 패라"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자를 그렇게 해야 친정 쪽에서 농사를 짓던 방법을 가지고, 새롭게 시집을 온 농경사회에 훌륭한 일군이 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왜 훈련시키는가? 매일같이 밤새도록 술이나 마시고 자기 마음대로 마구 까불면서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깔끔하게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하는데, 왜 그렇게 하는가? 모든 것이 그 사회에서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배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진급도 안 될뿐더러, 그 회사에서 자기는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을 못 먹는 사람이라도 이제는 술잔도 돌릴 줄 알아야 하고, 가끔은 폭탄주도 마셔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상사에게 아부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자기에게 습관화가 되면, 그것을 후배들에게 자기의 습관화가 된 것을 그대로 인수 인계하게 된다는 말이다.

옛날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을 그렇게 구박을 했는데, 왜 시어머니들이 그렇게 독하게 했는고 하니까, 그것이 자기에게 이미 습관화되어서 그러한데,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말이다. 즉 인간은 환경에 따라서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행동주의적 교육심리' 라고 하는데, 그렇게 표현하니 제법 고상해 보이는데, 쉽게 말해서 사람은 줘 패면 말을 듣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 로버트 박아, 북한을 열어라 ??

얼마 전에 '로버트 박' 이라는 사람이 북한에 들어갔을 때 제가 예언 아닌 예언을 했는데, 그 양반이 북한에 들어가면서 뭐라고 했는가? 자기가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그래서 자기가 들어가면 북한이 열린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강의시간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북한에서 저 인간을 그냥 두드려 패버리면 바로 잘못했다고, 즉 "제가 너무 오해를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싹싹 빌면서 결국 쫓겨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예언이 아닌 예언을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한 달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대로 되고 말았는데, 그냥 두드려 패는데 하나님이고 뭐고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말로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사실상 그렇게 맞을 짓을 했고 말이다. 세상에 성경말씀 그 어디에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을 열어라" 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로버트 박은 북한에 갈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있는 자리나 제대로 간수하고 복음을 전했으면, 물론 그러면 북한의 인민군이 때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 때렸지 싶은데, 아마 목사안수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선교사가 되지도 않아서 아예 북한에 갈 기회도 없었지 싶은데 말이다.

자기는 미국의 습관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런 미국습관이 북한에서도 통하는 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미국의 습관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북한에 갔으니 얻어터지더라도 살아서 나왔지, 아마 탈레반에 들어갔으면 뼈도 못 추렸지 싶은데 말이다.

◈ 순교는, 그냥 삶 가운데 주어지는 것 !!

구약의 우리아 장군이 순교한 것이 아닌데, 즉 그가 특검의 자격으로서 다윗의 잘못을 수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그냥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섬겼는데, 외부에서 순교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바로 순교인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순교를 하겠다고 날뛰는 것은 너무나도 수상하다는 말이다. 결코 좋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 스데반 집사가 자기가 순교를 하려고 했는가? 자기는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그런데 날아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돌맹이가 되어서,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돌맹이에 얻어맞고서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주의 뜻이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평소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것도 하나의 순교가 되는데, 즉 평소에 조용히 주님을 믿으면서 그냥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미 순교에 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부산 지하철역에서 전도를 하고, 또 객차 안에서도 간증을 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오히려 자기 습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집에서 조용히 살면 되는데, 그러면 사건이 터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동대구역은 그런 것이 없나요?)

◈ 인간은 영원한 수동적 존재 !!

아무튼 제가 이러한 모든 것을 두고서 '수동적' 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우리 인간은 영원한 수동적인 존재인데, 왜냐하면 피조물이기에 말이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들어진, 영원한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이 수동적인 것을 두고 "그냥 성깔대로 사세요" 라고 하는데, 즉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능동적인 분은 따로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말이다.

그것이 교재 38페이지에 나오는데,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계속해서 살펴보자.

** 두뇌세포가 우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과 에너지를 공급받지 아니하면 인간은 현미경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부부사이가 좋지 않은 날에는 연구할 마음도 싹 가시게 마련이다. 신체의 컨디션뿐만이 아니라 대인관계까지 과학탐구에 영향을 끼친다.

◈ '어떻게', '왜'가 아닌, "누구십니까?"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기 위해서 천체 망원경을 들이대면 우리 안구 뒤에 있는 뇌신경이 작용하는데, 그런데 그 뇌신경이 작동을 하려면 산소가 있어야 하는데, 즉 영양분이 공급되어서 산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산소는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우주에서 나오는데, 그러니 우주에서 나온 산소를 가지고 우주를 들여다본다고 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가 방금 이야기한 것은 지식인데, 그런데 지혜는 무엇인고 하니, 보이지 않는 분이 우리에게 살도록 하는, 즉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라는 것이 아니라, 또한 '왜' 라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누구' 라는 것인데, 즉 "누구십니까? 저로 하여금 망원경을 통해서 이 우주를 바라보게 하신 분이"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러면 같은 우주를 바라보더라도 어떠한가? 즉 욥이 보는 것과 불신자인 천문학자가 보는 것이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

욥이 보게 되면, "이 천지를 만드신 분은, 저에게 고난을 주신 바로 그분이 이 천지우주를, 밤하늘의 저 수많은 별들을 만드셨군요" 라고 하는 고백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계시라는 것은 없는데, 항상 우리 속에 십자가 계시가 주어질 때만, 즉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계시가 확산이 되면 자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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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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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