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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피의 복음’의 신학이 나아갈 길에 관하여묻고답하기레위기

‘피의 복음’의 신학이 나아갈 길에 관하여

이름 : 김용남(IP:110.11.251.74)

안녕하세요,
‘피의 복음’의 “신학”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고 지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나름대로 진지하게 질문을 드립니다.

‘피의 복음’이 온 인류를 자기 자녀로 부르는 하나님의 ‘핏소리’를 가리킨다면,
‘피’라는 표층적인 개념을 둘러싼 여러가지 내용들,
예를 들어 구약성경의 언약사라든가, 율법이라든가, 유월절 전통이라든가, 죄인됨이라든가,
혹은 피 외의 다른 무력한 요소들(신학이나 철학 등)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실질적으로 맺어진 ‘자녀됨(sonship)’의 관계,
그 구체적인 속사정을 파헤치는 것이 ‘피의 심층’으로서의 복음 ‘사태’의 깊이로 들어가는 길이 아닐까요?

이근호 목사님께서 강조하시고 선포하시는 내용은 정말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본질적인 복음이지만,
하나님이 그 복음을 통하여 ‘직접 말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조금 열리지 않는 느낌도 듭니다.
피의 복음이 결국 스스로 영혼들을 하나님에게로 사로잡아 이끄는 ‘피의 권능’으로 연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족한 의문으로 드린 부족한 질문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질책의 말씀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조심스레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동훈(IP:120.♡.162.162)

10-03-16 00:00

피의 목적은 인간이 아니기에 권능이 사람에게 구걸할 필요는 없는데..

김용남(IP:110.♡.251.74)

10-03-16 00:11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지만, 권능이 인간(죄인)을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지 않나요?
구걸이 아니라 ‘통치’로서 사람에게 하향적으로 역사하는 권능으로 말입니다.

이근호(IP:117.♡.136.28)

10-03-16 06:56

조심스럽게 질의하시는 모습이 감동스럽군요.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이유 때문에 단호하게 생명나무로 갈 수 있는 길을 영원히 차단해버렸습니다. 예수님깨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는 이 방침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오신 행위가 마치 하나님쪽에서 이 단절 방침을 취소한 것처럼 간주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은 근거로 사람들이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즉 저주와 심판받음에 합세한 자에게만 (잃어버린 적이 있는 양)에게만 제공되는 자비요 은혜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향한 저주와 지옥 심판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행위는 어이없는 짓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자신이 저주와 당연히 지옥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긴다면 평생을 걸쳐 그 이유와 근거를 온 몸으로 체득하고 체험되는 즐거움이 발생합니다. 그래야지만 '구원받겠다는 것도 악마의 성격의 일종'임을 고백하는 성령의 삶이 됩니다. 귀하께서 제시한 의견처럼 '피의 복음'이 스스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사로잡는 '피의 권능'이 발휘되는 현장에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저주로 곡해하는 극단적인 미움이 수반되면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즉 주님을 직접 자기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데 구원의 대상이 되는 성도는 마치 예수님이 스데반 집사님의 가신 길처럼 자신의 일생을 왕창 망가뜨리는 폭력행사로 이해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발악으로 인하여 비로소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는 사도의 고백에 동참하게 됩니다.

김용남(IP:110.♡.251.74)

10-03-16 13:18

아, 옳습니다. 큰 공감과 깨달음이 되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제가 중심적으로 지적하여 질문드린 부분은, 심층적인 ‘피 사태’로의 진입 문제인데요,
피가 ‘구원이냐 지옥이냐’의 패러다임에서만 설명되기보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 설정’으로서 실질적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즉 피가 ‘법적인 댓가 지불’이라는 표층적인(혹은 바울적인) 해석보다 ‘혈연관계의 매개’라고 본 후에,
마치 예수라는 MC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끼리 토크쇼를 진행하듯이
하나님과 우리가 직접 ‘이야기’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앞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근호(IP:117.♡.136.28)

10-03-16 16:58

모세언약에 준해서 (제사장이라는 '단독자' 중심 구조에 준해서) 신약에서 '예수 안에서'만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할 뿐입니다.

김용남(IP:125.♡.230.151)

10-03-16 17:17

감사합니다.

구득영(IP:203.♡.97.165)

10-03-16 23:22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김영완(IP:222.♡.201.187)

10-03-17 22:48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주를 사랑함도 외부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예수 밖에서는 사랑이 없으니 긴장하게 된다...
신학으로 자신의 개인기로 관계짓고 살을 붙이고 우격다짐의 고상한 착각에 빠진다...
새삼스레 예수님의 말씀이 비유로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에 감사하게 된다...

강구만(IP:118.♡.241.231)

10-03-18 09:08

피의 복음이란, 하나님이 죄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죄인의 죄를 담당하신, 그몸에 가지신 십자가사건 입니다. 그래서 나의몸(존재)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의)이 중요하고, 그몸으로서 나만, 곧 예수안에서만 나는 '의'로인해 산자가 되는 것입니다. 평생 죄만 생산하는 내몸은 하나님이 무슨짓(신학,믿음까지도)을 해도 죽은자로 보시기에 피의복음을 정리 정돈하는 나도 층이 다르면('내안') 저주아래 있습니다.

김용남(IP:125.♡.115.102)

10-03-19 03:33

덧붙여주신 말씀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바로 이 부분이 십자가마을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피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사랑 고백인데, 사랑의 사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피 개념 자체로의 환원만 끊임없이 거듭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을 짝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연애편지를 받아놓고 계속 그 편지만 붙들고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해석했지만 정작 ‘그 사람’과는 아무런 소통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과 같다고 할까요. 사실 이 문제는 더 근본적으로 ‘바울주의 기독론’의 오류로 보이는데, 복음은 어떤 복잡한 변증론으로 뒤얽혀 탄생되는 개념논리가 아니라 ‘사태의 술어’이기 때문에 계시의 완성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바리새인 출신의 바울은 지나치게 법학적인 관념들로 복음을 왜곡시켜놓았다고 보입니다. 죄와 의, 회개와 감사라는 인간학적인 구도가 등장하기 전에 먼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과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자녀 삼음’이야말로 더 본질적이고 생생한 사랑의 현실일 듯 싶은데요. 사실 ‘자녀 삼음의 영’인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사료되긴 합니다만.

강구만(IP:118.♡.241.231)

10-03-19 09:12

바울이 복음을 왜곡했다? 고3학생치고는 확신범 다운 발언이네요. 바울은 내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학생은 성경말씀을 골라잡아 믿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랑입니다.이사랑이 아닌 인간의 사랑개념으로 하나님을 분석 해보려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예수님을 죽인 유대인이나 오늘날 예수를 위해 예수믿지 않는 종교꾼들이나 사랑받아 마땅한 '나를 위해 말씀을 차용하기는 일반입니다.

이근호(IP:117.♡.136.28)

10-03-19 09:31

사도 바울의 편지에는 '감사'와 '기쁨'과 '증인됨'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차원에서 봐야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사도 바울의 개인과 오늘날 성경을 보는 우리 개인의 차원에서 대비될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도 바울의 모든 계시는 사도의 개인적인 신앙적 감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의 권위에 입각해서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곧 예수님 자체를 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을 그런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대 성경 비평학에서 유행한 수법에 불과합니다. 이런 비평학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주체는 오늘날 주체철학에 의해 여지없이 해체 대상에 해당됩니다. 사도 바울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켜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아들됨의 생활을 영위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증인=목격자'이라는 의미가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고린도후서 12:2-3에 보면, 자기 자신마저 자신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올 정도로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뿐만아니라 로마서 9:3에 보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고 했습니다. 이런 고백은 모두 오늘날 교회나 신학이나 선교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랑하사 인간에게 구원을 주심"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구원 자체를 이루어나감'의 차원입니다. 즉 인간이 구원을 소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자기 백성을 소지하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는 아무 것도 가질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오히려 늘 죽고 또 죽어야 할 처지입니다. 그런 성도의 죽어감을 통해서 내부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이 아니라 유사 복음, 즉 "우리는 이미 구원을 가졌다. 따라서 더이상 구원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새생명 속에서 마음껏 기쁨을 누리세"라는 식이 되어버리면 이것은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신으로 등극시키고 행세해보는데서 사는 재미와 흥미를 갖고자 하나님과 예수님을 도용한 것 밖에 안됩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증인이 아니라 "나도 구원받았다"라는 자신에 확신과 절대 신봉자로서 자처하는 자기만의 증인으로 살 뿐입니다. 물론 지옥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귀하의 끝에 하신 말씀처럼 이런 고백은 성령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성령을 받은 자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증인으로만 선택 받은 그 고마움과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하게 쉽게 말해서 한국교회는 모조리 이단이다는 말입니다.

정석훈(IP:123.♡.210.7)

10-03-19 10:50

김용남씨의 질문을 보면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실질적으로 맺어진 ‘자녀됨(sonship)’의 관계,
그 구체적인 속사정을 파헤치는 것이 ‘피의 심층’으로서의 복음 ‘사태’의 깊이로 들어가는 길이 아닐까요
라고 질문을 하셨는데

김용남씨가 갖고 있는 답은 완벽한 계시로서 역할을 할 것 같네요. 김용남씨의 신학에 의하면.

그렇게 되면 성경에 바울서신을 빼고 김용남씨의 신학을 집어 넣어야 할 것이고...

김용남씨는 주님이라는 분을 인정은 하는지 모르겠네요.

사도들이 증거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사실 말입니다.

하기야 바울서신도 우습게 여기는 분이 사도행전이나 사복음서나 그들의 상황에서 그들의 왜곡된 시선에서 성경을 기록했을 뿐이라고 할 것 같네요.

그러니 자신에게 맞는 계시를 만들어 내어야 하겠죠.

주님이 자신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듣고 싶네요.

주님되신 김용남씨가 만든 계시가 어떤 계시인지?

‘바리새인 출신의 바울은 지나치게 법학적인 관념들로 복음을 왜곡시켜놓았다고 보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왜곡되지 않은 복음을 한번 펼쳐 보여주심이 어떨지요?

김용남(IP:125.♡.119.132)

10-03-19 15:02

이 목사님께서는 끝까지 바울주의 기독론의 관점에서 ‘인간학적인 구원론’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바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 게 아니라, 예수가 선포한 원시 복음 자체가 ‘아버지-자녀’의 구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부분을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성도의 죽음이라느니 고백이니 하는 인간학적인 차원의 반응을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의 ‘부르심의 말씀’에 근거한 사건이 아닐까요. 한편 바울에 관하여 “사도 바울의 모든 계시는 …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의 권위에 입각해서 받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 ‘나도 환상 속에서 예수를 봤으니 나도 사도다’라고 주장하면 그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성경신학자이시니만큼 그러한 바울의 회심 내용을 담은 사도행전이 애초부터 바울의 사도권을 변증하기 위해 기록한 문서라는 사실을 잘 아실텐데요. 예루살렘 초기 사도들로부터 평생 왕따를 당했던 바울의 거짓-사도성은 그의 서신의 내용에서 이미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맹목적으로 ‘바울, 바울’거리면서 예수와 바울 사이에 막힘 없는 복음의 연속성이 있다고 믿으며 바울을 추종하는 자들은 대부분 바울에 관해서는 그의 ‘지극히 세속적인’ 유명세만 아는 무식한 자들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결코 고등비평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울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의 순수한 차원에서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정성훈 씨처럼 유치하고 유아적인 반응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랍니다. 이쯤되고보니 아예 소통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 제가 짚은 내용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마음이 있으신지,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 머물고 싶으신지? 후자라면 저도 더 이상 소모적으로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갈 길을 가십시오.

이근호(IP:117.♡.136.28)

10-03-19 16:25

"객관적으로 사도 바울이 말이 옳으냐 그르냐"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그런데 관심두는 우리 자신이 과연 옳은 인간인가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인간에게 객관이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것도 객관이란 없습니다. 만약에 있다면 자신이 만든 '장난감' 밖에 없습니다. 신학놀이라는 장난감 말입니다. 인간이란 아담으로 부터 죄 아래 있는 주관을 물러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구원되고 아니되고는 우리들의 '신학이라는 이름의 장난감 놀이하기'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 소관입니다. 바로 이 점을 그리스도의 종이신 사도 바울을 통해서 전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전한 계시와 예수님의 계시 사이에 불연속성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본인이라고 저주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남이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갈 1:8) 귀하는 앞으로 더욱 공부에 정진하셔서 이런 면까지 파 헤쳐보세요. "과연 석가모니의 말이 예수 말에 비해서 비진리적이라는 근거를 우리가 객관적으로 찾을 수 있을까? 근거가 없다면 부처 믿어도 천국가는 것 아닐까? 아니 부처고, 예수고 아무 것도 믿지 않더라도 상관없이 사후에 지옥도 없고 천국도 아예 없는게 아닐까?"

강구만(IP:121.♡.1.35)

10-03-19 17:45

바울서신만 빼고 성경을 읽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왜 그럴까요? 주체?,죄인된 기쁨을 몰라서?십자가 피에 대한 원초적 거부반응? 원복음을 찾고,성경을 갈기갈기 찢어보기도 하고..그러면 살림살이 좀 나아집니까? 그러나 구원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악을 쓰고 기어 오른다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오직 주님의 죽으심에 합하여 세례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입니다. '선택' 입니다.'피' 없이 구원 받아보겠다는 인간의 모든 시도를 하나님은 아시기에 법 아래,저주 아래 가두어 놓으시고 천국갈 자를 천국 보내고 지옥 갈자를 지옥 보내는 권세를 십자가 지신 주님께 주신 겁니다. 왜 인간은 죄와 죽음에 갇혀 있는지, 나로부터 신을 찾아가는 신학이 왜 장난감인지,즉 내가 왜 비정상인지 성령의 책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냐" 한다면 학생 말대로 "갈 길을 가십시오"

김용남(IP:125.♡.119.132)

10-03-19 20:28

예상은 했습니다만 역시나 ‘객관적으로’라는 말 하나만 붙들고 열렬하게 물고늘어지시는군요. 애처로워보이는 마음에 몇 마디 드리고 떠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복음을 열심히 ‘설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십니다. 그러나 복음은 애초부터 설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설명이 되는 복음’이 있다면 그건 거짓 복음일 뿐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병자를 낫게 하고 귀신을 내쫓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함으로 사람을 되살려준 구체적인 생명의 열매로 증거되었지, 바울의 경우처럼 온갖 그리스 철학과 법학 개념들을 뒤섞어놓은 혼탁한 지성으로 ‘증명’된 게 아닙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예수의 제자들이라기보다는 ‘바울 두목님’을 어떻게든 사도의 자리에 앉혀놓고 싶어하는 조직폭력배들로 보입니다. 바울의 바리새인 영성을 아무런 여과 없이 답습하니까 법학적인 관념들 너머에서 모든 민족을 향한 ‘생생한 관계’로 역사하는 예수의 복음을 보는 눈이 가리워질 수밖에 없지요. 그 결과는 결국 하나님의 일에 대적이 되는 것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희석되지 않은 ‘바울의 복음’이 있을지는 몰라도, 예수가 자기 죽음으로 온 인류에게 공급한 그 ‘생명’의 열매는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리스 철학의 윤리개념을 따와서 성령의 열매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말했지만, 예수는 ‘아들로서의 생명’만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울이 죽을 때까지 눈이 가리워졌던 것처럼 그를 떠받들며 추종하는 여러분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

이근호(IP:117.♡.136.28)

10-03-19 20:30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자신의 종으로 삼으셔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실수한 것이 되는데 그런 판정을 내리는 귀하는 누구입니까? 실수없으신 이 시대의 메시야?

강구만(IP:121.♡.1.35)

10-03-19 21:18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주님의 사건에 김용남 '학생'은 실수없이 역할을 다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 알지 않기로 하면 무엇이 남을까...를 보여주는

성재필(IP:222.♡.135.201)

10-03-20 12:13

십자가에 부어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저주가 용남학생에게도 깔대기 쏟아지듯이 임하고있음을 맛보기를 바랍니다.결과적으로 그 심판당한 자리에서만 죽음도 이기는 넉넉한 사랑의 주님이 계시답니다. 정말 금자씨보다 친절한 십자가 마을입니다.^^

유상준(IP:121.♡.254.22)

10-03-20 12:45

이 학생은 십자가의 원수로 자라고 있습니다.
십자가 마을에 우리 모두 십자가의 원수였으며 지금도 그러 합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원수들을 매일 용서 하는 곳이 십자가 입니다.
바울은 오직 이 십자가만을 자랑하려, 아니 자랑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종으로 붙들려 죽을 때까지 눈이 가리워져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는 십자가 피의 능력 만으로 용서 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2:1~5)

송재원(IP:119.♡.116.254)

10-03-20 15:17

신학에 생명이 있지 않습니다. 신학적 지식을 쌓는다하여 그것이 생명을 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만을 말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복음은 분명합니다. 나의 죄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셔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죄와 피 이야기를 하여야합니다. 그것이 빠진 설교는 멋진 말로 도배를 하여도 가짜입니다.

고관규(IP:61.♡.176.30)

10-03-21 14:01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아부지같은 사람들 앞에서 어린 친구가 첨에 겸손하게 등장하면서 마치 여기를 테스트해 보려는 것으로 등장햇다는 걸 말요,.학생이 말하는 그런 거에 대해 내가 전에 언급했지만,,하나님의 긍휼관점에서 로마서를 본다는 말부터 맘에 걸렷어요 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그런 하나님의 긍휼로 로마서를 보는 건 넓은의미로는 맞기는 하다고 했서요, 그나,,그건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사랑을 행하여 구원을 이루라,,라는 남아공 출신들이나 독일 카나다 출신들의 신약신학자들의 논조와 너무 흡사하드라구요,그 대표가 E.P샌더스며,,독일의 라이제넨교수와 휘프너요.,미국 풀러의 김세윤박사같은 학자정도가 유독 그들을 박살내고 잇서요..나머지 한국의 총신등등의 교수들도 거의 전부 샌더스의 학도들입니다. 그러니 문제야요..샌더스보다 더 과격한 게 대표적인 라이제넨과 휘프너인데..이들의 말이 용남학생의 말과 같아요..,바울이 율법과 유대인의 구원관을 오해햇다,,는 말이지요. 아주,,똑같은 말을 하는군요, 학생이 지금 복음에 사로잡힌 자인가요? 로마서와 바울을 전혀 이해 못 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배도의 신학이며,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종교문서학ㅡ이상 아니군요.학생이 말했던 피의 권능으로의 연결이라는 것도 그래요..피의 권능이란,,언제나 기쁘고 춤추며 박수치고 사랑을 행하여야 할 때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그 권능은 중생자안에서 언제나,,역사하고 있는 거야요. 성령의 9가지열매의 사랑행함도 마찬가지요,,무슨 착한 일을 선악관ㅡ에 사로잡혀 해야 한다는 자체와,,그리 행하는 게 권능이 아니요, 바울의 다메섹 그리스도 만남사건의 계시성을 인정안 하겠다는 건데..그게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는 언약적신율주의(커버너트노미니즘)ㅡ이요. 신학강단에서,,셜교강단에서,,신학자들과 기독종교목사들이.,.저 짓들을 하고 있소. 왜? 그래야,,,거싲복음의 양날개로,,세계를 강타하니말요. 그게 사단의 전략일한 말이다....그 똑?똑한 머리가 회심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피의 권능이..진짜 임해야 할 것이외다.

이근호(IP:117.♡.136.28)

10-03-21 15:48

베드로후서 3:16-17 "(바울의) 편지에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억지로 풀다가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하는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멸망을 유발하는 편지가 사도 바울의 편지의 성격 중의 하나입니다.

강구만(IP:211.♡.68.96)

10-04-01 23:06

우리는 본시 없든자들 입니다. 이 없든자,곧 나에게서 비롯되는 모든것 들은 가짜입니다. 혹,주로 말미암은 자들이 있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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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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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