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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00219(1) 서울강의 녹취 : 빌립보서 12강자유게시판빌립보서

100219(1) 서울강의 녹취 : 빌립보서 12강

이름 : 김창길(IP:118.91.99.20)

서울 100219 빌2장9절a

100219(1) 서울강의 녹취 : 빌립보서 12강

2010-03-14 21:26 녹취 : 김창길

서울 2월 19일 강의 빌 2:9 “두 주체 싸움”

빌립보서2:8-11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방금 읽었던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0절 이 일을 누가 한다는 말인가요? 우리 인간이 한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이 한다는 건가요? 여기 보면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이런 일을 하나님이 하시잖아요. 신앙의 기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가 기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심을 우리가 믿게 되면 우리가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에 포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여기 그림을 보면 여기서 어떤 사람이 손을 들고 춤을 춘다. 누가 춤을 추게 했죠? 누가 춤을 추게 한다? 앞에 ( )에 누가 춤을 춘다? ‘(내가) 춤을 춘다.’ 라고 할 수도 있고‘(하나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춤을 추게 하신다.’이 말도 맞는 말이죠. 둘 다 같은 말이죠.

그런데 간단한 이 이야기를 가지고도 안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삭제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신다.’를 지워 버리죠. ‘내가 애를 낳았다’하고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아들을 낳게 했다’ 둘 다 같은 말인데 불신자들은 무엇을 지워 버리느냐 하면 하나님이 일으키는 것을 다 지워 버려요.

하나님이 일으킨 것을 다 지워 버려야 뭐만 남겠어요? 내가 춤을 춘다. 내가 애를 낳았다. 내가 밥을 먹는다. 내가 잠을 잔다. 내가 설교한다. 이것만 남잖아요.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집어넣는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춤추게 한다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것보다 ‘내가 춤춘다.’를 더 좋아합니다. 이게 맞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인들이 ‘예수 믿는다.’ ‘하나님 믿는다.’ 할 때 제가 물어봅니다. “누가 믿습니까?” “내가 믿습니다.” “그럼 본인이 안 믿게 되면 지옥 갑니까?” “그럼요 내가 안 믿으면 지옥가지요.”

“그러면 당신은 믿다가 어느 날 잘 안 믿어지면 본인이 지옥 갑니까?” “그럼요 지옥가지요.” 본인이 믿다가 잘 안 믿어지면 지옥가고 그러다가 믿어지면 천국가고 ……. 하루에도 12번씩 천국 갔다가 지옥 갔다가 천국 갔다가 지옥 갔다가 ……. 그렇게 되지요.

어떤 아주머니가 애하고 왔는데 “쟤가 착해요 나빠요?” “얘 착해” 이러거든요 “얘 착해”라는 말 떨어지기 전에 “엄마 도넛 사줘” 라고 찡얼대면 “요 못된 것” 하고 때리잖아요. 그러면 아까 그 물어보던 아저씨로 돌아가서 아주머니 다시 물어볼게요. “얘가 착해요 못됐어요?” “아, 지금 못됐어요. 지금 도넛 사달라고 때를 쓰니까 못됐어요.” 그런데 도넛 물고 가다가 돈 만 원짜리 주어서 그것을 파출소에 가져가지 않고 어머니한테 가져다 줬을 때 “아, 착해요.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고 엄마한테 주니 너무 착해요” 도대체 하루에 몇 번 착해야 합니까? 몇 번 나빠야 합니까?

사람들이 신앙생활 못하는 이유가 본인이 신앙생활 하려고 하니까 나중에는 지쳐가지고 에이 때려치워라 하고 신앙생활 못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2장 9절에 분명히 ‘하나님이’ 이라고 했고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했죠. 누가 창조했어요? 하나님이 창조했잖아요. 하나님이 창조했으면 그 만들어진 피조물들이 꿈틀거리는 것도 누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하나님이 만들었어요.

하나님께서 컵을 만들어 놓고 ‘컵아, 컵아 이제 네 마음대로 살아라.’이렇게 하시지 않았어요. 성경 구약 잠언서에 보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놓고 내 팽개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만들었냐 하면 하나님의 지혜로 천지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모든 창조물 안에 지혜가 다 들어 있어요.

욥기에 보면 욥은 자기가 지혜가 넘친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같잖아서‘욥아 네가 지혜가 많나?’ ‘지혜 많습니다.’ ‘그래? 그럼 북극성 만들 때 너 뭐했지? 하마가 새끼 놓을 때 너 뭐했어?’ 욥이 가담한적 없어요. 북극성 만들 때 도와 준적 없고 하마 새끼 놓을 때 욥이 도와 준적 없습니다.

하마가 새끼 놓을 때, 1번 하마가 낳았다. 2번 하나님이 낳게 했다. 몇 번이 예요? 하나님이 낳게 하셨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지혜예요. 사람이 하마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마가 자기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집어넣은 그 지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지혜, 사람에게도 있지요 여러분 그 지혜, 어디다 팔아먹었지요? 여러분 지혜 다 어디 있어요? 반드시 하마나 코스모스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그 지혜주신 자를 찬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들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는데 그 지혜를 무엇으로 바꾸느냐 하면 자기 지혜로 바꿨어요.

하나님이 춤추게 했는데 내가 춤춘다는 거예요. 이거는 하마보다 못하고 구더기 보다 더 못해요. 사슴이나 사자보다 못하고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보다 더 못한 거예요. 천하 만물보다 더 못한 게 인간이라 했어요. 아주 더럽다는 거예요. 왜 더러운가? 하나님께 돌려야 될 영광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니까 아주 더러운 거예요.

더러울 뿐만 아니라 하는 짓거리가 전부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다 죄가 되고 그 죗값으로 사람들은 죽습니다. 끝인 줄 알지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고 그 다음은 뭐가 있습니까?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안 죽으려고 하는 사람과 심판에서 면제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통 길에 가는 사람들은 안 죽으려고 사는 사람입니다. ‘어째든 돈 벌어 살아야지…….’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안다면 사람에게 죽는 것은 정한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라는 것 전체가 우리 안에 삽입되어야 해요. 우리 안에 장착되어야 해요. 내장되어 있어야 됩니다. 안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20대 초반의 청년이 게임하지 말라고 하니까 자기 엄마를 죽였어요. 그 사람 안에 뭐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사람, 한번 죽으면 그만이지’ 이것만 들어 있지 뭐가 빠져있죠?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인데 그 다음은 심판이 있다는 지혜가 없어서 안 보이는 거예요. 잔소리하는 엄마가 안보이면 자기 편한 줄 알고 있는 거예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서 심판받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8장에 보면 지혜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는 자는 저주 받아 죽고 지혜는 곧 생명나무라 영생은 생명을 얻고......, 지혜가 없는 자는 생명의 반대가 저주예요. 저주를 받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만약에 지혜가 있다면 이 지혜를 주신 자는 항상 ‘내가 했다’를 제일 싫어하고 ‘누가 했다.’를 제일 좋아할 까요? ‘하나님이 하셨다’를 제일 좋아 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우리가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이렇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하심이라.

지난 주일날 아침에 제가 이런 설교를 했어요. 내가 만드는 인생, 자기가 만드는 인생 따로 있고 주님이 만드는 인생 따로 있다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인생, 자기가 생각한대로 자기가 꾸려 나갑니다. 그러면 거기에 뭐가 빠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혜가 빠진 거죠.

하나님의 지혜가 내장되어 있다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뒤에 심판이 있기 때문에 심판의 주 앞에서 주여, 현재 제 모습이 주님이 심판하시면 어떤 모습입니까? 이렇게 비춰볼 수 있는 사람, 잔소리 하는 엄마를 내가 죽일까요? 말까요? 주님, 제가 죽이는 것이 옳습니까? 안 죽이는 것이 옳습니까?

물어볼 수 있는 그런 분이 있다는 것, 왜냐 하면 나는 지혜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비추지 말고 자기 몸 편한대로 비추지 말고 지혜 되시는 분에게 물어봐야죠. 그 지혜가 뭉쳐서 성경말씀이 되었잖아요.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성경말씀, 지혜가 뭉쳐서 성경 말씀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뭐로 산다? 하나님말씀으로 산다. 하나님말씀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늘 말씀에 비춰보면서 주여 이 몸은 주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몸인데 지금 제 상황이 어떻습니까? 하고 누구한테 비춰봐야 합니까? 동아일보, 조선일보, MBC, ……. 어디에 비춰봐야 합니까?

말씀에 비추어 봐야 됩니다. 이상화라는 여자 스케이트선수가 금메달 땄죠. 이젠 죽었어요. 왜? 이제부터 동메달 따면 욕 얻어먹게 되어 있어요. 은메달 따면 욕 얻어먹어요. 금메달 땄으면 계속 금메달 따야 해요. 금메달 못따면 그것 밖에 못해. 전에는 운이었나? 이런 소리 들어요. 지금은 기분 좋지요.

이승엽 선수 홈런 못 치면 사람들에게 욕 얻어먹게 되어 있어요. 4번 국민 타자가 그것밖에 못 쳐 하고 욕 얻어먹게 되어 있어요. 애들 성적이 갑자기 30등에서 5등으로 올라가면 그 아이는 힘들게 되어 있어요. 이제 5등 밑으로 내려가면 잔소리 듣게 되어 있어요.

누가 그렇게 심판합니까? 우리 하나님이 5등 밑으로 내려가면 나쁜 아이 라고 하던가요? 하나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던가요? 5등 아래로 내려가면 나쁜 아이라고 하던가요? 누가 그렇게 하던가요? 우리가 어디에 비추어 봅니까?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해 라고 하는 옆에 있는 사람 말에 비춰봐야 합니까? 아니면 우리 지혜에 비춰봐야 합니까?

지혜에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비춰봐야합니다. 누가 심판주입니까? 마지막 때에 죽고 난 뒤에 이웃집 아저씨가 우리를 심판합니까? 아니면 우리교회 목사님이 심판해요? 우리 주님이 심판하고 하나님이 심판하잖아요. 그러면 평소에 우리가 누구 말 듣고 살아야 합니까?

말 간단 한 겁니다. 논리 복잡한 것 없어요. 마지막 심판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면 지금 누구를 더 의식해야 합니까? 주님을 의식하면서 주님이 만들어 가는 이 몸 어때요? 라고 늘 비춰보는 생활을 해야 된다 이 말이죠. 저는 어떤 집회에 갈 때 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해도 항상 이 자리에 서면 ‘오늘 처음 뵙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우리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간 주일에 설교해도 주일에 오면 처음 뵙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말로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사람이 아무리 한때 믿음 좋아도 다시 말씀 앞에서는 싹 밀어버려야 돼요. 믿음 좋은 것, 신앙생활 잘 하는 것, 완전히 백지로 돌려 버려야 해요. 아무것도 믿음도 없다고 하고 그 빈자리에다가 눈 오듯이, 그 빈 공터에 하늘에서 하얀 백설이 쏟아지듯이 주여, 오늘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저 마음 비웠습니다. 옛날에 잘 믿었 던 것, 그것 다 과거 이야기이고 과거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고 지금 제가 말씀이 필요 합니다. 지금 지혜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밤에 죽어도 있는 지혜 때문에 살기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아, 나 그 말씀 다 안다. 빌립보서 다 읽어봤다” 이런 소리 할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이 항상 살아서 우리로 하여금 백지로, 모든 것을 무로 돌려요.

여러분들이 무로 돌리는 것을 잘 못 보셨다면 안 믿는 아버지, 주사가 심한 아버지 같은 경우 저녁때 엄마가 “여보, 이제 왔어요” 하고 상 차려 주면 “확 치워라” 하고 밀어버리죠. 그렇게 밀던지 발로 차버리던지 상채로 날라 가던지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밀어버려요.

나, 똑똑합니다. 성경 많이 봤습니다. 성경 백독했습니다. 그것 확 밀어버려야 합니다. 그것 다 지나 간 겁니다. 내가 있어서 오늘 내가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주님께서 지혜로 또 살려주니까 사는 거요 하나님의 지혜로 살았습니다. 하는 고백을 해야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가 산자, 지혜가 있는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죽을 때까지는 내 힘으로 살고요 죽을 때 가서 주님 믿겠습니다. 하는 이런 꼼수는 그 날 밤에 네 영혼 데려가면 너는 그냥 홀로 가는 거예요. 자기 밖에 모르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지금 까지 한 것을 정리해 보면 내가 춤을 춘다. 할 때에 세상 사람들은 내가를 집어넣어요. 심지어 신앙 생활했다가도 생활이 바빠 가지고 성경을 안 보게 되면 ‘내가’를 집어넣어요. 성경을 안 보게 되면 갑자기 주님이 들어가던 그 자리에 누가 들어 가냐 하면 그전까지 내가 교회 다녔는데 언제부터 내가를 집어넣어서 내가 신앙생활 했다. 내가 그때 교회 다녔다. 내가 그때 기도 했다. 내가 그때 헌금했다. 자꾸 ‘내가’가 또 들어가 버려요.

그래서 교회 나오라고 하면 내가 바빠서 못나오겠어요. 이렇게 되지요. ‘예배드리러 오시죠.’ ‘바빠서 못 가겠다.’는 거예요 예배가 필수가 아니고 이것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려면 말고 예배 참석의 움직이는 주체가 누가 돼 버렸습니까? 자기가 참석하고 싶으면 참석한 거예요. 그래 놓고 앉아가지고 ‘주여, 내가 오늘 예배 참석 안하는 데 내가 알아서 왔습니다. 나 예쁘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신앙은 뭐냐 주께서 예배 참석하게 하셨구나. 내가 ‘내가’라고 차려 놓은 모든 상에 국그릇과 밥그릇을 다 엎어 버리고 내가 차려 놓은 상을 엎어 버리고 주님께서 차려 놓은 것, 그것이 새롭게 우리 마음 상에 하나 둘씩 제자리를 찾아서 놓여 져야 한다는 겁니다.

창세기를 저쪽에 놓고 예레미야는 요쪽에 놓고 요한계시록은 이쪽에 놓고 십자가는 여기 놓고 이 전체가 지금 나로 하여금 나를 있게 하나님의 배후에 역사하신 숨겨진 일이었구나. 이런 자리가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바로 코스모스 같고 이게 바로 참새 같고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의 새로운 피조물 되는 겁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판사가 되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공부해서 됐습니다. 이러면 안 되고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이 길로만 가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그냥 순종하는 마음으로 마음에 안 들지만 판사 하기로 했습니다. 뭐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어머니가 왜 들어갑니까? 어머니가 우리의 창조주가 아니에요.

우리의 창조자는 지혜예요. 이 지혜가 나중에 신약에서 예수님이죠. 어머니가 창조자가 되었다면 어머니 따로, 나 따로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지혜가 나의 창조자가 되면 지혜에 연결된 고리에서 아무리 도망쳐도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구약에 요나 있죠. 요나서 보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나와 하나님 사이에 고무줄이 있습니다. 아무리 다시스로 도망쳐도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자기를 당기는 고무줄은 더 세게 당겨지지요. 땅 하고 당겨져서 이것은 하나님의 고무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어이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 요나의 모습은 바로 모든 하나님의 택한 백성, 바로 그러한 관계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라 이 말입니다. 그 요나가 여러분 속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 나는 아무리 해도 땅 끝에 갈지 라도 주님 거기 계시고 바다 끝에 가더라도 주님 거기계시고 또 실험하지 마세요. 괜히 잠수복 입고 들어가지 마시고 하늘 끝에도 가도 주님 거도 계시고 찜질방에 가도 주님 거기 계시고 여럿이 있어도 거기 계시고 혼자 있어도 주님 거기 계시니까, 사람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항상 주님이여, 주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저 어떻습니까? 라고 비춰볼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항상 성도의 특징은 ‘내가’가 아니라 여기에 ‘하나님’이 들어간다. 하나님이 들어가신다. 말이 맞죠. 그런데 범위가 너무 넓어요. 하나님이 일 하실 때 “하나님이 하신다.”라고 할 때 제가 물어봅니다. 자 하나님 춤을 추신다. 무슨 목적으로 춤을 추는데? 자세한 내용을 모르면 그냥 춤 자체가 목적이겠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춤을 추는 경우 에도 춤 자체는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님 되시는 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는 겁니다.

2장 8절부터 다시 봅시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하면서 그분이 모든 사람의 뭐가 되게 하신다? 주가 되게 하시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내 춤추는 것 솜씨 보이라고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우리가 먹든지 마시던지 춤추던지 노래를 하던지 무엇을 하던지 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춤을 춰서 구원받는게 아니고 춤추는 것은 하나님이 추게 해서 추는 것은 맞아요. 맞지만 하나님이 시켜서 춤을 췄다고 해서 그 춤춘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누구 때문에 구원받는다? 주님 때문에 구원받고 주님 이름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목표 점이예요. 도달점입니다.

지금도 안 믿는 사람이 택시 운전한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운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엉터리고 지혜가 아닙니다. 지혜를 아는 사람은 택시 운전한다 할 때 누가 운전한다 하겠어요? 하나님께서 불신자에게 운전하게 하시죠. 그런데 불신자 그 사람이“그래, 나는 운전하니까 운전으로 구원받는다.”라고 말하면 맞아요? 틀려요? 틀렸어요. 내가 운전하는 것은 운전하는 운전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고 그렇다면 운전하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구원되기 위에서는 운전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따로 준비 하신 분, 따로 구원자로서 마련하신 분이 계신데 그분을 여기서 한 자로 보면 뭐라 합니까? ‘주’, 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신앙의 내용이 슬슬 입질이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믿습니까? 아, 하나님께서 돈이 없어서 돈을 주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를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가 되시는 분을 주시는 군아. 그것은 우리가 원했던 것은 돈인데 돈, 있으나 없으나 너는 구원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기 위에서는 돈을 달라는 우리에게 주를 주시는 겁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고 두드려라 열릴 것이고 찾으라. 찾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너희들이 못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죠. 제가 방금 두 가지를 다르게 얘기했죠. 첫 번째는 뭘 안주신다? 우리의 원하는 것은 안주시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죠. 여기 원하는 주체가 누가 원해요? 주님이 원합니까? 내가 원합니까? 여기 문제는 내가 원한다는 것이 문제예요. 내가 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주시지 않고 필요한 것은 주체가 누구입니까? 누구보기에 필요해요? 주님이 하나님 보시기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누가복음에 보이니까 성령을 주신다 했습니다.

자, 우리 생각해 봅시다. 중국집에 갔습니다. 자장면이 먹고 싶어요. “여기 자장면 둘”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볶음밥 둘” “아니, 이거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 볶음밥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 왜 주십니까?”그러니까 주인이 하시는 말이 “당신, 요즈음 밀가루 음식 너무 많이 먹었어.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주는 거야”라고 볶음밥을 주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기분 나쁘겠죠. 그래서 그 주인을 죽여 버렸어요. 죽이고 중국집 문을 나오는 데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발자국 나오는 데, 보니까 내가 죽인 주인장을 주님께서 살리셨어요. 세 발자국 만에 살려버렸어요. 그래서 문밖에 나가서 어깨를 확 짚으며 하는 말이 “내가 볶음밥 먹으라 했지”라고 했을 때 그게 성령이 역사하신 겁니다.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무엇과 무엇을 대조시키느냐 하면 내가 원하는 것과 주님께서 주시고 자 하는 것을 대비시키는 일을 누가 하냐 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겁니다. 가운데 주님을 놓고……. 어떤 사람이 춤을 추는 데 춤을 춘다고 할 때 보통 두 가지가 있죠. 한 쪽은 내가 춤을 춘다. 하고 또 한 쪽은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춤을 추게 한다. 이렇게 되어 있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느 쪽을 좋아해요? ‘내가 춤을 춘다.’를 좋아하죠.

심지어 교회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내가 꽃꽂이 했습니다. 내가 헌금했습니다. 내가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 새벽기도 나왔습니다. 전부다 교회 와서 조차 ‘내가’라고 합니다. 심지어 목사 설교 듣는 말이 “목사님, 내가 뭘 해야 복 받습니까?”그러면 복음 아는 목사님은 “주는 대로 먹으세요. 주께서 주는 대로 먹으세요”그러면 속으로 뭐라 하냐면 “싫어요. 주는 대로 먹을 것 같으면 교회 뭐 때문에 나와요. 교회 나왔다는 그런 수고로움 속에서 대가를 받으러 나왔지. 주는 대로 먹을 것 같으면 교회 안 나와도 주신다 하겠네요”그러면 목사님이 말씀 하죠. “바로 그 주체, ‘내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느냐 그것이 바뀌어 져야 합니다.”라고 하죠. 그러면 “내가 미쳤습니까? 나, 안 바꿉니다.” 목사님이 “바꾸세요”하니까 그 교인은 “안 바꿉니다.”하면서 목사를 떠밀었어요. 목사가 죽었어요. 사흘 뒤에 부활했답니다. 내 고집을 버리지 않는 것 때문에 누가 죽었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죽었어요. 그 죽은 예수님을 살려서 우리의 진짜 구세주가 바로 네가 떠밀었던 그분이 너희의 구세주라 할 때, 나는 세상을 너무나 좁게 봐서 내가 원하는 자장면만 생각했지 그것이 나로 하여금 지옥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는데 주님께서 자장면 먹지 말고 볶음밥 먹으라고 해서 먹으니까 그 안에 다이아몬드가 두 개가 나오죠. 영생 나올 줄이야 그것을 볶음밥 먹기 싫어서 몰랐죠. 이 맛 없는 볶음밥아 하고 먹다보니 뭐가 딱하고 걸리는 것이 금 2개, 다이아몬드 7개가 나오고 백금3돈 나오고 그냥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도 나오고 두 번 다시 지옥 안가고 천국 간다. 이런 것도 나오고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하고 좋아가지고 다이아몬드 끼고 백금 끼고 나와서 하는 말이 “나는 구원받았다”이러다가 또 얻어맞아요. 왜냐 방금 뭐라 했습니까? ‘내가’구원받는 다고 했죠. ‘내가’가 아니고 ‘주님’이 나를 구원 시키신 것이죠. 방금 그렇게 일러줘도 또 나가서 내가 믿어서 내가 구원 얻었다고 합니다.

자식은 낳고 나면 따르지만 지혜로 창조된 사람은 요나처럼 아무리 지혜를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비로소 안 믿는 사람은 무엇으로 심판 받습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 데 그 심판은 하나님의 지혜에 입각해서 그 사람을 저주하죠.

이제 빌립보서라는 것이 왜 복음인지 아시겠죠. 빌립보서는 바로 하나님께서 한 계획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니까 우리는 여기에 가담 됐을까요? 우리가 여기에 협조했을까요?, 협동했을까요? 우리 힘은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세요. 가만히 있으면 절로 내 인생을 내가 꾸려 간다는 생각이 또 밑에서 올라 올 겁니다. 말이 이상하죠.

다시 천천히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하세요. 그냥 가만있으면 아무리 교회 와서 주님이 하셨다는 소리를 해도 교회 문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또 슥 올라오는 것이 역시 내가 설거지를 해야지 저거 나두면 우리 남편 생전 설거지 안 한다. ‘내가’가 또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이제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하나님께서 목적하는 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죠. 이것을 한 자로 뭐라 했습니까? 누가 필요하다? ‘주님’이 필요해요.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우리에게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있다?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여겨요. 숲속 뒤에 염소가 있다. 안보이잖아요 안보이면 없는 거예요 하나님 거짓말하지 마라 나는 안 믿는다. 안보이니까 그런데 숲속 뒤에서 염소가 쑥 튀어 나오면 그때는 믿어요. 왜? 보이니까 그렇죠. 그래서 주님은 사람들이 보고자 하여도 보이지 않는 장소에 있고 믿으려 해도 믿지 못하는 장소에 있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곳에 있고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하는 곳에 있어요.

제가 어디서 강의를 하는데 질문을 받았어요. “목사님 사람이 구원을 소지한 다음에 어떤 새로운 행위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말을 가로 막았어요. 구원을 소지한 것이 아니고 덮쳤습니다. 덮친 거나 소지한 거나 같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데 같지 않습니다. 장충체육관이 바퀴벌레를 덮칠 때 바퀴벌레가 장충체육관을 소지 한 겁니까? 똑같은 구원인데 저는 ‘구원을 덮쳤습니다.’하는데 그 사람은 자꾸 ‘우리가 구원을 소지하고 난 뒤에’소지한 것이 아니고‘구원이 덮쳤습니다.’하는 겁니다. 사람은 자기가 소유해야 보여요. 보이는 것을 소유하고 소유해서 보는 겁니다. 그냥 보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보는 겁니다.

남자 500m 금메달 딴 모태범이 금메달을 깨물어 봅니다. 안 깨물어도 아는데 깨뭅니다. 내꺼다 이 말이지요. 진짜 금인가 왜 깨물 수 있냐하면 자기 소유에 잡히기 때문에 깨무는 겁니다. 예수님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잡아서 지금도 깨물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새끼 맞나? 깨물고 있는데 우리가 주님을 깨물려고 하니 너무나 커서 못 깨물지요. 구원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덮쳐 오는 것이지 저녁노을 시장에서 두말에 얼마 합니까? 말이 안 돼지요. 왜 노을을 사는 것이 안 됩니까? 3kg 같으면 잘라서 내 소유가 되어서 이것은 200원 이런 식으로 되는데 노을이나 아침햇살은 그 자체를 우리는 덮어버리죠. 덮어 버리면 누가 누구를 탓해요? 노을이 우리를 덮친 것이 우리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우리보다 큰 것입니다.

지혜가 우리를 덮치니까 우리는 지혜 앞에서 ‘주님 지혜 앞에 우리 어때요?’이렇게 물을 수 있지만 우리 주님을 내가 지고 주님을 믿어줄까 말까 이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럴 수 없는 데 사람들은 교회 와서 ‘목사님, 제가 뭐 할까요?’‘내가’를 집어넣는 것이 습관화 되어서 나중에는 ‘주님이여, 어떻게 하면 이 맘 돌리겠습니까? 내가 뭣 좀 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주님을 자기 손바닥에 얹어 놓고 가지고 노는 식으로 ‘주님이여, 다음 주에 바빠서 못나오거든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 다음 주에 올게요.’내가 교회 못 나온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 다음 주에 교회에 넣어 주지 않습니다.

모든 주체가 ‘내가’아니고 주님께서 교회 가게 해야만 교회 가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의 흔적을 가진 사람, 주님의 표시가 있는 사람, 주님의 이끌리심을 받은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오늘 여러분들을 이끄시는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텐데 목사가 복음을 모르면‘이것 하세요.’하면 ‘이것 하세요.’하는 순간부터 주님을 잊어버리고‘목사님 그거 했어요.’ 자기가 했다는 것 또 나오는 겁니다.

지금부터 주님의 발생 과정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어떻게 나오는가?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 뜻은 여기에 자기 사람을 보내요. 자기 사람을 보내는데 여기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이 있어요. 우주를 덮어 창조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자기 사람을 보내는데 등 뒤에 고무줄이 있어요. 이 고무줄을 쉬운 말로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의 줄로 그 사람을 세워 놓으면 이 사람은 고무줄이 있기 때문에 아까 요나 이야기 했죠. 요나가 아무리 다시스로 도망쳐도 잡아당기면 휙 하고 다시 니느웨로 가야하잖아요. 그것처럼 이 언약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누구의 지시를 따르냐 하면 언약의 지시를 따라야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언약의 내용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주가 되시는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을 맛보기로 미리 조금 조금씩 부분 부분씩 언약을 통해서 지상에 있는 언약 사람에게 전달이 되게 되어있어요.

예를 들어서, 노아 같은 경우에 노아가 방주에서 제사 드릴 때 깨끗한 짐승 잡았습니까? 더러운 짐승을 잡았습니까? 정결한 짐승을 잡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못하죠. 나라에서 한사람만 군에 보내라고 하면 아들이 둘이면 누구를 보내겠어요? 골치 아프고 매일 사고치는 애를 군에 보내지 공부 잘하고 착하고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군에 보내겠습니까? ‘어휴 말썽꾸러기 너는 군대 갔다 와야 인간이 돼. 너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까 너는 군대 갔다 와야 인간이 돼’라고 군대에 보내요. 그래서 착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뜻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는 것에 반대로 해요. 인간이 선악과 따먹고 신을 모방하지요. 모방을 하면 모방한 그것을 하나님은 또 모방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간들이 죄 짓고 난 뒤에 인간들이 무화과나무로 무엇을 만들었죠? 치마를 만들었죠. 하나님은 그것을 흉내 내서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또 치마를 만들었죠. 그런데 원단이 달라요. 원단이 뭐죠? 가죽으로 만들었죠.

바리새인들이 상급을 얘기 하니까 예수님도 그것을 흉내를 내서 누구한테 대가를 받으면 하늘나라에 상이 없다고 얘기 했어요. 예수님이 하는 그 모든 것은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신을 흉내 내서 지어낸 구조가 있어요. 예수님이 그 구조를 그대로 본떠서 그 구조 안에서 얘기를 해요.

예를 들면 구제를 하니까 예구님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것은 구제할 때 떠벌리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흉내 낸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오른손이 범죄 하면 찍어버려라 나머지가지고 천국 가는 것이 전체가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한 쪽이 죄를 범해도 다른 쪽이 착한 일 하면 그것이 보상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흉내 내서 이야기하신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오른손 자르는 그런 무모한 사람이 교회에 많이 나옵니다. 이상하죠. 그렇게 해서라도 말씀대로 살고 싶은 거예요. 말씀대로 살고 싶어 했던 바리새인이라는 선배가 있었어요. 말씀대로 사는 최고의 수준인 바리새인입니다. 그 바리새인들이 하는 짓을 주님께서 그대로 흉내 내는 거예요. ‘내가 맹세할게.’ 이 말은 사람이 맹세 안하고 사는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산상설교나 모든 마태복음 설교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가지고 논다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전도서 9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잖아요. 내가 마음을 다하여 연구해 보니까 의인이나 착한 자나 그 사람이 다 하나님 손에 있으니 사람이 아무리 착하다고 해서 깨끗하게 산다고 해서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나쁜 짓한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의 미래는 하나님 손에 달렸지 네가 착하다고 좋은데 가고 나쁜 데 가는 게 아니다 이 말입니다. 네가 이 땅에서 어떤 행위를 하던지 네 미래하고 관계없다 이 말입니다. 그 뒤에 보면 무엇을 해도 악하기 때문에 착한 일해도 악하고 에티오피아에 어떤 의사 신부인 그 사람은 에티오피아에 가서 대장암 걸려 한국에 와서 죽었는데 나이가 48이에요. 30대에서 보면 많이 살았네 하지만 50대에서는 어이구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러지요. 죽었어요. 얼마나 의사 신부되어 어려운 사람돌보고 에티오피아인 도와 줬습니까? 그래서 천국 갔습니까?

사람 구원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지 자기가 이 땅에서 착실히 살았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주님의 소관이고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살아가면서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것이 나의 구원과 상관이 없음을 믿어야합니다.

이런 소리 듣고 ‘그렇다면 이제 난 교회 안 간다.’이러지요. 간다고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온다고 해도 천국 가는 것 아닙니다. 바로 주체가 내가 아니고 우리주님이 주체라는 것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것을 믿는 다고 생각하지요. 그렇게 생각할 때 2초지나면 속에서 솔솔 올라옵니다. ‘주여. 모든 세상만물이 주께서 하시는 그것을 내가 믿었습니다.’ ‘제가 믿었습니다.’ 또 믿음의 주체가 ‘자기’가 스멀스멀 나옵니다. 이 병은 평생 가는 질병이라서 내시경해도 건강 진단해 봐도 소용없습니다. 그냥 살다 죽으세요. 주여 나한 테 찾을 것은 바로 내 주체만 찾는 내가 뭐했다는 내 실적만 찾는 그것 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이 그림을 주목 하세요 사람이 꿈틀거리면서 행위를 하면 반드시 의지를 동원해서 하잖아요. 꿈틀거리면서 했던 업적을 관리를 해요. 2005년도에 했던 업적, 2006년도에도 했던 업적……. 이렇게 관리를 해서 ‘제가 예수님 믿고 난 뒤 했던 멋진 일이고 착한 일입니다.’ 하고 관리하게 되면 이것을 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밖에 누가 있냐면 주님의 의지, 주님의 행위가 있어요.

주님은 뭐냐 하면 오늘 본문을 보면 십자가 지셨던 분입니다. 우리한테 얻어맞으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죽임을 당한 분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분이예요. 사람은 죽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 살리셨어요. 그분이 주님의 행위와 의지가 만나면 이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겠지요. 이렇게 행위주의가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또 죽이는 겁니다.

인간의 주체라는 것은 자꾸 흩어놓고 또 주워놓고 폭탄을 터트려 사방팔방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다 흩어놓아도 다시 주어옵니다. 어떤 교인이 교회 와서 꽃꽂이 해 놓고 ‘주여 이거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주로 말미암아 시켰습니다.’ 생각했죠. 그거 한 2초가죠. 그리고 예배 끝나고 ‘어, 그거 내가 꽃꽂이 했어. 만지지마’ ‘청소 내가 했어’ 또 ‘내가’ 다시 찾아요. 신발정리 내가 한 것, 이 강대상 내가 한 것, 이 마이크 내가 한 것 전부다 자기 것을 잊지를 못해요. 어느 날 ‘집사님 교회를 떠나셔야겠습니다.’ 하면 ‘내가 왜 떠나 이것 내 것인데’주님께 바쳐놓고 주님께 바친 것이 아니고 자기 자리에 자기 관리대상에다 주님을 훼방하는 자기의 자리가 또 마련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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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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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