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7:14-19 (재앙의 시작)우리교회출애굽기

재앙의 시작 2003년 12월 21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7:14-19
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7: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너는 하숫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7: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7: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찌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7:18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7: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위에 펴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에와 나무 그릇에와 돌 그릇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오늘 본문을 접하게 되면 모세와 바로왕의 관계가 뭔가 비정상적이다는 것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쪽이 도리어 부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막무가내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대화 자체가 성립이 되지를 않습니다.
적당선에서 양보해 줄 것은 양보하고, 타협을 할 것은 타협을 하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것임을 누구도 잘 압니다. 따라서 이런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세가 바로왕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든지, 말하는 것이 너무 건방지고,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담박에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바로왕이 오히려 불쌍히 보이고 동정이 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세와 하나님의 윽박지름에 넌저리를 내는 심정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왕은 지금 모세를 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의 인간의 태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문제 삼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 아담의 후손들인 인간들이란 늘 자신과 다른 자아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에 저일 먼저 자기에게 취한 조치는 바로 다른 자아상으로 위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방패삼아 자신의 실상은 그 뒤로 감추는 겁니다. 진짜 자아와, 본인이 되고 싶은 자아상을 같이 병행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 버릇을 하나님을 상대할 때도 그대로 시행되니까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연출과 연기를 하는 것과 실제 본심 그대로 사는 것 하고는 큰 차이가 납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 연출과 본심에 없는 행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 본심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쉬울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라도 막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우호의 여지는 남겨두는 법입니다. 이 방법이 사람 살아가는 요령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로와 모세가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 만났으면 그저 막가는 식으로 과격한 언행은 삼갈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이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에게도 타협이나 흥정이라는 것이 성립될까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있어 하나님은 세 가지의 심판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있습니다. 7인, 7나팔, 7대접이 바로 그러합니다. 왜 세 종류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인간들의 반응은 더욱 더 과격해지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 좋다. 하나님이면 다냐?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 누가 이기는지 말이야"하고 나오게 마련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성경에 나와있는 각 지시에 대한 불만도 여기서 싹틉니다. "하나님이면 우리 인간을 함부로 윽박질려도 되냐? 얼마든지 좋게 이야기하면 우리 인간쪽에서도 얼마든지 잘 알아들을 수 있는데 …"라고 불만의 꼬리를 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바로왕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봅니다. 모세라는 작자가 정말로 귀찮게 굽니다. 그것은 좋게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요구조건을 퍼부으면서 만약에 그 요구조건에 조금이나 이행되지 않으면 지팡이를 가지고 이 나라에 여호와 신의 징벌을 내리겠다고는 겁니다.
이는 횡포요 공갈이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게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바로왕의 입장에서 보다 더 강하게 대받아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현대인들은 누구나 바로왕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호응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경책을 보면서, 성경 구절 하나에 변명을 수십개나 늘어놓으려고 작정을 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은 옳은 그른데도, 제가 바쁘다보니 그것까지는 못챙겼네요. 한 번 봐주소"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7:12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즉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로왕의 마음이 계속 강퍅함에 있어 업그레이드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배후에 그의 마음을 조절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바로왕은 여호와 하나님에 손에 의해서 계속해서 강퍅해야만 하는 사명을 띠고 이 땅에 등장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되는 선지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적들에게 등장되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17절의 말씀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찌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이 말씀대로 한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변명과 위장술에 타협할 의사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대신 하나님은 인간의 위장술 뒤편을 공략하십니다. 인간들이 큰소리 칠만한 요소를 붕괴시키면서도요. 그렇다면 인간들은 더욱더 강퍅하게 나오겠지요.
그 여파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파견되는 선지자들은 더욱더 망가지는 모습이 됩니다. 즉 한 대 얻어맞으면 그 맞은 자리를 파스를 붙이고 나오고, 또 다른 곳을 때리면 그 자리에 또 파스를 붙이며 등장됩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망가지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빌립보서 2:5-9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즉 하나님께서는 교회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 '십자가 마음'입니다. '십자가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인간들은 위장과 변장으로 가득한 마음을 품고 현대를 살아갑니다. 거기서 도출되는 것이 바로 '자기 의' 쌓기입니다.
교회 내에서의 분쟁도 다 여기서 비롯됩니다. "그동안 내가 주님을 위하여 이렇게 많이 봉사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상대방보다 더 높은 공적의 탑을 쌓아서 그것으로 자아상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자신이 공적의 탑을 무참하게 군화발로 밟아 허물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마음'입니다. 즉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과 동등되시는 분이지만, 우리들의 교만됨 때문에 비참하게 망가진 분으로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모세나 장차 오실 메시야는 일반 사람들에게 밉상을 받을 만한 발언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봐서 너무 과격하고 부정적입니다.
따라서 좋게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정치적인 흥정이나 협상의 가능성으로 인해 유동적인 조건을 바로왕 쪽에서 제시할 여지가 있는데 그 여지조차 모세쪽에서 아예 차단하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도저히 수용못할 발언을 일방적으로 퍼부어놓고서는 그 제안에 수용하지 않았다고해서 지팡이를 강물에 펴니 갑자기 강물이 피가 되어 버렸고, 이번에는 호수 위에다 펴니 그 호수물을 떴던 일반 가정집 부엌에 있는 그릇에 담긴 음료수마다 모두 피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 인권적인 차원에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고집이 센 사람은 바로왕이지 애굽의 일반 가정집에 있는 철모르는 애들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고통을 누가 당하는가? 바로왕 뿐만아니라 모든 애굽의 사람들이 다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왜 이리 확대시키는 겁니까? 그것은 나중에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빠져나올 때, 애굽인들 간에 맺었던 각가지 인간적인 관계 마다 여호와만의 속성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인간과 인간 관계보다 더 월등하고 근본적인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비단 모세만 알고 바로왕만 알아서는 아니되고 전 애굽 백성과 히브리인들이 다 알아야 될 사항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기본으로하여 일을 벌리시고 성취하는지 모든 인간들이 다 알아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다 강퍅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을 때, 바로 우리의 위선과 가증됨 때문에 그러함을 우리가 알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4,233건 중 16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08 우리교회 Re..마 13:11-17 (비유에 대한 해석)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12
207 우리교회 [일반] "우리교회"는 바른교회를 지향합니다.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4-01-05
206 우리교회 Re.. 출 8: 1- 7 (개구리 재앙)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1-04
205 우리교회 Re.. 출 8: 1- 7 (개구리 재앙)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1-04
204 우리교회 Re..마 13: 1- 9 (예수님의 비유)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04
203 우리교회 Re..행 3"17-21(예정되신 분)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3-12-31
202 우리교회 Re..출 7:20-25 (피 재앙)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2-28
201 우리교회 Re..출 7:20-25 (피 재앙)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2-28
200 우리교회 Re..마 12:46-50 (예수님의 식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3-12-28
199 우리교회 Re..사 9" 6-7 (한 아기) 이사야 최고관리자 03-12-25
열람 ➜ 우리교회 Re..출 7:14-19 (재앙의 시작)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2-22
197 우리교회 Re..출 7:14-19 (재앙의 시작)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2-22
196 우리교회 Re..마 12:43-45 (더러운 귀신)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3-12-22
195 우리교회 [일반] 대장간 박기삼 사장님께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3-12-20
194 우리교회 Re..행 3"11-16 (예수로 난 믿음)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3-12-17
193 우리교회 [일반]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올립니다. [일반] 최고관리자 03-12-11
192 우리교회 Re..행 3" 1-10 (베드로와 요한의 증거)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3-12-10
191 우리교회 Re..마 12:33-37 (예수님의 정죄)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3-12-07
190 우리교회 Re..출 7: 1- 7 (하나님의 군대)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2-07
189 우리교회 Re..출 7: 1- 7 (하나님의 군대)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2-07
188 우리교회 Re..마 12:30-32 (인자와 성령)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3-11-30
187 우리교회 Re..출 6:10-12 (입이 둔한 자)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1-30
186 우리교회 Re..출 6:10-12 (입이 둔한 자)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3-11-30
185 우리교회 [일반] Re..화평 교회를 소개 합니다. [일반] 최고관리자 03-11-28
184 우리교회 [일반] Re..교회이름에 대하여 역대하 최고관리자 03-11-2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