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강의20100128b
대전강의20100128b
이름 : 이미아(IP:115.41.208.77)
예, 이것은 보너스인데 지금 요한계시록 3장 20절 이야기했죠. 사람들이 무엇을 모르냐면 이 말씀 구조에 의하면 3장 20절이, 3장 20절하고 나하고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3장 20절은 3장 19절과 창세기 1장과 레위기 12장이나 민수기 4장이나 제가 아무데나 이야기 합니다. 이쪽에 짜여져 있어요. 실이 세로 가로 짜여지듯이 말씀으로 짜여지는 것입니다. 편물 아시죠? 짜는 것.
요한 계시록 3장 20절만 딱 떼어 가지고 나한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전체 말씀의 구조가 다 달려들어요. 그 대표적인 것이 3장 1절이고 만약에 요한계시록 1장 1절을 한다면 돌출 되는 것이 1장 1절이지만 그 배후에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다 달라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라는 것이 하나의 구름이라면 나는 이 말씀의 혜택을, 먹구름에서 뭐가 내리죠? 비가 내리죠. 그 말씀이 나한테 떨어지는 거예요.
"아 이래서 구원받았구나!" 문을 열고 두드리는 것까지 이미 주께서 나한테 들어 오셨을 때 나로 하여금 어떤, 어떤 행동이 아니라 내가 이미 마음을 열 때 그 자체가 말씀에 의하면 주의 말씀을 듣고 여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그릇이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교회를 안 나온다 그럴 때 아내가 화가 나가지고 "너 같은 인간은 천국에서 안 받아 줘" 라고 했을 때 그것이 성경에서 보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 오지 마라 했는데 너 같은 인간은 교회 오라고 해도 안 받아 줘 하는 그것이 성경에 보면 이웃을 사랑한 것이 됩니다. 본인은 몰랐어요.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남편의 영혼을 걱정해서 하는 그것도 내 마음이 아니고 성령께서 일으켰는데 그 성령이 일으킨 근거가 뭐냐면 성경 어느 귀절에 보니까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식으로 하면 교회 오지마 너 같은 인간은 천국 가면 안돼!" 라는 말로 나온 거예요. 그 마음을 누가 주셨는가 하면 성령께서 주신 거예요.
그럴 때 그 사람은 역시 내가 말씀 지켰어 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주께서 나로 하여금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 행동이 어느 귀절에 맞는 줄 몰라요. 나중에 보면은 아 그때 그 행동이 여기와 연관되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요 이것은 십자가 마을에 올려 있는 글인데 어떤 중학생이 십일조를 하는데 그 중학생은 순진해서 잔돈까지 다 십일조를 했는가 봅니다.
250원 엄마한테 받았으면 25원까지 했는데 목사가 돈 계산이 귀찮아서 잔돈은 빼고 해라 반올림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 학생이 어른이 되어서 그 목사한테 당했던 것이 분통이 터져서 글을 올려 놓았는데 그러면 그 학생이 자기는 분명히 말라기에 나온 대로 하나님을 시험해 봐라 창고에 차고 넘치는지를 이러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하거든요. 십일조 안 해봐라 과연 창고가 비는지를. 성경 말씀은 해봐라 창고가 채워지는지가 성립된다면 그 다음에 뭘 안 해봐라 과연 창고가 비는지. 만약 안 해서 창고가 빈다면 하면 그만큼 하면 채운다는 거예요.
어제 수요 설교 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헌금을 안 했기 때문에 벌받아서 애가 대학에 떨어졌다면 그 다음에는 애를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 쉽다고 했습니다. 뭐만하면 됩니까? 헌금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처럼 쉬운 것이 어디 있어요? 이 말은 원인과 결과를, 내 행위로 결과를 잡는다면 일단 그것을 잡아 놓고 그 다음에 성경을 찾아갑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는데 성경 어느 구절에 있는가 하고 나중에 차후적으로 찾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것이 나중에 엉터리인 것을 언제 아느냐면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되었을 때 이것은 뭔가 원인 결과의 고리가 연결이 안되었듯이, 줄 잇기 할 때 줄을 잘못 이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못 이은 것이 다행스러워요. 잘못 이은 관계에서 그 성경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보면 안보이던 지층이 보이죠. 삼겹살 아시죠? 삼겹살의 한 겹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1층 2층 3층을 다 먹어야 하잖아요.
그처럼 성경에서 표면적 유대인처럼 문자만 보던 층이 날라가 주는 것이 그 문자층에 가리웠던 그동안 못 보던 성경 해석을 보게 하는 길이를 하나님이 허용하셨기 때문에 보게 하는 것입니다. 아 말라기 해석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의와 인과 신을 놓치면 안되는구나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뭐를 행하냐면 의와 인과 신을 보태서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2겹이라.
나중에 의와 인과 신과 겸해서 십일조 했을 때 창고가 차지 않을 때 "아! 의와 인과 신과 10퍼센트 계산한 것과 아무 상관이 없구나!" 그것도 날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십일조 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너의 몸 자체가 주님이 하나님께 바치는 하나의 제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십일조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든지 내지 않든지 현재 존재한다는 자체가 주님의 십일조의 하나의 예물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6절에 나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팁을 떼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침대 사고 애들 피아노 렛슨비 내고 이 전부가 어디에 포함됩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제물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돈 내는 것만 헌금이 아니고 애들 피아노 렛슨비 내는 것도 내 돈 내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돈 가지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모시는 것이 의와 인과 신입니다. 내가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십일조 내는 주체가 아니고 주님이 주체고 나는 그냥 어디를 가든 바쳐지는, 주님께 바쳐지는 몸입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내 것이 내 것이 아니고 누구의 것이다? 주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대한 말씀의 신약의 완성입니다. 주님에 의해서 완성된 거죠. 결국은 가면 갈수록 말씀 해석의 껍데기가 벗겨져서, 상식적인 것에서 벗어나서 도저히 예상 못한 법칙이 계속 나오는 것이 좋지요.
첨부파일 : 대전강의20100128b.hwp (5.5K), Down: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