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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강의20091231b자유게시판잠언

대전강의20091231b

이름 : 이미아(IP:115.41.208.77)

자,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약간 어렵습니다. 어려운 점을 먼저 이야기 할께요. 어떤 A라는 사람이 개별적으로 기적을 받았습니다. 기적을 받았는데, 자기는 사적인 기적 "이것은 내거야" 라고 했죠. 그런데 기적을 받은 순간 위에는 무슨 층이 있다 했습니까? 표적층이 있죠. 밑에는 기적층이 있고. 기적층을 받는 순간 외부에서 검은 세력이 달려 들어요. 이것이 17~18절에 나옵니다.

17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절.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참 신기하죠. 다시 이야기 할께요. 사적인 기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어디 기적받았다고 해서 이명박 정권 물러가라 데모한 것도 아니예요. 그냥 사적인 혜택을 입었는데, 입는 순간, 갑자기 그런 기적을 안 받았으면 그냥 평생 조용히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기적을 받는 순간 외부에서 핍박과 압박이 달려 들었어요. 그게 아래층에서는 우리 주변의 악이 그렇게 성숙될 줄 몰랐죠.

그저 이웃집 사람 좋고, 떡 잘 나눠 먹고, 애들 장래 걱정하고 남편 건강하시죠? 서로 좋게 지냈는데 어떤 순간에, 이 아파트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 그 순간 갑자기 저쪽에서 "아 저 집 상종을 못할 집안이구나 나는 같은 절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교회를 다녔구나" 갑자기 정체가 노출되는, 노출되도록 이층에서 조작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 원하고 싶은대로 살 수가 없어요. 약 주고 병 준거예요.

이것을 어렵게 이야기하면 복음이란 반드시 무엇이 복음이 아니냐? 라는 것을 통해서 복음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진짜 복음을 아는 목사는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 참 복음이 아닙니다" "참 기도가 아닙니다" 라고 해서 부정적인 것을 언급해서 쪼아 나가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여금 어려운 말로 하면 단절인데, 부정적인 것을 이렇게 압박을 가해서 진짜 당신에게 성령께서 주신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케하는 식으로 설교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이 아니고 긍정적이 되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아이구 하나님의 은혜 받았군요." 무조건 은혜 받았대. 무조건. 조금만 하하 웃어도 은혜 받으신 것입니다. 축복 받으신 것입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적인 것이 없이 무조건 이쪽에 끌어 모으기 위해서.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적 사고방식. 긍정적 사고방식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해 가지고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잠언서에 회초리 밖에 없다고 했어요. 칭찬이 아니고 회초리.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칭찬하지 말라고 했어요. 자식 다 버린다고. 칭찬도 골라 가면서 해야지 이유가 있어 칭찬 해야지 그냥 칭찬해 버리면 애는 그 다음부터 칭찬이 어디까지 가는지 부모를 시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칭찬이다 저것도 칭찬이다니까 그러면 앞으로 내 맘대로 살거야.

복음이라는 것을 결국 이렇게 잠시 결론을 먼저 내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주는데 우리 좋아라고 주는게 아니고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용하셔서 우리 안에, 기적 안에 표적으로서 준 복음이 거기에 담겨 있음을, 기적을 통해서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변에 거머리들이 몰리도록 그렇게 조치하시는 것입니다.

참 어렵죠. 우리에게 기적을 베품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기적이 다라고 좋다고 했는데 사실은 기적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 안에 표적 차원에서 준 복음이 들어 있는데, 그 복음이 들어 있는 것을 본인은 모르는데 주변에 있는 악마들은 알아 차려서 시기하고 달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있었는데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어서 보게 된 자입니다.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저 사람 참 안됐습니다. 팔자 더럽습니다. 저 더러운 팔자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 라고 물었죠. 그것은 뭐냐하면 아래층, 기적층에서 매트릭스예요. 그 기적층에서는 사람에게 저주받은 증거는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병이 들면 저주받은 것이고 건강하면 축복받은 것이다 따라서 축복이냐 저주냐 그것은 무엇으로 가늠한다? 그 사람이 건강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복 받은 것이고 그 사람이 병들었으면 본인의 죄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라고 하는 차원이 아래층 차원입니다.

이것을 누구한테 배웠다고 했습니까? 이 더러운 성질을 누구한테 배웠다고 했습니까? 복습해 봅시다. 아담에게. 아담은 A층 B층이 있는데 이 B층이 있는 것을 알고 A층이 B층을 감추는 식으로 바깥에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위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위선이라는 말도 했지만 다른 말도 하셨는데 그것을 교만이라고 하고 강퍅이라고도 했습니다.

위선은 단독으로 있을 때,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식이 위선이지만 교만이나 강퍅은 외부에서 너에게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선에 머물러 있을 때 그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참 복잡하죠. 이렇게 논리가 복잡한 거예요.

그래서 외부인이, 이웃이 등장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위선자가 되지만 이웃이 등장해 가지고 지적한다든지 피해를 보게 되면 이 사람은 위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피아노 입상했다 피아노 잘 쳐서 입상한 것은 교만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예요. 아닌데 본인이 뭐라고 하냐면 "역시 내 실력이 뛰어나" 이러면 뭐가 되요? 위선이 되는데 그것은 교만이 아니예요. 그런데 누가 묻습니다. "야 연습은 저번보다 못했는데 왜 그렇게 피아노 잘 쳤어?" "역시 내가 뛰어나니까" 그러면 뭐가 되요?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교만한 자가 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한 평생은 정답이 왜 피가 되는지를 찾아가는, 왜 우리가 문제 덩어리냐. 우리가 문제아 문제아 하지만 우리같이 문제아가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다들 문제아 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문제아 이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야 하는가 하는 이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교인들은 푼돈을 내놓아요.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얘야 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빨리 가봐라" 하니까 우리는 "얼마면 돼"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대" 하니까 우리는 "헌금 한주에 얼마하면 됩니까?" 이렇게 합니다. 목사는 더 나빠 "여러분 돈이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이 죽었다니까요!" 이렇게 해야 하는데 "십일조 하시면 복 받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왜? 교인들이 "얼마면 돼?" 이렇게 나오거든요.

건축헌금 하는데 얼마면 됩니까? 이렇게 하니까. 언제 하나님께서 건축헌금 얼마 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이야기는 뭐 밖에 없습니까? "너희를 위해서 내 아들이 죽었단 말이야!!" 지금 생명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뭘로 전환시켜서 이야기 합니까? "한 주일에 교회 몇 번 가야 합니까?" 이렇게 물어요. 꼭 행함을 내놓아요. 행함을 내놓지 말고 니 목숨을 내놓아 목숨을....

사람이 자기 목숨을 안 내놓습니다. 자기 생명이 있어야 거기서 자존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란 어디서 나옵니까? "나 아직 안 죽었어" 에서 나옵니다. "나 김또깡이 아직 안 죽었어" 이 말 아닙니까? 자기 생명을 긍정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 생명을 부정해서 죽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과 우리 만남은 뭡니까? 돈 놓고 돈 먹기 아니예요.

주님께서 고스톱 판에 뭘 내놓았습니까? 자기 목숨 내놓았잖아요. 그러면 여기서 목숨 받고 그러면 또 뭘 내놓아야 해요? "오만 달러 받고 십만 달러 더" 이렇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 목숨 받았으면 우리는 뭘 내놓아야 합니까? 결국 우리 목숨 내놓아야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말은 돈 내놓지 말고 너가 어디에 가서 뭘 하든지간에 너 생명은 너 생명이 아니고 어디를 가든지 그 생명이 누구 것이다? 내 생명이다. 이제부터 내 피의 엑기스가 너가 어디서 살든지 미국 이민가도 좋아 아르헨티나 이민가도 좋아 거기가도 내 따라가서 너 생명은 너 생명이 아니고 나를 증거하는 생명이 될께 이게 바로 예수님과의 연결선, 같은 매트릭스 구조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표적 차원에서 기적 차원을 주신 것을 사람들은 사적인 문제 "나는 기적 받았다 감사합니다" 하고 입 싹 닦고 감사헌금 내고 그걸로 떼우지만 그 기적은 어디서 나왔냐 표적 차원에서 나온 기적이거든요. 이 표적은 뭘 노리느냐면 무엇이 정답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무엇이 복음이 아닌가? 라는 것을 아는데 기적받은 우리가 참여 되기를 원하죠.

물론 기적받은 사람이 다 참여되는 것이 아니고 기적받은 사람 가운데서 구원될 사람도 있고 또 이런 획기적인 기적이 없더라도 그냥 맨숭맨숭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표적층을 바로 들어간 사람은 뭐가 기적이냐면 지금까지 내가 별탈없이 살아 온 것 자체도 하나님의 기적이 되겠죠.

어쨌든 간에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기적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기적은 그것은 무심코 던진 기적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노림수가 있다 이 말이죠. 하나의 미끼예요.

"반 복음" "비복음" "악마의 복음" 이런데 숨어있는 악마의 어두운 세력을 빨리 빨리 표면으로 등장해 숨지 말고 언제까지 숨을거야 이것을 표면에 양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음성화된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인 사이에서 어떤 초자 집사님이 교회 왔다 그 사람은 자기의 역사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구조냐면 교회의 형편에는 관심 없고 내가 옛날에 술 먹고 어릴 때는 교회 다녔는데 그 동안 타락해서 교회 안 다니다가 이제 깨닫고 보니까 내가 주님께 돌아와야 하겠구나 해서 그 사람은 뭐만 생각하냐면 교회의 비리에 얼마나 많으냐 하는 것을 생각할 틈이 없어요. 자기 과거 현재 미래만 생각하거든요. 목사님 설교 하니까 다 은혜되고 바쳐라 하니까 다 바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오래된 장로가 말리죠. "집사님 그 돈 바치면 안되고요. 그 돈 이렇게 저렇게 목사 차 바꾸고 목사 아들 유학 보내는데 쓰고 성지순례, 세미나 간다고 돈 다 쓰고 실컷 놉니다. 내지 마세요." "아이구 그런데 내고 싶어요" 할 때 그 소식이 목사의 귀에 들어갔다고 해봐요. 그 장로는 어떻게 됩니까? 그 장로는 죽은 거예요. 설교 시간에 모가지 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초자 집사가 5년 다니고 난 뒤에 그 교회 장로가 되니까 옛날에 선배 장로가 자기에게 충고했던 것이 딱 들어맞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지평은 뭡니까? 옛날에는 자기 과거에, 자기 사정에 억매였죠. 술 담배 하다가 술도 끊고 다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는 목사 시키는대로 다 해야지 라고 나오다가 지평이 확 와 버리면 숨어있던 죄가 자기 과거만 나쁜 것이 아니고 교회 자체가 어두운 세력에 장악되었다는 새로운 지평에 눈을 뜨죠. 교인들 돈 먹는구나! 돈! 돈! 돈! 아, 교회가 완전히 자본주의네! 이게 눈을 뜨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이 장로가 된 뒤에 또 옛날 선배 장로가 했던 것처럼 이것은 목사한테 하지 말고요 하고 초자 집사한테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당신이 하는 것 나도 다 거쳐 봤다고 이야기 하면 새로운 목사가 또 화내는 거예요. 장로가 법궤를 메고 소가 울듯이 법궤를 잘 몰아야 할텐데 소가 미친소가 되어 가지고 법궤를 이랬다 저랬다 하니까 갈 수가 있어야지 교회가 부흥 발전 되어야 하는데 법궤를 멘 장로가 흔들리고 목사를 반대하니까 교회가 잘 될리가 없고 모세가 지팡이가 내려오면 장로가 바쳐줘야 할텐데 이게 지팡이 진 목사를 뒤에서 잡아 땡기니까 어떻게 주님의 기적이 일어나느냐 이 말이죠. 아멘해야 해요. 선수들 다 아는 멘트거든요. 그러니까 초자들은 역시 장로 나빠 장로 치리감이야 하죠.

교회의 적은 복음의 적이 아니예요. 교회가 복음의 적이예요. 예수님께서는 복음 증거하라고 교회 세워 놨는데 처음에 교회가 복음 복음 하다가 나중에는 교회 커지는 맛을 알아 가지고 이제는 사람 관리해야 한다고 복음 아는 사람을 다 쫓아 냈습니다.

그런데 복음 아는 사람이 주의할 것은 본인이 교회 오래 다녀서 복음 아는 것이 아니고 난데없이 복음 알아 버렸어요. 기적, 기적으로 그저 바치면 애 서울대 가고 이렇게 아래층에서 놀다가 난데없이 표적층과 접촉되어 버리니까 아하 내가 기도한 것이 다 사기였고 엉터리였고 속임수였고 본인이 본인을 보기에 속임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사도행전 5장부터 나오는 핍박이 되는 것입니다. 아 예수 잘 믿는대요? 절에 다니다가 교회 다녔으면 핍박이 없어야 되지 않습니까? 왜 핍박이 오는데요? 핍박은 우리를 힘들게 위함이 아니고, 욥처럼 힘들게 함이 아니고 우리를 이용한 거예요.

우리를 영적 전쟁속에 딱 집어 넣어서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우리는 예수 믿었을 뿐인데 핍박이 들어오니까 그런데 주님은 알고 있죠. 우리를 미끼로 사용해서 숨겨져 있던 복음 복음 하지만 사실은 복음은 핑계에 불과했고 돈을 원하는 그것들이 표면에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한 하나의 미끼로 우리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초대 교회에 기적이 일어났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부활하시잖아요. 이것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서 모델하우스 되어서 초대 교회도 이 선을 그대로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베드로 노선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사도 바울 노선이 있을 것이고 베드로가 가는 길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입니다.

베드로 핍박 받은 다음에 그 다음에 바울이 핍박받죠. 바울이 핍박받는 것은 베드로 핍박받는 것을 그대로 반복하고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핍박받은 것을 그대로 되풀이 해버려요. 그 다음에 사도 요한 나오고 초대 교인들 나오겠죠. 똑같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전체 그림을 이렇게 그릴수가 있습니다. 피라미드 있지요? 피라미드로 그려 버리면 제일 정점에는 십자가가 있겠죠. 예수님께서 탄생하셔 가지고 피라미드에 계단이 있다면 그대로 올라가죠. 구약의 모세도 태어나서 그대로 올라가는데 만나기는 어디서 만납니까? 십자가에서 만나죠. 왜? 십자가에서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 안에서만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어요. 십자가 안 거치고 옆으로 공중으로 날아가는 이런 천국 없습니다.

베드로는 북쪽 계단으로 십자가에 갔죠. 사도 바울은 남쪽 계단으로. 그러면 여러분들은? 제아는? 올라가고 있는 거예요. 성령이 임하면. 안 임하면 피라미드 밖으로 튀어 나가지만. 이 십자가를 뭐라고 했습니까? 한 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아까 "답" 앞에 한 자 더 붙이면 "정답" 이 가는 길은 "문제"

문제를 가지고 왜 피가 정답이며 왜 십자가 옆에 있는 강도가, 강도가 이렇게 했습니다. 주님 나같은 인간 먼저 천국 가시거든 그 다음에 날 좀 생각해 달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하신 답변이 엉뚱합니다. 내가 먼저 가고 그 다음에 너가 오는 것이 아니고 너가 오늘 밤에 나와 함께 같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야하고 모세는 뭡니까? 이미 가 있죠. 아브라함은 이미 가 있어요. 구약이니까. 주변에 24장로들이 있고 허다한 증인들이 여기서 뭐하냐면 응원부대, 치어걸 있어 가지고 "힘내라 힘!!" 히브리서 12장에 나오죠. 우리는 경주를 하고 있죠. "자빠지지 말고 일어나 일어나라고! 나도 그랬어" 예수님도 마찬가지죠. "나도 십자가 바라보고 한거야. 일어나 일어나 "모세도 "나는 애굽의 왕자의 위치와 모든 부귀,영화 재물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간 거야 일어나 일어나" 하고 격려를 보내죠. 피라미드 이 길을 간 겁니다.

가는데, 피라미드 바깥 세계는 어두움의 세계예요. 그런데 이 아래층 젊은 애들은 어두움이 안 보이죠. 어두움이 짙어져야 하니까. 십자가는 왜 발생되었습니까? 모든 인간들이 바나바를 풀어줄까? 예수님을 풀어줄까? 할 때 누구를 풀어주었습니까? 바나바를 풀어주었죠. 그 정도로, 예수님의 편이 몇 명이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사도들은 전부 다 도망가고 말았죠. 깜깜해요. 어두움의 강도가 세죠.

어린애들은 세상이 마냥 좋아요. 그래서 저는 강아지 같다고 표현했는데 강아지가 언제 제일 좋아합니까? 눈 올 때. 소녀들 낙엽 떨어지면 울고불고 난리예요. 일기장에 낙엽 끼워 놓고 말라 비틀어지도록 하고 조금만해도 깔깔 웃고 소망은 동방신기...개그콘서트에 보니까 동방신기 중에 어느 한 사람 빠지면 동방박사 랍니다. 어릴 때는 모든게 아름다워요. 로맨틱, 낭만적이죠.

그래서 연세 많은 사람도 낭만될려고 하면 어릴 때 거닐었던 데이트했던 호수 한 바퀴 걸으면 돼요. 휴가 날짜 잡아서 콘도 빌려 가지고 연애했던 해변가 걸어보고 이게 낭만이예요. 낭만이거든요. 애들은 모든게 아름답고 신기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반영 하고자 짧은 치마 입고 세상에 이렇게 날 추운데 아가씨들이 검은 스타킹에 반바지 입고 추워가지고 벌벌 떨고 12월 24일 이브되면 밤새도록 술 푸고 술 쳐먹고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달려간다 모든 것을 다 가졌어. 뭘 모릅니까? 어두움을 몰라요.

어두움을 모르니까 애들한테는 어두움 이런 소리하면 안 됩니다. 애들은 보이즈 비 엠비셔(Boy's be embitious)야망과 비젼과 희망과 포부와 이런 것을 길러줄 때 세상에 기대를 잔뜩 갖고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12살 애한테 너 살면 죽거든 이런 소리를 못 알아 듣는 거예요. 젊을 때는 제일 십자가를 싫어해요.

기도해서 공부 잘 하라고 하면 제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 나폴레옹도 기도해서 영웅이 되었다 이런 소리를 좋아해요. 이것은 어두움이 옅어요. 하지만 80먹은 할머니들이 미니스커트 입고 밖에 나오지 않잖아요. 이제는 다 귀찮아요. 전도서에 나옵니다.

맛있는 것도 없고 이쁜 것도 없고 그저 두 살 먹은 어린애 노는 것 이쁘고. 애들 노는 것 이쁘면 할머니 다 된 것입니다. 자식들 오는 것도 귀찮고 남편도 귀찮고 이제는 어두워. 바깥의 어두움이 세포 내에까지 스며 들었어요. 마치 스펀지 같애. 바깥의 죽음의 세력이 내부에 들어와서 온 몸이 안 아픈데가 없어. 젊을 때는 그래도 주여 병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죠. 나중에 나이들면 그런 기도도 "어머니 기도하세요." "야야 기도해서 더 살 이유도 없다 기도하지마라 그냥 살다 죽을래" 모든 것을 포기하죠. 이제는 바깥과 안이 따로 없어요. 바깥이 어두우면 나도 같이 어두워요. 얇은 습자지 막입니다. 점점 막이 엷어져 가요. 그래서 의사들도 30대 40대 오면 "희망을 가지세요. 나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지만 90먹은 할머니가 어제 아침에 오고 또 오고 하면 할머니 "약 지어드릴 테니까 그냥 사세요." 그 사람들 한테는 맨날 병원에 오는 것이 낙이고 놀이터이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을 맛보게 하시는데 맛보는 것이 어떤 점이 좋을까요? 결국 우리가 어두움을 일찍 맛본다는 것이 뭐가 좋다는 말입니까? 내 위주의 로맨 낭만에서 빨리, 조기에 탈퇴할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가벼워요. 90먹은 할머니처럼 가볍다고요. 만약 20대 30대 새댁 같으면 맨날 쇼핑하는 것이 취미인데 돈 많은 새댁 같으면 보석이 어느게 더 좋은지 옷은 어떤게 더 좋은지. 나이 70, 80되어서 보석이고 옷이고 다 귀찮아요. 우리 어머니 같으면 도둑 들어서 다 가져 갔어도 아무 감각이 없어요.

빨리 이런 어두움에 접하는 것이 본인한테 손해가 아니고 자기 존재를 가볍게 하는 것처럼. 마치 배가 무거우면 배가 안 뜨잖아요. 배에서 짐을 다 내놓는 거예요. 제가 언젠가 십자가 마을에 글 썼잖아요. 짐 푸는 이야기 썼는데. 사도행전 27장에 로마로 가면서 짐을 다 내놓아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짐이 있을 때는 구원의 의미를 잘 몰라요. 다 내놓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다 내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숨을 한 명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하죠. 그것을 경험하고 난 뒤에 로마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풍랑이 왜 일어나는지 이유를 몰랐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고린도후서 11장에 나는 파도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심지어 죽음의 위험도 그 안에서 비로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죠. 어두워 하는 가운데 빛이 보인다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핍박이 온다 사도행전 초장에 핍박이 온다 기적 듬뿍 주고 여러분들이 원하는는 것 듬뿍 주고 그 층을 기적층에서 표적층으로, 복음이 기다리는 층으로 올라가면 사도들은 이미 어디에 있습니까? 기적층이 아니고 표적층에 있기 때문에 사도들은 옥에 갇혀도 찬양 했어요.

옥에 갇혀도 언젠가 일생은 일어날 것이다 이런 것처럼. 옥에 갇혔는데 거기서 쓴 편지를 보니까 옥에 갇혔는지 안 갇혔는지 모를 정도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내가 비록 옥에 갇혔어도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이것은 한 층 더 높은 삼천층이라 그러니까 여기서 봅시다.

기적층은 사적 욕심이죠. 표적층은 나는 복음의 종이다 복음을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미끼다 복음을 증거하는데 갑자기 숨어 있던 반 복음적인 것이 나를 덥석 물려고 달려드는 것이죠.

더 높은 층에서는 나는 사나 죽으나 의미 없고 오직 뭐만 있느냐? 말씀이 스스로 알아서 매트릭스를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매트릭스 관계를 넓혀 가는 거예요. 죽을 지경입니다. 아래층에서는 너는 복음을 증거하니까 죽으면 안되지 하지만 더 위에 말씀 층에 가면 "주여 죽을 지경입니다" 주님은 "그래 죽어라 빨리 죽어라" 이게 사도 바울에게서 나옵니다. "나는 이제 부름을 받고 간다 하지만 나는 가지만 내가 전한 말씀은 계속해서 너희들을 구원할 것이다." 여기서 누가 빠집니까? 사도 바울이 빠지는 거예요. 나는 있은 것도 은혜였고 없어지는 것도 은혜였고 그저 사람은 아침에 있다가 오전 10시가 되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 모든 사람의 영광은 풀이요 꽃의 영광에 불과한데 그것은 사라져도 말씀은 영원하리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가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기적층에서는 베드로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착각했죠. 사실은 베드로가 말렸습니다. "제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해도 표적층이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층이 베드로를 이야기 하니까 사람들은 이것이 안 보이고 베드로만 말씀 전하고 베드로만 기적일으키니까 먼 데서 베드로를 보고 오는 거예요. 하지만 사실은 윗층에 올라가면 본인이 베드로이고 본인이 사도바울이죠. 초자는 그냥 목사님 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부목사는 안 됩니다. 오로지 목사만 와서 기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이 몇 일이죠? 12월 31일. 오늘 밤에 참 걱정 됩니다. 오늘 밤에 교회마다 돈 받고 성경 말씀 하나 뽑기 해 가지고 돈 받은 사람에게만 이것은 일년의 목사님이 기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펴 보면 주로 마귀 말이죠. "너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 둅의 친구들의 말이잖아요. 그것은 욥이라는 표적층에서 욥이 복음을 알고 있으니까 주변의 친구들이 친구가 아니고 마귀였잖아요. 마귀가 한 말이 너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는 것이 그 이야기 합니다.

지금 저는 12월 31일 되면 한국교회 송구영신 예배 드리는 것 아! 미치겠다. 수 백 번 이야기 해도 또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하는데 크리스마스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송구영신예배 전부 다 무엇 때문에 있느냐면 목돈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 예산을 채우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목돈의 구실을 달기 위해서 입니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돈 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목회하지 장로나 목사가 목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자체가 우선화 되지 않기 위한, 교회 전체를 기적층에서 만약에 교회가 부흥되면 뭡니까? 눈에 보이죠. 기적층은 눈에 보이죠. 표적층은 눈에 보이기는 보이지만 핍박이 보이죠. 말씀층에 보면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의미 없습니다. 핍박도 의미 없습니다. "저 고난 받았습니다." 주께서는 "어쩌라고? 어쩌라고?"

욥 안에 그리스도 이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믿는 것과 예수님 믿는 것과 완전히 전부 다 정반대이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욥의 고난이 바로 표적인데 욥의 고난 없이 친구들은 욥의 고난의 의미를 모르면서 하나님 하나님만 섬긴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자 봉사하자 충성하자 이렇게 섬겼는데 나중에 보니까 누구와 적이 되었다? 욥 하고 욥의 친구들하고 적이 된 것입니다.

보통 교회가 하나님 믿는 것하고 예수님 믿는 것하고 적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뭘 갖고 있다? 표적층을 갖고 있고 말씀층을 다 독점했어요. 이것을 가지고 아까 무슨 언약이라고 했습니까? 새 언약이라고 했죠. 새 언약은 누가 이루죠? 예수님만 이루죠. 그러면 우리는 새 언약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매트릭스. 다 이룬 가운데서 우리는 언약을 공짜로 우리는 이룬것도 없으면서 다 이룬셈이 되버려요.

왜? 같은 배를 탔기 때문에. 예수님이 배의 사공인데, 예수님이 배의 주인인데 우리는 염치없이 올라 탔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방향과 우리가 가는 방향이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임승차예요. 돈 안내고 택시 타는 것입니다.

새 언약에 의해서 예수님 표적과 말씀층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예수님 자신이 육체로 오셨으니까 사람들의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눈에 보이죠. 봤는데 기적만 원했죠. "예수여! 오병이여 행하셨다면서요? 그러니까 떡을 계속 주시옵소서." 하니까 "너는 날 찾는 것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표적층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너는 표적을 봐야 해 기적을 보지말고 표적은 뭐냐? 내 떡은 생명이 떡이고 내 살과 내 피는 너를 살리는 생명이다 라고 하니까 단 한 사람도 안 남고 다 가버렸습니다. "너도 갈래?" 하니까 "주께 말씀이 계시매 어디로 가겠삽나이까" 말씀이 있으면 딱 붙잡아 주면 사도들은 표적층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지맘대로 못 빠져 나갑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 사람과 사도들은 고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21절 봅시다.

21절.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 오라 하니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했죠. 잡아오라고 해서 옥에 가두었잖아요. 23절에 보니까. 문에 보초 섰죠? 그러면 제가 묻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믿는데 왜 옥에 안 가둡니까? 사도들은 옥에 갇혔는데 우리는 왜 교도소 안 갑니까? 26살 먹은 미국의 어떤 청년은 너무 옥에 안 가두어 주니까 옥에 가두어 달라고 북한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객기야 내가 보니까 미쳤어.

그래서 공산주의 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사나 역사에 보면. 악마는 그 객기를 역으로 이용해서 공산주의 전도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예요. 철이 없으니까. 아까 피라미드 낮은 층에 있으니까.

왜 요새는 옥에 안 갇칩니까? 아까 제가 이야기 한대로 예수님 가신 길을 사도가 반복하고 그 사도가 반복한 것을 성도가 반복하는데 우리는 옥에 안 갇히고 편안하게 만두 먹고 있잖아요. 왜 우리는 옥에 안 갇칩니까? 왜 우리는 성도 아닙니까? 성령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옥에 안 갇히는데요? 제가 봐도 어려운 문제를 냈습니다.

사도는 기존에 있는 옥에 갇혔잖아요. 우리는 주변에서 옥을 만들어요. 현대판 옥에 우리는 점점 더 족쇄를 채워요. 세상이 무슨 중심으로 삽니까? 돈 중심이죠. 자본주의, 이게 우리한테는 감옥이예요.

우리는 외부에서 만든 것에 옥죄듯이 점점 쬐여 온다니까요. 아는 동창생 다 헤어지고 아는 친구들이 술집으로 다 떠나가고 이것이 뭡니까? 점점 더 큰 옥이 우리를 콕콕 찌르고 있다니까요. 마귀가 그렇게 바보가 아니예요. 우리와 좋았던 관계, 특히 일가친척,아... 옛날에 같이 교회 다닐 때 그렇게 은혜를 받았던 친척. 한 쪽은 시집을 가서 부산에 가고 이 쪽은 시집가서 서울에 갔는데 나중에 20년되서 만나서 보니까 복음이 완전히 달라요. 다 갈라져요.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저항입니다. 새로운 가시밭길 입니다.

그런데 사도의 특징은 옥에서 뭐했습니까? 감사하고 찬양했잖아요. 그 이유가 뭡니까? 다시 한 번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같지 아니하고 예수님 십자가 가신 길을 가게 하신 것을 체험케 하신 은혜. 말씀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말로만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 밑에 있는 17살, 19살, 20살 이런 애들한테는 감옥이 없습니까?

애들 나름대로의 감옥이 또 있어요. 다른 애들은 다 여자 친구하고 크리스마스 날 밤새도 되는데 왜 엄마는 집사가 되어서 계속해서 전화화고 "애야 너는 12시까지만 놀고 오너라" 안 오면 전화하고 "아! 나는 정말 우리집이 싫어!" 뭐가 돼요? 갑자기 예수 믿는 우리집이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옥죄죠. "너는 그래서는 안돼 다른 친구들은 예수 안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너는 일찍 들어와야 해" 뭔가 옥죄죠. 어떤 제한을 두는 것.

그렇게 깊은 의미까지 17살이 다 모른다 할지라도 뭔가 저 쪽길이 아니고 이 쪽길로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도하고 인도하고 있다는 느낌. 반발은 되죠. 반항은 되죠. 왜? 우리에게는 A층만 있는 것이 아니라 B층이 있기 때문에 그걸 금지한 것을 넘어설 수는 있지만 그래도 뭔가 A층 쪽에서 몇 초이지만 끌 당기는 것을 느낄 때 뭔가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또 나름대로의 하나의 감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대로 인도하십니다. 다만 부모의 방치가 아니라 부모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마음껏 원 없이 잔소리를 해대야 합니다. 잔소리 안 하면 애가 옆길로 가기 쉽거든요. 잔소리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거든요. 그만큼 부모의 희생이 있어야 되거든요.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마음껏 잔소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을 성질대로 하세요 라고 합니다.

자, 29~30절 봅시다.

29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감옥에 안 갇혔으면, 그렇게 사도들의 병 고침이 없었으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갔겠습니까? 아니죠. 아니죠. 사도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그 당시의 정권 잡은 자들이 "내가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 말라 했잖아 왜 우리말을 듣지 않아 그러니까 너는 감옥에 갇힌거야 우리 말대로 너는 죽어"

그러니까 하는 말이 "너희들도 하나님 믿으니 한 번 따져보자 하나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사람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결국 그들은 뭘 한다?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일을 한다. 증거대 볼까?

증거가 바로 사람이 죽인 예수님을 누가 살렸다? 우리 하나님이 사흘만에 부활했잖아 이러는 것입니다. 그들과 그들 대화에서 반드시 뭐가 들어가요? 사람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그런데 죄 없는 분을 죄 없는 분으로 인정받아서 하나님께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목사가 되어서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 뭐만 증거해야 합니까? 지금 사도가 한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것 증거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라는 것입니다.

설교에 돈 내라 하지말고 선교회비 내라 그런 짓 하지말고 바치면 복 받는다 그런 소리하지 말고 교회 부흥되라는 소리하지 말고 교회가 다 망가져도 괜찮으니까 망가져도 혼자서 교회 오셔도 십자가 믿고 부활되시면 혼자서라도 교회입니다 라고 해야 참된 교회관입니다. "모여야 교회입니다" 이런 소리하면 안 돼요. 왜 자꾸 교인들보고 모이라고 하는 줄 아세요? 모여야 광고시간을 듣거든요.

그 광고 내용이 뭡니까? 교회 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돈 쓸데 많은데 왜 돈을 안 내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모든게 교회 돈 내라에 몰려요. 이번 집사 뽑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돈 내라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집사 될 사람들은 목사가 부릅니다. 십일조 하십니까? 십일조 안 하면 장립 집사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이고 관행입니다. 그 앞에다 십일조 하라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해 봤자 안 돼요. 이것은 관행입니다. 우리 매트릭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제대로 설교하면요, 어떤 부교역자가 사도행전을 바르게 설교했다 그 사람은 보따리 싸야 합니다. 교회는 깨져도 깨지는 것을 통해서 진짜 교인들은 깨지는 것을 통해서 피어난다 이걸 설교하니 그 목사가 부교역자를 불러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야 누가 월급 주는데" 그런데 철없는 부교역자가 하는 말이 "내가 사람 말을 듣는 것 보다 하나님 말을 듣는 것이..." "당장 나가" 그것이 사도행전 5장의 순교 반복입니다. 그런 부교역자 별로 없습니다. 따까리예요. 따까리. 완전히 당회장 따까리 당론이죠. 경쟁력으로 아부 못해서 환장한 자들이예요. 아부해야 큰 교회 당회장에게 스카우트되기 때문에.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십자가 죽은 예수를 누가 살렸다? 하나님이 살렸다면 그것을 증거하는 베드로가 지금 감옥에서 죽어요. 빠져 나온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 거예요. 죽인다 하니까 죽는 줄로 아는 거예요. 그런데 죽을 베드로를 누가 살립니까? 하나님이 살릴 줄로 우리는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원칙이 뭐냐면 설교자는 반드시 무엇을 근거로 설교해야 한다? "지금 이것 하다가 죽겠나이다" 왜? 죽어야 이 세상을 내가 먼저 제대하기 때문에. 이 세상 군 복무 마치고 제대하기 때문에. 이것하고 죽겠나이다 하면 설교가 색깔이 달라져요.

뭐 깊이가 있니 없니 말을 더듬니 안 더듬니 이것은 문제가 아니고 이미 죽는 것이 좋아서 환장했어요. 표정이 달라요. 그런데 아무리 복음을 집어넣고 십자가 언약 집어넣고 좋은 것 집어 넣고 믹서를 했는데 표정 보니까 "이것 하니까 제발 좀 살려 주세요" 합니다.

일반 교인들도 설교 표정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가 먹고살라고 하는지 복음에 지가 도취되어서 하는지.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 술에 취하지 말라가 아니라 성령에 취해서 살라 감사해라 이렇게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감사하고 곧 죽어도 괜찮습니다 감사하고 그래서 저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 하는데 브레이크가 파손 되서 그냥 막 천국으로, 십자가로 내려가 누가 말릴 수도 없어요. 십자가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아예 죽으라고 약을 쓰는 것 같애. 그 다음에 살고 죽는 것은 주에게 달렸겠죠.

하나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31절 다같이 읽어봅시다.

31절.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이게 누구보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지금 베드로와 사도들이 어디에 갇혔다? 옥에 갇혔다. 옥에 갇혔는데 옥에 갇힌 당사자가 누구입니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와 지금 누구한데 복음을 전합니까? 기적 받은 사람들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베드로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보고 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은 당신들도 회개하면 죄 사함 받습니다. 한 가지만 묻습니다.

바리새인의 죄가 무엇입니까? 지금 현장에서 이야기 해 보세요.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을 오히려 핍박하는 죄. 누구든지 예수님을 모를 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죄. 회개가 뭡니까?

"내가 주님이 우리 구세주인줄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을 얼마나 빈정대고 조롱하고 싫어했는지 내가 예수님 믿고 보니까 아이구 주여 제가 내 자존심 챙긴다고 교회 가고 예수 믿는 사람을 그렇게 핍박했습니다" 라고 돌이킬 때, 그 사람의 자리가 역사적 자리에서 묵시적 자리로 이미 바뀌었기 때문에, 안에 예수님이 들어 왔기 때문에 끝으로 그렇게 된 사람의 길은 베드로 반복, 사도 바울 반복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있는 성도들의 특징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회개하라는 말이 바리새인들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은 여기에 있는 저희들 보고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예수 알면서도 자본주의가 너무 좋아서 돈 맛이 너무 이뻐서 자식들 돈 벌라고 나처럼 돈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래층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24시간 가운데 거의 모든 것을 아래층 말을 듣고 삽니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십자가 피가 생각나니 웬 은혜인지 웬 사랑인지 이제는 그 예수님과 이미 한 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우리가 정답을 알았사오니 우리가 문제아라는 것을 깨닫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강의20091231b.hwp (25.0K), Down: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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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