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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12:43-45 (더러운 귀신)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12:43-45 (더러운 귀신)

이름 : 이근호(IP:)

더러운 귀신
2003년 12월 21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2:43-45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세상은 악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악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그 악 때문에 평생을 시달리고 있습니다. 악으로 인해 이 땅에 저주가 왔고 우리 인간은 그 저주의 피해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에게 악을 저질러라고 부축이는 것도 악마요, 그렇게해서 죄를 짓는 우리 인간들을 향하여 "죄 지었으니까 너에게는 저주가 임하게 된다"고 쫓아다니면서 질책하는 것도 악마입니다. 이렇게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이 굴레에 묶이도록 조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어 이 악마의 술책 중에서 하나를 차단하고 끊어버리는 조치를 취하십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타고난 근성이라서 죽을 때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저 악마로부터 날라오는 저주와 하나님으로부터 처벌를 사전에 차단하는 조치를 단행하신 것입니다.

악마는 우리를 표적으로 삼아 쉴사이없이 정죄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도중에 가로막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주로부터의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 전에 이 땅에서 활동사항에 대해서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귀신이 나옵니다. 귀신의 존재부터도 오늘날 현대인들의 의식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세상의 근원에 대한 관심에서 아예 이탈되어 표면적으로만 설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8:28절에 보면, 귀신들린 청년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무덤에서 살다가 예수님이 등장하자 먼저 말을 겁니다. 귀신과 예수님은 서로 세상의 근원적인 사실에 충실합니다. 모든 것을 근원적인 차원에서 주고 받습니다. 마귀가 하는 말이, "아직 때도 되지 않았는데 심판주되시는 분이 벌써 나를 찾아와서 멸망시키려 합니까?"라는 겁니다.

그리고나서 마귀들이 다시 들어갈 적당한 자기네들이 찾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돼지 떼입니다. 귀신이 들지 전에는 돼지들이 멀쩡합니다. 그러나 막상 귀신들이 들어가니까 돼지들이 정신 착란을 이르켜서 몽땅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 몰살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것은 본 돼지 치든 마을 사람들은, 세상은 근원적으로 볼 줄 모르고 단지 그 해 축산업 망했다고 실망하면서 예수님을 자기 마을에서 떠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모든 활동을 심판적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텐데 그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손익과 연관시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손익과 관련 짓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을에 보면, 집을 깨끗하게 소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가지고 늘 자신을 깨끗이 소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소제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떠난 귀신이 다른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동반해서 다시 들어와 아예 합숙하겠다면 과연 집주인이 이 귀신의 등쌀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없다는 겁니다. 즉 인간이 결코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을 주도권이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청소해도 악한 귀신들이 들어오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귀신의 출입을 저주할 방도가 없습니다. 귀신이 인간보다 더 강합니다.

마태복음 12:2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어떤 자를 구원할 때는, 먼저 그 강한 집 주인을 결박해 놓고나서 가구나 세간을 들러내는 식으로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아무리 인간이 자신을 정화시키고 정결하게 순화시켜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이런 양상은 유대인들 뿐아니라 동양의 종교에서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참선이라는 것은 번뇌의 원천이 되는 마음 자체를 아예 들어내는 수련을 말합니다. 하지만 귀신은 이런 수련법에 끄덕도 안합니다. 역시 자시 힘으로 자기 마음을 통제하는 식으로서는 귀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과학적 방식으로 마음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즉 개인적인 방법의 또 다른 모습이지요. 마음이란 모두 두되 활동의 결실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나 악마나 귀신이니 하는 것으로 출발할 것이 아니라, 두뇌의 구조와 활동 사항을 체크해서 적절하고 손을 봐주면 마음의 번민과 고통도 사라진다는 겁니다.

두뇌는 약 1,000억의 세포로 되어 있고, 그 세포와 세포 사이에는 시냅스라고 하는 연결 장치로 이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화학 전달 물질이 흘러서 정보가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 옛날부터 사람들은 흔히 마약으로 불리는 몰핀 성분을 투여했습니다. 하지만 마약이 아니더라도 두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는 자극과 흥분의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많아지면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되는 겁니다. 즉 귀신들렸다고 환자를 교회 등쳐엎고 나와서 목사한테 안수기도 받을 일이 아니라 신경정신과에 가서 주사 한 대만 받으면 쉽게 나을 신체적 장애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는 아예 산모 뱃속에 있는 아이의 DNA를 조사해서 나중에 문제가 소지가 될 유전인자를 건강하고 충실한 유전인자로 교체해 주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소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나 예수님의 복음이나 귀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건강하고 유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세계로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바로 악한 귀신이 노린 겁니다. 즉 하나의 귀신만 처리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 더욱 많은 숫자의 귀신들이 들이닥침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이 현 인간 세계의 체계를 아예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그 안에서만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자포자기 하게 만드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란 단순히 인간들이 예수님을 활용해서 자기 구원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제시된 게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런 식으로 활용하려고 덤비는 것은 그 또한 악한 귀신들의 작동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자기 백성을 아예 덮어버리고 인도하시는 체제를 따로 만들어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치 악한 귀신이 이미 인간들이 못빠져나올 체제를 덮어쒸우는 식으로 작용하듯이 예수님의 복음도 성도들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체제의 틀로서 덮쳐지는 겁니다.

결코 성도와 흥정이나 거래를 터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의 세계에서는 인간들로 하여금 항상 자기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케 하는 방식을 사용케 하지만, 성령 안에서의 성도는 자기 자신의 누구의 주도권 속에 놓여 있느냐를 살피게 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세리와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따로 서서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 내용이 이러합니다.

"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대단한 오기와 집념이 아니면 늘 정기적으로 금식하고 십일조하기 힘듭니다. 날마다 자기를 치고, 정화하고 마음을 순수하고 유지하기 위한 단련하는 사람이 아니면 정기적인 종교 세칙을 지키기가 참 힘듭니다. 그것을 바리새인이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봐도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돈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생명입니다. 목숨과 같은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곧 이미 죽은 자라는 말과 다를 바없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10%나 정기적으로 헌금한다는 것은 보통 자기를 비운 사람이 아니지요. 과연 이 사람이 의인일까요?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판정할까요? 또 한사람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사람은 결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잘할게요" 현대인들에게 있어 모든 것이 경쟁의 상대자들이기에 앞으로 잘할 생각을 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정반대의 고백을 털어놓습니다. 즉 "즉 저는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일 뿐입니다. 당연히"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 세리가 승자요 구원된 자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체제'을 은혜로 받은 자입니다. 우리과 과연 이 체제를 인정한다면 우리가 평생을 두고 해야 될 고백은 이것 뿐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숱한 마귀에 들려놓고서도 마치 천하이 거룩한 자라고 자처하지는 않았습니까.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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