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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역사적 예수 논쟁 평가 요청 질문묻고답하기-

목사님,
다음 (1) (2) (3) (4)에 대한 평가를 요청드립니다.
특히 유식함을 자처하는 (3)Ismail-x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듣고 싶습니다.
(1) 박창진 님이 김준우교수님(역사적 예수로 유명하셨던 분)께 드린 공개질문
김 교수는 여러 글에서- 아마도 강연에서도- 대속 교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였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폭력성과 기독교의 근본적 비폭력’이라는 글에서는 “하나님의 폭력성이 극에 달하는 모습은, 이 세상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 자신의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까지도 십자가에서 대신 희생시키셨다는 대속의 교리에서 드러난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처형방식인데,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고백은 “폭력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신화(월터 윙크)를 확증하였고, 이 신화는 기독교인들의 자의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제 이해로는 대속 교리를 부정하고도 예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도데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적었습니다. 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교수님이 주장에 따르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김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교수님의 활동이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고자 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삶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진정성은 이러한 공개적인 질의에 답하면서 복음의 원형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회복의 역사가 구속이면 그 최절정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속은 구속받아야 할 상태를 전제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신음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원자)이시라는 말은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을 그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신음하는 인간을 그 자리에서 벗어나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방식으로 구속하시지는 않습니다. 죄와 허물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없습니다. 죄와 허물의 대가가 죽음인데, 인간에게 죽음은 끝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여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대가를 치루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인간을 구속하려면 다른 누군가가 그 대가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식이 독생자 하나님을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시고 그분이 대가를 지불하시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독생자의 성육신인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말씀하시고 몸으로 보여주시고 자신을 대가 지불로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자기를 비우셔서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 2:5-8).

성경(서)에서 순종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뜻과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십자가 죽으심을 순종으로 말함은 십자가 죽으심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 로마에 대한 반역자들을 죽이는 사형틀인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편에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지혜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신약 성경(서)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대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대속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이는 명백하게 대속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이 또한 명백하게 대속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를까요?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율법의 한 내용과 연결시킵니다. 나무에 달린 자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내용입니다(신 21:23). 율법의 저주는 하나님께서 옛 언약의 백성들을 위하여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음에 대한 심판으로 음부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참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한편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에 달리심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옛 언약의 백성들을 그 저주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갈 3:13). 이 또한 명백하게 대속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물론 아예 하나님을 모른다는 언약 밖의 사람들 곧 이방인들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결국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토록 단절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죽으심은 율법의 저주에서 옛 언약의 백성들을 건져내시고 하나님을 모른다며 자신들의 인간적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건져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당할 죄의 값인 사망을 대신 받으시고 그들을 사망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입니다. 벧전 3:18, 요일 2:1-2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명백한 대속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참 사람이십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선지자(예언자)이십니다. 당연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그 당시에 일반적인 사형틀이 아니라 로마에 반역하는 사람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억울하게 로마의 반역자로 몰려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로마의 반역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로마의 반역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었다고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사시는 동안에 가르치신 내용들이 특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내용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라는 면을 빼면 인류 역사상 그분만이 이야기했던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석가의 가르침을 배워서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한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가르침이 있었다고 해서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특별하게 사셨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불의한 기득권에 대항하였습니다. 약자를 돌보며 그들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그분에게서만 나타나는 삶은 아닙니다. 그렇게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 삶이 그분을 그리스도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대부분은 예수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불의에 대해 지적하고 하나님의 의를 말하였고 그로 인해 핍박을 당했습니다. 죽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과 비교하여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지배가 이루어지던 시대에 태어났기에 로마의 반역자로 몰려 억울하게 십자가에 죽은 것일 뿐입니다. 십자가가 죄와 허물에 대한 대가 지불이라는 의미가 없다면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과 달리 그리스도라고 이야기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위대한 사상가 내지는 선각자 또는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성인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대속 교리를 말한 사람들은 특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토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에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닮고자 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희생과 헌신에온 힘을 쏟았습니다. 정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복음이 능력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배운 사람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핍박을 받고 때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그 길을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서 공인과 국교라는 과정을 밟지 않았다면 진정한 복음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 대속 교리가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난 잘못된 모습인 잔인함의 이유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어느 시점에, 어떤 사람들에게서 대속 교리가 잔인한 역사의 이유로 작용하였다면 그것은 오용 내지는 악용의 결과일 뿐입니다. 오용 내지는 악용을 그러한 잘못된 모습의 근거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평가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가 하늘 영광으로 가득한 영광스러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그 교회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에 있어서 복음의 원형을 드러내고 그에 걸맞는 모습으로 세워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속은 복음의 원형으로서 바르게 이해되고 그것이 지향하는 삶을 바르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맞는 그릇에 담는 것, 이 시대에 맞는 옷을 입히는 것이 필요하지 대속을 변경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님은 저와 생각이 다르신데, 먼저 교수님의 입장에 의하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무지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 한 번도 그 입장에 근거하여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내키시면 제 생각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도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 혹시라도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만 사랑의 교회의 건축건이 개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여러 내용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김 교수님의 입장에 개인의 것으로만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 요청을 드립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시고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기 위한 한 길로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 김준우교수님의 답변
박창진 님의 질문에 대해
교리 문제에 대한 박창진 님의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논의는 늘상 세상의 현실, 특히 제국들과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하늘의 질서를 이 땅 위에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의 꿈에 대한 이해에 따라 매우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저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대속교리의 지적인 설득력의 문제점과 윤리적 문제점들을 지적한 것이지, 대속교리의 효용성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특히 산업사회 이전에 인구의 3/4이 스물여섯 살을 넘기기 힘들었을 만큼 죽음이 매우 일상적이었던 시대에는 물론이며, 오늘날도 예컨대 임종을 앞둔 이들에게 대속교리는 매우 의미 있는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속론의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에 대해 분노하고 심판하며 자신의 명예가 훼손된 것을 만회하기 위해 독생자를 악마에게 내어주어 죽게만드는 잔인한 하나님이며,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과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폭력성은 부분적으로 그런 잔인한 신론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입니다. 박창진 님이 인용한 저의 글 "기독교 근본주의의 폭력성"과, 또한 2009년 예수목회세미나에서 제가 강의했던 내용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2. 신약성경의 몇몇 본문들을 대속교리의 근거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속교리의 오용과 남용을 지적하셨지만, 애시당초부터 안셀무스의 만족설은 제1차 십자군 전쟁 당시 군인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치적 프로파갠다의 산물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것입니다.

3. 대속교리가 없다면 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은 이미 큐 공동체의 사례만이 아니라 바울의 크리스천 공동체들에서도 결론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복음서>와 이번에 번역한 <첫번째 바울의 복음>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4. 다시 강조하지만, 저의 관심은 교리들의 지적인 설득력과 윤리성입니다. 대속교리가 보여주는 신론과 기독론이 예수의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저항정신과 책임적인 삶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3) Ismail-x님이 박창진님의 주장을 반박한 내용
'C.S 루이스' 가 마치 대단한 사람인 줄 아는 모양인데...
박창진 당신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무식하다는 것이다. 한다는 소리가 기껏 ‘C.S 루이스’의 책을 읽어보라니... 너무 어이가 없다. 루이스가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일지 모르나 그의 글 역시 온갖 공상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도끼는 자유주의 신학 책을 한 권 볼 때마다 반드시 보수주의 고전을 같이 읽었으며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펴낸 책도 수십 권을 읽었다. 내가 느낀 바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쓴 책은 내 마음과 지성을 동시에 울렸지만 보수주의자들의 책들은 그저 유치원생들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가 독서를 할 때 경계한 것은 편견이었다. 그래서 자유주의(개혁주의라고 불러도 상관없다)와 보수주의 측의 책들을 번갈아 읽은 것이다.
4년 전 우리나라 목사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로이드존스’의 <로마서강해> 전 권을 읽었는데 사실 참 이 사람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예수가 피의 십자가로 대속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무조건 전제로 깔고 주장을 펴는 것이다. 전제가 옳지 않으므로 그 이후의 글은 별 의미가 없다. <즐거운 영적 책읽기> 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크리스천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도끼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책을 읽어왔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

이후 존스의 <성령론> <교회론> <신론> 등을 다 사서 읽었고 조나단 에드워드, 웨슬리, 칼빈 등도 읽었으며 존 스토트, 어거스틴, 토마스 아 켐피스, 존 번연 등 고전, 현대 신학자들의 논쟁, 그리고 조직신학, 실천신학, 기독교 윤리학 등의 책도 읽었다. 심지어 헬라어 히브리어 강의까지 들었다.
신학 뿐 아니라 신학과 직접 연관된 종교학, 종교심리학, 사회심리학 등도 다 읽어보았다.
내가 굳이 시간을 들여서 이런 책들을 읽은 것은 지식과 진리에 대한 갈망도 있지만 언젠가 도끼도 목회를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도 박창진 목사와 같은 부류의 무식한 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보수주의자들이 무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은 바울이 말한 바 ‘세상의 지식을 배설물 처럼 여기라’는 것을 철저히 따르기 때문이다.

도끼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이 책을 비판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도킨스의 신-웨신의 전성민 교수 번역>도 함께 읽어보았는데 정말 맥그라스에게 큰 실망을 했다. 내가 C.S루이스에게 실망한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의 유치원생 같은 글에 하도 질려있어서 내심, 혹시나 하고 조금은 기대했었지만 알리스터 역시 같은 유치원생 같은 주장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수주의자란 것들은 단 한 놈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하나?
박창진 목사도 김준우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려면 공부 좀 하고 질문을 하시오. 아니면 나처럼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판한 책들을 카테고리 별로 충분히 읽어보고 그 흐름을 이해한 뒤 글을 올리든지 하란 말이오.
기초적인 신학 이해도 되지 않으면서 문서사역은 무슨~!
그리고 당신이 가진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난독증’과 ‘이해력저하’ 증상을 반드시 고친 다음에 글을 쓰시오.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글이 인터넷 상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소. 왜냐하면 당당뉴스나 뉴스엔조이 같은 곳은 대한민국 목사들이 얼마나 무식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고, 당신의 글은 대한민국 목사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울 수 없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오.
세상의 전문가라는 것들 중 가장 같잖은 것들이 신학을 한다는 것들이오.
진짜 우습지~!

(4) 박창진님의 답변
혹시나
교수님이 책을 많이 읽으시고 나름대로 교회다움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것은 압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위의 질문이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책을 읽어보십시오." 이게 무슨 답입니까? 교수님이 읽어보고 그 내용을 수용하여서 그것을 주장하고 있으니까 그 내용을 설명하면 되지요. 설명하여야 하지요.

혹시나 아래에 시건방진 종교학도와 같은 내용입니까? 아니기를 바랍니다.
독생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성육신. 그것의 수용.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있다는 것 자체는 참으로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런데 말입니다. 그 주장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독생자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다면 사람이 되시기 이전부터 이미 한 존재이셨다는 말이 됩니다. 독생자 하나님이시라는 존재가 예수님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의 종교학도는 교수님과 똑같이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으로 거부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았다면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잉태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정자와 난자, 그것은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인 세포이지 존재 자체는 아닙니다. 존재 자체는 아니다가 수정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이 되신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무 존재가 아닌 세포의 수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진심일까요? 둘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음에도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고서는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이 되신 것이라고 하면서 그분이 행하신 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이지요?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한계 안에서만 예수님이 존재하고 행하셔야 했다고 우깁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사람이 되신 것과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사람이 된 자신을 동급으로 삼고서는 자신 안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앞세워 예수님께도 불가능하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성육신, 왜 성육신이라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이심이 가능할까요? 왜 모세는 아니고, 엘리야는 아니며, 아모스는 아니고 예레미야는 아니며... 굳이 성육신이라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이심이 가능할까요? 앞에 사람과 똑같이 태어나서 똑같이 살다가 시대의 차이로 인하여 다른 방식으로 죽었을 뿐입니다. 태어난 이후의 삶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성육신이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일까요? 죄와 죄의 값인 사망이라는 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 앞에 언급한 사람들과 비교하여서. 어떻게 해서 성육신이기만 하면 그리스도이실 수 있다는 것일까요?

신학은 신을 아는 것입니다. 그 신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 이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되찾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며 주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입니다. 삼위이시며 한분이신 하나님은 스스로를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그것은 언어의 법칙에 따라 그 내용을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바가 담는 원리를 찾아서 그 원리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삶을 맞추어가는 것을 요구하신다는 뜻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고백이 가능하게 되는 구절이나 문맥을 살피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속 교리가 이야기되는 구절과 문맥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무슨 권세로 앞에서와 뒤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경(서)을 읽고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까? 그게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행동이지 하나님께 스스로를 복종시키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신자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신을 만들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결정하는 것의 위험성 그리고 위험성을 넘어선 죄됨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일반적인 기복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그 목적에 맞게 성경(서)의 가르침을 사용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최소한 제가 보기에는요.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현대신학을 따르는 이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제가 질문을 한 원리는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고 질문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해 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신앙의 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주관하려는 태도의 위험성
한국 개신교의 여러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기복신앙입니다. 성공신학도 그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이유는 신약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내용에 여러 문제와 폐해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와는 달리 신약 성경에서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데,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과 똑같이 원리로 그것의 근거로 제시된 본문들을 해석하면 기복이나 성공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개신교에서 그것이 횡횡하는 이유는 신약 성경을 잘못 해석하였기 때문입니다. 해석 원리를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고 여기에서와 저기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과 성공 신학은 성경의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인간이 임의로 주관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경에 제시된 대로의 하나님이 아니고 삼위이시며 한분이신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는 이들이 만든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대속 교리에 대해서도 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이야기되는 본문을 읽는 방식과 대속을 가르치는 본문을 읽는 방식은 같습니다. 앞과 뒤가 해석 원리가 같아야 합니다. 다르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그 본문을 주관하려는 것입니다. 그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주관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그 생각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나아가서 삼위이시며 한분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에 복종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이 본문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말하게 되는 본문을 읽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읽어보십시오. 본문에 적힌 내용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속과 그 대속이 우리 곧 신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는 것이지 다른 내용으로 읽을 여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주관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서)을 통하여 제시된 대로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우리에게 제시된 그분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수용하며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보다 더 높이는. 그 태도의 위험성을 바르게 인지하고 교만이 아닌 겸손이 우리의 생각과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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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