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디에 쓰는 건가요?
이것은 어디에 쓰는 건가요?
이름 : 김풍호(IP:203.241.147.32)
개혁주의에 구원의 서정이라는 것이 있구요.
그 구원의 서정을 쪼개서..택함, 부르심, 중생, 회심,칭의,성화,견인,영화
요로코롬 또 나눠지는데요... 여기서 또 중생을 중생1과 중생2로 나누네요...
연속적중생관이라고 부르던데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하더군요...
요것은 어디다가 쓰는 물건인가요?
그리고, 성경신학적으로다가 구원의 서정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고속도로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셔도 좋구요...
권범식(IP:114.♡.21.60)
10-02-19 18:12
최근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복음과 구원을 마음대로 나누는 교회들의 전형적인 내용과 비슷하네요...
제가 보기엔 모두 성화론의 일부로 보여집니다...
이근호(IP:222.♡.25.59)
10-02-19 23:29
로마서 8:30에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왜 이런 식으로 작용하시느냐 하며는 그 앞의 말씀 즉 29절에 나오는 '맏아들(=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인데 이는 순전히 '미리 아신 자'에게만 해당될 사항입니다. 미리 정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본인들이 시도해도 성사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창세전부터 예수 안에서 택하신(엡 1:4) 그 취지가 일관되게 진행되게 됩니다. 미리 정하신 것이 선택이요, 부르심이 소명이요, 의롭함이 곧 '의인'돠는 것이요, '영화롭다'가 곧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국면은 창세전에 예정된 선택에서 뻗어나온 조치들입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사항은 전혀 없고 우리 인간이 써먹을 일도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알아서 시행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서정이 아니라 구원의 국면입니다. 그 어느 국면도 다 '창세 전의 예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강구만(IP:211.♡.68.40)
10-02-20 08:59
이 기쁜소식에 감사와, 항복된 평화가 있으면 성도입니다. 그러나 뒤에 그래도..가 붙으면 생각 좀 해봐야 겠지요.
이근호(IP:117.♡.136.28)
10-02-20 10:38
'미리 아신 바된 자'에게만 구원의 국면이 나타나기에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항상 인간들이 납득될 수 없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세상은 '미리 아신바 '되지 못하는 자들이 있기에 그들이 이해되는 식으로 구원이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1)선택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
2)소명: "너는 정해졌음"을 알려주는 것
3)회개: 육적 세계의 원칙을 죄라고 알게 되는 것
4)믿음: 자기 행함을 의지하지 않는 것
5)중생: 영의 지배를 받는 것
6)칭의: 예수님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에 놓인 것
7)양자: 예수님처럼 아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다루어지는 것
8)성화: 세상사람과 분리된 것
9)영화: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된 신분
김풍호(IP:203.♡.147.32)
10-02-22 08:15
잘알겠습니다.
목사님의 구원의 국면과 일반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순서의 약간 차이가 있는데요..
특히, 중생이 회개와믿음 뒤에 놓이네요...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중생이 연속적이냐? 즉각적이냐? 라고 했을때...성경은 어떻게 평가를 합니까?
연속적이라고 볼수 있는 것인가요?
이근호(IP:117.♡.136.28)
10-02-22 13:09
국면이라는 말은 순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치 다이아몬드에게 있어 절개면에 순서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순서가 성립되지 않기애 연속적이지도 않고 즉각적이지도 않습니다. 산수화 그림 속에 같이 들어가 잇는 산과 들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것이 의미없듯이 말입니다.
고관규(IP:115.♡.3.187)
10-02-22 15:45
사람들의ㅡ오해가 뭐냐믄 서정과 순서와 시간개념을 집어 넣기에 그래요, 그러나,,중생안에 전부 다,,,들어가 있고ㅡ 중생안에서 장차 도래될 것들까지 다,,이미 포함이 된 거지요.조직신학자들이 만들어 낸 서정순서는 그걸 조직화시켜 보겟다라는 발로이지 별거 아니라고 봐요..요한복음의 현재적으로 이미 성취된 종말론과 마태마가누가의 미래적 종말론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바울의 로마서의 서정언급을 가지고 온 건..조직신학자들이 그리 교조화시켰기에 그래요. 서정이 아니라,,요한서신들에서 이미 나타난대로..현재안에 전부가 다,,들어가 있습니다. 종생안에,,,서정이라는 것들이 동시에 다 있기에, 그리고,,그리스도인인 언약백성이라면 언제나 중생안에서,,저런 경험들을 수시로,,,경험하기에, 순서에 의해 햇갈릴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또
중생이 연속적이냐,,즉각적이냐라는 말씀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연속적이어야 한다고 본인들이 생각한다면 중간에 단절감을 느끼게 되면 구원존재감에서 의심이 되고
즉각적?이어야 한다고 본인들이 생각한다면,,즉각은 맞아요 그러나 이 즉각은 연속으로 즉각됨의 사실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미 즉각안에서의 연속이고..당연히 연속되면서 즉각감을 또한 누리는 게..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