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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00205b 울산강의-출애굽기 9장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00205b 울산강의-출애굽기 9장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100205b 울산강의-출애굽기 9장

(강의:이근호 목사)

재앙이 총 열 개죠. 1에서 4까지 5에서 그 다음에. 재앙을 해봅시다. 피 있고 그 다음에 개구리 올라오죠. 이가 있고 파리가 있고, 그 다음에 악질이 있고, 그 다음에 독종이 있고, 그 다음에 우박이 있고, 그 다음에 메뚜기 있고, 그 다음이 흑암이 있고, 그 다음에 장자 죽음. 여기서 초반부터 열 가지 재앙이 왜 중요하냐 하면, 요한계시록 때문에 그래요.

아까 첫째 시간 이어서 이야기합시다. 인간의 신체, 한 자로 육이죠. 육에서 뭐가 뿜어 나온다? 아담의 몸을 입었기 때문에 아담의 몸을 입었다 하지 말고 그냥 아담이라 봅시다. 아담 속에 죄가 임하죠. 죄가 임한 것이 육이 하나의 힘으로 나오죠. 보통 이걸 기존 신학에서는 영혼이라 하죠. 그래서 물질과 영혼 하잖아요. 결합해서 한다 이 말이죠. 저는 힘으로 하자 말이죠.

육에서 나왔을 때 악한 영이 나온다. 그렇다면 힘을 치는 게 아니고 육을 치는 거예요. 육에게 재앙을 내리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면, 재앙 받은 사람들이 아주 강력하게 반발하죠. 왜 반발하느냐 하면, 왜 이렇게 우리 육신이 살기에 힘든 조건을 만드느냐. 쉽게 말해서 사람이 신이고 뭐고 다 관념이에요. 그거는 추상이고. 그거는 배불러 할 일 없어 하는 소리고.

사람이 언제 답답해하고 언제 반응을 나타내느냐 하면, 자기 육신이 아플 때, 몸이 아플 때는 진짜 하나님을 찾던, 예수를 찾던, 부처를 찾던 합니다. 육신이 류마티스나 신경통이나 이런 게 있으면 추상적인 하나님이고 다 미워. 내 몸 하나 편한 것 이게 왔따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재앙 내릴 때 조건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재앙이 땅에 내려요. 두 번째는 사람의 신체에 내립니다. 일부터 네 번째까지가 땅에 재앙을 내리는 거예요. 땅에 재앙을 내리니까 직접적인 재앙은 아니에요. 5, 6, 7까지는 몸에 직접 재앙을 내립니다. 1부터 4까지는 땅에 재앙을 내리고, 567은 사람의 신체로 해서 가축의 신체. 그 다음에 이거는 땅이고 사는 게 불편하고, 신체의 재앙은 한시적이고 일시적인 재앙. 메뚜기, 흑암, 장자 죽음은 이거는 계속 가는 장기적인 재앙인데 특히 장자의 죽음은 끝나버렸지요. 자기 아들 죽었는데 살 수 없잖아요.

방향을 보잔 말이죠. 저는 열 가지 재앙의 내막이 뭐냐고 묻는다면, 재앙의 방향을 보자. 어디서부터 어디로 겨냥하는지. 재앙이 땅에서부터 일시적으로는 그 사람이 사는 신체를 거쳐서 나중에는 장기적으로 대를 이어서 ‘십오 년 전에 네 형님 죽었지. 왜 죽었는데?’ ‘몰라 갑자기 급사했어.’ ‘그때 네 형만 죽은 게 아니고 이웃 동네 사람들 다 죽었데.’

인간의 한시적인 가족뿐만 아니고 가문, 핏줄 이것까지 통째로 재앙을 내리죠. 흔적을 남겨요. 어떤 흔적이냐 하면, 이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손을 댄 적이 있다는 흔적을 남깁니다. 그렇다면 열 가지 재앙을 만약에 유대인들이 후손 대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들은 무엇을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애굽 나라의 화려함을 사모하지 않겠지요. 애굽 나라의 것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어떤 흔적이냐 하면, 우리는 그때 애굽에서 빠져나온 정보, 빠져나온 흔적을 우리 몸에 지녔죠. 여기 존재함. 말 어렵게 했는데 쉽게 합시다.

현재 애굽의 장자가 마지막 죽잖아요. 그런데 같은 인간인데 안 죽고 살아남은 아들 있죠. 이스라엘 아들. 그럼 아들 자체가 무슨 정보를 담고 있습니까? 같이 태어났는데 애굽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또는 어린양의 피를 발랐다는 이유 때문에 그가 계속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동안에 어떤 흔적을 갖고 있습니까? ‘우린 어린양 때문에 살았지.’라는 흔적이 계속 남겠지요.

그래서 십계명의 오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땅에서 잘 된다. 그 사람보고 잘된 게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묵시적 언약, 달그림자를 지니고 있으니까. 전화번호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중앙지에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있으니까 복음을 보고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은 자기 흔적이니까. 예수님께서 구원한다는 것은 우리 보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그걸 회수하는 식으로 구원하죠. 우리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자기 것, 그걸 회수하는 식으로 구원한다.

결국 이거는 하나님의 구원론이지 인간 구원론이 아닙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어렵게 말해서 하나님의 자기 형상을 구원하는 거예요. 이건 정말 형상론 들어가면 진짜 어려워요.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이 이왕 나왔으니까 해드립니다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서 창세기 1장이 있습니다. 창조, 창조, 창조, 지었느니라, 지었느니라 해놓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었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물 대상에서 빠져버리죠.

빠지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의 차이점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숨어있는 하나님이 바깥으로 드러날 때는 반드시 형상 없이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지요. 나를 본 자가 곧 아버지를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 없는 하나님은 다 우상입니다. 다 가짜입니다. 반드시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 자기 형상을 통해서만 드러내게 돼있는데 그 형상이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뭐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요. 하나님의 이름을 거치지 않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진리가 바깥으로 나온 건 로고스가 돼요. 로고스란 드러난 진리에요. 사람을 상대하는 로고스, 언약에 관련된 로고스에요. 그 로고스는 말씀인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죠. 그런데 창세기에 보니까 그 로고스와 악마하고 영적인 다툼이 있었어요. 그 로고스는 어떤 로고스냐 하면, ‘투쟁하는 로고스’에요.

투쟁하는 로고스를 요한복음에서 빛과 어둠의 싸움이라 하는데, 이사야 같은 경우에. 요한계시록에선 특히 심하죠. 분명히 드러나죠. 로고스가 투쟁하는 로고스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전쟁은 사람이 생각하는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 때문에 생겨버린 전쟁입니다. 우리는 투쟁의 현장에 휘말린 겁니다. 난데없이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악마의 인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밉상을 받고 핍박을 받게 돼있어요. 우주 전체가 전쟁터에요.

목사님들이 성도님들이 설교할 때 항상 이걸 해야 돼요. 나는 전쟁 중이지 이걸 해서 밥 먹고 살려는 게 아니고. 우리는 양보할 수 없는 진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전쟁이에요. 그래서 이 전쟁을 위해서 복음 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져도 괜찮아요. 남이 욕해도 괜찮고, 컴퓨터 게임해서 져도 괜찮고, 컴퓨터에서 고스톱 치다가 2억 잃어도 괜찮고, 바둑 두다가 져도 괜찮고.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그걸 보고 세상에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유리해도 괜찮고, 톱으로 켜도 괜찮고, 돌아 맞아 죽어도 상관없고.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영적의 싸움이기 때문에 딴 것은 양보해도 괜찮은 거예요. 교회에서 다른 교회보다 적어도 괜찮고. 괜찮은 겁니다.

제가 중요한 것 계속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로고스, 투쟁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아까 달그림자 다시 이야기합시다. 달 위에 있기 때문에 열 재앙 위에서도 그 투쟁이 계속 일어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받는 히브리인들은 그 내막을 모르고 왜 자꾸 지연되지, 이쯤 혼났으면 인간적으로 바로가 우리를 내보낼 만도한데 이상하게 분명히 모세한데 보낸다, 보낸다 하면서 계속 지연시키잖아요.

그것은 뭐냐 하면, 영원한 장자의 죽음 올 때까지 사람들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건 다 재앙이 와야 돼요. 첫 번째 재앙 피, 노골적이잖아요. 개구리, 이, 파리 땅에 재앙을 내리면서도 사람들이 직접 재앙이 안 오니까 숨은 쉬는 거예요. 이것 견디자. 지진 일어나도 여진 있어도 그거는 환태평양 지진대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여유만만 합니다. 한반도에 지진 안 오니 여유만만해요. 숨통은 텄어요.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보면 땅에 저주가 올라오죠. 이 저주를 창세기 9장에 보면 위에 있는 무지개 언약이 은혜를 내리면 하나님의 언약은 땅에서 올라온 저주와 관련돼있지요. 제 말 맞지요. 창세기 8장 끝에 네가 태어날 때부터 악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결한 제물을 받고 두 번 다시 너희를 물로서는 저주하지 않겠다. 이걸 이미 하나님이 알잖아요.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해서 땅에서 저주가 올라오죠. 창세기 3장부터 저주가 올라오잖아요. 살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주일 낮에 그런 설교 안 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준다 해놓고는 막상 사람들이 힘들게 사니까 힘들게 살다보면 은혜라는 게 감이 안 오죠. 아파트 하나 얻는 것도 내가 죽도록 찍싸게 하루 열다섯 시간 고생해서 하는 무슨 은혜가 이런 은혜가 다 있어. 은혜 안 받은 사람보다 더 힘들어. 은혜라는 감이 안 오잖아요. 그게 생존차원에서 보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께선 생명차원에서 보는데 생존차원에서 은혜를 요구하다 보니까 자기는 몸은 편하고 공짜로 재벌 되는 것, 이건 생존차원인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생존차원이 아니고 선악과 따먹어서 못 따먹게 한 생명차원을 공짜로 은혜로 줄 자에게 주겠다는 겁니다.

땅에서 저주가 올라오잖아요. 언약이 여기서 은혜를 주잖아요. 이 은혜와 저주를 카바하는 이 만남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이 지면, 땅에서. 누가 죽어요? 흠 없는 분의 피 흘림. 그러니까 하늘의 언약이 땅과 마주치면 흠 없는 제물의 제사가 나와요. 그래서 그 흠 없는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공짜로 받고 있구나를 알라 이 말입니다.

지금 현재 현대중공업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안 믿어도 그들에게 햇빛과 공기를 주시죠. 그 은혜가 어디서 오느냐? 자기는 어디서 오는지 몰라요. 그냥 과학적인 대자연의 현상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한 마디, 팁 한 마디. 과학의 잘못된 점은, 과학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진리냐는 인식론에 관계있지, 존재론, 왜 달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과학은 무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달이 왜 있지? 달은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느냐는 되는데 달이 움직이면 썰물, 밀물 그건 아는데 왜 저 자리에 있어야 돼, 달이? 그걸 몰라요.

인간이 태어나서 자기 몸 편하게 사는 건 잘 아는데 내가 왜 인간이어야 합니까? 왜 코끼리고, 인간인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알고 모르고 간에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없지요.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걸 제가 여러분에게 묻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물었어요. ‘욥아. 저 하늘에 가구 배치할 때 북극성은 북쪽에, 저건 저쪽에 배치하는데 왜 배치하는지 아느냐?’ 하니까 ‘제가 배치했어요? 난 몰라요.’ ‘그것도 모르는 게 고난 왔다고 그러니까 너밖에 모르지.’ 인식론밖에 모르는 거예요. 존재론을 몰라요. 내가 여기 왜 있는지. 그래서 모르기 때문에 욥이 뭐라고 합니까? 나는 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니까 다시 물어 달라 해요. 아예 모친의 태중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로. 정액 같은 그냥 치즈에서 치즈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이 참 장사하기 바쁘다 보면 볼 기회가 없죠. 성경은 그렇게 말씀 하나 보고 그냥 교회 건성건성 다니고 집에 가면 집구석하고 생존만 생각하는 이런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에 입각해서 은혜를 주는 겁니다. 나중에 그들이 지옥 가도 할 말 없어요. 핑계치 못한다 했어요. 로마서 1장에. 그들이 지옥 가도 하나님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입이 안 다물어져요. ‘저주 받아 마땅합니다.’ 그 소리만 해요. 그동안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교인들이 성경을 봐도 평소에 신문 보는 것과 똑같이 봐요. 어느 대목에 보면 나한테 유리할까. 자기밖에 몰라요. 내 은혜가 어디서 오지?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나 같은 죄인이 어떡해서 구원받지? 이걸 보는 게 아니라 도대체 나는 뭘 행하면 여기다 더 복을 받지? 다시 말해서 생존차원에서 내가 육체 하나 편하게 하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땅 자체가 편하기 위함이 아니고 저주 받은 땅이에요. 그동안 저주 안 받은 이유가 은혜를 입어서 그렇습니다. 은혜의 당사자는 이 땅에서 어떤 꼴이냐 하면, 우리 대신 저주 받은 십자가의 고난당하심, 피 흘리심 그게 이 땅에서 피, 피, 피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피가 그냥 피가 아니고 반드시 가해자가 있는 피가 되죠. 가해자는 누굽니까? 아까 보편적 단독성. 바로 악마고.

우리는 예수님이 좋은 게 아니고 예수님은 흠모할 게 없어요. 맞지요. 이사야 53장. 우리가 흠모할 게 무엇입니까? 소녀시대고, 사법고시 합격자고, 박지성이고, 큰 교회 목사고. 우리가 흠모할 건데 결국 거기는 힘이 있죠. 그런데 그 힘은 내 육체가 은근히 끌리는 거예요. ‘주여, 이렇게 기도하면 큰 교회 되겠습니까?’ 항상 지향점, 지금 가난해도 저처럼 부자 되겠습니까? 항상 우리에게는 그들과의 보편적인 통하는 게 있죠.

여기 피, 개구리, 이, 파리에서 땅을 쳤습니다. 땅에서 저주 올라오죠. 그 다음에는 악질, 독종, 우박은 직접 쳐요. 직접 치니까 바로 왕이 할 말이 많아졌어요. 전에는 짧게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길게 이야기해요. 자꾸 조건을 걸어요. ‘그래 가라. 하지만 가더라도 생각나면 오너라. 가거든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적당한 몇 킬로 반경에 있거라.’ 할 말이 많아요. 그 다음에 더욱 혹독하게 아예 장기적인 신체 압박을. 메뚜기, 흑암 이렇게 해버립니다. 그들은 손발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결국 그들이 기대했던, 이걸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세상적인 악한 자로 분류된 사람의 특징은 땅을 의지했고, 땅을 의지한 이유가 사실은 자신의 신체를 의지했고, 자기의 신체를 의지했다는 것은 나의 신체가 내 자손 대대로 DNA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가 영원히 사는 것은 자식을 낳는 수밖에 없어요. 자식이 없으면 영원히 못 삽니다. 자식이 있으면 죽어도 괜찮아요. 왜? 내 몸의 일부가 자식한테 담겼잖아요. 자식이 있으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지요. 그래서 부모가 남의 자식한테 충성하지 않습니다. 누구 자식한테? 내 자식한데. 왜? 그게 형상이기 때문에. 날 닮았잖아요.

형상은 뭘 대표한다? 형상은 진짜 원본을 대표하는 게 형상이잖아요.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을 대표하잖아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형상 없이 아버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나는 길이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 없다. 사람들이 나타난 형상은 모르고 자꾸 우회해서 형상은 모르고 바로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그 하나님은 모조리 다 우상입니다. 아담의 죄 속에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거는 인식론적으로 벌써 잘못된 거죠. 뭘 알 수 있다는 자체에서 이미 잘못됐어요.

사람은 선입감이 착하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착하다고 착각한 게 죄에요. 헵시바란 블로그에 가면 순종이란 사람과 헵시바의 논쟁이 벌어졌어요. 논쟁하면 뭡니까? 역시 성화론이에요. 예수 믿고 난 뒤에 착한 일 할 수 있느냐? 그 논쟁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거기다 몇 개 토를 달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게 뭐냐 하면, 이젠 우리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야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형상도 본인이고, 하나님도 자기가 만들어내고. 내가 보니까 본인이 우상이니까 자기가 생각한 것도 우상이고. 그러니까 날 건드리지 마라. 날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여기에 어디에 해당돼요?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메뚜기, 흑암, 장자. 바로 이거는 날 건드리지 마라 했는데 결국 우상은 땅도 우상이었고 역시 나라는 자체가 내 몸뚱이 자체가 아담의 죄의 권세 아래 있는 바로 이게 된다는 거예요.

이 인간 배후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장자의 바로를 보편적 단독성으로 내세워서 모세하고 하는데 사실은 모세가 하는 게 아니고, 모세 오른손에 지팡이죠. 모세하고 바로하고 싸우는 게 아니고 지팡이하고 바로하고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는 나중에 아말렉과 전쟁할 때도 내가 전쟁에 승리한 게 아니라고 지팡이를 들지요. 내 팔이 내려오는 게 문제가 아니고 지팡이가 내려오는 게 문제라서 내 팔을 들어달란 말이죠. 좀 보란 말이죠. 내 팔 보지 말고 내 팔에 뭐가 들렸는지 지팡이를 봐라.

이 지팡이가 옛날의 흔적이에요. 애굽에 처음 내려가기 전부터 하나님이 지팡이 들고 가라 했고,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석으로 쪼개고 지시하고. 그걸 동행이죠. 그런데 모세가 한 날은 미쳤나. 갑자기 정신 돌아서 자기가 지팡이를 쥐고 있다 생각한 거예요. 가리켜야 될 반석을 자기가 손에 들고 지팡이로 때리니까 약속의 땅을 코앞에서 못 봤습니다. 쌍안경 들고 봤어요. 임진각 가서 북한 봤지 못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세로 약속의 땅에 간다고 했는데 못 들어갔습니다.

결국은 광야라는 시나리오가 처음에 약속 속에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왜 들어가느냐? 탄력적 주체성.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오산이죠. 그러면 탄력적 주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광야를 거쳐야 되는데 그 광야를 지금부터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설명하고 마저 해봅시다.

광야란 한 마디로 빈자리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결혼한 여자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차이점은 뭐냐 하면, 결혼했다가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한 사람의 특징하고 결혼 안 한 여자의 같은 점은 둘 다 현재 남편이 없다는 점에 똑같지요. 차이점은 결혼 안 한 여자는 처음부터 빈자리가 없어요. 그냥 자기 몸밖에 없어요.

똑같이 자기 몸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사별한 사람은 세상에 어두운 빈자리가 있어요. 빈자리가 있어서 몸이 아프다든지 부슬부슬 창밖에 비가 온다든지 또는 낙엽이 떨어진다든지 이러면 ‘아이고, 영감. 왜 죽었노.’ 두 여자가 같이 공원에 가도 ‘나는 솔로라서 너무 좋아’ 이렇게 나오는데 같은 솔로 됐는데 눈물이 주르르 흐르네. 다른 사람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결혼 안 한 여자가 뭐라 합니까? ‘그만 잊어버려라. 죽은 사람 있나?’ 이러거든요.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그냥 구원하시는 게 아니고 애굽이라는 풍습과 인간의 힘에 소스에 묻혀서 구원하죠. 그러면 광야 때 뭐가 떨어져나갔습니까? 애굽이라는 멋들어진 달콤한 소스가 떨어져나갔지요. 떨어져나가면 뭐가 남습니까? 빈자리죠. 애굽의 빈자리죠. 이것 설명하기 전에 부산 강의한 것 다시 해보겠습니다.

요셉이 있고 이쪽에 야곱과 요셉 형제들이 있다면, 요셉이 국무총리대신 됐지요. 그러면 여기서 양식이 떨어져서 온데서 양식 사러왔잖아요. 그러면 우리 같으면, 요셉이 일어나서 ‘형님. 저 모르겠습니까?’ 말도 고향말 쓰고. ‘누구신데 감히.’ ‘모르겠습니까? 저, 요셉입니다.’ ‘어이. 요셉. 미안하다.’ 이렇게 하고 ‘양식 없지요. 내가 해줄게요.’ 딱 한 번 만에 양식 줘서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시므온 인질 잡고, 베냐민 인질 잡고, 세 번째 아버지 모시고 오죠. 왜 이렇게 합니까? 요셉에게는 빈자리가 있죠. 무슨 빈자리? 하나님의 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박탈당하는, 아버지도 나한테 절하고, 형제들도 절하는 그 멋들어진 그 꿈이 완전히 박살나겠죠. 이걸 잃어버렸죠.

요셉의 주체가 뭐라 했습니까? 언약은 반드시 탄력적 주체지요. 자기는 꿈을 받을 때 역사적인 자기를 생각하고 ‘난 이제 왕 됐다. 이제는 끗발 좋다.’ 이렇게 하다가 막상 진행 과정에서 자기의 처음에 갖고 있던 세상적 꿈은 어떻게 됐습니까? 세상에 죽을 뻔했습니다. 심지어 꿈의 혜택 받은 그 신하도 나중에 자기가 복직해놓고도 기억 안 하죠. 사람 환장합니다. 우리 같으면 전화합니다. ‘내시장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누구시더라?’ ‘감옥에 있을 때 저 덕분에 됐잖아요.’ 완전히 인생 끝난 거예요.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요셉은 언약이 없던 자리에서 야곱 언약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탕자가 되고, 몽땅 자기 것 잃어버리는 경험을 해야 비로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다’ 이거는 생존차원에서 생각했던 계시가 아니라 비로소 생명차원에서 거저 준다는 것을 알죠. 자기는 양식을 얻어서 국무총리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하나님의 따먹을 수 없는 생명나무를 따먹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 생존차원이 아니고 생명차원에서 얻었다는 거죠.

그런데 야곱과 형들은 아직도 생명차원이 아니고 생존차원이죠. 양식 없어서 양식 사러 갔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여기 생존차원에 있는 형과 아버지를 요셉이 알고 있는 생명차원으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요셉이 겪었던 잃어버린 빈자리를 같이 공감을 해야 되죠. 공감을 해야 요셉의 보편적 단독성에 합류되잖아요. 사실 보편적 단독성에 나중에 요셉에서 야곱 되죠. 그래서 야곱이 어긋맞게 기도하잖아요.

요셉에게는 뭐가 있다? 탄력적 주체성. 옛날에 내가 멋도 모르고 계시 받았다고 촐랑대고 형한테 자랑하고. 그때는 나도 나를 모른 거예요. 본인이 얼마나 촐랑대고 까불고 자기 혼자 계시 받았다고 좋아한 줄 몰라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죽은 데서 살려줄 때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차원에서 살려줘야 사는 거란 걸 알죠. 그걸 하기 위해서 야곱과 형들은 잃어버린 경험을 해야 되죠. 그 경험을 하기 위해서 볼모를 잡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 잃고, 시므온 잃어버리고 또 베냐민 잃어버리고. 야곱은 죽을 지경이에요. 나중에 요셉이 왔다는 흔적이 오죠. 수레가 오죠. 마차. 마차 보고 요셉이 산 걸 알고 타고 만나잖아요. 만나면서 하는 것이 요셉이든 우리 가정은 다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야곱 언약이 우리를 낮추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자로서 그 언약에 비로소 참여케 하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내가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 믿지도 못할 일, 내가 예상된 못한 일, 상상도 못할 일, 인간적으로 믿으려야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 언제? 내가 강도가 되고, 도적이 되고, 창기가 되어서 진짜 주님 아니면 믿을 게 없어서 구원하시는 그 하나님. 그래서 면류관도 반납할 정도로 세상에서 내 노동으로 얻는 것은 전부다 무가치한 허무한 걸 다 알고 이 땅에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은 자로 살아왔다는 것을 내 생명은 하늘나라 금고 있다는 것을 그걸 혹독하게 느끼면서 그렇게 창세기에 한 겁니다.

그때도 진리의 끝은 어딥니까? 끝이 아니라 바로 머리 위에 언약의 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있으니까. 그게 요셉한테는 전화번호부 구멍 파서 요셉 안에 예수님의 은혜가 들어 있잖아요. 언약이 들어있어요. 언약이 출렁출렁 거려요. 요새 같으면 십자가가 막 나와요. 가끔 너무 출렁하다가 십자가 피 이야기가 나오고. 한 2초 동안에. 하루에. 보통 때는 출렁출렁 있다가 죄를 짓고 이렇지요.

자기가 자기한테 실망할 때 욱하고 튀어나오는 게 복음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자기가 기대했던 것이 깨졌을 때, 분명히 우리 아이 서울대학 떨어졌을 때, 그때 복음이 막 나오는 거예요. 떨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절대로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남들이 모르는 비밀, 복음의 비밀을 가진 자로다. 신약성경의 이런 이야기하기 위해서 구약부터 이런 사태들이 사건들이 우리 밑바닥에 있어왔습니다. 저 사람이나 우리나 같은 환경 속에 있습니다. 다 같이 땅 속에 살았으니까.

그런데 제가 이야기 중요한 것은 이 빈자리를 할 때 이 광야에 빈자리가 있는데 애굽이죠. 그래서 그들은 뭔가 일이 안 풀리면 항상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지요. 이걸 제가 서울강의하면서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 나오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갖고 나옵니다. 3개월 동안에는 엄마와 자기가 구분이 안 되다가 6개월 때부터 거울단계부터 엄마와 따로 되면서 엄마가 시장가면 쓸쓸해서 저 혼자 놀지요. 하지만 엄마가 나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원하는 놀이에 들어갑니다. 그게 자의식이 발현되죠.

엄마라는 뜻이 뭐냐 하면, 옛날에 엄마와 같이 하나였잖아요. 하나인 자리가 있다는 말은, 엄마와 내가 하나란 말은, 누가 나의 빈자리를 차지하되 차지한 그분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사람. 무조건 날 예쁘다 해주고, 어떤 짓을 해도 착하다 해주고 내가 원하는 걸 다해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어린아이의 도덕발달심리에요. 어린아이의 도덕이 발달하고 신앙발달과정에 보면 뭘 찾느냐 하면, 엄마 같은 사람.

그런데 예를 들어서 엄마가 만약에 어릴 때 날 버리고 다른 남자와 눈 맞아 시집 가버리고 힘들게 살았다. 나는 큰 엄마 손에,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하면 그 다음부터 새엄마하고 어떻게 됩니까? 동으로 가라 하면 서로 가고, 서로 가라 하면 동으로. 말을 안 들어요. 왜 말을 안 듣습니까? 무슨 흔적이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 옛날에 엄마가 있었던 자리가 나를 실망시켰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나의 뭐가 됩니까? 나로 하여금 나 되게 하는데 가장 큰 방해자죠. 그리고 적이죠. 적에 대해서는 공격적이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죠. 적에 대해서 공격을 해야 나라는 정체성, 나라는 인간이 계속해서 유지가 되니까.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런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른 되면 누굴 찾습니까? 엄마한테 사랑받은 사람은 엄마 같은 사람, 아빠한테 사랑받은 사람은 아빠 같은 사람. 엄마한테 밉상 받고 아빠한테 사랑받으면 아빠 같은 사람. 아빠 같은 남자, 아빠 같은 여자. 또는 엄마였으면 엄마 같은 여자, 남자.

그러면 그 자리에 하나님을 이야기한다고.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겠어요? 옛날에 엄마와 같이 있었던 나에게 무조건 잘해줬던 하나님이죠. 이게 바로 사도 바울이 사도되기 전에 사울 당시에 사울이 여호와를 경유해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잖아요. 여호와를 경유하고 여호와를 잘 믿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한 것은 나는 진짜 하나님을 믿는다고 확신했잖아요.

그 빈자리가 뭐로 바뀌었습니까? 나에게 잘해주는 하나님, 나에게 착한 하나님인데 그 자리가 나사렛 예수로 바뀌었으니까 진짜 하나님은 바로 나만 챙기는 나 같은 인간, 내 사랑보다 나를 뭐로 보느냐? 죄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려고 찾아오신 진짜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십자가 앞에 바라볼 때마다 그 앞에 우리는 죄인이 될 때 비로소 내가 나한테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내 기분에 내 즐거움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진짜 내 모습은 저주받은 모습이고, 나는 주님을 저렇게 저주했고 미워했다는 자기 본색을 드러낼 때 그것이 바로 전화번호부고 그 안쪽에는 예수님이 담겨있는 거예요. 그래서 죄인과 의인의 만남이죠. 예수님과 우리 죄인의 만남. 그 빈자리에요.

그러면 광야에서 사람들은 자꾸 애굽으로 가죠. 그럼 이 애굽 자리에 뭐가 차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너희를 애굽에서 끄집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을 좋아하잖아요. 그럼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입니까?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인간들이 가해자고, 피해는 누굽니까? 모세를 비롯해서 모세에게 들린 지팡이, 그리고 하나님이 피해자가 되겠지요. 그러면 이 자리에서 원망이 일어나죠.

아론의 싹 난 지팡이하고 만나하고 깨진 돌판 그게 다 어디서 일어난 사건들입니까? 광야에서 일어나죠. 민수기잖아요. 여호수아 아니잖아요.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이잖아요. 돌판 깨진 사건은 시내산 밑이지요. 만나는 어떤 사건? 원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계속해서 애굽에서 맛보던 짜장면, 짬뽕이 아니고 뭡니까? 계속 약속의 땅을 겨냥하는 만나기 때문에 광야 끝나면 거짓말처럼 만나가 사라지죠.

그러니까 이 만나는 약속에서 미리 온 선취된 양식이죠.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애굽에서 맛보던 양식을 달라하고, 하나님 주신 것은 약속의 땅을 겨냥한 양식을 준 거고. 이 만나를 먹었어도 그들은 원망했잖아요. 그것도 열 번이나. 애굽이 따로 없어.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이 있죠. 열 번이나 원망했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빈자리를 뭐로 채우느냐 하면, 원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구원한다는 하나님의 아픔과 고난으로 이것을 채우는 겁니다. 그럴 때 그들은, 이게 바로 신명기에요. 신명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언약은 옛날 시내산 때 너희 조상들과 세운 언약이 아니라 지금 신명기에 동행하는 너희들과 세운 언약이다. 그래서 언약은 시간과 공간에 억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야기한 거죠.

다시 한번 물어봅시다. 언약이 이 땅에 오게 되면 표면에 뭐가 생긴다 했어요? 아까 창세기 9장에서 무지개언약과 저주받은 땅 사이에 그걸 카바하는데 어떤 표적이 생긴다? 피, 제사가 생기잖아요. 그 제사가 만나에서부터 제사법이 형성되는 겁니다. 지금 여름수련회를 만약에 제가 강사가 된다면 레위기를 할 참이에요. 그 복잡한 레위기를 구조를 이참에 해보자 이 말이에요.

그런데 피곤해하시니까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나는 더하고 싶은데 여러분들 육체를 생각해서. 열 가지 재앙에서 결국 열 가지 재앙이라 하는 것은, 오늘 한 것 정리해봅시다. 노아에선 저주받은 땅을 언약을 통해서 카바를 해줬지요. 피로써. 벌써 몇 번씩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이라는 것은 구획을 나눠서 히브리인들 살던 땅에는 저주가 오지 않고 애굽 사람 사는 데는 저주가 왔죠. 이거는 수평적으로 편 나눔이죠. 아까 노아홍수 같은 데는 수직적이죠. 삼겹살. 밑에는 저주고 위에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너희가 어릴 때부터 악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물로써 저주하지 않는다 해서 물의 저주를 하나님의 피가 카바 해줬지요.

이것이 여기서는 옆에 나란히 있죠. 애굽 사람과 히브리 사람 달라졌다 이 말이죠. 이걸 코이노니아라 하죠. 코이노니아라 하면 목사님들은 잘 아세요. 신학교 때 하도 들어서. 코이노니아가 뭐냐 하면, 교제에요.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신학교 가면 목회학 할 때 ‘이것, 이것 갖추면 교회입니다.’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코이노니아, 교제가 있어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제.

그런데 코이노니아가 원래 뜻은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 한국말로 교제인데, 이게 뭔 뜻이냐 하면, 알 사람만 안다는 거예요. 뭔가 비밀을 안 사람만 여기 모여라. 그게 교제입니다. 사귀는 것이 아니고 너와 나 사이에 너와 나가 공통적으로 아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되는 걸 코이노니아라 합니다. 사람 대 사람의 교제가 코이노니아가 아니고 중간에 복음이란 게 있어야 돼요. 복음을 통해서 나도 복음 쳐다보고 너도 복음 쳐다볼 때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 걸 코이노니아, 교제라 한 겁니다.

부부가 있다. 부부가 둘 다 복음을 알면 그걸 코이노니아라 하는 거예요. 그게 교회에요. 교회에 이런 것 네 가지 있어야 교회가 되는 게 아니고 하나만 있어도 교회가 되는 겁니다. 다이아몬드가 네 가지 면이 있더라도 어느 면도 교회로써 부족함이 없듯이 각각 면이 코이노니아도 있고 전도도 있다면 어떤 한 면만 나타나도 그건 교회가 되는 겁니다. 어떤 건물에 창문이 네 개 있다면 창문 한 개 있다고 해서 건물이 미완성된 게 아니잖아요. 한 면만 보이지만 돌아가면 네 면 다 있잖아요. 이처럼 교제만 봐도 그건 교회 되는 겁니다. 교회가 서로 우리 사이를 묶을 수 있는 새로운 것이 공통적으로 아는 거죠.

지금 열 가지 재앙은 말하자면 히브리인들에게 주님께서 코이노니아를 한 거예요. ‘재앙이 안 온다는 걸 좋아하지 말고 왜 재앙이 안 오는지 너희들만큼은 생각을 해줘라.’ 말로 알지 말고 이론이나 신학으로 알지 말고 평소에 생활 속에서 ‘주님이여, 왜 이렇게 우린 자꾸 천국으로 가는 겁니까?’라는 것을 이 울산 바닥에 지금도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는데 우리만큼은 특별 대우받고 있다는 그 사실을 잊지 말자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사람은 교인이 두 명이고 세 명이고 괜찮아요. 두 명, 세 명도 하늘의 누구와 코이노니아 한다? 사람끼리 아닙니다. 바로 머리 위에 있는 달 같은 주님과의 코이노니아, 교제가 이뤄지는 거예요. 나는 너를 알고,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 그 둘 사이에 코이노니아, 교제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 교제로써 광야를 이끈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저주 떼어버린 그러니까 히브리인 빠져버렸으면 나머지 애굽 사람밖에 없지요. 그들은 저주받은 힘밖에 없는데 저주받은 자리에다 또 기어이 돌아가자 하거든요. 철길 끝에 서서 [박하사탕]에 보면, ‘나 돌아갈래.’ 어떤 사람은 나 돌아버릴래 하지만.

지금 우리교회도 마찬가지고 여기 새순교회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만 교회 좀 나온다고 ‘나 돌아갈래.’ 한 사람 있어요. 생존차원에서 별로 못 건졌다 이 말입니다. 교회 나와서. 생각해보세요. 선악과 따먹고 고생 많이 했다고 인간적으로 생명나무 주면 우리가 그냥 생명나무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선악과 따먹은 인간들, 고생하는 건 당연한 거고, 고생 많이 한다고 해서 생명나무 따먹으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단시켜버렸어요.

이 땅에서 여러분 살기 힘드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백날 해도 고생은 고생이고, 생명나무 이거는 루트가 달라요. 다른 통로가 오는 겁니다. 고생 많이 했다고 봐줘서 불쌍히 여겨서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자기 사람 그냥 공짜로 주는 겁니다. 전화번호부에다 홈파서 중앙지점에다 집어넣어서 달릴 때마다 출렁출렁 뭔가 느껴지는 거예요. 엄마들 아기 임신하면 발로 차듯이 뭔가 안에서 발로 차고 있는 거예요. 결국 오해 받지만 앞으로 할 생각 없지만 우리 안에서 발로 차고 있는 겁니다.

저주받은 세상은 생존차원이니까 그건 저주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 잃으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진짜 끝으로 한 마디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생명에는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동사가 있어요. 동사는 그냥 살아간다. 동사가 아무리 살아가봤자 이게 명사가 안 돼요. 생명이 되질 않습니다. 명사는 그냥 명사로 와야 돼요. 동사 살아가는 것은 개나 소나 다 살아가는 겁니다.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명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고난 받는다고 생명 되는 게 아니고 생명은 하나의 제품처럼, 상품처럼 예수님의 내 살과 내 피 또는 내 생명의 떡 그냥 공짜로 주시는 겁니다.

공짜로 주게 되면 우리는 지금 저주받은 땅에서 히브리인처럼 특별 분류대상이 되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코이노니아, 교제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를 특별대우하고 분류하는구나하는 이 언약을 우리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가는 그런 기쁨 결과가 거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너무 생존차원에서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제는 생명이 예수님 피로 말미암아 거저 죄 용서해주었고 의인되게 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우리의 머리에 남게 하지 말고 우리 가슴 깊은 곳에 늘 출렁거리면서 우리를 지배하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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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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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