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렘 14:13-18 (거짓 선지자)우리교회예레미야

렘 14:13-18 (거짓 선지자)

이름 : 우리교회(IP:124.59.86.9)

본문 : 예레미야 14장13-18절
제목 : 거짓 선지자
듣기 :
, 보기 :

우리교회

10-02-10 06:58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49강-렘14장13-18(거짓선지자)-jer100210.hwp

이근호

10-02-10 20:44

거짓 선지자

2010년 2월 10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14:13-18

(렘 14:10, 개역)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렘 14:11, 개역)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렘 14:12, 개역)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렘 14:13, 개역)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렘 14:14,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렘 14:1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렘 14:16, 개역)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렘 14:17, 개역)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렘 14:18, 개역)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에서 자신이 ‘기뻤다’, ‘즐거웠다’, ‘슬펐다’는 감정이 우선되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즐거우면 문제없는 것이고,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본인이 슬프면 문제 있는 세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라는 겁니다.

이런 요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관심사를 비켜가는 문제이기에 짜증부터 먼저 내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보고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는 말씀하지 마시고 아예 거짓 선지자들이 발생되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임무가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반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시겠다는 것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역량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없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거짓 선지자들의 멸망과 더불어 기존 백성들도 함께 망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 심보가 곧 멸망당할 거짓 선지자의 심보이기에 같이 상호 소통하고 한 통속이 되어 있다는 현실을 분명히 밝혀주십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가 투입됩니다. 그럴 때, 거짓 선지자들이 이런 소식을 전하는 예레미야보고 뭐라고 말을 할까요? 이렇게 모함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미혹하는 예레미야라는 거짓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은 그 선지자의 말을 믿지 마시고 주의해야 합니다”라고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동조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산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참선지자이신 예레미야를 보내신 이유에 대해서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22에 보면,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자가 자신들의 모든 일에 대해서 “나는 죄 없음”을 우기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 있음”을 말할 수 있는 인간은 애당초 없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해서 생래적으로 우호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다가설 수 없으며, 성령이 임하면 필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아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대하게 됩니다.

시편 51:8-11에 보면,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자력으로 자신 속에 있는 죄의 힘으로 하나님 쪽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꺽어신 뼈’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율법의 중심에 제사법을 놓아지는 이유를 이제사 알게 됩니다. 그것도 자신의 죄가 하나님에 의해서 발각당한 경우를 통해서 말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나 백성들을 대하기에 민망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우리아 가족에서 미안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비로소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마주 대하게 됩니다. 그것도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자격으로 말입니다. 그동안 그는 제사는 드렸지만 왜 하나님께서 뼈를 꺾도록 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제사를 제 때에 드리는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제사 행위가 자신을 진정 하나님 앞에 세우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쪽에서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말해주는 사태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할 만한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평소에 죄를 많이 지어도 인간은 그럴 때마다 자기를 변호하는 죄를 짓게 마련이지 결코 자신이 죄인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죄는 따로 없는 겁니다. 즉 “비록 지금은 죄 짓지만 마음만 먹으면 안 지을 수도 있는 것이 나”라는 인식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죄이기에 그런 죄 중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죄를 따로 구분해서 지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이 드러나는 경우는, 하나님 쪽에서 오셔서, 인간이 지켰다고 우기는 그 율법을 친히 다 이루시는 경우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평소에 다윗은 율법을 나름대로 준수한다고 자부했습니다. 율법 중심부에 있는 제사법에 대해서 다윗은 꾸준히 정기적으로 참여해서 준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를 만나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자신의 상한 심령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께서 꺾으신 뼈’로 인하여 다윗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될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자기를 떠나지 않기를 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참된 선지자를 “저 사람은 거짓 선지자다”라고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들로 하여금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뒤바꾸어 이해하게 해서 비로소 참된 선지자가 그들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하는 원칙을 견지하시는 겁니다.

참된 선지자가 사람들로부터 밉상을 받을 때 비로소, 마태복음 11:25-26의 말씀의 성취성이 드러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여기서 ‘숨기시고’는 단어가 나옵니다. 즉 ‘숨긴 상태에서 드러내시는 것’을 이해한 자만이 이미 드러내심과 관련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을 참된 선지자라고 오해했다가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의해서 그동안 몰랐던 참된 선지자의 가치를 알게 된 그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 비로소 죄인이었다는 알게 된 것이다.

십자가 복음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받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성도를 ‘꺾으신 뼈’로 사용하시는 말씀의 완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지혜로 우리가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나타내심을 능력으로 구원됨을 알고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10-02-13 09:19

20100210우리교회수요설교녹취(렘 14:13-18/거짓선지자)

2010-02-13 05:31:25 이름 : 오용익

20100210우리교회수요설교/예레미야 14장 13-18절/거짓선지자(이 근호 목사)

(기도)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고 주의 구원으로 나를 권고하사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상을 보고 주의 날에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기업과 함께 자랑하게 하소서.”

하나님, 저희들이 주님을 기억하는 것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 때문인 줄 압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행하셔서 거저 주시는 이 은혜를 저희들이 기억케 해 주시고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이 시간 다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가치를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세력과 항상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을 영적인 눈으로 세상현실을 바라봐서 세상이라는 것이 영적인 싸움터라는 인식을 우리가 잊지 않도록 다 같이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이 보는 현실은 생존의 장이지만 저희들이 알고 있는 현실은 주께서 부활하신 현장인 줄 압니다. 주께서 부활하셔서 구원받을 자를 건져내시고 지옥 갈 자를 지옥 보내시는 영적인 싸움터에 저희들이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현실을 보는 눈과 이 모든 마음가짐과 행동이 영적인 전쟁과 관련지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저희가 한시도 잊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4장 13절부터 18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73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14:13-18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이요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성경에 보면 거짓선지자와 참선지자가 나오지요.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런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관심이 있느냐? 내 인생이 얼마나 슬프냐? 또는 내 인생이 얼마나 즐겁고 기쁘냐?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항상 그것이 우선이 되지요. 아, 오늘 기분 좋았다. 아, 오늘 기분 나빴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 슬픔과 기쁨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 시기에 성경말씀에 거짓선지자, 참선지가 그 대결구조는 우리 머리에 아예 들어오지를 않아요. 그만큼 사람은 자기감정이 우선이고 자기감정 중심이고 자기바깥의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은 자기와 상관없으면 그 다음부터는 남의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참 선지자들이 상당히 외롭고 불쌍하지요. 사람들은 자기감정이 우선인데 ‘여러분, 거짓선지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라고 자꾸 외쳐야만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거짓선지자와 참선지자의 구분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어요. 주유소에 기름 떨어지면 기름 넣는 것이 우선이지 ‘실례지만 이 주유소가 참 선지자가 경영하는 주유소입니까?’라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렇습니다. 명절이 되어서 객지에 가서 예배시간 되어서 예배를 드리려 하는데 “실례지만 이 목사님은 참 선지자 되십니까?” 라고 물어서 “예, 그렇습니다.” 하면 참석하고 “아닙니다.” 하면 참석 안 할거다 그 말이지요. 세상 어느 교인도 ‘우리 목사님은 진짜 거짓선지자입니다.’ 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생겨요. 첫째는 사람들 자체가 평소에 사람이 관심 갖는 것과 하나님이 관심 갖는 것이 이미 다르다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관심사는 참된 선지자와 거짓선지자의 그 구분이 관심사인데 우리는 오늘 하루가 즐거웠느냐, 재미있었느냐 , 아니면 슬펐느냐 그게 우선이 되다 보니까 거짓선지자들이 바로 그 점을 노린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모르는 거예요.

참 선지자들은 ‘거짓선지자들의 활동에 주의하라.’고 촉구를 하지만 거짓선지자들은 고객확보가 우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사는 잊어주시고 저는 여러분들의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기쁨에 넘치는 삶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더라는 말이지요. 어느 쪽이 더 호감이 가느냐 하면 거짓선지자들이 훨씬 우리 맘을 알아주잖아요. 우리 심정을 헤아려주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뭐냐? ‘교회 가니까 재미없더라. 외롭더라.’ 보통 그것 때문에 떠나는 거예요. ‘그 교회에서 10년간 연구를 했는데 역시 복음이 아니야.’ 라고 해서 떠난다면 그분은 아주 대단한 분입니다. 그게 아니고 올 때도 복음에 관심 없고 갈 때도 복음에 관심 없고 다른 교회보다 더 나를 예쁘게 봐주고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어떤 분이 우리교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교회 교인들은 악수를 청하니까 다들 피하더라는 말이지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악수를 청하는데 다 피하더랍니다. 어떤 분은 우리교회가 살벌하다고도 이야기 했는데 왜냐하면 아주 좋게 이야기해서 우리교회 관심사가 거짓선지자와 참선지자에 가다 보니까, 좋게 이야기해서, 아주 좋게 이야기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예레미야가 참 불쌍해요. 그 당시에 예레미야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은 받아들이기를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뭐하시는 분이냐? 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거짓선지자들을 발생시키느냐?’라는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아주 희한하죠.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라고 하면 사람이 심보가 이래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면 대번에 심보가 “심기는 왜 심어놓고는.” 이렇게 나온다니까요. 경찰이 와서 “여러분은 주무실 때 창문 잘 닫고 문단속 잘하세요. 도둑이 들지 않도록 하세요.” 이러면 대번 경찰보고 하는 말이 “다 잡아 버리지 왜 우리보고 신경 쓰게 만듭니까?”라는 식과 똑같은 거예요.

경찰이야 우리가 창문 열어놓고 편히 잘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겠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거짓선지자와 참선지자를 보내는 것은 지금 거짓선지자 이것이 문제가 아니고 ‘너희들이 이미 거짓선지자를 선호하고 있고 참 선지자를 배격하고 있는 네 죄를 알렸다.’ 그 이야기입니다. 거짓선지자 참선지자 이야기를 끄집어내시는 것은 ‘너희들이 거짓선지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3절에 ‘내가 보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이름으로 거짓예언을 한다.’라고 나오는데 이 말을 거짓선지자들이 이야기 하면 어떻게 여러분들이 판단하겠습니까? ‘여러분, 조심해야 됩니다. 요새 처처에 거짓선지자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그 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해야 됩니다.’라고 거짓선지자들이 이야기했을 때 여러분들은 그 거짓선지자들을 어떻게 판단하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순복음교단에서 ‘여러분, 이단을 조심해야 됩니다.’라고 할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돼요? 이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문제가 있기에 주님께서는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는 언질을 줘야만 했던가 하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가 처신을 어떻게 했기에, 도대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외면하고 살았기에 ‘간다, 간다. 거짓선지자 간다.’라고 하면서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결국 참 선지자가 또는 예레미야가 거짓선지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미 너희들은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사라졌다, 박탈당했다.’ 그 말입니다. 이제 문제가 상당히 어렵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거짓선지자들도 이런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 2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인데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지 아니하였더라면 너희들은 이 땅에서 죄가 없는 사람처럼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진짜 거짓 없는 오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자마자 죄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그들에게 무럭무럭 죄가 발생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게 되면 갑자기 우리에게 없는 죄가 무럭무럭 올라오는 겁니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아까 이야기했지만 ‘거짓선지자 참선지자 그런 것 따지기 전에 하나님 쪽에서 거짓선지자가 이 세상에 보내지지 않도록 태어나는 족족 죽이든지 해야지 그걸 우리보고 판단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라고 마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실은 이런 거짓선지자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그 말씀을 받고 있는 너희들이 벌써부터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에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예수님께서 전도가 끝난 뒤에 기도하시는데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렇게 했어요.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이 뭐냐? 간단하지요. ‘숨기시고 드러내시고’ 그게 아버지의 뜻이에요. 아버지의 뜻이 나타내려면 나타내 주시든지 숨기려면 아예 숨기든지 그렇게 해야 되는데 아버지의 뜻이 ‘숨기시고 또는 나타내시고’입니다. ‘하나님,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따지면 소위 슬기 있고 지혜 있다는 자에게는 숨기겠다는 거예요.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자부하는 그런 슬기 있고 지혜로운 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숨어 있는 하나님이에요. 도저히 그들이 밝혀 낼 수 없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문제 있다는 것이 결국 뭐냐 하면 “너희들은 참 선지자 보내 봤자 결국 거짓선지자와 합세가 되어서 ‘여러분, 저 사람은 거짓선지자입니다.’ 라고 합세해서 참 선지자를 매도하고 핍박하고 죽여 버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반발하는 속성이 너희들 속에 부글부글 들끓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가 이제 해결되었지요.

거짓선지자를 두는 이유가 참선지자를 도리어 거짓선지자라고 미워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이야기가 있고 난 뒤에 그들 속에 없었던 죄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는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되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연구하고 발견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방적인 나타내심의 혜택에 의해서만 구원이 되는 그것이 또 하나님의 뜻이에요.

이번에 개혁신학회에 제출할 논문을 죽 쓰면서 화가 좀 났었어요. 그래서 논문내용이 노골적이 되고 말았어요. 논문 군데군데 새롭게 추가된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역사상에 있는 모든 신학을 다 심판하기 위함이다.” 모든 신학을 다 심판해 버리는 거예요. “개혁? 거짓말이다. 쇄신? 그것은 허구다.” “이유가 뭐냐?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그들이 성경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려고 덤벼드는 그 순간, 그 노림수가 자기가 슬기와 지혜를 모아서 그것을 토대로 하나님에게서 구원을 따내겠다는 숨어 있는 죄악을 드러내는 계기로 주님께서는 성경말씀을 줬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나 신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고 성경말씀을 준 것은 우리가 그것을 슬기 있고 지혜 있게 해석하고 납득해서 소위 신학자가 그것에 대한 가치를 발견해서 그것을 남들에게 나눠주면 그들이 그것을 공유해서 다 같이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방금 읽었던 마태복음 11장 25절 26절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가 되지요.

소위 ‘슬기 있고 지혜 있는 자에게는 숨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까불지 말라 이 말입니다. 백날 구원 구원해도 구원이 안 된다는 겁니다. ‘도대체 왜 나에게 그런 죄가 있습니까?’라고 따진다면 참된 선지자를 그 가운데 보내보세요. 참된 선지자는 소위 슬기 있고 지혜 있는 사람에게 한 칼에 날아가 버리지요.

참된 선지자가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서 거짓선지자와 합세가 된 사람들은 그 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참된 선지자 오기만 해 봐라, 다 죽여 버린다 하는 자기도 미처 몰랐던 엄청난 죄 성이 그 안에 담겨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다시 정리해 봅시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성경말씀의 뜻이 뭡니까?” “그 뜻은 성경말씀을 줌으로서 그들이 성경말씀을 붙들고 구원받고자 애쓰는 가운데 그들 속의 악마 성을 노출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준거지요.

그러면 구원 어떻게 받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시는’ 주님의 나타내심 덕분에 구원받는 거예요. 다가가면 멀어지고 멈추면 다가오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니까 ‘지혜 있고 슬기 있다.’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알고 그것을 파악하는 그것이 얼마나 수고롭고 무거운 짐이 되겠어요. 모든 행동이 다 하나님의 구원받기 위한 노력인데.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내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다 편히 쉬게 할게.’ 집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말이지요. ‘나는 내가 설쳐봐야 내 안의 죄밖에 안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라 이 말입니다.

그렇게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다고오심으로서 ‘나는 애초부터 구원되려고 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구원될 자격도 없고 구원될 권리도 없다.’는 것을 알 때 바로 그 사태가 주께서 오심으로 ‘내가 주님 앞에서 죄인이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 그 관계가 구원의 관계, 그것이 곧 나타내심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죽었어요. 예레미야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호응할 줄 압니까? 그 당시에 권세 잡은 선지자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예레미야라는 이단을 조심하라.’ 분명히 그렇게 나올 것이 아닙니까? 예레미야는 이단을 조심하라고 하고. 민중들은 그것도 모르고 “예레미야가 뭐라고 이야기 했는데요?”라고 물을 거잖아요.

그러면 그 거짓선지자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기만 보내고 우리 목사들은 안 보냈대. 세상에 그렇게 시건방진 놈이 어디 있어.” “그래서 우리 목사님은 예레미야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했지. 사람이 선지자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라. 너만 주의 종이냐, 나도 주의 종이다. 인간이 되어라.” 그러면 교인들이 “역시 잘했어.” 하고 납득이 됩니다.

왜 납득이 되느냐 하면 인간들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자기가 선이나 악을 골라잡을 수 있다는 그 선입감이 있어요. 그 선입감을 이용한 것이 거짓선지자고 오히려 그들이 어떤 참된 선지자를 골라서 구원받겠다는 그 시도자체를 죄라고 규정하는 것은 참된 선지자고, 그런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노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어느 누구도 성령이 아니고서야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길이 없습니다. 십자가 구원은 인간의 모든 지혜와 모든 슬기로부터 차단되어 있어요. 어려운 말로 하지 말고 쉬운 말로 해 봅시다. 어떤 목사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배당건물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고 합시다. 그 목사가 주변사람들에게 전도를 한다고 합시다.

전도를 할 때 주변 사람들은 자기가 납득할만한 말을 할 때 자기는 교회 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 뻔하거든요. 그런데 그 목사는 성경을 알고 신학을 했기 때문에 뭐 하나 들은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22절, 23절 죽 보니까 ‘사람의 지혜로서는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알 자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정답이라면 결국 십자가 도를 전하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단 한명도 안 올수가 있지요.

제 말이 맞지요? 그리고 한명도 안 오는 것이 정상이지요. 이게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대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자기지혜와 슬기로서는 어떤 사람도 십자가 도를 모르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이 정상이거든요. 따라서 교회 예배당은 있어도 교인은 단 한명도 없고 심지어 마누라마저 도망쳐 버리고 자식도 가버리고 단 한명도 없어도 그것이 대단히 정상적이죠.

어떤 경우에만 그렇습니까? 목사가 복음을 전파할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니까 겁이 날 수밖에 없어요. ‘야, 진짜 내가 생각해도 이 말이 맞기는 맞는데 진짜로 한명도 안 오면 은행 대출받아서, 빚내서 지은 이 예배당, 여기서 뭐하나?’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단 그들이 원하는 것으로 꾀어 놓고 그 다음에 2차로 복음작업에 들어가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일단 꾀어 보는 겁니다. ‘여러분, 복 받습니다. 고부간에 갈등 있는 것 교회 오시면 해결됩니다.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람 많습니다.’ 그렇게 꾀이면 사람들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모인 사람들이 열 명이 되면, 그 열 명으로 목회 그만 할 거예요? 20명 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바깥에 있는 열 명을 더 꾀이기 위해서는 또 설교를 할 때 처음에 열 명을 꾀일 때 했던 그 설교를 또 해야 되는 겁니다.

나중에 백 명 되면 만족합니까? 2백 명, 2백 명이 되면 만족합니까? 천명. 숫자가 떨어지면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점점 더 과격한 것을 하지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요. 교회 아니지요. 결국 사람들이 교회는 왔는데 단 한명도 복음 들어본 적이 없는 교인들만 몰려 있습니다. 거기에 만약에 후임목사나 부교역자가 와서 복음 전해버리면 그들은 다 원위치로 돌아가 버리고 역시 한 사람도 안 남겠지요.

자, 이런 문제를 어떻게 주님께서는 해결하시는가? 시편 52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말씀이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이게 뭐냐 하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난 뒤에 나단선지자가 다윗을 지적하고 난 뒤에 다윗에게서 나왔던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것이 있어요. 다윗은 분명히 우리아의 가족에게 그리고 밧세바에게 미안스럽고 분명히 죄를 지었지요. 분명히 인간적으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만 다윗은 인간에게 전혀 죄를 짓지 않았어요, 아니 다윗은 전혀 죄를 지을 수가 없지요.

어떤 죄냐 하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러낼 죄를 다윗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겁니다.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에요. 다윗이 사람 죽이고 간통하고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것은 남들에게 미안스러운 죄를 지은 거예요. 남들, 그 피해 가족에게 굉장히 미안한 거예요. ‘얼마면 돼? 내가 보상해 줄게. 미안하다. 그 때 내가 정신이 좀 돌았나봐.’

얼마든지 보상할 수 있는데 아무리 사람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그 죄는 인간의 힘으로 그 죄를 지을 수가 없어요. 상당히 아이러니 합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드러내는 죄는 지을 수 없다는 사실. 그런데 이 8절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주께서 꺾으신 뼈로 말미암아 주여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주께서 꺾으신 뼈 앞에서, 비로소 그때부터는 우리아 죽인 것이 죄가 아니고, 밧세바를 간통한 것이 죄가 아니고 모친의 뱃속에서부터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소급해서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몽땅 다. 그러니까 다윗은 죄 짓고 있으면서도 죄를 몰랐던 거예요.

오늘날 개혁주의 성화론자들은 ‘주여, 이 죄를 용서하소서.’ 해 놓고는 죄가 뭔지 몰라요. 항상 남에게 피해 준 것만 기억하는 거예요. 교회 충성 안한 것, 목사 뒤에서 수근 거린 것. 그래서 목사, 다른 말로 하면 거짓선지자 이런 사람들은 설교하기 쉽지요.

‘여러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준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새사람 되었으면 새사람으로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왜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십니까? 주님 앞에 영광 돌렸습니까? 옛날에는 술 담배를 했지만 끊으시고 이제 남은 생애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살아야 되는데 왜 자꾸 세상으로 나가십니까? 애굽으로 나가십니까? 회개하세요.’

그들은 전부 다 납득을 해요. 하지만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보상차원, 그리고 내가 죄는 지었지만 죄를 안 지을 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한 회개의 연장이고 연속이죠. 아, 거짓선지자들 나쁜 사람입니다. 그들 앞에 예수님 같으면 뭐라고 설교하겠습니까? 사도바울 같으면 뭐라고 설교하겠어요. ‘여러분, 이미 죽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이렇게 나오지요.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여러분, 사람은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께서는 여러분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립니다. 회개하고 손들고 할렐루야, 하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께서는 여러분들을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시고 이제는 두 번 다시 나쁜 짓 하지 마세요.” “목사, 너나 나쁜 짓 하지 마라. 그렇게 하는 자체가 바로 고객확보,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예배당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고객확보를 위한, 그들과 의사소통이 되고 납득이 되도록 하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악마의 뜻이지요.

악마의 뜻은 납득이 되는 거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시 이야기를 할까요? 슬기롭고 지혜 있는 자에게는 숨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주여, 제가 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하는 자에게는 비로소 꺾어진 뼈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으로 우리에게 죄를 씻어주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나타내주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시편 51편에서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내게 거두지 마소서.” 우리 같으면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게 하소서.’ 이래야 할 텐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주여, 주께서 주의 성신을 나에게서 쫒아내지 마옵소서.’ 왜? 나는 주님 없이는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 있어도 죄인이지만, 나는 주님 때문에, 주님 덕분에, 그 꺾으신 뼈로 인하여 나는 항상 구원의 기쁨을 가져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께서 꺾으신 뼈로.’ 그러면 주께서 꺾으신 뼈라 하는 것은 원래 어디에 속하는 것인가 하면 율법인데 율법에 두 가지가 있다 하지요. 안쪽에는 제사법이 있고 바깥쪽에는 소위 양심법, 도덕법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다윗이 자기가 죄짓기 전에는, 물론 죄지은 후에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제사법도 내가 지킬 수 있고 양심법도 내가 지킬 수 있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킬 수 있다.’ 이렇게 본 거예요. 그런데 막상 ‘주께서 뼈를 꺾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사법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제사법을 지켜서 바깥에 있는 나를 구원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내가 제사 드리고 율법대로 산다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 뜻에 정반대되는 나의 죄를 가리기 위한 조치에 불과한 거예요. 그래서 시편 51편에 보면 ‘주께서는 제사도 원치 않으시고 번제도 원치 않으시고 주께서 원하는 것은 상한심령이다.’ 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율법을 내가 지킬 수 없었나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도 모르고 평소에 왕으로서 모범을 보인다고 율법을 잘 지킨 거예요. 제사도 드리고 예배참석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온갖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행한 겁니다. 그런 것으로 하나님앞에 말씀대로 살았다고 자부한 거예요. 그러나 어떤 인간도 말씀대로 지킨 사람도 없고 지킨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너는 지킬 없는 죄인’인 것을 드러낸 것으로 말씀의 완성이에요. 바로 이 이야기를 그 논문에 담았습니다.

마지막부분에서, “70이레라는 것을 너희들은 역사적으로, 기존의 역사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그것을 역사적으로 파악해서 의미를 드러내는데 70이레에 나오는 모든 일들은 이미 묵시적 해답으로 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접근해도 파악할 수 없다.”고 봐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어떤 말씀을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없다는 그 사실이 다시 한 번 우리로 하여금 죄인으로 드러내게 하는 70이레요 그것이 모든 성경말씀이다 이 말입니다. 그것을 왜 신학자들은 모르냐 이 말이지요. 자꾸 어떤 신학을 해서 그것으로 남을 가르치려고. 성경을 주신 것은 바로 내가 죄인이고 다만 기쁜 것은 주께서 꺾으신 뼈, 십자가 주께서 친히 지키신 그 제사법, 제사의 완성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최초로, 그리고 영원히 사람 앞에 죄인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 앞에 ‘나는 죄인 맞습니다.’ 하고 드러내는 겁니다.

이 참된 선지자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십자가로서 우리를 드러내게 하는 거예요. 끝으로 한 말씀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해 놓고 뒤에 보면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니 누꼬?’라고 그건 거짓선지자를, 기적이라든지 말씀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지자가 아니라 ‘내가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는 자, 저와 여러분이 오늘날 참된 선지자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주님 십자가 바라봐야 될 그 시선을 같은 동료 교인들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보면서 누가 잘났나를 비교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선이 순간적으로 자기가 의인인양 여기게 만들었던 시험이었던 것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주께서 꺾으신 뼈로 인하여 자기가 주님 앞에 처음으로 죄인인 것을 안 것처럼 그 첫 사랑을 영원히 이어갈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눈 돌리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8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8,717 우리교회 눅 3:15-17 (저주받은 세상)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2-14
8,716 자유게시판 현대판 노비 문서<펌> 미가 최고관리자 10-02-14
8,715 자유게시판 마그리트 - 연인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0-02-13
8,714 자유게시판 나도 몰라 - 최고관리자 10-02-13
8,713 자유게시판 Have Loved To Wander(Jer 14:10-12) - 최고관리자 10-02-13
8,712 자유게시판 20100210우리교회수요설교녹취(렘 14:13-18/거짓선지자)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0-02-13
8,711 자유게시판 설날이라 교회를 못가네요.. - 최고관리자 10-02-12
8,710 자유게시판 임집사님 캠코더 모델 입니다. - 최고관리자 10-02-12
8,709 자유게시판 십자가마을 서버 노회로 권한 이전해 드립니다. - 최고관리자 10-02-11
8,708 자유게시판 그 놈의 정때문에! - 최고관리자 10-02-11
8,707 자유게시판 20100205b 울산강의-출애굽기 9장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0-02-10
8,706 자유게시판 20100205a 울산강의-출애굽기 9장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10-02-10
열람 ➜ 우리교회 렘 14:13-18 (거짓 선지자)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0-02-10
8,704 우리교회 [일반] 오늘부터 실시간방송 중지합니다. [방송] 최고관리자 10-02-10
8,703 자유게시판 오늘부터 실시간 중지합니다. - 최고관리자 10-02-10
8,702 자유게시판 20100207우리교회주일설교녹취(눅 3:7-9/회개)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2-09
8,701 묻고답하기 삯꾼목자와 선한목자와의 차이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10-02-08
8,700 묻고답하기 저주받은 세상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2-08
8,699 우리교회 [주보] 저주받은 세상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10-02-08
8,698 묻고답하기 생소한 질문이라 아시는 분 답변 바랍니다. 욥기 최고관리자 10-02-08
8,697 자유게시판 아마샤의 형태로 속살을 드러낸 구속받은 이스라엘(대하25:1~28)-서울 의존교회 주일 낮 설교 역대하 최고관리자 10-02-08
8,696 자유게시판 10대구강의(피)17-인간의행함과현실만들기 로마서 최고관리자 10-02-07
8,695 자유게시판 09대구강의(피)16-정의냐지시냐 [피] 최고관리자 10-02-07
8,694 우리교회 [일반] 오용익목사님을 칭찬합니다^^!!! [일반] 최고관리자 10-02-07
8,693 자유게시판 20100202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3-지혜의 인격화 로마서 최고관리자 10-02-0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