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감동적인 설교입니다. 비평 부탁드립니다.
아주 감동적인 설교입니다. 비평 부탁드립니다.
이름 : 성재필(IP:118.45.159.155)
성우교회 1월 24일 오전 설교 입니다.에베소서 4:4-6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성경에 보시면 매우 쉽고 은혜롭고 감사한 말씀도 있지만 어떤면에서는 매우 무서울 정도로 어렵고 힘든말씀도 있습니다. 끝내는 너무 힘들어서 근심하면서 돌아설수밖에 없는 성경말씀도 있습니다.
구원받기매우 쉬운이야기도있고 야~ 이래서 누가 구원받는단말인가 근심하게하는것도 있다. 은혜롭고 감사 하고 기쁨에찬 쉬운말씀일지라도 그냥 덥석우리손에 쥐어주는것이아니고 어렵고 힘든말을 먼저 통과한다음에 주워진다.
구원이라는 것이 매우 쉬워보이는데 사실 그렇지않고 그 쉬운것은 우리로서는 불가능할정도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주워지는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어렵고 힘든말씀들이 하나님나라의 걸림돌이다.
이 걸림돌을 통과못해서 하나님나라에 못들어간다. 하나님나라는 아무나오세요. 원하면 다 통과시켜줄께가 아니고 반드시 걸림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걸림돌에 걸려넘어진다. 복음서에 보시면 원하는사람 아무나 다 들어오너라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면서 걸림돌을 제시한다. 그 걸림돌에 걸려넘어져서 하나님나라를 포기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심히 근심하면서 돌아간다.
오직 아버지께서 보내신자. 성령으로 말미암은 자만이 통과한다. 성경에보십시오. 예수님이 그 걸림돌을 제거하던가요. 반드시 그 걸림돌에 넘어지게하는데. 그 걸림돌이 뭐냐. 십자가아닙니까. 십자가는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고 하나님나라의 전부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않고 하나님나라에 들어왔다는것은 절도요 강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들어온사람들... 신약에보시면 곳곳에 십자가라는 관문 .걸림돌이 제시되어있다. 지뢰처럼 곳곳에 숨겨놓았다. 왜? 십자가아니면 하나님나라아니니까! 예수믿으면서도 우리를 확인하게 만들어요. 예수.사도,야고보 모든사람이 다그렇다. 5절에도 보면. 주도 하나요...세례도 하나요. 오늘 세례에 대해서말씀드리겠다. 세례는 피할수없는관문. 이 세례를 통과하지 않은사람은 반드시 주님이 걸러내신다. 세례도 하나이요. 당신들 모두 세례라는 하나의 문을 통과해서 이자리에 있는것이 아니냐. 한 세례라는 문을 통과했으니까 이 자리에 있다. 그렇지않으면 도둑놈이다. 모든 기독교인은 세례를 통과했다. 세례없이는 아무도 기독교인이 될수 없다.
우리모두는 세례안에서 하나임을 안다.. 세례는 하나님나라의 유일한 관문. 걸림돌. 그러니까. 구약이든 신약을 막론하고 세례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 세례를 복음의 본질로 다룬다. 세례없이는 너희의 하나됨이 없다. 먼저 구약에보면 세례가 얼마나 중요하던가요? 구약에 가장 굵은 세례사건은? 세례는 반드시 중요하다는 사건은 무엇이냐하면 노아홍수사건이죠. 노아홍수사건은 세례지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세상의 심판도 맞지만. 노아를 하나님나라로 이끌어가기위해서 홍수사건이 터진거다. 노아가 천국가기위해서는 홍수사건이 꼭 터져야한다. 벧전..물때문에 노아가 구원받았다고 한다. 세례때문에. 노아홍수사건은 노아가 천국가기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한 사건이다. 홍수없이는 노아가 하나님나라로 들어갈수가 없다.
그다음 세례사건 굵은사건. 출애굽기의 홍해사건이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꼭 홍해로갈필요없다. 더 멀어요. 광야로가면 이삼일만에 갑니다. 근데 하나님은 기어이 홍해를 통과해서 가나안가게한다. 거기서 난리를 지기죠. 하나님게서 왜 그 거추장스러운 사건을 일으키나. 세례사건이다. 가나안땅에 가려면 반드시 홍해사건이 필요하다.그러니까 가나안은 쉽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세례를 받고 홍해를 건너야한다. 그다음 요단강 마찬가지 일이세대 다죽고 그다음사람 반드시 세례받아야한다. 구약의 이런사건은 특이하게 굵직한사건인데. 이것을 통해서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신약에보면 역시 세례가중요하게 다뤄진다. 세례요한부터보면 하늘나라의 관문으로서 세례받을것을 요구하면서 세례를 거부하는 바리새인을 얼마나 신랄하게 공격하는가 택도없는소리. 회개를요구했다. 그다음 오순절날 베드로가 설교했다. 십자가와 부활.성령강림을 설명했는데. 우리가 어찌할꼬.하니까. 베드로가 제일먼저 제시한것이 예수이름으로 세례받으라. 회개하고 세례받으라. 라고 한다.회개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오순절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이디오피아 내시가 예수를 믿을려고할때 빌립이 세례받으라고 먼저 제시한다. 물이 없으면 오아시스에 가서 세례받고 하늘나라 들어간다.
이처럼 세례라는 것은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면서 걸림돌. 이 세례가 싫어서 하나님나라에 안들어간다. 바늘구멍이다. 근심하면서 다 돌아간다. 이 걸림돌을 쉽게 없애지않는다.사영리처럼 기독교의 걸림돌을 없애고 매우 편하게만들어버린다. 통과해야되는데 사람들이 안오니까. 복음을 너무 쉽게 만들었다. 세례없이 하나님백성은 아무도 될수없다. 구약의 홍수.홍해사건이 신화라구요? 아니요 홍수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한다. 신화라른것은 말이 안된다. 홍해사건이 꾸며낸사건아니다. 노아를위해서 꼭 일어나야할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하늘나라를 알기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한다. 그러면 세례가담고있는뜻이 무엇이길래 세례가 이렇게 중요하냐. 세례의 형식을 묻는것이 아닙니다. 세례의 형식을 놓고 싸우는 사람도 많다. 침례나. 뭐냐.. 그 의미가 너무중요한핵심이니까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라도 받기를 원합니다.
자~ 이 세례를 상세하게 정리한부분이 신약에서 어디입니까. 로마서6장이죠. 세례에 관한이야기입니다. 세례가 왜 그리중요하고 그뜻이 무엇인가. 왜 하나님은 홍수홍해사건.천재지변을 일으켜서까지. 노아식구8명을 위해서 세례를 베푸시는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왜 꼭이렇게 해야하는가.옛날구약에 노아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이사건을 일으키면서까지... 지금은 그보다 더 큰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우리로하여금 세례받게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게했습니다. 그거없으면안되니까 기어이 그렇게 만들었어요..자
로마서6장의 배경은 이런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하려고 죄에거하겠느뇨. 여기에대한 바울의 반박이다. 사도바울의 복음을 듣고. 유대인들이 반박하기도하고. 아멘은 하는데 오해해서 아멘합니다.고의적으로 반박하는사람도 있다. 이사람들은 바울의 복음때문에 죄에서 돌아서는게아니라 복음을 빌미로 자기죄를 합리화하고 자기죄에 안주하고 싶어한다. 오히려 그 죄를 십자가 복음안에서 즐겨한다. 안그래도 이사람들은 죄를 버리기싫어한다. 죄를 안고 살고싶어한다. 그런데 이 은혜의 복음이 부딪히는 순간. 그 죄를 오히려 더 당연시하고 이 은혜의 복음을 오해하면 이 은혜의 복음은 정말 내 구미에 딱 맞는겁니다. 아 죄와 상관없이 우리는 어자피죄인이니까 죄를 파묻어놓은채... 죄를 지을수록 은혜가 드러난다는거죠. 인간은 어떡게하든지 죄안에 안주하고싶은데. 바울의 복음이 맞아떨어진겁니다. 공짜로 십자가의 피로만 간다는 겁니다. 죄에 대한 회개는 생각조차 안한다.
바울이 거기에 대해 입을 막기 위해 로마서 6장을 쓴다. 복음은 분명히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충분히 그런 오해가 마땅할정도로 복음에는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그게 복음은 아니다.복음의 왜곡이다. 그런 왜곡을 입을 막기위해 롬6장에서 당신은 예수와함게 세례라는 문을 통과했지않느냐. 세례 또는 십자가라는 문을 통과했다면 제대로안다면 자기죄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죄에 안주하는일이 절대로 있을수 없다는 겁니다. 세례받았으면 그런소리할수가 없다. 세례받은사람은 죄를 합리화하기보다는 의와 새생명쪽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이게 세례받은 사람이다.
십자가를 아는사람들은 절대 자기죄를 합리화하지않느다. 죄에 대해 슬퍼하고 가슴치고 탄식한다. 그러면서 새생명으로 나아가는것이다. 2절에보면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가운데 더 살리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세례란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 3절에 그 사실을 알지못하느뇨. 첨부터 입을 막아버린다. 1-4절에 예수와 합하여 세례받았다는 것은 죄의 세력에서 끊어졌다. 죄와 상관이없다. 골로새서. 사랑의 나라로 옮겨졌다. 이제는 새로운 권세.생명안으로 들어섰다는 겁니다. 이게없으면 논리적인 장난이다.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권세가왔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새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세례는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죄의 세력에서 끊어지고 부활과함게 새생명가운데 행하게 하려함. 근데 어찌 세례를 아는 너희가 여전히 죄의 세력안에서 안주. 합리화하면서 십자가안다고 하느냐. 새생명가운데 행하는 구체적인 내용.의의 병기로 너희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라. 영생이 뭡니까. 새생명. 새로운 삶이에요. 새생명가운데 행하게 함이라. 이것이 로마서 6장의 결론이다.
죄의 권세아래있는 우리를 죽이고 우리로하여금 새생명가운데 십자가를 살아내게하는것이 새생명이다. 그러니까 기독교라는 것이 걸림돌없이 들어오면 예수님의 피가 발리기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는 그대로 있는 채. 피가 묻어만 있다. 이게 십자가가 아니다. 기독교인은 피가 몸속에 들어와서 그피가 생명이되고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이다. 피가 내생명이되어서 나는 죽고 십자가가 내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피가 발리기만했으면 얼마나 편할까요 .그런식으로 교회가 성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무섭고 날카롭게 구분합니다. 피가너희속에서 역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유턴했다ㅎㅎ 그런이야기를 듣는데. 제가 유턴했다면 어디서어디로 유턴했는가. 제가 십자가를 약화시키는가 십자가에행위를 더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몸보다는 성우교회라는 담장을 쌓는가. 생각조차안했습니다. 아니면 제가 교회성장을 꿈꾸는가. 그건 여러분이 아실겁니다.
제가 이야기하는것은 십자가가 발린사람이 아니고 십자가가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피속에 빠졌다나왔다하더라도 결국 자기에요. 십자가는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합니다.
믿음은 행함입니다. 죄아래계속거하면서 십자가안다는 것은 있을수없다. 전에도이런이야기는했다. 참죄송스럽게도 매우불분명했다. 지금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참다행이도 제가 불분명하게나마이야기한것이 여러분에게 득이 되었습니다.
확실한건 모든 사도들.어딜보더라도 십자가라는 것이 우리속에서 새생명이안되면. 우리가 하나가되지않는다. 언제 갈려도 갈릴수밖에 없다. 시간이 문제죠. 어떤 사건이 문제죠. 자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세례는 기독교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피와함께 내가 죽고 새생명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제가 실제로 성경읽으면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계시록 21장 8절에 하나님나라에 누가 못들어가는가. 예수 안 믿으면, 십자가를 안믿으면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투기하는 자들과 음행하는자들.....” 현저하게 이것은 현저하게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난다는것이 신약의 거부할수없는 메세지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여러분 십자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저와같이 유턴하고 이것이 십자가구나 새생명이구나 아시고저와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든지 저희 속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살리시고 저희들 우리들 속에 하나님 나라가 역사하게 하시고 저희들이 마지막날에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요
성재필(IP:118.♡.159.155)
10-01-25 21:43
한층 업그레이드 되고 논리가 갖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살리기위한 주님의 십자가가 새생명으로 믿는자에게 역사한다고 주장합니다. 달콤한 주장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동의하고 싶네요 ㅎㅎ
이근호(IP:117.♡.136.28)
10-01-26 10:12
십자가는 구원용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희생과 공로를 성도를 통해서 온 우주에 '주의 이름'의 성과를 드러내는 식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은 날마다 법적인 요소가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데 바로 그 정신이 악이며 이것이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아 늘 발각됩니다. 즉 예수님의 공로에 의한 의로움보다 자신이 얼마나 의로워질 수 있는 자인지를 기대하는 그런 법적인 자아상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런 육적인 정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던 바리새인적인 의식입니다. 피가 우리 안에 역사하면 우리는 매일같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를 고백할 뿐입니다. 바로 이런 관계가 성령에 임해야만 나오는 '율법 외의 한 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다."(시 51:16) 그리고 노아 홍수의 물은 성령의 세례와는 달리, 그냥 '표'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릴 수 있는' 능력을 함유하고 있지 않습니다.(벧전 3:21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표'란 성령의 세례를 보여주는 '표'인데, 성령의 세례란 성도로 하여금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리심에 참여시켜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성령 안에서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는 그동안 자신이 기준점이 되었던 모든 것은 박탈당하고, 십자가 질 수 없었던 자신의 모든 행함이 역시 의미없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시선이 예수님의 공로에 가 있지 아니하여 예수님의 성과를 증거할 수 없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할 수없습니다.
강구만(IP:118.♡.241.242)
10-01-26 11:13
성도,자녀라는 말은 나'에게서 출밣함이 아니라, 값없이,나에게는 이유없이 발생된 주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그리고 그관계성은 주체가 끝까지 주님께 있음을 즉 이미 완료되고 완전함과함께 자신의 저주받아 마땅함의 책망이 따르게 되어있고(그러한 사건으로 이끄시는 은혜는 죽는날까지 계속 됩니다.)) 오직 주님의 공로만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생명으로 옮겨진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아니 영원토록 주님의 행하심과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 '주님의 것'이된 사람 입니다.어떤 설교자도 주님이 주시지 않으면,즉 주의 관리가 없으면 사람의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사람에게서 배운것은 한계가 오게 마련이지요. 복음은 이땅의 것도아니요 사람에게서 나올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사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걸려 넘어 질만한 것에 넘어 졌네요.18년 전에 이분이 저앞에서 한 약속을 저는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하다가 주님이 그만두라 하시면 배운 도배기술로 먹고 살면 된다" 지금이 그 약속을 지킬때 입니다
김풍호(IP:203.♡.147.32)
10-01-26 13:29
십자가신학을 거치신분들의 공통점이군요... 결국, 행함으로 회귀하는 것은....
제가 몇달전에 처음 십자가 신학을 접했을때의 생각을 유턴해서 느끼시고 계시네요...
그러니까..저분께서는 은혜를 더하려고 죄를 더 짓는것으로 "십자가의 피"를 받아들였다가
이제는 깨우쳤다는 것이군요....
사도가 염려를 하는 부분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중간하이 걸쳐있는 것보다는 저편이 보는 사람도 편하고, 본인도 편하지 않을까요...
김풍호(IP:203.♡.147.32)
10-01-26 13:37
한국교회에서 칼빈이 무섭긴 한가봅니다.
강구만(IP:118.♡.241.242)
10-01-26 13:48
인간은 죄조차 지을수 있는 존재가 못됩니다. 죄에 갇혀있을 뿐입니다. 죄를 지을 수있다 생각하는게 문젭니다.행위가 아닌 영역의 문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