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08(2) 서울강의 녹취 빌립보서 11강
100108(2) 서울강의 녹취 빌립보서 11강
이름 : 김창길(IP:210.2.63.219)
100108(2) 서울강의 녹취 빌립보서 11강
서울100108 빌 2장 8절b "나 같은 죄인 보다 더 죄인 되신 예수님"
지난 시간에 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 하고, 그냥 우리가 하나님 믿는 거 하고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주님(예수님)이 들어와 버리면 우리가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들어올 때면 박탈하죠, “우리가 이 말씀 지키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뺏어 가죠. 그래서 진짜 예수님이 찾아와서 예수 믿게 되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내가 했다 하는 것을 다 던져 버려요.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예수님이 살아 있다는 것, 예수님이 은혜 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간에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를 건져 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구태여 힘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나는 이 힘으로 내가 자립 하겠다. 힘을 가질 필요가 없고 힘을 쭉 빼고 살아가도 괜찮아요. 저는 여성분을 볼 때 가장 여성다운 모습을 볼 때가 언제냐 하면 찜질방에서 양머리하고 땀 쭉 뺄 때 가장 여성다워요. 왜? 화장을 안했으니까, 저는 가장 여성답지 않을 때가 언제냐 하면 화장했을 때, 화장을 할 때는 화장 모델을 항상 염두 해 두고 하잖아요. 그건 본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에요. 화장품 선전할 때 그 모델의 대용이지 본인이 아니에요. 엉뚱한 사람으로 변신되고 있어요. 눈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해 가지고 언제부터 그렇게 얻어맞았습니까?(하하) 특히 눈 같은데 퍼렇게 되가지고 멍이 눈물하고 같이 씻겨 져 내려오데요. 자기 자신이 아니에요. 자기 자신이 아닌데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화장발로 감춘다는 것은 결국은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힘만 빼면 본인인데, 힘 뺀 본인은 보기 싫고 내가 어느 정도 힘을 채울 수 있는가를 가상적임 힘, 가상적인 나, 나보다 더 위대한 나, 큰 나, 대두, 머리 큰 나, 지금보다 더 큰 나……. 없는데 자꾸 이것을 자기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나가 아니라는 거예요. “날 무시하지 마라. 나는 10년 후에 난 여기 있다.” 왜 10년 후를 거론 합니까? “날 무시하지 마, 난 10년 후에 위대한 사람이 돼 있을 거야” “그 때 가서 보자” “지금의 너는 이거야.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의 네가 이거다.” 왜 사람이 자꾸 자기를 속이는지 몰라요. 바람이 들어서 그래요.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이 들어서 그래요. 이 바람을 빼야 합니다. 풍선을 빼야 해요.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때 자기가 되고 싶은 멋있는 그런 예수를 자꾸 예수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가짜 예수예요. 예수님은 누구를 닮았냐 하면 나를 닮았어요. 우리 죄인을 닮았다고요. 예수님은 예수님을 안 닮았어요. 예수는 누구를 안 닮았다? 예수를 안 닮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멋있는 예수님을 안 닮았어요. 예수님은 누구를 닮았는가? 예수님 되고 싶어 하는 위선적인 우리, 더러운 우리 모습을 닮았어요. 예수님은 아담을 닮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닮고자 하는 아담을 그냥 갖고 있으면 되는데 이것을 구겨서 아주 아름다운 예수, 멋있는 예수, 착한 예수, 힘찬 예수, 키가 180cm 넘고 하지장이 긴 예수, 비담이었습니다. 김남길……. 비담 예수, 김태희 예수, 어떤 뚱뚱한 여자가 자기가 김태희처럼 예쁘고 싶다. 예수님이여, 나는 김태희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너는 김태희 말고 나 예수를 닮아야 돼” “그렇다면 예수를 닮게 해 주세요.” “뚱뚱한 네가 바로 예수다” 주님은 방향을 틀어서 우리 쪽으로 오는데 우리는 방향을 틀어서 현재의 나가 아닌 그분, 아무튼 나는 무조건 안 돼, 지금의 나는 안 돼, 너보다 더 괜찮은 나, 방향이 바뀌었어요. 방향이 지금 어긋났어요. 둘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만날 수 가 없어요.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나 그것을 포기하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복종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죄인이 되려고 왔는데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서 떠나서 신이 되려고 “싫어 싫어, 나는 고생 덜 하는 신이 될 거야” 신처럼 꿈속에서 날아다니는 거예요. 아까 할렐루야 산처럼 날아다니는 괴상한 괴물 타고 아바타 영화 보면 나오는데 괴물 전용기 타고 날아 다녀요. 에어포스원 타고 돌아다니며 영웅 되는 거 나와요. 영화를 봤어야 알지……. 그거 타고 다닙니다. 그게 꿈이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있는 곳에 그냥 머물러 있어라 내가 찾아갈게” 이 말입니다. 죄인 아닌 척 하지 말고……. 여러분에게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삭게오가 예수님을 영접했지요? 삭게오가 영접하고 키가 몇 센티 자랐습니까? 안 자랐지요. 키 작은 삭게오 나무에 올라갔는데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에 키가 커서 나무에 안 올라갔던 삭게오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는 삭게오는 키가 더 작아졌습니다. 왜? 늙어 가니까, 키가 더 작아지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고 싶은 것은 왜 우리가 죄인의 괴수며 지금 죽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전체가 완벽하게 새까만 한 구공탄, 시커먼 연탄보다 더 시꺼먼 죄인인가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너도 내가 너를 보는 것처럼 너도 너 자신을 보기를 원하고 있어요. 여기 오늘 보니까 시커먼 옷을 입고 있는데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하얀 옷을 입고 있어서 좀 거슬리기는 한데 까만색에 까만 옷에 까만 머리, 여기에 까만 연탄 가루까지 발랐으면 새까맣겠는데……. 주께서는 전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새까만 죄인임을 주님이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을 우리도 발견되길 원하시는 거예요. 거울을 보면서 그것이 발견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자꾸 백설 공주 버릇이 들어서 안 보이는데 그 거울 자리에 십자가를 세우는 거예요. 십자가의 흘려진 피를 통해서 아, 저 저주는 내가 받아야 할 저주라는 것을 동감,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해요. 바로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은 누구를 만났다? 바로 나보다 더 나 같은 당신, 누구입니까? 주님 아닙니까! 내가 미처 모르는 나를 나보다 더 정확히 아시는 그분을 만난 거예요.
그래서 그분을 만나게 되면 그분의 가는 코스 그분이 갔던 인생의 코스가 바로 나의 코스가 되는 겁니다. 저분이 가셨던 천국이 나의 천국이에요. 저분이 지셨던 십자가 내가 질 십자가예요. 그분이 진 십자가가 곧 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이고 그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고 사나 죽으나 우리는 그의 것이고 그분을 증거 하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그렇다면 나보다 나 같은 나, 죄인의 모습인데 이런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내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뭐냐 하면 폴짝 폴짝 뛰는 거예요. 인간에서 저 수상쩍은 신에 멋있는 선의 나라, 천국의 나라 이것을 접근해 가는데 비해서 하나님은 허망한 꿈을 꾸고 있는 우리의 자리에 직접 뛰어 들어왔어요. 그 뛰어 들어온 모습이 바로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인간은 못 봤다. 가장 저주 받을 모습을 하시고 우리 속에 뛰어 들어오니까 우리는 기겁을 해서, 그것이 우리의 자신의 모습인데 우리는 뭐라 하느냐 “나가시오, 나가시오. 나는 그런 주님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 괴물아 나가라, 귀신아 나가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요한복음 강의를 해야 되는데 요한복음 강의를 앞에 두고 또 서울 가서 강의 하느냐 하지만 제가 이렇게 얘기 했어요. 그분들이 요한복음 강의를 참석할 것 같으면 안가도 되는데 대부분이 못 온다. 요한복음 하나 마나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몇 장 봅시다. 요한복음 9장 24절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 인줄 아노라”보세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뭐라 했습니까? 예수님을 단정했죠. 저 사람은 뭐다? 죄인이다. 저 사람은 죄인이다. 2월 27일에 개혁 신학회를 서울에서 하는데 제가 거기서 논문을 발표하게 예정 되어 있습니다. 논문을 내라고 해서 제출을 했는데, 소위 목사님들이 신학을 하는데 신학의 연구, 그것을 주께서 하라 했습니까? 주께서 복음 전하라 했지요. 칼빈 신학, 바르데 신학, 개혁 신학,루터 신학……. 그거 연구 하라 했습니까? 무엇을 하라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뭐예요?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개혁 신학회 논문 하면서 복음을 전할 참이에요. 복음을 전하려면 개혁 신학이라는 것 속에 뭐가 들어가야 합니까? 모든 신학 속에 예수님은 누가 봐도 뭐다? 여기 본문대로 예수님은 죄인이다 누가 봐도 예수님을 그렇게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출발점이 뭐냐 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을 죄인이라 단정할 수밖에 없는 왜 뭐가 문제가 되어서 구원하려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을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해요. 교회 5천명 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사람들이 교회 오잖아요. 만약 거기서 설교한다면 당신들은 교회 올 때 원하는 것, 당신들이 원하는 것, 공부 잘하는 것 병을 낫게 한다든지, 부자 되게 하는 것…….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 전능하신 분인데 이런 것 기도하면 어떠냐! 라고 하겠지만 당신들이 그런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은 아무 쓸모도 없는 진짜 예수는 죄인이고 좋은 예수님은 돈 벌어 주는 예수님, 공부 잘 하게 해주는 예수님, 교회 부흥시켜 주는 예수님……. 이런 예수를 찾겠다는 말은 곧 진짜 예수는 지금 와도 당신들 앞에 죄인 중에 괴수라고 당신들에게 배척당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증거하려고 해요. 소위 신학 하시는 여러분, 신학 교수님들……. 당신이 예수님을 지금 버리고 있다.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다. 당신들이 원하는 예수는 똑똑한 예수, 지혜로운 예수…….그것을 원하죠. 진짜 예수님은 그런 당신들 때문에 죄인 취급받는 당신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 한구석에 갖다 버린 그쪽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진짜 예수님을 안다면 나는 신학 교수니, 박사니 하지 않고 “나는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나는 주님과 같이 이 땅에서 죄인 되어도 마땅합니다. 주님이 죄인이란 소리를 들었으면 저도 같이 소리 들어야 됩니다.” 라는 그 고백만 쏟아 내는 사람이 진짜 예수님 만난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 할 겁니다. 그런데 해 봐야 압니다. 또 사람들이 많으니까 겁이 들어 가지고 쏙 들어갈 수 도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그렇게 예수님을 외칩니다. 성경에 분명히 나왔습니다. 요한복음의 핵심인데, 어디서 왔느냐 하고 이것이 핵심인데, 그 똑똑한 사람들은 진짜 예수님을 만날 때 너는 죄인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우리라고 별거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안 봤으니까 추상적인 예수를 그리고 있지 진짜 막상 등장하면 “어이구 당신은 나를 죄인이라고 들추어내려 왔군요. 난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습니다. 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정리해 줄 그런 하나님이 필요하지 당신 같은 메시야는 필요 없어요. 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얼마나 잘난 존재이며 얼마나 교회 충성했으며 내가 얼마나 선교, 전도, 봉사하고 강의한다고 쫓아다닌다고 고생했는지 그것을 알아주는 그런 예수를 원했지 “너는 백날 해봐야 나 없으면 죽어”라고 그렇게 죄인이라고 취급 해주는 그런 예수를 우리는 과연 원할까요? 원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거듭난 사람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요한복음9장 마지막에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죠. 본다고 하니까 소경이고 네가 소경이라고 하니까 네가 보는구나! 소경된 자가 이런 소리 한마디 해요. 뭐라 했냐 하면 나는 당신들이 시장에선 도통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그분이 나보고 뭔가 지시를 했다는 거예요 그분이……. 당신은 그분을 죄인이라고 하던지 간에 나에게는 그분은 나를 건져낸 구세주다. 나는 그분을 포기 못하겠다. 왜? 나를 건져주셨으니까……. 그렇다면 그 소경은 왜 구원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소경되었을 뿐이지 자기가 되겠다! 하는 사전 포섭이나 공략이 없어요. 다시 한 번 두 번째 시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미처 모르는 나의 정체를 유일하게 아셔서 내가 감추고 싶은 그것을 까발리면서 우리에게 쳐들어와서 내가 하지 못하는 죄 사함을 그분이 나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몽땅 내 죄를 이미 처리 해 버리고 만 분, 그분,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뭐라고 보냐 하면 구약에서 말씀한 언약대로 일하신, 그분은 주의 이름, 바로 주님입니다. 구약에서 약속한 그분 맞지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를 위하여 어린양을 받치라고 지시했던 그 주님이 그 주님 맞지요? 이제는 그 때는 양이 이름을 대체해서 이름은 아까 “판석아” 부를 때,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는데 판석이가 나타나는 증후가 보이는데 그것이 뭐냐, 판석이 앞에 갔던 개구리 뛰어나오고 판석이 앞에 갔던 토끼도 후다닥 도망가고, 판석이 앞에 갔던 비둘기가 파드닥 날아가는 것을 볼 때, “아, 저기쯤 판석이가 가는 구나”를 아는 것처럼 구약에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징조가 뭐냐 하면 어린양 잡고 성전하고 여러 가지의 눈먼 삼손이 희생하고 예레미야가 고생하고 요나가 물에 빠지고 이 모든 것, 이사야에 처녀가 애 낳는 것, 다니엘에 보면 바다의 짐승 땅에 올라오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판석이가 올라오는 증후, 판석이가 발걸음 부스럭 거리니까 앞에 있던 뱀이 도망가고 비둘기 날아가고 하니까 오긴 뭐가 오나 보다 저 먼지 나는 것 봐라 다 아는 것처럼 메시아가 오는 증조를 구약에서 보여줬어요. 그것을 언약이라 해요. 그 마지막에는 판석이 앞에 판석이를 증거하는 판석이 시다 발이, 그분이 누구냐? 세례요한 이예요, “물러가라 물러가라 우리 주님이 오신다” 이게 바로 구약의 선지자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너 뭐하는 인간이야”“나를 보지 말고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봐라” “너 뒤에 누가 오는데?”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 보다 먼저 계신 분이야”“네가 완전히 미쳤구나!”“그래 나 미쳐도 좋다” 이처럼 세례요한이 오실 예수님을 물러가라 하고 증거한다는 것은 이미 심판주가 왔다는 것을 증거하는 거예요. 직업 나이 성별 남녀노소 관계하지 않고 주께서 일방적으로 주되심으로 건져주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좀 더 깊이 있게 나가 봅시다.
예수님이 올 때 어떤 계통으로 오느냐? 두 가지 계통으로 와요. 여러분 스키가 몇 쪽이죠? 두 쪽이죠. 예수님이 스키 타고 스키장에 내려온다고 볼 때, 한쪽 날은 율법이고 또 한쪽 날은 은혜라는 스키를 타고 내려옵니다. 이것이 로마서 4장에 나옵니다. 율법과 은혜를 예수님께서 타고 오실 때 같이 내려옵니다. 같이 내려오는 이유는 오실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자 역할이 한쪽 스키이고 한쪽은 심판주가 됩니다. 한마디로 무서운 분(공의)이고 한쪽은 자비로운 분, 은혜로운 분(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라는 두 날을 가지고 타고 내려옵니다. 쭉 내려오는데 하나님이 율법에 의해서 율법대로 하지 않을 때 얼마나 큰 저주와 재앙이 내려온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로마서 4장 14절을 봅시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은 모든 이름으로 예수님이 주되심이죠. 그러면 모든 이름이라 했으니까 여기 지옥 가는 사람도 예수님을 주라고 부릅니까? 지옥 가는 사람들도 지옥 가서 예수님을 주되심을 아는 거예요. 천국 가는 사람들도 천국 가서 예수님을 주되심을 압니다. 아는데 여기에 보면 율법에 속한 사람들도 주께서 몰고 오시는 거예요. 율법에 속한 사람이 뭐냐 하면 법을 지켜서 구원받겠다는 사람 들이예요. 여러분 에덴동산 중앙 나무가 몇 개 있지요? 두 개가 있지요. 하나는 선악과, 하나는 생명나무입니다. 이 선악과나무를 다 먹으면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법이 됩니다. 그런 생각은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 결과로 인간이 죽은 게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아야 하는 게 인간입니다. 따먹지 말아야 하는 게 정답인데 인간은 따먹고 난 뒤에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이 말을 이해하라고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원인과 결과를 자기로부터 시작에서 자기로부터 원인, 자기로부터 결과를 자기 안에 딱 안에 깔아 놔요. 이게 법이예요. “아, 안 그랬으면 되는데…….” 이렇게 깔아 놔요. 자기 밖을 안 봐요. 뭐 때문에 선악과가 있는지 모르고 후회만 해요. “아, 따먹지 말아야 하는데 그거 괜히 따먹었다.” 후회만 하고 선악과가 왜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거기까지 볼 줄을 몰라요. 마치 집에 엄마가 제사 지내려고 떡을 해 놨는데 “떡을 먹지마, 떡 먹으면 맞는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도 모르고 떡이 무엇에 필요한지 모르고 애는 집에 와서 배가 고프니까 떡을 먹었어요. 그래서 맞았어요. 맞았아요. 그래서 그 애가 하는 말이 “아 안 먹었으면 맞지 안는건데”이것만 생각한다 이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그 떡이 조상한테 바칠 제사떡인지 모르고 자기만 생각하는 거예요. “안 먹었으면 안 맞았을 텐데” 만날 원인 결과를 자기 안에서만 적용하려고 애쓰는 거예요. 주님 보시기에는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게 선악과 따 먹은 결과예요. 어이구 어이구 이게 잘못 된 거예요. 그래서 하는 말이 “목사님 성경에 보니까 선악과 따먹어서 고생한다? 목사님 그럼 한 가지 물어봅시다. 이렇게 고생할 것을 알면서 나무는 왜 주셨습니까? 하나님도 무심하시지…….왜 따먹게 해 가지 나 하나님 미워 미워”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선악과 따먹은 후유증, 병든 증세입니다.
여러분 선악과라는 것은 생명나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자비로운 생명이 인간의 선악과를 따먹는 행함보다도 더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간의 율법적인 요소와 행위 요소를 에덴동산에 깔아 놓고 이 두 가지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인간을 심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기 사정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너를 만드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형상의 내막을 알리기 위해서 인간을 만든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이 먼저 있고 인간이 나중에 있는 겁니다. 이것을 이번 논문에 썼어요. 인간의 주체가 인간의 창조보다 먼저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주체는 뭔가? 에베소서 1장 4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인간을 예수 안에서 선택했다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선택을 맞추기 위해서 그 인간을 다음에 맞춤 인간을 창조한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나 여기 있다. 나 구원해라. 나 힘들어 못살겠다. 태어나고 늙고 죽고 이 모든 것이 고생스럽다. 고생 덜 하는 곳으로 보내 줘, 예수를 보내던지……. 누구 좀 보내 줘 내가 예수 오면 예수 믿고, 부처 오면 부처 믿을게” 이게 뭔가 하면 자기 내부적인 사정 이예요. 여전히 자기 내부 사정에 매여 있는 거예요. 오늘 강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과 인간이 있는데 예수님이 왜 끼어들었습니까? 그냥 하나님 영광 하면 안 됩니까? 안됩니다. 왜? 오늘 본문에 보세요. 분명히 예수님을 주로 시인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할 경우에만 영광이 돼요. 그러니까 다 같이 고백을 해도 지옥 갈 사람은 주가 영광이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영광이 돼요. 예수를 통해서 예수님의 공로로……. 그것이 인간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본 목적인데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영광을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죽어 마땅함을 보여줄 율법적인 예수님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일점일획이라도 우리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제가 안산 강의에서 법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사람이 오기가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한 대로 다 지켜요. 다 지킴으로 말미암아 어떤 심리가 작용하느냐 하면 하나님 주신 법대로 다 지킴으로 말미암아 법을 주신 분을 모독하고 조롱하기 위해서 법을 지켜요. 이상하죠. 법을 다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얘, 너 바지 걷어 너는 맞아야 돼 어디 담배를 피워, 회초리 맞아” 애가 아프다고 하면 선생님이 덜 때리는데 “아프나?” “안 아픕니다.” “더 맞아야 해 아프냐?” “안 아픕니다.” “그래 더 맞아야 해” 이게 버티면 더 맞는 거예요. 네가 아픈지 내가 때리는 것을 멈추던지 둘 중에 누가 이기는지 한번 보자……. 선생님이 계속 때려요. 그래서 선생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손바닥 내” 할 때 손바닥 조금만 내려도 아파야 해요. 선생님이 때릴 수가 없어요. 때리지도 않았는데 “아~야야~~” 하면 선생님께서 미안스러워서 못 때리고 살짝 때리고 그만 끝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할 때 그 모든 것에서 아주 아프다고 고함을 질러야 돼요. 비록 우리 죄 때문에 힘든 더러운 세상에서 고생스럽게 살아가지만 이런 고생하면서 엄살을 있는 대로 부리세요. 버티지 마시고 엄살 부려서 “나는 죄인 맞습니다.” 라는 것을 동네방네 다 광고를 하고 다녀야 해요. 내가 이렇게 지지리 못사는 것도 다 내 죄 때문이라는 것을 광고 하세요. 나는 한 달 수입이 1,500만원, 일 년에 2억도 안 되는 것 다 내 죄 때문에 그렇다고 광고하세요. 아파트 150평 좁은 아파트 산다고 고생 한다고 광고하세요. 이 땅에 산다는 것 자체가 고생이에요. 삼성그룹 같은 경우 100조 매출에다가 순이익 10조 밖에 안 된다고 광고하세요. 이렇게 고생한다고 광고하란 말이죠. 사람은 엄살을 피울 필요가 있어요. 죽겠다고 고함지르세요. 죽겠다고 고함지를 때마다 현재 있는 것도 은혜로 보이는 겁니다. 로마서 4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율법에 속한 자들은 절대로 이 은혜에 속할 수가 없어요. 그 노선에 갈 수가 없어요. 왜냐, 스키가 주님 발에 양쪽에 있는데 이쪽 스키가 이쪽 스키로 겹치지 않고 따로 갑니다. 눈밭에 스키 자국이 평행선으로 나란히 갑니다. 지옥과 천국이 그대로 가요. 율법에 속한 자들은 항상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면 자기의 행함을 생각한다는 것이 로마서 4장 이야기입니다. 너희들은 행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지 마라. 왜? 행함이라는 하는 것은 매 맞게 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행함에 마중 나오는 것은 율법이 마중 나옵니다. “주님이여 행했습니다.” “한번 보자, 시험 잘 쳤나 보자, 이거 틀렸잖아, 이것도 틀렸잖아, 이것도 안 맞잖아, 빵점, 맞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이쪽 믿는 자는 “주여, 저 빵점입니다” “그래 잘 아네, 구원받아, 합격” 이쪽은 그냥 빵점입니다. 하니까 합격이고 저쪽은 50점 맞고 불합격 되는 거예요. 100점 아니라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이것을 가지고 로마서 4장에는 무엇으로 보냐 하면 은혜에 속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되나니……. 로마서4장 15절 율법이 없는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데 율법이 있는 사람은 율법으로 살고 율법 없는 사람은 율법 없이 사는데 율법 없이 사는 사람은 뭐냐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는 겁니다. 은혜가 다시 말해 선물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믿는 구석이 있어요. 선물을 믿는 게 아니에요. 이 선물을 주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제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는데, 쉽게 다시 말해서 선악과나무는 선악과 따먹고 난 다음에 인간은 선악과는 원인과 결과,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복을 받고 이런 행동을 안 하면 저주 받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행동이 원인이 되고 그 결과로 구원 받는다는 거예요. 이것이 잘못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인간으로 건드리게 하므로 말미암아 무엇을 빼돌렸느냐? 생명나무를 보호했어요. 그렇다면 생명은 선악과가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다? 없다? 선악과 따먹은 사람에게는 그 근처에 뭐가 없습니까? 생명나무가 없기 때문에 생명이 없어요.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못삽니다. 이미 그 사람은 죽어 가고 있는 거예요. 최선을 다하여 죽어 가고 있는 겁니다. 모든 인간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죽어 가고 있는 겁예요. 생명은 없습니다. 생명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생명은 은혜로 주는데 은혜로 주게 되면 은혜로 받은 사람의 특징은 이 생명을 믿게 되지요. 왜 믿느냐 하면 왜 행함이 아니냐 하면, 인간은 기껏 해 봐야 선악 안에서만 행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영어를 못하는데 미국 사람 만났는데 미국 사람과 이야기 해보세요. 하면 흉내 내는 거예요. “나~ 한쿡 살람~ 내 말 알아 듣겠어요?” 미국 사람이 “What?, What?"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그런데 최선을 다해 굴려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단 말 이예요?“ 꼭 제주도 사람이 서울말 하듯이 ……. 그런데 만약에 그 사람이 미국 시민권이 있다면 미국말 못하는데 미국 시민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미국 시민권 딴 것이 미국 말 잘해서 그랬습니까? 혀를 잘 굴려서 미국 시민권 땄습니까? 아니죠. 은혜로 왔죠. 은혜로 온 특징은 은혜로 왔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혀를 안 굴리지요. ”나 미국 사람이다“ 그냥 보통대로 살아도 미국 사람 아니라 할 사람 없습니다. 왜?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느냐? 빌립보서 2장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 지상에 생활 마음 놓고 하세요. 좀 굴리지 말고 천사 흉내 내지 마세요. 천사 흉내 내지 말고 하는 행세 그대로 하세요. 그 자체가 믿음이에요. 하는 행세 그대로 하는 것 가지고 믿음에 합당한 행위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에 경건치 않은 자들이 의롭다 함을 받고 일하지 않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되어 있어요. 불법을 가리운자가 복이 있나니 경건치 않는 자가 의로움을 여기심을 받는데 여기서는 경건하지 않는데 인간의 행동은 경건치 않는데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묻습니까? 안 묻습니까? 우리의 행위를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순재만 하는 게 아니고 주님도 안해요. 일체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그 보험회사에 전화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물어요. ”실례하지만 당신 이름이 뭡니까? 그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름도 안 물어요. 이미 익히 아니시니까 이름도 안 물어요. 우리 이름은 아담 안에 들어 있으니까 묻지도 않아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찾아와요. 찾아와서 우리로 하여금 너 대신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이야기만 남겨 놓고 떠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저는 꿈에 그런 게 없습니다.” 꿈이 아니고 이 성경 자체가 살아서 나오죠. 빌립보서 2장 자체가 하나님의 자리를 팽개치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그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라고 오게 되요. 어느 날 진지하게 다가와요. 꿈이 아니고 가짜가 아니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다가오게 될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신 거예요. 내가 빌립보서 2장의 그 십자가에 죽은 주님이라고 찾아오시는 겁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그동안 내가 자랑했던 행함을 다 던져 버려요. 그것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남보다 고생 많이 한 것, 남보다 헌금 많이 한 것 내세우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로 하여금 내 구원을 도움이 됐던 행함이 아예 나에게는 생길 수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지요. 내 구원에 도움 되는 나의 행함 아예 이런 것들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반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어떤 행동을 하면 구원에 도움 된다고 하지요. 어떤 사람은 “회개 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회개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한번 봅시다. 선악과 따먹은 다음에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의 골이 여기 있지요. 회개하라, 반성하라 하니까 사람은 어디를 찾아가느냐 하면 현재 자기의 어떤 결과 중에서 원인을 찾아내요. 찾아내서 이런 원인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나빴다. 이것을 찾아내요. 이것은 순 가짜지요. 원인과 결과는 뭡니까? 인간이 조작한 거예요. 자기가 지어낸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미리 행함을 믿지 말라는 게 회개예요.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것에 대해서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겁니다. 제가 지난주 주일 설교에서 제가 악마, 마귀를 봤다고 했는데 도박을 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때부터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않은 것이 해결이 되었어요. 사람은 왜 도박을 하는가? 왜 화투를 치는가? 처음에 10원짜리 할 때는 괜찮다가 10원짜리에서 100원짜리로 올라가면 왜 열기를 내는가? 사람이 도박을 하는 이유는 나는 뭔가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설교에서 뭐라 했습니까? 인간은 의미가 없어요. 인간은 의미가 없는 겁니다. 내가 스스로 찾아내는 의미는 주님의 십자가를 훼방하는 거예요. 아무 의미 없는 인간을 예수님이 찾아 주실 때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증인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국민 요정 김연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피겨를 잘 탄다……. 그래서? 나이 80넘어도 잘 탑니까? 잘 타는데 어떻다고? cf 많이 들어와서 cf로 50억 벌었다. 그래서? 돈 벌었다. 그래서? 어쨌단 말입니까? 50억이 중요합니까? 김연아 본인이 구원 받는 게 중요합니까? 선악과 갇혀 있는 채로 50억 100억 벌어 보세요. 매 순간 갇혀 있어 저주 받지요. 의미 있는 것은 생명나무가 와서 우리에게 생명을 줄 때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이 의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원 받은 사람은 의미가 없어요. 다만 구원 받은 사람 속에 있는 예수님만 의미가 있죠. 어차피 구원 받으나 안 받으나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어요. 다만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 우리한테 중요한 분입니다. 내가 중요하지 않고 예수님이 중요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이 서울 모임 끝나고 뭐 할 겁니까? 집에 가서 잘 겁니다. 자서 뭐 할 건데? 자면 아침에 또 일어날껀데 자기는 왜 자는데? 그 다음날 또 잘 건데……. 나중에 한 번 죽으면 영원히 죽으면 영원히 잘 건데……. 왜 사는데? 초등학교 학생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나요? “얘야 오늘 좋은 꿈 꿔야 한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찾아오실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텐데, 잠자서 뭐 할 건데? 아침에 또 일어날 건데……. 내일 학원 가야지 학원가서 뭐 할 건데……. 그렇게 살다가 빵꾸똥구 돼서 ……. 아무 의미 없이……. 예수님께서 원인을 나한테 찾지 말고 예수님한테 원인을 찾아서 예수님께서 생명나무가 잠을 자라 하니까 잠을 자고 예수님께서 깨라 하면 깨는 거예요. 지난밤에 제가 애를 먹었어요. 제 아내가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채널 한바퀴 다 돌렸다가 해도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낮에 커피를 두 잔씩 마셨으니 잠이 올 리가 있습니까? 제가 못 견디겠어요. 12시 넘어 공부하러 간다 하고 공부도 못하고 그래서 우유를 따뜻하게 해서 잡수세요. 우유를 따뜻하게 해서 마시고 잠을 잤습니다. 자, 원인 잠잔 이유가 우유 따듯, 우유 따뜻하게 먹으라 한 남편이 있어서……. 뭡니까? 그냥 예수님께서 잠이 오게 하신 거예요. 우유 따뜻한 거 아무 관계없습니다. 우유 따뜻하게 먹어도 새벽 3시까지 잠 안자는 사람 한두 명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잠을 주시는 도다. 라는 그 말이 맞는 거예요. 주께서 잠을 주면 심지어 운전을 하다가 졸수도 있어요. 주께서 잠자게 하면 어쩔 수 없어요. 졸음운전 하다가 깨는 것도 주께서 “깨” 라고 해서 깨는 겁니다. 한걸음 발걸음 세시는 분도 누구다? 주님께서 발걸음 세시고 참새도 주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너희에게 말하시는 것은 누구다? 네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하신다? 성령께서 네게 말하게 하신다. 말을 잘 못했다. 욕을 잘 못했다. 설교 본문을 잘 못했다. 그런 것 너무 탓하지 마세요. 목사가 그런 것 가지고 주눅 들지 마세요. 원인을 나한테 찾으면 안돼요. 왜? 주님께서 나한테 원인을 찾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찾지도 않는 원인을 우리는 왜 스스로 자기 행동에서 원인을 찾습니까? 내가 한 행동이 잘못돼서 저주를 받았다든지, 팔자가 더러운 것도 다 내 행동이 잘못됐다든지……. 안산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들이 남편 고를 때 새신랑 새신부 앞에 두고 이런 소리 하면 안 되지만, 따지고 따지고 이 남자, 저 남자보고 “그래 선택했어. 하고 돌아서서 “내가 눈이 삐었지, 저 남자 하는 건데…….아~ 바보, 내가 무슨 짓을 했어.” 이렇게 했어도 주께서 눈을 삐게 하신 겁니다. 눈 삐었다고 탓하지 마세요. 삔 눈 가지고도 천국 가게 되어 있어요. 잘못된 눈에 뭔가 씌운 눈 가지고도 아무 상관없이 예수님의 생명나무 가지고 구원 받게 되어 있어요. 그 생명나무가 그냥 생명나무가 아니고 우리 안에 죄인 속에 생명나무 되기 위해서 하늘나라 생명나무 포기 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안에 있는 생명나무 피게 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가져갈 때 그것이 바로 선악과로 망해 버린 우리를 생명으로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그 일을 할 경우에만 언약대로 할 경우에만 예수님을 나의 주시라고 하는 거예요. 끝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도마가 예수님 얼굴보고 예수님 믿은 게 아니에요. 예수님의 창 자국과 손에 못 자국 보고 하는 말이,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대신 언약대로 내가 치러야 될 저주를 대신 치르시는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나의 구약대로 하나님의 언약대로 온 메시야 뫘군요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성경 없이는 이런 이야기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성경을 덮어 버리면 그냥 상식적인 내 욕망의 하나님 이였지만, 성경을 펴 보니 십자가가 나오고 십자가 지신 주님이 나오고 그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사 우리가 죽어야 될 마땅한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니 이 모든 은혜가 구원받아야 될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주신 줄 믿습니다. 이런 은혜를 믿어야 되고 우리 행함을 자랑하지 않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첨부파일 : 서울100108빌2장8절b.hwp (96.0K), Down:17
이미아(IP:119.♡.121.148)
10-01-24 10:00
갑자기 광고가 나와서 깜놀!ㅎㅎㅎ 확실하게 기억시켜 주시네여^&*수고하셨습니다.
송재원(IP:119.♡.121.148)
10-01-27 01:01
주유일 하다가 펑크내는 것도 주께서 하게 하신 것이고.. 피곤에 쩔게 하시 것도 주께서 하게 하신 것이고.. 모든 것이 주께서 하게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