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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2010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9강자유게시판요한복음

[녹취]2010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9강

이름 : 서경수(IP:116.37.101.7)

2010겨울수련회(요한복음) 9강

요한복음 17장 23-24절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서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인간들이 어둠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찾으면, 나를 기점으로 해서(나를 빼놓지 않고) ‘나를 위한 하나님,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 이렇게 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기도에 보면 내가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중심이에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그러니까 예수님은 누구와 함께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 세계에 합류할 수 있는 그 누구. 이건 누군지 몰라요. ‘제 기도에 응답하사 이 사람들을 아버지와 나 있는 곳에 합류하게 하옵소서.’ 여기에 ‘교회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런 것은 없어요. 왜? 교회 부흥은 내 중심이잖아요. 내가 다니는 교회 부흥하는 것은 내 중심입니다.

‘나(예수님) 중심의 세계에 합류하게 해 주옵소서.’ 라는 기도를 했잖아요. 그러면 이 기도를 누가 그대로 인수받습니까? 성령께서 인수 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님 하신 말씀 그대로 일하시거든요. 그러면 예수님 소원이 누구 소원 됩니까? 성령 소원이 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소원에 개입되겠지요.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과 아버지의 세계에 저도 들어가게 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겠지요.

제 강의 끝나고 나면 늘 하는 소리가 ‘목사님 강의 듣고 나니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는데, 지금 예수님 하시는 기도가 이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세계에 우리도 하나가 되어서, 이제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핵심입니다.

여기에는 교회 부흥하게 해 달라든가 그런 내용은 전혀 없어요. 그런 것은 전부 내 중심의 사고입니다. 내가 여기 있고, 내가 교회 다니니까 내 교회 부흥하게 해 달라. 또는 내가 목사니까 내가 설교하는 교회 잘 되게 해 달라. 이것은 전부 나 중심인데, 이런 세계는 내가 우선이라면, 진짜 성경의 세계는 예수님 우선입니다.

이 세계를 여러분들이 얼마나 기대를 했고, 이 세계가 좋아졌습니까? 내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중심인데도 좋아집니까? 내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중심인 것이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졌습니까? 안 좋아졌다고요? 예수님이 오시면 바로 이 나의 세계를 버리고 예수님 세계에 합류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진짜 성령과 유사 성령은 어떻게 다릅니까? 진짜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는데, 가짜 성령은 나의 세계로 돌아오게 합니다. 바로 이 차이입니다. 성령 받아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전부 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16장 26-27절에 보면,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사랑, 아버지의 사랑을 저는 ‘새 계명’이라고 보는데,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이 새 언약을 통해서,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묻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뭡니까?’ 사랑의 반대말은 ‘법’입니다. 율법. 사랑은 베푸는 것이고 율법은 행하는 것이죠. 그러면 창세전에 예정하셔서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은 그 사람이 법을 지켜서 예수님의 세계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예수님의 사랑 덕분에 합류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것 하나 아시면 이번 수련회에서 건질 것은 다 건진 겁니다.

법이 아니고 사랑으로 옵니다. 그래서 여기에 합류된 사람의 특징은 뭘 생각 안 합니까? ‘내가 어떤 법을 지켰다.’는 것을 생각 안하게 됩니다. 그저 웬 사랑인지 주님께서 십자가 진 그 사랑이 그대로 나에게 임해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과 하나님께 합류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랑이 바로 진짜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불러 모았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단체(십자가마을 등)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겠지요. 십자가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십자가마을 부숴야 해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아도 그것은 한 몸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법’을 빼고 ‘주님의 사랑’으로 만나서 사귑니다. 그게 바로 하나뿐인 ‘교회’입니다.

제가 요한복음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읽고 논문도 봤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글들이 마지막 목표하는 것이 ‘사랑으로 교회하자.’ 이것이 결론이에요.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사랑으로 교회 만들자.’가 아니라 ‘교회 없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와 하나 되게 하옵소서.’지 ‘교회 되게 하옵소서.’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뭉친 사랑의 교회 되게 하옵소서.’ 이것은 주석자, 신학자들이 교회 권력자, 목사, 선교단체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조작된 거예요. 성경대로 해야지요. 다시 이야기할게요. 법이 아닙니다. “당신 우리 노회 법 지켰어요?” 이런 법이 아니고, 그냥 공짜로 받은 사랑으로 불려나온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랑은 바로 내 사랑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새 계명이다.”

이 계명이 서로에게 본드 역할을 해요. 여러분 강정 알지요? 쌀 튀긴 것 사이에 조청이 있어서 강정이 되게 하지요. 조청(혹은 본드) 역할에서 절대로 법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율법이 어떻고, 십계명이 어떻고 사도의 명령이 어떻고 이런 것이 들어가면 안 돼요. 바울의 권면이나 요한의 권면은 전부 하나입니다. 주님의 화목제물에서 온 그 사랑이 있는 사람은 딱 들어붙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대목으로 가봅시다.

19장 3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실패로 보지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을 저도 동의합니다.” 라는 것이 되어 있어야 해요.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어요.

‘다 이루었다.’는 것은 바로 ‘은혜위에 은혜’를 다 이룬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질문이 생겨요. ‘예수님이 2,00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BC 100년, 200년에는 아직 덜 이룬 것인가?’ 또 ‘아직 재림이 남았는데 어떻게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느냐?’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다 이루었다.’는 것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이 1층이라면, 2층을 다 이룬 거예요. 1층에서는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남아있고 약속이 남아있더라도 2층의 다 이루었다가 적용되는 겁니다. 아까 15장 3절의 말씀처럼 “너희는 말씀으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이것이 계속 내려오는 거예요.

내려오는데, 여기에서 올라가는 것은 뭔가? 법입니다. 법은 행위죠. 법을 행위로 지키면 지킬 때까지는 행했는데 못 지키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오늘까지는 법을 지켰는데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항상 미진한 부분이 남아있어요. 내가 나 자신을 너무 잘 아니까 내일 되어서 ‘나는 예수 모른다.’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서 ‘재림’을 말하니까 ‘다 이루었다.’가 의미가 없어져요. ‘아이고, 예수님 혼자 다 이루었지. 아직 재림 남아있어. 정신 바짝 차려야 돼. 만약 재림에 참여 못하면 우리는 지옥 가는 거야!’ 이렇게 불안감이 계속해서 남아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가 하면,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법이거든요. 그러면 ‘다 이루었다.’가 뭐냐 하면, ‘은혜 위에 은혜’가 내려와야 돼요. ‘다 이루었다.’의 부록 지점에 뭐가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재림이 나온단 말이지요. 그러면 이 재림도 지금 은혜 줄 때 이것도 따라 오게 되어 있어요. ‘다 이루었다.’는 책 뒤에 보면 부록이 있는데, ‘다 이루었다.’가 법을 치면서 재림도 오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법이 침을 당하고 사랑을 느낄 때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신학자들은 미완료하고 해요. 바보들이에요. 남편이 미국 출장 가 있습니다. 전화를 하면서 ‘여보, 빨리 오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부부가 미완성된 것입니다. 부부이기 때문에 빨리 오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관계가 이미 부부사이란 말이지요.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말은 그때 가서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나의 법, 내가 지킨 이 행함을 십자가 은혜가 ‘까불지 마, 이건 사랑이야.’ 인간이 지킨 법은 새 언약에 포함이 안 됩니다. ‘네가 지킨 법이 아니고 내가 준 사랑이야.’ 이 사랑이 있을 때 재림도 함께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자, 그렇다면 인간이 여기 있고, 인간이 뭔가를 행합니다. 행함이 일어나면 우리에게는 죄가 있고, 죄를 둘러싼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면 죄는 뭔가 행하니까 행할 때는 어떤 기준에서 행합니까? 과거에 행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현재, 현재는 과거의 현재이고, 미래는 과거의 미래가 되지요.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그 근거는 과거를 점검해서 나온 미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미래에 되고 싶은 것은 과거를 점검한 그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해서 미래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냥 막연하게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없어요. 그러면 현재라는 것도 과거를 기준으로 해서 과거 중에서 괜찮은 과거를 골라잡은 것이 현재가 되는 거예요.

이것은 ‘베르그송’의 시간론인데, 과거가 계속 지속 된다는 거예요. 이걸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여기서 인간이 행하게 되면 항상 미진한 것이 남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자체가 뭡니까? 이 자체가 나만의 법이 돼요. 그러면 무엇과 충돌됩니까? 주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하고, 나는 이것을 반복하고. 결국 내 안에서 죄가 반복되고, 죄가 반복됨에 따라서 그 죄를 용서하는 것이 반복되겠지요.

그렇다면 다 이루었다는 것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 바로 뒤풀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반복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반복해서 계속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반복하게 하는 힘,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다 이루심’에서 나온 겁니다. 다 이루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고린도후서에는 ‘날마다 우리를 죽이고 날마다 우리를 살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평소에 법적으로 나오면 무조건 죕니다. ‘내가 잘 해야 될 텐데.’ 또는 ‘잘했다. 잘 못했다.’ 이런 것이 생기면,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되풀이해서 ‘다 이루었다.’를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유발시킨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법을 의식하게 되면 ‘하나님, 이러다가 내가 주님 재림하실 때 탈락되는 것은 아닙니까?’ 슬며시 이런 걱정을 하게 되지요. 우리에게 이런 법 감정이 나오면 무조건 이것은 죕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초조와 불안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래요. 법 감정이 생기면 우리는 갑자기 ‘이러다가 천국 못 갈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어요. 성경에도 그 비슷한 말씀이 있지요. “주께서 도적같이 오시리라. 깨어 있으라.”고 하시니까. 그러면 잠 잘 때도 깨어 있어야 합니까?

사도의 모든 권면과 말씀은 사랑으로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신 말씀도 사랑으로 주셨기에 이미 ‘다 이루었다.’에 포함되어 그 혜택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받는 그 순간 갑자기 뭐가 생각나는가 하면 ‘주여, 당장이라도 주께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단 말이지요.

사기를 당했거나 자녀가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하면 ‘이 세상 더러워서 못 살겠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런 생각이 들다가, 갑자기 자녀 성적이 올라가고 사업이 잘 되면 ‘주여,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오세요.’ 이런 마음이 들지요. 이런 것이 파도처럼 우리에게 되풀이 된다는 사실이, 이것이 바로 ‘다 이루었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조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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