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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1211(1) 서울강의 녹취 : 빌립보서 제8강자유게시판빌립보서

20091211(1) 서울강의 녹취 : 빌립보서 제8강

이름 : 김창길(IP:222.112.87.237)

빌립보서 제8강 (이근호 목사 2009년 12월 11일 [1]) 서울의존교회

인간 배제 (허구인 자아의 구원계획)

빌립보서 2장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방금 보았던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7절, 8절 말씀을 4자로 간단히 이야기 하면 인간배제, 인간을 제쳐놓는 겁니다. 인간을 배제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방금 읽었던 이 본문이 사람을 배제해 버리고 사람하고 타협한다든지 사람하고 협상을 한다든지 의논을 한다든지 이게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하고 의논하지 않으면 누구하고 의논하는가? 이 빌립보서 2장6절에서 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문제입니다. 하늘에 있는 가족 문제예요.

여러분, 아파트 사시는 분 있습니까?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계시는데 옆 동에서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가 거기 옆집에 관여를 해야 되겠어요 안해야겠어요? 관여할 필요가 없지요? 옆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심하게 다툰다고 우리가 싸움 말리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쪽 사정이고 그 쪽 집안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하하 호호 하고 웃으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 때 옆집에 사는 우리가 옆집에 가서 “뭐가 그리 즐겁습니까?" 하고 문 열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이 말이지요. 옆집에서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서로 사이좋게 재미나게 지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우리 집에 시루떡 한 접시가 나와 있다. 그것을 예를 들어서, 201호와 202호 산다고 합시다. 202호에서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아주 재미나게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밤에 웃음소리가 넘쳐나더니만 201호 우리 집 앞에 맛있는 시루떡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이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냐면 은혜라고 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이게 구원이예요. 구원이 접시에 담겨서 우리에게 온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하는 그 문제는 201호 우리가 살고 있는 201호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고 어디서 다룰 문제입니까? 202호,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에게 하늘나라 가족의 그 쪽 사정이죠. 그 쪽 집안 문제다 이 말입니다. 이걸 제가 뭐라 본다고 했습니까? 이것을 가지고 인간을 배제한다. 인간을 철저하게 배제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예요. 문제는 201호에서 굿을 벌리는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아벨이라는 사람이 천국 갔겠습니까? 지옥 갔겠습니까? 아벨은 천국 갔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이 가인, 가인 그 사람이 구원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인, 이 사람은 201호에 사는 사람이라 보면 되지요. 그러면 아벨은 202호에 사는 사람입니다. 가인이 201호에 살면 가인이 사는 사람의 집에 아침에 시루떡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구원 안 받으면 되지요. 천국 안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201호에서 굿을 한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무리 201호에서 굿을 해도 이 사람은 구원됩니까? 안됩니까? 구원 안 되지요. 왜냐하면 구원문제, 은혜문제는 어디서 결정하는 겁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 가족, 아버지와 아들이 가족이죠. 하나님 아버지란 분과 하나님 아들이라는 가족의 문제지 우리 인간의 문제, 제3자, 인간이 구원이 되고 말고 할 구원의 결정권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이게 방금 읽었던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의 내용입니다.

모든 구원의 관한 문제는 인간을 배제하고 시작했고 마무리도 인간을 배제하고 마무리 됩니다. 그래서 구원이 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로 인하여 그냥 선물로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옆집에서 이루어진 일 때문에 우리 집이 선물로 그냥 받는 거예요. 참 줘도 못 먹는다 말이 있듯이 사람들이 이렇게 공짜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공짜라고 해도…….

오늘 첫 번째, 두 번째 시간은 집중해서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겁니다. 왜 사람은 공짜로 구원하고 공짜로 천국 간다는 것을 왜 안 믿는가? 그걸 지금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공짜로 구원을 줘도 안 믿는가 하면 그 내막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여기 있는데 사람은 코, 귀, 입 이렇게 있습니다. 이게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네킹이 사람입니까? 아니죠? 그러면 사람과 마네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뭐냐 하면 사람은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마네킹은 없는데 사람에게 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자아, 쉽게 얘기해서 나, 자기 자신을 느낍니다. 자기 자신은 무엇을 느끼느냐? 여기서 나오는 게 있어요. 뭐가 나오느냐 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나에서 죽 나와요.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가 쭉 나오는데 사람들은 나(자아)에서 이게 나오기 때문에 이 과거는 어떤 과거냐 하면 지금에서 골라낸 과거가 되고 미래는 지금이 기대하는 미래가 돼요. 미래가 되어버리면 남는 것은 뭐가 남느냐 하면 과거라는 이름에 현재가 남고, 예측이란 이름에 현재가 남고 그리고 사람에게는 나이가 아무리 70이 되고 80이 되도 남는 것은 지금 내가 여기 있다. 이것만 남아요.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서는 과거의 어릴 때 내가 어떻고, 초등학교 때 어떻고, 중학교 때 내가 어떻고, 과거가 생각나고 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이렇게 하고 싶고, 저렇게 하고 싶고 하는 자기 기대가 있고 어째든 현재 확실하게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만약에 어떤 것이 선물로 들어와 버리면 사람들은 이 선물은 내가 지금 과거에서 만들어낸 선물도 아니고 미래에서 기대하지 않는 선물이 와 버리면 이 선물은 지금 내가 받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 선물이 어디서 오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그 예수님의 현재가 선물로 들어와 버리면 지금, 예수님이 들어와 버리면 지금 현재에 있는 내가 무엇으로 바뀌게 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현재로 내가 교체가 되어야 돼요. 교체가 되어 버리면 과거에 초등학교 때 나는 키가 작았다. 초등학교 때 나는 왼손잡이였다 하는 말은 틀린 말이고 옛날 과거에 예수님께서 초등학교 때 나를 왼손잡이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해야 돼요. 만약에 예수님이 선물로 안 들어와 버리면 나는 7살 때 우리 골목에서 싸움 제일 잘했다. 비록 나는 여자지만 우리 골목에서 남자애들 항상 매일같이 때리고 대장을 했다고 하더라 하다가 이렇게 예수님의 현재가 내속에 침범해 버리면 내 7살 때 우리 주님께서 힘주셔서 우리골목에 있는 애들, 남자들 얻어맞았다 그렇게 되면 7살 때도 나라는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되지요. 역시 목사는 달라. 일반 평신도는 모른다고…….사람들이 이 선물을 왜 못받냐하면 지금 만약의 현재의 나를 고집해 버리면 어떻게 되냐면 현재 고집한 상태에서 내가 예수를 믿고자 한다면 7살 때 난 골목대장이었고 중학교 때 어떻게 했는데 지금 나이가 35살이다. 35살 때 나는 예수 믿기로 작정했다. 그 다음에 45살 때 나는 우리교회에서 장로가 되었다. 장로된 것, 예수 믿은 것, 다 누가 할 거예요? 누가 결정한 거예요? 내가 결정하지요. 내가 결정해 버리면, 천국의 주제는 뭡니까? 인간배제인데 이렇게 되면 누가 잘나서 구원받은 게 됩니까? 내가 잘나서 내가 알아서 내 구원 내가 알아서 내 공로로 내가 예수 믿는다는 행함으로 내가 받는 게 되 버려요 이러면 이 사람이 가는 나라는 어디냐 하면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현재가 되는 나라에 가는데, 그런 나라가 있어요. 그런 나라가 무슨 나라라 하냐면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런 나라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 유명한 공식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지옥 간다."는 공식, 예수 믿고 지옥 가는 거예요. 아무도 웃지를 안네……. 큰일 났네……. 나 혼자 실없는 인간 되 버렸는데, 여러분 예수 믿으면 지옥 갑니다.

예수 믿으면 지옥가요. 이 천기누설 아무나 얘기 해 주는 거 아닌데, 오늘 2009년 마지막을 기해서 드디어 내가 누설해야 겠어요. 예수를 믿으면 지옥 갑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지옥 갑니다. 십일조하면 지옥가고, 교회 나오면 지옥가고, 예수 안 믿고 십일조 안 해도 지옥가고, 교회 안 나와도 지옥가고 나와도 지옥 갑니다. 왜냐하면 그 끝은 나의 세계, 자아의 세계, 내가 주인공이 된 세계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걸 불교에서 극락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불교에서 극락은 항상 중인공이 누구냐 하면 어린양의 보좌가 아니고 자기가 설치고 다녀야 되요. 자기가 극락 왔다고 온 다 돌아다니면서 자랑하고 떠벌리고 가끔은 지옥 가 가지고 지옥가 있는 자기 엄마 건져내려고 일거리 만들어 내냐고 바빠요. 파내서 엄마 건져내야하고, 지옥가도 왜 그리 할일이 많은지 몰라요. 여호와 증인도 지옥 갑서 할일 많아요. 골프채 들고 가 잔디밭에가 골프쳐야돼요. 이게 전부다 자기 세계에요. 그래서 지금 빌2:6절에서 구원이라 하는 것은 다시 이야기 해 드릴게요. 구원이란, 201호에 우리가 살고 있고 202호에 하나님이 살고 있다 이거예요. 구원이란 202호에 있는 아버지와 그 아들 사이에 의논해가지고 아침이 되니까 여기에 시루떡이 쟁반에 담겨져가지고 우리 집 앞에 있을 때 이것이 바로 선물이고 이것이 은혜고 이것이 바로 구원이고 이것이 천국이더란 말입니다. 여기에 가족,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두 분 사이의 일의 결과로 우리에게 거저 구원이 온 거예요. 문 열고 쟁반에 있는 것 맛있게 잡수시면 됩니다. 골라 먹을 필요도 없어요. 그냥 떠먹으면 됩니다. 주시는 사랑을 떠먹으면 됩니다. 떠먹던지, 사랑을 줄줄 시럽처럼 마시던지 요구르트처럼 퍼 먹던지, 마시던지 어쨋던지간에 퍼먹던지 마시던지 뭘 하든지 그 모든 것이 내가 만든 적이 없고 내가 생각 한 적도 없는 구원을 이렇게 거저 주셨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이고 처음이고 끝이고 끝나는 겁니다.

이렇게 들어오게 되면 현재 나의 현재 과거와 미래는 나의 현재로 고집되다가 나의 현재가 아니고 무슨 현재로 바뀌냐 하면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주님의 현재로 바뀌겠지요. 그래서 과거의 있던 나도 주께서 미리 그렇게 태어나야 했기에 태어났고, 더 나가보면 내가 창세전부터 구원받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이 되어야 했고 미래에 주님께서 가신 나라에, 안식의 나라에 우리도 나의 현재가 아니고 주님의 현재 속에 교체됐기 때문에 주님이 마련한 주님 자신이 마련한 세상이기때문에 주님 따라서 우리도 덩달아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가신 그곳이 우리가 영원이 기거할 곳이 됩니다. 어릴 때 여러분 이사 많이 안 해봤습니까? 부모님이 어떤 직업인지 주거변동이 되가지고 맨날 운동권도 아니고, 이사 다니고 주민등록 바뀌고 때로는 소멸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자식은 부모 따라 자꾸 이동을 해야 되겠죠. 그럴 때 그런 자식이 커서 나중에 너의 어릴 땐 어떠냐고 하면 "다 부모 때문에 부모로 인해 부모인생이지 내 인생 없었어." 라고 말한단 말이지요. 그 이야기가 부모로 인하여 지금 내가 나쁘게 말해서 이 모양 이골이 됐다. 좋게 말하면 내가 나 된 것은 부모님 은혜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미처 몰랐을 때에도 주님의 현재 속에 빠져들어 가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제 말을 잘 이해못하는게, 눈치를 보니까 이것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다시 해 봅시다. 사람이 현재, 과거 이게 어렵죠. 어려운데, 사람이 과거를 생각할 때 과거에 그 일이 있었던지 관계없이 다 잊어버리고요. 지금 현재 내가 원하는 과거를 내가 도달해 낸다. 그게 바로 우리의 과거란 거예요. 과거가 아무리 많다해도 현재 내가 원하는 과거가 아니면 나머지는 삭제하고 다 잊어버리게 돼요. 지금 필요한 과거만 나한테 과거가 돼요. 여러분들이 시시콜콜한 것 다 기억 못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7월 6일 날 뭐 했어요? 알 필요 없죠. 그 때 공부 1등 했다면 기억날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때 7월 달 방학 전에 일등 했어요." 하지만 꼴등했으면 기억 안날꺼예요. 1등 했기 때문에, 지금 나란 현재를 삐까삐까 빛내기 위해서 지금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증명할 수 있는 것들만 기억하는 거예요. 미래도 마찬가지 입니다. "너 커서 뭐할래?" "나, 커서 빌어먹을래……." 이런 아이는 없어요. 미래라고 하는 것은 항상 지금을 근거로 해서 지금 중에서 좋은 것만 골라서 미래 하는 거예요. 라면을 좋아하는 아이한테 물어보세요. “너 커서 뭐할래. “나 커서 라면 가게 할래요.” 무슨 뜻입니까? 지금 라면 먹고 싶다는 말입니다. “너 뭐할래?” “택시 운전할래요.” 택시타고싶다 이말 입니다. “너 뭐할래?” “옷 만드는 디자인하고 싶어요. 옷하나 해 달란 말입니다. “너 뭐할래?” “나는 축구선수 할래.” 지금 축구하고 싶다는 겁니다. 미래라는 것이 지금의 근거가 없는 미래는 없어요.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미래에 꿈으로서 이루어지길, 꿈은 이루어진다. 꿈, 별표, 이루어진다. 88올림픽때 많이 했죠. 미래라는 것은 너무나 일방적입니다. 현재 나를 응원해 줄 수 있는 나를 빛내 줄 수 있는 미래만 미래지, 만약에 내가 기대하지 않은 예상하지 않은 미래가 오면 우리는 자기 인생을 저주하죠. “미워!, 미워!” 하는 …….

자기가 무슨 죄를 졌다고 자기를 칩니까? 인간의 죄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기 현재를 현재라고 우긴 것 그 죄 밖에 없어요. 자기 현재는 주님의 현재인데, 예수님의 현재를 내 현재라고 우긴 죄, 그 죄가 교체가 안 된 죄, 내 자리에 주님이 계셔서 나는 주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인데 그것을 인정안할 때 그게 바로 내 안에서 주님과 내가 막 싸우는 거예요. “내가 주인이다.” “아니, 제가 주인입니다.” “내가 주인이다.” “아니 제가 주인할랍니다.” “네가 주인 왜 하는데?” “나중에 라면 먹고 싶기 때문에 라면가게 차릴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쥐어박습니다. “너는 라면 먹고싶어서 하는 소리야,” “너는 나중에 삼성그룹처럼 재물이 되어야해” “싫어요. 재물 싫어요. 돈 많은 것 싫어요. 나는 라면만 먹으면 좋겠어요.” 이런 고집부리는 사람은 없겠지만…….하여튼 주님이 마련한 미래는 현재 우리가 원치 않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미래를 준비해 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직업에 관계없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우리의 미래입니다. 십자가의 죽의심이. “그럼 피를 한 사발 흘린단 말이냐?, 그럼 옆구리에 창을 찔린단 말이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겠는데. 십자가 죽지 않고 구원받는 법은 없습니다. 십자가란 것이 우리가 생각한 예수님이 형틀에 달리신 그것은 이미 과거에 예수님이 했던 십자가이기 때문에 우리한테 해당이 안돼요. 우리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인지 그것은 사람마다 주님께서 배치를 따로따로 다 합니다. 공통점이 있는데 결국은 구원받은 사람의 공통점은 “십자가에 주께서 함께 죽으심으로 제가 구원되었습니다.” 하는 고백을 어느 직업이든 죽을 때 금덩어리 안고 죽으면서 “주여 십자가 아니면 구원 못 받습니다.” 이런 소리 할 수도 있고, 쌀가마니 붙들고 하는 말이 “주님이 같이 죽으심으로 구원 받았어요.” 이렇게 할 수 도 있고, 심지어 자식 12명 낳아서 자식 12명 붙들고 “주여 십자가 아니면 구원 못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이말 이죠. 그러니까 십자가로 구원받는 것은 예외가 없어요. 누구나 십자가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내가 현재가 되어버리면 내가 십자가를 지어내기 때문에 그게 큰 문제가 됩니다. 내가 십자가라는 것을 지어내요. 일부러 불신자 집에 가서 핍박을 받아 본다든지 일부러 목사한테 대들어서 저주 한번 받아본다던지 일부러 나쁜 짓해서 교도서 가본 다든지 자기가 조작된 십자가를 십자가라고 우기면 그것은 또 주체가 뭐냐 하면 자기주체가 살아있어 인간배제란 원칙에 또 어긋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은 왜 예수님 하는 일을 안 믿는가를 하겠어요. 방금 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겠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면 우리는 뭐만 보냐하면 예수님만 봐요. 그런데 예수님 뒤에 빌립보서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계셔요. 우리는 하나님은 모르고 나를 구원하러 오셨군요. 하고 우리는 “예수님 고맙습니다.” 하고 우리는 예수님하고 상대하려고 해요.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으니까 구원해 주세요." 아까 얘기했죠.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고,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시면 우리와 함께 동거하고 구원받고 감사합니다. 지금 한국교회 전부가 이렇게 예수님만 상대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빠뜨린 게 있어요. 무엇을 빠뜨렸냐하면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빠뜨려버렸어요.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는 하나님은 자식을 잃었어요. 첫 번째, 잃어버린 자식이고, 두 번째 잃어버린 자식이 이기에 도로 건지신거예요. 자식을 잃어버리도록 방치를 했고 자식을 잃어버리도록 조치하셨고, 그 조치 그 다음에 그 잃어버린 자식을 도로 살리는 조치를 아버지가 하셨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가서 예수님과 그리고 아버지가 하신 일을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게 뭡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믿음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1번 필기시험 치셨다. 2번 면접 봤다. 3번 고생시켰다. 4번 아브라함 자식 바치라고 했다. 몇 번입니까? 4번이죠. “아브라함 너 이리와봐 너 믿음 있나?” “믿음 있습니다.” “믿음 있으면 한번 보자, 1번 사도신경 외워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합격”, “주기도문 해봐” “합격” “20점” 그 다음에 예수님 “12제자 몇 명?” “12명” “옳지 잘했어요.” “천지창조는 며칠 만에?” “7일 만에” “아이고 40점” “어이고 100점 만점 믿음 있구나,” 이렇게 시험 쳐서 합격했습니까? 볼펜으로 넘어가는 시험이 아니었어요. 또 면접 봤습니까? “차렷, 열중쉬어 차렷 똑바로 한다. 앞으로 행동 똑바로 한다. 앞으로 말씀지킬거야 안지킬꺼야?” “지키겠습니다.” “복창소리봐라” “지키겠습니다.” “좋다, 합격” 이랬습니까? 오늘날 교회 하는 것처럼 손들고 회개하고 무릎 꿇고 손들고 나왔습니다. 우리 다 찬양합시다. 침례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자 합격 이랬습니까? 하나님께서 시험을 그렇게 쳤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 치는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그 관계에 우리를 집어넣는 시험을 쳤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자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사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성경을 보셨으면 알겠습니다만 성경은 뭐냐 하면 하나님 나라에 있는 사적인 가족문제, 하나님 가족문제가 그것이 그 결과로 우리에게 천국가게 되었다. 하나님 사적인 가족문제가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줬다. 이게 정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의 문제예요. 우리가 얼마나 구원을 받고싶어하고 우리가 얼마나 지옥을 피하고 싶고 우리가 얼마나 천국가고 싶어 하는가 이런 개인적인 열망은 전혀 구원에 필요치도 않고 도움도 안 되고 그런 것은 교회에서 위선자만 양산해요. “주여, 천국 가고 싶습니다.” 하면 목사가 “어이구 믿으면 좋습니다.” 자기들끼리 위로한답시고 “성도여 힘내세요, 십자가 지시기 바랍니다.” 져봐야 소용없습니다. 더, 더, 더 힘을 내고, 헌금 열심히 하고 충성해야지 구원받습니다. 예, 복 받습니다. 이것은 심심풀이 땅콩으로 심심해서 해보는 거고, 실제로 구원은 완전히 인간을 배제합니다.

인간을 배제해 버리고 하나님과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일에 그 구원받을 사람을 거기다가 참여 시키죠. 참여시킨다는 말은 결과로 그 일할 마당 장은 이미 주께서 마련하셨고 우리는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이 말입니다. 들어가 보니까 거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귀한 독생자 자식을 잃어버렸어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뭘 잃어버렸는가? 아브라함은 자기 이삭을 잡아야 되지요. 자식이 없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자식이 있는 사람은 알아요. 자식이 죽게 되면 죽은 자식을 부모가 잊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그 자식 죽음과 더불어 부모도 산자가 아니라 죽은 자가됩니다. 순간적으로 부모가 실성해요. 실성한다는 것은 신체가 있을 뿐이지 혼이 나간다는 거예요. 자식 죽었는데 부모도 같이 죽어요. 부모가 살아도 살고 싶지가 않아요. 자식을 시장 통에서 잃어버렸다는 지 자식이 없어버리면 자식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마찬가지예요. 강아지 잃어버리면 애들 밥 안 먹잖아요. 고양이나 강아지 잃어버리면 밥 안 먹잖아요. 심지어 저 같은 경우에는 지우개를 잃어버려도 밥이 안 넘어가요. 볼펜잃어버고 지우개 잃어버려도 밥이 안 넘어가요. 자식이라 하는 것은 내 몸이 늘어난 것이 자식입니다. 자식이 따로 놀아도 자식이 밖에 있어도 자식이 안들어 오면 내가 안들어온거나 마찬가지예요. 내 일부가 아직 안 들어 온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죽는다는 것은 곧 내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죽어봤습니까? “내가 죽겠습니다." 하면 뭐도 같이 죽게되냐하면 나의 현재도 같이 없어져요. 죽는 마당에 나의 현재가 뭐가 있습니까? 죽는 마당에 내가 초등학교 때, 골목대장이었다는 그것은 소용 없는 거예요. 지금 내가 살아있을 현재일 경우에는 “야, 나 무시하지 마 나 7살 때, 골목대장이었어. 지금 살아있다는 폼을 내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당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7살 때, 골목 대장 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지금 내가 암이 걸려서 내일모레 죽는 마당에 “아이고 형제님 7살 때 골목대장이라면서요?” “지금 날 놀립니까?” 지금 내가 암으로 죽는데 골목대장하고 무슨관계가 있어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는 말은 너와 너의 자식관계는 하나님과 하나님 자식관계에서 앞에서 아무가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거예요. 너의 과거와 현재와 연결고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현재 고리 앞에서 그것은 있으나 마나, 있어도 소용없고, 없어도 소용없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자꾸 천국에 보내려고해요. 나를 구원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겠다는 거예요? 네 마음대로 가라, 네 마음대로 가보시지 그곳이 천국인지, 누구 마음대로 넣어줘요. 천국의 주인이 누군데요?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 나라인데 거기에 내가 구원받겠다고 설쳐봐야 거기에 자기세계에 따로 놀고 지옥가지요.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 확정되기 때문에 그 확정된 사이에 우리를 집어넣어주지 아니하면 다시 말해서 내가 이러한 세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나와 자식관계라든지 나와 내 아내관계라든지 그것은 별 볼일 없는 아주 무가치한 아무 의미 없는 무의미한 그러한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따로 우리의 구원을 또 고집하는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6절을 다시 봅시다.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에 사람이 어디 나옵니까? 여기 사람 안 나오잖아요. 여기 누가 도와주고 협조하는 것 없지요? 여기서 구원받겠다고 설쳐 됐더니만 구원 주겠다, 없지요? 사람들이 ”예수님, 예수님이 죽어 줘야 구원받습니다." 라고 호소 하니까 예수님이 죽으셨습니까? 아니에요. 예수님 죽으라고 호소한 사람도 없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끌고 간 사람도 없고 예수님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죽으신 거예요. 자발적으로 십자가에 알아서 죽으신 거예요. 누가 날 죽이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스스로 죽어요. 그것은 왜 그러냐하면 우리는 이미 사람한테 물어볼 필요 없이 아버지께서 이미 아버지와 아들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약속된바 의해서 우리가 멍청히 있는 상태에서 이미 아버지와 아들이 이야기가 끝난 이야기입니다.”아버지여 저, 죽을게요. “ ”그래 너 죽어라 내 살려 줄게“ 그러면 천국 이루어집니까? 천국 이루어지지. 이야기가 끝난 이야기라니까요. 그러면 우리가 ”두 분 무슨이야기 하시는데요? 제가 좀 끼어들게요. “ ”저리가 네가 끼어들 이야기가 아니야“ 구원문제에 우리가 끼어들 게임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문제에 천국 가는 우리가 끼어들지 마세요.

천국가도 우리가 끼어들지 마세요. 여러분 참여한다는 얘기가 뭐냐 하면 참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그런 지시를 내리셨으면 이 관계 주께서 하나님의 본체시나 죽기까지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는 그 관계가 우리에게 덮쳐버리면 이 모습, 하나님같이 되신 분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신 이 노선에 다음에 이 노선이 남의 노선이 아니고 여기 참여된 오늘날 우리 성도가 가야할 이 코스로 이 결정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우리 안에 이 코스가 길이 생겨요. 우리 안에 길이 생기는데 길이 생긴다니까 또 걱정하고 있네요. “목사님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됩니까?” 걱정하고 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토지 보상금만 받으면 되고 우리 안에 토지공사가 길을 내도 우리는 소유권 이전만 하면 돼요. 십자가에 길을 하늘나라의 천사가 와서 불도저로 밀어붙일 때 "어 이거 내 땅인데 누가 불도저 갖고 미는데? 포클레인이 왜 왔어, 이거 내 땅인데" 이러지 말고 "이거 주님의 땅인데 앞으로 밀던지 뒤로 밀던지 십자가의 길만 쫙 내 주이소" "저는 내 안에 있는 십자가 때문에 구원받아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오늘 너무 쉽게 얘기하네요. 표정들이 왜 그래요? 행복하지 않아요? 여러분들 이런 고속도로 없어요? 십자가의 길 없어요? 다들 하나씩 있잖아요. 개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의 인생길을 예수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되풀이 하는 용도로서 하나님께서 성도의 길을 빌려달라했어요. 너 가는 인생길에다가 내가 내 아들 죽었던 십자가의 길을 깔아 버린 겁니다. 깔아버리면 나의 역사, 나의 운명, 나의 미래, 나의 과거, 나의 현재는 날아가 버리고 그 자리에 뭐가깔리느냐하면 예수님의 과거와 예수님의 미래와 예수님의 현재가 우리의 역사를 대체 해 버립니다. 바꿔치기 해요. 바꿔치기 해버리면 우리 안에 고속도로가 놓이면 고속도로의 시공사가 어딥니까? 현대건설입니까? 어딥니까? 천국이죠. 천국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이어집니까? 천국까지 이어지지요. 그런데 여기에 누가 누워 있습니까? 내가 누워있는 겁니다. 고속도로에 깔리는 타일 아스팔트, 이걸 가지고 뭐라 하냐면 성경말씀 이라합니다. 성경말씀으로 쫙 깔아버려요. 성경말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모든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성경 말씀이 쫙 깔려버립니다. 깔려버리는데 이것을 수평적으로 여기는 창세기고 여기는 요한계시록이고 이렇게 깔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지금 예레미야를 통과하고 있는 게 아니고 우리 인생이 천으로 돼 있어가지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순간을 폭 찔러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나오게 되어 있어요. 어느 순간을 찍어도 다 나오게 되어 있어요. 마치 목사님이 역대하 설교를 해도 역대하 천을 당겨버리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정신이 줄줄이 진주목걸이 구슬처럼 다 나와 있죠. 어느 부분을 폭 쑤셔도 2005년도의 내 인생은 어떤 인생이냐 교도소에 들어가 수감 중인데 그 수감 중인 데를 폭 쑤셔보면 그것은 말씀대로 수감되어야 해요. 1972년도에 나는 학교에서 엎어져서 무릎이 깨졌다. 왜 깨졌는가? 말씀대로 깨져야 된다. 그리고 2012년도에 말씀대로 되어야 돼요. 이것을 성경에 보면 모든 게 말씀대로 응하려 함이라. 그것을 제가 처음에 4자로 뭐라 했습니까? "인간배제" 철저히 모든지 인간배제 해 버립니다. 인간배제하면 누구도 배제된다. 내가 구원받고자 하는 나의 욕심도 같이 날아가 버려요. 지금까지는 아주 쉬운 이야기를 했어요. 여러분이 이제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거기에 뭐가 깔린다? 고속도로 무슨 고속도로? 십자가라는 고속도로가 깔려 버려요. 그래서 모든 성경은 전부다 십자가로 이어져서 십자가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버리심으로 구원받은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가 아니고 자기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심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은 누가 받았어요? 우리가 받고 예수님 구원받고 다 같이 구원받은 거예요. 여기 고등어 그림 잊지 마세요.

그러면 무엇이 어려운 이야기인가 하면은 여기 우리 몸이 있잖아요. 우리 신체 있는데 우리 신체가 사람들은 나를 위한 신체예요. 자, 묻습니다. 목사님께 묻습니다. 김명현 목사님, 내가 신체부위에 어디에 있습니까? 머리에 있습니까? 엉덩이 있습니까? 손목에 있습니까? 내가 어디 있죠? 신체부위 가운데서? 없지요? 없습니다. "나"라는 게요 거짓말입니다. 없는 "나"를 사람들은 자꾸 만들어내요. 이것을 제가 안산 강의에서 오늘 했습니다. 자아와 나 사이에서 자아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 따라서 자꾸 변하고 변하는 것을 "요기 있다" 딱 잡아서 요게 "나"다. 할 때 그게 나, 나는 자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자꾸 나도 잡았다가 또 마음에 안 들면 자아를 바꿨다가 마음에 들면 나로 만들었다 또 마음에 안 들면 또 자아로 왔다 바꾸고……. 혼자 왔다 갔다, 둘 다 거짓말 이예요. 둘 다 자아가 없어요. 성경은 나 소유자가 누구라고 하냐면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나 소유자가 거짓말쟁이인 나, 내가 내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 신체에서 "나"를 떼어버리세요. 내 신체 아니고 누구신체냐하면 예수님 것이에요. "목사님 그거 성경에 나옵니까? 거짓말 하지 마세요."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요. 왜냐하면 고린도전서에 보면 "우리는 주의 것이니" 우리는 주의 것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그것을 농담인줄 알았어요. 괜히 한소리 해 보는 구나로 알았어요. 내 몸은 내 몸이 아니고 주의 것이라는 것을 진담으로 듣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더 이상 네가, 더 이상 거짓말로 그동안 구라로 내 몸을 내 것이라고 하는 것에 손을 떼고 이제는 날 위해 살지 않고 날 위해 죽었다 살아나신 원래 주인인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해놓고 그 뒤에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이니라. 여러분, 내 것에서 주님의 것으로 소유권 바뀌는데 그렇게 교회에 돈 받치고 할 필요 없어요. 철야기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사시는 대로 사세요.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그냥 화장실에 가시고 떡이 먹고 싶으면 떡 그냥 잡수시고 잠이 오면 그냥 엎어져 주무시면 됩니다. 다만 주무실 때도 그 주무시는 것이 주님의 몸이 주무신다고 생각하시고 오줌 눌 때도 주님 몸에서 오줌이 나온다고 보시면 돼요. 소유권이 처음에는 잘 안 바꿔집니다. 왜냐하면 버릇이되 가지고 정말로 소유권이 바뀐 사람은 누가 한대 치면 "이게 어디 주님의 것을 치노" 이렇게 되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 치면 "이게 당신이 왜 나를 때로노" 이렇게 되지요. 나는 없고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에 보면 뭐라 했냐하면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가져 가신자도 하나님" 그런데 우리의 것을 가지고 만약의 음식 쓰레기라고 생각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발 얼른 가져가기를 바라겠지요. 화, 목, 일 오후에 밤에 우리는 3차례씩 4리터짜리 내놓습니다. 내 놓으면 음식쓰레기 비워 갑니다. 저는 그때만 기다립니다. 왜 속이 다 시원합니다. 집에 음식 쓰레기 있으면 안돼요. 살림살이 하는 사람은 한결같은 마음 이예요. 집에 고기 뼈다귀 있으면 귀찮아요. 제발 치워줬으면 하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골치스럽습니까? 여러분들 마음대로 안 됩니까? 그러면 기도하세요. 치워달라고……. 내가 자살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주인이 아니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자식이 태어났다. 자식이 왜 태어났는가? 왜 태어났냐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버리신 그 아픔과 고통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또 자식이 태어났어요. 여러분에게 아내가 있습니다. 아내를 왜 줬습니까? 주님을 섬길 때는 아내처럼 섬기는 것이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왜 그렇습니까? 모든 것이 내 몸, 상대방 몸 전부가 다 내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몸이 상대방 몸이 아니고 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간증하시기 위해서 배치된 배치물이고 증거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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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0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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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