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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1230우리교회수요설교(예레미야 13:1-7/선지자의띠)자유게시판예레미야

20091230우리교회수요설교(예레미야 13:1-7/선지자의띠)

이름 : 오용익(IP:119.195.244.46)

20091230우리교회수요설교/예레미야 13장 1-7절/선지자의 띠(이 근호목사)

(기도)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하나님, 이 시간 저희들 하나님만 쳐다보기를 원합니다. 사람을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상달하는 그곳을 향하여 오늘도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이 시간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자기 것을 따로 지키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것을 따로 지키려고 한다면 필히 예수님과 다투게 되고 하나님을 멀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고집을 내세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것이 다 주님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주께서 우리 것을 다룰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도록 다 같이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저희들 것이라고 우길 때에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밀칠 수밖에 없는 그런 형편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됩니다. 내 것이 없고 내 것마저 하나님 것이라 할 때에 들락날락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인도하시고 주물러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여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3장 1절에서 7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71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13:1-7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두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가에 감추니라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취하라 하시기로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취하니 띠가 썩어서 쓸데없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참 희한한 일도 다 시키지요. 선지자의 허리띠까지 관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허리띠 관리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그것까지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겠습니다만 만약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이고 허리띠가 우리라면 계속해서 그 허리띠가 선지자의 허리를 감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독한 물맛을 보고 썩어 버렸는데 못 감지요. 그 썩은 물, 이방나라 강물에 젖었던 허리띠, 이방나라 물을 맛본 그 허리띠가 우리 하나님의 허리를 두를 수 있는, 하나님의 몸에 밀착할 수 있는 그러한 허리띠가 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내 몸에 붙을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에 붙어 있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썩었다.’는 겁니다.

썩은 허리띠를 예레미야가 그 당시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허리띠가 어디서 썩은 줄 알아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허리띠를 풀기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여러분, 이 허리띠가 어디에서 썩었게요?’ 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하겠지요. ‘허리띠가 썩기는 왜 썩어요? 오래가는 허리띠가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썩었습니까?’ ‘물을 먹어서 썩었습니다.’ ‘그러면 물가에 안가야지. 물을 먹도록 그냥 방치하면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 시켰습니다.’ ‘왜 시켰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하나님이 썩으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너는 썩어야 될 인간이 안 썩은 척 하고 있으니까 너희들 본색을 내가 드러내 줄게. 썩어라.’ 한 겁니다. 썩는 인간은 살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허리에 걸치지 못할 허리띠는 허리띠가 아닙니다. 그것은 썩어야 될 허리띠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인간을 하나의 허리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궁금하니 천사가 궁금하니 하지만 실은 인간이 비밀입니다.

본인이 인간이면서 인간이 뭔지도 몰라요. 본인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죽을 때 되어도 몰라요. 자기가 누군지를 물론 모를뿐더러 옆에서 곡하고 있는 자식도 누군지를 몰라요. 죽었다가 벌떡 깨어나서 묻습니다. ‘너 왜 우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너나 나나 인간에 대해서 알기나 하나?’ ‘모릅니다.’ ‘모르는 게 모르면서 왜 우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허리띠를 유브라데라는 이방나라, 우상을 섬기는 나라의 물을 먹고 썩게 하신 것은 근본적으로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도대체 너희들이 인간을 알고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겁니다. 방금 예루살렘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8절부터 보면 이 띠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을 부리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교만을 잘라내면 될 것이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는데 사람이 혹이 나면 그 혹을 잘라내면 정상인 됩니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문제라면 짧게 깎으면 정상적인 머리카락이 돼요. 그러나 인간에게서 나온 교만과 강퍅은, 예루살렘의 그 강퍅한 마음은 그걸 자르면 인간도 같이 죽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교만이라 하는 것은 교만 따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고 그 인간이 바탕이 되어서 자라난 교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파 물에 담가 놓으면 양파에서 싹이 올라오지요. 그 싹 잘라버리면 양파 다 썩게 되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교만하다, 강퍅하다 그 말은 그 인간자체가 썩어도 무방한 인간이다, 그 말입니다. 다시 제가 묻습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이 뭐냐 라는 것은 교만하면 썩게 되어 있는 성질을 갖도록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것, 인간이라 하는 것은 까불면 썩는 제품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제품이 제품을 알아보지는 못해요. 제품을 알아보려면 제품 바깥에 나가서 관찰해서 알아봐야 되는 겁니다. 교만한 인간이 자기가 교만하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못합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신의 비밀을 자신이 아는 것이 아니고 타인이 알려줘야 하는데 그 남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다 되는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어떤 구조, 어떤 성질을 집어넣어서 만들었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제대로 하나님의 비밀에 접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와서 돈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잘살게 해 달라고 부흥회 하지 말고 ‘하나님, 저를 어떻게 만들었어요?’라고 물을 수 있고, ‘어떤 식으로 만들었습니까?’ 해서 자기 자신을 아는 자가 전부를 아는 자이지요. 하나님은 허리띠를 가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썩는다는 것은 필요 없다는 거지요. 계속 썩으면 없어지지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이냐, 라고 할 때는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뭐냐? 내가 없는 곳에서 나는 어디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없었던 시절에 나는 뭐지?’ 이래 묻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요. 왜 그러냐 하면 내 안에서 나를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바깥에서 나에 대해서 질문을 해 줘야 돼요.

언젠가 활발한 논쟁과 비난의 곡사포가 오고 갔던 그 시절에 상대 쪽에서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왜 목사님은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십니까?’ 사람이 본인이 본인을 보게 되면 부정적인 것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자기 안에서 자기를 바라보면 그저 자기가 죄를 지어도 예뻐요. 죄를 지어도 예쁘고 눈물 흘려도 애처롭고 좀 까불어도 귀엽고 그저 자기한테 애정이 가고 사랑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초등학생들한테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예쁘나?’ 하면 그것은 잘못된 질문이에요. 애들 답이 ‘아빠가 좋아요.’ 하는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누가 제일 좋으냐?’ ‘내가 제일 좋아요.’ 그렇게 해야 그게 정답이에요. 사람은 자기가 제일 좋아요. 그러니까 성경 66권 전부가, 썩는 허리띠 이야기를 해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 내가 썩을 리가 있겠어?’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논쟁하면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하니까 화가 나 버리는 거예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는 그것이 무지무지 못마땅한 거예요. ‘미쳤나? 그리스도가 누군데 나의 귀한 몸을 양도해.’ 그리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말해도 못알아듣는 겁니다.

이런 의식입니다. 여러분이 바지를 세탁소에 맡길 때 세탁소 주인이 그 바지를 입고 다니라고 준 게 아니잖아요. 더러운 바지를 세탁소에 맡겨서 깨끗하게 해놓으면 되찾아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맡기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예수를 믿을 때도 예수님께 자기 죄를 세탁해달라고 맡기는 거예요.

‘예수님, 죄 씻는데 전문가죠? 내 죄를 씻어주세요. 언제쯤 찾으러 오면 됩니까? 세탁 비는 5천원이요?’ 도로 찾아오려고 해요. 성경에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맡기면 예수님이 홀라당 입고 다닙니다. 이제부터는 내 바지가 아니고 예수님 바지에요. 그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이 바지 안에 예수님 몸이 들어온다는 것.

그게 나팔바지라도 괜찮고 무슨 바지라도 다 괜찮고 주께서 입으시겠다는데, 주께서 쓰시겠다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나귀타실 때 했던 이야기, ‘주께서 쓰시겠다.’ 주께서 허리띠로 쓰시겠다는 겁니다. 허리띠로 쓰는데 이 허리띠가 이방 물을 먹으니까 이젠 이 허리띠가 주님 몸하고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이 허리띠를 썩도록 놔 버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거예요. 예루살렘에 기거하는 그 주민들이 여호와의 종교에, 자기들의 종교적인 열심, 열성에 도취되어가지고 외부에서, 특히 선지자 쪽에서 예루살렘을 어떻게 보는지를 몰랐던 거예요. 어떤 사람이 우리교회를 욕하면 우리교회는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교회를 사수하고 방어하고 차단하기에 급급하지 그게 성경말씀대로 합당한가, 볼 생각을 안 해요.

누군가의 설교나 강의를 평가할 때 ‘너는 우리교회 아니니까 공격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요. 성경말씀에 그 설교나 강의가 합치되는가? 그걸 봐야 돼요. 어떤 선입감 가지고 하면 안 되고 성경말씀에 합치되는가를 봐야 됩니다. 성경말씀 안에 예수님의 관점이 들어 있거든요. 예수님이 관점에서 너도 비춰보고 나도 비춰보자 이 말이지요. ‘내가 너를 지적한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러이러한 인간은 인간도 아니고 썩어빠진 허리띠다.’라고 이야기하면 ‘왜 그게 썩었을까?’ 하고 돌아볼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왜 외부에서, 왜 하나님 쪽에서 나를 구원하겠다고, 나를 천국 보낼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그 하나님께서 ‘너는 아니야, 너는 썩었어. 너는 내 허리띠가 아니야. 너는 내 바지가 아니야. 나는 네 바지 속에 내 몸을 끼워 넣을 수가 없어. 너는 어디까지나 네 바지를 바친 척 하다가 그 깨끗한 바지를 도로 홀랑 벗겨서 자기 것으로 되가져 갈 가능성이 많은, 또 그렇게 가져오는,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인간이야.’라고 할 때 그걸 어떻게 속일수가 있습니까? 못 속이지요. 하나님을 속일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풀어야 될 중요한 게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과 유브라데가 대비가 되고 있습니다. 유브라데는 예루살렘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에요. 유브라데는 이방나라인데 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허리띠를 그냥 예루살렘에서 확인하지 않고 유브라데라는 이방종교, 이방민족에 가서 물에 담그게 하고 다시 찾아오게 해서 썩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시는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인간이 성경을 안보고 그냥 자기 자신을 봐버리면 ‘나는 착해지려 하고 내 안에 나쁜 것이 들어 있다. 그런데 나는 날마다 이 나쁜 것을 억누르면서, 나쁜 짓 하지 마, 나는 착해야 되기에 악한 사람이 되기 싫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나쁜짓, 너는 처박혀 있고 나는 착한 일만 할 거야, 라고 얼마든지 내 힘으로 악을 누르고 선을 내세울 수 있다.’라고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싶어 해요.

그렇게 생각해야 그것이 사는 보람이니까, 현실이 어쨌든지 간에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로마서 7장에 보게 되면 그 반대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착하고 싶어요. 그런데 악이 그 착하고 싶은 것을 이기고 악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두 개의 층이 있어서 나쁜 층이 선한 층을 이기느냐?

인간이 받은 성질이 어디서 받았느냐? 자기 부모한테 받은 것이지만 그 부모는 또 어디서 받았느냐? 아담한테서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물려준 아담의 성질은 어떤 성질이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할 때 따먹기 전의 성질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고 ‘에이, 따먹으면 어떤데, 한번 따먹어 보고 싶어.’라는 성질을 받았기 때문에 그 성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우리도 아담하고 똑같아요. 이게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하지 말라’ 하면 그때부터 ‘한번 해 보면 어떨까?’가 생겨요. ‘하지 말라’ 하는 그것이 오히려 그 경계선, 금지선을 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나면서 결국에는 그것을 넘어버려요. 그걸 넘을까, 말까, 넘을까, 말까, 버티는 사람, 그 사람은 외계인이지 아담에게서 나온 사람이 아니에요.

아담이 먹을까, 말까, 먹을까, 말까, 이랬더라면 오늘날 우리도 죄지을까, 말까, 이래 나오는데 이미 아담이 에라, 하고 먹어버린 상태에서 그 성질이 그대로 들어온 이상은 우리도 처음에는 먹을까, 말까, 하다가 에라! 그렇게 됩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일까, 말까, 거기에 머무른 것이 아닙니다. 에라! 하고 죽여 버린 거예요.

‘에라!’ 이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이것은 철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고 성경을 천 독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했지요. 그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했다는 말은 죽은 자가 산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예수님이 죽었다가 산자가 되면 산자가 죽은 자가 돼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지만 실은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누구만 산자가 되느냐하면 예수님만 산자가 되어 버립니다. 뭐를 경과, 통과했습니다.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속성을 받은 우리는 지금 극복을 못하고 있어요. 안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로마서 5장에서는 ‘아담이 범죄 한 후에 죄가 왕 노릇 한다.’ 되어 있어요.

자, 이제부터 오늘 본문 설명합니다. 왜 예루살렘 사람들이 유브라데까지 가야 되는가? 예레미야가 대신해서 허리띠가지고 가주지만,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예루살렘의 강퍅과 교만이 어디서 나왔느냐? 이것은 누가 점령하느냐,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그 정체를 알아야 돼요.

아까 로마서 7장에서 우리의 선한 의지가 있더라도 악한 의지가 선한 의지를 이겨서 우리를 악으로 만든다, 했는데 그처럼 뭔가 우리위에 넘쳐나는 것, 그렇게 넘쳐나는데 실력이 동등 되게 비슷하다면야, 예를 들어 축구할 때 1:1 이런 식으로 실력이 엇비슷하면 몰라도 실력이 게임이 안돼요. 더 우세한 무엇에 의해서 우리가 꽉 눌려져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무엇이냐?’ 에서 우리가 뭘 모르냐 하면 누가 나를 이불채로 우세한 힘으로 덮고 있느냐, 그 덮고 있는 우세한 힘의 실체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거 몰라도 그냥 하나님이 구원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쉽게 생각해요. 예수님께서 그냥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죽음을 통해서 부활했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 코스, 죽었다가 살아나야 되지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천국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너, 죽은 자야. 너, 허리띠 이제 썩은 허리띠야.’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네가 왜 썩은 허리띠인줄 알아? 너보다 더 센 악한 놈이 너를 누르고 있으니까 너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담 조상 대대로 그대로 물려받은 후손으로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다음 우리 질문은 ‘어떤 존재가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까?’라고 나와야 돼요. 복음을 전하면 ‘어떤 존재가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까?’ 이렇게 나와야지 복음을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목사님, 우리가 바르게 살겠습니다. 열심히 착하게 바르게 살겠습니다.’ 하는 것은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거든요. 그 부활한 힘이 있어야 구원받습니다.’ 분명히 이래 이야기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겠습니다. 이제는 테레사 수녀 이상으로 바르게 살겠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집사님, 그게 아니고요. 겉으로는 당신이 그렇게 선하고 싶은데 그것을 못하게 만들고 그것을 거부하는 힘이 여러분 속에 있다니까요.’ ‘목사님, 그걸 숨기면서 없애야지요.’ 그게 숨길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그걸 숨겨서 억지로 착하게 될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이것은 목사, 집사 예외가 없어요. 예수님 빼놓고 예외가 없는데 심지어 예수님조차 예외가 아니었어요.

인간이 무엇이냐? 인간은 구들장에 눌려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죽는 이유가 자기는 안착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착하고 싶은데 돌덩이보다 더 크고 쇳덩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누르니까 안 썩을래야 안 썩을 수가 없는 거예요. ‘뜸들이지 말고 이야기해 주세요. 누르는 것이 뭔데요?’

그것이 바로 유브라데라는 장차 바벨론 제국이 누르고 발휘하고 있는 모든 정신구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이 포로 잡혀서 온 몸으로 체험을 해야 될 그 이방나라의 사고방식들, 그게 바로 지금 우리 내부에서 아담으로 전수받은 우리보다 더 센 우리, 나보다 더 센 나로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나’가 두 개 있는데 나보다 더 센 나로서 작동하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구약에서 말하는 애굽이었습니다. 애굽, 같은 함의 땅이었어요.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자기 내부에 애굽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희희낙락거리면서 좋아라고 빠져나왔어요. 이런 겁니다. 세례 받을 때 ‘이제 당신이 죄 씻음 받고 물로 세례 받음으로서 당신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신자이기에 오늘밤에 죽어도 구원받습니다.’ 하니까 희희낙락이죠.

이제는 자기가 죄 안 짓는 줄 알았어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했다는 말은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얼마나 썩었으면 주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하는가? 그 다시 살아나신 것을 통해서 사실은 내가 살았다 하나 죽은 채로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뜻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깜깜해야 돼요. 사람이 깜깜해야 그때서야 빠져나갈 빛이 보입니다. 온 사방이 훤해 버리면 어느 길도 다 구원되는 길인 줄 알고 착각합니다. 이 길도 막히고 저 길도 막히고 온 천지가 깜깜할 때 비로소 ‘나 예수는 길이요, 나 예수는 진리요.’ 하는 것이 의미가 있고 감격으로 오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할 때 ‘나는 생명이 없는 존재임’을 체득하면 할수록 ‘나는 생명이요.’ 하는 것이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그야말로 내 재산 다 날아가도 ‘나는 생명이오.’ 그 하나에 너무 너무 즐거운 겁니다. 감사한 겁니다. 바로 교만이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애굽에서 빼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가 잘나서 훌륭해서 지금 자기가 훌륭할 수 있는 자질이 갖추어져서 예루살렘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줄 알고 착각하는 그것이 바로 교만이었고 강퍅이었습니다.

말로? 말로 안 됩니다. 이것은 진짜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그것이 활개 치는 나라에서 맛을 봐야 돼요. 그 짐승의 맛, 우상의 맛을 봐야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에 보면 나오지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땅에 있는 국가를 완전히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지금 인간들이 문명을 이루고 살지만 바다에서 올라온 그 혼란, 뱀, 악마의 힘이 땅의 힘을 눌러버리면 우리는 끽 소리 못하고 거기에 눌려있게 되는 겁니다.

이게 오늘날 우리의 형편이에요. 깜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깜깜할수록 좋아요. 깜깜하기 때문에 ‘저 세탁소 바지 내 것인데 왜 주님이 입고 다니지?’ 그런 소리 안 나오지요. 주님께서 바지 입고 다니는데 ‘주님, 그건 제 바지입니다. 백화점에서 산 새 바지인데 왜 주님이 입고 다닙니까? 주세요. 내 바지입니다.’라는 소리가 안 나오지요.

주님께서 우리 자신을 허리띠로 매고 있으면 우리는 허리띠 자체를 자랑하면 안 됩니다. 허리띠 자체를 자랑하지 말고 내가 접촉하고 있는 이 몸에 맞는 허리띠로 된 것 자체가 영광스럽고 천사도 부러워할 귀한 신분인 겁니다. 허리띠가 허리띠자체를 사랑하면 안돼요. 내가 날 사랑하면 안 되고 나같이 못난 인간을 허리띠로 사용해 주시고 주께서 주의 종으로 사용해 주신 그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되지, ‘나 너무 잘났어.’ 이래 되어버리면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대로 교만이고 강퍅입니다. 그것은 이방나라,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고요.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이라면 예레미야의 허리띠는 자기백성입니다. 예레미야가 수고스럽게 이방나라에 가서 허리띠를 물가에 숨겨놓았다가 다시 찾아와서 썩은 것을 확인해야 되는 이 작업은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락날락 하면서 하는 작업이에요. 예레미야가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예레미야처럼 와서 우리를 들락날락 하면서 ‘너는 썩었거든! 너는 교만하거든!’라고 우리 내부의 우리보다 더 센 악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이것을 알게 된 것, 나 자신이 아담의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것, 이미 주님께 이 모든 공로, 예수님의 공로로 이런 인간도 주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죽고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사실은 이미 우리가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죄를 이길 수 없기에 죽은 자요 저주를 피해갈 수 없기에 죽은 자인 것을 왜 진즉에 몰랐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고 예수님께서 대신 죽게 하셨는지 이제는 주님의 그 용서하심과 길과 진리 됨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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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