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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렘 12:14-17 (심판과 긍휼)우리교회예레미야

렘 12:14-17 (심판과 긍휼)

이름 : 우리교회(IP:118.222.205.170)

본문 : 예레미야 12장14-17절
제목 : 심판과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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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09-12-23 22:12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42강-렘12장14-17(심판과긍휼)-jer091223.hwp

우리교회

09-12-23 22:12

심판과 긍휼

2009년 12월 23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12:14-17

(렘 12:14, 개역)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렘 12:15, 개역)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렘 12:16, 개역)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렘 12:17, 개역)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본문은 짧지만 중요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방민족들 가운데 뽑아내어 의식이 달라지게 만들어서 그들 가운데 다시 심을 때,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게한 민족들은, 이 달라진 이스라엘을 본받지 아니하면 멸망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 동원된 민족인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 땅에다가 ‘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주어야 될 위치에 놓여 있는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세상의 중심부에 놓여 있는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장소에 가던, 바로 그곳이 이 세상의 중심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면서 이처럼 중심부를 따로 만들어놓으시고 그 중심부에서 나오는 힘으로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자 할 때는 이 땅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중심부의 활동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창세기 2장에 벌써 나옵니다. 에덴동산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에덴동산 한 가운데는 두 개의 특별한 나무가 있으면 그 중심부에서 물이 흘러나와 에덴동산 전부를 먹여살리는 구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조를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 구조를 알면 실은 하나님의 뜻을 전부 안 것이 됩니다. 에스겔 후반부에 보면 새성전의 설계도가 나오는데 그 새성전의 특징이 물이 흘러넘쳐서 주변에게 생명을 나누어주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그 물이 나오는 지점이 성전의 지성소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요한계시록 22장에 봐도, 천국에서 만물을 살리는 생명의 물이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물입니다. 이처럼 중심부없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따로 뽑아내시는 겁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인간이 만든 세상이라고 여기고 그 세상을 계속해서 더욱더 인간의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분투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보고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데 그 원리가 자신들의 지혜와 용기와 결단력으로 앞 길을 헤쳐나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대로 그들은 움직였습니다. 그들 이스라엘이 지나간 자국과 역사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흔적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이스라엘을 가지고 말씀의 내용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구약의 그 이스라엘이 오늘날 성도들입니다. 보통 사람이 성도가 되면 바로 이 말씀의 사명에 묶이게 됩니다. 이 사명으로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기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면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그냥 하늘의 선물을 창고에 방치하는 식이 아니라 그 은혜를 우리들 자신을 달라지게 만들어버리는 힘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즉 ‘나는 나의 것이다’고 여겼던 것에서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다’로 바뀝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달라지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와서 자신이 희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듬뿍 축복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는 방식과 일치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할 자격이 박탈당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성도에게 덮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기거하는 가나안 땅은 원래 하나님께서 상속해주신 땅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이방 나라를, 예를 들면, 암몬, 에돔, 모압, 블레셋 같은 나라들이 탐을 내고 침범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 민족 가운데서 유다 이스라엘을 따로 뽑아내셔서 잠시 다른 나라에 포로 잡혀 가게 하시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조치이며 결국에는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 때 돌아오는 그들은 예전같이 않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셨고 사랑을 행사했는지를 압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접하고서도 만약 이방민족들이 여전히 우상을 섬긴다면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로 자기 본토로 돌아오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면을 새롭게 알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동안 전쟁을 치렀습니다.

전쟁이란 적과의 충돌입니다. 과연 그 적이 누굴까요? 인간이란 고통을 당하면 분노합니다. 자기 자신의 본색으로 급히 되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누구야, 나를 힘들게 한 작자가! 숨지말고 정체를 드러내라”는 식으로 분개합니다. 이점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준 사랑과 긍휼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이 세상에 대해 분개하시고 분노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분노와 분노의 충돌이 전쟁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알았던 것은 바로 자신들의 중심성이며 그 중심부로 있게 한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대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2:2-3에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중심부에 놓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랑하는 자기 자신 이삭을 바친 겁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천하의 더러운 자인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제공했다는 그 아픔과 사랑에 동참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있는 자가 진정 오늘날의 성도요 이스라엘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 이런 사명감과 사랑에 감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식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정신이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정신입니다. 자기로 인하여 자기가 사는 것, 바로 이점에서 성도는 돌아서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의 포부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포부로 자리잡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2-25 17:32

20091223우리교회수요설교(렘12:14-17/심판과긍휼)

2009-12-25 12:42:19 녹취 : 오용익

20091223우리교회수요설교/예레미야 12장 14-17절/심판과 긍휼(이 근호목사)

(기도)

“찬송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시도다.”

하나님,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가 이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시오니 저희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정립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이시간 우리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말씀으로만 구원받지 절기나 교회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이시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 성경이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 거기에 관심을 두면서 살기로 다 같이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온통 절기나 교회에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는 일인 줄 그렇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같이 편승하지 않았는지 그들의 분위기에 휩싸여서 스데반집사가 갔던 길 사도바울이 갔던 길 주님이 갔던 길과 다른 길로 가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양보도 없고 타협도 없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2장 14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071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12:14-17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 내리라 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그들이 그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글은 짧은데 내용은 상당히 풍부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하는 일, 노동과 하나님께서 이 땅을 향하여 일하는 것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봐도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벌이셨는지 우리에게 감으로 확 다가오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뭐냐?

‘뽑아낸다’는 거예요. ‘뽑아낸다’는 것이 몇 번 나오지요. ‘내가 너희 중에서 뽑아내리라.’ 그래서 이 ‘뽑아낸다’는 말은 그 전에 심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었는데 심은 것을 다시 뽑아낸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일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심고 그 심은 것을 다시 뽑아내면서 주변에 남아 있는 나라들,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뽑아낸 사람처럼 살지 못하면 너희들은 심판받는다.’ 그 이야기입니다.

복잡하지요? 그냥 평범하게 ‘열중쉬어! 차렷!’ 해서 일렬로 차례로 세우고 ‘자, 내 말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그들 속에 심으시고, 심어놓고 다시 그걸 뽑아내시고 뽑아내면서 그 뽑힌 민족 말고 다른 민족들이 ‘야, 전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뽑혔다면서, 그 뽑힌 민족이 어떤 민족이야, 라고 관심을 가지면서 뽑힌 그 민족과 같이 살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멸망 받는다.’라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이에요.

상당히 복잡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하여 일을 할 때 항상 중심에서 나오는 힘에 의해서 힘이 퍼지면서 세상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에덴동산 이야기에요.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왜 나왔느냐 하면 그 에덴동산의 그 구조가 세상 끝날 까지 절대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은 그 중심부에서 나오는 두 가지 나무의 힘에 의해서 주변이 사는 거예요. 이것은 에스겔 마지막 대목에도 나옵니다. 에스겔 끝부분에 보면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면 그 성전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물이 나와요. 아까 이야기 들어보니 우리교회 물 센다 하던데…물론 그게 생명수는 아니겠지요. 성전에서 물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우리교회에서 물이 나오면 그것은 고장 난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중심에서 나오는 물이 없으면 이 세상이 죽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에스겔뿐만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성경 제일 마지막 장에 보면 물이 나와요. 그것은 바로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와서 그 흘러나온 생명수가 그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을 다 먹여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하나님께서는 일체 누구에게도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 구조를 먼저 이해하면 사실은 성경 다 안 셈이 돼요. 이 구조만 봐도 ‘아, 중심부에 있는 것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구나.’ 마치 이런 겁니다. 어느 공장의 보일러가 폭발해버리면 공장 다 날아가지요. 그 보일러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심부분에 있습니다.

차 안에 엔진이 있는데 그 엔진이 고장나버리면 아무리 새 타이어 갈아 넣어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중심부를 찾아라. 중심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겁니다. 제가 방금 한 이 말은 주변에 있는 우리가 아무리 착해도 그걸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있는 내가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처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넣어주지를 않습니다.

‘네가 물을 마셨느냐?’ 우리는 ‘무슨 물 말입니까?’ ‘아니,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그 물이 있잖아.’ 우리는 ‘금시초문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그 성경말씀을 내가 지키면 그 지킨 당사자인 내가 구원받는다, 우리는 지금 그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그 구조가 자기중심 구조가 되어 가지고 천국에서 탈락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10년 20년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제가 가슴이 아픈데요. 간단한 건데 안 달라져요. 뭐냐 하면 이 세상이 사람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이고 이 세상이 예수님의 것이니까 이 세상에 포함되어 있는 나도 예수님 거예요. 간단하지요. 이렇게 간단한데 달라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오는 이야기고 성경전체가 이 이야기 하는 건데,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라고 성경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성경책을 탁 덮는 그 순간부터 ‘내가 성경책을 2만원주고 샀고 내가 성경을 방금 읽었고 성경을 펼치는 것도 내가 내 힘으로 펼친다.’ 하면서 반드시 내가, 내가, ‘내가’를 거기에 집어넣고 모든 것을 해석해 버리니까, 방금 들었던 대로 ‘너도 하나님 것이니까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하는 것은 금방 잊어버려요.

제가 이렇게 하면 어떤 사람은 ‘목사님, 그 말은 듣기는 좋습니다만 이 세상에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예수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는 아무도 구원 못 받습니다.’라고 반박이 들어올 겁니다.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두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스라엘은 내게 속한 내 백성이다.’ 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편에도 나오고 특히 우리가 자주는 대하지 않습니다만 들으면 다 아는 이야기, 베드로전서 2장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베드로전서 2장 9절 하나만 해도 우리가 평생토록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고 돈 없어서 걱정했던 이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걱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은, 죽을까 싶어서 겁나는 것은 여전히 ‘내 몸은 내 것입니다.’ 하는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든지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다른 이웃나라 사람들을 본다든지 드라마를 보든지 주변 전체에서 왕왕, 웅성웅성 쏘아대고 모든 뉴스에서 쏘아대는 화살 같은 것이 뭐냐 하면 ‘각자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니 알아서 잘 관리하세요.’ 그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다니면서 누누이 들었던 것 중에서 어느 것도 ‘내 몸은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유명한 영어문장이 있잖아요. 'Boys be ambitious.' 그 안에, 그 배후에 담겨 있는 정신은 뭡니까? ‘네 몸 네가 알아서 잘 해라.’ 그런 뜻이라 이 말입니다. ‘네 몸이니까 네가 알아서 잘 해라. 만약에 간수 잘 못하면 너 지옥 간다. 저주받는다. 거지꼴을 못 면한다.’ 그런 이야기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주 독특하고 특이한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그 인간들이 우리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는 뭔가 추가 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생겨났고 인도함을 받는 것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대로, 그 코스대로, 그 철도노선대로 이스라엘이 인도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기들도 우리하고 똑같은 인간이라도 그들도 자기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요.

마치 오늘날 우리의 앞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우리와 같은 보통 인간이고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더 두뇌 명석한 인간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갔던 코스, 코스는 다 하나님께서 사람하고 의논하거나 타협하지 아니하고 일방적으로 몰아넣으신 그 길이 이스라엘이 갔던 자국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것이 옛날이야기로 그친다는 말이 아니고 ‘오늘날 성도 너희들이 옛날 이스라엘과 똑같은 짝’이라는 말이지요. 똑같은 방식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말씀으로. 그렇다면 그때 이스라엘 입장이나 오늘날 성도 입장이나 같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궁금해서 묻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꾸려 가는데 왜 우리는 우리 인생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꾸려가지 못하도록 차단시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인도하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물으면 정답은 간단해요. 뭐냐 하면 ‘너희가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겁니다. ‘너희가 세상의 중심이다.’ 바로 그 중심이야기가 오늘 본문이야기입니다.

14절에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산업으로 준 산업을 다치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게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은 그들 중에서 뽑아내리라.” 이게 보일러거든요. 엔진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 시대마다 유일하게 참 하나님의 모습과 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알려줄 수 있는 역사적 존재가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내가 알아서 밥 먹고 살란다, 이것은 우선순위가 아니고 ‘하나님이여, 내 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방출되어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말씀대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옵소서.’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존재이유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는 맞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현실성이 뚝 떨어지는 이야기죠.

이것을 들은풍월이 있어서 어디서 듣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자식 낳고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노동해서 살려면 방금 제가 한 이야기는 현실성이 뚝 떨어지는, 그저 하나의 관념이고 이론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아까 불렀던 찬송가 가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361장 후렴구에 보면 “주의 제단에 산 제사 드린 후에 주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이라고 되어 있어요. ‘주의 제단에 산 제사 드린 후에’가 무슨 말이냐 하면,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드는데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범죄 해서 나 밖에 모르잖아요. 나밖에 모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거거든요. ‘너 중심에서 말씀이 이끈다는 그 말씀중심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달라져야 된다’는 이 말에 제가 할 말이 많아요. 교인들이 안 달라집니다.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교인들이 버텨요.

개 끌고 갈 때 앞발로 죽을 똥 살 똥 땅이 패일정도로 버티잖아요. 목사가 편하게 ‘여러분, 달라져야 됩니다.’ 하면 ‘안 달라져!’ 버티는 겁니다. 달라지는 그것이 뭐가 그렇게 속이 상해서, 뭐가 그렇게 분통하고 원통해서 안 달라지려고 합니까? 사람이 지금 달라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지금 이 나이까지 내가 이 생활 할 때까지 했던 습관이 있습니다.

그 습관대로 살아서 이만큼이라도 살았는데 만약에 지금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일임해버리면 그것은 곧 나에게 죽음을 의미하거든요. 꼭 갑자기 굶어죽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까마귀가 와서 우리 집에 양식 주는 그런 식으로 산다면 옛날 나의 삶에 비하면 그게 사는 것이 아니지요. 그게 못 죽어서 환장하는 것이지 그게 사는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만약에 달라져야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그것이 범죄 한 것이 되고 하나님께 죄가 되기 때문에, 나는 잘난 맛에 살아가는데 졸지에 나는 그동안 죄만 지어 왔다는 그러한 질책을 받는 것이 우리의 자존심한테는 영 허락이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데 그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거기다가 교회까지 왔으니 교회까지 온 그것으로 인해서 더 잘난 자가 되고 싶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목사님이 ‘달라져야 됩니다. 여러분의 것은 이미 여러분의 것이 아니기에 내 몸은 내 것이라는 것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한다면 이것이 정답이냐 아니냐를 놔둬버리고 그렇게 달라지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장 28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하잖아요. 마음에 하나님두기는 싫어하면서 교회는 나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것은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겁니다. 뭐냐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하니까 조금 힘드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팍팍 주셔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의 변동이 없이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만들어 주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내가 희망하는 것, 내가 소망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을 놀라운 기적으로 축복해주셔서 나를 지금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살게 하옵소서.’라는 노림수인 겁니다.

이거 주님한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 있을 수 없느냐? 우리가 언제 분노합니까? 인간에게 고통이 오면 분노해요. 사람이 아플 때 다시 한 번 자기를 봅니다. 보면서 분노를 야기하지요. ‘누구야? 나를 괴롭게 한 자 나와! 숨지 말고 빨리 나와. 나한테 혼 좀 나야 되겠어. 누가 나를 힘들게 하는데.’ 그런데 우리는 내가 분노하는 것만 생각했지 하나님께서 분노해서 뽑아낸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분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플 때 분노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아플 때 분노해요. 하나님이 아플 이 뭐가 있겠는가, 하겠지만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주고 어린양을 준 그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사람들에게 짓밟힐 때 그때는 분노해요. 이야기가 좀 복잡해지는데 간단하게 풀어봅시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이 축복과 저주의 기준을 줬습니다. ‘아브라함에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아브라함에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브라함이 중심인데요, 아까 중심이야기 했지요.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중심이듯이 아브라함 그 시대에는 아브라함이 중심인데 아브라함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아브라함아, 네 자식을 바치라.’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럴 때 아브라함은 무슨 체험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아픈가,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몸소 얼마나 아파해야 되는가를, 얼마나 희생해야 되는가를, 그 하나님의 아픔에 같이 동참하는 기회를 아브라함은 갖게 됩니다. 미워하는 자식이 아니고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그것도 남의 손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제물로 그냥 사라지게, 죽게 만드는 겁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들고 죽는다는 것이 겁이 나느냐 하면 죽음이라는 것은 남아 있는 삶이 없다는 뜻이에요. 남아 있는 삶이 없으면 왜 겁이 나느냐 하면 지금 꿈꾸고 소망하는 것이 전부 다 부도수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죽는 게 무서워요. 나이 90된 할아버지가 아직도 꿈을 꾸는 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 삶이 있기 때문에 꿈을 꾸고 희망을 갖는 겁니다. 사람은 희망 때문에 살아요.

경마장에 가면 말들이 경주를 하잖아요. 외국에는 개들이 경주하는 게 있어요. 개 경주하는 것을 보니까 개 앞에 뭘 하나 달아요. 개가 가장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달아서 개는 관중들이 고함지르고 박수치고 하는 것과 관계없이 자기 앞에 보이는 먹잇감만 먹으려고 달려들다 보니까 나중에 1등도 하고 꼴찌도 하는 거예요.

사람은 개입니다. 개하고 똑같아요. 남이 어찌되든지 간에 자기땅값만 올라가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고 자기 땅값 내려가면 우리나라 나쁜 나라에요. 이민 가 버립니다. 자기 앞에 있는 고기밖에 몰라요. 사람은 자신이 늙어가니까, 특히 엄마 같은 경우에 자식을 자기 앞에 있는 고기라고 여기고 자식에게 모든 투자를 다 하면서 자기는 못 먹어도 자식은 먹이는 식으로 하는 것은 자식이 자기에게 희망을 주는 거예요.

못된 자식 같으면 제 손으로 죽이고 싶은데 그게 아니고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가장 사랑하는 독자에요. 내가 공을 들이고 내가 시간과 노력을 다 퍼부었던 그 자식을 바쳐야 산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귀히 여기시는 독생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을, 마귀에 합세해서 더럽고 추한, 나이트클럽 다니면서 춤만 추면서 온갖 나쁜 짓만 일삼는, 저질스러운, 그야 말로 구출할 하등의 가치도 없는 그런 인간을 위해서 그 독생자를 내놓을 때 그 아픔, 그 아픔을 인정하지 않을 때 주께서는 분노합니다.

그게 바로 전쟁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도를 뽑을 때는 달라지는데 제가 달라진다고 했는데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매우 의아해 할 겁니다. 제가 달라진다고 하니까 ‘목사님, 그게 아니고 그냥 공짜로 받는 거잖아요?’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공짜로 받는 것을 은혜라 하는데 그 공짜로 받는 것을 그냥 집안에 두는 것이 아니고 그 공짜로 받은 은혜로 우리가 달라져요.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은혜라니까요.

우리는 옛날부터 그대로 있고 은혜는 은혜대로 한구석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중앙으로 심어 넣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끌어감으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소유된 백성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낸 ‘그 기이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게 오늘날 이스라엘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보고 ‘성도는 달라져야 합니다.’ 하니까 그 교인이 하는 말이 ‘예, 받은 은혜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래요. 받은 은혜 간직하는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가 여러분 속에 있어서 받는 것 따로 나 따로가 아닙니다. 안에서 섞여 버립니다. 섞여 버리면 은혜가 나의 주도권을 쥐고 나는 완전히 종속되지요.

그러면서 ‘나는 받은 은혜만 감사합니다.’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그게 달라진 거예요. 자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주 어려운 대목이 나옵니다. 16절인데 두세 번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몰라요. 제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사는 여호와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중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참 복잡하지요. 이런 뜻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땅,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상속부동산으로 줬는데 그 주변의 이방인들인 모압, 암몬 이런 나라들이 그 상속된 나라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서 막 공격을 해 대는 겁니다. 오늘날 마치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있는데 팔레스타인, 이게 블레셋인데 영어로 팔레스타인이에요, 그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 내 땅이라고 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안내놓지요. 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공짜로 준 땅인데 여호와를 안 믿는 저쪽에서 땅을 달라고 하니까 줄 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핵폭탄도 준비해놓고 미사일 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다 뭉개버리잖아요. 성경말씀에 그리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땅은 자기네 땅이라는 겁니다.

독도는 누구 땅입니까?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근거가 뭐에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근거는 옛날 문서에 독도가 우산국이라는 영토에 포함되어 있는 한국 땅이기에 한국 땅이라는 겁니다. 미래의 어떤 사건이 그 전에 있던 사건을 무효화 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전에 이미 땅이 구축되었으면 계속 구축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땅을 치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느냐? 그 유다백성을 뽑아내서 잠시 다른 나라에 포로 잡혀가게 해서 포로 잡혀 가는데,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서 이 땅에 살게 될 때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을 섬겼습니다.

바알을 섬긴다는 말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자기욕망대로 사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내 몸은 내거라고 했을 때 나오는 모든 것’ 이래 생각하면 돼요. ‘내 몸을 내거라고 여기고 하는 모든 짓’, 내 몸을 내거라고 여기고 교회 와서 철야하고 금식하고 기도할 때 그 짓이 바로 바알, 우상 숭배하는 짓입니다.

그 모든 짓, 목사가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설교하고 강의하는 것, 그게 바로 바알을 섬기는 거예요. 그 짓을 유다백성이 하니까 그것을 그대로 뽑아서 다른 나라로 잠시 포로 잡혀가게 했는데 돌아올 때는 어떻게 했느냐? 돌아올 때는 여호와의 도를 알았어요. 이게 뭐냐?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마치 애굽에서 포로 잡혔다가 다시 나와서 이스라엘 된 것처럼, 다시 애굽 그보다 더 센 바벨론 나라에 잡혔다가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사랑과 분통과 아픔을 이해하면서 돌아오게 된 겁니다.

돌아왔을 때 그 다음이 문제에요.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나라 너희들은 만일 돌아온 이스라엘을 본받지 못하면 너희들이 이제 죽을 차례다.’ 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내용이 그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어떤 사명감이 있어요. ‘봐라. 난 죄인 중에 괴수지만 십자가 피로 구원받잖아. 봐라. 이런 횡재가 어디 있노.’

그러면 저쪽에서 ‘그래서?’ ‘그래서 이제는 나는 내 것이 아니고 주의 몸이 되었지. 주의 제단에 산 제사 드린 후에 이제 주님께서 내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동행하게 되었단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방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기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중심이 없이 일하지 않는다. 중심이 있는데 반드시 그 중심으로 우리를 세웠다. 두 번째,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주께서 마음대로 쓰시는 주의 몸이 된다는 것.

방금 이 말씀을 설교로 들었습니다. 성경을 보았습니다. 딱 덮었습니다. 한 2초 갑니다. 설교시간 끝났습니다. 이제 성경 덮었습니다. ‘뭐 먹고 사노? 이제부터 뭐 먹고 사노?’ 다 잊어 버렸어요. 완전히 다 잊어버렸어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성경말씀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이 말씀대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위상이 그만큼 대단한줄 몰랐습니다. 저희들은 밥이나 먹고 살면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 몸이 내 몸이면 결국 흙이 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데 흙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과 구원과 고통과 아픔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몸을 주의 몸으로 여기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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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0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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