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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1213우리교회주일설교녹취(눅 1:67-80/사가랴의찬양)자유게시판누가복음

20091213우리교회주일설교녹취(눅 1:67-80/사가랴의찬양)

이름 : 오용익(IP:211.195.38.193)

20091213 우리교회주일설교/누가복음 1장 67-80절/사가랴의 찬양(이 근호목사)

(기도)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셨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그동안 무엇으로 기뻐하고 무엇으로 즐거워했습니까?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고 자기 것으로 기뻐했던 모든 잘못된 것을 다 버리고 여호와로 인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주심을 인하여 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장 67절에서 80절까지 보겠습니다. 신약성경 88페이지입니다.

누가복음 1:67-80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이 칸이 내려와 있지요. 이것은 찬양, 노래, 또는 노래로 된 예언이기 때문에 칸이 내려져 있습니다. 옛날 성경책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 찬양은 사가랴라는 사람이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뭘 배웠다고, 뭘 안다고 이런 예언의 말을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 67절에 보면 “그 부친 사가랴가”라고 해놓고 그 다음에 중요한 분이 등장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과 예언이라는 것은 사람의 솜씨가 아닙니다. 사람의 지식이 아니고 무엇이 임해야 되느냐 하면 성령이 임해야 미래가 탁 트이는 겁니다.

미래가 쭉 자신 있게 전개될 수 있는 겁니다. 원래 연초 되면 점치잖아요. 사주팔자 보고 토정비결 보고 하는데 그것이 성령에 의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에 의한 예언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히 구원하고는 상관없는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구원이라는 것은 앞에 뭐가 붙어요.

77절에 나옵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라고 되어 있어요. 모든 구원은 반드시 앞에 뭐가 붙느냐 하면 ‘죄 있거든. 죄 있는데 그 죄에서 네가 빠져 나왔단 말이야.’라는 식의 구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저 구원받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거든 그 앞에 뭘 붙여야 됩니다. 뭘 붙이느냐 하면 ‘저 죄 사함 받고 싶어요.’라는 말을 해야 돼요. ‘저 죄 사함 받고 싶어요.’ 참 건방지지요.

죄 지을 때는 언제고, 죄 지을 때는 무슨 맘으로 죄 지어놓고 이제 와서 ‘저 죄 사함 받고 싶어요. 용서, 백 프로, 몽땅 죄 씻음 받고 싶어요. 80퍼센트도 아니고 90퍼센트도 아니고 일체 남겨두는 것 없이 하여튼 지은 죄 족족 주스 바닥까지 빨아먹듯이, 백퍼센트 모조리 죄 사함 받아서 구원받고 싶어요.’ 이래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죄 사함에 대한, 죄사하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는 것을 연결시켜 줘야 됩니다. 이것이 연결된 상태에서 구원을 이야기 해 줘야 합니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아무나 가는 데가 아니거든요. 천국이라 하는 것은 천국입구에서 천사가 이야기 할 거예요.

‘너 이 땅에서 죄 사함 받았어?’ ‘금시초문인데요. 그냥 교회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요? 그냥 세례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요.’ ‘아니거든? 너 죄 사함 받았어?’ 그런데 죄 사함 받았느냐 하는 이 질문을 어떤 사람은 오해해서 ‘너 죄지은 적 있어?’ 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세상은 날 때부터 죄에요.

태어나서 밥 먹고 살려고 하면 먼지 묻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삐걱거리면서 살기 마련이고 성질내기 마련이고 성질내면 피해보는 사람 있기 마련입니다. 이 땅에서 죄 없이 산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 이 집사님한테 어떤 분이 ‘내가 죽고 나면 내 재산 다 네가 가져라.’라고 상속을 약속했다면 그 다음부터 우리는 그 사람이 죽기를 학수고대합니다.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나서 우리는 그런 죄가 있는 줄도 모르지요. ‘재산이 한 200억이 되는데 내가 죽고 나면 그 200억 재산 다 네가 가져라.’고 했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기도는 이중구조가 되지요. ‘하나님 아버지, 200억 가지고 선교하는데 헌신하겠습니다.’ 이것은 건성이고 겉으로 폼만 내는 것이고 속으로는 ‘죽어라! 죽어라! 제발 좀 죽어줘.’ 그래서 남자들의 소망이 뭐냐 하면 돈 많고 명 짧은 과부하나 만나는 거예요.

구원이란 문제는 반드시 죄 사함과 관련된 것이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구원에 해당되는 사람이란 오늘 본문 67절에 보면 조건이 붙어 있는 것이 뭐냐? 성령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아하, 죄사해야 천국 가는구나.’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이래 이야기하면 ‘그까짓 거 성령 받지 뭐. 그게 뭐가 어렵나?’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6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가랴가 잠시 동안 벙어리가 되어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습니다. 사가랴가 누구냐, 세례요한의 아버지에요. 세례요한이 뭐하는 사람이냐, 세례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읽은 것처럼…, 설교 시작부터 들은 사람은 딱 감이 오지요, ‘구원자 예수님, 아하 내 죄 씻어줄 분.’

왜냐하면 구원 자체가 죄 씻음 없이는 구원이 안 되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구원자다.’ 딱 감이 오잖아요. 우리 힘으로는 구원되지 못하고 죄를 씻어주고 구원해 줄 분이 따로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 감이 오잖아요. 그 구원자가 온다는 것, 분위기를 잡는 사람, 그 사람이 세례요한이에요. 그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사가랴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가랴의 아들이 누구냐, 세례요한이죠.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사가랴고 사가랴의 아들이 세례요한이에요. 왜 같은 말을 두 번씩 하느냐 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구원받습니다. 그게 성경에 나오는 진리에요.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서 구원받고 이삭은 야곱을 통해서 구원받고 야곱은 요셉을 통해서 구원받고 최초의 인간 아담은 누구한테 구원받느냐 하면 그 아담의 자손으로 오신, 다른 말로 하면 아담의 대대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아요.

후손이 선조를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신약이 아니고 구약 때 같으면 구약의 성도들은 모든 것이 자기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69절에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금 성경에 나오는 이 어려운 용어들을 쉽게 풀이하고 있는 겁니다.

자식이 부모를 구원해요. 왜 자식이 부모를 구원하느냐? 부모가 하는 역할은 뭐냐 하면 이 땅에서 자식을 낳고, 낳고 자식을 낳는 역할을 해요. 사람이 사람을 낳고, 또 낳아서 하나의 혈통을 이루는데, 자식이 선조들을 구원한다는 말은 그러면 그 자식은 맨 이 땅에 속한 자식이 아니냐?

이 땅에 속하는 역할은 선조들, 선배들이 하고 그 선배들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면, 땅에서 하늘로 또는 육에서 영으로 넘어가는 기능을 해 주실 분이 바로 다윗의 후손에서 태어난 분입니다. 사람이 육에서 자식을 낳아봐야 맨 육이에요. 여러분 집에 가서 자식 붙들고 ‘얘야, 네가 잘 돼야 내가 잘된다. 이 부모는 엉망이라도 너는 똑바로 해. 나는 담배 피워도 너는 담배 피우지 마.’ 이런 식으로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빠, 엄마!’ ‘왜?’ ‘나는 크면 아빠 엄마처럼 될 거예요. 나는 별 존재 아닙니다.’ 그게 정답이죠. 후손이라고 해서 다 후손이 아니고 육에서 영으로 넘어갈 수 있는 후손이 구원하지 육에서 육으로 빠져버리는 그런 후손은 소용없습니다. 그런 자식은 부모를 구원 못해요. 아브라함에서 태어난 많은 자식들 가운데서 구원자는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그것을 가지고 갈라디아서 3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여럿이 아니고 오직 하나이니 예수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어떻게 해서 육에서 영으로 넘어갔느냐? 아담의 자식으로, 다윗의 자식으로 오신 분이 우리 보기에는 같은 인간이에요. 예수님도 우리하고 같은 인간인데 예수님 아버지가 요셉이 아니고,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신 것이 그 엄마 마리아가 아니에요.

여자를 통해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예수님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유일하게 아들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냈다는 말은 죄 씻어주는 분은 예수님이지만 그 죄 씻었다는 취지는 사실은 예수님취지가 아니고 누구 취지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갖고 있는 계획을 아들이 순종함으로써 일구어 낸 업적이죠. 이것은 숨겨진 것이고 감추어진 거예요.

그런데 그 마지막 오신 그 아담의 아들, 다윗의 자손이 사람을 건질 때 낚싯대 하나 들고 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죄를 대신 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십자가방식으로 구원했다 이 말이죠.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아하 구원이라 하는 것은 죄 사함이 없이는 구원이 안 되니까…, 예수님께서 죄 있는 채로 그냥 낚싯대로 건지듯이 구원해 버리면 그냥 죄 있는 채로 건짐 받잖아요.

죄 지은 당사자에게 스스로 죄를 풀라고 요구할 수가 없어요. 죄짓는 마음 따로 있고 죄 푸는 마음 따로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죄 지을 때 어떤 마음으로 죄짓겠습니까? 죄 짓고 싶어서 죄지었다는 말이지요. 그 성질이 어디 가겠어요? 돼지가 씻어놓으면 진흙탕에 또 들어가고 씻어놓으면 또 들어가는 것이 돼지의 본성이고 개가 남 토해놓은 것을 먹는 그런 것이 죄인데, 그게 인간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인간에게 인간의 죄 씻음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죄 씻어주는 것을 하나님의 방침에 의해서 아들을 보내서 구원하는 겁니다. 그걸 오늘 본문에서 78절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했습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상당히 어려운 말인데 쉽게 풀이하면 ‘불쌍히 여겨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줘서 하나님께서 그런 조치를 하신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냥 ‘빛이 있으라’ 하기만 해도 될 문제인데 구태여 귀찮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고 죽으시고, 그런 일을 힘들게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하겠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래 이야기 하셨어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평신도들도 다 아는 유일한 외국말, 아람어입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다고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들이 감을 못 잡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오셨다며?’ ‘예’ ‘그런데 방금 당신 뭐라고 했습니까?’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했지요.’ ‘예 그랬지요.’ ‘그러면 당신은 아버지께 버림받으러 오셨습니까?’ ‘예’ ‘왜 버림받아야 됩니까?’ ‘네가 버림받아야 되거든. 바로 죄지은 네가.’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예수님의 죄는 자기 죄가 아니고 구원받을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진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버렸다면 하물며 우리는 뭐가 성립이 안 되느냐 하면 ‘하나님, 우리 천국 보내주세요.’ 이게 성립이 안 되지요.

심지어 구원하러 오신 분도 버림받는다면 죄지은 주제에 건방지게 ‘죄는 지었거든요. 그런데 천국은 가고 싶거든요. 오래는 살고 싶거든요. 천당 가서 골프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절 구원해주세요.’ 이런 것은 애초에 십자가 앞에서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나가 있어!’ 하고 버려버리죠. 그 다음에 건져주는 것은 죽은 예수님을 주께서 건져주듯이 주님께서 불쌍히 여긴 자만 골라서 건져줘요.

손든다고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손 내려!’ 손 다 내리고 불쌍히 여겨주는 자만 구원되는 거예요. 제가 지난 금요일에 서울 가서 강의하면서 이랬습니다.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고 했어요. 예수 믿으면 지옥가고 예수님이 믿어지면 천국 갑니다.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믿겠다는 것은, ‘내가 죄지었다. 버림 받아야 마땅하다.’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아직도 여전히 나에게 손들면 구원되는 줄 알고, 그런 욕심이 있는 자는 아직도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죠.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 십자가 안에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가 있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저 십자가의 피가 용서 안 되는 나를 용서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아래 두십니다. 모든 사람을 심판아래 두심으로 말미암아 그 심판아래서 구원받는 방식에 대해서는 일체 인간들이 제시하는 모든 대책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라는 것이 이단이 되는 겁니다. 모든 기독교가 이단이죠. 왜냐하면 기독교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될까, 라는 그 대책을 거기에 집어넣은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뭘 하면 구원 되겠습니까?’라는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을 자기 손으로 다루어보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철야할까요? 금식할까요? 성경을 다 베껴볼까요? 내가 십일조 할까요? 전도 할까요? 예배 참석해 볼까요? 목사님께 넥타이를 사 줄까요? 김장 봉사를 할까요? 바자회를 열까요? 시부모께 효도하고 충성을 해 볼까요? 제사 안 지낸다고 순교까지 당해볼까요? 교회 나간다고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면 구원받겠습니까?’

교회 나간다고 머리채 잡히고 다 쥐어 뜯겨도 그것은 구원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괜히 자기혼자 발작하는 거예요. ‘다 손 내려!’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은 손 내려야 돼요. 구원은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경건치 않은 자에게 값없이 주는 겁니다. 하나의 선물로 우리 안에서 꿈틀거려야 됩니다. 그게 바로 육의 세계가 아니고 영의 세계라 하는 겁니다.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고 혀가 닫혔다는 말은 아무리 세례요한을 낳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사가랴라는 사람은 육입니다. 육에서 뭔가 나불거린다는 뜻은 육에서 육으로 그냥 수평으로 이동할 뿐이에요. 그게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되지를 못합니다. 나 설교 잘하니까 구원받았다느니, 내가 하나님의 성경을 풀어내니까 나는 구원받았다느니, 이런 소리 하면 안돼요.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육에 문제가 있음을, ‘나’라는 인간에게 하자가 있음을 본인이 스스로 알아야 됩니다. 뭔가 나한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내가 뭔가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천국 문을 뚫을 수는 없다, 그것을 느껴야 돼요. 왜냐하면 내가 행한 것 자체가 이 몸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 몸 자체가 죄라면 행한 것도 덩달아 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엄청난 예언을 하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이 사가랴라 할지라도 입을 막고 혀를 막아놨어요. 막아놓았다가 그것이 풀리는 순간에, 그 막고 푸는 것이 누구 소관이냐 하면 그것은 사가랴 본인도 자기 맘대로 안 되고 하나님이 막아주면 막히는 것이고 하나님이 풀어주면 풀리는 것을 통해서 사가랴는 ‘내가 해야 될 일은 내가 예상하고 내가 지어낸 인생이 아니고 주님께서 관여하는 인생이 될 때 나는 영적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렇게 입이 풀리고 혀가 풀려서 예언을 한 거예요.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난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잠시 그걸 경험했어요. 안하려고 했는데 우리 성도님이 하라고, 하라고 해서, 목사님을 대접한다고 하라고, 하라고 해서 했어요. 건강검진. 아침에 일찍 오라고 해서 금식하고 그냥 갔어요.

저는 뭐가 신경이 거슬리냐 하면 2년 전에 내시경을 한 적이 있다고요. 다른 사람들은 수면 내시경을 한다는데 나는 생판으로 했거든요. 얼마나 아팠던지 그때 혀가 닫히고 입이 닫혀 버렸어요. 그런데 ‘무통으로 하면 됩니다. 2만 5천원이 드는데 그것은 제가 알아서 할 게요.’ 해서 무통 내시경을 했는데 그래도 아픈 것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주사 맞을 때 그것이 아팠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통증도 없고 그냥 있었는데 어디까지 기억나느냐 하면 간호사가 내 입에 뭘 막고 침대에 누우라고 한 그 순간부터 기억에 없고 깨어나 보니까 다른 방 침대에 누워 있어요.

얼마나 기분이 나쁘던지요. 통증은 없었는데 기분은 되게 나빴어요. 왜 기분이 나쁘냐 하면 왜 간호사가 입을 벌리고 입에 넣어주는 그 순간부터 그 옆방 침대에서 깨어난 그 순간까지의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기억이 없을 때 누가 내 기억을 빼앗아갔느냐, 해서 그게 기분 되게 나쁜 거예요. 소위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기억상실증이 꼭 이런 기분이 아닌가 싶어요.

도대체 기억이 연결되어야 그것이 나 인데요. 기억이 끊어지지 않고 촘촘히 연결 되어야 그것이 지금의 나거든요. ‘나’라는 것은 과거가 누적이 되어서 지금의 나가 되니까요. 그런데 그 과거가 도약되었어요. 중간에 끊어져 버렸어요. 끊어져 버리니까 제가 느낀 것이 뭐냐 하면 ‘죽음이 이런 것이 아닌가, 죽음이 이렇게 고통이 없다면 자살을 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고통 없이 다른 세계에 올수 있다면. 기억이 하나도 나지를 않았어요. 간호사에게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와 있느냐 하니까 바쁜 간호사가 그 질문에 답변할 하등의 의무가 없지요. 다들 모른 척 하고 각자 자기 일만 보는 거예요.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하면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 때는 내 기억 말고 외부기억이 나의 기억을 대체해서 들어와서 나로 하여금 과거와 단절시킨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너의 과거와 연결된 모든 것은 잊어라.’ ‘내가 자식 키우면서 고생많이 했다. 이 교회에서 봉사 얼마나 많이 하고 헌금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나?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것 때문에 기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이런 모든 것은 다 지우개로 삭제시켜 버리고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너를 어느 장소에 어느 시기에 누구 집 자손으로 태어나게 했던 그 하나님의 기억으로 우리 안에 대체해서 들어가 버리면 나를 더 이상 나라고 할 어떤 근거가 우리에게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피조물 속에는 뭐가 꿈틀 거리냐 하면 ‘나라는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것으로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고린도전서 15장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무통 내시경을 함으로서 저는 뭘 느꼈느냐 하면 내 힘으로 이걸 빼고 내 힘으로 걸어서 내 힘으로 침대 끌고 옆방으로 오지 않았거든요.

이 말은 뭐냐 하면 현재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죄 씻어 주는 그 대목, 그 장면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내 손가락과 발가락을 전부 잘라버린 것과 똑같은 거예요. 네가 너한테 손대서, 네가 호스 빼고 네가 침대에 누워서 침대 굴려서 옆방 침대에 누워있고, 이런 것을 간호사가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죄 씻는 문제에 대해서, 육에서 영으로 넘어오는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손발을 다 묶어놓아 버린 거예요.

그게 혀가 닫히고 입이 닫히게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십일조 해서 구원받았습니다. 복 받았습니다.’ 이런 소리 한다든지 ‘교회 충성해서 구원받았다’는 소리를 일체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지요. ‘선교회비 내서 우리 가정이 잘 되었다.’ 그런 소리 하면 안돼요. 우리는 마취상태였습니다. 내가 뭐 한 줄을 몰라요. 주께서 손을 대 버렸어요.

우리는 상상합니다. ‘이 많은 죄를 씻으려 하면 주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겠나? 이제 그 고생을 나도 해야, 한 50퍼센트는 고생해야 나머지 50퍼센트는 주께서 고생한 것으로 채워주겠지.’ 안 그러면 ‘백퍼센트 주께서 고생해서 나를 용서했으면 이제부터는 나를 고생 무지 시켜서 그런 고생을 해야 구원받겠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지어낸 우리의 막장드라마 우리의 시나리오에요. 그런 것은 김 수연 작가가 잘 해요. 제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늦게 오신 분이 있어서 설교가 좀 길어지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여자애를 성추행했다. 그런데 그 짓을 지하철에서 하다가 걸렸습니다. 판사가 명령 내립니다. ‘사회봉사 200시간’

요양병원에서 치매 노인들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합시다. 우리생각이 어떤 면에서 잘못되었는지 한번 봅시다. 사회봉사를 200시간을 죽 합니다. 190시간 했습니다. 10시간 남았어요. 195시간 했습니다. 다섯 시간 남았습니다. 200시간 동안 특정 요양병원에서 이름도 모르고 연고도 없는 똥오줌 싸는 노인네, 시체인지 좀비인지 분간 안 되는 노인네를 건사하면서 봉사했습니다.

그 노인하고 듬뿍 정이 들었어요. 그 병원 사람들하고도 정이 들었습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젊은이는 자식도 버린 나를 천사같이 돌봐주니 참 복 받을 양반이야.’ 이렇게 칭찬이 늘어졌다 합시다. 198시간 되었습니다. 이제 두 시간 남았습니다. 한 시간 더 봉사해서 199시간, 이제 한 시간 남았습니다.

청년이 말합니다. ‘마땅히 젊은 사람이 나이 드신 분에게 이렇게 봉사해야 되지요.’ ‘아이고, 말하는 것 좀 봐. 저렇게 예쁜 소리를 하다니.’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200시간 다 채웠습니다. 200시간 다 채우고 난 뒤에 그 청년이 나가면서 그 정들었던 노인과 청년의 관계는 어떤 관계로 빠지겠습니까?

노인이 말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올 거지요? ‘할머니, 내일 안 옵니다.’ ‘아니 지금까지도 200시간이나 해줬는데 올 거잖아. 지금 가면 섭섭하지. 나는 이제 곧 죽는데.’ 청년이 하는 말이 ‘안와도 된대요.’ 그 청년의 생각은 뭘 생각했느냐? 죄와 벌을 생각했어요. 죄지었기 때문에 벌 받는다는 생각이 우리들 보기에 굉장히 공의롭고 착한 생각 같지만 이게 육적인 생각이에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기, 자아집착을 더욱더 강렬하게 만듭니다. ‘이제 두 시간 남았다. 이제 한 시간 남았다. 한 시간 끝나고 난 뒤에 이 지긋지긋한 요양병원 다시 오는가 봐라. 이제 200시간 채우고 난 뒤에 어느 인간도 나보고 죄지었다 할 인간은 없다. 왜? 나는 200시간 채웠기 때문에.’ 이게 새로운 인간입니까? 옛날 인간 그대로입니까?

이게 옛날 인간 그대로에요. 사람들이 교회 와서 ‘당신은 죄인입니다. 예수 피로 구원받습니다.’ 목사가 ‘죄인입니다’ 할 때 그 죄인이라는 말을 무슨 감정으로 이해하느냐 하면 마치 사회봉사 200시간하는 그 감정과 똑같은 감정으로, 거기서 나오는 죄의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예, 죄인 맞습니다. 그동안 내가 세례만 받아 놓고서 교회를 안다녔는데, 그리고 술 담배 다 했는데 이제 끊겠습니다. 이제는 술도 안 먹겠습니다.’라는 생각, 그게 새로운 피조물의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관계가 불쌍히 여겨주는 것, 그러니까 무통 내시경이 아니고 여전히 자기기억이 살아 있는 거예요.

그 기억 속에는 ‘내가 그동안 교회 못나오고 교회 봉사 못하고 술과 담배,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했던 그 죄에 대한 대가만 치르기만 한다면 나보고 더 이상 죄인이라고 할 사람 없고 나는 당당하게 천국 간다.’는 자아에 대한 집착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기껏 인간들이 생각하는 죄의 개념이 이 따위, 이 수준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청년이 없지만 하여튼 있다고 치고, 200시간을 끝냈어요. 200시간을 끝내면 보통 인간은 ‘할머니, 손 놓으세요.’ ‘아니 젊은이, 어제까지는 친절하더니만….’ ‘친절이고 뭐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안와도 되는 겁니다.’ ‘아니 왜?’ ‘그런 일이 있거든요. 할머니 건강하시고 나는 이제 할머니와 볼일 없습니다. 빠이빠이 합시다.’ 태도가 돌변하지요.

그런 것이 보통 인간인데 그런 사람이 거의 없지만 있다고 치고 200시간을 일하는 가운데서 ‘내가 그때 성추행을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왜? 그 때 성추행을 안했으면 나는 200시간 사회봉사 안했을 것이고 200시간 사회봉사 안했더라면 나는 소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더러운 세상 일등만 알아주는 세상, 술 취한 세상 더러운 세상, 이렇게 세상에 대해서 비난만 하고 살 인간이 남들이 모르는 나의 존재의 의미를, 이렇게 어려운 사람 돌보는 것, 이것이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더라.’ 하는 새로운 감이 온다면 ‘그 때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하는 후회보다도 그런 기억조차 역사의 하나의 긴 고리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구원하기 위한 사전구조였다는 것, 사전환경이었다고 하는 겁니다. 주께서 마련한 조치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될 때 그 사람은 자기 속에 있던 죄와 벌, 항상 선악적으로 ‘내가 나쁜 짓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었으니까 주님 보시기에 좀 미안스럽다.’라는 그런 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그 사랑이 이제는 나의 추억을 대체해버리지요. 대체해 버리면 과거의 나의 인생이 누구를 만났든,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든, 내가 어느 학교 출신이든, 내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교도소를 두 번씩 왔다 갔다 했든지 간에 그 모든 것 까지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의 노선이었다는 것이 드러나지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 다윗 이스라엘 특히 본문 73절부터 봅시다.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라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나야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입에서 후회라는 것이라든지,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반성을 할 이유가 없어요. 보통 반성 안하면 사람이 뻔뻔해지잖아요. 그것이 아니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대신 감사와 감사로 연결되면 돼요. 만약에 주일에 예배시간에 늦었다. 늦게 왔으니까 미안해서 보통 때 헌금을 천 원 하는데 천원 얹어서 2천원을 헌금했다.

이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스스로 죄지었다고 해서 자기한테 벌세우면 안돼요. 자기가 자기한테 벌세우는 것은 죄와 벌 구조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거예요. 스스로 자기에게 사회봉사 시키지 말라는 말이지요. 스스로 자기에게 사회 봉사시키고 징역살이라는 시키지 마세요. ‘나는 벌 받아야 돼. 벌 받아야 돼.’ 이렇게 자기 가슴을 때리지 마세요. 때리면 자기 가슴만 아파요.

그 대신 뭘 하느냐? 웃으세요. 웃어야 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그 책에 보면 이게 있어요. 고양이가 막 웃어요. 고양이는 점점 사라지고 웃음은 그냥 남아 있어요. 실체는 없는데 웃음은 그냥 남아 있지요. 이게 바로 영의 세계, 부활의 세계다 이 말이지요.

나의 과거의 모습은 여전히 올라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과거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가도 이 버릇은 버리지 못합니다. 제가 언젠가 주일 설교에 그런 이야기 했지요. ‘30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이쁜 것, 40대 여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이쁜 것…’ 했잖아요. ‘80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이쁜 것.’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세상적인 친화력, 세상적인 유혹과 세상적인 욕구는 우리 세포가 우리 DNA가 그런 DNA기 때문에 우리가 끊어도 소용없습니다. 끊으면 잠시 끊어진 척 하고 위선자가 되고 가장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의 죄의 모습, 과거에 죄를 지은 우리의 모습은…, 우리는 구태여 죄를 지을 필요 없어요.

그냥 사세요. 그냥 살아가시면 그 죄가 여러분들의 웃음가운데서 다 보입니다. ‘아, 이게 죄구나. 이게 남은 죽어도 나만 살려고 시도하는 내 모습이구나.’ 그걸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보세요. 고양이는 사라져도 웃음은 남듯이 웃는 모습으로 우리의 죄를 보라는 말이지요. 그런 죄를 지었다고 해서 스스로 자학하거나 크게 벌을 내리거나 징벌을 내리거나 그러지를 말라는 말이지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죄가, 우리가 신체가 있는 한, 육체가 있는 한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노인들을 보세요. 노인들 젊을 때 그렇게 반듯하고 젠틀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고 약속 잘 지키고 그렇게 훌륭했던 위대하신 아버님께서 연세 들어버리니 완전 애에요. 그 절도 있던 것, 이성적이고 정의에 펄펄 넘쳤던 것, 악을 참지 못하고 어느 자리에서건 뛰어들던 그 분, ‘얘야, 올 때 사탕 사오너라.’ 합니다.

나중에는 ‘예수가 누군데?’ 사도신경 외워보세요. ‘사도신경이 뭔데?’ 나이 80되고 90되면 ‘얘야, 찬송가 틀지 말고 나 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 그거나 틀어다오. 찬송가 듣기 싫다. 다 치워라.’ 합니다. 인간의 신체가 그런 식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웃읍시다. 고양이 없어도 웃음은 남듯이 웃어버리세요. 내가 구원받는 것이 나한테 손질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목사 되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그동안 위선이었습니다. 50년 신앙생활 했습니까? 위선이었습니다. 자기위장술이죠. 연기도 좋아요. 연기 아주 잘해요. 기도하면서 몸을 앞뒤로 끄떡끄떡해요. 왜 끄떡끄떡하나 보니까 이 동네는 기도할 때 다들 끄떡끄떡 하니까 그런 줄 알고 그런 거예요. 아주 연기도 잘해요. 기도원에 가서 소나무 뿌리 뽑는다고 하니까 같이 또 뽑는다고 하고.

다음에 갈 때는 아예 삽 들고 가세요. 옆에 사람이 룰룰루라, 방언한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하는데 이거 말 빨리 해보세요. 이것은 다 합니다. 그런 것은 은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육체 가졌습니까? 아버지로부터 DNA 물려받았습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냥 육체대로 사세요. 똥 싸고 오줌 싸고 죽을 때까지 사세요.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의 죄를 씻어주는 그 작업 때 여러분은 마취상태에 빠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작용한 것이 없어요. 나중에 다 해놓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어이, 옆방에 침대!’ ‘예’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저를 죄 용서한적 없습니다.’ 보니까 십자가라. ‘십자가피가 저를 용서했군요.’ 그리고 내 안에 나의 추억은 쓸데없는 추억이 있더라도 그 추억을 지워버리는 것은 주님께서 날 구원했다는 십자가의 추억이 여러분들을 통째로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세상 너무 좁게 봤습니다. 영적 세계를 몰랐습니다. 잘난 맛으로 천당 가는 줄 알았습니다. 죄 줄이면 천당에 좋은 자리에 갈 줄 알았습니다. 다 그것은 마귀, 원수, 악마가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조작한 종교인 줄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는 종교생활 하지 말고 영적인 세계에서 주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091213눅1(67-80사가랴의찬양).hwp (0byte), Down: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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