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관하여~쥴리 성도님의 글
예배에 관하여~쥴리 성도님의 글
이름 : 송영옥(IP:218.39.3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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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배란 내부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목마름이 외부로 산화되어서 그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하나님의 영과 연합되는 일이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얻는 희열을, 성도는 그 어떤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일하는 것이 곧 기도라고 했다( to work is to pray). 작가에겐 글쓰는 게 "작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성도에게 예배는 이런 것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성도에게 예배는 '과제'가 아닌 '쉼'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따라서 여기에는 예배당의 화려함이나 인간의 감성을 주도하는 그 어떤 표상적 요소들이 전혀 필요치가 않다. 그러므로 참 예배의 형식은 모방할 수도 조작될 수도 없다. 성령은 그 어떤 틀에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이들은 어떤 신령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어 '성령이여 오소서' 한다. 마치 예배를 조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정의라는 인간의 감정에 제대로 호소하기만 하면 성령의 감동조차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예배는 늘 즉흥적이며 유발적이고 의도적이 된다.
그런데 참 예배는 내 감정의 여부와 무관하게 드려진다. 즉, 기쁠때만이 아니라 때로는 깊은 상념 가운데 내뱉는 작은 신음소리로도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피를 토할듯한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몸부림침이 있다면 그것이 곧 예배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조용히 앉아 홀로 묵상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특정 분위기나 일시적인 감회나 충동에서 일어나는 열심에서가 아닌, 숲을 걸으며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전심으로 내뱉는 고백들이 모두 예배의 일종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예배란 신과의 교신이지만 계시를 얻기위한 방편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예배를 통해 무언가 신령하고 특출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자들과 끊임없는 분쟁을 해야만 한다.
모든 인간안에 신적 존재에 대한 갈망들이 있으므로 누군가 예배의 고정관념을 깨어 버리려고 할때 늘 균열이 생겨난다. 그 중 하나가 신비주의와 영지주의자들과(gnosticism)의 싸움이다. 이들은 어떤 신비한 지식으로 신의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예배는 타종교의 주술행위와 다르다. 참 예배란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인간의 독성이 신과의 교신에서 녹아버린다는 데 있지 신께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가 결단코 아니다.
야훼의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계시지 않는다. 이것이 성도에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늘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