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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귀찮아지는 크리스마스묻고답하기로마서

귀찮아지는 크리스마스

이름 : 이근호(IP:117.55.136.28)

귀찮아지는 크리스마스

2009-12-14 11:50:05 이근호

산다는 것, 그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을 억지로 ‘살았다’는 것으로 우기려면 대충 고생의 잔주름들을 정리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연말은, 한 해 동안의 손익을 따져보기 위해 자투리로 남겨둔 기간이다. 그 시작점에 크리스마스가 자리 잡았다.

누가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쳐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한 해 동안 수고 있어!”라고 본인을 격려하는 특혜를 허락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각자 자신들 뿐이다. 여기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아기 예수와 연관 있는 것이 아니라 몽환적인 서양 전설에 편성해서 들뜬 분위기가 국내까지 밀려오고 이것이 지난 한 해 동안 지배해온 단호한 질서에 대한 반발로 이어져 차곡차곡 쌓아놓은 장난감을 한꺼번에 뭉개고 흩으려는 아이의 욕구와 연관 있다. 이 장난기 발동이 무질서가 주는 자유 속에서 진행된다. 일탈, 탈선, 외침, 몽롱함, 비틀거림, 수작, 만취, 내질러버림, 무절제에 대한 체험 학습을 시도하게 된다.

아기 예수님의 용서라는 무제한적인 묵인을 배경으로 하여 그 날에는 그 어떤 분출도 메사야 탄생의 축하 소리에 묻혀서 묻거나 따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일방적 자유 선포의 날이 되어버렸다. “천사야, 아기 예수를 찾아내어 경배하라. 우리는 그 덕분에 일탈의 시간을 즐기리라!”를 외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살아남아야 하니까.

우리 집 근처(대구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아미사’라는 절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그림을 전봇대 사이에다 높이 걸어놓았다. 교회나 절이나 다 같이 이 시대에 사이좋게 살아남자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원하는 절,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로서 그 존재성을 같이 인정받자는 이야기다.

중들은 아기 예수님께서 죽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교회도 마찬가지고, 밤새 유흥가를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누비고 흥에 취하는 자들도 이 사실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삶의 방석으로 여기고 그 위에서 자신을 얹어놓고 지내는 것이다.

아기 예수님은 초장부터 죽음이 위협적으로 덮쳐졌다. 예수님의 가족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서 천사에 의해서 애굽으로 도피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죽기 위해 갈릴리로 나타나 나사렛 사람으로 일생을 보내셨다. 이 세상은 활주로다. 천국이라는 창공 속으로 날기 위해 워밍업 해야 하는 활주로다. 살아남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내년에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식으로 자신에게 격려하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다. 도리어 “죽음의 방석을 그새 빼놓고 설쳐댔구나”를 후회하는 시점이어야 한다. 이런 후회와 반성을 훼방하는 것은 자극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따라서 크리스마스가 귀찮아진다.

몰아서 한 착한 일로 한 해 동안의 악함도 상쇄되는 편리함도 얄미워진다. 용서해주는 우아함도 가증스럽다. 차라리 원래대로, 하던 행세대로 사는 것이 가장 크리스마스답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롬 8:3) 성도는 늘 고요해야 한다. 그래야 성도의 내부는 늘 고요한 크리스마스가 된다.

이미아(IP:119.♡.119.36)

09-12-17 16:42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예수님 오심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금방이라도 푸근한 눈처럼 바꾸어 버릴 것 같은 요술같은 캐롤송...
듣기 싫다...근데, 정말 듣기 싫은 캐롤송은 울면 안돼 울면 안돼이다.
얼마나 어린이들의 마음들을 훔칠까? 착한 어린이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지독히도 우는 것이 주특기인 어린 마음을 훔쳤다.
그러나 이미 선악 구조에 놓여 있는 저주받은 자였다.

울면안돼
울면안돼(왜) 울면안돼(왜)
산타할아버지는 우는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데
산타할아버지는 알고계신데(뭘)
누가착한앤지 나쁜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데 (정말)
잠잘때나 일어날때 짜증날때 장난할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것을 알고계신데(대단해요)
울면안돼 울면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리마을을
오늘밤에 다녀가신데
(산타할아버지 저희집만 빼먹고 가시면 안돼요
착한 어린이가 될꺼에요
이쁜선물 많이많이 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울면안돼(왜) 울면안돼(왜)
산타할아버지는 우는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데
산타할아버지는 알고계신데(뭘)
누가 착안앤지 나쁜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데(정말)
잠잘때나 일어날때 짜증날때 장난할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것을 알고계신데(대단해요)
울면안돼 울면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리마을을
오늘밤에 다녀가신데(산타할아버지 선물 많이많이 주세요)

산타가 알고 있는-누가 착한앤지 나쁜앤지-산타의 마음씨...인간의 마음씨이다.
인간의 마음씨...악마의 마음씨이다.

착한 남편 되기~
착한 아내 되기~
착한 아들 되기~
착한 딸 되기~
착한 며느리 되기~
착한 사위 되기~
착한 시어머니 되기~
착한 시아버지 되기~
착한 동료 되기~
착한 교인 되기~
착한 이웃 되기~
착한 사람 되기....

이것만큼 사람잡는 것도 없다!!!

죄인 남편 되기~
죄인 아내 되기~
죄인 아들 되기~
죄인 딸 되기~
죄인 며느리 되기~
죄인 사위 되기~
죄인 시어머니 되기~
죄인 시아버지 되기~
죄인 동료 되기~
죄인 교인 되기~
죄인 이웃 되기~
죄인의 괴수 되기....

이것만큼 자유한 것도 없다!!!

성재필(IP:118.♡.159.240)

09-12-18 23:06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인으로 존재하기에 거저주시는(?) 구원이 정말로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주예수께서 십자가 지시는 길가에서 도망친 베드로처럼 아무것도 하지않고 내가 나를 배신했는데도 피흘리신 사랑으로 구원하시니 웬 은혜인가요? 오주여 당신만이 아십니다!

강구만(IP:118.♡.241.231)

09-12-19 08:35

성도는 자기가 자신에게 책임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어떤일에도 결과는 은혜입니다.모든일에 감사요 자유입니다.그래서 돌아보면 자기 인생이란 것이 삭제되고 없습니다.처음부터 주시는 것만 받게되어 있습니다. 내 것이 없는 기쁨! 예수안에서 누리는 3초, 아니 영원한 행복입니다.

한진영(IP:58.♡.63.133)

09-12-20 01:42

어떤 분들은 3초, 5초라는 말을 곡해하면서 그럼 '성령 충만'이란 것이 없다는 말인가 질문 합니다만, 그 짧은 3초가 영원한 행복으로 고백되어지고 죽을 죄인이 예수 향기를 발하게 되는 것을,
저는 조각들을 모아 붙인 모자이크나 인상파들의 점묘법 그림들에 비교하여 생각곤 합니다.
분절된 디지털 기호들이 아나로그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과도 비교하고 싶습니다.
영과 육의 엎치락 뒷치락이 빚어내는 4차원적 작품의 탄생..?

관리자(IP:124.♡.85.59)

09-12-20 18:53

곡해 하라고 일부러 유도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시간에 대한 탐욕성을 고발함과 동시에
동행이라는 것이 바로 충돌을 통해서 (베레스웃사) 동행, 함께하심을
성령의 언어는 육의 언어를 끌어들여서 차이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2초 3초의 충돌을 견뎌낼 재간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24시간을 인간은 늘 꿈꾸는 환각 마약에 빠졌습니다.
그 2초의 걸림돌 3초의 부딧히는 충돌 앞에서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2초 3초와 vs 망상으로 탐욕 부리는 하루 24시간의 욕심의
그 차이성을 실제상황으로 보라는 취지이겠지요.

2초 3초도 감사할 마음이 추호도 없으면서 우찌 24시간 범사에 감사할려고 달려드는지?
이런 우리의 모습을 2초 3초의 충돌이(무지 무지 아픈 매 회초리가) 아니면 사생아 겠지요.

하루 24시간의 충돌을 결국 예수님이 내 대신 짊어지셨다는 것을 2초로 3초의 충돌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루에 2초 3초의 지근 지근 밟으심 앞에 감당할 재간이 인간에게 없기에
우리는 24시간 영원히, 2초 3초의 지근 지근 밟히는 심판으로 구원의 문에 감사함으로 문에 들어가는 겁니다.

(시 69:30, 개역)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시 95:2, 개역)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 100:4, 개역)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47:7, 개역)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세상에 얼마나 밟혔으면 저런 노래를 부를까요?잉?

강구만(IP:118.♡.241.178)

09-12-20 21:15

옮겨진 세계안에서, 하나님안에 감추어진 생명을,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확정된 사랑을, 우리가 죽은자임을 새삼 알 때 혹은 죄인의 괴수일 따름 일때 문득 문득 보여지는 것 3초 인것 같습니다. 내 것이 아닌줄 알라고.선물이라고.

한진영(IP:58.♡.63.133)

09-12-25 01:51

자근 자근 밟히는 발자욱 마다 쌕쌕이 알갱이처럼 톡톡 터지는 기쁨의 지뢰밭은
그이야 '사뿐히 즈려 밟고 가소서'라는 고백을 뽑아 내고야 맙니다.
내적 외적, 사방 팔방으로 후려치시는 성령의 칼바람이
문득 미풍처럼 감미롭게 느껴지는 것도 죽음 안에만 숨겨진 생명의 은밀한 역동이겠지요.
십자가 안에 숨겨진 부활의 그 생경한 기쁨의 맛..
글쎄 안 잡솨 본 분들은 말을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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