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강의 091126b
대전강의 091126b
이름 : 이미아(IP:115.41.200.248)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어려운 말 했죠? 완전함에서 완전함은 무엇과 통하느냐면 완전함만 인정합니다. 완전함은 완전함만 인정하기 때문에 만약에 불완전한 것이 위에 올라오면 어디서 완전함에 끼어 들어 저리가 하면서 발로 차 버립니다.
헌금을 속이고 냈다고 해서 부부가 하루만에 둘 다 죽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구원의 세계, 천국의 세계는 흠도 티도 없는 완전한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완전한 세계에 대해서 누가 알고 있느냐 하면은 사탄, 악마가 알고 있습니다. 악마는 인간을 어떻게 부추기느냐면은 현재 너의 실력으로, 너의 능력으로, 너의 행함으로 완전함을 시도하라고 사탄은 항상 그렇게 합니다. 불완전한 것으로 완전함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세계의 특징은 불완전한 것을 배척해 버리고 차단시켜 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악마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했단 말입니다. 제가 십자가 마을에 올린 정낙원 목사님 글에서 교회에서 목사가 교인들에게 점수를 매긴다고 했습니다. 주일 날 아침에 교회 참석하면 10점. 성경 하루에 세 장 읽으면 10점해서 토탈 100점 만점에서 당신은 몇 점이냐고 교인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것입니다. 십일조 하면 10점. 교회 봉사하면 10점. 그러면 100점 만점이면 구원 받습니까?
사탄은 너는 인간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인간이니까 구원 받아야지 라는 것이 사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완전함 쪽에서는 우리 보고 인간이라고 하지 않고 너는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나올 것이 죄 밖에 없으니까 아무리 점수 100점 만점을 받아도 완전한 세계에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못 들어가니까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이 이상하죠? 못 들어가니까 넣어 주시는 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복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넣어 주신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아! 못 들어가는구나 행함으로는" 이것을 겸허히 알아야 합니다.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 참 이 어려운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천천히 풀어 봅시다.
너는 인간이다 할 때 이 관점이 뭐냐면은 완전함을 차단시켜 가지고 완전함을 감추고 이 세상에서 볼 때 너는 인간이라는 것이 이(위) 쪽 안목을 감추면, 천국의 안목을 닫히게 해 놓으면 우리는 인간 맞습니다. "그래 나는 인간이야! 사람이야 열심히 살아야 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돼!" 그런데 이것이 철폐가 되버리고 이것이 열려 버리면 우리는 이 세상 통째가 죄인의 세계요, 죽음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은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죽었잖아요.
아나니아 삽비라 죽은 것은 결국은...어렵기 때문에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성령의 세계에서 보아야 비로소 사탄이 보이고 사람이 죽는 이유에 대해서 비로소 밝혀진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완전함에서 볼 때만 이것이 불완전하고 마귀에 속했고 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지옥 갔습니까? 라는 말은 여기서는 해당이 안 됩니다.
교회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특정 누가 지옥 갔느냐? 천국 갔느냐? 하는 그것을 일일히 알려주는 그러한 움직임이 아니예요. 활동이 아닙니다. "아!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구나! 그리고 완전한 분이 넣어줘야 우리가 구원받는구나!" 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쉽게 이야기 해 봅시다. 인간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단 인간은 아닙니다. 인
간은 아닌데 인간을 아까 죄인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죄인이라고 했을 때, 인간이 아닐 때 죄인이고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영적 존재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물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에 속했느냐 사탄에 속했느냐 라는 것을 가지고 성령에 속했으면 구원이고 사탄에 속했으면 죽음이다. 저주다. 지옥이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를 두 자로 이야기 하면 그 당시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들어오면 베드로가 당신 성령에 속했어요? 사탄에 속했어요? 묻는 것이 이 본문입니다. 당신 인간입니까? 공부는 어디까지 하셨고 얼마나 착한 일 하셨습니까? 사람을 사람대우 하듯이 묻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 번 버스타고 오셨습니까? 헌금은 가져 오셨고 직분은 집사입니까? 권사입니까? 장로되십니까? 그런 것을 묻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성령에 이끌렸습니까? 성령에 안 이끌렸습니까? 묻는 거예요. 베드로가 너는 성령을 속이고 사탄에 이끌려 성령을 속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는 성령이 그 순간 있어서, 베드로가 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은 순간적인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심사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성령이 임하게 될 때는 사람을 영물로 보지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에서 배운 인간이라는 것은 키가 얼마고 세포로 이루어졌고 하는 그런 세상적인 관점은 여기서는 허락이 되지 않는 거예요.
영적인 존재로, 영물로 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뭐냐하면은 그렇다면 목사님 성령받은 사람과 사탄에 속한 사람과 어떤 차이가 납니까? 여기 사도행전 5장 4절에 봅시다.
4절.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 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본인을 어디 밑에 두냐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피조물로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봤을 때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시가 주어졌고 외부에서 베드로를 속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내부적인 속임, 하나님 자체를 속이는 그러한 경우가 악령이 임하게 되면 이런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악령이라는 것은 사탄이 오게 되면 외부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하나님과 본인 사이에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되면 이 사람은 졸지에 하나님이 안 보이게 되니까 뭐만 보입니까? 사람만 보이죠. 사람쯤이야 심지어 방구껴도 안꼈다고 우기는데요. 사람같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이것은 자기의 내부구조를 묻는 거예요.
여기서 제가 구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영물이다. 영물이라고 하니까 토속적인 냄새가 나죠? 그러면 사람은 구조적이다. 묵시적 구조가 구조적인데 사람을 구조적으로 보면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에덴 동산이라는 구조안에 놓여있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디에 두었습니까? 에덴 동산에 두었습니다. 사실은 에덴 동산 속에서 인간이죠. 이것이 구조였습니다. 여기 에덴 동산에 무슨 나무가 있느냐면은 생명 나무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천국에 뭐가 있죠? 천국의 양 가로수에 뭐가 있습니까? 생명수가 있죠. 천국에 보면 생명수가 흐르는데 그 물이 어디서 흐르죠? 어린 양의 보좌. 예수님의 보좌에서 물이 흘러서 양쪽에 가로수처럼 생명 나무가 있잖아요.
창세기 2장에 보면 에덴 동산이 꼭 이 구조입니다. 동산 중앙에 뭐가 흐르고? 네 개의 강물이 흐르면서 만물을, 에덴 동산을 적신다 이 말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은 독단적인 존재가 아니고 어느 구조속에서 혜택을 입는다. 생명의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생명나무의 수를 마시면서 인간은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뭡니까? 이 구조 밖에 나와도 과연 인간일 수 있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인간일까요? 주일 낮에 설교해야 하는데 마리아가 임신했는데 또는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임신했을 때 과연 아기가 자궁 밖에 나오면 과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죠. 사산되죠. 이것을 가지고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죽었는가? 이 구조에서 성령 공동체라는 이 구조에서 너는 바깥에 빠져 나와 있기 때문에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입니다. 죽여서 죽이는 것이 아니고. 너는 교회와도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다른 사람 보란듯이 까발리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뒤에 나옵니다.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두려워 하면서 세상에 무서워서 교회 가겠나? 이렇게 나와요. 그걸 무서워할 필요 없구요. 현재 나라는 구조는 성령에 의해서 놓여져 있다 하면 조금도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겁낼 필요도 없구요. 본인을 영물로 생각한다면 전혀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청와대에 가서 이명박 앞에서도 우리는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이명박은 영물이 아니지만 우린 영물이니까 쉽게 말해서 무당이니까. 성령이 바람같이 임하지 않으면 우린 하늘 나라에 못갑니다. 이것은 마치 무슨 구조냐면 무당이 신 내림을 안 받으면 무당이 안 됩니다. 무당되니까 신나게 춤추잖아요. 작두에 뛰고. 영물이예요. 영물. 그런데 무당은 영물을 대표로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고 점잖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영물이예요.
문제는 본인이 자꾸 인간이라는 거예요. 왜? 인간이냐? 주체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존주의 철학 아닙니까? 모든 학교 교육이 주체자라는 거예요. 피아노를 치니까 아이구 피아노 잘 친다는 것입니다. 영물인 피아니스트가 말하기를 아무리 주를 이야기 하고 주께서 은혜 주셔서 했다고 해도 사람은 무엇을 짤라버려요? 하나님의 은혜 다 짤라버리고 주께서 짤라버리고 너가 손가락이 있어서 너가 피아노를 쳤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현실감입니까?
어제 화요일 날 추도설교를 했잖아요.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 졌다.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위장을 해도 나중에 부스러지면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것은 안타까워할 문제가 아니고 속시원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 흙이구나!" 그래서 재원이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아버지를 장사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했지. 그 이유가 뭐라고 했어요?
아버지만 죽은 것이 아니고 아버지 장례 걱정하는 너도 내가 보기에는 이미 죽은 자다. 예수님이 만드신 천국 구조에 안 들어오면 너는 그 바깥에 놓여 있기 때문에 너는 죽은 자니까 이 구조안에 따라 오너라. 날 따라 오너라. 이 구조안에 들어가자. 아직 십자가 지지 않고, 아직 성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구조안에, 비누방울 속에 못 들어갑니다.
어쨌든 내가 누구냐 예수님은 생명을 주려 온 사람이기 때문에 너는 이미 죽은 자다 죽은 자로서 날 따라오라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따라갔는지 안 따라갔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우리를 영물로 보고, 영물로 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문자로 보면 안 됩니다. 만약에 성경 말씀을 문자로 보면 그 문자의 해독은 누가 해야 됩니까?
내가 인간으로서 주체자가 되어서 내가 해독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성경 말씀을 내가 해독해 버리면 어떤 오류가 벌어지냐면 자기만 구원받는 것이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요? 성경 안에는 천국이 있잖아요. 천국이 있으면 아까 변화산에서 누가 있다? 엘리야도 있고 모세도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초청한 것은 예수님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도 있고 모세도 있고 나중에 아브라함도 있고.... 그런데 우리가 보는 성경은 뭐냐 하면 성경보고 은혜 받으면 은혜 받은 나만 달랑 있습니다.
이게 무슨 성경을 본 것입니까? 성경 안에 들어가면 엘리야도 보이고 모세도 보이고 우리가 다 한 형제가 되고 다 그리스도 몸인 것이 보여야 하는데 자기만 달랑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할 때 누구만 보입니까? 자기 마누라하고 자기만 보이는 거예요. "야 이것 헌금하자 우리끼리 헌금해도 하나님 받겠지." 자기 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성령의 공동체 안에는 너는 구조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 바깥에 단독자라고 여기는 구조 이 안에 들어가면 너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다시 쫓겨나가는 거예요. 괜히 들어왔다가 쫓겨나는 거예요. 그냥 조명발 안 받으면 괜찮은 존재인데 교회 한 번 거쳤다가 쫓겨나니까 뭐가 되요? 다른 사람은 그냥 나갔지만 죽고 이 사람은 죽어서 나간 것 그 차이 뿐 이예요.
오늘 날 복음 들었다가 거부한 사람은 안 죽었다 뿐이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내가 안 믿겠다는데 내가 믿기 싫으니까 내가 안 믿고 내가 예수 싫으니까 예수 안 믿는다 항상 앞에 딸려있는 것이 뭐예요? 내가 입니다. 성경에서 나라는 이야기를 누구만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우리만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교회입니다. 김권사님이나 최집사님은 우리지 여기서 나를 주장해 버리면 화살표가 나한테만 오니까 거울이 있는데 나만 보고 있으면 옆에 누구십니까? 어 집사님 누구십니까? 어 신직수 누구신데요? 주님께서는 하나를 만들었지 여럿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한 몸을 만드셨지 한 몸에 여러 지체를 만드셨지 결코 여러 몸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체라는 것은 몸을 통해서 지체를 발견하는 것이지 지체끼리 소통하는 법은 반칙입니다. 우리 이미아씨 결혼 주례가 저는 사적이라 안 올릴려고 했는데 이미아씨 본인이 설교를 올려놨습니다. 거기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신비롭다 내가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남편과 아내 이야기가 신랑신부, 부부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내가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신랑 신부는 몇 사람이예요? 두 사람이죠.
교회는 몇 사람입니까? 여러 명이죠. 그런데 여러 명인데 여러 명으로 보지 말고 달랑 신랑은 예수님. 나머지기는 몽땅 신부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같이 한 명의 신부의 입장에서 지금 활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는 구분되지만 주님보시기에는 여기 집사님이나 신직수나 전부 다 신부라는 똑같은 작용을 똑같이 차별없이 대우하는 것입니다. "신부되래이~제발 신랑을 알아보는 신부되라~"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 신직수하고 차이 좀 두시지 저는 목사고 저 신직수는 목사될려다 말았는데.." 없어요. 목사 집사고 다 떼어 버리고 "쟤도 신부고 너도 신부야 나는 똑같이 다룰거야" 어느 선까지? 신부답게, 신부되게. 신부답다는 것은 신랑만 자랑하는, 신랑의 공로만 자랑하는, 예수만 자랑하는 신부답게 "예수 덕분에 신부되었습니다" 라는 동일한 고백이 나오도록.
그러니까 교회는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하나요, 하나요 하는데 십자가에 하나. 우리는 하나의 구조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인데 교회에서는 어떻게 하냐면 이것이 안 되니까 단합대회를 합니다. 교회 50주년기념단합대회 꼭 한복입고 와서 행사 벌리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강강수월래 하고 일어서라고 해서 외간 남자 외간 여자 악수하게 만들고 성령으로 기도한다 해 가지고 거기에다 눈 감으라고 해서 손 잡으라고 하니까 손에 전기가 오는지 성령이 오는지 방언 터지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마음속에 간음할 마음이 터져요. 이 단합 대회가 무슨 성령의 하나됨입니까?
구조를 다시 이야기할께요. 구조가요 우리가 이 안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 부터 죄인이고 죽은 자인데 예수님 공로로 받는다 이렇게 할 경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잘못이 뭐냐하면 "저 하나님과 관계 끊어지면 죽어요." 라는 이런 고백으로 헌금을 하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하란 말은 "저 주님 덕분에 살았어요." 라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인데 이것을 주님과의 산 관계를 끊어버리고 속닥거려서 "여보 헌금 얼마할까?" 이렇게 되어 버리면 결국은 헌금을 속인 정도가 아니고 관계가 단절된 인간이 어딜 감히 완전함 속에, 불확실한 불완전한 인간들의 지성과 이성이 어떻게 거기에 가담할 수 있느냐?
완전한 세계는 완전함만 받아들이지 불완전한 것은 죄송합니다만 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완전함은 절대로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이 말씀은 어느 인간도 자력으로 교회될 수도 없고 그리스도 지체가 될 수도 없고 물론 구원도 안 될 뿐더러 영생은 어림도 없고. 오직 완전한 분에 의해서 관계가 형성된 사람만 완전히 영생을 얻는 그 구조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까 고백으로 나오죠.
이 본문을 보고 뭘 느끼느냐 다시 한 번 "저 죄인 맞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되요. 그런데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본문을 보고 다음에는 감추지 않아야지 합니다. 그것 지옥갑니다. 또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를 또 짤라 버렸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완전해질까를 또 생각하는 거예요. 하여튼 연결된 줄이 없어요. 우드드득 다 끊어졌어요.
그것이 왜 그러냐면 사탄이 개입해서 그럽니다. 자 지금부터 사탄이 어떻게 사람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이것이 어디에 나오느냐면 욥기의 세 친구 이 세 친구의 내용은 이번에 책이 나옵니다. 욥 안의 그리스도라는 책이 대장간에서 며칠 뒤에 나오는데 미리 말씀 드리면 사탄은 영물이니까 우리 눈에 안 보이죠. 욥의 세 친구가 인간을 인간으로 봐요. 기존의 신학이 뭐라고 합니까? 인간 있고 하나님 있잖아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섬기는가 이렇게 나오죠. 항상 인간으로 놓고 시작하는 거예요.
자기를 인간으로 놓고. 이것이 바로 욥의 세 친구의 주장입니다. 욥의 세 친구를 성경책 찾아보면 욥의 세 친구 말만 골라서 다 끄집어 글을 썼습니다. 욥의 세 친구의 글을 신학으로 정리한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면 우리 나라 한국 교회하고 똑같아요. 하나님께 바르게 살면 복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 참, 아멘입니다. 다단계에서 늘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욥아 너가 비록 죄를 지었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가 의만 있으면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토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보는데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선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논리가 어렵습니다. 선을 요구한다는 말은 인간속에 선과악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악마가 자꾸 인간보고 선악과를 따 먹으라는 이유가 있어요.
이젠 선과악을 하나님 떼 놓고 자체적으로 자율적으로 선과악을 논할 수 있는 인간이 되라 이 말이죠. 그게 사실은 누구의 얼굴이냐면은 악마의 자기의 얼굴이고 본성입니다. 인간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영물이죠. 영물이라는 말은 인간은 독자적이 아니고 항상 악마의 대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 악마가 어떤 마음이 있는가? 니 마음이 악마의 마음이예요.
선악을 아는 마음의 악마의 마음이지 악마가 어디 질질 피 흘리고 비오는 날 허연 소복입고...그런 귀신이 아닙니다. 진짜 악마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악마의 새끼들이라고 했어요. 간질병, 귀신들린 자가 악마가 아니고 그것은 하나의 돌출된 부분이고 사실은 점잖기 짝이 없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 사람들 보고 예수님이 너희 애비는 뱀이고 악마라 했습니다. 독자적으로 선과악을 논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거에 대해서는 심지어 갓난 아기도 2년 3년된 애들도 자의식 생겨버리면 전부 다 "이런 짓 하면 엄마한테 맴맴하지그러면 안 해야지." 안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했으면서도 "너 선반에 있는 빵 먹었어?" "안 먹었어." 얼굴 벌개가지고 "엄마 안 먹었어." 하죠. 그러면 엄마가 "너는 사람을 속임이 아니라 성령을 속임이다." 이렇게 하면 애들이 못 알아듣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엄마 속일래." 이렇게 하죠. "엄마 어떻게 알았어?" "맴맴한다." "다시는 안 할께." 그것을 누가 이야기 합니까?
욥의 세 친구들이 "욥아 너가 다시는 안 할께 하면 시작은 너가 미약하지만 나중에 창대해진다" 이 말입니다. 세 친구들의 주장이 "회개하라 그러면 원상복귀될 것이다" 그러면 욥이 가난했습니까? 아니죠. 출발점이 뭡니까? 욥은 부자였고 거구였고 몸은 왕자 나오고 건강하고 짱이었습니다. 자식은 없었습니까? 자식은 열 명이나 있었습니다. 높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 세 가지를 하나님과 관계성의 구조로 보았습니다. 구조로 보면 자식과 건강과 모든 재산은 누구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욥 1장에 보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다" 이것은 원래 주인이 찾아 간 것 입니다. "여보 이것 때문에 이혼하고 그러지 말자 원래 주인이 자기 것 찾아 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죠. 이 관계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친구는 무슨 관계냐 하면 그런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 생각한 선악에 의한 하나님이죠. 인간 속에 악마가 들어 있죠. 악마가 하나님을 믿습니까? 인정합니까? 인정 안 합니까? 인정하죠. 야고보서 2장에 나오죠. 하나님의 한 분인 줄을 믿고 떠느냐 그거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이 하나님 무서운 줄 안다는 것은 이미 악마가 무엇을 안다? 선과 악을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사탄은 천사였습니다. 천사인데 선악문제 때문에 쫓겨난 쪽이예요. 악마는 자기만 쫓겨난 것이 아니고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데 에덴 동산에 있는 인간을 꼬셔 가지고 이왕이면 자기는 이미 버린 몸이고 하여튼 선악과를 심어 버리면 악마 신세나 인간 신세나 쫑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유혹해서 선악과 심도록 하나님이 사실은 허락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공의성 때문인데 그것은 딴 이야기이고요. 어쨌든 선악에 의하면 그러면 받은 축복을 욥의 세 친구는 뭐로 봅니까? 욥은 선물로 보고 위탁으로 보고 맡긴 것으로 보는데 욥의 세 친구는 선으로 보는 거예요. 너는 선했었다. 그런데 너는 선의 선물을 받을만한 자격자가 못 되기 때문에 빼앗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입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죠.
목사가 뭐라고 하냐면 어떤 권사 집사가 벌 받은 것은 그동안 복 받을 때는 겸손해서 복 받을만 했는데 이제는 그 복을 빼앗간 것을 보니까 그런 복을 누릴 잽이 안되기 때문에 그럴 인간이 안되기 때문에 주께서 빼앗아갔기 때문에 지금 와서 너가 다시 회개하고 헌금하고 십일조하면 너가 잃어버린 것을 원상복귀 해 준다는 거예요. 욥을 보라. 욥이 회개하니까 곱배기로 복을 주었잖아. 왜 곱배기 복을 믿음이 있으면서 왜 활용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은혜되네.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은혜가 되요. "내가 주여 뭘 하면 복 받을 수 있습니까?" 라는 그런 마음 자세라면 이 이야기가 은혜가 되죠. 제가 주일 날 아침에 설교를 하는데 낯선 분 두 분이 부부가 앉아 있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아요. 설교 초반부터 굳어지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교회에 왜 오셨습니까? 오늘 마리아는 다윗의 자리와 야곱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 이야기가 침투해서 왔는데 우리는 교회 때 왜 왔습니까? 복 받을려고 오죠.
그런 교회는 쓰레기 같은 교회니까 중국산 라이터로 불 붙여서 그릇까지 다 태워 버려야 합니다 하니까 나중에 보니 없어졌어요. 축도하기 전에 나갔답니다. 서울서 온 가족이 있어요. 그 가족은 처음부터 좋아서 나중에 갈 때 책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똑같이 처음 오신 분인데. 참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뭐 춤 출 것은 없지만. 사람이 이렇게 되면 내가 인간성이 좋아서 하나님께 복 따낸 것이다. 옆에 있는 김집사 집은 망한 이유가 신앙심이 떨어져서 저주받은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기분 좋을수도 있지만 사탄은 계속 우리에게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사탄은 너도 임마 성경 몇 장 안 읽고 기도 10분씩 하다가 바쁘다고 출장가서 모텔방에 가 있다고 기도 안해 버리면 요번 주 받을 복은 끝났어. 저주받을 것 각오해. 우리는 항상 불안해요. 불안하고 만약에 십일조를 한 달에 20만원 하다가 갑자기 10만원 하면 목사가 하는 일이 그거예요. 어어 이 사람 십만원.. 심방가야 되겠다 심방가야 되겠다 기도 하세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20만원 줄 때 잘하지 왜 20만원 받았다고 안일해 하다가 바로 10만원 내려 갔잖아요. 기도하시면 30만원 보장해 주십니다. 축도하고 또 헌금 봉투해 가지고 드려야 하고 이럽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창대하리라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그 대목 가지고 압력을 넣습니다.
심방이 뭡니까? 목사가 가든지 부목사가 보내서 압력을 넣고 그럽니다. 부목사하는 일이 그겁니다. 넘버쓰리니까. 지금 욥의 친구 이야기를 우리가 그 욥의 친구들이 구축한 신학에서 인간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철학을 공부해도 그 밖에서 못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철학가가 마치 신을 조롱하고 미워하죠. 그것은 워낙 신을 의식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나는 신을 안 믿는다. 나는 교회 안 간다. 교회 안 가는 사람들 보세요. 신을 안 믿는가? 다 믿고 있어요. 어떤 신? 욥의 세 친구가 말해 줍니다. 내가 교회는 안 가지만 길거리에서 휴지 줍고 남한테 착한 일 하고 내가 환경운동 뛰는데 주여 양심 있으면 복 주세요. 나 내 몸 하나 살라고 하는데 지금 나쁜 놈들이 교회 와서 복 달라고 하지만 나는 그 교회 부정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나 교회는 싫어하지만 예수는 안 싫어합니다. 나는 존경합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복 주세요. 이것이 바로 욥의 세 친구 마귀 생각입니다. 뭐 환경운동 한다고.. 이렇게 말하면 또 싫어하는 사람있으니까.
성경에서 욥 세 친구를 왜 그렇게 길게 깔아 놓았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독자적으로 생각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이 하나님 자체를 가지고 성경에서 간단하게 두 자로 이야기 합니다. 이게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은 다른 말로 하면 악마입니다. 내가 내 속 있는 속성과 동일한 속성을 표상하면 그게 악마가 내 속에 심어준 선악과의 확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선악과가 쭉쭉 늘어난 것입니다. 선악과 따 먹은 자체가 이미 죽은 자 입니다.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다시 말해서 이 구조, 너에게 살려주는 구조 바깥으로 쫓겨나라는 이 말입이다. 못 들어 오도록 천사를 통해서 완전히 경계를 서서 그 구조에 생명의 구조에 못 들어 오고 그 때 부터 사람들은 생로병사.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닙니까? 누가 이야기 했습니까? 부처가 이야기 했죠.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죽을 때 까지 고생한다고. 이것이 우리 운명이고 팔자예요. 부처는 모르죠. 왜 우리가 생로병사인지. 모르니까 부처가 기껏 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구조는 비난하지 말고 이 구조가 어쩔 수 없으니까. 이 구조 내부에서 어떻게 자체적으로 해탈을, 행복을 찾아 보느냐.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면 해탈하더라. 그거 몇 초 안 갑니다. 전부 다 속임이예요.
그것은 자기가 영물이라는 것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계는 모조리 하나님 앞에서 속임이예요. 그러니까 사탄의 세계에 있으면서 그 교회 다니면서 목사님 말씀 들으면 "주여 이 말씀 들으면 복 줍니까?" "아이구 이 말씀 때문에 전에 벌 받았구나!" "사업이 안 됐구나! 바이어하고 계약이 깨졌구나! 거래가 성사가 안 됐구나!" 이렇게 하는 자체가 그것은 우상을 섬기고 사탄을 섬기는 입장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사탄이라는 것은 결국 악마의 마음씨가 들어 있는 것이 곧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이미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마음씨가 악마의 마음씨가 되는 것입니다. 악마의 마음씨라는 것은 나쁜 마음씨가 아니고 선도 알고 악도 아는 마음씨. 그리고 그 마음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칸트는 이것을 반성이라고 하는데 반성하면서 악은 지우고 선은 장려해 나가고 수양이죠.
그런데 선인지 악인지 어떻게 아는가? 내가 갖고 있는 소유물이 늘어나면 선한 것하고 상중계되고 내 소유물이 줄어들면 나쁜 짓 했다고 저주받고 있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양심은 믿을게 안 되고 소유가지고 측정하는데 그게 바로 악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어떤 인간을 투입시켰느냐면 욥을 투입시켰어요. 욥의 특징이 뭐냐?
어쩌면 욥의 세 친구와 어떻게 꼭 정반대되는 그 모습이 욥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습인 거예요. 누가 알았으리요? 누가 믿었으리요? 반대로 올 줄로. 이미 익히 아는 우리의 생각과 어쩌면 꼭 그렇게 반대로.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사탄이라고 했어요. 귀신들린 자.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속에 들어와서 뒤집어 놓는, 벌리는 사탄의 일로 봤습니다.
자기들이 죄인이 아닌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누굴 죽여야 합니까? 죄인이라고 한 자를 죽여버렸죠. 죽여 버리니까 아까 첫째 시간에 배운것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사흘만에 죽었다가 부활했죠. 부활한 것이 부활이 아니고 부활뒤에 뭐가 온다? 벌통 들면 무엇이 따라온다고 했어요? 벌떼가 따라오죠. 부활의 세계, 부활의 구조가 오죠.
이미 욥한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구조화 되어서 욥 만이 차압. 차압아시죠? 욥 만 판것이 아니고 욥을 파면서 욥 안에 장차 오실 메시야구조가, 십자가의 구조가 옴팡 뒤집어 씌우니까 욥은 예수님 때가 아니니까 모르는 거예요.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욥은 뭐라고 합니까? 몰라 내가 왜 이렇게 고난 받는지 모르겠다. 너희들 이론 같으면 내가 더 복을 받아야 해. 왜? 내가 너희들보다 더 착하니까. 선악구조로서는 모르겠어. 계속 모르겠다는 거예요. 아시는 분은 두 사람 밖에 없어요. 여호와 하나님과 못된 사탄이 알아요.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과 사탄하고 내기를 했기 때문에 두 분 장기를 두는데 장기 알이 욥이고 욥의 세 친구들입니다. 장기와 법칙을 구조라고 합니다. 장기 게임의 룰이 거기 있어요. 구조화 되어 있어서 욥에게는 에덴 동산의 구조가 옴팡 뒤집어 씌어졌고 욥의 친구들 에게는 선악과의 구조, 악마의 구조가 계속해서 있으니까 둘 사이에 소통이 안 되죠.
소통이 안 되면서 그 사이에 고난이죠. 누가 누구한테 고난을 줍니까?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주는데 그게 확장되니까 누가 고난 줘요? 욥의 세 친구들이, 사탄의 일꾼들이 고난을 주는데 욥에게 아주 심한 욕설을 합니다. 너무 심한 욕설이어서 번역상 쉽게 완화한 것입니다. 욥이 화가 나서 같이 욕을 하고 맞받아치죠. 나중에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죠. "욥아!" 그 다음부터 욥이 하는 말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인간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조 속에서 나는 그냥 재 속에 앉아야 할 죄인입니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냥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어떤 구조로 오는 것도 "왜? 나에게.." "왜? 나에게.." 라는 그러한 것을 언급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조가 오게 되면 내 것이 아니고 주신 것이죠. 내 것이 아니라고 하면 법정 스님이 돼죠. 무소유가 됩니다. 그러면 안 되요. 무소유 됐다는 자체가 단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소유가 아니고 왜 소유가 없습니까? 소유가 있죠. 소유가 아니고 주신 것이라니까요. 주신 것이라면 주신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함과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것을 끊어주어야 되요.
모든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보면 믿지 않고 하는 것이 전부 다 죄가 된다고 하는 이 말은 행함을 결부시키지 마세요. 헌금 안 해 보세요. 벌 받는가? 교회 한 번 안 나가도 아무 일 없어요. 그러다 서서히 하나님과 떨어져 버려요. 헌금 해 볼까? 벌 받을까? 안 받을까? 하는 그것이 단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조가 아니고 구조 속에 단독자인 것입니다. 여전히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것 같으면 헌금해도 안 해도 이미 우리는 누리고 있다는 것을 그런 시험을, 측정을, 말씀대로 맞는가 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시험해서 확인해서 믿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 자체가 말씀의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 말씀 드릴 께요. 행함을 현재 주신 것 하고 연관시키지 말고 이 행함을 누구 행함이냐면 예수님 십자가 행함으로 바로 연결시켜 버리고 우리의 행함은 끊어버리세요. 끊어버리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이 듭니다. 마귀가 틈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현재 이런 혜택을 봤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야지 내가 어떻게 해서 복 받았습니다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만나게 해 주신 것도 나로서 만난 것이 아니고 우리로서 만나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다시 안 만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어디에 있더라도 한 지체로서 여전히 신부로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강의091126b.hwp (32.0K), Down: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