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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삼하 6: 1- 3 (다윗과 하나님의 궤)우리교회사무엘하

삼하 6: 1- 3 (다윗과 하나님의 궤)

이름 : 우리교회(IP:220.81.41.193)

본문 : 사무엘하 6장 1- 3절
제목 : 다윗과 하나님의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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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09-12-06 10:14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하-2009/08강-삼하6장1-3(다윗과하나님의궤)-2sa091206.hwp

이근호

09-12-06 15:53

다윗과 하나님의 궤

2009년 12월 6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6:1-3

(삼하 6:1, 개역)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삼하 6:2, 개역)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삼하 6:3, 개역)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하나님을 모셔온다는 것은 가당치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어디에 계신다면 그 곳 말고는 다른 곳에서는 아니 계신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 계신다는 말은 다른 곳에는 하나님이 없는 셈이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소지하고 독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소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법궤를 소지한 사람만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을 빼앗긴 셈이 됩니다. 이것은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압수당하거나 포획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늘의 천사들의 호위에 둘러싸여 계십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의 이름이 법궤를 소지한 자에 의해서 포획당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법궤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잠시 여기 배추 상자와 법궤를 비교해봅시다.

둘 다 상자입니다. 배추상자에는 배추가 담겨 있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상자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하나님을 붙잡아서 상자에 담아 이리저리 이동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담은 상자를 지상에 마련하신 것입니까? 쉬운 예를 들면,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에게 천장에 달린 조명기구가 방향을 바뀌어가면서 따라가면서 비쳐줍니다.

이럴 때 결코 ‘가수가 조명빛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할 수는 없고, ‘조명이 그 가수를 떠나지 않는다’고 해야 옳습니다. 지상에 있는 법궤라는 상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운다고 되어 있습니다. 상자 안에 뭐가 담기느냐 하며는 곧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야 될 일이 담깁니다.

물건이 담기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 그 물건을 증거물로 하여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지상에 드러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란 쉽게 말해서 많은 천사들의 진두진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보면 됩니다.

많은 천사는 영적 전쟁 할 때 동원됩니다. 따라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의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전쟁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지상의 법궤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벌린 전쟁이 무엇일까요?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다윗과 골리앗이 맞짱 떤 전쟁이 나옵니다.

남들 보기에 분명히 1:1로 붙은 싸움입니다마는 정작 싸움에 나선 소년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전쟁은 ‘만군의 하나님’에게 속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즉 골리앗을 이긴 자는 자신이 아니라 만군을 지휘하시는 하나님의 몫이고 공로요 능력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젖을 먹는 갓난 아이가 강도를 물리칠 수 있습니까? 어느 강도가 자기 생각에 분명 빈 집이라고 여겨서 침입하다가 어떤 인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면서 그 집에 뛰쳐나왔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가보니 갓난 아이가 잠에거 깨어 혼자 방에서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갓난 아이가 강도를 이긴 격이 될 것입니다. 시편 8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젖먹이 아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원수를 물리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기능을 만군의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만군의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벌릴 때는, 힘의 우세에 의존해서 하는 인간들의 전쟁과 전쟁 방식이 확연히 다릅니다.

여호수아 11:20에 보면,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벌리시는 전쟁은 ‘붙이시는 전쟁’입니다.

‘붙이시는 전쟁’이란 마치 자석이나 지남철처럼 당겨지는 사람만 구원받아 천국가고 그렇지 않고 스스로 오겠다는 자들은, 즉 당겨지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해도 구원되지 못하고 저주받아야 하는 전쟁입니다. 한 예를 들면, 어느 술집에서 술취한 사람이 행패를 부려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되면 경찰관들이 나타나서 술 취한 그 사람만 잡아갑니다.

하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출동하시면, 비록 그 술집이 조용해도 그 근처에 있는 모든 깽패들이 몰려들게 만들어서 그들을 저주케 하는 전쟁을 벌리게 됩니다. 이런 붙이시는 전쟁만 하시는 하나님을 만약에 인간들이 기어이 자기 수중에 소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 사람 또한 하나님의 적이 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의 안목에서 맞쳐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성경에서 답을 원합니다. 예를 들면, 사업가들에게 맞는 성경귀절, 혹은 예술가에게 맞는 성경 구절, 같은 지침서 같은 것으로 따로 모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는 인생에서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문제 자체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일하십니다. 즉 “너희들은 답을 찾을 그런 처지에 있지 않다. 나 하나님은 너희들이 궁금증을 풀어줄 그런 상담자가 아니다”는 겁니다. 인간은 자체가 문제거리입니다. 인간들은 절대적 기준을 자신이 갖고자 합니다. 법궤를 소지하겠다는 의도도 같은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원하는 답은 본인들이 여전히 뭐가 문제거리인 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얻고자 하는 답일 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기준은, 답은 만군의 하나님 소관입니다. 배추 상자 안에는 배추가 들어있지만 법궤 안에는 십자가가 들어있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자신 분으로서 예수님의 의의를 모르면 지옥갑니다. 이 소식이 지남철이요 자석 기능을 하면서 영적 전쟁은 진행됩니다. 오늘날 성도들 속에 법궤가 들어있습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성도가 법궤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궤가 성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몸통 자체가 이미 하늘의 정답으로 만들어진 몸통임을 증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0-12-26 16:25

008강-삼하6장1-3(다윗과하나님의궤)-2sa09120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하 6장 1절에서 3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471페이지입니다.

사무엘하 6:1-3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일어나서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하나님의 궤라는 것은 상자인데, 그 상자가 하나님이 계시는 상자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가 복잡해지는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상자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면 그 상자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 안 계십니까? 그런 문제가 발생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상자에 있다.’똑 같은 상자, 택배 상자 말고, 배추 담는 상자 말고, 배추 상자와 하나님의 법궤가 두개 있다면, ‘둘 중에 어느 쪽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궤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면 배추 담는 상자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습니까?’ ‘거기에는 배추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배추를 담는 상자에는 배추가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상자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담기는 겁니다. 그것까지는 누구나 말씀드리면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그러면 배추 담는 상자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안 계신 게 돼요. 계시지 않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복잡한 것이 2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이 그룹은 아이돌 그룹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ㅎ 소녀시대 이런 그룹이 아니에요. 이 그룹이라는 것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고, ”천사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상자, 하나님의 법궤는(궤는 상자) 하늘에 있는 천사들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 그 하나님의 만군의 이름으로 이름 하는 곳이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게?? ’아이고, 신학을 전공한 목사가 알지 제가 알겠습니까?‘ 라는 툰데...ㅎ

좌정하신 하늘의 천사들 가운데 계신(쭉 펼쳐져 계시는) 그 앞에 계시는 하나님이 그 이름으로 이름 하는 곳이라. 그러니까 이것은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를 하게 되면, 좀 오버하는 가수는 곱게 서서 노래하면 될 텐데, 마이크를 거꾸로 쥐고 마이크를 빼가지고 지가 신바람 황수관이도 아니고, 마이크 빼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부흥회도 아닌데 온 무대를 다니니까, 무대의 조명이 같이 따라다니잖아요. 왜냐 시커먼데 가서 노래 부르면 곤란하니까,ㅎ 무대 끝에 가면 조명이 따라다니면서 조명발이 쪽 비취는 거예요. 그렇다면 무대에 있는 조명, 그 조명이 좌정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라면, 하늘에서 쪽 비췰 때, 이곳, 저곳에서 비취는 것이 아니고, 특정 장소에만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곳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계신다.’는 말을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신다 하니까, 여기 컵이 있는데, 여기 계시니까, 컵을 저기로 가져가 버리니까, 여기는 컵이 안 계시잖아요.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신다 하니까 , 그러면 하나님 계신 곳을 내가 잡아버리면, 하나님을 독점하게 되고, 다른 데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이 되는 거죠. 성황당에 만약에 조상귀신이 산다면, 딴 데는 조상귀신이 안 가요. 성황당이 일종의 귀신들의 보금자리고, 귀신들의 아파트가 되고, 아지트가 된다면, 그걸 딱 가져온다면 다른 데 귀신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신 곳이라 하니까, 사람들은 그걸 우리 집으로 모셔 오겠다는 거예요. 모셔 오니까 옆집에 202호에 있던 하나님을 내가 모셔와 버리면, 솔직히 202호 아파트는 하나님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는 게 된다 말이죠. 과연 하나님이 거기 안 계십니까?

이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뭐로 오해를 하느냐 하면, 우리가 여기 있는 것과 같이 취급을 해서 이게 장악이 되고, 포착이 되고 삼킬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말은 거기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하늘에 화살을 쏘아대는 거예요. ‘쏘세요.’하면 팍 쏘잖아요. 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쉽게 이렇게 합니다. ‘용접 하는 곳이다.’용접을 하거나 아니면 철판을 자르는 강력한 산소통에서 나오는 산소용접을 통해서 강력한 분쇄하거나 붙이거나 뭔가 지상의 인간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이 강력하게 쏘아대는 현장, 그 힘이 있으면 뭐든지 다 쪼개지고 박살나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에요.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는 게 뭐냐 하니까, 2절에 보니까,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만군의 여호와와 여호와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만군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는 많은 천사들을 대동할 때를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천사를 대동할 때가 언제냐 하면 전쟁할 때예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다윗하고 골리앗하고 1:1 맞장 뜨는데,ㅎ 누구나 맞장이라 하는 것은 1:1로 붙는 거잖아요. 다윗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1:1이 아니고, 골리앗은 하나인데 이쪽 다윗 편에서는 만군 이예요.1000곱하기10=10.000 만, ten thousand, 만이라는 뜻이 아니고 많다는 뜻이죠. 그래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 하는 것은 잘못 된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못 이깁니다.ㅎ 그것은 누가 증언하느냐, 다윗이 증언해요. ‘다윗 니 어이 이겼노?’‘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겼습니다.’분명히 자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겼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느 집에 강도가 들어왔는데, 안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인기척이 나서 후다닥 뛰쳐나갈 때, 나중에 보니까 ‘ 그 집에 사람 없는데요.’ 해서 가 보니까, 갓난아이가 있었어요. 그러면 갓난아이가 강도를 이겼습니까?‘ 강도가 지가 착각해가지고 지가 지레 겁먹고 도망친 거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있습니다. 오전에 김성수 선생님이 이런 질문 했어요. ‘십자가 마을이 십자가 밑에 사람들이 모인 겁니까? 아니면 하나, 하나가 십자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했어요. 난 좋은 쪽으로 설명했죠. ‘하나, 하나가 십자가입니다.’ 속으로 그래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서 하나, 하나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우루루 모인 것이 아닌 걸로 봅니다.

다윗이든 요나단이든 만약에 하나님 나라의 전쟁을 한 것은 100% 자기 힘으로 전쟁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젖먹이, 오전에 이야기한 비천한 종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승리케 못하도록 조치를 했어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하는 겁니다.

다윗이 이 하나님의 상자를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전쟁하는 솜씨를 이제는 우리 다윗 집에서 일으켜 보이소.‘라는 입장에서 ’일 한번 벌려 보세요.‘ 하는 쪽으로 와가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우리는 주님의 전쟁의 쫄다구 되겠습니다.’라는 그런 자세로, 다른 사람들은 뒤에 보면 오해하는 사람은 뭐냐 하면, 복이 온다는 그 상자를 내가 독점하므로 말미암아 다른 데는 복이 안 떨어지고 나만 복이 오겠다는 그런 심보로 이걸 소유하려는 식으로 상자를 하니까 다른 데는 복이 없고, 우리는 복이 있다. 이런 착각을 하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계시면, 우리교회는 복을 독점한 데가 아니라 이제는 죽어난 거예요. 복음적인 영적 전쟁을 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거 안 하겠다고 툭툭 다 튀어나갔어요.ㅎ 뭔가 자기 자신이 소유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소유 당해야 돼요. 성경에서는 그것을 사로잡혔다고 하는데, 복음에 사로잡힌 자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갓난아이가 되고, 우리는 하나의 다윗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상자에서 일을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어렵습니다. 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일을 하실 때는 반드시 전쟁을 하는데, 전쟁을 할 때, 우리 전쟁은 뭐냐, 힘 센 사람과 힘 약한 사람, 힘의 우열로 전쟁을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쭉 보면, 하나님의 전쟁은 달라요. 어떻게 다르냐 하면, ‘붙이심으로 벌리는 전쟁’이예요. 완전히 풀을 갖고 있어요. 저는 풀이라 보지 않고 지남철(자석)로 보는데, 하나님의 전쟁은 붙이심의 전쟁인데, 이것은 뭐냐, 지남철 전쟁, 또는 자석 전쟁, 아무리 천국 가려고 해도, 지남철에서 안 당겨주면, 지 머리만 깨져요. 깨졌다가 ‘아무것도 아니네.’하고 가버려요. 우리교회도 왔다가 그냥 가버려요. 그런데 당겨주면, 땀이 나도 당기게 돼 있어요. 이게 붙이심의 전쟁입니다. 아주 전쟁 방식이 사람들의 생각의 상식을 넘어서요. 그래서 성경을 봐도 성경을 몰라요. 붙이심의 전쟁이 뭔지, 왜 이 말을 해야 되는지...

붙이심의 전쟁의 예를 들겠습니다. 여호수아 11장20절에 나오는데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이렇게 출동하게 하시면, 보통 경찰 같으면 술집에서 싸우면 신고 해서‘잡아가세요.‘ 하잖아요. ’돈 안내고 도망치는 사람 잡아가세요.’그러면 다 잡는 게 아니고, 술 취해서 행패 부리는 사람만 잡아가죠.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출동하면 경찰 출동한 거와 달라요. 하나님이 출동하면, 조용한 술집이라도 하나님이 출동하면 동네 깡패 다 모이도록 땡긴다니까요.ㅎ 방법이 희한해요.

우리교회가 복음을 안 전하면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조용합니다. 밑에 있는 수정인지 보성인지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복음을 전해버리면, 딴 데서도 공격하고 그래요. 경찰관이 출동하면 행패 부리는 사람만 잡아가지만, 만군의 여호와 출동하면, 50리 밖에 있는 깡패들도 와서 스스로 대들어서 박치기 나서 전부 다 저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게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 중심 센터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늘의 위 조명발이 위에 계시면 그 조명발 받는 아래쪽에 현재 어느 나라에 법궤가 있느냐, 현재 어느 장소에 법궤가 있느냐, 로 결정하는 거예요.

다윗에게 법궤가 소유되면 모든 민족은 다윗에게 와서 깨져야 됩니다. 그리고 구원 될 자는 다윗을 통해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이 사람들이 왜 성경 볼 때 안 보이느냐 하면,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해답을 원해요. 답을 원하고 있어요. 무슨 말인가 모르죠. 사람들이 이런 게 있어요. 어떤 목사들이 갖고 다니는 수첩을 보면 이런 게 있어요. 병자들에게 적당한 성경구절, 군에 가는 사람에게 적당한 성경구절, 경영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성경구절, 병이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구절,

지하철 타면 좌석 앞에 광고문이 앞에 나오잖아요. 시름시름 앓는 분들, 이유 없이 앓는 분들, 그리고 고부간에 갈등 있는 사람들, 성적이 안 오를 때, 이런 것 있잖아요. 그처럼 목사들 수첩에 그런 게 있어요. 그게 바로 성경 구절에 대해서 성경 자체를 뭐로 보느냐 하면, 답을 얻고자 하는 거예요. ‘사업이 안 되십니까?’ 그러면 성경 구절을 찾아,‘하나님께 맡기라.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잠언 서에 나오잖아요. ‘하나님께 맡기세요.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하고, 자기애가 군에 간다, 하면 좋은 구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전방에 안 빠지고 후방에 빠진다.ㅎ

답을 얻고자 하는데,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답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고, 답을 주시는 게 아니고 문제를 줘요. 왜 성경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 붙이심의 전쟁으로 다룰 수 없느냐를 문제를 만드는데, 그 사람의 한 평생이 다 소모가 됩니다. 미국 가는 최유한테 이 제안했어요. 애가 뭔 뜻인지 이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니가 여기서는 세례 받는다고 문답을 했지만 그 답의 의미를 모르지? 니가 외지에서 미국에서 고생 해 봐라. 그러면 성경 말씀 하나하나가 진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 그리고 구원 받을 길이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 답이 있는데, 우리는 문제를 몰라서 답이 답 같지가 않아요. 같은 8이라고 2+6=8되고, 16÷ 2=8 2⨉4=8 이요. 사람이 8만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생의 답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다. 누구나 지나 개나 다 교회 한 번 다니면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문제가 내가 그 예수님을 십자가라는 답을 유발시킨 바로 내가 문젯거리 인간이라는 것을, 답하고 내 인생하고 결부를 시켜 줘야 되요. 그런데 사람들은 답을 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법궤를 소유하면 복을 받습니까? 맨 날 이런 식이예요. 뒤에 웃사 이야기 나옵니다. 법궤 소유하면 복 받는 줄 알고,오벧에돔의 집에 주께서 복 준다 하니까, 그게 좋아서 그게 구미가 확 당겨가지고, 하나님, 예수님 모시면 복 오는 줄 알고.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기준을 정해서 문제예요. 황 전도사님이 이런 이야기해요. 자기 남편하고는 무슨 약속 못하겠다고 해요. 시간 약속을. 왜냐하면 보통 시간을 6시에 만나자고 하면, 자기는 6시에 나간대요. 그런데 꼭 남편은 5시25분에 온답니다.5시 25분이나 30분에 나와서 왜 늦게 오느냐고 한 대요. 다른 남자하고는 반대죠? 보통 6시면 6시 반에 와야 하는데, 6시 약속하면 5시 25분이나 30분에 와서, 왜 늦게 오느냐?? 분명히 약속을 6시에 했거든요. 6시 약속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해답 이예요. 그런데 해답이라고 해서 나와 보면, 틀렸어요. 왜, 남편이 30분 일찍 왔어요. 바로 그 남편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지 딴에는 성경 지킨다고 지켜보면, 지 딴에는 맞다고 맞춰보면, 꼭 주님한테는 욕 얻어 먹어요.ㅎ 이게 상대적입니다. 상대적으로 항상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시지 우리가 못해요. 우리는 그냥 붙여줄 때 하나의 붙여줄 때 구원되기로 붙여주기 때문에 구원받은 거지, ‘주님이여 저는 약속도 잘 지키죠?’이래가지고 절대적인 기준을 지켜서 구원 받는 법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맨 날 우리의 기준을 포기 못하고, 우리 기준을 우기고 버티고 그렇게 하죠.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전쟁과 우리의 전쟁이 자꾸 비껴 나갑니다. 그렇다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는 어떤 일을 사출, 쫙 쏴대는 것, 어떤 하늘의 그 엄청난 일을 쏴대는가. 그게 바로 축복과 저주의 기준을 쏴대는 거예요. 배출하는. 축복과 저주의 기준 이예요.

배추상자에는 배추가 들어있고, 하나님의 상자에는 하늘의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추상자에서 배추만 보면 아무 일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곳에 봤어요. 뭘 봤냐 하면, 마지막 때에요. 지금 말고, 교회 부흥 성장 그 기준 말고 마지막 때 기준이 뭐냐, 그게 법궤 안에 들어 있습니다.

법궤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십자가’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주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는다는 거예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던 것이 옛날 시대라면, 신약에는 주 예수님 이름으로 구원 받습니다. 이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고요. 예수님을 안 믿으면요. 지옥가요. 그런데 방금 이야기한 것이 지남철이어서 예수를 믿고 싶어도 안 믿어지는 사람이 있고요. 예수님을 안 믿고 싶어도 믿어야 되는 운명과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 있어요. 고 축복까지, 고 능력까지 어디서 나오느냐, ‘예수님 십자가’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는 사람은 씻음과 은총을 십자가에서 항상 그곳으로 쳐다보게 돼 있어요. 십자가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게 영원한 법궤를 천사들 가운데 그룹들 가운데 계시는 영원한 만군의 하나님이 바로 자기의 마음속에 좌정하시는 곳입니다. 우리도 천사와 하나죠. 사실은 천사보다 우위에 서지만, 우리도 천사와 하나처럼, 천사들이 예수님(어린양)을 둘러쌀 때, 그들이 하는 일이 뭡니까? 저희들 쳐다보지 않아요. 가운데 계신 분을 쳐다보면서 날개 짓하면서 영원히 찬송하는 겁니다. 찬양은 오늘 아침에 이야기 했죠? 몇 시간 지났다고 다 까먹어 버렸죠?ㅎ 찬양이라 하는 것은, 내가 하지 않는 작업을 주께서 하실 때, 고맙다고 우러나오는 노래가 찬양입니다. 인간은 자기만 쳐다보고 사는데, 세상에 자기 쳐다보지 않고 자기를 구원 하신 분을 쳐다보면서 하루에 2초나 3초나 천사처럼 찬양 한다는 거, 그거 예수님 흔적 가진 사람 이예요. 이거 우리 능력 아니고, 지남철(指南鐵)로 땅겨줘서 그렇습니다. 이미 주님의 하늘의 조명발 받아서 그런 겁니다. 같은 언약의 조명발, 언약의 법궤 안에 모여 있는 다윗 같은 사람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이렇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우리를 젖먹이로, 비천한 종으로 사용하셔서, 만군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주특기가 ‘전쟁’하는 거예요. 세상에 있는 모든 악마의 군대와 더불어, ‘종말로 너희가 영적 싸움을 싸워라.’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복음의 갑옷과 투구를 쓰고 복음으로 완전무장해서 십자가 안에 쏙 들어가서 오직 복음으로, 나는 부족하지만 변변하게 내세울 게 없지만, 오직 복음으로 세상에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증거 하는 전쟁에 우리가 말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이 이스라엘이라면 그냥 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나의 소유와 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복과 저주, 구원 받을 자를 건지시는 이런 기능이 일어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천사도 부러워 할 하늘의 복음의 성도로서 기능인 줄 알아, 이 기능이 우리 안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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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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