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가 아닌 예만
아니오가 아닌 예만
이름 : 김성환(IP:119.194.19.231)
아니오가 아닌 예만
인간은 어떤 일에 있어서 단정 짓는 말과 행동을 회피하려 든다. 가정이나 정치나 문화나 인간이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회 속에 부대끼면서 ‘난 이것을 원해!’ 란 말을 하기가 어렵다.
요즈음 같이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할 용기 있는 자가 몇 안 될 것이다. 그 만큼 이 사회는 악이란 울타리로 엮어져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이 잘 굴러갈 때는 부하직원의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어서 집에 들어가!’ 란 사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젊은 세대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 그러나 지금은 그 양상이 다른 것 같다.
개인마다 기업마다 돈이 궁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두들 긴장하며 허리띠 졸라매고 출근하고 퇴근한다. 이 세상은 돈이 최고의 신이기 때문에 돈 중심으로 몸도 마음도 사태 파악을 하며 조용히 움직여 나가야 한다. 나이든 과장급, 부장급 직원은 퇴사를 염두 해두고 퇴직금 계산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고 대리급은 중간에 끼어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딤후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인간은 말세가 이미 자기 코앞에 성큼 다가 왔는데 ‘아니오’, ‘예’란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할뿐더러 그 대답을 용기 있는 타인과 회사노조원들에게 맡겨 버린다. 물론 복음적 의미도 없고. 현 세대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과 늘 부딪침에도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회피하고 상황 따라 ‘아니오’, ‘예’를 매일 반복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돈을 쥐고 뒤흔드는 악마가 버티고 있다.
하늘에서 피란 압축기로 자신의 심장을 매일 누리고 있는데 인간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주말의 눈요기 꺼리를 사냥하러 나선다. 예배도 자신의 욕망과 슬픔을 부추겨 줄 눈요기 꺼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몸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잊으리 잊으리!’
그러나 주님의 피는 인간에게 갈등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부딪히게 만든다. 그런 후 인간 몸 밖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맞닥뜨리게 해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말 못하는 벙어리와 사물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피의 세계에서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눅 1:20, 개역)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제사장 사가랴는 ‘아니오’, ‘예’란 물음 앞에 죄인으로 들통난다. 문둥병자, 맹인, 손 마른자, 혈루병, 벙어리 등은 율법의 저주받은 자를 대표한다. 약속 밖에 있는 죄인이다. 사가랴의 직분은 제사장이었지만 그의 역할은 원래 죄를 드러내는 것인데 자신은 정상인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아니오’, ‘예’란 물음 앞에 자신이 원래 누구였는지 알았다. ‘난 원래 벙어리였구나!’
왜 피는 인간의 존재와 상태를 부딪치게 만들까? 그것은 주님의 피안에 모든 피조물을 ‘아니오’가 아닌 ‘예’만 고백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왕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과 아람 군대를 갖고 놀고 있다. 이리저리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자기 집에 가만히 앉아서 마음대로 조종한다. 인간은 성경(피의 책)을 보지 않으면 이 세대가 전부인양 알고 산다. 찰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서 자신의 몸을 현세대에 맡겨 본다. 그런데 성경을 열면 이상한 이야기만 나온다.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다른 세계가 툭 튀어나와서 마음의 문을 쾅쾅 두드리고 조인다. 혼란스럽다.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었나? 이거 믿어야 하나?!
불말과 불병거가 ‘아니오’, ‘몰라’, ‘이것도 저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는 이 세대를 심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아람군대와 인간은 장님이고 벙어리이기에 피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은 멋도 모르고 저주 받는 자리에 가 있다. 이미 주님의 심판날이 시작되었고 재림의 한 사건(시간도 역사도 아닌 약속)을 통해 최종적으로 마무리 될 것인데 ‘아니오’도 아니고 ‘예’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오’도 아닌 자로 산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 자신 예수와 맺은 약속에 일양 미쁘시다. 절대적이다. 이 ‘미쁘심’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 성취의 미쁘심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이 세상 신인 악마를 등에 업고 약속을 어떻게 무엇으로 취급하고 다루었던 간에 그 약속의 내용은 최종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고후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지금도 약속의 피로 ‘아니오’가 아니라 모두 ‘예’가 됨을 인간의 의사표현과 상관없이 홀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하여 이 악한 세대가 하나님의 미쁘심의 약속을 부정 하든 긍정 하든 상관없이 천하를 아들의 피로 심판할 것을 성령은 만방에 이미 다 보여주셨고 앞으로 그날까지만 보여 주실 것이다. 그런 후 무대의 막은 내려지고 끝이다. 울어도 소용없다!!!
(행 17:31, 개역)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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