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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삐딱한 표적묻고답하기누가복음

삐딱한 표적비방받는 표적이라는 축복(예언)눅 2 : 1 - 38저번 주에 세례요한의 증거가 "나 아니오 주님"임을 선전함에 있어서, 제대로 주님을 알아본 자의 외침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라는 소리를 통해, 세례요한의 광야의 소리는 메선저로써 어린양을 증거하고 뒤로 빠지는, 소리로만 남고 자기 인생의 의미 하나 안 남기고 챙길것 하나 없이 깔끔하게 일회용 소모품의 운명처럼 최후를 맞았습니다.오늘은 아기 예수님의 증인으로 시므온 선지자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시므온 선지자는 아주 희한한 삶인 것 같습니다. 오로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축복 그 한마디를 위해 살아온 자 같습니다. 자기 인생은 도대체 보이질 않습니다.그 시므온의 증거 또한 아주 이상합니다.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했던 메시아, 아주 대단한 위인이기에 당연히 큰 경배를 통해 그에 대한 예언과 축복은 진짜 남다르게 특별하게 증거 되어야만 할꺼 아닙니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고 도통 이해하기 힘든 축복을 시므온이 합니다.보통 상식적으로 아기를 안고 이래 축복하는 자도 없을뿐더러, 더군다나 평생을 기다려온 메시아 되신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는 말이 그 축복이 고작 이겁니까?(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개역개정)(눅 2:34)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공동번역)(눅 2:34) 『시므온은 그들은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도록 세우심을 받았습니다.』(표준 새변역)(눅 2:34) 『시므온은 그들에게 축복하고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아기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아기를 믿지 않아 망하기도 하고 믿어서 구원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기는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며』(현대인의 성경)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축복한 뒤에 왜 마리아에게는 이렇게 예언을 하는 겁니까? 이런 축복이라면 과연 축복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흥하고(세우고) 패함(넘어뜨리기 위함)을 위한 비방받는 표적(왕따)이 된다는 이 말이 축복입니까? 아기 엄마 한테 할 말이 맞나요? 이게 아름다운 덕입니까? 이 말을 선전 광고하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까? 어떻게 이 말이 기쁜 소식입니까? 그야말로 아기를 안고 고작 하는 말이 "기구한 운명이구나" 그러니 위대하기는커녕 이 말을 위해 기다려 왔고, 이 말로 이제 놓아주시는구나 라고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니, 축복하는 자도 축복 아닌 것 같고, 축복 받는 자도 축복 아닌 것 같은, 전혀 납득이 안되는 말만 골라 골라 그 내용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 말이 진짜 축복이라면 우리의 기존 축복관이 다 깨어져야 하며 선지자의 메시지에 대한 생각들도 다시 생각 해봐야 할껍니다. 그럼 앞에서 증거했던 선지자들을 살펴 봐야 할껍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어떠했을까요?구약의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와의 차이점을 살펴 보아서 시므온 선지자는 축복 한 것인지 저주 한것인지 우리 한번 따져 봅시다.거짓선지자는 비도덕적일까요? 광명한 천사 아닌가요 !(고후 11:14). 그런데 구약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거짓선지자 증거선택된 국가 이스라엘 중심 선택된 교회, 성전 중심 국가 이스라엘에 낙관적,가능성, 기대, 연연함 개방적, 희망적, 미래 지향적 예언 조건적(회개,충성,봉사,직분,방언,은사,사명하면 축복, 안하면 저주) 자기자리 고수, 댓가가 당연함(낙관적 구원) 참선지자 증거예정된 주님 중심이스라엘을 비관적으로 멸망을 외침연연치 않음, 뒤돌아보지 않음, 빠이 빠이 빠이야(요즘 뜨는 트로트)아니오를 외침(이스라엘 안돼 XXX, 성전 안돼 XXX, 교회 안돼 XXX, 제사도 번제도 안돼 XXX, 바른 목사도 안돼 XXX, 참된 교인도 안돼 XXX, 인간 안돼 XXX, 나도 안돼 XXX, 다 안돼 XXX, 오로지 주님 뜻대로만 돼)절망적, 비관적, 폐쇄적 예언창세전에 예정된 사항을 증거 이미 결정된 사항을 확인하는 작업(예정된 대로만 돼)무조건적( 인간의 어떤 열심도 다 거부하고, 일방적인 주님의 은혜만 고수)자기 부인 자기 포기 (챙길꺼 하나 없는 주님만으로 족함. 심판 속의 구원-십자가.요나의 표적만 구원) 참 선지자가 삐딱하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결정된 사항을 듣는 죄 속에 있는 우리들은 삐딱한 소리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히려 여유있고 부드러운 음성과 긍정적인 평화 평강을 외치는 거짓 선지자들의 외침은 비록 지금은 타락했더라도 우리를 하나님은 내버려 두시지 않고 때려서라도 회개케 해서라도 되돌아 오게끔 돌이키겠음 하신다는 국가적 공동체적 민족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합니다. 이 얼마나 희망적인 미래 지향적인 믿는자 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참선지자는 그런 거짓선지자들의 국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낙관적이지 않고 상당히 비관적이며, 오히려 남은자만 돌아 온다고 외칩니다. 거기에는 민족적 의미도 필요 없고, 국가적 의미, 공동체적 의미도 필요 없는, 개별적인 개개인적인 독대적인 만남으로 새로 형성된 이방인이든 이스라엘인이든 상관 없이 남은자만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돌아온다는 이미 창세전에 결정된 사항을 증거하고 확인 할 뿐입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수 많은 도시를 돌며 복음을 증거하고 난 뒤의 결론임 사도행전의 마지막의 내용은 이사야의 예언으로 채워집니다. 즉 앞으로 잘 증거하고 제대로 전도하면 아름다운 복음문화를 만들어 갈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사항, 귀 있는 자들은 듣고, 들을 귀 없는 자들은 못듣는 것을 그동안 복음을 전파한 바울 자신이 믿어야 할 입장처럼 말이지요. 그렇기에 예정을 숙명론화 시킨다고 다들 거부시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 예정론을 이방종교의 숙명론이니 이단이라고 싫어합니다. 앞으로 우에 우에 해 나가야 할 우리의 처지를 전혀 고려 하지를 않고 과거의 이미 결정된 사항을 확인하는 것 뿐이라고 하니 힘이 빠져도 보통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의 의미를 전혀 둘수 조차 없기에, 우리 존재성을 흔들어 놓기에, 사랑이 없다는 둥 매마르다 라는 둥 냉정하다 라는 둥 등의 말로 핑계 되면서 돌아섭니다.마치 불뱀에게 다 물리게 해놓고선 저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 안 쳐다보면 죽는다 하니 오기가 나서라도 안 쳐다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작정된 자는 쳐다보고 주님의 낮아지심을 보고 자기 죄를 보게 되는 거지요. 불뱀 물리기 전에 미래에 이런 일이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게 아니라, 아예 물릴 수밖에 없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맹글어 놓고 쳐다보라고 하니 빼도밖도 못하는 꼭 물리고 난 뒤에 구원의 길을 제시하니 그 방법이 얼마나 일방적이요 페쇄적입니까? 민주주의란 찾아볼수 없는 너무 독선적이지요.그럼 놋뱀 보고 살아난 자 다 요단강 들어 갔나요? 아니지요 또 철저히 가려 냅니다. 그 쳐다보기 정신이 계속 남아 있는지 말이지요. 생명책에 기록 되지 않았는데 썩여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려내시겠죠. 철두철미 하시도록 말이지요. 요단강 들어가면 끝났나요? 또 탈락 있습니다. 끝까지 추적합니다. 이렇게 살벌한데 예정을 우리가 숙명론처럼 우리 마음대로 요리 할수 있겠습니까? 예정된 것은 오직 아들의 형상 뿐인데요 뭘.(롬 8장)그럼 왜 삐닥하게 증거 할 수 밖에 없느냐 라고 질문하면 그 증거가 무엇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할 껍니다. 그런데 그 겨냥한 것을 알고 주님의 일하심이 왜 그렇게 낮아지지 않으면 안되느냐를 통해서,/ 비방 받는 표적이 안되면 아니되느냐를 통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원수들의 손에 넘기우지 않으면 안되느냐를 통해서,/ 본체이신 하나님 되신 예수님이 하늘 영광 버리고 오히려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낮아짐이 아니면 안되느냐를 통해서,/ 죄의 심각성을 해결하는 주님의 일(사람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님만이 할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죽음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는 거지요. 사랑은 죽음을 해결합니다. 사망의 권세에 포로된 자가 우찌 죽음을 해결 할수 있습니까?그래서 이제는 그 죄를 지적하고 나의 죄를 겨냥해서 일하시는 주님의 세계를 직접 만난자는 " 왜 선지자는 항상 삐딱하게 증거 할 수밖에 없느냐? " 라는 질문에서, 이제는 바뀌어져서 " 왜 나는 선지자의 증거를 삐딱하게 들을 수밖에 없느냐? " 라는 질문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이 어두움 그 자체임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들을 귀 없는 자는 못 듣고, 들을 귀 있는 자는 그 삐딱함이 아니었으면 생명의 세계를 몰고 오신 빛되신 주님을 몰라보는 겁니다. 그 저주의 십자가가 아니었으면, 그 비방받는 표적이 아니었으면, 요나의 표적 외에는(아니었다면) 구원이 없는 겁니다.주님으로 인해서 태글 걸려 실족하여 다 넘어졌지만 그 넘어짐을 통해 비로소 죄를 알고 그 걸게 넘어드려주신 주님을 알아봤을 때 다시 일어설 수 밖에 없는 오뚜기 운명인데, 생명 책에 기록 되지 않은 자는 그 태클에 걸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때 버림받은 자임을 알 듯이 주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는겁니다. 즉 넘어지지 않도록 내 쪽에서 신앙을 잘 지키고 고수하고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넘어졌더라도, 아니 모두 다 넘어 뜨리십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를 찾는 확인 작업을 하는 겁니다. 이미 창세전에 결정된 생명책에 기록된자를 확인하는 거지요. 결국 이 예정이 바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위한 것이지 믿음 좋아 다시 일어나는 대끼리 오뚜기가 잘나서가 아니다는 겁니다.인간을 위한 예정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이것 또한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는 겁니다.거기에 반해 거짓선지자 거짓 증인들은 미리 결정된 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해서 돌이켜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형성하자는 주장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찬의 삶이고 선택받은 사랑받은 자들의 도리라는 겁니다. 그것이 예정받은자 선택받은자가 이 땅에서 할 일이요 그리스도의 문화 선택받은자는 절대 버림 받지 않는 참좋으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이지요.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그렇기에 생명책에 기록된자들은 소모품의 운명처럼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고, 기록되지 않은 자는 죄의 심각성 보다 종교 탐욕에 열심을 다하며 낙관적 구원(선택)관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참 이상합니다 주님의 운명의 길을 가는 자는 버림받을까봐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이고, 그러면서도 버림 받는 그 길을 갈 수밖에 없고, 그 반대의 길을 가는 자는 상당한 구원의 확신 속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그 멸시 받는 좁은 길을 거부합니다.빌 2:5-11의 예수님의 마음이 낮아짐을 통해 죽기 까지 복종하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버림받는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그 이름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는 반면에(빌 2: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추구하고 자기 존재를 위해 하나의 욕구 충족적인 면에서 일을 하는 자는 (가만히 있지를 못함 불안해 두려워 하고 있음, 뭔가를 자꾸 움직여야 함,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않됨) 예수님이 주체가 되지 않는 자기 신앙이 주체가 되어 예수님의 일하심을 성령님이 일하심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십자가의 피의 공로가 자기열심인 종교야망으로 인해 가리움을 받는 겁니다. 자기 공로(존재)를 주장합니다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내 때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리고 외치고 뒤로 사라지는 자기 하나 챙길 것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써 메신저로써 세상에서 주님의 세계만 증거하고 알아보고 눈치채고, "예수님을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라고 장대 높이 달린, 십자가의 예수님만 외치고 그 사랑이 십자가에만 고정 되었음을 선전하고 뒤로 퇴장합니다.주님! 내가 바로 주님의 원수 였습니다. 주님의 원수인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 그 값없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모습을 심판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의 믿음으로만 우리 속에 채워주소서. 내 믿음이 아닌 주님의 믿음으로 새롭게 만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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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묻고답하기 Re..목사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23
409 묻고답하기 답답했습니다 - 최고관리자 03-12-22
408 묻고답하기 Re..한 성경에 대하여 다른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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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묻고답하기 Re..요즈음 아이 키우기 힘들어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20
405 묻고답하기 요즈음 아이 키우기 힘들어요 - 최고관리자 0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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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묻고답하기 "내게"와 "내가"에 대한 질의 시편 최고관리자 03-12-19
402 묻고답하기 Re..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찌라도...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19
401 묻고답하기 저에게 메일로 온 글인데요...목사님 생각은 - 최고관리자 03-12-18
400 묻고답하기 나를 죽이는 하나님 - 최고관리자 03-12-13
399 묻고답하기 Re..십자가만 믿으면 되는 겁니까?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12
398 묻고답하기 십자가만 믿으면 되는 겁니까? - 최고관리자 03-12-12
397 묻고답하기 십자가 마을 글읽기가 안 됩니다. - 최고관리자 03-12-11
396 묻고답하기 Re..궁금합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11
395 묻고답하기 Re..목사님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10
394 묻고답하기 목사님께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3-12-10
393 묻고답하기 누나를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은지요 - 최고관리자 0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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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묻고답하기 Re..답답함에...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06
390 묻고답하기 답답함에... - 최고관리자 03-12-06
389 묻고답하기 Re..질문> 감사드리며, 또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05
388 묻고답하기 질문> 감사드리며, 또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03-12-04
387 묻고답하기 Re..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3-12-03
386 묻고답하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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