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혼인 잔치(이근호 목사님 주례 설교 녹취)
가나 혼인 잔치(이근호 목사님 주례 설교 녹취)
이름 : 이미아(IP:115.41.204.249)
가나 혼인 잔치
(이근호 목사님 주례 설교)
2009-11-25 23:36:09 녹취 : 이미아
요한복음 2장1절에서 4절까지 보겠습니다.
1절.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절.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방금 읽었던 이 말씀은 가나라는 지방에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우리 예수님께서 초청 받아서 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셨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게 됩니다.
자, 예수님께서 부조를 얼마나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결혼식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이 시간 우리 송재원 이미아 두 선남선녀의 결혼식에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참석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신랑 신부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얼마나 뭐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이 성경 말씀은 혼인잔치가 나중에 기쁨의 결혼식이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석했더니만 그 결혼식이 보통 인간들의 평범한 결혼식으로 끝날뻔 했는데 예수님이 거기에 가담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큰 기쁨을 누리는 결혼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혼식이 어느 정도 큰 기쁨이었냐면 예상밖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예상밖이라는 것은 기대를 했었는데 그 기대한 이상의 큰 기쁨이 넘치는 결혼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나 그 전이나 이렇게 예상밖의 큰 기쁨을 주는 결혼식은 없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결혼식이 예수님이 하객으로 참석한 혼인잔치와 같은 그런 결혼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상밖의,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큰 기쁨의 혼인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객으로 참석한 결혼식과 예수님이 하객으로 참석하지 않은 결혼식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 예수님께서는 결혼식 그 자체보다도 신랑 신부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예수님을 알고 결혼식을 하는 것과 예수님을 모르고 하는 결혼식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성경 말씀 에베소서 5장 31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1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부모를 떠나서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육체가 될지라 여기에 한 육체라는 것은 그 두사람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생겨날 수 없는 그 한 몸 입니다. 둘이 혼인하지 않았으면 발생되지 않는 한 몸 입니다. 둘이 만난적도 없고 둘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면 생겨날 수 없는 그 새로운 한 몸을 하나님께서는 결혼식을 통해서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라" 총각과 처녀가 어릴 때 부터 부모에게 양육을 받게 되는데 부모한테 양육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 머리속에 있는 모든 사고방식이나 정신상태가 부모로부터 그대로 인수인계받은 사고방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에서 내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 자기 것은 없어요. 부모님이 가르쳐 준 대로 두뇌에 박혀서, 마음에 박혀서 아마 이렇게 부모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참된 사람이 될거야 라고 했던 그 시절이 부모 밑에서 양육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기존의 체계에서, 체제에서 떠나서 도달해야 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동하는 것을 의미해요. 이동할려면 기존체제에서 떠나야해요. 부모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은 어디까지나 부모 사적인 사고방식이예요. 그렇게 되지 아니하면 결혼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몸이 발생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생각했던 그 시절에 세상을 봤던, 그 때 그 시절에 떠나야 될 그 체제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자기 인생이 없고 부모를 대신하는 부모 인생 밖에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부모가 무슨 큰 죄를 저질렀기에 부모를 떠나라고 하느냐? 부모는 자식을 놓게 되면 아마 둘이 결혼하면 애기를 놓게 되는데 애기를 놓게 되면 부모는 자식을 자기의 연장으로 봅니다. 자기의 확산으로 이어진 자기 몸이 확대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자식을 자기 소유로 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어느 부모치고 자기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남의 자식이 아니고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자기는 굶더라도 새끼는 먹일 줄 알고 자기는 못 배워도 가르칠려고 애를 쓰고 그렇게 남의 자식은 겉나가도 내 자식은 나쁜 짓 하지 않고 그렇게 애정을 쏟아서 정성을 쏟아서 밤 잠 안 자고 모든 투자를 다 합니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나쁘다고 할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애지중지 하면서 부모의 양육을 받던 그 자식이 부모를 떠나서 어디로 가란 말이냐? 그것은 하나님을 부모로 섬겨야 될 그 자리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오직 자기 새끼, 내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서 자식을 양육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내 새끼다" "남의 자식 다 망해도, 다 실패해도 내 자식은 성공해야돼!!!" 하고 자기 이기주의를 확대시켜서 자식에게 강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게 부모의 체제속에 있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절대적인 권위, 듬뿍 사랑을 해주신 분의 그 사랑을 내몰라라 내칠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인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기가 어릴 때 얼마나 어렵게 컸는가를 다 알기 때문에 부모의 희생을 모른다하면 짐승이죠. 그런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결혼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고 보니까 부모님의 예정이 아니고 그 부모님 배후에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부모님이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부모를 거쳐서 하나님을 섬기던 그런 시절이 있었더라면은 지금은 어떤 식이냐면 부모를 거치지 않고 "내가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맞습니다" 라는 관점에서 부모를 섬기는 그런 사고방식과 체제를 가지고 살아가라 이 말입니다.
부모 밑에 그대로 있다면 부모의 자식으로서 부모의 사랑속에 머물지만 내가 독자적으로 나의 세계를 따로 구축하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의해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러면 내 자식도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 자식으로 양육하라고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로 해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식을 키우면서 "나는 부모고 너는 자식이다" 이런 관계가 아니라 자식을 키우면서 그 때 까지는, 결합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하나의 처녀였고 단순히 하나의 총각이었다면 이제는 뭐냐하면 하나의 부모가 뭔지 알게 해갑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통해서 부모가 부모답게 변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하! 부모 노릇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자식이 말 안 듣는 자식,애 먹이는 자식, 속 썩이는 자식을 통해서 부모가 얼마나 희생해야 되고 양보해야 되고 부모가 얼마나 자식에게 져야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진짜 천국의 자식 만들기 위해서 용 쓰고 애 쓰고 희생하고 피 흘리고 건져 주시는 그 사랑을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저 옛날에 있었던 육적인 부모 밑에 있을 때는 받아 누리기만 했죠. 그냥 떼 쓰고 해서 없는 것 달라고만 했죠. 내 힘으로 번 돈을 아낌없이 자식이라는 타인에게 거저 줄줄 아는, 이 사랑의 배려하는 이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라" 다른 말로 하면 얻어 먹었던 시절에서 떠나라 그러면 이제 부모를 떠나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이제는 너가 수고해서, 수고한 것을 그 전 까지는 내가 수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자식을 놓고 아내가 생기고 남편이 생기고 난 뒤에 수고는 내가 했는데 그 보람과 기쁨은 타인, 내가 사랑을 베풀어 주는 그 사랑의 대상에서 내 존재의 이유, 내 사는 보람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 있음에 나는 죽어도 좋아!!!" 상당히 이론적이죠? 실제적이 아니고. "당신만 있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서 죽어 희생되어도 당신만 살아 있다면 나는 사는 보람이 있겠어!" 라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을 결혼하면서 한번 배워 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문제는 여자한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고 남자한테 할 문제입니다. 남자가 젊고 씩씩하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남자는 전에까지는 그냥 남자였는데 지금부터는 남자가 아니예요. 뭐냐하면 남편입니다. 남자는 힘이 세다는 것 뿐이거든요. 힘이 세다는 것이 남자라면, 남편은 힘 센 것을 연약한 아내를 위해 그것을 소비하는 것에서 남자가 아니라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식했다고 해서 남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아내를 위해서 힘껏 애써서 돈 벌어서 노력해서 가정이 있어서 당신 때문에 살 맛 난다는 마음으로 했을 때, 아낌없이 베풀어 줄 때 그것을 남편 값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예수님께서 신랑 신부에게 당부한 말이 있어요. "신랑, 남편 같을려면 나처럼 되라 내가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너가 목숨받칠 대상이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라 내가 그 전까지는 나를 위해서만, 나에게만 집착해서 내가 잘되는 것만 알았는데 내 잘되는 것이 모든 것이 잘되는 것으로 그것을 진리로 알았는데 이제는 내가 잘되는 것을 버리고 내가 수고했는데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어떤 공백이 있다는 것, 그래서 거기에다 내 사랑을 마음껏 채울 수 있는 빈 여백이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라 그게 바로 예수님 역할을 하는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모를 떠나서 새로운 예수님 나라에 가는 이것과 오늘 본문에 나왔던 예수님이 하객이 되어서 참석했던 혼인 잔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가나 혼인잔치가 자칫하면 슬픔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결혼식이 됐었습니다. 왜냐하면 하객들을 기쁘고 즐겁게 할 결혼식을 빛을 낼 포도주가 똑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웅성웅성 합니다. 포도주 없냐고 우리를 즐겁게 해 줄 어떤 거리가 없냐고 웅성거립니다.
여기에 혼인식 주최를 맡고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결혼식이 엉망이 될 판이었습니다. 위기입니다. 기쁨의 결혼식이 아니라 사람들을 실망케 하는 결혼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여기에 예수님이 참석했다는 그 점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슬픔의 결혼식이 기쁨의 결혼식이 될 수 있는 의도적으로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포도주가 떨어졌을 것이다. "예수여 포도주가 없나이다"
그래서 23절에 보니까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나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포도주 없는 것 하고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내가 이야기를 괜히 끄집어 냈나? 상관없는 이야기를 내가 왜 했을까? 라고 생각을 했을텐데 그 때 예수님께서 토를 단 것입니다.
"아직 내 때가 되지 아니했습니다." 내 때가 되지 안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혼식의 술주정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을 하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왜 왔는가? 메시야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왜 등장해야 되는가를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포도주가 없는 혼인잔치를 지금 배경으로 이용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더 쉽게 설명하면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결혼식에 참석을 하게 되면 남들 보기에는 송재원 이미아 결혼식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 예상밖의 기쁨의 결혼식이 될려면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결혼식은 뒷전이예요. 죄송합니다만 두 사람은 그냥 앉아 있어도 됩니다. 현재 눈에 보이는 허당 결혼식. 하루에도 수천쌍하는 그렇고 그런 결혼식. 고만고만한 결혼식. 이게 인간들이 정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결혼식이 아니예요.
결혼식에서는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돼요. 물같은 인간들이 포도주같은 인간으로 변화되는 그 현장에 예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물같은 인간은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못들어갑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번째 행하신 표적입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신기한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표적이라는 것은 신기한 일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통해서 예수님의 본질,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며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왜 왔으며 예수님 자체를 드러내주는 것을 표적이라고 해요.
그래서 가나 혼인잔치는 남들 보기에 , 제 삼자가 보기에는 포도주가 떨어졌대 그런데 어디서 또 구매했는지 나중에 나온 포도주가 맛이 저기 샤토.. 한 이백년 된 프랑스 그 쪽의 포도주인지 그 포도주 맛이 참 기똥차. 그렇게 맛있는 포도주를 낸 결혼식에 처음 가봤어.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를 잘 했지. 너 안가봤지? 안가봤으면 말을 하지마. 얼마나 맛있다고 기분좋게 마시고 왔어. 제 삼자가 보기에는 하나의 단순한, 단촐한 결혼식 하나 괜찮았다 이걸로 끝나겠지만 예수님과 관련된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뭘 아느냐 하면 이 예수님은 물같은 인간도 포도주같은 인간으로 달라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그것을 발휘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결혼식을 통해서 알려 주는 거예요.
지금 신랑,신부 여느 신랑신부와 차이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부터 신랑은 물같은 신랑이 되지 말고 포도주같은 신랑.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하는 신랑이 되어야 해요. 신부는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신부가 되어야 해요. 이제는 결혼한 후에는 더 깜짝깜짝 놀라게 해야해요. 아니 그럴수가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예수님과 함께 한 결혼식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딴 사람이 되었어.
그러면 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여기서는 포도주가 있음으로 해서 물이 있던 결혼식이 사람을 짜증내게 하고 불만을 주었다면은 포도주라는 것은 사람의 불만과 짜증을 내는 현장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므로, 새로운 포도주가 등장함으로 사람들이 예상밖의 활짝 놀라는 기쁨으로 어쩔 줄 몰랐던 것처럼.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적 사람으로, 육적인 인간에서 신랑신부가 된 뒤에는 영적 신랑, 영적 신부로 바뀌어야 됩니다.
육적 총각에서 육적 신랑 이것은 그냥 보통 결혼식입니다. 육적 처녀에서 육적 신부 이것도 보통 결혼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한 결혼식이 되면 이 가정에, 단촐한 가정에 예수님과 함께 살면 육의 인간이 영의 인간으로 질적으로 비상해야 하고 뛰어나야 하고 도약해야 하고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지느냐면 그것은 간단해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결혼식이 아니고 나중에 천국에서 일어날 결혼식을 앞당겨서 미리 보여주는 결혼식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천국에 합하도록 모든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하고 마치겠습니다. 옛날 체제에서는, 육적인 아버지의 사고방식에서 양육 받았을 때는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처녀총각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부모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으면 주님의 나라에 맞는 새로운 가치의 합당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던 이기주의적인 관점에서, 육적인 관점에서는 축복과 저주가 뭐냐하면 내가 잘되면 축복이고 내가 남보다 뒤떨어지면 저주로 보이는데 천국에서는 거지 나사로도 천국에 갔습니다. 세리와 창기도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가치 기준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자되고 잘되고 출세하고 성공하면 축복받은 줄 알지요.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그것이 저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그런 인간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높이는 인간이 아니라 낮추는 인간,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어도 예수님 주시는 죄 용서로서 감사가 넘치는 가정. 남들은 돈 힘으로 감사가 넘치는데 여기는 돈이 없어도 주님이 주시는 용서하심과 긍휼과 자비로 작은 것 하나라도 후라이팬 하나라도 하나님 은혜인줄 알고.
은혜로 아예 계란 굽을 때마다 은혜가 톡톡 튀는..모든게 베게 하나 비키니 옷장 하나라도 부자집에 있는 화려한 수천만하는 보루네오가구보다 귀한 은혜의 선물인줄 알고 마음을 낮추어서 감지덕지할 때 그것보다 더 큰 천국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부부가 그게 안되서 문제예요.
처음부터 결혼할 때 부터 마음을 높여 버리니까 어지간한 돈벌이 줘도 그것을 만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낮추게 되면 작은 것 하나, 동전하나라도 고마운 줄 알고 감지덕지할 줄 알고. 이렇게 신랑신부 몸 건강하고 꿈쩍거릴수 있다는 것, 이것만 해도 하나님께서 복 주셨구나 특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데 그 죄가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피로 매일같이 용서받고 또 용서받고 사죄받는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이것이 천국에서의 새로운 가치관입니다.
뭐 부자되어서 십일조 많이 한다고 교회는 좋아할지는 몰라도 예수님은 하나도 안 좋아합니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이 거지 나사로도 갔다는 천국입니다. 부자는 지옥갔어요. 천국은 백팔십도로 바뀝니다. 남이 저주라고 할 때 여러분들은 속으로 하세요. "그게 우리한테는 복이니라" 남이 복을 못 받았다고 할 때 "우리는 복을 너무 받아서 어떻게 감사할 길이 없네요" 라는 바로 그 고백이 질적으로 달라진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런 결혼식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마다 하는 사람만 움직이는 사람만 있는 그런 결혼식 그런 신혼생활이 아니라 천국의 주인공 되시고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이 미리 와 계셔서 같이 동거하는 신혼이 되게해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수군수군대고 사람들이 뒤에서 놀리더라도 마음을 천국같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이 너와 함께 있다는 이 말씀 가지고 먹든지 입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귀한 주님이 있는 축복받은 가정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가나 혼인 잔치.hwp (22.5K), Down:26
이미아(IP:61.♡.38.136)
09-11-26 02:38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고마운지 죽어보면 안다"
성재필(IP:118.♡.128.175)
09-11-26 10:06
음성파일도 같이 좀 올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결혼식 주례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신혼기분을 느껴보게 ㅋㅋ...음~ 대구 놀러 오시면 우리집 큰방을 하루쯤 비워드릴 수있니다.^^결혼 축하드립니다.
이미아(IP:119.♡.119.36)
09-11-26 16:46
고맙습니다. 추억속에서 성재필 성도님의 글들을 보며 아련한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역시나(?)70년생이어서일까~~^^ 이런 만남을 주시려고 하셨나 봅니다. 주님이 만남을 주셨으니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세월만큼 주님이 주시는 보상(?)으로 더 큰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천국 혼인 잔치를 앞당겨 맛보는 주님이 함께 하는 가정!!!그 어디나 하늘나라 입니다.
출처는 고물(전용열)목사님께서 올려주신 동영상을 스크랩했습니다.
이곳에 한 번 들리셔서 다 생략하시고 설교 음성만 들으시기를....
http://cafe.daum.net/uijon/Vhyu/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