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약해진 교회"사회를 섬기자"를 읽고
신뢰 약해진 교회"사회를 섬기자"를 읽고
이름 : 김성환(IP:119.194.19.218)
“성인 3명 중 1명은 한국 개신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회가 개선할 점으로는 교인, 교회지도자들의 언행일치, 타종교에 대한 관용 등이 꼽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과 바른교회아카데미는 11일 이 같은 내용의 2009한국사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28-29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11/12일짜 신문인용)
이 신문의 제목이 이슈로 등장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일 것이다. “개신교계에서는 최근 교회 성장세와 달리 신뢰도가 바닥을 치면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지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상은 자신에게 애완용 개나 고양이와 같이 늘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즉, 자신의 감정과 인격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의사결정에 고분고분 따라 주길 바라고 있다. 이것이 개인과 가정과 지역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기본 원리일 것이다.
인간이 숨쉬고 있는 집단과 공동체라면 이 원리는 빠질 수 없는 철직이다. 모든 관계(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신과 인간, 자신과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원칙은 고수된다. 이 원칙이 비켜 가면 자신조차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대형교회인 지구...교회나 높은...교회와 손 잡고 세미나를 열었다. 그 두 교회는 한국교회안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는 교회다. 그리고 지도자들도 잘 나가는 이름 석 자 명함을 가진 목사고 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갖도록 결심하게 만들었는가? 그들 저변에 깔린 능구렁이의 실체가 무엇인가?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이 물음은 그리스도가 등장하심으로 비로소 질문에 대한 해결점을 얻게 된다. ‘마귀의 속임수’였다. 세상천하를 호령하는 악마의 정교한 전술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 안으로 욕망의 화신으로 들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죄와 욕망의 화신의 전략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 얼굴에 드리워진 복음의 광채로 인해 육체의 눈의 비늘이 벗겨지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작금의 교회는 누구를 좇아가고 있는가? 기독교든 천주교든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이방종교든 사이비든 누구의 들러리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세상 신’이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 신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함과 같이 주님을 믿는 자들의 마음까지도 자신의 종들을 통해 간음화하고 있다. 고멜의 신세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후 11:14, 개역)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교회는 없다고. 단지 교회라 칭함은 그리스도의 피와 연관이 될 때 비로서 그리스도의 몸 혹은 하나님의 교회로서만 존재한다고 말씀한다.
(고전 6:15, 개역)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10:16, 개역)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피에 속한 몸이다. 이 몸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항상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산 분에게만 예속된다. 그래서 이 몸의 주인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속성에 따라 움직여야 자신의 몸이 제대로 된 몸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전 11:29, 개역)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주님의 몸을 분변치 못한다는 것은 주님과 상관없는 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의 존재와 속성 안으로 함몰된다는 말인데 만일 주님의 살과 피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면 자기의 죄만 먹고 마시는 격이 된다.
기윤실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성경과 대치되는 것만 보이고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복음의 본질, 이웃의 고통이 우리 자신의 문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한다”등의 내용을 ‘2009 교회의 사회적 책임 선언’으로 발표했다.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 본문에서 ‘사랑’이란 데이트 하는 연인 간에 주고받는 사랑도 아니고 세상을 구제하는 사랑도 아니고 나의 환경을 회복하는 사랑도 아닌 것 같다. 이 사랑은 주님의 피를 배제한 채 논하는 사랑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 안에 꿈틀거리는 그 사랑의 실체의 노예(종)이 되어 고린도 교회를 피의 복음으로 세워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예수님으로 부름 받은 바울은 자신을 불러 주신 분을 위해 존재하고 그 역할을 이 땅에서 드러내는 하나의 기능인에 불과하다. 이 기능이 이 세상 신으로부터 유혹을 받아 자신의 기능을 상실한다면 그는 삯꾼이요 양의 탈을 쓴 이리내지는 늑대인 것이다.
그래서인가 사도 바울은 자신이 누구를 위한 기능인인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정립한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즉 ‘주님의 살과 피(십자가)’의 기능과 역할에 예속되지 않으면 설령 방언과 천사의 말 그리고 모든 예언과 비밀 그리고 지식과 믿음이 있을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윤실에서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자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 알고 믿는다고 보고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이기에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아니다라고 외친다.
(갈 5:11, 개정)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는다면 이미 그 몸은 잘린 몸이요 원래부터 주님의 몸이 아니었다. 바울이 그간 받은 핍박과 박해는 단 한가지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십자가의 피!!!’
인간은 지나간다. 교회도 지나간다. 그리고 세상도 주님의 십자가를 드러내기 위한 도화지위에 색칠해진 배경일 뿐이다. 그것도 주님의 피를 밝히 드러내기 위한 역할로서 말이다. 마귀도 인간도 나도 그렇고... 하나님이 주님을 위해 만드신 도화지를 그의 피로 찢어버리면 남는 것은 ‘예수님의 의와 사랑’ 뿐일 것이다.
(벧전 1:2, 개정)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강구만(IP:118.♡.241.91)
09-11-16 20:39
교회가 사회의 신뢰나 여론에 관심을 갖는다면 스스로 교회 아님을 광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죽으심을 세상 끝날까지 전하는 것 외에 달리 존재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증거하면서 세상의 관심에 눈길돌리는 교회는 "나 예수 믿지 않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돌 날아오는게 교회가 받을 관심인데 무슨 책임씩이나... 그 짓 해서라도 마르고 닳도록 좋은세상 만들어 잘살아보세요!
한마디로 예수 믿지 않는 목사, 예수 믿지 않는 교회가 아주 '자연스러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네요.
아니, 세상이니까 그게 자연스럽겠네...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내가 자연스럽지 못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