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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삼하 4: 4-12 (사울 집안의 몰락)우리교회사무엘하

삼하 4: 4-12 (사울 집안의 몰락)

이름 : 우리교회(IP:220.81.41.193)

본문 : 사무엘하 4장 4-12절
제목 : 사울 집안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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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09-11-15 10:30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하-2009/05강-삼하4장4-12(사울집안의몰락)-2sa091115.hwp

이근호

09-11-15 15:15

사울 집안의 몰락

2009년 11월 15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4:4-12

(삼하 4:4, 개정)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삼하 4:5, 개정)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삼하 4:6, 개정)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삼하 4:7, 개정)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삼하 4:8, 개정)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삼하 4:9, 개정)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삼하 4:10, 개정)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삼하 4:11, 개정)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삼하 4:12, 개정)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다윗의 세력이 세지고 사울의 세력이 약화되니 사람들이 다윗의 나라를 오해해 왔음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오해라는 것이 바로 ‘힘’으로 모든 것을 규정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즉 사람들은 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힘을 원합니다. 그들이 신에게 기도하는 것도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힘 중심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진리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진리에 관심없는 자는 필히 예수님을 물리치고 악마를 메시아로, 하나님으로 섬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교인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힘을 말하는 겁니다. 즉 힘이 곧 진리라는 주의입니다.

하지만 정작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무시당하면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인 실은 힘이 아니라 진리인데 사람들은 그 진리를 힘으로 오인해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피와 살이라는 진리에 대해서 언급하니 쫓아온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떠나고 말말았습니다.

12제자가 곁에 있으니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왜 나를 떠나지 않느냐?”하니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말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저희들이 누구에게 다겠습니까”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택했기에 너희들이 나를 떠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제자들은 힘이 아니라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 곁에 붙어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준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붙어있도록 밀어붙이지 않는한 그 누구도 예수님 과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행함은 이토록 진리와는 영 상관없이 힘과 상관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마지막 심판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 두 종류의 책이 나오고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두 종류의 책이 바로 ‘생명책’과 ‘행위책’입니다. 즉 생명책의 반대되는 책이 ‘죽음책’이 아니라 ‘행위책’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곧 생명책에 명단이 들어있어 천국에만 들어가야 한 자들은 결코 ‘자기 행위’에 준해서 들어가는 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행위와 상관없이 생명이 당겨주시는 힘에 의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생명책의 의미는 필히 행위으로만 설쳐대는 이 세상을 통해서 내비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두 사람, 레갑과 바아나는 원래 다윗의 왕국에 우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우호적인 의식이 진정 진리를 알고자해서 나온 태도가 아니라 권력의 추가 이미 다윗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기화로 이 참에 자기 자리에 힘을 쓸어담기 위한 행위를 시도한 자들입니다.

즉 그는 다윗에게 있어 가장 큰 원수가 누구인지를 ‘다윗=힘’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점검한 것입니다. ‘다윗=진리’라는 가치관이 아니라 ‘다윗=힘=나의 힘’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행위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힘=나의 힘’이라는 의식으로서 교회에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경남 울산 경찰서서 불법오락실을 적발한 적이 있는데 이 오락실은 겉으로 ‘기도원’을 사칭한 겁니다. 즉 기도원들어 들어갔는데 들어가보니 불법오락실이었습니다. 이점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진리=교회’가 아니라 ‘신의 전능한 힘=교회’가 되어버리면 곧 교회=지옥이 되는 겁니다. 교회로 들어가는 것이 지옥으로 가는 인생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은 그 힘을 축적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바로 ‘자기 자리’입니다. 즉 내가 나를 살려내기 위해서 외부에서 힘을 얻어내고자 시도하는 식으로 세상에다 행함을 발휘하는 겁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오로지 힘없는 쪽을 거절하고 힘이 있는 쪽이 진리라는 식으로 덤벼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 왕임을 잊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라면 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그 힘이 아니라 진리에서 나올 힘이 되는 겁니다. 그 진리라는 것은 ‘죽음의 자리’에서 비롯됩니다.

이점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바로 천국으로 직결하는 길입니다. 십자가 안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비켜가는 천국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 나옵니다. 십자가 외에 천국으로 통하는 길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사건은 바로 힘을 원하는 인간들의 눈에 전혀 힘이 없어보이는 예수님이 미움을 받았기에 비로소 발생된 자리가 곧 십자가 피흘리신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하나님의 원수라면, 다윗에게 원수라면 바로 이런 힘을 추구하는 식으로 자신과 세상을 살피는 그 자들입니다. 곧 인간 자체가 하나님의 원수라는 겁니다. 다윗은 힘들을 원하는 자신의 나라 안에 죽음의 자리를 찾아내고 만들어냅니다. 그곳은 희생의 자리입니다. 동시에 억울한 죽음을 야기한 자들에 대한 저주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죽음이 아니면 세상을 읽을 진리는 없습니다. 교회 권력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행함이 힘이 발휘하냐를 찾을 것이 아니라 도대체 이같은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그 진리의 힘은 어디에서 오느냐를 증거하고, 알리고, 교제하는 자리가 진정한 교회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는 그 땅은 보통 땅이 아니라 언약의 땅입니다. 따라서 언약에 위배되는 자에게는 당연히 저주가 주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을 두셨습니다. 진리에 기준해서, 혹은 생명책의 본질에 근거해서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드러내게 하십니다.

천국에서는 오직 한 분의 공로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분에 의해서 구원이 결정됩니다. 입성과 무관한 이 세상 일은 하나도 없는 겁니다. 모든 일들이 전부 구원과 관련된 일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힘 모으기 인식으로 세상을 보려합니다. 죽어 마땅한 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가 터져나오는 출처 위에서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0-12-17 18:34

005강-삼하4장4-12(사울집안의몰락)-2sa09111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하 4장 4절에서 12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469페이지입니다.

사무엘하 4:4-12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행하여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저가 낮잠을 자는지라 레갑과 그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저희가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상 위에 누웠는지라 저를 쳐 죽이고 목을 베어 그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행하여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고하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전에 사람이 내게 고하기를 사울이 죽었다 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저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으로 그 기별의 갚음을 삼았거든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저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 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소년들을 명하매 곧 저희를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가에 매어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장사하였더라”

사무엘하를 쭉 읽어보면 뭔가 복잡하게 엉켜 가지고 무엇이 무슨 소리인지를 잘 오지를 않죠. 패가 두 패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나는 사울 패고 하나는 다윗 패로 나눠져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두 패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나뉘어져 있으니까 사람들은 권력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살피는 거예요. 권력의 힘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왜 살피느냐 하면, 힘 있는 곳에 자기가 붙으면 자기한테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힘을 원해요.

사람들이 신을 찾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진리가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힘을 얻기 위해서 그래요. 힘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으면 그 하나님은 100% 이단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조작한 엉터리 하나님 이예요. 이것은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일하지, 힘주려고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힘을 원하는 것이 그 힘을 어디다 동원시키려고 힘을 얻고자 하느냐 하면, 자기가 힘을 집합시키는 자기 본부가 따로 있어요. 그 본부가 어디 있느냐 하면 바로 자기 자신이 있는 자기 가족일 수도 있고, 자기 식구 일수도 있고, 집안일수도 있고, 하여튼 내가 거처하는 그곳이 다른 옆집보다 힘이 셀 때, 나는 옆집보다 좀 더 오래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그런 계산이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보고 ‘힘주세요.’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힘주시는 게 아니고 누가 힘을 주느냐 하면, 마귀가 힘을 줘요. 마귀가 왜 힘을 주느냐 하면, 힘을 달라는 사람에게 힘을 주므로 말미암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와 점점점 멀어지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진짜 일하시는 진리 됨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이유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면 되는 거예요. 무조건 기도에 응답해 주면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진리라는 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떠밀려서 죽었던 그것이 진리거든요. 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생명이라. 지금 제가 여기다가 길과 생명 진리라고 떡 글자 써가지고 돌아다니면 사람들 다 떠밉니다. ‘니가 무슨 통뼈냐.’하고 다 떠밀어요.

예수님도 똑같이 왔습니다. 사람들은 힘을 원하고 있는데, ‘나는 힘이요. 나한테 오라, 힘줄게.’이러면 다 오죠. 사람들이 오병이어 할 때, 예수 믿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힘 대신 다른 걸 이야기할 때,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청소가 말끔하게 됐는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예수님을 모두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을 안 믿는다. 떠난다. 이게 원칙인데, 다른 사람 다 떠났는데 안 떠나고 있는 사람이 12명 있으니까 주님도 물었어요. 떠나라고. ‘어이, 니 왜 안 가느냐?’하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진리가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가 여기 있는 것은 너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붙여주니까 너도 안 떠나고 있는 것이지, 아버지께서 ‘거기 가서 살아라, 하고 떠미니까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지, 사람의 힘 같으면 힘 찾아서 힘 있는 곳으로 가버리지, 힘이 없는, 같이 있다가는 핍박과 수모만 당하는 그 예수님 옆에 왜 붙어 있겠습니까?

스데반 집사님은 진리를 찾았습니다. 찾았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약에 예배당을 새로 세운다고 합시다. 두 기둥이 있다고 합시다. 기둥에다 글자를 써 붙인다고 합시다. 이쪽 기둥에는 ‘진리를 찾는 스데반 집사’다른 쪽에는 ‘돌에 맞아 죽었다’그걸 갖다 붙이는 교회 있겠습니까? ‘기도하라’‘이루어진다.’ 이런 거 붙여 놓잖아요. ‘할 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이런 것 붙여 놓죠. ‘진리 찾아 떠난 스데반 돌에 맞아 죽었다.'ㅎ

그 교회 그런 것 붙이면 교회 건축한다고 은행 융자한 것 다 갚겠습니까? 못 갚습니다.

하나님께 힘 받으면 고 몇% 떼서 교회 헌금하라 그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께 힘 받아 복 받아 부자 되고 난 뒤에 입가시지 말라 이 말 아닙니까? 니 몇% 먹고 내 몇% 먹자 이 말이잖습니까?ㅎ

하나님께서 다윗 편과 사울 편을 딱 나누니까, 그리고 다윗 집은 점점 더 강성해지고 사울 집은 점점 쇠약해지니까, 그때 인간들의 숨겨져 있는 자기 주체의 본성들이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정말 다윗이 좋아서 다윗이 아니고, 사실은 어느 쪽이 다윗이 아니냐, 어느 쪽이 다윗이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힘센 쪽이냐를 쳐다보는 겁니다. 어느 쪽이 힘센 쪽이냐???

만약에 예수 믿는 성도인 어떤 아가씨가 교회 안 다니는 어떤 집에 시집가게 되면, 그 집은 너무너무 잘 살고 남편도 그 집안 회사에서 중역에 앉아서 그 시가집에 밉보이면 완전히 잘못 하다가 이혼 당하면 자기는 깡통 찬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연 진리를 따르겠습니까? 힘을 따르겠습니까? 자기가 사는 쪽으로 따르죠.

제가 아침에 세례 문답하면서 백 한길 군을 하면서 질문을 했어요. ‘천국에 책이 몇 권 있느냐? 물으니까, 두 종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종류냐?‘고 하니까, ’생명책‘, ’그다음에? ‘하니까, ’죽음책‘이라고 해요. 아!!! 생명책의 반대가 죽음 책입니다. 그런데 정답은 뭐가 되느냐 하면, 생명책 반대는 행위 책이 되겠어요. 왜? 죽음 책이 정답이 아니고, 행위 책이 정답이냐는 겁니다. 왜, 행위 책이냐 하는 겁니다. 행위 책의 반대말이 뭐겠어요? 행위 책의 반대말은 ’행위 없음 책‘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 책에 기록된 사람은 운명이 서로 반대쪽으로 갑니다. 한쪽은 천국으로 한쪽은 지옥으로 가는데, 지옥 간 사람은, 행위 책에 있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돼 있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천국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책에 있다는 말은 특징이 뭐냐, 자신의 행위로 가지 않는 곳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생명이 뭐냐? 생명은 더 이상 내가 힘을 모아서 모아진 힘으로 내가 버티겠다. 이런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집안이 강성하고 사울의 집안이 몰락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윗의 집안이 강성한 것이 그것을 다윗이 행하는 어떤 힘의 집결로 그것을 만약에 이해한다면, 그 사람은 크게 오해한 거예요. 이제 오늘 본문 들어가 봅시다. 오늘 본문이 굉장히 복잡한데 복잡한 게 여러 이름이 나와요.

므비보셋이 나오고 4절부터는 사울 나오고, 요나단 나오지, 이스르엘은 지명 이름이고, 브에롯은 지명, 림몬 사람이죠. 그 다음에 레갑, 바아나(바나나가 아니고), 이스보셋, 아라바, 헤브론은 지명, 복잡하게 이렇게 쭉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이러한 지명과 이러한 사람들이 서로 엮어서 활동하는 그 토지가 무슨 토지냐, 땅이 무슨 땅이냐 하면, ‘약속대로 생명을 주는 땅’입니다. 그러면 약속대로 생명을 준다는 말은, 생명은 아까 제가 이야기 한 것처럼 생명이란 것은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지 않는 거죠. 만약에 인간의 행위에서 생명을 안 받는데 거기서 인간의 행위를 강조한다면, 그 사람은 약속의 땅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고, 저주를 얻게 되죠.

사람이 언제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의미를 두느냐 하면, 자기가 뭔가 챙길 수 있는 자기 자리가 따로 있을 때, 자기 자리가 따로 있을 때는 그 자리에 미련을 두고 행위를 가지고 모든 힘을 모아서 자기 자리에 모으는데, 돼지 저금통에 동전 넣듯이 계속해서 힘을 저축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땅은 그걸 반발해요. 그러한 너의 행위를 거부하고 배척을 한다 말이죠. 그러면 오늘 본문의 주제가 뭡니까? 이래 보면, ‘행위로 까불다가 저주 받은 사람’요게 주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땅을 아주 우습게보고 그 땅에서 행위를 주장하다가는 저주 받는 사람. 고린도전서에 보면 ‘너희가 교회를 우습게 여긴다.’ 하는데 교회를 우습게 여기지 말란 말은 천국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말이죠. 그러면 교회가 천국이라면, 교회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행위를 이야기 하는 사람은 교회를 우습게보고, 그 교회를 정말 교회답게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하나님의 거저주신 은혜를 교인들을 통해서 찾는 사람 이예요.

아까 우리 이 종문 집사님과 자녀분들이 멋진 연주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랬어요.‘참, 역시 솜씨가 프로다, 프로. 다른 사람과 다르다, 애들 많이 했다.’이래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행함을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ㅎ 지금 많은 바이올리스트가 있지만 찬송가 연주 안 합니다. 연주를 해도 돈 되면 연주를 하지, 레코딩 한다면 다 하죠. 돈도 안 주고 듣는 관중들도 시큰둥하면 연주 안 합니다.ㅎ 들어봐야 가치도 안 나는데... 우리 김 선생님 작품을 올려놨지만, 아마추어가 그 작품의 진수를 모르죠. 그런데 보통 값나가는 행함을 주장하는 것 같으면, ‘니들이 내 작품을 알아?’ 하고 작품을 아예 올리지 않습니다. ‘이게 어디? 아마추어들이 프로의 깊은 맛을 알아?’하는데...

이렇게 올린다는 것은 뭐냐 하면, ‘나도 이 그림과 연주를 은혜로 받은 겁니다. 은혜로 나누기를 원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내겠습니다.’그런 마음 이예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맛보는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 연주가 있을 수 있구나. 살아가면서 이러한 은혜를 누리다니, 그게 바로 우리가 있는 자리, 우리가 구원 받는 자리가, 내가 요령부리는 자리, 내가 통 밥 굴리는 이 자리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거저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거저 천국을 가고 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자리, 그게 바로 교회를 우습게 여기지 않는 진짜 교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에 나오는 두 형제간이 나와요. 이름이 뭐냐 하면, 레갑, 바아나, (이름도 어려워요. 저는 구약에 나오는 이름으로 아나운서들, 성우들이 연습할 때 성경책보고 연습하면 좋겠다. 생각해요. 얼마나 발음이 어려운지 혀 짧은 사람은 목회 20년 해도 발음 못하겠어요.ㅎ) 이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느냐 하면, 이런 짓을 했습니다. 이스보셋이라는 사람을 잠자고 있는데 죽였어요. 그러면 이스보셋은 무엇이고, 4절에 나오는 므비보셋은 무엇이고, 같은 보셋인데 헛갈려요. 므비보셋이란 사람은 사울 왕의 아들의 아들이 므비보셋이고, 이스보셋이라는 사람은 사울의 직통 아들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쓸 때에 독자들이 헛갈리지 않게 쭉 이스보셋 이야기가 나오고, 므비보셋 이야기는 나중에 미루면 되는데, 괜히 나와 가지고 동양 사람들 이름도 헛갈리게 나오는 이유가 뭐냐, 지금 이게 뭐냐 하면, 교차로, 어떤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이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한쪽은 은퇴하면서 서서히 지면서 한 쪽은 뜨는 이렇게 같이 겹치는, 화면에 같이 한쪽은 점점 더 흐리게 한쪽은 점점 더 뚜렷하게, 영화 보면 그런 것 있잖아요. 중요한 대목이 점점 희미하다가 뚜렷하게 등장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이렇게 겹쳐서 나오죠.

그러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시는데, 사라질 놈은 사라져라 말이죠. 뜰 놈은 뜨라 말이죠. 서서히 사라질 사람은 사라지고 뜰 사람은 뜨게 같이 겹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사라지는 쪽은 자기 행함을 주장하다가 사라지지만, 뜨는 사람은 지가 뜨고 싶지도 않은데, 뒤에서 쭉쭉 미니까 주님의 은혜로 뜨더라하는 것을 우리에게 동시에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상당히 어려워요.

그러면 므비보셋이라는 절뚝발이 이 사람은 다섯 살 때, 성질이 급했던 모양 이예요. 애 안고 나오다가 유모가 엎어져서 애가 그때부터 다리 절게 되는데, 이 말은 뭐냐 하면, 사울 집안이 현재 왕 이예요. 일종의 진흥왕 이예요. 사람들은 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 중요한 거예요. 이게 상당히 어려운데, 왕이, 왕이 아닙니다. 왕이라는 자리가 그 사람을 왕으로 생각해 주는 거예요. 권력을 쥐고 있을 때만 왕이지, 사적으로 왕이 ‘인간성이 좋으냐?’ 그런 것은 묻지 않아요. 그 사람이 앉는 자리가 왕의 자리라면, 왕으로 신봉해주고, 아무리 왕이라도 왕에서 내려오면(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면) 소용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똑똑하고 훌륭하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차지 한 놈이 왕이 되는 거예요. 아무리 귀족 출신이고 해도 미실이 아줌마가 차지하면 왕이 되는 거예요. 그걸 저지해서 왕이 못 됐지만...그런데 절뚝발이라는 말은 뭐냐 하면, ‘아이, 저 인간은 백성들이 같은 왕자지만 에이 절뚝발이는 안 돼,’ 왜? 사람들이 고구마도 흠집이 있으면 먹기 싫은 것처럼, 인간도 흠집이 있으면 사람들이 왕의 자리에 앉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정상인이 쉽지, 저거는 오래 못 같다. 하자 있는 제품이라고 해서 안 받아줍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암살의 대상이 안 돼요.

현재 지금 다윗 왕 쪽으로 권력이 기울어질 때 이참에 공을 세워서 나중에 다윗이 모든 것을 평정할 때에, 자기가 한 자리 할 수 있다 말입니다. 선거 운동에 참모진으로 개입하면 나중에 문공부 장관이라도 한 자리 차지한다 이 말이죠. 왜냐 하면 그 공과가 있으니까 되는 거예요.

이렇게 교회나 나라나 하여튼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이런 행함이 있어요. 그래서 레갑과 바아나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이참에 공 세울 게 없을까? 이참에 다윗 왕한테 귀염 받을 수 있는 멋진 기회인데, ‘혹시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거리가 없는가?‘ 라고 생각하다가 그 다윗 임금님에게 껄끄러운 권력자가 누구냐? ’아! 그것은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이게 전부 다 행함에 속합니다. 내가 그럼 우리 힘으로 이스보셋을 죽여 버리면, 우리 다윗 왕이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그러면 이스보셋을 하나 희생시켜서 우리한테는 다음 차기 정권 잡을 때, 우리는 고위 공직자로서 권력을 배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 이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기 말썽을 일으켜서 나갈 때, 여기 만약에 똑똑한 부교역자나 뛰어난 사람이 왔을 때, 떨어질 태양은 치워버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위로할 때, 그 사람은 주목받는 새로운 신인 정치가가 되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지옥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꼭 지옥가게 마련 이예요.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조치했는가? 그러면 공을 세웠으니까 표창을 해줬습니까? 이게 오늘 본문의 제일 어려운 거예요. 다윗은 ‘죽음의 자리’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는다 할 때, 영생을 어디 공판장에 가서 ‘영생 두말 주소. ’여기 영생 2키로 얼마입니까?‘ 영생은 우리가 퍼 담을 수 있는 줄로 생각하는데, 다윗이 알고 있는 복음은 뭐냐 하면, 영생은 죽음의 자리, 모두 다 살고자, 높고자, 권력 쥐고자, 왕이 되고자, 한 자리 차지하고자 하는 자기 주체, 자기 집안, 내 가정을 어쨌든 오래 살려보겠다는 그런 심보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죽음의 자리‘를 찾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다윗은 내가 왕이 되기 위해서 누가 억울한 죽음을 죽었는가를 찾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요나단이고, 그것을 사울로 본 겁니다. 사울이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은, 진짜 하나님의 통치는 생명의 자리에서 얻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명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 사람들이 생명을 찾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억울하게 죽음을 받는, 죽음에 희생된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생명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 이래 봅니다.

제가 금요일 날 서울에서 결혼식이 있었어요. 밤 8시에 결혼식 했습니다. 8시에 결혼하니까 장점은 전혀 없고 단점밖에 없는데, 첫째는 하객들 음식 문제도 그렇고, 두 번째는 뭐냐, 제일 큰 문제가 결혼식을 참석하면서 전부 피곤을 느낀다는 거예요. 퇴근하고 오기 때문에. 그러니까 주례하는 사람이나 인도하는 저로서는 피곤을 말끔하게 가시게 하면서 그 결혼식을 진짜 기쁜 결혼식으로 전환해야 될 책임감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그 결혼식을 마치고 난 뒤에 또 한 가지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결혼식을 마치고 국수 먹고 그 자리에서 강의를 해야 해요. 성경 공부를. 강의를 하게 됐어요. 신랑 신부도 앉아 있고, 그러면 그 결혼식의 분위기를 또 이어가야 하는 거예요. 파장 분위기인데.ㅎ 그때 뭐가 있었느냐 하면, 결혼식 한다고 송 재원, 이 미아 축 결혼이라고 풍선 댓 개 달고 아주 초라하고 순박하게 돼 있는데, 결혼식 끝나고 그게 없어지고 칠판이 나왔다 말이죠.

그렇다면 천국이 어디 있느냐? 천국은 바로 화려한 결혼식 뒤에 바로 칠판이 천국이다. 십자가를 사람들이 기피하는데, 십자가를 뜯어내면 그 뒤에 바로 천국이 있는 거예요. 다른 길은 없어요. 십자가로 가야 , 십자가로 들어가면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몇 해 전에 울산에서 경찰에서 오락실을 급습해서 불법으로 오락하는 것을 체포했는데, 그 오락실을 뭐로 위장했느냐 하면, 기도원으로 위장했어요. 기도원으로 위장했는데 가보니 오락실 이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예화 하겠다고 적어놨어요. 뭐냐 하면, 천국 간다고 교회 갔는데, 보니까 지옥 이예요. 힘의 집결!! 누가 우리 교회에서 힘세냐. 현재 우리교회 권력은 누가 쥐고 있느냐. 이게 지옥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로 갈 때, 모두 힘을 뺄 때, 행위 책이 아니고, 거저주신 은혜가 도대체 어디에서 어느 구석에서 나오나? 내가 거저 구원받고 거저 천당 가는데, 내가 거저 천국 가게 만드는 그 힘이 도대체 어디서 누가 공짜로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필 때, 그것은 우리대신 죽으신 분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에 의해서 십자가 죽었던 그 내력이 철없는 행위밖에 모르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었던 그 의미로 다가올 때, 그게 진정 왕 되신 주님을 제대로 된 주님을 왕으로 이해하는 거예요. 죽으신 분이 왕 이예요.

우리에게 힘주는 것은 악마고, 세상 힘은 악마고, 주님은 힘주시는 것이 아니고, ‘너는 힘없어도 살아.’하는 힘을 빼도 살고,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살아도 살고, 죽고 또 살고 계속해서 죽고 살고.. 그런데 그런 것은 이미 초월한 그런 대상이 너라는 것을 알려줄 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왕입니다. 새로운 체계가 바뀌면 가치관도 바뀌게 돼 있어요. 십자가라는 체계는 십자가다운 새로운 가치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 다윗은 그 두 사람을 즉결 심판으로, 그냥 그 자리에서 사형시켰어요. 사형시킴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나의 왕국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왕국에서 누구든지 힘을 원하고 높은 자리 원하고 자기 행함을 통해서 뭔가 자기가 오래 살고자 버티는 인간들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 저주 받을 짓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해서 두 번 다시 자기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조치한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 자신 멋들어지게 살아보려고 우리는 온갖 선택과 행함을 다 추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생명과 상관없이 오히려 저주를 유발하는, 유발요인처럼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내가 이렇게 얻었나, 어디서 이런 행함을 얻었나, 하지 말고, 어떻게 어디서부터 이런 공짜로 이런 은혜를 살게 하시는 은혜가 솟아나는지, 십자가에서 그 본질을 그 출발점을 저희들이 늘 보면서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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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