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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인간을 못 박는 창조묻고답하기미가

인간을 못 박는 창조

이름 : 김대식(IP:125.190.2.3)

인간을 못 박겠다는 것이 창조

(인간을 못 박겠다는 것이 새창조라고?
후패할 육의 소욕 :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vs 날로 새로운 성령의 언어 : 문제 없어 문제 없어 문제 없이 삭제)

(갈 5:24, 개역)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창조란 소멸로써 증거 된다.
(소멸이라는 차이성이 아니면 창조를 알 길이 없다.
빛을 어두움의 차이성으로 알수 있듯이
생명 또한 죽음으로만 알수 있다.
영생나무는 선악나무의 차이로 접근 차단된 영생을 아는 것이다.
여호와란 우상의 차이로 안다. 그래서 약속은 비언약 곧 우상의 언어의 차이로 알게 된다.
여호와는 자신을 우상의 깔려 있는 곳에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신다.
천국도 마찬가지이다. 지옥을 깔아 놓고 그 중앙에서 천국을 펼친다.
그래야 지옥의 어두움이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물러나는 사단아 물러가라 라는 말씀의 능력을 보게 된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죽어 있음이 드러난다.

(고후 5:14, 개역)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들은 단 한번도 정녕 죽으리라의 의미 조차도 모른채 흙에서 흙으로 나타났다 되돌아갔다.

그렇다면 죽음(소멸)의 의미가 명확해 질려면 예수님에게 이 죽음의 의미를 물어봐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십자가 라는 창조로 증명하신다.
즉 자신의 소멸이다.
이 자신의 소멸을 통해서 모든 존재들은 그 소멸에 동참을 한다.
그러나 유독 가짜 인간만이 십자가에 소멸되지 않는 독자성을 띈다.

그것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도배질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자살하라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
예수님의 죽으심을 증거하는 것이 곧 창조세계의 동참이다.

그러나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

죽었다 깨어나도 즉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도 말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로는 예수님의 죽음이 절대로 생명으로 보일 리가 없다.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창조가 되겠는가 말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어떻게 영생이 되겠는가? (요 6:26-63)
(그래서 신학화 하고 교리화 하면 그 정치성 때문에 믿는다고 할 뿐이지 여전히 믿을수 없다는 속내다)

도리어 선악과가 생명으로 보이고 선악의 밖은 생명으로 도저히 보이질 않는다.

율법 외에 한 의란 의가 아니라 저주로만 보인다.
맞다 저주로만 봐야 한다. 그것이 십자가의 저주인데 그 저주가 사랑이다.

그러나 율법만이 생명이고 거룩이고 의롭지
율법 밖은 절대 의가 아니기에 율법에 갇혀 버렸다.
철저히 법에 갇혀 버린 올무에 빠진 꼴이다.
그 올무에 갇혀 버린 자를 건져내는 유일한 해방은 바로 소멸이다.

율법의 소멸 이다.
의문의 소멸 이다.
거룩이 거룩을 치는 방식이다.
유일한 거룩이 유일한 거룩을 치는 방식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혜가 지혜를 자기 스스로 치는 방식
자기 스스로 죽는 방식
자기 스스로 소멸 하는 방식이다.
(율법이라는 거룩이 율법이라는 거룩을 치는 방식이 바로 율법의 폐함이자 곧 완성이다.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더욱더 완성하러 온 것이다. 일점 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율법 보다 더 강화된 사랑에 이제 양보 없다는 뜻이다.
이제 의문의 것은 일체 없다. 의문의 증서는 찢어버렸다.
율법으로 도배시킨 인간들의 외식이 이제는 안 통하는 성령의 시대이다. 그림자 시대는 끝났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이 직접 자기 목숨을 맞바꿀 정도로 십자가에 이제 양보가 없다.
저들에게는 망하는 것으로 이들에게는 구원의 것으로
결국 십자가 보다 더 용서가 더 큰 사랑이 없는 동시에 십자가 보다 더 선악적인 것이 없도록 하셨다.
모든 인간의 내막은 이제 십자가로만 발가벗겨버리겠다는 것이다.)

마치 바울이 차라리 내 구원 너 받고 너 지옥 내가 가마 라는 생명 맞바꾸기 방식 처럼 말이다.

자기 스스로 소멸하는 방식이 바로 이런 방식이다.
사랑 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 있으면 나와보라! 얼마나 일방적이며 질투적인가?
죽음보다 더 시기를 뿜어내는 것이 사랑이다.

맞바꾸겠다는 식이다.

나 소멸 할게 너 창조 했뿌라
나 죽음 할게 너 생명 해라
그래서 십자가에 소멸 당하신다.
인간을 못 박겠다는 그 취지는
결국 참 인간이신 예수님의 모범의 본을 보이신 사랑이다.
참인간 예수님의 못 박으심만 남겨버리겠다는 것이다.
이 소멸만 창조이고 나머지는 다 거짓이다.

"정녕 죽으리라"를 맞바꾸기 한 것이다.
이것이 창조다.

소멸 보다 더 나은 창조가 없다.

아벨의 죽음을 왜 말리지 않는가?

아벨의 죽음에 말릴 필요 없이 아예 하나님 자신이 곧 예수님이 그 죽음에 뛰어들었다.
(스데반 죽음? 우리야 죽음? 이름없는 아이의 꺽여진 뼈? 세례요한의 죽음 왜 안 말리는가?
예수님의 죽음? 아예 하나님 자신이 더욱더 뛰어들어 가신다. 사실상 구약이 이것 하나만 증거한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눈만 반대로 본 것이다. 그림자를 실체로 실체를 그림자로 ...)

그렇다면 가인이 더 문제가 된 것이다.
가인에게 뛰어드는 자가 없기에 (맞바꾸자 라고 뛰어드는 분이 없기에)
가인은 자기가 자기를 챙기는 성화의 성을 쌓는다.
아무리 쌓아도 쌓아도 미흡하다.
아무리 영웅으로 성을 도배하고 영웅으로 국가를 도배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적처럼 온 자기 성과 자기 몸에 도배를 해도
그 공포는 가실 길이 없다.

죽기를 무서워 평생 종노릇 하기에 더욱더 높이 더욱더 멀리 더욱더 길게 쌓고 쌓는다.
인간의 하나님 형상 되기나
인간의 구원 챙기기나
인간의 천국 가기 운동이나.
인간의 성화 쌓기
이 모든 것이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로써 점점 의문만 더해 갈 뿐이다.
만족함이 없다.

다만 그 만족을 해소하는 길은 약자를 찾아나서는 악마성이다.

나보다 못한 놈 찾으면 자동적으로 자랑이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 올무에 빠졌다.

이 올무 끊는 길이 무엇이랴?

그 정과 욕심 못 박는 길이다.

(갈 5:22, 개역)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개역)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개역)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 정과 욕심을 불교식으로 착각하는 기독교 목사들 신학자들 교인들이 100%이다.
(불가능의 언어인 성령의 공동언어 곧 영의 언어를 육의 언어인 가능성으로 바꿔치기 한다.
"할수 있다" 라는 행함으로 취급해 버린다. 하면 할 수록 더욱더 육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죄만 넘쳐나는 완악만 그림자만 허상만 가득채워 버렸다.)

그 정과 욕심을 끊고자 하는 그것이 정과 욕심이다.
자기부인 하자 라고 하는 것이 자기긍정이요 자기자랑이 되어버린다.
가인의 후예가 아무리 뭘 해도 더욱더 죄만 증식시킬 뿐이다.

그 정과 욕심 조차도 성령에게 맡길수가 없다.
철저한 가인의 모습이다.
불안과 공포로 인해 그 정과 욕심을 끊을려는 시도 조차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왜 그 성령의 언어를 육의 행함의 언어로 교체하는지?
맞다 바로 알수 없는 공포 때문이다.

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자기를 자기가 손대고 싶어서 이다.

끝까지 주님 앞에서 마저 우리는 늘 외식적이다.
남의 시선이 없다면 절대로 안할 위인들만 교회에 다 빠글빠글 채워져 있다.

주님은 이제 하나 하나 골라내신다.

십자가에서 잉태한 자와 (긍휼의 그릇)
행함에서 배태된 자 (진노의 그릇)

바로 두 언약의 두 여자에게서 난 열매로써 말이다.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0, 개역)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관리자(IP:125.♡.2.3)

09-11-12 07:16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어떻게 영생이 되겠는가? (요 6:26-63)

(요 6:2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개역)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8, 개역)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30, 개역)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 6:31, 개역)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 6: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개역)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개역)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6,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 6:37, 개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 6:38, 개역)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개역)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40, 개역)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1, 개역)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개역)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요 6:4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 6:44, 개역)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5, 개역)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6, 개역)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6:47, 개역)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8, 개역)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9, 개역)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개역)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1, 개역)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52, 개역)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개역)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개역)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개역)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7, 개역)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8, 개역)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9, 개역)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요 6:60, 개역)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요 6:61, 개역)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요 6:62, 개역)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요 6:63, 개역)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김성환(IP:119.♡.19.218)

09-11-12 12:10

잘 읽었습니다^^

성령(영)은 십자가안에서만 약속의 자녀를 '영의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죽이고 살리고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요6:63). 죽을 때까지(육신은 여전히 죽지 않지만...)

십자가 밖과 안의 차이를 뼈저리게 알도록 날마다 정과 욕심과 육체를 십자가안에서 타작해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관리자(IP:124.♡.86.6)

09-11-18 22:06

037강-렘10장19-25(선지자의고난과주님)-jer091118

이근호 09-11-18 21:09

선지자의 고난과 주님

2009년 11월 18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10:19-25

(렘 10:19, 개정)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렘 10:20, 개정)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렘 10:21, 개정) 『목자들은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 떼는 흩어졌도다』
(렘 10:22, 개정) 『들을지어다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 유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승냥이의 거처가 되게 하리로다』
(렘 10:23, 개정)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 10:24, 개정)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렘 10:25, 개정) 『주를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였나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의 전반부 내용은,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징벌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후반부 내용은, 이방나라를 저주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이방민족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다나라를 징벌하는데 참여 했던 민족입니다. 이 참여한 민족을 저주한다는 것은 곧 유다 나라를 치지 말아야 할 나라가 친 경우에나 해당될 사항입니다.

이렇게 되니 이방 민족들은 유다 나라를 안 쳐도 저주받고 쳐도 저주받는 나라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이런 면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힘듭니다. 물론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런 활동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선지자는 어떤 통로를 거쳐서 모순되어 보이는 하나님의 활동이 모순없이 정립이 된 겁니까?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는 신비로운 분이라는 점입니다. 보통 인간들 생각에는 한 가족으로 같이 살면, 그만큼 남들보다 더 잘 아는 관계라고 여길 것입니다. 자식으로서 자신의 아버지를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상식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있어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알면 알수록 그 깊이와 넓이가 더 확대됩니다. 이방인들의 신들은 인간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창하게 신을 신봉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자진해서 우습게 취급하게 됩니다. 전혀 신비롭지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갈수록 알 수 없는 하나님 됩니다. 하지만 이방민족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나름대로 쉽게 이해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신이라는 것을 대충은 압니다. 물론 믿지는 않지요. 왜냐하면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알기만 하면 됐지 구태여 믿을 것까지는 없다고 여기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기에 성경을 통해서 대략 윤곽을 잡아나가면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본인들이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믿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익히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관계 조율만 적당히 하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면, 오늘 본문 같이 하나님이 벌리시는 유다나라 징벌에 참여한 이방민족에게 대놓고 저주해야만 하는 사명과 쉽게 연결지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비가 어디서 도출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말을 저 역사의 끝에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선지자에게 있어 종말은 역사의 끝에 새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처음부터 이스라엘 밑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주’요 ‘심판주’이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어 종말이란 이스라엘의 처음 자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종말이라는 것이 기차 레일같은 수평적 직선의 끝자락에 둘 것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다음에 출애굽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출애굽기 쯤 되면 창세기 시절은 지나간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모세에게 있어 출애굽이란 곧 이스라엘의 바탕이 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통해서 그들이 뵙던 그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함을 통보해주는데 있습니다. 즉 출애굽 밑에 창세기가 영원히 깔려있어서 같이 나란히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출애굽은 결코 창세기 틀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신비란, ‘주님’이 품고 계시는 그 신비의 토대 위에서 자신이 만들어져서 그 신비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인정하는 신비를 뜻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만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져 말씀으로만 움직여지는 본인도 신비로운 것입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말이 이런 현상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 결국 천국 아니면 지옥에 들어갑니다. 바로 이 사실이 창세기를 시작할 때부터 계셨던 그 ‘주님’이 품고 있던 신비였고 그 신비에 준해서 이 땅에 태어나야만 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천국가야만 하는 성도들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있어 종말이란 현재 자신을 신비롭게 만드시는 그 원천지를 알게 하시는 신비로운 힘이 작용하는 시간적 층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으로 영생을 얻게 되나요? 바로 ‘하나님의 죽으심’입니다. 이스라엘이 겪어야 하는 고난이나 오늘 본문 19절의 말씀처럼 예레미야 선지자가 겪는 고난이며 모두 하나님이 겪는 죽음의 고난의 자리에서 분출되는 같은 신비로운 능력의 결과입니다. 19절은 이런 내용입니다.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이 고난에 참여한 참 이스라엘은 이 신비를 압니다.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은 곧 메시아의 고난에 동참하는 차원인 것을 말입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신비에 그들도 신비로운 백성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방민족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어떤 신비라도 자신들이 납득이 되는 것으로 전환시켜서 믿을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 신비란 항상 정복과 극복의 대상일 뿐입니다. 신비 속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비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신의 신비마저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곧 자기 자신들의 의지요 이성이요 감정입니다.

예수님의 빈무덤과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사람들을 납득을 시키려고 한다면 이는 곧 본인들부터가 전혀 믿음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즉 본인들부터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납득이 안되니 납득되는 식으로 해명해보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있어 하나님의 일은 그야말로 신비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아내 사라가 임신한 것도 참으로 신비로운 사실이었고 이를 통해서 본인의 운명은 본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언약대로 진행되어야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주를 모르기에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새로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처럼 여깁니다. 언약에 의해서 이들은 비언약적인 존재가 되었기에 저주받아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반면에 성도가 참으로 신비로운 자가 되어 있다는 말은, 이미 그 속에 ‘하나님의 죽으심’이 담겨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증거한 그릇을 따로 만들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신비로움입니다. 더 이상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겁니다. 이 신비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성도를 매일같이 난도질합니다. 가끔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금방 데려가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염려할 필요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늘 죽이고 계십니다. 벌써 죽은 자로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성도 안에서만 활동하기에 성도는 이방민족들처럼 더 이상 자신의 판단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실천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도 안에 말씀을 살아서 활동 자체가 말씀의 실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죽으심을 증거하기 위해 그릇으로 만드신 그 신비를 신비로서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37강-렘10장19-25(선지자의고난과주님)-jer091118.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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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