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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동은교회)(은혜와양심)(8,1~2)-재정리자유게시판마태복음

05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동은교회)(은혜와양심)(8,1~2)-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73)

05 십자가마을 여름 수련회 - 은혜와 양심 1

울산동은교회(2005,08,01-02) 강의 이근호, 정리 서경수

지금부터 2005년도 십자가 마을 여름 수련회를 시작하도록 하겠는데, 먼저 성경구절을 한번 찾아보겠는데, 마태복음 26장 21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마 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마 26: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 나는 가짜가 아닌가?

제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이 가롯유다의 대목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의 신앙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그것을 스스로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분명히 가짜인데, 그런데 남들 앞에서는 진짜 신앙인인 것처럼 위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두꺼운 성경말씀을 주신 것은, 가짜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언젠가는 들통이 나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짜 신앙인은 아무리 "하나님, 제가 열심히 했습니다" 라는 것으로 변명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가짜가 나중에 주님에게 마지막 심판을 받을 때, 그때 들켜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고, 미리 알아서 자기가 스스로 퇴장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마지막 위로가 되지 싶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었구나. 괜히 딴 동네에 와서 놀았구나" 라는 것을,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정말로 자기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스스로 점검하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고린도후서에도 나와있는데, 아무튼 이번 기회에 우리 자신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자는 말입니다.

◈ 하필이면 왜 가롯유다인가?

그렇게 신앙의 점검을 하는데 있어서, 사실상 이 가롯유다의 이야기만큼 더 확실한 것이 없는데, 왜 그런고 하면, 이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자기가 선택했는데, 즉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 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롯유다의 자리에 우리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를 들어서, 저의 이름이 '이근호' 인데, 그래서 "'이근호' 라는 작자가, 자기가 선택을 해서 예수님을 믿었다" 라고 한다면, 그 노선은 결국에 누구와 같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짜라고 알고 있는, 저 가롯유다와 같은 노선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가 어려우냐 하면,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롯유다는 예수님이 자기를 선택한 줄로 알았다는 겁니다. 또 예수님이 그렇게 설교를 하셨기에 믿었고 말입니다. 즉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혹은 "아버지가 아니면 내게로 올 자가 없다" 라는 설교를 평소에 늘 들어왔기 때문에, 이 가롯유다는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들 중에 자기가 포함되었다고, 분명히 그렇게 알았고, 또한 믿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의 현장에서 보니, 비로소 가롯유다는 예수님이 자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예수님을 선택했다는 것을 발견하는, 그런 찰나에 도달을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이전까지는, 예수님이 자신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내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 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나중에 이렇게 와보니, "예수님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을 빌미로, 내가 예수님을 선택했구나" 라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 누가 누구를 선택한 것인가?

지금 강의가 처음부터 굉장히 난해하게 진행이 되는데, 좀 어려워도 어쩔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고 여기에서 관건은 바로 다음과 같은 점인데, 즉 "예수님께서 나를 선택한 것과 내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어떻게 다르고, 또한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롯유다는 고맙게도 우리에게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롯유다가 그런 예수님을 배반하는 행동을 함으로서 우리에게 그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롯유다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선택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왔는가 하면, 이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버릴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 '내가 예수님을 버릴 수 있다' 라고 한다면 !!

이것이 곧 근거인데, 즉 평소에 제 아무리 "예수님이 날 선택했어" 라고 늘 생각하고 외치고 다녀도, 언젠가는 예수님은 이순신 장군처럼 그냥 과거의 허구적인 인물이고, 내가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마치 예수님이 자기를 선택한 것처럼 스스로 자기 착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즉 "나는 선택이 되었어" 라고 자꾸만 반복을 하다보니,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과연 진짜인가? 가짜인가?" 라는 판별은, 자기 쪽에서 예수님을 한번 버려보면 되는데,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즉 내가 예수님을 버리고 포기해서, "이제야 내가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라고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하면, 그래서 "아이쿠, 내가 그동안에 귀신에게 씌었구나" 라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서 마음의 평온함을 얻는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평소에 자기가 '예수' 라는 이미지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 '자유의지'는 가롯유다로부터 출발을 !!

이처럼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을 가지고 철학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자유의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일반 신학교에서는 자유의지를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데, 즉 자유의지를 가롯유다로부터 시작하지를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버릴 수 있는 자유의지가 나에게 있다" 라고 하든지, 물론 나에게는 그러한 자유의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볼펜을 잡을 수도 있고 놓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고, 또 물을 마실 수도 있고 마시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도 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유의지의 항목 가운데 뭐도 포함이 되는고 하니, "내가 예수를 믿지 않을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 라고 정리가 되신다면, 그런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고, 예수님마저도 그런 사람의 자유의지에 포착이 되어서 걸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도 자유의지가 있었고,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도 생생하게 자유의지가 살아 있어서, 내가 예수님을 버린다고 하면, 즉 "언제든지 내 쪽에서 버릴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 라고 믿어진다면, 그런 사람은 바로 가롯유다의 노선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 나는 가롯유다와 같은 종족이 되기 싫어 !!

그런데 이렇게 정리가 되면,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내가 이렇게 물을 마실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즉 그 자유의지의 항목 속에 예수님도 포함되고,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버릴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면, 그래서 이러한 자는 가롯유다와 같은 종족에 속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아마 어떻게 하든지 간에 자기가 가롯유다와 다른 종족이 되려고 뭔가 시도를 할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무엇부터 제거해야 하는가 하면,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라는 것부터 빼내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종족이 되는 방법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러니 처음 출발점이 "가롯유다는 자유의지가 있다. 나는 물을 마실 수도 있다. 나는 꽃을 꺾을 수도 있다. 나는 잠을 잘 수도 있다" 라고 하게 되면, 그런데 나중에 그런 것 중에서 무엇도 할 수 있다고 하는고 하니, "나는 예수도 믿을 수가 있다" 라고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가롯유다와 같은 종족에 속한다는 겁니다.

◈ 나는 자유의지가 없어 !!

다시 말해서, 가롯유다처럼 지옥으로 가는 그런 종족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 출발점에서 "나는 자유의지가 있다" 라는 것을 지우고, 즉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라는 것으로 출발을 하게 되면, 그러면 어떤 허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믿을 자유도 없고, 또한 예수님을 거절할 자유도 없다" 라고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 그러면 어떤 절차에 의해서 믿음이 오게 되는가?

이런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데, 즉 "당신은 자유의지가 없고, 예수를 믿는 것도 당신의 자유로운 의사가 아니라면, 누가 당신에게 예수를 믿도록 했습니까?" 라고 질문에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름대로 교회에서 한 가닥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답변이 줄줄 나오는데, 즉 "예, 성령님께서 믿게 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으니 외부에서 믿도록 하셨는데, 즉 "외부인인 성령님께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하셨다" 라고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상대방은 "성령님이 어떤 절차를 가지고서 당신을 믿게 했습니까?" 라고, 반드시 그렇게 다시 묻게 된다는 말입니다.

◈ 넌 몰라도 돼 ??

그러므로 "당신이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다' 라고 하든지, 혹은 '성령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셨다' 라고 하는 하든지 간에, 즉 당신이 그 어떤 말을 갖다 붙이든지 간에, '어떤 절차, 어떤 경로, 그 어떤 매카니즘에 의해서 당신에게 믿음이 오게 되었는가?' 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만 한다" 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라고 하든지, 혹은 "성령님께서 어떻게 당신에게 믿음을 주던가요?" 라고 누군가가 질문을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당신은 몰라도 돼!" 라고, 그러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다시 정리를 하면, "성령께서 어떤 식으로 너에게 믿음을 주셨는가?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이 원인이 아니고 성령님이 원인이 되어서 믿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성령께서 어떠한 원인을 주셔서 당신이 믿는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 분명한데, 그 원인과 결과 사이에 어떤 단계를 밟아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것을 당신이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라고, 얼마든지 따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또 목사님에게 배운 적이 없어서, 예수님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 그 믿음에 대해서는 그냥, "성령께서 믿게 하셨다" 라고 하든지, 혹은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으로 되었다" 라고, 그렇게만 배웠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바로 앞에서 말한 그런 식으로 누군가가 따지고 들어오면, 전혀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 너, 지금 사기를 치고 있지?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가만 있어보자.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내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라고 한다면, 저쪽에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이 말을 못하는 것은, 성경 지식만을 알았을 뿐이지, 실제로 그러한 느낌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성령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느낌이 있다고 하면, 그게 말로 표현되어야 하고, 그것이 그렇게 표현이 되면 내가 알아듣든지 못하든지 하는 과정이 있을 것인데, 그런데 당신이 말도 못하는 것을 봐서는, 뭔가 받은 것도 느낀 것도 없으면서, 그냥 사기를 치는 것이다" 라고 나올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

여기서 질문자가 묻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원인이 없이 결과가 없다" 라는 것인데, 즉 반드시 원인이 있을 때만 결과가 있다는 겁니다. 즉 어떤 결과가 주어졌다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그 원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고, 그 원인자가, 그분이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아니면 자기가 되었던 간에, 그 원인자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즉 그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 과정을 묻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15년 전에 기도원에 갔거든", 혹은 "내가 이번에 동은교회 여름 수련회에 갔거든" 라고 한다면, 하지만 그렇게 동은교회에 갔다는 것이 결과는 아닌데, 단지 동은교회의 수련회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것은 원인을 조금 더 당긴 것은 되지만 그러나 결과는 아니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때 여름 수련회에 참석해서, 11시 20분 정도가 되었지 싶은데" 라고 하면, 이제 좀더 당겨진 것이 되는데, "그런데 그때 아이가 하나 울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믿어졌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과연 "동은교회의 여름 수련회에서 11시 20분에 아이가 운다고 하면, 그러면 모두가 다 믿어지는가?" 라고, 즉 "그것이 곧 믿게 된 원인인가?" 라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즉 "동일한 원인을 주면 동일하게 믿는가?" 라고 한다면, 그러면 뭐라고 대답을 하겠느냐는 겁니다.

◈ 동일한 원인만 있으면,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가?

제가 묻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즉 "동일한 원인만 있으면,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가?"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데, 즉 자기가 분명히 믿기는 믿는데 상대방에게 설명은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니가 대충 알아서 챙겨 들어라" 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은교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11시 20분에 강의를 들으면 다 믿는가? 모두가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가?" 라고 했을 때, 그런데 "나는 믿었지만, 너는 못 믿는다" 라고 한다면, 그렇게 되면 그것은 수련회에 참석한 것이 결코 믿음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원인 중에는 무엇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고 하면,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고, 너만 믿게 되었다" 라고, 즉 특별하게 '너'를 지목한 그 원인까지도 이야기를 해주어야만, 비로소 그 원인을 제대로 설명한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믿음의 원인, 혹은 믿음의 출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딱, 바로 너야" 라는 것까지도 규정해주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이 성경에 눅눅히 다 담겨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담겨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깊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마치 가롯유다와 같이, "나는 믿는다, 나는 믿는다. 주께서 나를 선택했다" 라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기한테 최면을 걸어서, 성경 전체가 모두 자기에게 해당이 된다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 다시, 왜 가롯유다인가?

가롯유다가 어떤 사람인가 하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심지어 귀신까지 추방한 사람인데, 예수님의 권능을 덧입어 많은 병자를 고치고 말입니다. 그러니 3년 동안을 월급도 한 푼 받지 않고서 어떤 사나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것이, 그게 자기 목숨을 받치는 마음이 없고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가롯유다가 결국 예수님을 팔았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믿습니다' 라고 하는 그 이상으로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첫째시간에 가롯유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즉 "주께서 나를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구원을 받았다" 라는, 그런 것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가롯유다도 포함이 되어있으니 말입니다. 즉 "성령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시켰다" 라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주께서 나를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았다" 라는 것이, 두리뭉실하기는 해도 정답이기는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 성령은,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나왔다' 라는 것은 아니고 !!

그 다른 것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해서 너무 뜸을 드리지 말고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줄 때, 아까 제가 이야기한 "이런 원인이 있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라는 식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가롯유다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즉 "내가 병자를 고친 것은, 예수님이 원인이 되어서 나에게 역사한 결과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입니다.

가롯유다도 그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인데,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뭐라고 하는고 하니, 예를 들어서, 여름에 계속해서 가뭄이 들어서 다른 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그런데 울산에만 비가 왔다고 했을 경우에, "야, 하나님의 은총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ㅋㅋ). 그리고 또한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 라는 것도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 성령은 '나'를 비켜가는 식으로 !!

그러니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원인과 결과라는 식으로 믿음을 주지 않고, 그것을 비켜가 버리는데, 즉 우리를 거치지 않고 비켜간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를 거치지 아니하는고 하니까, 우리를 거치게 되면 우리가 그만 주체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비켜가면서, 우리 주체를 그만 죽여버린다는 말입니다.

죽은 사람은 꼬집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즉 죽은 자에게 "당신은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소?" 라고 묻는다고 해도,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어이 죽은 양반, 당신은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이런 죽음이라는 결과가 왔습니까? 논리적으로 답변을 해보세요" 라고, 그렇게 아무리 물어도 전혀 대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죽은 사람에게 닥달을 하는 것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 가짜는 결국 들통이 !!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싶어서 예수를 믿는데, 그런데 그것은 어떤 상태인고 하니까, 내가 주체자가 되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즉 내가 납득되어 남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그렇게 주께서 먼저 나를 설득시키고, 또한 그렇게 설득할 수 있는 당당한 논리를 당당하게 가지고 내가 살아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즉 "주여, 제가 이렇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을 남에게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모든 시도는 반드시 나중에 가짜로 판명이 나고 들통이 날 시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줄 때는, 믿음이 들어오면서 '나' 라고 하는 자아와 주체를 그냥 두지 아니하고, 물론 자아와 주체는 조금 다른데, '라캉' 이라는 철학자는 주체를 분열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아와는 구별을 한다는 겁니다. 그건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하기로 하고 말입니다.

◈ 나의 믿음은 없어지고, 주님의 믿음이 !!

아무튼 이 주체를 그냥 두지 아니하고 믿음이 쳐들어오면, 이 주체는 서서히 눈빛이 꺼지면서 죽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번 믿음이 들어오면, 그 믿음을 가지고 신용카드처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 믿음은 평생토록 우리에게 쳐들어오는데, 그렇게 믿음이 들어온 결과가 뭐냐 하면, '나' 라고 하는 자아가 죽는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살아야 될 내가 점차 점차 죽어간다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 보니, 그런 믿음이 있는 분들이 계시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오는데, 이 믿음의 능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숙제에 대해서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잘 하시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숙제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을 '약속'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 약속이 기획이 되고 침투가 되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들어오는데, 그렇게 믿음이 들어오면서, 그것이 주님의 믿음으로 전환이 되면서 나의 믿음은 꺼져버린다는 말입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데, 즉 나의 믿음은 없어지고 주님의 믿음이 그만 나를 장악해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성취의 능력 때문이다" 라는 것이 점차 드러나는 식으로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이번 수련회 주제와 관련이 있는데, 신명기 4장 24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민수기 11장 1절을 봐도 이런 내용이 있고 말입니다.

제가 왜 이런 구절을 찾았는가 하면, 성경에 나와있는 진리는, 우리 인간의 양심에서 나오는 윤리나 도덕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사람이 죽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즉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양심이 고운지, 얼마나 선하게 살았는지를 묻지 않고, 하나님은 그냥 인간을 죽여버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니 말입니다.

(민 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 그러니 중보자가 대신해서 나서야 !!

그렇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에 민수기나 신명기의 경우에, 이렇게 모세를 중간에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고, 인간은 소멸을 당해야 하는 자이기에,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야 하고,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을 받기만 하면 죽으니까, 하나님은 그 다음에 어떻게 하십니까?

그래서 대신해서 모세가 나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중보자로 나서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실 모세도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죽지 않고 사는 구조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은 불이고, 우리는 죽어야 하는데, 그래서 중보자가 반드시 대신해서 나서야만 하는, 그런 구조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와 우리의 양심과 도덕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여기 소멸하는 불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이, 결코 나쁜 짓을 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물이 없어서 물을 달라고 하다가 죽었고, 양식이 없어서 양식을 달라고 하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한다" 라는 말입니다.

◈ '나'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주체자 !!

쉽게 말해서, 주체자가 하나님이고 예수이고 간에, "내가 살고 봐야지" 라고 폼을 잡다가 모두가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 라는 주체자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주체자로서 이 땅에 사명을(?) 간직하고 태어났는데, 즉 전혀 살 가치가 없음을 끌어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즉 "하나님은 불이시니 인간들은 죽어야 한다" 라는 것을, 다른 민족들은 모르고, 하나님께서는 민수기와 신명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큼은 독특하고 비밀스럽게 알려주셨다는 겁니다. 다른 민족들에게는 그냥 양심이 어떻게 도덕이 어떻고 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하시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강의 교재를 가지고 계신데, 여기 첫 문장부터 무슨 말인지 독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얼마나 글이 어려운지 한번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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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차적인 의미에서 자연법은 비성문율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러한 정의를 내렸다. 자연법은 이성을 갖춘 피조물의 영원법에의 참여라고 했다. 그는 모든 유(有)가 영원법(하나님의 섭리)에 종속되어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영원법에 상응한 방식으로 행동할 타고난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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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왜 천주교 윤리를 공부해야 합니까?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까? 이것은 천주교 윤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러면 "목사님, 우리가 왜 천주교 윤리를 공부해야 합니까?" 라고 물을 사람이 있지 싶은데, 사실은 개신교 윤리가 천주교 윤리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식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엄마, 아빠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여러분은 미처 몰랐지요? (ㅋㅋ)

그래서 우리가 당연히 천주교의 윤리를 알아야 하는데, 이번 수련회에서 그것을 쉽게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공부함으로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구조와,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스스로 우리 마음을 다잡고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우리의 구조가 전혀 다른 엉뚱한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 '양심' 이란 것은 모든 피조물 안에 녹아 있는, 즉 피조물 본인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피조물이 되게 하는 그 원칙이 있는데, 그 원칙이 바로 자연법이고, 그 자연법이 인간에게만 있는데, 그것을 두고 '양심'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천주교 - 착한 심성을 개발하고 싶어 !!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한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그런 주장을 왜 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착한 심성을 개발하고 싶어서 믿는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래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제가 말은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는데, 그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는데, 그런데 이제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라고, 그 정도만 알아도 신자라고 간주해줄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어설프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구약대로 하면 우상을 섬기는 자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 하나님은, 양심을 불로서 태워버리는 분 !!

진짜 하나님은 그야말로 생뚱맞은 전혀 엉뚱한 분인데, 전혀 그런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 속에 선한 양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데 하나님은 그 양심을 그만 불로서 태워버리니,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것을 태우는 것이 되기 때문에 모순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주체가 없고, 그냥 죽는 대상일 뿐인데, 즉 태어날 때부터 죽는 대상이란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 비해서 이방종교는 전혀 그렇지가 않는데, 이방 종교는 주체가 우선인데, 그래서 내 안에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인지, 즉 "내 안에 어떤 요소가 하나님의 요소인가? 그것을 찾아내고 개발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라는 것이 이방종교의 특징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주체인 '나'는 절대 죽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철이 없고 조금 모자라면, 잘 가르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쪽에서는 주체가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 반대로 여기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깨달은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죽어야만 할 대상이기에, 그야말로 이쪽과 저쪽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겁니다. 이 양쪽 사이에 중간지대가 전혀 없는데, 그러니 "죽느냐? 사느냐?" 라는 문제라는 겁니다. 즉 "죽는 주체를 할래?",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살래?" 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체가 살아 있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집니까?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

교재 16페이지에 보면 노랫말이 하나 나오는데, 맨발의 여자 가수 이은미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엉엉 운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30살에 그만 스스로 가버린 통기타 가수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 라는 것인데, '이등병 일기' 라는 노래를 불러서 젊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 '서른 즈음에' 라는 가사를 찬찬히 읽어볼 텐데, 이 노랫말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문제점이 뭔가를 한번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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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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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를 녹음이 된 것이 있으면 여러분에게 다들 듣게 하고 싶은데, 왜 그런고 하니, 아무리 복음적인 설교를 듣고 해도, 그만 비가 줄줄 오고 하면, 또 그만 이런 노래가 생각이 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자기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그렇게 스스로 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왜 설교말씀을 들을 때는 그렇게 좋은데, 즉 주일 11시에는 천당인데 교회 문을 열고 나가면 지옥이냐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김광석이 부른 노래처럼, 그런 심리가 우리 주체를 가득 가득히 채우고 있다는 겁니다.

◈ 이제 서른부터 내리막길이다 ??

이 노래의 제목이 '서른 즈음에'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인생이 서른이 기점이라는 사실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예레미야서에 나옵니까? 신명기에 나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마태복음에 "서른부터 내리막길이다" 라는 것이 나옵니까? 전혀 안 나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김광석은 서른을 정점으로 해서 점점 멀어져 가는 자신을 보면서, 즉 과거의 추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서른 때의 시절을 추억하면서 안타까워하고, 그렇게 행복했던 시절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계속 멀어져갈 것 같으면 차라리 미리 당겨서 죽는 것이 낳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그래서 본인도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여기 가사에 보면,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라고 되어있는데, 그것은 어떤 것을 목표로 삼고, "저것을 따내면 내가 행복하겠지" 라고, 즉 "이번에 로또에만 당첨이 되면, 이번에 아파트에 당첨이 되면" 라는 식으로, 그런 것으로 자꾸만 채우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채우고 채워도 결국에는 채운 것보다도 더 큰 공백이 생기고 만다는 겁니다. 더 깊이 내려가 보니 거기에는 더욱 깊고 어두운 동굴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느 세월에 그 공백을 다 채웁니까? 세월이 가면 갈수록 공백이 더욱 더 커지는데 말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겁니다.

그러니 공허의 폭이 너무 넓으니까, 지금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공허와 허무의 폭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50평 아파트에 살아도,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텅 빈 가슴에 뭔가를 채워서 만족을 얻으려 하는데, 거기에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성령을 이야기해도, 언약을 이야기해도, 그것으로 채워지느냐는 겁니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그것으로 채워지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도 채워지지 않으니, 그냥 교회에 발을 끊고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는데, 그러면 결국 스스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결국, 교회도 주님도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 !!

그러니 교회도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 그렇게 해서 결국 주님과 점점 더 멀어져 가고 마는데, 그렇게 점점 더 멀어져 가니 내린 결론이 뭔고 하니, "주님이 선택하셨다" 라고 목사님이 가르치지만, 그러나 뭐라고 합니까? "목사님, 죄송하지만 제가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서른 즈음에는 몰랐는데, 그런데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보니 제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가롯유다와 같은 종족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롯유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내 속에 참한 가롯유다 하나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예쁜 가롯유다 하나를, 낭만적이고 고상한 가롯유다를 말입니다. 다만 직장 일이 너무 바빠서 가롯유다까지 신경을 못쓰지만, 그 직장에서 쫓겨나면 갑자기 가롯유다가 튀어나오면서 "이 병신 같은 인간아, 너는 왜 이렇게 사냐?"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절벽을 찾는데, 조금 더 준비성이 있는 사람은 보험에 들고 찾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가사에 보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럽던 누이동생도 결혼해서는 멀어져 가고, 나중에는 보증이나 써달라고 하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러니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자기만을 챙기려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정다웠던 친구들도 모두가 자기 살기에 바빠서 우정이란 우정은 다 깨어지고, 그렇게 모든 것들은 점차 떠나가고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에 보면 '우주 팽창론' 이란 것이 있는데, 즉 별과 별 사이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너와 내가 멀어지고, 저쪽과도 역시 멀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풍선에다가 점을 두 개 찍어서, 그 풍선을 불게 되면 점과 점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지듯이 된다는 말입니다.

◈ 모든 것이 점점 멀어져 간다 !!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김광석이 부른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이 점점 멀어져 간다" 라는 사고방식의 특징을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40분 동안 그것을 강의했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곧 가롯유다와 동일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이 강의가 그야말로 실제적인 것인데,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들을 때는, 그것이 비실제적인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교회에 밖에는 김광석의 그런 의식이 진짜 현실로 느껴지고 말입니다. 그러니 목사님의 설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바로 자기가 예수를 선택한 가롯유다와 같은 종족이라는 말입니다.

◈ 죽은 상태로 선택하시는 하나님 !!

지금 우리가 가롯유다 세미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제가 지금 첫 시간부터 흥분하기 시작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첫째시간의 결론을 내린다면 다음과 같은데, 하나님께서 자기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올 때는, "나는 처음부터 죽어있는 존재이구나" 라는 것을 파악하는 쪽으로 선택하게 되어있지, "하나님께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를 선택하고 구원하는구나" 라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그것이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진짜 하나님이 선택을 할 때는 "나는 처음부터 죽은 존재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하신다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심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고 하니, 선택도 되지 않은 인간들이, 결국에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고 하니,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전쟁이 벌어지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뒤에서 유도했다는 사실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 요약을 하면, ① 나는 처음부터 죽어있는 존재구나 !!
② 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구나 !!
③ 둘이 서로 싸움을 하도록 !!

다시 반복하겠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실 때는, 그들을 이미 죽인 채로 오신다는 것과, 그리고 선택이 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반드시 공격하도록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둘 사이에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엄청나게 바쁜데, 둘을 서로 싸움을 붙인다고 말입니다.

◈ 누가 가짜인가?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람은 신자가 아닐 가능성이 많은데, 그게 어떤 사람인가 하면,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기가 핍박을 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가짜일 확률이 많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사람은 슈퍼에서 라면을 하나 고르듯이, 그렇게 여러 종교들 가운데서 예수를 하나 자기가 선택해 놓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 성경을 보니까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너를 선택했다"고 하니까, "야, 그것도 일리가 있네" 라고 하면서, 즉 "예수님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을, 내가 예수님을 선택하고 나서 비로소 알았으니, 나는 이 선택을 내가 유지하겠다" 라는, 지금 선택이 몇 번이나 들어갔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니다.

이제 10분을 쉬겠는데, 내 속에 김광석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속앓이를 할 필요는 없고 말입니다. 이제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선택을 한 성도와 그렇지 않은 비성도간의 싸움을 어떤 식으로 붙이는지, 거기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0분간 쉬겠습니다.

2005,9,5, 10:01 마침 - 서경수 녹취, 오용익 재녹취

오 목사, 서 목사는 김광석의 노래를 안 좋아하나봐. 다 빼먹었어! ㅋㅋ
- 녹취 '구'(09,11,5)

첨부파일 : 05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은혜와양심)(강의정리)--재정리완료.zip (680.5K), Down:21

이미아(IP:119.♡.119.36)

09-11-10 16:02

2005년 울산 동은 교회에서 열린 수련회에 처음 참석했었는데...기억나는 것이라곤 김광석의 노래 뿐.....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2009년이 지나가는 지금에 새롭게 다가오네요.

성령께서 내 존재를 비켜가는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것은 내 주체 없다는 것입니다.

텅 빈 가슴에 뭔가를 채워서 만족을 얻으려 하는데, 거기에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십자
가를 이야기하고, 성령을 이야기해도, 언약을 이야기해도, 그것으로 채워지느냐는 겁니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그것으로 채워지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도 채워지지 않으니, 그냥 교회에 발을 끊
고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되는데, 그러면 결국 스스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도 점점 더 멀어져 가는데, 그렇게 해서 결국 주님과 점점 더 멀어져 가고 마는데, 그렇게 점점 더 멀어져 가니 내린 결론이 뭔고 하니, "주님이 선택하셨다" 라고 목사님이 가르치지만, 그러나 뭐라고 합니까? "목사님, 죄송하지만 제가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서른 즈음에는 몰랐는데, 그런데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보니 제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가롯유다와 같은 종족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가롯유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닌데, 내 속에 참한 가롯유다 하나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예쁜 가롯유다 하나를, 낭만적이고 고상한 가롯유다를 말입니다. 다만 직장 일이 너무 바빠서 가롯유다까지 신경을 못쓰지만, 그 직장에서 쫓겨나면 갑자기 가롯유다가 튀어나오면서 "이 병신 같은 인간아, 너는 왜 이렇게 사냐?" 라고 한다는 겁니다.

관리자(IP:124.♡.86.6)

09-11-24 15:26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05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은혜와양심재정리.zip

관리자(IP:124.♡.86.6)

09-11-24 15:28

십자가 마을 2005년 여름 수련회 동은교회 강의

주제 : 양심과 율법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1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2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3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4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5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6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7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양심과율법8번강의.hwp

http://media.woorich.net/~woorich/신학강의/2005양심과율법/05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은혜와양심재정리.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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