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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삼하 3: 1- 5 (사울의집과 다윗의집)우리교회사무엘하

삼하 3: 1- 5 (사울의집과 다윗의집)

이름 : 우리교회(IP:220.81.41.193)

본문 : 사무엘하 3장 1- 5절
제목 : 사울의집과 다윗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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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11-08 15:22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2009년 11월 8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3:1-5

(삼하 3:1, 개정)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삼하 3:2, 개정)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삼하 3:3, 개정)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삼하 3:4, 개정)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삼하 3:5, 개정)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오늘 본문에 다윗의 6명의 아내와 6명의 자녀들이 각각 나옵니다. 이 다윗의 집안은 결코 다른 집안보다 신앙적으로 우수한 집안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점점 강하여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진리이냐를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상대적인 대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다윗의 집안과 사울의 집안의 차이가 인간들이 흔히 생각하는 선과 악의 차이가 아니라 다른 차이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윗 쪽으로 사람들을 집결시키게 됩니다. 즉 집결시킨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힘이 모아진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진짜 선과 악의 기준이 점점 내부적으로 명확해지고 구체화된다는 말입니다.

즉 왜 다윗의 집안은 강성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면 왜 다윗 집안에서 비로소 악의 전모와 본질이 밝혀져야 하는지와 관련있습니다. 강성함의 원인은 건성이나 겉으로 파악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원래 전쟁이란 이스라엘과 타 민족간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언약이 있은 반면에 다른 민족에서는 언약이 없습니다. 언약이란 저주를 축복으로, 죄를 거룩과 의로 바뀌는 장치를 말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함께 있으면, 다른 민족들은 자동적으로 저주가 임하고 이스라엘은 자연적으로 축복이 임해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되고 난 뒤에는 내부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전쟁이 이처럼 내부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로 하신 일인데 왜냐하면 그 전쟁의 한 가운데에, 바로 언약의 진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언약의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죄의 진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그것마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자비의 만남이 성공적으로 성사될 때 가능합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6명의 아내와 자식이 나오지만 참으로 언약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관여하는 아내는 다윗 본인의 아내가 아니라 우리아라는 죽은 분의 아내입니다.

즉 밧세바입니다. 그리고 그 밧세바와 다윗의 사이에는 태어난 아이도 일주일만에 죽게 됩니다. 이 죽은 자가 곧 진정한 진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 자들은 종잡을 수 없는 정도로 늘 빈번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자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을 죽게 한 그 죄악된 원인이 그 죽음이 영구히 품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죽은자 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를 말할 서ㅜ 있게 됩니다. 언약, 특히 새언약에 있어 이미 죽어버린 자가 산 자들을 살려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살아있는 자가 파악하는 언약과 이미 언약대로 죽어버린 자가 품고 있는 내용이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산 자들은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에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여서 자신을 구원시키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본인들이 변동 있는 식으로 살아있음으로 인하여 항상 유동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배신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망해버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살아있는 본인들은 언약을 산 채로 준수하여 살아있는 자신을 더욱더 살게하겠다고 시도한 겁니다. 이것은 언약적이라 아니라 차라리 비언약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비언약은 하나님의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주어진다면 다윗의 가문 자체는 진정한 언약과 엉터리 언약정신의 만남이 성사되는 공간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정신이 하나님 나라에 못들어가는 의식입니다. 사울의 집안과 세력들이 이 사실을 마음껏 보여주게 됩니다. 10절에 보면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자칭 왕이 되리라는 자가 자기 부하가 무서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왕은 실질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왕입니다. 아브넬은 리스바라는 사울의 첩과 통간을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이스보셋이라는 차기 왕을 노리는 사울의 아들은, 부하가 감히 자기 집안을 능멸하는 것이 분해서 한 소리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더 거셌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너를 다윗의 위세 앞에서도 견디도록 힘을 써주고 있는데 그 은혜도 모르고 한 여인과의 허물을 문제삼느냐”는 겁니다. 즉 나는 당신 집안이 부려먹기 좋은 개가 아니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아브넬은 더욱더 기세가 높아 엄포를 놓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나는 이 사울의 집안이 아니라 다윗의 집안이 이스라엘의 왕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귀순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사울의 집단에 어떤 사적인 감정들이 충돌되어도 다윗의 집안 입장에서 큰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집안에서 큰 문제가 딴 게 아니라 사적인 복수심으로 인해 귀순한 아브넬 장군이 다윗 몰래 살해당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점점 강성해져 가는 다윗 집안 내에 이미 비언약적인 요소가 넘쳐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압이라는 장군은 전에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한 동생 아사헬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몰라 아브넬을 살해하고 맙니다. 이 사건을 놓고서 다윗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28-29에 보면,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그리고 귀순했던 아브넬의 죽임을 놓고 노래를 지어가면서까지 애통합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결코 다윗이 죽이고자 죽인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다윗은 사적인 복수심에서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얼마든지 다윗 진영에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고, 비록 다윗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하더라도 다윗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는 자는 언제든지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겁니다.

다윗이 세상 보는 기준에는 분명 저주받기를 바라는 요소를 유발시킵니다. 좋은게 좋다는 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저주라는 것이 항상 ‘같은 편’이라서 같이 외부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그 진영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본질은 다윗의 이런 울음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비록 탕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가면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보다 낫다는 겁니다. 비록 세리와 창기라도 회개할 줄 모르는 바리새인이나 낫다는 것이 언약이 보여주는 본성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내부에 새언약이 작동하여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구원받은 자임을 늘 확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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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09-11-08 20:22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하-2009/04강-삼하3장1-5(사울의집과다윗의집)-2sa091108.hwp

우리교회

10-12-19 21:12

004강-삼하3장1-5(사울의집과다윗의집)-2sa09110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하 3장 1절에서 5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466페이지입니다.
사무엘하 3:1-5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세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네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아멘을 해야 됩니까? ㅎ 처가 여섯 명인데, 아멘하면 가지겠다는 말인지,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나 이제부터 하나님 믿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이전부터 이미 우리를 만들었어요.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순간부터 뭔가 하나님과 관계가 튼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 생각이고 우리가 ‘나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말을 나불나불 말을 하도록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 이예요.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만들어 내지를 못하는 거예요. 믿음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 보니까 지금쯤 니가 고백할 때가 되었으니까 고백한 거예요. 그렇다면 진짜 믿는 사람은 ‘이제부터 내가 고백했다. 믿는다. 구원 받는다. 이게 아니라 ’누구세요? 나를 떠미는 사람이,‘ 누구세요? 하나님을 믿게 하신 그 분이 누구십니까? 주여 누구십니까?’ 이런 답변을 할 수밖에 없죠.

오늘 본문에 자식 여섯 명 나오는데, 다윗의 가정은 다윗의 가정이라 하면 안 됩니다. 다윗의 가정은 하나님이 살아있는 가정 이예요. 하나님이 살아있어서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안 살아있는 가정들이 있어줘야 돼요. 항상 드라마가 재미있으려면, 좋은 사람만 있으면 안 돼요. 그러면 재미가 없어요.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그런 프로가 시청률이 없어요. 누가 아픈데 누가 도와줬다. 재미없어요. 근데 어떤 게 재미있느냐 하면, 나쁜 사람이 등장할 때, 아주 재미가 납니다. 속으로 ‘죽이라, 죽이라.’하잖아요. ‘저 죽여 버려라 저거 살려 주나?’ 그러죠. 꼭 나쁜 쪽이 있어야 돼요.

선이 나타나고 악이 나타나야 하는데,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 세상에서는 악하게 비친다는 겁니다. 그리고 반대로 분명히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쪽이 세상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아유 성공했네. 출세했네. 아이고, 부럽다. 난 언제 따라 붙이냐.’ 이렇게 평소에 우리 마음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그쪽이 나중에 보면,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뭉개진다는 스토리로 전개됩니다.

오늘 1절에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여기서 잠간 어려운 말을 하겠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이라 하는 것은, 전쟁을 누구하고 하게 돼 있느냐 하면, 바깥에 있는 나라와 전쟁하게 돼 있어요. 그 바깥 나라에 있는 나라를 무슨 나라라 하느냐 하면, 이방나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나라’라고 합니다. 언약이 있는 나라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바깥에는 언약이 없는 나라예요.

언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언약이 있다는 것은 언약장치가 어떤 장치냐 하면, 안에 있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주는(호완해주는), 여기서 우리가 죄 짓는 쪽쪽 이것을 하나님의 거룩으로 의로운 것으로 선한 것으로 바꾸어주는 장치가 장착돼 있을 때, 그것이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바깥에는 언약이 없어요. 언약이 없으니까 그들은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본인들이 열심히 스스로 양심껏 착해야 복이 온다는 것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언약이란 장치가 없기 때문에, 죽으나 사나 자기 단도리, 자기 조심해야 되고, 행동도 조심해야 되고, 생각도 건전해야 되고, 그것도 항상 정신 차려서 건전해야 돼요. 잠시 정신이 혼미하면,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는 수가 있습니다. 욕 나오면 일주일동안 벌어놓았던 의로움 다 까먹습니다.ㅎ

그래서 언약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너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의 거룩에 도달하지 못하니까 그 도달하지 못해 저주받아 마땅한 것을 도중에 메꾸어 주는, 용서해 주는, 긍휼을 입어주는 그러한 장치가 항상 내장돼 있을 때, 그것이 ’언약의 효과‘라 합니다. 새 언약의 효과라 하죠. 그것이 구약 때는 그런데, 신약에 오면 그것이 새 언약으로 바뀝니다.

새 언약으로 바뀌면,(아! 어렵다 정말) 어떻게 바뀌느냐 하면, 옛 언약 때는 ‘하나님, 저 죄졌어요. 그런데 제 힘으로는 축복을 못 받습니다.’‘그래 매일 아침 어린양 잡는 거 알지? ’알죠. 안수해서 우리 죄를 가져가니까 그 어린양 덕분에 우리 복 받았습니다.‘ ’그래, 이제는 니 복 받았다.‘’감사합니다.‘ 이게 옛날 언약 이예요.

그런데 새 언약은 뭐냐 하면, 아예 인간 자체가 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복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 새 언약의 시대입니다. 믿거나 말거나.ㅎ 알아먹든지 못 알아먹든지. 쉽게 말해서 사람 자체가 바뀌어요. 사람 자체가!!

옛날에는 내 중심입니다.‘하나님 이래 가지고는 지옥가요. 천당 못 갑니다. 어떻게 조치를 해주셔야 되는데 무슨 조치 없습니까? 내 죽어서 좋은데 가야 돼요. 나는 교회 왔기 때문에 좋은 데 가야 돼요. 어떻게 저를 천국 보낼 수 없습니까?‘ 요것이 아직까지 내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원관, 옛날 언약이라면, 새 언약은 뭐냐 하면, 너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너는 구원받게 돼 있어.’라는 이유를 그걸 알려주는 데 우리의 죄와 우리의 행동을 주께서 사용을 해 주신다는 겁니다.

만약에 제 아내가 여섯 명이다. 자식이 여섯 명이다. 주위에서 얼마나 나불거리겠습니까? 뭐가 잘나서 여섯 명이냐? 나중에 여자 이름도 못 외우겠다. 여기에 나오는데 못 외워요. 자, 그럴 때 너는 뭐 잘나서 구원 받느냐 할 때, 그 다윗 가문의 특징이 뭐냐 하면, 다윗이 잘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나옵니다. 시편 50편에 나와요. 절대 다윗이 잘난 것이 아니고, 다윗의 여섯 여자와 여섯 아들은 서로 싸워요. 제가 그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옛날에 이스라엘은 전쟁을 바깥 이방인들과 전쟁을 했는데,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고 난 뒤에는 이스라엘 내부의 싸움으로 변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같은 이스라엘이고 같은 여호와 믿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쟁이 바깥이 전쟁이 아니라 내부의 전쟁으로 퍼졌습니다. 6.25 났을 때 남쪽은 힘을 합쳐서 북의 괴뢰군을 물리쳤습니다. 6.25 끝났습니다. 6.25 끝나고 난 뒤에 이제는 남한 쪽에서 민주당, 자유당 내부끼리 당파싸움이 심화되죠. 그리고 세월 지나서 한나라당이 정권 잡았습니다. 한나라당이 정권 잡고 난 뒤에는 이제 MB(명박)하고 근해하고 일마다 싸우네요.ㅎ

자꾸 내부 전쟁이 이뤄진다는 말은, 다윗 가문을 날마다 강해지고, 사울은 약해진다 하면, 누구나 백이면 백 다 욕을 합니다. ‘역시 다윗 가문은 훌륭해. 사울은 나쁜 놈들이고 다윗은 훌륭해.’이렇게 백이면 백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아닙니다. 다윗을 통해서 언약이라는 그 장치가 사울 자리에 없고 다윗의 자리에 있다 해서,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게 돼 있는 겁니다. 메시야가. 지금 저 혼자 웃고 있습니다. 좋아서.ㅎ

어떤 사람이 구원 받는다 하면 단박 하는 소리가‘저 사람은 훌륭했구나. 헌금 많이 했구나. 교회 충성했구나. 기도 많이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 집구석 한번 가 보세요. 예, 볼품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구원 받거든,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에서 택배 하나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무슨 택배냐 하면, 새 언약이라는 택배가 날아왔는데, 그 새 언약 내용을 뜯어보니까, 그 안에 예수님의 피와 살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너는 인간 자체가 바뀌었어. 이제부터 너는 죄만 져야 돼.’다른 사람도 죄만 짓지만, 특징이 유일하게‘죄만 지어야 돼.’ 라는 명령을 받은 가정이 바로 구원 받은 가정입니다. 그러면 ‘너는 죄만 져야 돼.’라는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오해하면, ‘아! 그 사람은 살인하고 간음하고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너는 죄만 져야 돼.’라고 주께서 인도하는 데 보니까, 남보다도 헌금하고 전도하고 봉사 잘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은 ‘아이고, 하나님께 택배오고 나니 인간 됐네.’ 하지만 ‘아니야 나는 전도하고 헌금하고 뭘 하면서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내가 내 힘으로 구원 받지 못하는 가를, 주께서 이런 일을 통해서 깨닫게 하셨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뿐이다.’

이거 빈말로 제가 지어낸 거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어요. 사도바울이 평생을 예수 믿고 난 뒤부터는 그야말로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다 버렸습니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 내가 남보다 더 뛰어나서 된 것이 아니다. 내가 남 보기에 자책할 건 없지만, 이로써 내가 의로움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그것을 생각하기에 자책할 건 없지만, 그러나 내가 자책할 수 없는 완벽한 인간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온 새 언약의 피와 살, 새 언약이 내 안에서 가동이 되니까, 기계가 정전도 안 되고 계속해서 가동이 되니까, 구원을 받는 겁니다.

제발 여러분이 주무실 때도 냉장고는 우~우 돌아가죠. 예? 다른 집은 모르고, 우리 집 냉장고는 우~~철컥, 우~~철컥 돌아가요. ㅎ 우리가 잘 때에도 주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심지어 인간이 잠자는 가운데서도 온갖 꿈, 지저분한 꿈은 다 끄집어냅니다. 지금도 저는 꿈 꿔요. 얼마 전에 꿈에는 얼마 전에 나갔던 분이 돌아와서 ’목사님, 복음 때문에 왔습니다.‘ 깨 보니 꿈 이예요.ㅎ 얼마나 목사가 교인 탐이 났으면 그런 꿈을 꾸겠습니까? ㅎㅎ 그래도 그거하고 내 구원 받는 거하고 아무 상관없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이제부터 어렵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 오늘 본문에서 여섯 명의 아내가 있고 여섯 명의 자식이 있는데, 이들은 한 마디로 묶을 수 있어요. 뭐냐, 변하는 인간이에요. 변해요. 나중에 나오면 이들이 싸움이 벌어집니다. 정말 더러운 싸움이 벌어집니다. 아버지의 자리가 장차 메시야 기계, 새 언약의 기계가 들어있는 자리인데, 자식들은 새 언약의 자리, 메시야가 온다는 기계의 자리를 빼먹고 그 자리를 뭐로 보느냐 하면, 선덕여왕, 미실이, 왕의 자리로 봐요. 권력의 자리로 보는 겁니다. 그 권력 다툼이 완전히 그 뒤 사무엘하 3장부터는 선덕여왕은 저리가라 예요. 3장 보면 벌써 그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하면, 변하지 않는 인간들은 백날 살아봐야 죄만 져요. 문제는 변하지 않는 자는 이미 죽은 자라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다윗은 누굴 하나 죽이게 돼요. 누굴 죽이냐 하면 우리야를 죽여요. 또 누굴 죽이게 되느냐 하면 다윗과 밧세바에게 태어난 자식을 죽이게 됩니다. 다윗이 제일 사랑했던 여자 이름은 여섯 명이 아니라 밧세바라는 남의 아내입니다. 타인의 아내, 어렵게 말하면 숨어있는, 절대적인 타인의 아내를 접촉한, 그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위에 있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새 언약 기계는 희생하는 의미에서 우리야 장군 안에서 작용했습니다.

멋도 모르고 다윗은 그 아내가 탐이 나서 뒤태를 보고 탐이 나서(앞태는 안보고), 자기 여자로 삼았어요. 임신을 했습니다. 알리바이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환경을 조작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두 사람 죽어나갔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야 장군이 그 남편으로부터 다윗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죽어야 했고,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임신해서 태어난 아기도 난지 얼마 안 되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돼서 성경은 말합니다. 죽은 자가 변하지 않는다는 그러한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성경 전체의 핵심을 대라면 이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죽은 자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이 되는 겁니다. 이미 죽었다는 말은 고정돼 버린 거예요. ‘누구야? 예수님 죽인 사람이 누구야?’라고 수천 년 세월이 지나도 계속해서 질타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여지가 장착돼 버렸어요.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까불락 대고 촐랑대고 잘난 체하고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오늘 다르고, 또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고, 사람 며느리 있을 때와 그 사람 배후에 있는 말과 달라지고 이렇습니다.

동창회 할 때, 주의해야 돼요. 동창회 할 때, 절대 화장실에 가면 안 됩니다.ㅎ ‘화장실 갔다 올게’하고 화장실 쪽으로 3미터만 걸어가도 나머지 애들이 그를 씹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갸, 선 백번 봤다 하는데, 지 마누라 꼬라지 보니까 백 번 본 꼬라지가 그 꼬라지가.’ 하면서 계속 씹어댑니다. 화장실에서 올 때까지 그럽니다. 그 다음 차례에 또 다른 사람이 화장실 가면 역시 씹어대고...ㅎ

사람이 화장실에 갔을 때 그 사람의 진실이 나타나죠.ㅎ 그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진가는 다 드러나는 법이예요. 주님은 죽은 자가 살아있다고 여기는 자를 구원하는 방식을 새 언약이라는 기계 안에다가 장착시켜 놔 버리셨어요. 이미 죽은 자가 살아있다고 장담하는(사실은 죽어있는데) 우리를 도리어 죽은 자에게서 나오는 힘으로서 살려내는 일을 하십니다. 그 일을 다윗의 자손 안에서 이뤄 지려면, 다윗을 비롯해서 다윗의 여섯 명의 마누라와 여섯 명의 자식은 이제는 왜 자기들끼리 붙어서는 구원이 왜 안 되느냐를 보여줘야 될 자기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인생에 우리도 한몫, 현재 2010년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십자가마을 글을 보니까, ‘2010년도 겨울 수련회를 요한복음 한다.’라는 광고가 올라오니까 누가 이런 글을 썼어요. 참 의미가 있어요.‘ 2010년이 SF 공상 영화에서 나오는 미래의 세월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벌써!!! ㅎ 2010년이 됐네.’2001년이 어제 적 같은데 2010년이 되니...연세 많은 우리들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지금 20대,30대 처녀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벌써 나이가...?? 벌써 2010년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 하나 꼭 아셔야 돼요. 2050, 2070년이 멀어 보이죠? 2010년대를 산 사람 같으면 2010년이 전혀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내가 모르는 새로운 죄를 창안해 내고 발명해 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옛날에 생각해서 옛날에 10년 전에 ‘내가 교회 10년 다니면 인간 돼야지‘ 생각했던 그때 그 인간 같으면, 우리는 인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에 뭘 몰랐느냐 하면, 2010년도가 되면, 내가 모르는 죄를 내가 짓는다는 사실을 내가 자신을 제대로 몰랐어요. 그저 10년 전에는 우리는 하나님만 믿죠.’나 믿나?‘ ’믿습니다.‘ ’믿지‘ ’예, 믿습니다.‘ ’그럼 좋다.‘ ’이제부터 내가 너를 다루리라.‘ 2010년도가 되면 니가 죄 짓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리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돼요. 내가 내년 1월 달에 모르는, 지금은 모르지만 내년 1월 달에야 알 수 있는 죄가 내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줘야 그래야 2010년도에도 새 언약이라는 기계가 장착이 되어 작동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주여, 내년에는 바르게 살게요.’이렇게 나오면 안 돼요. ‘내년에는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습니다.’이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자기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겁니다.

쉽게 가겠습니다. 악에서 선으로 나가는 게 아닙니다. 악에서 악으로 나가는 인생입니다. 바로 다윗 가문과 사울 가문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선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사울 가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보자는 겁니다. 그게 3장입니다. 왜 사울 가문이 약해져 갔느냐, 7~8절 보면 거기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나옵니다. 참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미안스럽죠. 제가 미안할 건 아니지만, 사무엘하에 보면 사람 이름이 많이 나와서 안 그래도 오후가 되니 잠이 와 껌벅껌벅 거리는데, 하여튼 사울 집안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있대요. 그리고 아브넬은 그 최고 군대장관입니다. 근대 둘 사이에 싸워서 삐거덕 거리고 있어요.

왜 싸웠느냐 하면, 그 최고 권력자가 뭐라 그러냐 하면, 아브넬이 아버지 사울의 첩과 간통을 한 것에 대해서 이스보셋이 ‘ 어이 최고 신하야, ’예 임금님, ‘왜, 말도 안 듣노. ’꼽습니까?.‘아니다. ’니 왜 아버지 첩을 건드렸느냐?‘ ’건드리면 안 됩니까? ‘ 니 세게 나오네, ’‘세게 나올만 하니 세게 나왔죠.’그래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왕도 아니고 누가 왕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겁니다. 그 뒤에 아브넬이 다윗 쪽으로 귀순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있을 겁니다.’저 사울의 첩 건드렸다고 삐진 이스보셋, 삐돌이하고 안 놀랍니다. 이제부터 다윗하고 살래요.‘ 하고 손들고 빈손으로 귀순을 해왔습니다.

오니까 다윗이 ’좋다, 반갑다 친구야, 오긴 오는데 내 마누라(사울의 딸)를 데리고 오너라.‘고 해서 데리고 옵니다. 미갈이란 여자는 이미 남편이 있어요. 그 남편 이름이 15절에 발디엘이란 남편이 나옵니다. 이 남편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불쌍한 남편 이예요. 왜냐하면, 15절에 보면,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 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아브넬이 ’돌아갓,에이,에이.‘ 하니까 울면서 돌아갔다고 돼 있어요.ㅎ 이 이야기를 성경에 왜 합니까? 가장 불쌍한 남자죠. 이 명박씨가 여러분의 부인보고 ’이제부터 청와대에서 산다. 그러면 남편들이 ‘여보 ’하면 청와대 보좌관이 ‘어이, 갓, 가.’그런 식이다 말이죠.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느냐 하면, 지금 모든 게 다윗 중심으로 자석이 쇠를 끌듯이 뭔가 하나님께서 다윗 집에 대해서 일을 벌여요. 새 언약의 장치가 돌아가는, 저주가 축복으로 변하고, 죄가 용서가 되는 그런 기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주변에 여러 가지 사태들을 배치돼 있는 것을 끌어당기는 거예요. 끌어당길 때 사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랑 애정 그리고 그러한 아픔 그런 것은 전부 다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거예요. 사적인 모든 감정들은 문제가 안 된다는 거예요.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관계가 사울의 첩을 통간한 그것도 다윗에게 돌아온다는 사실 앞에 그건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제가 얼마나 무서운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목사님, 윤리 도덕?? 윤리 도덕은 그 새 언약의 기계 앞에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거예요. 문제없어! 문제없어! 문제없어! 아무 문제가 안돼요.ㅎ 그런데 나중에 문제는, 문제를 삼는 자가 나타나는데, 누구냐?? 바로 망하게 될 자들이 문제를 삼아요. 사적인 감정을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용서 앞에 여전히 사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 이예요. 그 사람이 문제가 있는 사람 이예요. 그 뒤에 나옵니다.

아브넬이 귀순했죠. 귀순했다는 소식을 듣고, 누가 죽여 버리느냐 하면, 그 귀순한 사람을 요압이라는 사람이 죽여 버립니다. “이에 다윗에게서 나와서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 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뭐든 종용히 말할 때는 위험해요)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복수 열전이죠. 그리고 난 뒤에 귀순해서 좋았던 사람을 죽여 버렸어요.

누가? 내부의 적이. 그러니까 다윗의 같은 편에 다윗의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에 대해서 다윗은 울면서 통곡하면서 뭐라고 저주하느냐 하면, 29절에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찌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찌로다 ”성경에 문둥병자를 한센 병이라 바꾸라 하는데, 쓸데없이 새 언약 앞에 아무 문제 되지 않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에이 너네 집안 버려먹어라. 버려먹은 자식들만 줄줄이 나거라.'

다윗이 어떤 집안을 저주합니다. 대대로 이 집안은 하나님의 새 언약이 가동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사라지고 떠나가기를 하나님의 사죄하심과 용서하심이 사라지는 그런 가정이 되라 이 나쁜 놈아!!‘ 라고 요압에게 저주하죠. 왜 저주가 합당하냐 하면, 다윗이 이야기 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이야기 했다는 말은, 여기서는 무엇이 중심이냐, 안에 ’메시야‘가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메시야 적인, 새 언약적인 용서를 생각하지 못하고 사적인 것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판단하는 사람은 그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다윗은 이런 저주를 하면서도 장차 왜 자기 저주가 합당한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그렇게 다윗이 본인이 또 사람이 죄 지어놓고 안 들키면 죄가 없는 게 되잖아요? 천하의 다윗은 천하에 죄 져놓고 온 천하에 두고두고 하늘나라까지 다 죄가 퍼졌어요.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래 나 간음했다. 살인했다. 구원받았다. 어쩔래?? ㅎ‘ 하고 만천하에 ’그래도 메시야는 내 편이었다. 메시야는 내 속에 들어왔다.‘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건지시는 방법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면서 뭐를 생각하느냐 하면, 자꾸‘내가 행동을 똑바로 해야 복 받지, 바르게 해야 복 받아. 나쁜 사람은 저주 받는다.’ 고 하는데, 그 인간 자체가 바꿔지기를 바랍니다. 뭘 해도 죄고 뭘 해도 죄기 때문에 뭘 해도 복 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뭘 해도 죄라고 안 그 자체가 우리가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지, 구원 받지 않으면 절대로 그런 생각이 안 듭니다. 여러분!! 맘대로 사시고 여러분의 행위가 그 모든 것이 어째서 그게 죄가 되는지를 흐뭇한 입장에서 예수님의 피 입장에서 그 용서받은 것을 다시 한 번 추려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 인간 자체 사고방식 자체가 이제는 바뀌어지기를 원합니다. 생노병사 내 인생만의 회로를 고집할 게 아니라 아예 이 회로 자체가 주께서 익히 아는 죄 지은 회로인 것을 이미 감안해서 주께서 피를 흘려주었다는 이 용서를, 저희가 한시도 놓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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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1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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