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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강의091029a자유게시판-

대전강의091029a

이름 : 이미아(IP:115.41.195.243)

이것은 죄라고 생각했던 것은 죄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더 높이기 위해서 나는 이러이러한 것이 죄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의로운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아는 죄. 나는 반성을 반성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고상해 진다는 것에서 오는 자기 의로움. 그 의로움을 위해서 생각했던 그 죄가 나를 더욱 이쁘게 하고 착하게 하고 나를 훌륭하게 만드는 그 죄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이 죄의 개념이 나하고 상대 안하고 예수님하고...예수님 아시죠?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그 죄. 그 전까지는 내가 생각한 내가 죄를 알아야 죄를 끊고 선 쪽으로 나가면 나는 선한 사람이 되거든요. 나를 선하게 만들수 있는 죄들...여기서는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저쪽 철학이나 기존에서는 합리화라고 합니다.

내가 만약에 돈을 벌었다면 이 돈을 벌게 했는게 하나님의 은혜인데 왜 돈을 벌게 했는가? 이 돈 가지고 하나님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돈을 벌게 했다 라고 하거든요. 보통 그렇게 하잖아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십일조 내고. 그게 바로 합리화 라고 하는데, 그러면 당신의 돈 번 과정을 다 조사해봤어? 당신이 돈 버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것을 다 끄집어 내볼까? 그러면 할 말이 없죠. 얽히고 설킨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으니까. 장사할 때 완벽하게 거짓말 안했습니까? 이게 다 나오면 곤란하단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전에 어떻게 했냐면 어쨌든 나에게 먹고 살도록 해 주신 것은 그 돈 가지고 하나님께 교회 헌금내서 복음 전하고 영광 돌리고 그리고 내 자식들 내가 살아 있어야 하나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전세계 선교하는 그 어쨌든 이것은 착한 것이다 라고 우길 때 그걸 제가 아까 이야기한 합리화라고 하죠.

앞에 하나 붙인다면 나의 존재의 합리화 입니다. 나는 남은 죽어도 나는 이 세상에 살아 남아야 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왜? 나는 귀하니까. 남의 자식이 대학에 떨어져도 아무 감정이 없어요. 그런데 내 자식이 대학에 두 번 떨어지면 나는 참을 수가 없어요. 똑같은 인간인데, 똑같은 열 아홉 살 먹은 아들인데 한쪽은 대학에 합격하고 한쪽은 대학에 떨어졌을 때 남의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는 오히려 기쁘죠. 왜 그 자식이 떨어져야 내 자식이 합격하니까. 오히려 즐거운데 내 자식이 떨어지면 기분 나쁘고 더욱 더 기분 나쁜 것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앞 동에 있는, 내가 미워하는 그 집 자식이 내 아들 떨어진 마지막 자리를 차지할 때 분노가 일어나는데 그 때 우리는 물어야 하죠. 왜??? 나는 화가 나느냐? 조사를 해보니까 내 자식이니까. 앞에 뭐가 붙어요? 바로 나니까.

결국 지금까지 죄라는 것은 누구 중심이냐면 아무리 하나님 예수님 부르짖어도 나 중심으로 살아 온 것입니다. 곱사를 갖고 있었던 분들이 병이 나았다고 하지만 그 곱사병을 갖은 자식의 그 부모 입장에서는 하나님 앞에 대놓고 원망을 할 것입니다. 곱사병 생겨서 곱사병을 낫게 하지 마시고 아예 처음부터 없게 할 수는 없었습니까? 병 주고 약 주고 하지 마시고 아예 남들처럼 처음부터 건강하게 해주셨으면 그 나이에 더 건강했으면 전 세계에 훌륭한 음악가가 될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나는 그것을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 되는 거예요.

그것도 역시 뭐냐면 왜 하필이면, why me? 왜 하필이면 나를? 그러니까 교회라는 것이 이런 사람들의 어떤 한풀이를 은닉한 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반대 급부로 뭔가 챙기는 것이 온다는 그러한 노림수를 가지고 모이게 되니까 누가 자꾸 빠지느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자기의 똘마니처럼, 이용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뭘 붙이느냐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로 대리하니까 이 말은 뭐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는 다는 말은 반대로 나는 불가능한 것이 있는 존재죠. 나는 불가능하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 아닙니까? 나는 못하는데 주께서는 해주세요 라는 의미란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지금 내 자신이 자신을 보기에 미흡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미흡하다는 것은 나는 이런이런 것이 내 맘에 영 들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이만큼인데 내가 지금 한가하지 않은 시간에 교회에 새벽에 와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레벨이 이정도인데 이만큼 부족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주여 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내가 기도한 애쓴만큼 그것을 보상으로 채워주시면 저는 하나님의 살아 있음을 체험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죠. 그런데 우리 주님 보시기에는 어떻게 보냐면은 너는 너 자신을 미흡하다고 보는데 내가 보기에는 너에게 현재 있는 것도 너 죄진거에 비하면 오히려 은헤가 넘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보신단 말이죠.

하루 세 끼 먹나? 먹습니다. 애는 잘 크고? 잘 큽니다. 그러면 너 주변을 한번 보라 하루 세 끼 못먹는 사람도 있고. 아파트는 있고? 있습니다. 원룸에 사는 사람도 지금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너가 어디까지 만족해야, 두 번 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을 정도로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안 찾겠습니다." 라는 레벨이 되야 되느냐 그리고 너는 그정도 되야 될 가치가 있는 존재냐 라고 물으시면서 예수님을 들이대죠. 예수님은 사람이 높아질려는 자리 보다도 우리가 제일 가기 싫어하는 우리가 소멸하는 죽음의 자리에 갔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죠.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9절에 보면 하나님이시나 그 모든 것을 집어 던져 버리시고 사람들의 종이 되셔서 사람들이 되기 싫어하는 종으로 사셨다가 어느 정도까지 희생하셨냐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거거든요. 사람들이 다 기피하는 죽기까지 복종했다면 그것이 사람을 위함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위함이냐를 생각해 볼 때 전능하신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죠. 전능하심이란 내 미흡한 것을 보충하는 전능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전능하심입니다. 그러면 주기도문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느냐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쭉 나오다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를 하게 되요.

우리가 해야 될 기도가 뭐냐하면 주기도문이 대표적인 기도라고 교회에서 하잖습니까? 그러면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진다면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는 그 코스, 그 절차를 보여준 분이 누구냐하면 예수님이시다 이말이죠. 예수님이 표준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는 아는 것이 비록 내가 원하는 내 뜻이 아닐지라도 누구 뜻이 되느냐면 아버지의 뜻이 내게 임한 것이 되잖아요. 아버지의 뜻이 임함이 된다면 그 다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이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그 다음에 나온 말씀이 자기 목숨을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것이다 이말이죠.

그러면 교회 앞에다 정문 기둥에 붙여 보자는 말입니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시기를 바랍니다" 라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는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왜 그런 교회 표어를 걸지 않냐면은 이미 교회 문을 들어 왔을 때 부터 이미 기도하고 자기가 주님앞에 어떤 선한 것을 내보이면서 뭔가 노리고 들어 온다 이말이죠. 헌금을 한다든지 전도를 한다든지 바쁜 중에도 예배에 참석한다든지.. 줄 것 주고 받을 것 챙기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렇게 하는 중심센터가 뭐냐하면 어디까지나 옆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앞동의 내가 미워하는 불교신자를 위한 것이 "나." 기도하는 당사자인 "나."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 것을 더 가치있게 높이기 위해서 빌었다 이말이죠. 아버지의 뜻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장26절).

온 천하 얻는 것이 자기 목숨 얻는 것하고 동일하다고 어릴 때 부터 이렇게 배웠습니다. 온 천하를 챙기는 것이 내 목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온 천하를 얻고도", 온 천하를 얻고자 하는 그것이 관심사가 이미 비뚤어진대 가 있어 사람들이 찾는 넓은 길로 넓은 길 끝은 아시다시피 멸망의 길이고 좁은 길 끝은 영생의 길인데 우리가 어떻게 확인하느냐면 찾는 사람이 많을 경우에 그것은 거의 백 퍼센트 넓은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 우리 권사님께서 "제가 큰 교회 다녔었는데 제가 한 20..."그러시길래 "20명 다니는 큰 교회 다녔습니다." 라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것은 복음을 아는 사람끼리의 농담입니다만 그런데 "한 20년 다녔습니다." 였습니다. 20명 다니는 큰 교회 같으면 "아하 그렇다면 복음을 진짜 전하셨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20명이 아니고 20년 다닌 진짜 큰 교회 였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원하는 것을 제공했으면 많은 사람이 찾겠습니까? 그것은 함께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경우를 양산할 수가 있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표준은 예수님께서 하셨는데, 예수님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인간은 자기 목숨을 미워할 수 없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은 요한복음 12장 2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성경에 다 나오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에서 잘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요 철야에서 잘 이야기 하지 않는 구절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 이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은 중요한 복음은 다 빠지거든요. 전능하심의 의미가 뭐냐하면은 아무도 인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은 우리는 절대로 좁은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왜? 외로우니까. 사도 바울.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못 갑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도 못 갑니다. 모세도 못 갑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이 갔던 영생의 길, 믿음의 길은 본인의 의지나 결단력으로 그 쪽을 간 것이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충돌 되면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가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전능하심이 작용해서 본의 아니게 자기가 낯설기 짝이 없는 예상치도 못한 길을 가다 보니까 빠져 나왔는데 어디로 빠져 나왔느냐면 천국으로 빠져 나와 버렸어요. 와 보니까 천국이예요. 뒤돌아 보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해서 천국을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오게 되면 면류관을 벗어서 반납한다고 하죠.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면류관을 벗어서 도로 주님께 반납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계4:10).

10절.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그럴 때 내가 면류관을 썼는데 반납하는 이 자유의지 행위가 나를 더욱 더 겸손한 인간으로 나를 재해석해 줄까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그러하기 때문에 제가 써서는 안되기 때문에 후다닥 벗어 버려서 반납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까? "아 이런 행위를 하면 내 행위가 또 값어치가 올라가는구나" 라는 통밥을 굴려 가지고 "어때요? 제가 어느 정도 겸손하냐면 제 면류관도 반납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자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자기는 평생 구원 받은 것이 주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을 알기 때문에 벗었겠습니까? 평생 주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을 땡겨서 하잖은 말입니다. 성경에 그게 있다는 말은 그것을 천국가서 하기 이전에 이미 교회에서 면류관을 반납하는 행위를 하잖은 말입니다.

그 반납하는 행위를 시편에서는 찬양이라고 하고 감사라하고 에베소서 5장에서는 찬미라고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5:19). 시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하고 찬미하고 감사드리자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될려면 이것은 백 퍼센트 필연적으로 자기를 뭘로 보느냐면 자기는 "내 것만 챙기는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가치와 내 편안것만 내가 이렇게 믿음 좋다는 것만 남한테 과시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 온 나를 내 뜻은 이것이었는데 웬 은혜인지 웬 사랑인지 이것을 꺽어 버리고 나 자신마저 하나님의 공로,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서 내 뜻을 꺽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강제적으로 조치하신 그 은혜에 대해서 찬미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나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고린도후서 4장 7절 한 번 찾아 봅시다.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능력이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능력을 우리가 소유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사적인 능력으로 발휘해서도 안 되고 은사란 이름으로 내 실력을 과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는, 늘 그릇이 비어진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도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가 병든 자를 낫게 했죠. 사도 행전에 나오거든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사도 바울이 손수건을 공장에서 생산해 가지고 여러 장을 뿌렸습니까? 그게 아니죠. 그 손수건으로 그 다음에 하면 또 병이 낫습니까? 그것도 아니예요. 이것은 일회성을 연발적으로 사용한다면 이미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소지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오인하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이게 사도행전에 보면 시몬이라는 사람이 성령을 통해서 병이 나으니까 자기는 그 능력을 소지하기 위해서 돈 주고 평생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마귀야 라고 이야기 했죠. 사도행전8장, 19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눈이 멀었어요. 평생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면은 여기 고린도후서 4장 8절에 보면 우리에게 심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어떻게 아느냐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그 다음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그러면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할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주어져야 됩니까? 이것은 쉬운 문제입니다. 우리 권사님 말씀에 보세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을려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야 되죠? 답답한 일을 당하여야 하지요. 첫 번째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야 하고 두 번째 답답한 일을 내 선에서 내 명대로 해결되야 합니까? 안 되야 합니까? 해결되면 안 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알죠. 그러면 해결을 어떻게 하느냐? 답답한 일을 당하는 이유가 있어요.

사람이 자기에게 기댈 때, 자기가 자기에게 기대할 때는 항상 답답해져요. 그런데 이것이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내 몸은 내 몸이 아니고 주의 몸이고 내 인생은 주님의 인생이지 볼 때는 갑자기 답답한 일이 아니라 이 답답한 일은 내가 그동안 주님 주시는 은혜를 잊어 버리고 시선을 놓쳐 버렸을 때 다시 한 번 주님 주시는 풍성하신 은혜를 보라고 답답한 일로 옆구리를 쑤셔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려고 할 때 뭔가 푹 쑤셔 오면서 "주여 제 은혜가 족합니다. 하지만 또 욕심을 내었군요. 제가 몰랐던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것은 주의 은헤입니다 라고 할 때 답답한 것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발견하죠. 교회와서 하나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왜 다른 사람에게는 기적 베푸는데 왜 나에게는 내 기도는 무슨 저질이어서 왜 안 줍니까? 다른 사람의 헌금은 은혜가 되던데 복을 받던데 내 헌금은 십일조해도 왜 내 뜻대로 안 됩니까? 이런 것이 나온다는 것이 이미 관심사가 십자가의 복음에 가 있지 않고 십자가 주께서 낮아 지심에 가 있지 않고 자기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려는데서 오는 쾌감, 우열감, 인생의 사는 보람. 교만한 거죠. 구약에 의하면 바벨론처럼. 남을 억누르는데서 오는 즐거움. 남을 때리는데서 오는 쾌감. 이런 것을 맛보면서 아주 즐겁게 인생을 살려면 타인을 피해자로 만드는 그러한 정신적인 욕구의 발산일 수가 있습니다.

여기 9절에 보면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이것이 될려면 뭘 받아야 됩니까? 이제 쉽죠. 핍박을 받아야 되죠. 무엇의 이름으로? 복음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아야죠.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아니하며 망하지 아니하고 "너 망해 너 저주 받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심지어 누구한테? 목사한테도 들어야 합니다. "너가 뒤에서 목사 뒷 담화했지? 봐라 부흥사 이야기 하는 것 봤지 목사 험담해서 저주받은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온 교회 다 봤죠. 그럴 때 교인들은 저주 받으면서 겁을 내죠. 저주 받으면서 겁을 낸다는 것은 이 사람은 성령이 없다는 뜻이예요. 성령의 효과를 부인하는 자 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너를 저주에서 해방하는 것이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저주 받을 짓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하면 저주 받는다는 소리를 한다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해봐야 해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해봄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살아가는 것이 주의 은혜인 줄 안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덕분인 것을 효과인 것을 다시 한 번 십자가가 얼마나 고마운 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하는 것을 해보자 이 말입니다.

그래서 표어는 간단해요. "저주 받자" 목사 험담하면 저주 받으니까 "목사 험담해서 저주 받자" 우리 교회 설교 그렇게 합니다. 그래야 뭔가 난관을 정면으로 부딪쳐야지 피해 버리면 마귀가 계속 따라와요. 십일조 안해서 저주 받았습니다. 당신이 이번 주일에 교회 한 번 빠져서 저주 받았습니다. 가사일이 안되고 얘가 공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선교 헌금 두 번 빠져서, 성경 세 장 읽어야 하는데 한 장 밖에 안 읽어서, 그렇고 기도를 두 번 해야 하는데 한 번 밖에 안해서 그렇고 계속해서 본인이 본인에게 저주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책망하고 재판걸고 재판에 자기를 피고로 세우고 그래서 어떤 십자가 복음이 너를 율법에서 해방했다고 하는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했다는데 전혀 자유를 못느끼고 오히려 저주를 불러요. 꼼짝 달삭하지 못하게 갈수록 다음 저주가, 더 큰 저주가 기다린다고. 여기 10절에 보면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시체들고 간다 이말이죠. 엘리사 선지자가 죽으니까 엘리사 시체를 툭 던져 버린 그곳에 있던 시체가 살아 났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그 당시의 예루살렘 근처에 무덤이 열리면서 그 주위에 있던 시체가 살아났다는 것 들어 보셨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의미가 무엇이냐면 "나 죽는다 너 살아라" 이 말이거든요. "나 죽는 것은 너 살리기 위해서이다." "너가 죽는 것은 너 죄 때문에 죽는 것이고 내가 죽는 것은 너의 죄를 없애므로 말미암아 죽을 너희도 살게 하심이다" 하는 그런 의미라고 십자가 죽으니까 몇 몇 죽은 사람이 돌아 다닌 거예요. 나사로가 예수를 믿으니까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되어도 나사로를 예수님이 불러 내니까 살아 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은 우리 힘으로 어떻게 우리를 영생을 얻는, 구원을 얻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우리 힘으로 못하는 진짜 전능하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죄에서 못 벗어 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고 저주를 의식합니다. 저주와 죽음과 죄를 의식하는데 문제는 이 죄책. 이 자체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요. 어떻게 죄책과 저주성과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 세 가지를 몽땅 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마귀죠. 몽땅 다 해방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에게는 없거든요.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이 네가지를 한꺼번에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종근당에서 나온 구충제가 모든 것을 다 박멸하듯이 예수님의 피가 몽땅 다 한다 이말이죠.

그러면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의 피를 믿어주면 우리가 저주와 죽음과 죄에서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벗어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목사님 믿습니다. 목사님 그 말 믿습니다." 하거든요. 이것 거짓말입니다. 이게 왜 거짓말이냐면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죄와 저주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우리가 해방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가 이 말을 너의 자유의지로 믿어주면 너 것이 된다는 말이 아니고 이미 통과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병무청에서 20살 되는 청년들에게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에 논산에 입대하라 라는 말을 사람들이 뭘로 보느냐면 입대 할랍니까? 안 할랍니까? 물어 보는 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입대 안해" 그러면 입대 안 해도 되고 입대 해도 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죠.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서류 조사해 보니까 김 아무개 청년 10월 31일 날 입대. 끝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내가 몰랐던 내 신분을 외부에서 새삼 확인시켜 주고 통보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는 너가 창세 전 부터 너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저주와 죽음과 죄와 마귀로 부터 벗어나야 될 그런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 시점에 통보해 주는 것입니다. 믿으면 구원 받는 문제가 아닙니다. 믿는다는 자기 결단을 발휘해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고 통보해 주는 거예요. 어이 10월 31일부로 너는 천국 사람이다. 통보해 주는 것이지 믿으면 구원해 줄께 이것이 아니란 말이죠. 만약 그렇게 되면 아침에 열 시에 믿는다 사람의 마음은 열 한시 되면 또 달라져요. 열 두시 되면 또 달라져요. 다음 날 되면 또 달라지고 나이 칠십넘어서 치매 걸리면 또 달라져요. 치매 걸리기 전에 어떤 종로는 예수 찬양 혼자 전도 다 하다가 치매 걸리면 예수가 누구신지 이렇게 나옵니다. 한 두명이 아닙니다. 유명한 목사 한경직 목사도 치매 걸려서 내 앞에서 예수 소리 하지마 자기의 의식을 이것은 철학의 문제인데 인간이 자아라는 인간이 의식을 지배할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이 예수의 복음을 받아 들일 때 그 시점에서 믿겠습니다 결단하고 손들고 앞에 나와서 학습 받고 세례 받고 성찬식하고 이래서 구원받지 않습니다.

그 시점에. 예수님께서 너 아들이 병이 나았다는 말은 그 전 부터 그 시점에 병이 낫도록 이미 작정되어 있었던 거예요.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은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권한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만들어질 때 부터. 그래서 사람들은 죄 짓고 난 뒤에는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상대할려고 하죠. 하나님 저 어떤 것을 믿어 줄까요? 예 예 말씀 하세요 제가 믿어 줄께. 아주 건방을 떨면서 이렇게 나오죠. 하지만 나중에 진짜 성령이 오게 되면 아 주님께서 믿도록 하셨구나 그래서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믿음은 행함이 아니고 하나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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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