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5장 – 40장 주석자유게시판창세기

창세기 35장 – 40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22.99.120.158)

창세기 35장 – 40장

35: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시키므로서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길을 터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거룩의 사건이 이스라엘 전체의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안식일에 그냥 노동만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노동하는 날까지 철저하게 이 안식일에 매이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시간을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축으로 다시 모아지도록 순환시키신다. 즉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시간의 축이 되는 그 거룩에 철저하게 종속되게 살라는 말씀이다.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안식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7일의 순환 밖으로 이스라엘은 벗어나게 살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이 임의대로 자기 시간대를 따로 가질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즉 인간이 자신에게 의미가 주어지도록 사건과 사건들을 해석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시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에 묶이게 되었다는 말은 안식일에서 내뿜는 거룩한 사건에 무관한 사건이 이 세상에서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거룩한 사건으로 집약되는 것으로 비로소 의미가 발생되는 식으로 짜여 있고 그렇게 세상 피조물은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안식일 한가운데를 장식하는 그 거룩한 분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그 거룩한 분을 중심으로 그동안 세상 전부가 존재하고 활동해왔고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약속도 이 거룩한 분을 겨냥한 예언이다 는 것이다.

구약 때는 레위지파에 속한 자들이 제사법대로 수행하고 다른 백성들은 거기에 참여할 뿐이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그 레위지파들이 감히 성취하지 못한 제사법을 홀로 이루신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 나라 보좌까지 이동시켜 전 시간대로 다 거룩에로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즉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이미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완성하셔서 하늘 나라 보좌에 앉으셨다. 이 때부터 이 세상은 전부 ‘안식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예수님이 발생시키는 믿음의 사건 안에서만 알려진다. 골로새서 2:14-17과 갈라디아서 4:8-11에 보면, 안식일과 십일조 및 각가지 제사법이나 십계명조차 그것을 지켜내신 분이 따로 오시고, 그 분에 의해서 이미 완성했기에 이제 그 문자에 속한 법은 십자가 피 앞에서 과감하게 찢어야 한다. 헌금 한 푼 안 내어도 이미 말라기에 나오는 십일조를 다 이루어서 창고에 넘치도록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 안식일 지키기도 비록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니더라도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 안에서 예수님의 용서와 자비를 느끼고 감사한다는 그것이 곧 화요일에 지키는 안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안식일이란 거룩에 철저하게 종속되게 하는 날이다.

35:20-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헌물을 요청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하나님과 임대차 계약 상태에 놓여 있다. 즉 그들은 땅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품꾼들이다. 약속의 땅은 결코 자기 소유의 땅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 하나님 땅을 경작하므로서 생존이 부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단지 배가 고프고, 돈이 궁해서 그들에게 헌물이나 헌금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그 헌물을 한데 모아서 뭔가 정기적인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그 작업이란 다름아닌 제사 행위의 반복이다. 즉 약속의 땅에서의 축복은 인간의 노동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기적인 제사가 그 땅에서 복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랑의 행위에 통합되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지식과 멋진 설교를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즉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나만의 것’. ‘나의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다. 이처럼 자발적이고 부드럽게 사랑으로 하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죄가 된다. 복음에 대한 훼방죄가 된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이라고는 따로 없다. 집에 있으나 집 밖에 있으나 주님의 것이 곧 우리의 것이다.

35:29-35

하나님이 원하는 바를 ‘즐거이’ 드리는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긍휼을 아는 자들이 만이 갖는 즐거움이다. 즉 ‘아무 열심도 내지 않는 식으로 나 스스로를 구원시키겠다’가 아니라 ‘나는 즐거이 이동 중이다’라는 것을 즐거이 표현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즐거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마련인데, 직접 법궤 제작에 나서는 이들이나 그들에게 법궤를 제작하도록 즐거이 바친 이들이 기대하면서 즐거운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부탁한 그 일이 어떤 결실로 맺어지는데 그 맺어진 결실이 다름이 아니라, 그 결실로 인해 자신들이 긍휼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입증된다는 것이다.

그 분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거룩한 일로 인하여 주의 백성들은 자기 열심히 아니라 긍휼을 입는 사람으로 간택되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긍휼을 입도록 하신 그 분을 증거하는데 주저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일이란 오로지 주님만 의롭고 거룩하다는 점을 지시하는 방향으로 실시된다.

법궤를 만드는 공작기술은 자칫하면 성령을 받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흉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감히 거룩을 생산해내는 법궤 제작을 맡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거룩은 인간의 열심이나 노동의 가치를 일절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관심 두지 말고 오로지 거룩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긍휼에만 주목해야 한다.

39:42-43

사람들로부터 성막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을 헌물받고 그 다음으로 성막 자체를 건립하고, 그 다음으로 성막에 들어가는 기구들을 제작하고 그 다음으로 성막 뜰의 기구들을 제작하고 그 다음으로 제사장의 의복을 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런 것들을 만드는 것은 이 지상에서 거룩을 생산하기 위함이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그 거룩의 취지에 부합되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증거가 곧 성막의 존재이다. 이 거룩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뜻을 접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거룩이라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가 엘리야 시절에도 등장한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어떤 과부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다 소비해서 최후를 맞이하려고 했다. 그 시절에는 온 나라에 가뭄이 극심했는데 평소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과부 입장에서는 이 가뭄이 더욱더 혹독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선지자가 그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선지자는 과부의 다급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공궤하라고 요청한다.

그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선지자가 먹을 떡을 만드는데 다 쏟아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없다. 즉 과부의 입장은 더 이상 생명이 부지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강탈당한 셈이 된다. 마치 창조가 있기 전의 무(없음)로 되돌아가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부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떡을 먹은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는 날까지 너의 밀가루통과 기름통에 밀과 기름이 없어지지 않고 채워질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이 과부의 가족의 입장에서는 밀가루와 기름이 자신을 살린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로 인하여 자신이 산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관계가 수립된 현장이다.

하나님의 거룩의 효과는, 사람이 사람을 알아서 관리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날 때부터 거룩이 없기에 ‘거룩’에 관한 것은 천리만리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즉 그 과부의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약속이 그 능력을 채우게 하신다. 이제 그 과부는 전에 했던 대로 자기 식으로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가를 점검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된 관계이다.

40:1-4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이 내리시는 그 성막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동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행을 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로마서 3장을 보면 하나님이 의로우시려면, 오직 하나님만이 의로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의로우시는 요건 중의 하나가 바로 계속해서 성도에서 죄가 발산되어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럴 경우에만, ‘죄인을 화목제물을 근거로 해서 의롭다고 해주시는 그 하나님의 행위만’이 참된 의로움이 되는 것이다.

이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요한복음 17:14-19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의도적으로 그냥 악한 세계에 들여놓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거룩한 자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느냐 하면 바로 그 제자들과 예수님께서 ‘하나’가 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7:22-23에 보면, 이미 성도는 자기 소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대상으로 하늘나라에 등기 이전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곧 고린도전서 3:16에 나오는 ‘성전’의 개념이다. 즉 이미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버린 입장에 있는 성도는, 그 안에 예수님의 화목제물을 근거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숨어있는 죄가 나와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막의 영광으로 성도와 동행하시는 이유다.

40:34-38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정말 인도하시는 성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는 본문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그 원리가 그대로 이어지면 성전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성전이 아닌 것이다.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생각해야 한다. 즉 구약 때 하나님께서 어떤 원리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는지, 둘째로는, 예수님에게 있어 제자들은 어떤 식으로 인도함으로 받았는지, 셋째는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의 육신 안에서 어떤 식으로 인도함을 받는지를 알아야 한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전 지역에 넓혀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좁혀서 주어진다. 그곳은 바로 제사가 행해져야 될 언약궤가 있는 지점이다. 전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체험했다. 그 때 심판이란 다른 민족에게는 낯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장차 전 인류에게 벌어질 심판을 미리 경험한 것이 된다.

장차 최후의 심판은 다름아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 구원받는 방식이다. 그 ‘주의 이름’이 출애굽 때는 ‘어린 양의 죽음’ 형식으로 미리 나타난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장차 터져버릴 심판이 미리 앞당겨서 현재 속에 섞여 들어온 것이다. 원래 사람들의 모든 행위는 그 행위로 인하여 항상 현재라는 느낌만 주어질 뿐이다. 이것은 미래는 항상 앞으로 연기되고 미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터질 일을 미리 체험할 수 없다.

그런데 유독 이스라엘 백성들만큼은 미래가 현재 속에서 앞당겨 체험해 버린다. 이로서 그들은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움직일 조짐을 보이면 보따리를 싸야 한다. 그리고 그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만 한다. 하나님은 이들을 어디로 어디까지 인도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이름의 실체가 다 드러나는 지점까지 인도하신다. 그 때가 되면 어린 양이 더 이상 양이 아니라 곧 어떤 인물이 어린 양이 됨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곧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데 그곳은 이 하나님의 이름되시는 분이 이방민족을 강한 거룩한 힘으로 척결하고 장악하는가가 명백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그 땅에서도 하나님의 이름되시는 분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추방되고 만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들은 또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이름되시는 예수님께서 일부러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으로부터 배척 받고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 즉 ‘처소’에 들어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제 예수님이 계신 ‘아들의 나라’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 물론 주님이 친히 동행하는 자에게만 해당된다.

이 처소를 요한복음 14장에서 ‘성령’이라고 한다. 성령 안에서 성도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성령께서 미리 들어온 사람을 가지고 ‘성도’라고 한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들을 하나님은 ‘성전’이라고 불러주신다.

이것은 ‘성전 관리’가 결코 우리 인간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관리하신다. 왜냐하면 자신이 알아서 거하시려고 오신 성전이기 때문에 그렇다. 구약 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해서 어린 양의 피로 인도해주시는 식으로 오늘날에도 주님께서 성도의 육적 요소로 인해 유발되는 모든 저주를 성전 안에서 ‘어린 양’의 작용으로 막아내시는 일을 하시면서 인도하신다.

이 인도와 동행의 마지막 종착지점은 역시 ‘어린 양’의 실체가 인물로 영광스럽게 드러나는 그 세계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도함을 받을 때, 어떤 양상이 될까? 그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동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제자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적이었고, 예수님은 오로지 성령으로만 인도함을 받은 상태에서 동행하고 계셨다.

그러다보니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빈번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한가지 예로서 요한복음 21:22-23에 보면,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라고 되어 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는 본인이 원치 않는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라고 하니 그 순간에 다른 제자들과 자신과 비교하는 태도를 곧장 보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육적인 태도에 대해서 다른 차원을 말씀한다. 즉 이러나 저러나 다 주님의 손에 의해서 인도받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노리는 악마의 분주한 활동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 덕분에 악마가 제자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육을 지닌 이상 이런 저런 욕망으로 인해 영적인 생활을 자기 힘으로 침범하고 잠입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은 우리를 동행과 인도의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다.

첨부파일 : 창세기 35장 – 40장.docx (33.4K), Down:15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1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8,367 묻고답하기 사랑은 비를 타고 (말씀은 성령의 흐름을 타고 =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나니 롬 1:17) 로마서 최고관리자 09-11-08
8,366 우리교회 [주보] 사랑은 비를 타고 (말씀은 성령의 흐름을 타고 =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나니 롬 1:17) 로마서 최고관리자 09-11-08
8,365 우리교회 삼하 3: 1- 5 (사울의집과 다윗의집)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09-11-08
8,364 설교 누가복음 1장 1- 4절 제목 : 말씀의 목격자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8
8,363 우리교회 눅 1: 1- 4 (말씀의 목격자)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8
8,362 설교 마가복음-2008 총정리 1-86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8
8,361 묻고답하기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9-11-08
8,360 묻고답하기 사람이 없어진다 - 최고관리자 09-11-07
8,359 우리교회 [일반] 사람이 없어진다 [일반] 최고관리자 09-11-07
8,358 강의 울산 11월 6일 출 6장 두 주체의 중간에 낑긴 틈사이의 언약 자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9-11-07
8,357 자유게시판 그시절 강의 듣던 신학생들은 어디로...? [신학] 최고관리자 09-11-06
8,356 자유게시판 대전강의091029b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9-11-06
8,355 자유게시판 대전강의091029a - 최고관리자 09-11-06
8,354 자유게시판 광주 강의(09. 10. 23) 2강 미가 최고관리자 09-11-05
8,353 우리교회 [일반] 마가복음-2008 총정리 1-86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5
8,352 자유게시판 마가복음-2008 총정리 1-86강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5
8,351 자유게시판 20091104우리교회수요설교녹취(렘 10:1-5)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09-11-05
8,350 우리교회 렘 10: 1- 5 (열방의 길)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09-11-04
8,349 묻고답하기 나, 너 그리고 진리 - 최고관리자 09-11-04
8,348 묻고답하기 도저히 용서 될 수 없는 자를 용서하시는 분을 목격하는 목격자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4
열람 ➜ 자유게시판 창세기 35장 – 40장 주석 창세기 최고관리자 09-11-03
8,346 묻고답하기 예전에 이런 글이 있었네. - 최고관리자 09-11-02
8,345 자유게시판 출애굽기 34장 주석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9-11-02
8,344 자유게시판 성도의 칼럼과 복음의 메아리 글쓰기 권한에 대하여 역대하 최고관리자 09-11-02
8,343 자유게시판 20091101우리교회주일낮설교녹취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11-02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