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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출애굽기 28장 – 29장 주석자유게시판출애굽기

출애굽기 28장 – 29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22.99.120.158)

출애굽기 28장 – 29장

28:1- 3

이스라엘에서의 제사장이란 단순한 종교전문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전체 운명을 좌우한다. '제사장 나라'란 제사장 한 사람이 제대로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서 다른 모든 백성이 복을 누리게 되는 체제를 말한다. 만약에 제사장이 부실하면 당연히 다른 모든 백성들이 화와 저주를 입게 된다

제사장들의 부실로 인하여 이 후로 이스라엘 나라가 각가지 환란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이 온전치 못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담의 죄성과 무관하게 이 지상에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담의 죄를 그대로 물려받은 제사장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이치다.

제사장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하게 된다. (1) 번제단에서 속죄: 레위기 16:18-19에 보면,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하게 되어 있다.

(2)물두멍에서 수족을 닦는 일을 하게 된다. 출애굽기 30:19-21에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어서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해야 한다고 했다.

(3)떡상에다 떡 진설 하는 일을 한다. 성소 내의 떡 상에 안식일마다 12개의 진설병을 올려놓는 일도 대제사장이 할 일이었다.

(4) 등대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대제사장은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점검해야 할 책임이 있다.

(5)분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을 해야 한다.

(6)지성소에서 속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수송아지 피를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린다. 들어온 문 쪽이 자기가 설 곳이고 속죄소 앞에서 7번 뿌린다. 또한 산 염소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전가시킨다.

(7)판결하는 일을 한다. 제사장은 백성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판결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 대세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차고 백성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판결해야 한다.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고 억울한 일을 찾아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이는 대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다리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8)축복하는 일을 한다. 대제사장은 온 백성들이 축복받게 끔 인도해야 한다.

(9)성막일을 총지휘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7:11에 보면, 이러한 일들을 인간들이 온전히 해낼 수가 없고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 분에 의해서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장들은 육적으로 말하자면 백성들 중에서 완벽한 신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레위기 21:18-21).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옷을 입었기에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맺었던 그 언약에 의해서 주어지는 모든 축복이 다 성도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담에 속한 인간들이 못하는 일을 아브라함의 유일한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 다 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28:15-21

제사장의 복장 중앙에서 12개의 보석이 박혀있고, 그 보석은 하나 하나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사장 자체가 '거룩한 인물'의 대표격으로 이스라엘에서 뽑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보석들의 빛은 온전한 최상의 거룩한 빛을 가슴팍을 통해 발산하라고 박아 놓은 것이다. 실제로 제사장이 쓰게 되는 모자에는 '여호와의 성결'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이것은 제사장이 책임지고 이스라엘 12지파를 '여호와의 성결'이라는 기준에 합당하게 구원시킬 일을 부여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구원이란 단순히 인간들이 자기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결'에 합당한 조건으로 달성하는 범위 안에서 구원해 내시는 것이다. 만약 '여호와의 성결'에 미달되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제사장 가슴에 새겨져 있는 그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여호와의 성결' 즉 '거룩'을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 성취하시는가 하면 원래 거룩이란, 인간이 도저히 하지 못하는 것을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달성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유대인 제사장들은 이것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달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참된 하늘의 기준되시는 예수님이 오시자 그 모든 허점들이 다 들통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에 있어서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6:39에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27-29에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바로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제사장 가슴팍에 있는 그 새겨진 보석 같은 하나님의 지파를 온전한 거룩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분이다. 흔히 거룩이란 윤리, 도덕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진정한 거룩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만 생각하시는 거룩은 그런 것이 아니다. 구원될 가치도 없지만 단지 자신이 책임질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없는 거룩과 의로움까지 다 챙겨주기에 성공할 때, 이것이 바로 주님의 거룩이다. 이런 거룩이 있는 사람은 오로지 주님의 이름만 자랑할 것이다.

이러한 온전한 거룩을 위해 제사장은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기구를 지니게 된다.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온전한 거룩을 따르기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기구이다. 이런 기구가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참으로 안도감을 안겨준다.

여기서 우리는 좀더 어려운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당시 분명히 십계명을 비롯해서 율례와 법도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바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신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넘어오는 시점이다. 신화의 세계는 모든 게 우연이고 우발적이고 매사에 신의 주관한다고 믿는 시대를 말한다. 이럴 경우는 인간의 공포로 휩싸여서 매사에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단 쌓기에 급급 한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확실한 법을 부여 받게 되면 이제 신마저도 그 법에 종속되고 또한 인간은 그 법을 지키는 이상 신 앞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입장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방면에서 우연은 줄어지고 모든 것은 인간들의 법 지키기 나름이기에 체계적이고 법적인 구조 안에 묶이게 된다. 즉 법을 준수하는 한 신께서는 그 법 지킨 인간에게 복을 안주면 안되는 관계 안에서 상호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역사는 인간들의 손에 의해 좌우 된다. 신이 내린 법으로 인해 인간 세계는 합당한 역사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 우림과 둠밈이 있다는 것은 인간들이 아무리 세상을 알아도 세상의 모든 것은 여전히 미지의 우연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아무리 법을 잘 지켜도 인간들이 예상 못한 사태가 닥치더라도 그것을 놓고서 신에게 원망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조차 주님께서 우리를 무사히 구원하시는 새로운 사건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29:15-21

수양이 많이 소비가 된다. 피는 곧 생명이니 즉 '수양의 피'는 곧 '수양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수양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번제로 희생된다. 또한 그 수양의 피를 온 몸에 바르는 양상으로 제사장은 세상에 등장되는데 이는 그 제물과 그 사람의 기능을 일치시키기 위함이다. 즉 동물 제물이 만약 인간이라면 어떤 식으로 이 땅에서 행동하겠느냐를 제사장이 보여주게 된다. 즉 동물 제물과 인간은 동일체다.

그리고 이 둘 사이가 연결되는 통로는 오직 '피'뿐이다. 왜냐하면 피만이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즉 감추어져 있는 '수양의 비밀'은 이 땅에서 피를 쏟아내고, 피를 보여주고, 피를 만들어내는 거룩한 제사장의 행위를 통해서 계시된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의 사지에 피가 발리는 것은 이 대제사장도 수양의 신세가 되어 수양이 가야만 하는 그 운명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감당 못해서 죽음의 맛은 사후로 돌린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진정한 인간상은 인간들이 놓치는 것이 된다. 살아생전에 진정한 인간의 진면목을 보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옛날 제사장의 임무였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죽음을 인간이 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목숨이 곧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 그 누구도 죽음과 멀지 않다. 살아있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의식이 전혀 들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생명은 바로 도리어 그들의 눈에 죽음이라는 양상을 띠고 나타나려 하는 것이다. 즉 죽음의 세계에 속한 자만이 진정 생명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이미 선악을 아는 과실을 따먹고 죽게 되어버린 인간은 더 이상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자격이 박탈당해있다. 죄를 지은 인간의 최후의 자기 모습이 어떠한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죽음이 함유된 진정한 인간 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안에는, 선악과로 인한 영원한 죽음과 그리고 생명나무 과실이 담고 있는 영원한 생명을 다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란 바로 이 예수님의 하실 일과 속성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이 점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죽음을 떼어놓고 오로지 '자신의 살아있음'만을 놓고 자신을 평가하고 소망하게 될 것이다.

29:9-14

선택에 담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은 '살아있는 제물은 죽이는 것'이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죽은 '그 제물의 피와 희생'으로서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에 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음으로 몰려야 한다. 죽기 위해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단 위의 제물은 살아있을 때부터 죽음을 표현하게 된다. 안 죽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모두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제사장이 살아있는 수송아지를 잡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거기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즉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살 가치가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 천국이란 완전히 상관없는 세계라는 말도 된다. 살아 있다고 여기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서, 죽는 것만이 자신의 본질임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속죄제물은, 제사장의 죄를 자기 죄로 넘겨받은 상태로서 제단 위로 올라가게 되는 제물이다. 더구나 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씻어줄 속죄제물을 자신의 손으로 잡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물을 친히 바치는 행위나 제물을 친히 잡는 행위가 결코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바가 된다. 즉 하나님의 지시에 따랐다고 해서 그 지시에 따른 인간의 공로가 말씀 성취에 함유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안고서는 살아남을 자가 없고,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절대로 그냥 봐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은 죽은 제물과 동일시 되는데 제물의 피 외에 다른 부분들이 처참하게 연기 속으로 살아지고 만다는 사실은 결코 하나님께서 옛 신체를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취지로 죄를 씻어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피를 제공한 제물은 신체의 그 나머지 모든 것도 하나님의 진노의 불 속으로 살아져 그 제물에게 남아있는 것은 전혀 없게 만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용하실 때 사용가치가 여전히 있기에 죄를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러운 제사장이 거룩한 제사장으로 새로이 등장되는 것은 순전히 그에게 묻어 있는 피 때문이며 나머지 그 제사장의 수완이나 능력의 가치가 여전히 제사장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제사나 제자장의 존재는 참으로 신기한 신비이다. 인간들이 끼어들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신비다. 인간을 철저하게 배제하므로서 도리어 인간에게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간이 직접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간주해서 제물로 바치겠다고 친히 나설 수는 없다. 예수님을 제물로 잡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지 우리 인간이 아니다. 이것은 곧 제사장에 의한 제사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결코 의로워지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속죄제의 제물이 전부 산산조각 나서 태워지고 뿌려지고, 버려진다는 것은 곧 죄로 인한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한치의 앙보도 허용치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평생토록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땅 끝까지 전도에 힘썼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공로가 예수님의 속죄제 역할에 조금도 삽입되지 못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인인데 그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바로 '속죄제'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우리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죄 아닌 것이 생겨난다면, 영원토록 속죄제 역할로 작용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에 흠집을 내는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영원토록 속죄제 제물이 되신다면 우리는 영원토록 내세울 것이 없는 죄인의 역할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예수님의 속죄제가 일시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평생에만 한정되어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원토록 우리는 은혜가 불필요한 입장에 서 있지를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기대를 건 그 기대로 인하여 우리는 내일 일에 염려하고 되고 수시로 하나님께 원망하게 되고, 걱정과 슬픔으로 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결국 예수님의 속죄제 제물 되심을 쓸데없는 행위였다고 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예수님의 피를 모독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9:26-30

요제나 거제는 제사장이 마땅히 가져도 되는 자기 양식임을 백성들에게 전시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제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집도 절도 없는 처지였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곧장 들어선 곳은 바로 물이나 양식도 넉넉지 않는 환경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도대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정립해야 했다. 애굽식의 방식으로 항상 함께 동행 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투 밖에 안된다. 바로 이럴 때, 하나님은 제사장의 면면을 전면에 내세우신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몰두해 있는 처지다. 뭔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대신해서 보여줄 인물이 필요하다. 그들이 바로 제사장들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땅 갖기를 요구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제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구원의 능력을 여전히 제공하시는 그런 하나님에 의해서만 통치 받는 나라 되기를 소원할 뿐이다. 즉 어린 양의 희생이 인간의 소유욕으로 인해 퇴색되지 않고 도리어 그런 소유욕을 계속 정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땅을 소유하게 된 일반 지파의 백성들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의 존재란 자신의 소유를 가능케 하는 발판으로 작용할 때만 의미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소유를 보장해 줄 때만 하나님과 교제하겠다는 분위기로 급속도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아무런 땅도 갖지 못한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찾아오게 된다.

백성들의 하나님 무시하기가 그대로 제사장 무시하기로 이어지게 된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는 차원에서 제사장의 생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즉 제사장이 없어도 하나님만 있으면 산다 라는 계산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통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존재 자체가 인간들의 기본적인 욕구, '소유가 있어야 안심이다'라는 욕구를,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애굽 정신이라고 고발하는 기능을 제사장들이 하는 기능에 의해서 밝혀지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4:31-34에 보면, 예수님은 먹기 위해 이 땅에 사신 분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시는 것이다. 즉 왜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그 이유가 예수님을 살려내는 양식 같은 힘이 된다는 말이 된다. 제사장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저 땅이 있어 땅에 나오는 소산물을 의지해서 사는 것은, 인간들이 애굽 정신에 준해서 하나님을 이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간들은 궁극적으로 애굽으로서의 구원이 아니다. 도리어 애굽에로의 합세를 원한다. 진짜로 인간들이 내면에서 원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탈출이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흔드는 제물'과 '쳐드는 제물'을 가지고 시위하듯이 백성들에게 호소한다. 여기 이 제물을 흔들고 쳐드는 것처럼 너희 백성들아 제사장을 하나님께서 이처럼 쳐들고, 흔들면서 너희들 앞에 그들의 존재성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쳐들었고 흔들어대든 제물은 결코 타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먹여주는 제물이 되고 그 제물의 제공은 너희 백성들이 담당하여 너의 인생과 제사장의 존재함과 계속 관련성을 잇도록 하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이러한 분이었다. 고린도전서 9:4-8에 보면, 사도 바울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다닐 권리도 있고 소요되는 비용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가 자비량 한 것은, 생명이란 인간의 노동의 축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이기 위함이다. 그는 복음을 생명을 바쳐서 증거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이미 받은 상(償의)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능력에 휩싸여서 살아가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다.

29:38-43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을 양보하지도 않으면서 구원은 구원대로 성사시키신다. 원래 인간은 그 자체에서 악이 발생되기 때문에 거룩을 만나면 죽음이 초래된다. 따라서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따라서 거룩은 거룩대로 만족시키면서 구원이 구원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묘수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따로 하나님께서 인간들과의 만남의 영역을 제조하신 것이 있다. 그곳이 바로 '회막문'이다. 42-4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만나는 그 장소까지 거룩을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신 분이다. 거룩하지도 않는 문을 거룩한 인간이 출입했다가는 큰 일 난다. 이처럼 '거룩 만들기'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존재가 인간의 더러움을 대신해야 하는 일을 하셔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제사'다. 이 제사 안에서 인간은 구원되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거룩을 만족하신다.

본문은 거룩 중에서 '항상 드리는 거룩'이다. 항상이란 일년 내도록 하루도 중지됨이 없이 계속 드려지는 것을 말한다. 한 순간의 틈도 거룩이 누락되는 일이 없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전 시간대를 전부 다 통 채로 장악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거룩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의 능력의 한계를 잘 고려해 주어서 그들의 능력이 되는 범위 안에서 구원하시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거룩을 절대화 하겠다는 취지다. 절대로 거룩하심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모습을 보게 되면 참으로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만약 이 초대교회처럼 오늘날에도 교회 운영을 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교인들에게 압박감으로 작용될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자기 재산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고 유무상통했다는 점이다.

서로 서로 재산을 공유한다는 것은, 오늘날 재산으로 인격의 높낮이를 평가하는 시대에서 참으로 실천하기 힘든 내용이다. 그 정도로 그들은 사람들의 재산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그들은 날마다 모이기에 힘썼다는 사실이다. 하루 빠지지 않고서 말이다.

히브리서 10:24-25에 보면, 그 당시 교회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있는 그런 상황을 절대시했다. 흔히 말하는 '자기를 위한 시간'을 절대시하거나 우선시 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절대시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정신들이 상번제에 담긴 뜻이다. 제물은 제사 행위 가운데서는 죽음으로서 제사에 참예하게 된다. 즉 인간의 죽음을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만남에 나서시겠다는 것이다. 산 채로 만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한 번 죽었으면 그 다음부터 살아있는 몸은 하나님의 재가 하에 마음대로 인간의 의지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몸이 아니다.

하나님은 매일 일과를 아예 죽음과 죽음 사이에다 끼어 넣으신다. 아침의 죽음이 저녁의 죽음까지 부른다. 인간은 정말 죽을 때까지 계속 될 일이다. 죽음으로 시작한 하루 일과를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 도중에 한 시라도 자기 죽음에서 벗어나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진정한 죽음이란 모습으로 거룩이 나타남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참된 거룩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요 구원이라는 것이다. 처음 믿을 때만 완전한 거룩이 아니라 마지막 죽을 때에는 우리 거룩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음 안에서의 거룩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거룩이다.

첨부파일 : 출애굽기 28장 – 29장.docx (28.3K), Dow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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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9 자유게시판 출애굽기 26장 – 27장 주석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9-10-29
8,328 자유게시판 20091028/우리교회수요설교녹취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09-10-29
8,327 자유게시판 출애굽기 24장 – 25장 주석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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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5 우리교회 렘 9:23-26 (참으로 자랑할것)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0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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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2 자유게시판 출애굽기 23장 주석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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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