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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1025/우리교회주일낮설교녹취자유게시판마가복음

20091025/우리교회주일낮설교녹취

이름 : 오용익(IP:59.3.201.250)

20091025 우리교회 주일설교/마가복음 16장 8-11절/부활과 말씀(이 근호목사)

마가복음 16:8-11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하더라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쫒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믿지 아니한다’ 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지요. 그런데 ‘신자(信者)’ 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이야기하니까 그들이 믿지 아니했습니다. 신자라는 뜻이 뭐지요? ‘신자’의 뜻은 ‘믿는 자’인데 믿는 자에게 말씀 전하니까 ‘믿지 아니함이라.’ 그러면 그동안 뭡니까? 믿는 척을 했지요. 신자인척을 한 겁니다.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보면 아는데, 전하니까 그들은 믿지 아니했고 그러면서도 믿는다고 우기고 있으니까 그들이 갖고 있는 믿음 속에는 무엇이 빠져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도무지 못 믿겠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되고 싶습니다’ 하는 거짓말이 담겨 있지요.

신자는 되고 싶은데, 다른 말로 하면 ‘교인은 되고 싶은데, 주의 말씀, 성경말씀은 제발 저에게 전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저를 신자라고만 이야기를 해 주시면 저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요리 집에 가면 고기를 굽다가 ‘판 갈아 주세요’ 라고 하잖아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천국과 하늘나라가 정작 예수님이 소개하는 하늘나라와 천국하고 대보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 판이 안 맞았어요. 예수님의 생각하는 그 인생구이판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그 인생의 정신상태, 그 판하고 판이 안 맞는 겁니다.

안 맞으니까 인간들 손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요,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해서 나타났을 때, 그들은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 하면, ‘아하, 판이 다르구나. 구이 판이 달랐구나’ 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살아왔던 바탕 자체가 다르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밑바탕에 있는 판을 안 바꾸고, 죽어서 좋은 데는 가고 싶어서 그냥 예수 믿겠다고 나왔을 때에 오늘 본문같이 진짜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말씀을 전할 때는 연속적으로 ‘그들은 믿지 아니함이라, 그들은 믿지 아니함이라’ 하고 결국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완악함을 꾸짖으시고 …, 이러한 사태가 계속 일어나는 겁니다.

신자가 뭐냐? 신자는 천국과 관련된 사람입니다. 천국과 관련된 사람인데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려고만 하고 천국에 사는 사람이 안 되려고 해요. 그들은 ‘왜 천국에 사는 사람이 안 되려고 하느냐’ 라고 물어보게 되면 그들은 ‘지금 내가 사는 이 현실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이 현실에 맞춰 살아야지 언제 천국, 죽어서 가는 나라에 맞춰 살겠습니까?’ 이렇게 나오더란 말이지요.

‘죽어서 가는 나라에 맞춰서는 못살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맞춰살겠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것은 장차 천국에 합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간다고 하니까 신자는 되고 싶고. 이게 목회자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데 주님 입장에서는 전혀 안 답답하죠. 왜 안 답답한가? 들여보내지 않으면 되니까.

주님은 안 답답한데 목회자는 아주 답답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목회하는 것이 주님의 목회에 방해가 될 수가 있어요. 너무 정이 많아서, 초코파이상표처럼 그 ‘情’을 너무 많이 주려고 하는 거죠. 안 믿는 자는 결국 탈락인데 우리는 탈락된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애정이 많습니다. 가슴이 아파요. ‘저 교회 오래다녔습니다’ 이렇게 나오더라는 말이지요.

‘저, 당신은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맞습니까?’ 하면 그 말을 못 알아들어요.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는 싫고 ‘나는 교회 오래 다녔습니다. 목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이래 나오더라는 말이죠. 목사는 천국 가는데 하등 보탬이 안 됩니다. 자신도 못갈 판인데 남까지 신경 쓸 수가 있어야지요. 제가 어제 국악공연을 심사숙고 하면서 2시간동안 들었습니다.

한국가락, 설장구, 여섯마당등, 죽 공연을 하는데 그걸 보면서 저는 무엇을 생각했느냐 하면, ‘서양음악과 국악의 차이점이 뭘까, 분명히 차이점이 있는데 그게 뭘까’를 생각했습니다. 한국음악은 들어도, 들어도 슬퍼요. 아무리 들어도 슬퍼요. 대체 그 차이점이 뭐냐, 그것을 두 시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숙제라 여기고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감이 왔어요. 뭐든지 해답을 받아야 속이 시원한데 그게 감이 왔어요. 초반부에서 회심곡을 불렀어요. 회심곡이란 어버이날에 김영임씨가 잘 부르곤 했는데, 이것은 불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계도하면서 ‘부모에게 효도해야 죽어서 극락간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가사에서 이런 내용이 머리에 싹 들어왔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 외에 누가 있으리오.’ 서양음악이 발달된 것은 교회에서 사람외의 어떤 분을 찬양하기 위해서 음악이 발달 되었어요. 그레고리안 성가는 사람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한풀이가 아니고 사람 외에 우리를 만드신 분이 우리 앞에 대상으로 있다는 거예요. 찬양과 찬미를 받기 위해서 하늘에 계시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천국이라는 것은 우리의 면류관도 반납하면서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라고 찬양하기 위해서 준비된 백성에게서 울려나오는 노래가락, 그것이 음악의 시초가 됩니다. 건방지다는 이유에서 화성도 넣지 않고 단성으로 한 겁니다. 나중에 낭만주의시대에 들어가면 모차르트도 나오고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지만 그 이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회심곡에는 ‘이 세상에 사람 외에 누가 있으리오.’ 그 뒤에 계속해서 나오는 가사를 보니까 ‘여보시오, 이 내 사람 이 내 말 좀 들어 보소’ 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한국의 가락은 ‘사람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내 원통한 것, 절통한 것, 분통한 것, 이것 좀 들어보소. 난 이것 풀고 확 소멸할 테니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뭐냐? 국악은 소멸이다. 내 나름대로 뭔가 하나 깨달았다고 깨달은 거예요.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만 제 나름대로 그런 겁니다. ‘소멸이구나, 소멸!’ 없어지는 거예요. 스스로 한풀이를 하고 그냥 사라지는 거예요. 어떤 학자가 얼마 전에 책을 냈는데 ‘한국에는 아무리 종교가 들어와도 전원 다 무속신앙이다’ 라는 내용의 책을 썼어요. 절에 가건 교회가건 아무데도 안 나가 든 모든 인간은 무속신앙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무속신앙이 뭐냐하면 ‘여보시오, 사람들아, 이 내 말 좀 들어보소’ 그거예요.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뭐냐, 남들에게 평가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사람들, 같은 사람들에게. 해답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도 인생을 모르는데 무슨 해답이 있습니까?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천국과 결부되지 않았어요.

하늘나라와 결부되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자기인생의 해답으로 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네가 내 말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고 했습니다. 신학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목사님, 영생이 뭡니까?’ 답변 못합니다. ‘진짜 영생 얻었습니까?’ ‘영생 얻었습니다.’ ‘그러면 영생이 뭡니까?’ 라고 물어보면 답변이 없어요.

오래 사는 것? 그것은 불신자도 안 죽어요. 불신자가 지옥가도 불러내요. 불신자도 불러내니까 죽음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오래 사는 것은 불멸이고, 그러면 영생이 뭐냐, 하는 겁니다. 영생이란 그 속에서 계속 영원성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원성이 나오게 되면 그 사람의 특징이 뭐냐? 일시적인 것에 투자하지 않고, 잠깐 잠깐 없어지는 것, 우리의 인생, 목숨인데 그것 때문에 자기의 자존심을 건다든지 목숨을 거는 법이 없고, 항상 영원히 살게 해주신 그 예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 하나됨을 가지고 영생이라 합니다. ‘영생이 뭐냐’ 고 물으시거든 ‘예수님과 하나됨이 되어서 예수님의 속성이 솔솔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가지고 영생이라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물 길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 약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물 한 그릇 얻어 잡수시고 가시면 되는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한테 물을 주면 영원히 나오는 물을 먹을 수 있지롱.’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물을 길러 왔다가 웬 과객이 하는 소리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지 롱!’ 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그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물 좀 주소’ 라고 했습니다. ‘어느 지점을 파보면 됩니까? 어느 우물에 가면 되지요?’ 이렇게 나온 거예요. ‘저는 지금 야곱이 준 우물인데 그 우물은 어디 우물입니까?’ 하는 거예요. ‘그 우물이 어느 우물입니까? 어디가면 그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먹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취지는 이겁니다. ‘네가 우물이다. 네 속에서 영생이 나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것이 네 속에 있다.’ 그걸 알려주기 전에 먼저 이야기했지요. 그 여자가 되풀이, 되풀이, 또 되풀이하면서 계속했던 것을 끄집어내지요. ‘아줌마, 전 남편이 다섯이지?’ 말이 다섯 명이지, 여자가 남편 다섯이라는데 이름을 한번 나열해 보세요.

전 인철, 유 인기, 이 상준, 배 용준, 최 용근, 이렇게 다섯 명이라면 그 하나하나의 기억이 우리 마음의 지층처럼 쌓여 있을 것 아닙니까? ‘아줌마는 지금까지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지요? 김준희라고.’ 왜 다섯 명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여섯 명 째를 사귀는가? 이것이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은 태어났다 하면 갈증과 결핍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지금 다섯 번째 남자를 갈아치우고 여섯 번째 남자를 사귀고 있는 그 가운데서 그 여자는 자기 쪽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했겠어요. 얼마나 많이 용을 썼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라는 과객이 하는 말이 ‘더 이상 일곱, 여덟 번째가 필요 없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러한 축복을 준다’ 하니까, 여자가 또 자기행위를 집어넣습니다.

‘보니 당신은 하늘에서 온 선지자 맞는데 그러면 전에는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렸는데 유대인들 말로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린다고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예배드리면 우리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요청하고 하나님을 끌어 당기기 위한 수작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합니다.

‘어디서 예배를 드리고 어디서 헌금하고 어디서 기도하면 하나님을 끌어당길 수 있는가?’ 그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충족한 인생이 되느냐’ 그것을 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하는 거예요. 그게 종교지요. 기독교. 어떤 시도를 하는데 주께서 하는 말이 ‘내가 왔잖아. 내가 여기 왔잖아.’ 여자가 하는 말이 ‘심봤다!’ 하면서 물동이를 버려뒀습니다. 물 길러 와서 물동이를 버려뒀어요.

그게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8절에 보면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하더라.” 예수님의 부활이란 소식을 듣고 자기 행동이 지금 무슨 행동인지 그걸 파악할 겨를이 없어요. 물동이를 버려두는 것처럼, 지금 이 여인들이 깜짝 놀라는 것처럼, 새로운 인생의 구이판이 바뀌어져야 되는 겁니다.

내가 행함으로 하나님을 유인하려고 하는, 헌금이나 뇌물을 줘서 복을 유인하려 하는, 기존의 내가 살아왔던 내 과거습성에 의한 그러한 천국관, 그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런 천국과 진짜 천국사이에 충돌, 바로 예수님은 오셨고 그런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거예요.

그냥 처음부터 ‘나는 안 죽는다. 나는 부활했거든’ 이렇게 꼬드기려고 온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죽었다가, 그냥 죽은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난 이유가 뭐냐 하면, 그렇게 해서 부활해서 다시 찾아오게 되면, 기존의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생의 기본적인 판, ‘이것이 그동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를 고백케 하는 그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물이 되는 겁니다.

그 판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같이 통합되어서 있었던 거예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내가 천당 가려고 별 짓을 다 했구나.’ 그런데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별짓을 다 한 그것이 바로 나로 하여금 천국 못가는 인간인 것을 노출시킨 겁니다. ‘나는 천국가기 위해서 이런, 이런 짓들을 했다’ 라는 것이 있다는 자체가 ‘너는 천국 못 간다’ 라는 뜻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천국은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찾아오지요.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실 때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찾아오는 거예요. 자꾸 죽음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찾아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동안 헛살았다는 것을 화들짝 놀래버리는 그러한 만남을 주께서 주선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설교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밥 먹고 살기 바쁘니 그런 것이 궁금하겠습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나옵니다. 사도바울 같으면 우리교회에서 설교를 어떻게 하겠는가? 사도바울의 설교가 왜 중요하냐 하면, 기존의 목사들이 설교할 때 사도바울의 설교와 같은가, 한번 비교해 보라는 겁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길게 구약성경부터 죽 이야기를 해요. 모세와 다윗의 이야기 등, 구약을 길게 이야기합니다. 왜 구약을 길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사람들, 특히 이방인들이 그러한데, 사람들이 천국의 맛을 보기 위해서 자기 몸에다 조작을 가합니다. 손바닥을 친다든지 마약을 먹는다든지, 꿈에서 희한한 것을 본다든지, 가지가지 조작을 가해서 남에게 티를 내면서 살아보려고 희한한 일들을 주워 모아서 자기 마음의 창고에 정립시킵니다.

‘나, 이정도로 믿음 괜찮은 인간이다’ 라는 것을 정립시켜서 자기 믿는 척을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설교에 보면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이렇게 조작하시면 영을 받습니다’ 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그냥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죽 합니다. 아주 냉철해져요. 사람이. 사람이 예수 믿으면 아주 냉철해져요.

구약성경을 죽 이야기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충돌을 이야기해요. 유대인들과 오신 하나님의 선지자하고 마찰을 일으킨 대목들을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주니까 그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받으려고 그렇게 시도를 하고 성전을 지어놓고 성전에서 예배드리면 복 받는줄 알고 그렇게 애썼는데 정작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예배당에 계시지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것은 뭐냐하면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신에게 접근하는 그 방법은 전혀 천국과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라는 그것이 사도바울의 설교에 계속 들어가요. 사도행전 13장 28절에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려 한 것이라”라고 해서 아주 사도바울이 냉철해 집니다.

아주 냉철해져서 예수님께 일어난 십자가는 성경대로, 약속대로 응했기 때문이고 38절에 가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라고 해서 아주 냉철하게 이야기하면서 이 십자가의 피 흘린 것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한 것이고 그것은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려 한 것’ 이며 그렇게 해서 38절에 이 죽으심을 인하여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것’ 이며 39절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후라이팬 바꿔야 됩니다. 물동이요? 깨져도 괜찮아요. 여러분, 사업하다가 망했습니까? 망해도 괜찮아요. 사람들이 원통하고 절통해서 울고불고 하는 것은, 남들 보기에 남들이 평가하기에 ‘나는 졸지에 얼마나 실패자고 얼마나 나를 놀리겠는가’ 라는 타인의 시선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설교는 아주 냉철해요. 아주 냉랭하다고요. 그리고 냉정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힘입어 예수를 믿는 자는 모든 죄가 용서 받는다’ 는 이야기입니다. 남자 여섯 명이어도 괜찮습니다. 배 용준이하고 사귀어도 괜찮습니다. 일곱 번째 남자 사귀어도 아무 일 없어요. 그런데 그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가 남자 여섯 명 사귄 것을 감추었지요.

예수님한테 들켰지만 사실은 감춘 거예요. 왜 감추었느냐 하면, ‘나 과거에 남자 여럿 거느렸다’ 하게 되면, 요즘에야 그게 자랑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에라, 나가 죽어라. 이 더러운 여자야’ 해서 대번 행실 나쁜 여자라고 욕할 것이 아니냐 말이죠.

그렇게 욕하게 되면 남들의 평가에,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나는 살아도 산 인간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가 되어 버립니다. 그게 아주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그 부끄러움에 자기감정은 혼란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설교는 냉철하다니까요. 아주 냉철해요. ‘네가 지금 감정이 얼마나 혼란스러우냐’ 그런 것은 아예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이 물동이 버려둘 때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여자가 왜 물 길러 와서 물동이를 버려뒀나’ 할 때 이 여자가 하는 말이 ‘나는 메시아 만났다’ 이래 되거든요. 한마디입니다. ‘나는 메시아 만났다!’

‘나는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서 열심히 찾아다니고 기도했더니 이제야 만났다’ 는 그것이 아니고, 메시아가 찾아오셔서 찾아오실 때에, 말씀에 응하기 때문에 구원받았기 때문에, 찾아오심 그것도 창세전에 예정하신 말씀의 성취차원에서 예수님이 자기숙제 한다고 저와 여러분들을 찾아오신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 후라이팬은 뭐냐 하면, 내가 신을 찾아가는 식이었습니다. ‘주여, 교회 나가면 구원받습니까? 성경공부하면 구원받습니까? 헌금하고 십일조하면 복 받습니까?’ 맨 날 우리가 뭘 하는 행위차원이었어요.

행위차원인데 교회에 가보면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저 사람들이 어떻게 하지?’ 보니까 박수를 치니까 ‘아, 이 동네는 박수를 쳐야 되는 모양이다’ 합니다. 계속해서 남들을 흉내 내면서 목사가 ‘저 사람은 아주 믿음 좋습니다’ 하니까 얼른 그 사람에게 한 수 배워서 ‘나도 믿음 좋은 목사라는 타인으로부터 평가받는다’ 하는 그 버릇의 후라이팬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겁니다.

본인이 믿는 예수가 없어요.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예수,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를 가지고 거기에 주눅 들어서 한평생 살았어요. 그 사마리아 여인은 발가벗고 돌아다녀도 관계없어요. ‘나 이제 아홉 번째 남자 사귈 참이야’ 라고 하면서 돌아다녀도 아무 상관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냉철하게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천국가리라’ 합니다. 아주 냉철해요.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너무 너무 냉철해요. 여러분들이 집 같은 것 수리할 때, 예를 들어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 케이블 새로 깔 때 제가 유심히 봤습니다. 기존 업자는 전화선으로 깔았는데 그거 깔 때 직원이 와서 선을 잡아 당겨요. 당기게 되면 스티로풀 밑에 깔려 있던 보이지 않던 선이 두두둑, 하고 떨어져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해서 찾아오게 되면 내가 생각했던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전선을 잡아 당겨버립니다. 잡아당기게 되면 우리의 과거가 남들 보기에 어떠한가, 라는 식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폐선이니 없어지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이제야 너를 구원하러 왔단다’ 하고 우리의 과거까지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는 새로운 노선에 다 재조립이 되어 버립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이 되게 하는 거예요. 내가 깔았던 노선은 폐선이 되어 버리고 주께서 태어날 때부터, 1953년 6월 27일, 양력으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발자국이 어느 한 순간 한순간도 예수님의 부활과 무관하지 않고 천국 골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는 그 레일이 이미 깔렸어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것은 내 자존심과 관련된 레일이었습니다. 그 폐선, 완전히 뽑아내야 돼요. 오늘 본문 9절에 봅시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쫒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여기 보면 ‘일곱 귀신을 쫒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

방금 이 대목을 이렇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일곱 귀신을 쫒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 지금 넷째 줄쯤에 앉아 있다고 해 봅시다. 목사님께서 ‘막달라 마리아가 오늘 새로 왔습니다’ 하면 얼마나 좋아요. 듣는 사람도 좋고 다 좋은데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 여기 앉았습니다’ 하면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말이 일곱귀신이지 무당이고 창녀고, 그런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 창녀였던 여자 와 있습니다’ 할 때에 지금은 아니라 해도 과거에 창녀였던 그 사람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좀 숨겨주시지. 아무리 예수님이시지만.’ 라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라합, 하면 되는데 ‘기생 라합이 구원되었습니다.’ 이 무슨 횡포입니까? 왜 그 사람의 과거를 이야기합니까?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고 주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깔아놓은 주님의 조치였던 겁니다. 그 사람은 일곱 귀신 들렸어야 돼요. 안 들리면 안 되고 꼭 일곱 귀신 들렸어야 된다니까요. 예수믿음만 자기현재고 자기결단이고 과거는 자기결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과거의 일까지 자기결정 선에서 끝나버려요. 주님께서 다 합력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주 냉철하게 이스라엘 역사를 봅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가 가나안땅에 못 들어가고 모세가 이러쿵저러쿵 어떤 일이 벌어져도 결국 모세는 천국에서 엘리야 하고 이바구 하잖아요. 그걸 뒤다마라 하는데, 하고 있잖아요. ‘예수님, 언제 돌아가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야 우리가 구원받을 것인데.’ 엘리야가 ‘가만 좀 있어보소. 지금 돌아가신다 안 카나?’

예수님하고 엘리야와 모세가 완전히 같은 공간에 있어요. 천국에는 시간을 초월해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놀고 아담하고 우리가 막 먹고 그래요. 시간이 없어요. 같은 공간이라니까요. 우리 보기에는 모세가 가나안땅에 못 갔으니까 지옥에 갈 꺼라 생각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를 가나안땅에 그렇게 못 들어가게 하신 것도 모세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에 응하게 하려 함이라’ 합니다. 12절, 13절을 봅시다.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계속해서 ‘믿지 아니하니라’ 하는 말을 하는 이유가, ‘저희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하는 이것이,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성령이 임하게 되면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이걸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성령이 임하게 되어서 복음전할 때 목회 성공하리라고 보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들도 너희들 힘으로 아무리 애써도 결국 내가 막상 부활하니까 아무도 안 믿었다’는 말이지요.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목회자가 목회할 때, ‘믿는 사람이 한사람도 안 생겨도 무방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목회를 해야 돼요. 왜냐하면 본인이 안 믿었으니까. ‘안 믿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게 하기 위해서 믿게 할 때 그때 안 믿은 것도 뭐에 포함되느냐 하면, ‘안 믿게 하셨다’는 이야기에 포함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것도, 십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 까지, 가룟유다가 배반한 것 까지, 전부 다 하나님의 냉철한 자기 작업에 그대로 다 포함이 되는 겁니다. 핏대 올린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성경을 봅시다. 로마서 10장 2절, 3절에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좆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을 쉽게 이야기 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라고 여겼던 모양이지요.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를 세우려고 열심을 냈다’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다음이 어려워요.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다’ 이 말입니다. 이걸 빠뜨리면 안돼요.

사람이 자기의를 세우면 세울수록 점점 더 거저주신 하나님의 의는 안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산책길에 종이를 줍습니다. 산책길에 종이를 줍게 되면 몇 가지 반응이 나타나요. 첫 번째, 제일 많은 반응이 고맙다는 반응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자기는 안주으면서도 ‘고생하십니다!’ 하지요. 그 다음에 나오는 반응이 자기는 휴지를 안 버렸으니까 휴지를 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통입니다.

‘도대체 이 공원에서 휴지를 누가 버렸는데, 하여튼 세상 참 나빠, 나빠.’ 그런데 절대로 줍지는 않아요.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을 드물게 봤어요. 나이 한 60쯤 되신 분인데 손으로 그냥 줍는 것이 아니고 비닐봉지 준비하고 집게 준비해서 아예 노골적으로 다 주워요. 그냥 휴지 좀 주우면 사람들이 ‘수고하십니다. 고생하십니다. 하여튼 나쁜 놈들!’ 이러지요.

그런데 쓰레기봉투 들고 집게 들고 본격적으로 휴지 주우면 그 사람들이 아무 소리 못합니다. 왜? 그게 경이로움입니다. 태양이 너무 가까이 와 버리면 타버립니다. 너무 완벽한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을 잃습니다. 그저 놀랠 뿐이지요. 그저 말도 걸지를 못해요.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나 몇 명 전했다’ 소리 하지 마세요.

진짜 복음을 전하게 되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예수님이 죄사해준대요’ 합니다. 왜냐? 진짜 성령이 와서 구원하는 것은 자기는 그냥 더듬 더듬, 말만 할 뿐인데 구원시켜주는 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놀라움으로 구원시킵니다. ‘후라이팬 갈아치워라. 구이판 갈아치워라. 폐선 다 뽑아내라. 주께서 천국과 관련시킨 사람만 신자다’ 이 말이지요.

지옥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지 알아요? 남들의 평가에, ‘이 내 사람 내 말좀 들어보소’ 하면서 한맺혀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자기구이판을 못버리고 있는 사람들, 천국 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와서 그 행위 주장하는 사람들, 못갑니다.

진짜 교회는 뭐냐? ‘이런 나밖에 모르는, 남들의 평가에 자존심만 세우는 내가 이렇게 은혜로, 그냥 죄사함으로 구원하시다니 세상에 내가 이런 횡재를….’ 하고 아무 소리 없이 뒤따라가면서 그냥 추수하는 것만 추수되면 이것이 바로 이 새로운 시대의 정경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냉정하지 못했고 냉철하지 못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윤리도덕을 다 무시하고 긴긴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 보내주셔서 그에게 의지하는 자에게 죄사해준다는 아주 단출하면서도 명쾌하고 확실한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판을 갈아치워서 이제는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의 판을 짜게 하옵소서. 그것까지도 주님께서 주님의 일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091025우리교회 주일설교.hwp (50.0K),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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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