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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다니엘,스가랴)-환상속의그대--재녹취자유게시판스가랴

0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다니엘,스가랴)-환상속의그대--재녹취

이름 : 구득영(IP:203.223.97.146)

2009 십자가 마을 여름 수련회 - 제1강
2009,08,02 강의 이근호, 녹취 한윤범

◈ 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을 !!

지금 제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겠는데(?),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제 강의를 시작하겠는데, 먼저 다니엘 12장 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단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여기에 보면 "책에 기록된 모든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구원에 실패할 것이란 의미인데, 즉 책 이외에 있는 사람은 말입니다. 여기서 '책' 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생명책을 뜻하는데, 즉 그렇게 책에 기록된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 인간의 행함은 왜 저주인가?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러면 우리의 행함은 무엇입니까?" 라고 하는데, 당연히 행함은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즉 행함은 곧 저주인데, 그러니 자기의 행함을 가지고, 그 어떤 이유든지 간에 "나는 이렇게 행해서 구원받고자 합니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도록 되어있는데, 그 어떤 이유든 간에 말입니다. 특히 이번에 우리가 공부하려는 다니엘서에 의하면 말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서에 나오는 인간의 행함에 대한 거부는, 도대체 무엇에 대한 거부이겠습니까? 당연히 인간의 몸에 대한 거부인데, 이런 인간의 몸에 대한 거부는, 인간의 모든 신학, 신앙, 학문, 이성 등등, 여러 가지 우리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그런 모든 전체에 대한 거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 새로운 몸, 즉 '인자'의 등장 !!

그러므로 인간의 행함이 자리잡고 있는 몸에 대한 거부라고 한다면, 그러면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는 이런 몸이 아니라 새로운 몸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그러한 새로운 몸을 두고서 이 다니엘서에서는 두 글자로 '인자(人子)'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의 제목이 '환상 속에 그대' 라는 것이지, '환상 속의 그대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환상 속의 그대', 그대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 분의 새로운 몸이 등장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이런 행함의 몸들은 고통을 받아야만 되고, 또한 저주를 받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 있는 이 생명책에서 새로운 구원의 한 몸이 나오면, 그 새로운 한 몸의 능력에 의해서 새롭게 구원이 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을 다니엘 12장 2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 아하, 티끌 가운데서 !!

여기서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라고 하는데, 즉 생명책에서 어떤 한 분이 등장하게 되고, 그분이 등장함으로 말미암아서 티끌 가운데 있는 자가, 즉 죽음 가운데 있는 사람이 그만 살아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티끌'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무엇을 행하고 싶어도 아예 무엇을 행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즉 자기가 티끌이라고 여긴다면, "저는 그 어떤 것도 행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라고 하는,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즉 새로운 부활의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티끌로 넘겨줌으로 말미암아서, "행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는 이야기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그렇게 일소해버리는 식으로 이 다니엘서 전체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 다니엘서 - 거부, 거부, 거부 !!

그러니 이 다니엘서에서는, 기존의 몸에 대한 개념, 즉 몸에서 자아가 나오고, 인간이 나오고, 그렇게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새로운 몸에서 나오는 개념, 즉 새로운 자아라든지, 새로운 인간상 등등,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 은혜로 주어지는 개념이라는 겁니다. 즉 여기 밑에 있는 것은 인간의 행함에 준해서 일어나는 개념이기 때문에, 전부가 다 여기 새로운 몸에서 나오는 개념에 의해서 거부를 당한다는 말입니다.

◈ 문제는 바로, 'I' !!

하나의 예를 들면, 여기 인간의 행함을 주장하는 몸에서 나오는 이 '자아' 라는 것은 반드시 어떻게 하는고 하면, 영어에 'I' 라는 것이 있는데, 즉 영어에서 반드시 '나' 라는 것을 꼭 집어넣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빨갛다' 라고 한다면, 그냥 빨간 것이 들어오면 되는데 "내가 빨갛다고 본다" 라고, 그렇게 꼭 자기를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어만 그런 것은 아니고 말입니다.

이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비가 온다" 라고 하면 그냥 비가 오고, 또 "바람이 분다" 라고 하면 그냥 바람이 불면 되는데, 그런데 꼭 "내가 바람을 맞는다" 라고, 혹은 "내가 바람인 줄 안다" 라고, 거기에다가 꼭 '나'를 집어넣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나'를 집어넣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사실은 무엇이든지 다 그러한데, 여러분이 음식이 맛있을 때 "아, 음식이 달콤하다" 라고 하면, 몸에 달콤함이 다가오는데, 그런데 그것을 표현할 때는 "내가 달콤해" 라고, 꼭 자기를 집어넣어요. 이것은 반칙인데, 왜 그렇게 자꾸만 '나' 라는 것을 집어넣느냐 하면, 그것이 행함을 주장하는 이쪽 세계에서 이미 습관화가 되었기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습관화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믿어진다"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꼭 '나' 라는 것이 주체가 되어서 "내가 믿습니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믿습니다" 라는 것은,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그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누가 믿게 했습니까?

오늘 오전의 설교시간에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당신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라고, 그렇게 믿음 속에 '당신'을 넣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을 다음과 같이 해야되는데, "도대체 누가 당신을 믿게 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주체자가 '너'와 '나'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빠져나가야 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만 버릇이 되어서 "내가 믿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믿습니다" 라고 하면, 그 믿음은 어디에 해당이 됩니까? 그 믿음은 믿음으로 가지 못하고, 여전히 행함에 소속이 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통해서 행함을 제거하는데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 책에 기록된 사람들만 구원하기 위해서, 성경전체를 통해서 무슨 작업을 하는고 하면, 이 행함에 속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그 작업에 나서는데, 그러한 작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다니엘서'이고, '스가랴서' 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이번에 공부하려는 다니엘서와 스가랴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책이 다 그러한데, 즉 모든 인간의 행함을 제거하는데는 역사가 필요했고, 바로 그 역사는 행함을 죽이고 오직 책에 기록된 사람만을 구원한다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금 제가 이야기한, 즉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만 구원을 받고 행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유황불에 들어간다는, 그런 원칙을 가지고 제가 방금 어떤 이론을 제시했느냐 하면, "행함에 대한 모든 것을 역사를 통해서 다 제거한다" 라는 주장을 펼쳤다는 말입니다.

◈ 요한계시록과 김치 냉장고 !!

이러한 주장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에 걸쳐서 펼쳐지는 것이 바로 성경책인데, 그 중에 하나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우리 집에도 김치 냉장고가 있고, 여러분 집에도 있지 싶은데, 이 김치 냉장고에 김치 넣을 때는 김치를 미리 박스에 담아서 이 박스를 층층이 담는다는 겁니다. 물론 요즘 최신형은 좀 다를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1장에서 3장까은 그 당시 실제 역사였던 일곱 교회에 대해서 나오고, 그리고 4장에서 7장까지는 일곱인, 8장에서 11장까지는 일곱 나팔, 그 다음에 12장에서 14장까지는 여자의 아들, 그 다음 15장부터 17장까지는 일곱 대접, 그 다음에 18장부터 19장까지 바벨론 제국, 그 다음에 20장에서 22장을 보면 천년동안 왕 노릇을 하고 말입니다. 지금 대충 대충 쓰는데, 물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고 성질이 급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말은 바로 해야 되겠지요(ㅋㅋ).

◈ 역시 요한계시록은 어려워 ??

그런데 이것이 점선으로 되어있는데, 즉 김치 냉장고에 박스를 쌓는데, 4장부터 7장까지는 이렇게 더 쌓으면서 점선이 여기까지 나오고, 그 다음에 이쪽의 일곱 나팔은 이쪽으로 오면서 점선이 더 길어지고 이것은 짧아지고, 그리고 여자의 후손 중간쯤 되면서 점선이 계속 나오고, 15장에서 17장도 마찬가지 멀어지는데 점선 이렇게 나오고, 또한 바벨론 제국을 이야기할 때는 점선이 이만큼 나오면서 타고, 그리고 20장에서 22장은, 여기서 여기까지 다 차면서 점선은 또 이만큼 나오고 말입니다. (???)

여기서 말하는 점선은 무엇인고 하면, 이것이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인데, 즉 시작부터 마지막 끝 지점을 성경에서 이야기할 때, 마치 레일을 조금씩 조금씩 층층이 당기는 것처럼, 그렇게 처음에 역사에 대해서 강조할 때는, 여기 뒤에 나오는 이것을 남겨 놓으면서도, 즉 전체를 이야기하면서 남겨놨다가 점점 잡아당기는데, 그렇게 잡아당기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 요한계시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끝에 이를수록 끝 부분이 강조되면서, 초반부는 점선으로 남겨놓는다는 겁니다. 즉 점선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앞쪽에는 역사적인 것이 강하다면, 반면 뒤에는 초역사적이고 묵시적인 것이 굉장히 강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치 김치 냉장고 전체를 꽉 차게 만들 듯이 해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의 첫 장을 살펴보면,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즉 "나는 시작과 끝이다" 라고 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가사를 보니까 "A부터 Z까지" 라는 가사가 있는데, 혹시 아세요? 저도 어쩌다가 얼른 봤는데(?), "A부터 Z까지" 라고 말입니다. 그게 요한계시록의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라는 것을 패러디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겁니다.

◈ 왜 역사를 잡아당기는가?

다시 말해서, 같은 전체를 이야기하면서, 밑바닥에선 역사에서부터 점점 더 역사가 소멸되고 묵시로 진입하는 단계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올라갈 때마다, 즉 역사에서 묵시로 하나님께서 잡아당길 때마다, 거기서 극렬한 저항이 일어나는데, 그 저항의 속성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행함, 즉 행위가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역사를 쥐고 있는 사람이 묵시에서 잡아당기니, "왜 묵시에서 잡아당기는가?" 라고 하면서 붙잡는 자들이, 즉 "우리의 행함이 무엇이 문제인데?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왜 우리의 행함을 부정하고, 이 책에 기록된 자들만 구원을 받아? 그것은 있을 수 없어"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묵시적 비밀을 가리는 것이 곧 '죄' !!

바로 그렇게 붙잡고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즉 뭔가 역사를 붙잡는 어떤 악한 세력이 있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렇게 역사를 붙드는 악한 세력들은, 역사를 떠나서 묵시로 모든 것을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들은 가면 갈수록 극렬해지는데, 바로 이러한 행위를 두고서 '죄'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죄' 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비밀을 가리는 것인데, 즉 묵시적 비밀을 가리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밀' 이란 것은, 하늘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예정된 뜻으로, 즉 복음인데, 그런데 그것을 무엇으로 감추느냐 하면, 인간의 행위로서 감추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요" 라는 식으로, 자꾸만 하늘의 비밀을 희석시키려고 할 때, 하지만 그것이 곧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 묵시적 악 - 군주, 짐승 !!

그런데 이 죄가 묵시에 가까울수록 강렬해지면서 뭐가 딸려 나오느냐 하면, '묵시적 악'이 나온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직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죄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즉 행위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뒤에 배후에 숨어있던 악한 세력이, 즉 묵시적 악마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군주이고 짐승이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서 7장에 보면, 어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왔다는데, 물론 그 바다의 내용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비밀을 갖고 있는데, 하지만 그만 이스라엘이 이방의 풍습을 따르고 이방의 종교를 따라감으로 말미암아서, 비밀로 간직한 것을 스스로 놓아버렸다는 겁니다.

(단 7: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단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 묵시에 가까운 계시가 주어지면서, 악이 점점 더 !!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행위로 돌아서니까, 거기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묵시적 반발이, 점점 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계시가 계속해서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계시가 무엇인가요? 묵시에 가까운 계시가 주어지면서, 여기에 대한 그들의 숨겨져 있던 노골적인 신에 대한 반발이, 즉 은혜에 대한 반발과 같은 것이 점점 더 힘을 얻으면서 달려들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가면 갈수록 말입니다.

◈ 성경이 너무 어려워요 !!

이런 경우는 비단 요한계시록뿐만이 아닌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 등을 보면서, 모든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제일 답답해하는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한꺼번에 모두 다 연결을 해서, 오늘은 이 사건, 그리고 다음 사건, 그 다음 사건, 그렇게 해서, 마태, 마가, 누가가 다 틀리지를 않고 공히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즉 한 드라마의 한 대본처럼 깔끔하게 하면 참으로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하다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이야기하다가, 그렇게 뒤죽박죽이 되어서, 도대체 그것을 보고 이해를 하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성경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정말이지 마태, 마가,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를 보면 마무리가 깔끔하지를 못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고 하면 느끼는 것이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경우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만이 아니고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등도 마찬가지인데, 왜 마무리를, 즉 우리가 제일로 궁금해하는 "이 세상을 어떻게 끝장을 내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왜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차라리 80년도인가 히트를 친 '휴거' 라는 소설이 더 나은데, 그 소설이 더 정리가 잘 되어있다는 겁니다. 1992년 10월 28일인가요? 날짜는 잘 모르겠는데, 이장림 씨가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한 날이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돈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돈을 다 냈는데, 그런데 이장림 본인은 45억인가 따로 챙겨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면 직접 드리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ㅋㅋ).

◈ 바람은 그냥 불어오는 것 !!

다시 정리를 해보면, 사람들이 뭐든지 자기 몸에 맞추려고 하는데, 하지만 바람은 우리가 만듭니까? 바람은 전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바람은 그냥 부는데, 제 말이 맞지요? 바람은 그냥 불어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꽃도 빨간 것이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다가오게 되어있는데, 그러니 굳이 자기가 정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때에 대한 계시도,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못된 자아상이 있어서, 그런 하나님의 계시를 자기가 정리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말입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면, "너는 부산에서 불어온 바람이고, 그러니 거기에 서 있어라. 너은 창원에서 불어온 바람이고, 그러니 요기에 서 있어라. 또한 너는 대구에서 불어온 바람이고, 그러니 저기에 서 있어라" 라고, 그렇게 바람을 우리가 정리할 수 있습니까? 바람은 그냥 바람 마음대로 임의로 부는데, 그러니 "바람은 그렇게 못해도, 내 인생은 내가 관리한다" 라는 것은, 그건 말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 바람이 불어 교회당이 통째로 날아가도 !!

대구 강의를 할 때 그런 내용을 한 것 같은데, '바람 불어 좋은 날' 이라고, 사람들이 교회의 마루바닥에서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만 태풍이 불어서, 벽도 날아가고, 지붕도 날아가고, 그렇게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는데, 이제 남은 것은 바닥에 기도하는 사람만 있을 때, 과연 그것이 교회인지, 절간인지 어떻게 구분을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바람이 불어서 지붕이 날아갔다고 하면, 진짜로 신자라고 하면, 그것이 어디에 해당이 되는고 하면, 바로 "이 세상에서 오직 책에 기록된 자만이 구원된다" 라고 하는, 그것과 관련되어서 태풍이 불던 말던 간에 책에 기록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이해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비바람 쳐서 지붕이 날아갔다고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기도하라고 합니까?" 라고 대들면, 그것은 무엇을 가지고 대드는 겁니까? "내가 기도한다" 라는 것을 가지고, "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을 한다" 라는 거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바로 우리가 숨겨진 죄라는 말입니다.

◈ 죄 - 굳이 왜 내가 !!

다시 말해서, '죄' 라고 하는 것은, "왜 내가 이렇게 아이스박스에 얼음이 채우듯이 채워져 있는 요한계시록의 바람과 같은 질서를, 왜 내가 구태여 정리해야만 하는가?" 라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지 않아도 요한계시록의 바람이 와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입니다. 그 방식은, 오직 그 근거는 무엇인고 하면, 다니엘 12장 1절의 말씀처럼, 책에 기록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즉 요한계시록 전체가 바람이 불어오듯이 나에게 부딪친다는 겁니다.

그렇게 믿고 받아들이면 될 텐데, 왜 내가 거기에 '나' 라는 인간을, 즉 자아를 집어넣어서 정리하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정리하려는 의도가 뭡니까? 정말이지 수상하기 짝이 없는데, 정리를 해서 뭘 할건데 말입니다. "내가 마지막 때를 알아야 되겠다" 라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네가 뭔데? 네가 왜 알아야 되는데?" 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바람은, 우리 인간의 의견을 들을 이유가 없어 !!

사실은 부는 바람의 경우에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자나갈 때 제자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떻게 바람과 파도도 예수님에게 순종을 하는가?" 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곳에는 바람과 파도도 순종하는데, 왜 '나' 라는 몸에게는 바람과 파도가 전혀 순종을 하지 않는가?"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바람과 파도가 우리에게 순종을 하지 않습니까? 구원받는 책, 즉 생명책은 우리와 관련된 것이 아니고, 그 리스트를 작성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숙의해서 적어놓은 책입니다. 그러니 구태여 우리에게 의견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정낙원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했는데, "풍랑이 이는데 예수님이 주무신다. 거기에서 제자들이 할 것은, 바람이 불고 배가 뒤집어지면 각자 모포를 들고 예수님 옆에 베개를 놓고 같이 자면 된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같이 자면 어떻게 되지요? 바람이 불어서 배를 뒤집으면 예수님도 죽고, 제자들도 같이 죽는데, 그것이 바로 다니엘 12장 2절에 나오는 티끌로 돌아가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 드라마의 끝이 아닌데, 다니엘 12장 2절에 의하면, 티끌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됩니까? 다시 도로 살아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되는데, 이 세상 모든 걱정이 끝나버렸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문제를, 왜 구태여 '나' 라는 것을 집어넣어서, 왜 내 몸도 아니고 주님의 몸인 우리 안에 말썽을 일으키느냐는 겁니다. 왜 자꾸만 말썽을 말입니다.

◈ 엄마, 잡채를 맛있게 먹겠습니다 !!

예를 들어서, 엄마가 잡채를 만들어주면 그냥 곱게 먹으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괜히 요리도 못하는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소금 더 넣고, 후추를 안 넣을 때 구분도 하지 않고 마구 넣으면, 어디 그렇게 해서 그게 음식이 되겠습니까?

◈ 다니엘서는 '쥬라기공원' ??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다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즉 책에 기록된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다니엘 12장 1절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꼭 '내가' 나서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인간 몸을 좌우하는 다른 세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인데, 즉 "악마야. 그만 숨고 나와. 숨바꼭질할 시간이 이제 끝났어. 세상은 끝났어. 빨리 나와. 바다에 있는 놈아, 어서 나와 빨리"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어 나오니까 그것이 곧 짐승인데, 그래서 이 다니엘서 전체를 보면 완전히 '쥬라기공원' 이라는 겁니다.

◈ 갈수록 묵시는 가깝고, 역사는 희미해지면서 점선으로 !!

요한계시록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묜 다음과 같은데, 그건 요한계시록뿐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종말을 이야기할 때 전부를 다 층층이 구조로서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즉 가면 갈수록 묵시는 가깝고, 역사는 희미해지면서, 즉 점선으로 남겨버린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이 처음에는 역사로 시작해서 "반드시 예루살렘 성은 불탈 것이다" 라고 해놓고, 점점 뒤에 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고, 인자가 구름 타고 온다" 라고 하는 겁니다. 즉 층층이 묵시에 가깝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층 하나가 하나가 더 보태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가 전체를 전부를 다 커버한다는 겁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를 다 말입니다.

◈ I am a card !!

사람을 그릴 때 대충 선으로 그리면 이러한데, 사람을 제가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걸 포커를 하는 카드로 봅시다. 그렇게 카드를 보면, "I am a card" 라고, 즉 "나는 카드이다" 라고 하는데, 즉 눈, 코, 입이 이렇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들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해서 성경을 이야기하니까, 즉 모든 성경을 일단은 자기를 거쳐서 해석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카드를 옆으로 한번 세워보세요. 카드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필름처럼 막이 되겠지요. 그렇게 막이 되어버리면, 이렇게 정면으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이렇게 옆으로 해서, 즉 막으로 하면 보인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쪽에서 서로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겁니다. 즉 이쪽에선 악마가, "너는 내 거야" 라고 하고, 반면에 저쪽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것이야" 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카드와 같이 막으로 되어있으니까, 서로가 잡아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나는 카드다" 라고 하는데, 즉 혼자 카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악마는 이런 고백을 듣지 않고 "너는 무조건 내 거야"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도, "나는 무엇입니다" 라는 것을 거부하는데,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너는 값으로 샀기에, 내 것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인간은, 매일같이 정면(앞)으로 서는 카드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고 하니, 만날 이렇게 되는데, 즉 우리는 옆으로가 아니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해석도 내가 당연히 알아야지요" 라고, 그렇게 일단은 자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답시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를 일단 거쳐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걸 그만 이렇게 옆으로 세워버려요. 그렇게 옆으로 세워버리니까, 이거는 두께가 1미리도 안 되는데. 마치 얇은 LED TV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 필름이 너무나 얇기 때문에, 여기에다가 어떤 이미지를 담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정면으로 봐버리면, 모든 것이 다 이미지가 되는데, 그 이미지가 무엇인고 하니, 상상이고, 착각이고, 환상이고, 그래서 인간은 매일같이 하는 것이 공상이라는 겁니다.

옆으로 서게 되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런데 정면으로 보게 되니까, 여기에서 자기가 상상한 것을 가지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카드처럼 옆이 아닌 앞으로 보게 되면, 여기에는 무엇이 작용하는고 하니, 시간관이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 인간들의 시간관 - 과거, 현재, 미래 !!

이 시간관은 여러분이 지금 피곤하더라도 꼭 알아둬야 하는데, 이 시간관을 모르면 묵시개념이 풀리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관이 무엇인고 하면, 쉽게 하겠는데,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으로 말입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시간관은, 처음에는 과거로부터, 그리고 현재로부터, 그렇게 해서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시간관은 과거에 있었던 것에다가, 그것에 마일리지로 쌓여서 현재가 되고, 또한 현재를 통해서 미흡한 것을 채운다는 식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 말은 과거가 반드시 원인이 되고, 그 원인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행함을 하게 되면, 미래에 내가 기대한 것이 획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생각하는 '시간관' 이라는 말입니다.

◈ 과거의 노동이, 곧 지금의 '나' !!

그러면 '나' 라고 하는 것은 누가 만드는가? 과거의 노동한 것이 지금의 '나'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아이 엠 어 카드" 라고 할 때, 그래서 이렇게 앞으로 보고 있을 때, 그런데 이것을 옆으로 딱 돌려버리면 무엇이 날아가 버리느냐 하면, 원인과 결과의 소속이 전부 하나님 소속으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여기 이렇게 옆으로 하면 폭이 좁아서 이런 기존의 시간관을 가질 여유가 없기에, 그런 이것은 그냥 막 통과해버린다는 겁니다.

◈ 참새에게 과연 창고가 있는가?

참새가 자기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창고를 누구에게 지어달라고 누구에게 부탁한 적이 있습니까? 없지요. 참새끼리 모여서 "야, 저 곡식을 많이 먹기 위해서 이쪽에 경남 지방에다 창고를 하나 짓자" 라고, 마태복음에 보면 그런 것이 있어요? 참새가 창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참새는 분명히 창고가 없는데, 그러나 누가복음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창고를 짓는다는 말은, 이 카드로 말하면, 이렇게 옆으로 보지 않고 이렇게 정면으로 바로 본다는 겁니다. 이렇게 정면으로 보니까, 창고 있음이, 즉 여기 있는 창고에다 자기 미래를 담아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내 영혼, 걱정하지 마라. 내 장래까지 창고의 곡식으로 넉넉하게 먹고 살 수가 있다" 라고, 그렇게 일방적인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여기다 모두 다 담아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 카드를 그만 옆으로 돌려버리면, 여기에 실을 것이 뭐가 있어요? 이렇게 폭이 좁은데 말입니다.

◈ 인간은, 악마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증거물로서 !!

그렇다면 여기 양쪽에서 마귀는 마귀대로, 또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서로 통과를 하겠지요. 통과하게 되면 현재 '나' 라는 입장은 무엇인고 하면, 마귀와 악마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즉 "악마는 이런 놈이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물로서 유지될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도 사라지고 하나님도 사라지는데, 왜 그런가요? "마귀는, 자기 노동의 원인으로서 하나님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오랜만에 어려운 말을 하나 해봤는데, 즉 하나님은 내가 원인이 될 경우에만 포착이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내 노동의 원인이 되지 아니하면 그 어떤 결과도 인정할 수 없기에 말입니다.

◈ 데카르트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란 사람이 이런 이야기했는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말입니다. 즉 "내가 생각한다는 자체를 봐서 다른 것은 없애도 이것만은 없애지 못하는데, 곧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데카르트님, 그러면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하면, "내가 죽으면 하나님도 없다" 라고 하는데, 즉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원인을 주니까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한다는 겁니다.

◈ 나는 나훈아의 '무시로'가 좋아 ??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만약에 나이가 90살에 치매에 걸렸다면, 그래서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간에 완전히 두뇌 시냅스가 망가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가 와서 뭐라고 해도, 목사님이 와서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해도, 그 사람은 그렇게 심방을 갔던 목사님을 보고도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한다면,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말입니다.

* A : 권사님이 좋아하는 찬송가를 틀어드릴게요.
* B : 찬송가 말고, 나훈아의 '무시로'를 틀어라.
* A : 이건 평소에 권사님이 제일 좋아하던 찬송가인데요?
* B : 듣기 싫다.
* A : 그러면 성경말씀을 읽어드릴까요?
* B : 싫다. 예수 이야기를 나한테 이야기하지 마라.

◈ 예수와 하나님도 '나'의 창조물 !!

그럼 그전에 예수와 하나님이 무엇인고 하면, 내가 생각했던 하나님과 예수라는 것이 나에게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 정보가 누적이 된 겁니다. 그렇게 누적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아프든지 죽어버리면 내 몸과 같이 그것도 홀라당 다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그것을 줄여서 이야기하면, "내가 생각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떤 하나님도 나는 거부한다" 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우선이 아니고 내가 우선이다" 라는 것이고, 또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는 것인데, 즉 자기는 스스로 있고, 예수와 하나님은 그런 자기의 창조물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이쿠 목사님, 딴 사람들은 몰라도 저희들은 안 그렇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지 안 그런지는 복음을 전해보면 알아요. "여러분, 어떤 행위도 관계없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그렇게 전했을 때, 만약에 평소에 자기 행위를 염두에 둔 사람이라면, "그러면 내 행위가 아무런 소용이 없네요" 라고 하는데, 당연히 아무런 소용도 없고, 사실상 그런 것을 물을 가치도 없다는 말입니다.

◈ 야, 기분이 더럽게 나쁘네 !!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목사님, 제가 지금 무척 기분이 나쁜데요. 당신이 이런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왜 합니까?" 라고 나오기 십상인데,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 무엇하다" 라는 것이 성경책에 없다는 겁니다. 아까 본 요한계시록 안에 포함되어있지 않는데, 즉 "내가 기분이 나쁘다, 기분 좋다" 라는 것 등은, 그런 것은 성경에 없는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오면, "야, 바람이 분다" 라고 하면 될 것을, 꼭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바람이 부는 것을 안다" 라고, 꼭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즉 기어이 남은 몰라도 자기는 안다고, 그렇게 거기에 '나'를 집어넣는다는 말입니다.

◈ 똑바로 서, 똑바로 서 !!

다시 말해서, 자꾸 주님께서는 뾰족하게 세우려고(?), 옆으로 이렇게 막이 되게 서도록 하는데,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무슨 더러운 버릇이 있는지, 자꾸만 정면으로 서려고 한다는 겁니다. 즉 "똑바로 서, 똑바로 서" 라고, 만날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옆으로 서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고,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또 이렇게 정면으로 펼치면 "내가 과거에 이런 일을 했으니까, 내가 이런 기도를 했으니 이런 응답을 받는구나" 라고, 또 여기에다 자기의 시간론을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묵시가 역사를 잡아당길 때는 그런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의 몸하고 싸워야 되는데, 물론 시간론과도 싸워야 되고 말입니다. 또한 우리의 몸 중심으로 하는 성경해석과도 싸워야만 되고 말입니다. 그렇게 싸울 것이 어디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 '70이레'의 경우에, '이레'는 창조단위 !!

또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다니엘 9장에 보면, '70이레' 라는 것이 나오는데, 제가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보겠는데, 제가 그냥 강의진도를 나가면, 여러분이 몰라도 그대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제가 지금 하려는 질문이 무엇인고 하니, "이 70이레가 과연 여러분이 아는 경우에만 70이레가 들이닥칩니까? 아니면 몰라도 70이레가 진행됩니까? 어느 쪽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보기를 드리겠는데, 1번은, "알아야 70이레가 진행된다" 라는 것이고, 2번은, "아니다. 내가 몰라도 진행이 된다" 라는 것인데, 여기서 정답은 몇 번입니까? 당연히 2번인데, 그러니 여기에다 '나'를 집어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이레' 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의 '창조단위' 인데, 그런데 이 창조단위는 누구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창조단위이니, 당연히 창조에 관여한 몸만이 해석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창조에 관여한 몸만이 말입니다. 그렇지요?

◈ 어릴 때 울면 노래를 잘해요 ??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1살 때의 기억은 누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기억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엄마가 기억하지요? 왜냐하면, 엄마가 창조자(?)이기 때문에 기억을 한다는 겁니다. 아무튼 예를 들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1살 때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거기에 대한 해석을 누가 합니까? 당연히 엄마가 하는 겁니다. 물론 아빠는 옆방에서 쿨쿨 자고 말입니다. 즉 1살 먹은 아이가 해석을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 애가 10살이 되어서 엄마한테 듣는데, 즉 "너는 1살 때에 종종 밤새도록 울었단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해석을 받고 난 뒤에, 즉 10살 때 몸이 10살 때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분명히 엄마가 이야기할 때는 1살 때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런데 엄마 말고 딴 몸이 되는 10살이 되는 자기가 자기 몸을 가지고, 그것을 다시 재해석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때 내가 울어도 늘 울었겠는가? 아마 울어도 신사답게 울었겠지"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친구에게는 "나는 1살 때 울었단다. 그런데 그때 자주 운 사람은, 노래도 정말 잘하고 머리도 엄청 좋데. 아마 나는 울어도 그렇게 엄마 애를 먹이지 않고, 점잖게 울었을 거야" 라고,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겁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요. 그러니 엄마도 "너는 1살 때 심하게 울었다" 라는 것은, 사실은 엄마가 평생에 혼자 지니고 있다가 돌아가실 때도 혼자 알고서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제 3자에게(?) 이야기해봤자 전부다 왜곡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 아하, 이것이 바로 '70이레' 구나 !!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그러니 성경 자체도, 여기 이 '70이레' 라는 해석은 사실 주님만 해석을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해석을 못한다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할 권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70이레에 있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고 하면, 무엇이든지 무슨 일이 벌어지면, "아하, 이것이 바로 70이레구나. 그것이 70이레에 포함이 되었구나" 라는 식으로, 그렇게 알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최고의 멋진 해석이라는 말입니다.

◈ 70이레 = 7이레+62이레+1이레 ??

다니엘서의 '70이레' 라는 것은 나누어보면, '7'과 '62', 그리고 '1'이 되는데, 그렇게 되니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하는고 하니, "7 다음에 62가 되고, 또 62 다음에는 1이 되는구나" 라고 알고 있는데, 그러나 그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레' 라는 것이 붙어있고 그 앞에 숫자가 있으면, 그것은 마치 그 전체가 김치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박스처럼, 그 전체가 7이레고, 그 다음에 밀려서 62이레가 되고, 그러면 여기는 점선으로 이만큼 남아있는데, 그것이 또 밀려서 이 전체가 1이레가 되면서, 즉 1이레가 전체를 모두 다 포함한다는 겁니다.

◈ 7일 창조와 70이레 !!

왜 그런고 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를 며칠만에 했지요? 창조를 7일만에 했는데, 그렇게 7일만에 창조하신 분이, 70이레라는 계시를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7일만에 창조했던 그 원리를 가지고서, 70이레를 분명히 여기 이 세상에다 적용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7일 동안에 창조할 때, 뭔가 그 창조에는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점차 점차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 방향이 이어지는고 하니, 처음에는 천지창조, 즉 자연물에서 하다가 점차 가까이 가면 갈수록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마지막 최후에 창조된 어떤 인물에 관심이 집중이 된다는 겁니다.

◈ 이제 코로 호흡하는 놈들은 다 죽었어 !!

영 표정들이 떨드럼한데, 혹시 창세기 1장 안 읽어보셨습니까? 어떤 인물에 관심이 있으면서, 6일째 정도가 되면 코로 호흡을 하게 되어있는데, 즉 6일째가 되면 같은 동생들(?), 그러니까 같은 짐승들은 코로 호흡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창세기 7장 22절을 보면, 노아홍수가 무엇을 죽입니까? 물고기를 죽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비둘기를 죽이는 겁니까? 까마귀를 죽이는 겁니까? 아니면 꽃을 죽이고 들풀을 다 죽이는 겁니까? 창세기 7장 22절에 의하면, 코로 숨쉬는 놈은 다 죽였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창 7: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창 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그러니 그만큼 이 노아홍수 자체가 이미 묵시의 세계로, 창세기보다도 한 발자국 더 앞당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노아언약을 깨보면 그 안에 뭐가 들어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레', 즉 창조의 7일이 다 담겨있는데, 그래서 이 '이레'를 두고 창조의 단위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 좀더 쉽게, 쉽게 !!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아깝지만 제 머리카락이라도 좀 뽑아서 나눠드릴까요?(ㅋㅋ) 지금 진도를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지금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제가 다시 반복해서 쉽게 한번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람이 분다" 라고 할 때, 사실 그것은 바람이 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내가 바람을 맞는다" 라고, 거기에 '나'를 굳이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바람이 불면, 그것은 "야, 창조된 바람이 부는구나" 라고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바람이 왜 부는가?" 라는 문제는, 이렇게 정면으로 서 있지 말고, 이렇게 옆으로 서 버리면, 하나님께서 그 창조하신 것들 중에 하나가 누구입니까? 마지막 6일에 창조할 때 누구를 창조했어요? 사람을 창조했지요. 그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창조의 원리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이렇게 '해운대' 라는 바다가 있고, 해가 있고, 달이 있고, 또한 별을 주신 것은,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제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서면, 태양이나 별이나 '나'나, 모두가 다같이 하나님이 창조했던 창조작업의 하나의 대상이 되어서, 그래서 같이 파묻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이렇게 옆으로 서 있지 않고, 이렇게 정면으로 서 버리면, 그 다음부터 내가 무엇을 보는고 하면, 그만 저 태양을 바라보게 된다는 겁니다. 같이 파묻히지 않고 말입니다. "야 태양야, 너 개기일식을 왜 하는데?" 라고 하면, 태양은 말하기를, "니가 왜 관여하는데"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물을 보고는, "어이 물, 이리 나와봐. 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데?" 라고 하면, 물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든 니가 왜 간섭하는데"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뭐라고 합니까? "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옳지. 전기를 만들라고 하는 하나님의 지혜이구나" 라고 하는데,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느냐는 겁니다.

◈ 아무튼 옆으로 서서, 통과 또 통과 !!

그것이 아니고 옆으로 서게 되면, "야, 마치 바람이 불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었구나" 라고 하면 되는데, 그 다음에 우리는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 그 다음 조치가 뭡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은 저에게 어떤 조치를 가할 건데요?" 라고, 그렇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면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몸은 주의 몸이니, 하나님이 요한계시록까지 가득 담겨있는 전체 말씀을 가지고, 그 다음에 나에게 어떤 식으로 퍼부을 것인가?" 라고 하면서, 우리가 그냥 바람을 받듯이, 그냥 그렇게 받아서, 그 다음에 통과, 또 통과, 그렇게 이 세상을 향하여 통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를 증거하는 것인데, 즉 "야, 나에게 이런 것이 왔거든. 니는 들어봤나?" 라고 증거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간에서 이렇게 정면으로 서게 되면, 그래서 자꾸만 쥐면 소유가 되니 그만 골치가 아파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아니라 이렇게 옆으로 서면 통과, 또 통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 야, 8명이 다 탔지? 그러면 '오라이' !!

지금 모든 교회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고 하면, 통과를 시키지 못하고 쥐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베드로후서에 보면 나오는데, 노아방주에 구원을 받은 자가 오직 8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전세를 낸 차는, 아니 그 배는 분명히 크기 때문에 한 4000명 정도는 넉넉히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8명 타니까 그냥 '오라이' 라고 하면서 출발을 시켰다는 겁니다.

그때 누군가가 "하나님, 빈 좌석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왜 노아방주의 문을 닫습니까?" 라고 물으면, "야, 너 이리 나와. 엎드려 바쳐. 너는 도대체 어떤 근거에 의해서 이것이 빈 좌석으로 보는가? 내가 보니까 8명으로 그만 꽉 찬 걸로 보이는데, 너는 왜 비어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하늘나라가 비어있는가?

사도행전을 공부해보면, 거기서 교인들이 제일 크게 오해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사도행전 1장에서, 성령이 임하면 하늘나라가 확장된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는 그렇게 확장될 성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에는 공간개념이 없는데, 그러니 당연히 확장이란 개념은 없고, 오직 수직적인 개념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어버리면, 그것은 칸트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즉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갖고 있으니 비어있다고 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결코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하나님에게는 '꽉 참' 만이 !!

인간은 그렇게 자기 혼자 있다고 여기니 비어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한 사람만 있어도 꽉 찬 것이고, 두 사람이 있어도 꽉 찬 것이고, 또한 세 사람이 있어도 꽉 찼다는 겁니다. 즉 혼자서 구원을 받아도 구원을 확실하게 다 받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몸이 중립이 아니고 이미 악마로 물들었다는 사실을, 뾰족하게 옆으로 서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즉 이렇게 정면으로 서기 때문에 악마는 없다고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자기가 악마가 있기 위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자기가 신내림을 받았다면 !!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만약에 신내림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래서 자기가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악마는 있다고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자기의 과거 경험에 의하면, 자기는 신내림 받았으니까 말입니다. 즉 자기가 뭔가 한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1950년도에 신내림을 받아서 악마가 있다고 했다가, 1958년도에 교회에 나온 뒤에는 악마가 없다고 했다가, 다시 1960년도에 신내림 받아서 악마가 있다고 했다가, 1970년도에 다시 교회에 나와서 악마가 없다고 했다가, 또한 앞으로 뭐라고 할지 미지수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은 그 사람은 본인도 모르고 말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그렇게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겁니다. 되풀이해서 계속해서 발전하면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근본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보다도, 그 기준이 자기의 행위로 인한 창조에 있는 이상, 그런 사람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 사람은 그냥 자기 행함에 대해서 놓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 회개하라 !! - 행함을 치워라 !!

이것만 더하고 10분 쉬겠는데, 성경에서 '회개하라' 라는 말이 무슨 뜻인고 하면, 즉 이번에 공부하는 다니엘 70년 포로생활에서 회개라는 말은 무슨 뜻인고 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즉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된 것을 가지고 다시 이방인처럼 행함으로 나온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늘의 비밀을 우리의 행함으로 가린 것인데, 바로 그것에 대해서 회개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인간의 그러한 행함은 바로 하늘의 비밀을 가렸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당연히 철거를 해야만 되겠지요. 그런데 그 철거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곧 '환난' 인데, 그러니 철거할 때 누구도 같이 철거가 됩니까?

본인이 스스로 이렇게 뾰족하게 한 몸을 가지고, 즉 이렇게 정면으로 서서 바로 자기가 뭔가를 한번 해보겠다고 하는 바로 그 몸, 그것도 역시 하늘의 비밀을 가리우는 죄가 되기 때문에, 그 몸도 역시 와장창 다 날아가 버린다는 말입니다.

◈ 짐승은 특별 초청 손님들 !!

그렇게 해서 그 몸이 날아갈 때,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작용이 바로 환난이고, 이러한 환난이 일어나도록 돕기 위해서 특별히 초청된 손님을 두 글자로 '짐승' 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짐승들께서 오셔서, 그것도 노시는 바다에서 친히 육지로 방문하셔서, 모든 인간의 행함이라는 몸을 다 죽여버리는, 그런 훌륭한 일들을 하시는데,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목 베임을 받은 자가 이미 구원을 받았느니라"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 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이제 10분을 쉽시다.

2009,10,09 오후 4시 10분에 다시 정리

목사님의 목이 벌써 다 쉬었는데, 어떻게 하지?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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