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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출애굽기 17장 주석자유게시판출애굽기

출애굽기 17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22.99.120.158)

출애굽기 17장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이 진행하는 노정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점을 고려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스라엘답게 변신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이동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은 평소에 쉽게 생각하고 있던 식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있으면 적어도 물이 떨어져 우리들이 목말라 죽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이 있고 없고의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계시고 아니 계시고를 멋대로 결정하고 있다.

이러한 백성들의 불평에 대하여 하나님의 비천성을 다시 재현해 주신다.

목동 출신의 모세는 아직도 지팡이를 들고 있다. 양들이나 후리는 평범한 지팡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이는 데는 더없이 적절하다. 마찬가지로 물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오직 돌만 산재해 있는 광야에서 비천한 것들을 통하여 더욱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여호와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그 바위에 지팡이를 대게 한다. 바위를 내려치는 지팡이. 여기에 동원된 도구들은 둘 다 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바위를 내려치는 그 모세의 행위는 물과는 상관없지만 애굽의 강물을 내리친 행위와는 상관 있다.(7:19)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온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있었어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게 하므로 전에 애굽의 강퍅함을 징벌하기 위하여 애굽의 강물을 치던 그 심정으로 이 광야에서는 돌을 쳐서 물을 내게 했다. 따라서 그냥 물로서가 아니라 그 물이 반석을 침으로 말미암아 터져 나온 물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은 현재 이스라엘을 애굽과 같은 차원에 놓고 고발 내지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그 뒤의 사건에서 드러나는데 갑자기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덤비게 된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그들을 맞이하여 싸우라고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그 지팡이를 들고 산 위로 올라간다. 모든 백성들이 다 볼 수 있게

여기서 왜 갑자기 아말렉이 등장했는가? 아말렉은 이 지구상에서 철저히 최후의 하나라도 살아 남아서는 아니 될 민족으로 성경에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매우 특이한 민족이다. 그런데 그러한 멸종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의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 만약 그들을 멸종 시키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비 이스라엘다운 것이 된다.

이들과의 첫 번째 만남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이란 단순히 전쟁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이는데 여호와의 능력을 무시하는 자들은 결코 이 지상에서 존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실 예로써 여호수아가 아무리 산 밑에서 열심히 전투를 수행해도 모세 손에 들려있는 지팡이가 내려가면 그만이다. 전쟁의 승패는 산밑에서 인간의 손에 달려있는게 아니라 산꼭대기의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점이 이스라엘을 앞장세워 전쟁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의 특성이 된다.

지팡이라는 비천한 물건이지만 중요한 것이 그 물건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다. 그것을 사용하셨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고린도 전서 1:25에 나와 있다. 사람들이란 약해 보이는 것이면 언제든지 무시하는 버릇이 있다. 이 무시로 인해 인간들의 마음은 한껏 강퍅해지기 십상이다. 애굽에 내린 재앙의 특징중의 하나는 결국 바로왕이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그 神 여호와를 얕잡아 봤다는데 있다. 애굽 군대의 홍해에서의 멸망사건을 하나님은 아말렉을 동원시켜 재현해 보이는 것이다.

즉 지금 너희들이 누구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을 다시 주지시키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의 동행이란 결코 애굽적인 발생과 일치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사고방식과 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우선적으로 신경 쓸 일이다. 교회가 세상을 이기기 위해 똑같이 세상적인 것을 내어놓고 경쟁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불신앙적 현상은 그리스도가 더 할 나위 없이 무능해 보일 때 반드시 일어난다. 말보다 행위의 열매가 그 증거가 된다.

17:1- 7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노정대로 움직였다. 그들이 그 점에 대해서 불순종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실 물이 없다는 사실 또한 확실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마실 물조차 주지 않으신 것은 왜 이들 인간들이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움직이게 될 경우에만 우리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죄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죄 속에 들어와 있기에 죄가 나오는 법이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감추고 싶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나열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백성들에게는 눈에 그저 모세와 아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대리해서 인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던 참 하나님과 동행하는 운명이 되었다.

그들이 구상했고 상상했던 세계는 이제 잊어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감히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신세계로 인도함을 받는다.

이 광야 코스를 통과하는데 있어 인간이 시도할 수 있는 지혜나 능력은 없다. 그저 노정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다. 인간들이 이해하고 납득될 수 있고 스스로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은 전무하다. 이곳에서는 종교도, 학문과, 용기도, 덕도, 지혜도, 재주도 건강도, 협동심도 아무 소용없다.

그리고 도움이 되지를 못한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피어 오르는 그 노정대로 끌려가야 한다. 다른 여지는 남아있지 않다. 인간들의 수완이나 나름대로 해결책을 강구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저 그들을 이끌고 계시고 백성들은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사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체험시킨다. 죽음이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을 말한다.

과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우선 살아있고 그러하기에 자기처럼 살아있는 어떤 분에게 도움을 청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계속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재촉을 받는 상태라면 과연 그 노정을 따르겠는가?

인간의 희망이란 어디까지나 생명이요 삶의 세계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이 부지런하게 살아있는 가치를 발휘하는 그런 미래를 염두에 둔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최고의 치욕이다. 차마 외면하고 싶은 상황이다.

이스라엘 군중들은 바로 그런 상황을 계속 더 깊게 대하게 되었다. 노정대로 명령대로 인도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다가오는 것은 죽음의 공포요 위협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이 왜 일이 자꾸만 꼬이느냐 말이다. 어떻게 해서 갈수록 사는 길이 희박해지는 것인가? 그것은 진짜 하나님께서 죽으시는 그 현장에 접근하기 때문에 그렇다.

모세가 호렙산의 불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본 적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모세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접근을 허용하고자 하신다. 하지만 그 접근은 거룩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다. 그곳은 곧 죄를 지은 인간의 근원의 자리이기도 하다.

종교란 장식이요 취미의 일종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종교 장식품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즉 현재 인간들이 벌리고 있는 모든 종교는 다 거짓된 욕망의 불꽃축제에 해당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이 합류되고 있지 않다.

로마서 6:3-4에 보면,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늘 실감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이 땅에서 죽을 수 있을까? 인간들에게는 그런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죽은 순간까지라도 자신에게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자기에게 합당한 존재성이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죽게 되는 영광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고 동행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죽음에로의 초대를 받고 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거기로 향하는 조명탄이다. 인간들은 왜 하나님께서 자기 죽음에로 초청하는지 모른다. 그저 삶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에, 즉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찾을 길이 없기에 원망만을 가득 안은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인간의 원망에 대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전에 호렙산에서의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원망이 가득 찬 백성을 뒤로 두고 있는 백성의 대변자요 대표자로 서 있다. 백성들을 진정으로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는 이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온 몸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그것은 백성들의 원망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무너지는 것이다. 즉 죽는 것이 무섭다고 성토하고 있는 그 백성들로 인해 구원자께서 친히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다. 왜 이런 극단적인 방식이 동원되는 것일까?

그것은 백성들은 생명의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쪽에서 저쪽으로 통할 수 있는 문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문이 없는 채로 그냥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살려주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 쪽에서 제시한 긍휼로만 가능하다. 죽을 자는 죽고 살 자만 살리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조치다. 바로 인간들의 죄악성으로 인해 인간은 그냥 이 광야에서 마땅히 죽어야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에 맞아 죽으시는 것이다. 이로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자신을 살려낼 정당한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죽은 현장에서 생명수가 솟아 올라온다. 그것은 곧 단절된 장벽이 뚫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살 수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사는 일이 일어나고 개시된 것이다. 완전한 죽음 뒤에 맛보는 생명의 물이다. 물이 있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에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천국이란 바로 이 원리에 의해서 조성된 나라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 남고 나머지는 전혀 필요치 않는 세계가 천국이다. 즉 죽음의 광야에서 천국이 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제 코스대로 백성들을 인도한 것임이 확연해졌다.

실수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 쪽으로, 즉 하나님의 죽음이 기다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 코스였다. 빌립보서 3:10-11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런 고백을 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이 코스를 우리가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17:7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부활의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인간이 자기 신체성을 갖고 얼마나 애착과 집착을 보이느냐 하는 점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구약 욥기에 보면, 악마가 욥을 공격하는데 있어 욥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근거로서 욥의 신체성을 든다.

욥에게 신체적인 압박을 가하면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믿음이란 인간의 신체성을 이긴다'라는 쪽으로 악마에게 내기를 거신다. 만약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악마가 승리하는 셈이 된다.

과연 이 인간 세계가 바로 그렇다. 악마의 예상대로 움직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체성을 건드리게 되면 하나님마저 모욕하고 얼굴 돌리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종교성, 이런 신앙성이라면 악마에게 현재 굴복 당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악마는 예수님에게로 달려들었다. 예수님께서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약점으로 간주해서 공격해 온 것이다. "아무리 메시야 사역도 중요하지만 먹을 것은 먹어야 할 게 아닌가"라고 하면서 유혹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유혹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메시야 사역을 수행했다. 마치 예수님은 자신의 신체성을 애초부터 포기한 듯한 삶을 사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 리가 없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신체성을 업고서 그 신체성에 대해서 유지하고 지탱하려는 노력만 경주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수고'이다.

시편 127:1-2에 보면, '수고'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나온다. 사람들이 열심히 수고하면서 인생을 살아도 그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기 집착이 곧 하나님께 원수 노릇을 하게끔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다.

육을 위하여 심는 자는 반드시 영의 일에 대해서 반감과 배척과 공격을 단행하게끔 세상은 그런 식으로 짜여 있다. 즉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실은 아예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는 양상으로 세상은 흘러가고 있다.

이 모두다 악마와 예수님과의 전쟁, 곧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전쟁으로 인해 생긴 양상이다. 자기 신체를 스스로 살리고자 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필히 악마 편을 들어서 하나님에게 대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본문은 '죽음 안에서' 바라본 세상의 진면목이다.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죽지 아니하면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세계를 유지하시면서 침투된 세계 안에서 이스라엘을 다루고 계신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어도 자신의 죽음이 안에서만 하나님과 대면케 되는 실정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사실도 모르고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자신의 수고와 노력도 살아있는 처지에서 하나님에게 접근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연적으로 악마의 종이 되어 하나님에게 시비 걸고, 달려들고, 비난하고, 자기 입장을 확정 짓기 위한 관점으로 하나님이 과연 자기들과 함께 있느냐 없느냐를 측정하려 했다. 그 측정을 가지고 '시험'이라고 한다.

일종에 자기 쪽에서 하나님을 쑤셔보는 것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차원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쑤셔보는 그 당사자들은 자신이 엄연히 살아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3:1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는 이미 '죽은 자' 취급을 받듯이 이제 신체성을 가진 인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죽은 자 취급을 받게 된다. 그것은 헌 신체성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에게는 소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른 자신의 신체성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신체성으로 덧입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분은, 어떤 영역에 속했느냐를 가지고 따지신다. 신체성을 지닌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수고하는 자들은 모두 죽은 자에 해당된다. 반면에 이미 살아 계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은 모두 산 자에 해당된다.

갈라디아서 6:8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했다. 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되어 있다.

이미 믿음을 가졌기에 새삼스럽게 자기 신체성을 통한 믿음을 획득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신체의 수고와 노력을 동원한 신앙은 결국 그 신체가 다친다고 느끼면 즉시로 다시 신체성으로 되돌아가는 속성을 지닌 가짜 신앙이다.

17:8-16

하나님은 아말렉 민족으로 하여금 광야에 무방비로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케 한다. 물론 나름대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장군으로 하여금 적과 전쟁을 하도록 하신다.

이런 식의 전쟁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데 의의가 있다. 즉 일회성 전쟁으로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아말렉과의 전쟁은 이 우주의 두 노선은 근본 원리를 규정짓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16절에 보면,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라고 되어 있다. 즉 전쟁이 끝났다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에 대한 전쟁인가?

그것은 힘과 힘의 전쟁이 아니라 힘을 내세우는 진영과 있는 힘도 의지하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진영과의 전쟁이다. 진짜 하나님 살아 계심의 특이성은 여호수아 장군의 칼 솜씨에 의존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용기와 기백과 지혜와 날렵한 칼 솜씨와 강건한 체력을 더하사 승리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적인 완력과 전혀 상관없는 분으로 아말렉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계획을 세워놓은 방식을 그대로 추진시키는 하나님으로 인해 최종 승리를 가져오게 하신다.

모세에게는 칼이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그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들고 있을 뿐이다. 마치 모든 백성들이 산 위를 쳐다보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지팡이를 주목했다. 지팡이와 하늘의 간격에 주목케 한다.

모세의 팔에 힘이 빠져 지팡이와 하늘의 간격이 멀어지면 땅 밑의 전쟁 현황은 확연히 이스라엘이 불리 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만큼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확정된 채 진행될 뿐이라는 것이다.

즉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수아 말고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관여하고 있는 증거다. 모세가 결코 과격하게 산 위에서 지팡이로 바람을 가르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뭔가를 지시하기 위해 산 위에서 지팡이를 들고 있을 뿐이다. 모든 전쟁은 배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확정된 뜻의 실천과정일 뿐임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힘이 있어야 승리한다는 것은 인간 동네에서나 상식이다. 힘 없이는 승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함께 있는 민족은 하나님의 계획한 바, 바로 약속이 세상은 움직여질 뿐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민족이다. 이로서 참된 신과 가짜 신이 구분된다.

악마의 지배를 받는 목사의 특징은 사람을 의존하고 사람의 힘을 의존한다는 것이다. 흔히 교인들이 안 도와주어서 목회를 제대로 못했다고 핑계 댄다. 즉 목회도 힘을 가져야 목회가 되는데 교인들이 목사에게 힘을 안 실어주어서 목회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 주장에 의하면 악마가 우글거리는 이 세상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종인 자기 자신에게 힘을 모아달라는 것이다. 목회하는데 있어 협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달라는 것이다. 선교 헌금을 내라면 뭉텅이로 내어달라는 것이다. 목회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사택도 새로 지어주고 새로운 승용차도 사달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목사에게 힘 실어주기 위한 본문으로서 흔히 사용되었다. 힘과 힘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것이 악마가 보낸 목회자들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목회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의 계획만 의존한다. 현재 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 천지로 간주하고 범사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날도 아말렉은 성도를 공격한다. 난데없이 공격하는 것이 그들을 이용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그것마저 하나님의 계획된 은혜인 줄 알고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계획에 의해서 구원된 자가 발생됨을 위하여 우리 자신들이 존재함을 믿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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